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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Psyche) - 의식(Conscious) - 무의식(Unconscious) - 개인 무의식(Personal Unconscious) - 집단 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 |
집단 무의식은 우리가 경험한 것이아니라. 조상적부터 내려오던 무의식이다.
어머니다 하면 한국사람이나 서양사람이나 가지는 마음이다. 이것이 집단 무의식이다.
아니마 아니무스는 집단무의식에 속한다.
(1)‘의식’ - 자아(ego)
내가 의식하고 있는 모든 것(내 생각, 내 마음, 내 느낌, 나의 이념, 나의 과거, 내가 아는 이 세계 등), 다시 말해 나(자아)를 통해 연상되는 모든 정신적 내용이다(‘나 - 자아(ego)’는 의식의 중심에 위치함)
가치와 이념이 있다. 인간관,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의식이다. 정신적 내용이다. 의식의 중심에 내가 있다. 나를 중심으로 생각, 느낌이 있다. 의식은 자아 콤플렉스다. 나라고 하는 의식 자아이다.
(2)‘무의식’
- ‘내가 아는 세계’가 의식이라면, 내가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가 아직 모르는 정신세계, 다시 말해 자아에 속하지 않으며 자아와 아직 연관되지 않는 모든 심리적 내용.
- 아직 의식되지 않은 정신세계로서 자아의 통제 밖에 있다(未知의 精神世界).
무의식은 아직은 모르는 정신세계이다. 의식상에 올라오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갖고 있는지 자아에 연결 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내 안에 내면의 세계에 의식화, 미지의 정신세계이다. 신경적 증상, 3이라는 숫자가 계속 떠오르는 경우, 강박적으로 괴롭히고 혼란스럽게 하는 것, 내가 하고 싶지 않아도 계속떠오는 것은 자아 통제 밖에 있기 때문이다.
(3)외적 인격과 내적 인격
- 자아(ego)는 한편으로 외적 세계와 관계를 맺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나의 마음인 내적 세계와도 관계를 맺고 있다.
자아는 내적, 외적관계 속에 있다. 고민, 초조, 기쁨, 나는 외부세계와 관계를 맺고 있지만 정신세계와 관계를 맺고 있다.
A. 외적 인격으로서의 ‘가면’(페르조나, Persona)
우리가 소위 ‘현실’ 또는 ‘사회’라고 부르는 것과 관계를 갖고 적응해가는 가운데 우리는 다양한 적응방식을 형성하고, 역할을 부여받는다. 이와 같이 자아가 외부세계에 적응하기 위한 필요에 의해 형성된 정신내용으로서, 개인이 속한 집단이 그에게 준 역할, 의무, 약속 및 그 밖의 행동양식을 페르조나(외적 인격 - 가면)라고 정의내렸다.
교육, 사회에 적응하고 있을 까하는 나름대로 방식, 습득하고 조직에 특정한 기능을 갖고 하는 것이다. 예의, 상담심리학, 학생들을 이해해 주는 것, 기대되는 역할, 아버지로서의 역할 아내로서의 역할, 이러한 것이 페르조나이다. 이상적인 모델, 기대되는 모델, 역할, 기대에 부흥해 주어야 한다. 나이가 60대 할머니가 비키니 옷을 입고 있다. 먼가 어색, 잘못되어 있는 것 같다. 우리가 그렇게 느끼는 것은 한국사람의 기대되는 외적 인격이 있다.
B. 내적 인격으로서의 ‘마음-넋’(젤레, Seele)
- 페르조나가 자아로 하여금 외적 세계와의 관계를 맺도록 하는 매개체라면, 자아로 하여금 내적 세계(무의식의 세계)와 관계를 맺도록 하는 매개체가 바로 젤레(내적 인격-마음)이다.
내적 인격이 넋이다. 내적세계이다. 그림자 아니마, 심층적인 아니마 아니무스가 내적 인격이다.
