우리 부부는 2008년 2월 4일 10년 전 귀천하신 장인의 유지를 받들기 위하여 법원에 개명 신청을 하러 갔다. 우체국에서 수입인지를 산 다음 서가에 꽂혀 있는 건강보험 2월호를 통해 2008년 7월 1일부터 시행되는 노인 장기요양보험 실시에 따라 국가 자격증인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무시험으로 취득하는 제1기 수강생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게 되었다. 그 순간, “바로 이거야!”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장인의 배려처럼 느껴졌다.
국가자격증인데 어찌 민간자격에 비교할 수 있으랴! 선착순이라기에 접수를 마치고 접수증을 받아들 때의 기분은 ‘국가자격증을 하나 더 취득했다!’는 기대감 속에서 요양보호사의 꿈에 부푼 채 귀가할 수 있었다.
강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교육원 입소식 때 교육계의 거장이라 할 수 있는 서울대학교 이사장께서 참석하여 제1기생으로서 긍지와 향후 국가의 전문 요양보호사의 전망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격려해 주었다.
하루 8시간의 힘든 강의가 시작되었다.
신규 1급 과정은 이론, 실기, 실습 등 총 240시간을 이수해야 되기 때문에 엄격한 출결확인과 대학교수와
요양단체의 대표 및 요양기관의 임원으로 구성된 강사진의 열성을 다하는 수업이 줄기차게 진행되었다.
첫 날에는‘강의쯤이야’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계속되는 8시간의 강의를 받다보니 체력적으로 한계가 오기도 했다.
강의 끝나고 귀가하면 그렇게 좋아했던 일일 연속극도 보지 못한 채 지쳐 쓰러져 자기 일쑤였다. 때로는 그만 두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비싼 수강료가 아까워 그만 둘 수가 없었다. 오죽했으면“학교 다닐 때 이렇게 공부했으면 전교 1등 했을 것” 이라며 아내는 푸념을 하기도 했다.
처음 며칠 동안 책상에 나란히 앉아있는 우리 부부는 수강생들의 경계 대상이 되기도 했고 오해도 많이 받았지만 개인 소개가 있은 다음부터는 반대로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고 또 은근히 시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좀 떨어져 다니세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집에 가서 우리 남편에게 두 분을 이야기하며 어떻게
그토록 앞서가는 생각했을까?” 하며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또 제법 세련된 여인은 쉬는 시간이면“커피라도 한 잔 권하고 싶은데 경호원처럼 사모님이 딱 붙어 있어서….”라며 못내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 부부가 한 책상에 나란히 앉아 매일 8시간 동안 강의를 듣는 것은 비록 힘들었지만 큰 행복이 아닐 수 없었다. 뒤돌아보면 세 자녀들이 출가하기까지 그들을 위해 보든 걸 바치다보니 우리 부부가 함께했던 일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날마다 요양보호사에 대한 꿈에 부푼 채 계속되는 강의와 실기를 마치고 현장에 나아가 근무하게 될 노인요양원, 가정파견시설, 주간보호센터 등에서 80시간을 간병인들과 함께 경험을 쌓아갔다. 그 곳에서는 경구, 비경구식사 및 투약 돕기, 체위 변경과 목욕시키기, 대변 받아 내며 말벗해 드리기, 휠체어 모시기 등 주사만 놓지 못할 뿐 마치 나이팅게일이 된 기분으로 실력을 키웠다. 이렇게 수업을 받다보니, 건강의 중요성과 함께‘권력과 부귀와 명예를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요.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는 영국속담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요양보호사 교육을 받기 전, 치매, 중풍 환자라면 무조건 두려움의 대상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교육을 통하여 그분들의 동반자로서 언제 어디서나 우리 부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분들에게 즐거운 마음으로 그분들의 손과 발이 되어 드리고 말벗이 되어 은빛 인생을 보람차게 보내리라 다짐하였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은 초고령사회 대비를 위해 우리 국민 모두가 받아야 할 국민자격증이기에 모든 사람에게 권유하고 싶다. 끝으로 이렇게 좋은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국민건강보험 공단에 깊은 감사를 드리면서 제1기 부부요양보호
사로서 드높은 긍지와 자부심을 가져본다.
글+조문현 요양보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