(4)무의식의 내용과 특징 -개인무의식과 집단무의식
A. 개인무의식 - 의식으로부터 억압된 내용 + 단순한 망각내용/무시된 내용. 개인무의식의 내용은 개개인의 출생이후의 경험내용(후천적)으로 구성되며, 그렇기 때문에 개인마다 독특한 내용을 지님(cf. 프로이트의 무의식개념)
개인무의식은 프로이트와 유사하다. 의식으로부터 억압된 내용과 단순한 망각내용, 내나름되로의 경험, 개인마다 독특한 특성이 있다. 프로이트는 태어나자 성적본능이 있는데 현실과 맞지않아서 이것이 억압된 내용이다.
융은 성적본능이 뿐만아니라 일상적인 것도 무의식으로 작용된다.
B. 집단무의식 -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났으나 아직 의식되지 못한 채, 정신작용에 큰 영향을 미치는 내용. 선천적으로 존재하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인 내용을 지님.
집단무의식은 신에 대한 이미지가 있다. 어머니 하면 안기고 싶은, 애정도, 부정적인 자식에 대한 소유욕, 질투이러한 것들이 있다. 이러한 것들이 집단 무의식이다.
(5)콤플렉스
콤플렉스는 의식과 무의식 수준 모두에 존재하며, 이런 콤플렉스 중에서 특히 집단무의식에 존재하는 콤플렉스를 원초적 유형, 근원적 유형, 또는 原型(Archetype)이라고 함.
콤플렉스를 원초적유형, 근원적유형,원형이 있다. 아직 의식하지 못한 콤플렉스도 있다.
2)무의식의 의식화과정 - 자기실현(개성화, individuation)
- 의식의 중심인 자아는 정신의 의식된 부분에 불과하므로 그것이 나의 전체를 자각하려면 무의식적인 것들을 하나씩 깨달아 나가는 의식화의 과정(그림2와 그림3 참조)이 필요하다.
개성화는 내가 알고 잇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내가 진정한 내가 된다는 것이 개성화된다. 내가 진정한 나를 찾아간다. 하나님께 나아간다. 성령을 받고, 또한 불교에서 불성을 갖고 있고, 또한 소명이다. 또한 온전한 삶을 살게 된다.
나라고 하는 것, 나는 김호수다. 김호수가 나가 아니다. 하나의 일부이다. 나라고 믿고 믿고 싶은 것이지 기억하는 것 다 나가 아니다. 어떠한 것도 진정한 나를 들어 낼수 있지 않다. 나자신을 찾아가는 과정, 무지개를 찾아가는 사람이 노인이 되듯이,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과정이다.내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17세기 중국의 보명선사가 頌을 쓴 목우도(牧牛圖)중 일부(전체 10개). 소를 잡고 타고 기르는 동안 검은 소가 점차 흰 소로 변해가는 과정이 제시되어 있다. 검은 소가 흰 소로 바뀌는 것은 어두운 무의식을 의식화시겨 감으로써 전체정신을 실현해나가는 과정을 비유한 것이다. 十牛圖 또는 尋牛圖라고도 한다>.
십우도에 담긴 정신치료적 의미 : 한국정신치료학회의 素岩 이동식박사님의 ‘道와 정신치료’
http://www.daopsychotherapy.org/rhee/06_sub_010_04.php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이부영의 자기와 자기실현 pp277-302 참조.
내가 찾아 나간다는 의미로 십우도라고 하고, 목우도라고 한다. 세 번째 그림은 하나씩 깨닫게 되어진다. 소라고 하는 것은 무의식, 소를 기르는 과정, 세상으로 돌아가서 돕는,무의식이라는 소, 처음에는 어둠의 소, 두 번째 길들이고, 세 번째는 깨달아 지는 과정이고, 나중에는 깨닫고 하얀게 변함.
A. 그림자(Shadow) : 의식화과정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무의식의 내용으로서 자아의식의 무의식적인 부분(그림 4). 아직은 어둠 속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 자아의 일부분(ex. MBTI의 반대유형).
어떤일을 계획하고, 나의 장점을 개발하고, 또한 나의 열등기간을 계발하는 것이다.
B. 마음(Seele)으로서의 '아니마(anima)'와 '아니무스(animus)'
일반적으로 그림자 다음에 만나는 무의식의 내용. 아니마는 남성들이 지니는 무의식적 여성성이고, 아니무스는 여성들이 지니는 무의식적 남성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자아로 하여금 자기(Self)에 도달하게끔 하는 인도자/안내자의 역할.
그림자속에 아니마, 남성들이 가지고 있는 무의식이고, 아니무스는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무의식의 남성성이다. 중년기때 반대가 올라온다. 중년기때 처럼 삐지고 살아가는 것이 나타나고, 여성들은 남성성이 나타난다.
C. 자기(Self)와 자기실현(개성화, individuation)
- 자기의 전체의 인격을 실현하는 것을 의미하며, 융은 인간의 “내부에서 우러나오는 필연적 요구”(인간은 누구나 자기실현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의미)라고 봄.
인간은 누구나 자기실현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의미, 아무리 깨닫으려고 해도 다 깨달을 수 없음, 완전성이 아니라 온전성이다.
- 인간 속에는 정신의 분열을 지양하고 통일케 하는 요소가 존재하는데 이것을 융은 ‘自己自身(Self)’ 또는 ‘本然의 自己’라고 부름. 자아의 좁은 울타리를 넘어 무의식적인 것을 깨달음으로써 본연의 자기를 실현시킨다는 의미.
(完全性이 아닌 圓滿性으로서의 자기실현 - 완전한 사람이 아닌 온전한 사람으로서의 발달)
* 자기전체를 실현시키는 근원적 능력이 무의식에 있는 것이며, 다시 말해 무의식은 항상 그 근원적인 전체에의 지향성으로 말미암아 의식에 작용하여 의식으로 하여금 무의식적인 내용을 촉구한다. 의식이 그것을 외면하여 정도가 너무 지나치게 되면 무의식의 힘에 의해 의식이 해리되거나 무의식의 콤플렉스에 사로잡힌다. 이것은 분명히 바람직하지 못한 정신장애라 할 수 있는 현상이지만 그 현상 뒤에는 해리를 지양하고 통일된 정신세계를 형성하려는 무의식의 지향성이 작용하고 있다.
이렇듯 무의식은 의식에 대해 ‘상보적 관계(compensation)’에 있다. ‘의식이 무의식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과 더불어 살 때’ 인간정신의 전체적 실현과 그 성숙은 가능해진다.
<퇴계의 天命新圖 - 천명과 인간심성 그리고 우주만물의 관계를 원형으로 나타냄. 하늘은 원을, 땅은 사각형으로 그리고 12간지, 오행, 4단 7정 등을 나타냄>.
퇴계의 천명신도 만달 안에 그림12,4,7 나타냄,
2교시 ---------------------------------------------------
우리가 내면의 성찰을 해서 내적 인격과 맺어야 한다. 내가 갖고 있지만 개발하지 못한 그림자, 의식화하고 깨달아가고, 아니마, 아니무스를 발견하고, 진정한 자기 자아실현이다.
의식에만 관심을 가지만 한 쪽으로 사는 삶이다. 의시과 무의식과의 생활만 하면 심리적 불균형이 일으키게 된다. 노이로제,
자신의 잠재력을 찾아가는 것이 습득된다. 어떻게 하면 무의식을 의식하게 되는 가?
꿈이라는 분석작업을 통하여 깨달아가는 것, 종교적 수행, 명상,기도,묵상, 내면의 것을 숨기지 않고, 깨달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신성하는 힘이라고 하는 것,
자기라는 셀프자체가 자신을 인도한다.
자기라는 보상작용, 지나치게 합리적인 사람,비합리적이게 행동, 열렬한 사랑, 도덕적인 사람이 실수를 한다든가. 그것이 보상작용이다. 정신장애 부정적인 것이 신경증이라는 것은 자신을 새로운 다른 측면을 깨닫고 나아가는 것이다. 융의 셀프라는 만남이 이루어진다. 의식은 무의식을 찾아가는 자신의 개성작용이다.
2. 자아와 의식
1)의식과 무의식 그리고 자아
(1) ‘무의식 : 바다/ 의식 : 섬’의 비유.
(2) 의식은 자아콤플렉스이다. 다시 말해 심리내용이 자아에 의해 인지되면(자아와 관계를 맺으면) 그것은 의식이고, 그렇지 못하면 무의식적인 것이다.
(3)의식은 넓은 무의식에 대해서 좁은 것이다. 그것은 오직 주어진 순간에 몇 가지의 내용을 동시에 붙잡아 놓을 수 있을 뿐이다. 모든 다른 것은 그 순간 무의식적이다.
(4)“무의식은 거대하며 언제나 계속된다. 이에 비해서 의식의 영역은 순간적인 영상에 국한된 영역이다.”
cf. 프로이트 무의식이 의식에서 나온 것으로 보았으나, 반대로 융은 “처음에 있었던 것은 무의식적인 것이며 의식은 무의식적 상황에서 생각났다”고 주장함(ex 본능적인 기능 - 무의식적 활동).
융은 태초에 있었던 것이다. 융은 처음에는 무의식적인 것이다. 의식이라는 것은 무의식에서 나온다고 주장한다. 무의식에서 의식에서 나온다.
2)의식의 형성과 자아
*의식의 형성과정 :
의식은 (1)자기신체, 자기존재에 대한 의식을 통해서, (2)일련의 기억에 의해서 형성된다. 이 후 (3)삶의 일반적 태도(심리유형론의 외향성/내향성)의 분화, 정신기능(직관/감각/사고/감정 등 심리유형론의 정신의 4가지 기능)의 분화 등이 나타난다. 이것은 물론 분화정도에 따라 무의식의 내용이 될 수 있다.
이제부터 술담배 끊고 잘 해보고 싶다. 기억에 의해서 의식생김, 성격에 따라 의식이 생김,
정신의 기능은 4가지 있다. 직관, 감각, 사고, 감정이 있다. 이게 나다. 이러한 것들이 나에 대한 의식이 있기 때문에 내가 왜이러지 하게 된다. 분화정도, 발달정도, 내가 외향적이고 출세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하면 내향적으로 개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향성이라는 열등하게 되고 발달시키지 못할 때,
3)의식과 자아의 가치
(1)“자아의 탄생 - 자아가 태어났다는 것은 자아에 대해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것은 매우 외상적(highly traumatic)입니다. 당신이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생각해보십시요”
의식은 무의식의 산물이다. “그것은 격렬한 노력을 요하는 조건이다. 의식됨으로써 사람은 피곤해진다. 의식에 의해서 사람들은 지친다.”
나로 태어 났다는 것이 고통이다. 무의식에서 의식이 나온다. 낙원에서 쫓겨나는 것이 탄생이다. 생각을 하게 되면 피곤해진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지친다.
(2)의식이 무의식에 비길 데 없이 작다고 해서 융이 의식의 기능과 가치를 무시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자아가 없으면 인간정신의 성숙도 불가능하고 융의 개성화(Individuation)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무의식적인 것을 의식화하려면 자아가 있고 의식이 있어야 한다. 또한 무의식은 자아의 무의식에 대한 태도 여하에 따라서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반응하게 된다 자아가 무의식의 내용을 파악하고 그것을 의식화하고자 하면 할수록 무의식은 그의 창조적인 암시를 더욱 활발히 내보내게 된다.
무식적인 의식하려면 자아가 있어야한다. 자아가 없다면 그것은 정신병이다. 정신병은 무의식에 함몰되어 살기 때문이다. 무의식을 왜면하고 피하면 나를 무의식 찾게 하기 위해서 고통, 위기를 가져와서 무의식을 찾게 끔 한다.
(3)“자아(콤플렉스)는 마치 자석과 같은 큰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무의식의 내용을 우리가 모르는 어둠의 세계에서 끌어당긴다. 그것은 또한 밖에서 오는 여러 인상들을 끌어당긴다. 그것들이 자아와 관련을 가지게 되면 그것들은 의식이 된다.” 의식은 좁은 것이라 하였다. 의식에 비해 무의식은 작은 섬을 둘러싼 대양(大洋)과 같은 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의식은 작은 섬처첨 가만히 있는 실체가 아니고 항상 변하고 있다.
3교시---------------------------------------------------------
3. 무의식의 내용과 기능
1)무의식의 정의
- ‘무의식이란 무엇인가?’. 그것을 정의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 존재를 참으로 깨닫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무의식은 있다고 하니까 있고 없다고 하니까 없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그것을 스스로 경험해 봄으로써 비로소 그 존재를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의식의 개념은 머리로 생각해서 만들어낸 말이 아니고 경험을 토대로 얻은 사실에 불인 이름이다.
의식은 아는 마음이고 무의식은 모르는 마음이다. 무의식은 있다. 스스로 경험, 무의식은 사실대로 있는 것이다.
*무의식의 정의: 무의식은 보다 넓고 깊은 인간정신의 심층을 포괄하는 것이 된다. 무의식이란 융에 의하면 우리가 가지고 있으면서 아직 모르고 있는 우리의 정신의 모든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너머의 미지의 정신세계 - 그것이 무의식이다.
2)무의식의 기능과 작용
(1)신경증(노이로제)뉴로시스
사람들은 내 마음은 내가 더 잘 알고 남이 내 마음을 알 까닭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마음이 병을 일으켰으면 그때는 가족들이 네가 마음을 단단히 고쳐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고, 환자도 그렇게 믿고 여러가지 자가치료를 해 본다. 그러니 심리치료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강조한다. 그러나 신경증(노이로제)의 증상은 이런 상식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해 준다. 왜냐하면 환자가 괴로워하고 있는 것은 바로 “내 마음도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의식이 할 수없는 무의식의 생각이다.마음의 괴로움, 걱정의 생각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ex.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쓸데없는 생각’, 암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꼭 암에 걸린 것 같은 끊임없는 공포, 바보스럽다고 생각하면서도 꼭 3이라는 숫자를 외지 않고는 무슨 일을 시작할 수 없는 마음의 괴로움, 걱정할 일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는데 느닷없이 엄습하는 죽음의 불안 등) 이런 현상들은 모두 ‘의식’, ‘나’, ‘의지’라는 것이 이미 통제할 수 없는 강력한 무엇이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는 증거이며, 그것을 가리켜 우리는 무의식의 작용이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떠오는 것들,
(2)일상생활에서의 실수
반드시 노이로제의 증상을 통해서만 무의식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생활에서의 표현에서 의식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어떤 미지의 힘이 있음을 나타낸다. 가령 ‘나도 모르게’ 실수를 한다든가, ‘어쩔 수 없이’ ‘이끌리는 듯한 기분’으로 무엇을 한다든지, ‘눈에 뭐가 씌었다’, ‘순간 정신이 나갔다’, ‘귀신에 홀린 것 같다’라는 표현에도 담겨 있듯이 이것은 모두 내가 알고 있고 내가 조절할 수 있는 정신계 너머의 또 하나의 무엇이 존재함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실수했내, 어쩔수 없이, 홀렸다, 콩깍지 쉬었다. 착각, 귀신에 홀렸다. 정신이상의 정신세계가 있다. 융은 이러한 것들을 정신세계에 있다고 말한다.
3)무의식의 2가지 유형(층)
(1)개인무의식 : 그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자라는 동안 겪은 개인 생활에서의 체험 내용 가운데서 (a)무슨 이유에서든 단순하게 망각된 내용, (b)현실세계의 도덕관이나 가치관 때문에 현실에 어울리지 않아 억압된 내용(cf. 프로이트는 성적인 것에만 국한), (c)의식에 도달하기에는 그 자극의 강도가 미약한 역치하 지각의 내용 등으로 구성된다(ex. ‘그림자’란 대개 개인무의식의 내용과 관련된다. 이 무의식은 개인의 독특한 삶의 경험과 관련되어 개인의 성격상 특징을 이루게 된다.
성격과 연단되어 있다.
(2)집단무의식 : 무의식에는 개인적인 특성과는 관계없이 사람이면 누구에게서나 발견되는 보편적인 내용이 있다. 이 내용은 태어난 이후의 경험내용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태어날 때 이미 가지고 나오는 무의식의 충으로서 일찍이 의식된 일이 없는 것들이다. 이것은 개인의 특성보다 인류 일반의 특성을 부여하는 요소들이다. 집단적 무의식은 인간에게 주어진 여러가지'원형(Archetype)'들에 의하여 구성된다. 원형이란 지리적 차이, 문화나 인종의 차이와 관련 없이 존재하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며 보편적인 행동유형올 말하는데, 이것은 신화를 산출하는 그릇이며 우리 마음속의 종교적 원천이다.
한국사람과 외국사람이 똑같네 라는 것이 집단 무의식이다. 원형이란! 예술작품, 성경,불경,인간의 원초적인 원형, 악한자,어리석은, 지혜로운원형, 삼국유사 신화적인 전통적인 인간의 심성이라는 집단적 인간의 원형이다.
(3)무의식에 대한 일반인들의 부정적 편견을 가진다.
무의식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주장에 불쾌감이나 불안감을 가지는 사람들은 대개 이 사람들은 무의식이 ‘없다’거나 ‘좋지 않은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무슨 ‘알 수 없는 좋지 않은 것’이 자기 마음에 도사리고 있다는 생각은 뱃속에 회충이 있다는 생각보다 더 기분 나쁜 일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회충은 알고 있는 벌레이고, 또한 그것을 쉽게 없애는 약도 있기 때문이다. 때때로 정신병이나 노이로제 환자의 증상에 나타나는 무의식의 작용은 마치 암세포가 스스로의 힘에 의하여 커져서 건강한 조직을 침식하고 파괴해 들어가듯 무의식의 힘이 의식의 영역을 침범하여 의식을 동화해 나가는
좋지 못한 영향을 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무의식의 본래의 기능이 아니라 ‘무의식의 본래의 기능이 제대로 발휘할 수 없게 될 때 나타나는 부작용’과 같은 것이다.
무의식 자체를 나를 도와준다. 꽃도, 들풀도, 하물며 내새끼를 버릴까 보냐, 무의식을 험난한 고통이라고 생각하며 피할려고 하면 이러한 노이로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의식은 나쁜것이 아니라 나를 도와주는 역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리치료를 받는 사람 가운데는 ‘그 동안 많이 낫는데 그래도 뭔가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하면서 마음속에 있는 응어리를 없애 주기를 요구하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분명히 무의식을 씻어내어야 할 나쁜 응어리, 떼어내어야 할 혹처럼 생각하는 데서 오는 태도이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데는 무의식의 내용을 상당히 부정적인 측면에서만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의식은 ‘혹’ 이 아니고 ‘생명’ 과 같은 것이다. 거기에는 무한한 가능성으로 향하는 에너지가 저장되어 있다. 그것은 떼어 버리거나 없애야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 생명의 원천이며 창조적 가능성을 지닌 것이다. 그것은 방어해야 할 위험한 충동이기보다 체험하여 의식으로 동화해야 할 것들이다. 기도,명상해야 부분이다.
즉 무의식이 지닌 ‘지향적 의미’를 찾고, 그것을 이해하려는 태도를 가지게 된다. 내 마음속에 나도 모르게 존재하는 또 하나의 마음이 어떤 ‘뜻’을 가지고 있다고 보며 그 뜻을 찾아나가게 되는 것이다.
불이 났다면 믿음이 있으면 뛰어내리지만 믿음이 없으면 띄어내릴 수 없다.
<달을 걸쳐 천상의 세계로 이르는 야곱의 사다리. 야곱의 꿈: “ 그가 보니 땅에 층계가 세워져 있고 그 꼭대기는 하늘에 닿아 있는데, 하느님의 천사들이 그 층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주님께서 그 위에 서서 말씀하셨다......(창세기, 28:12~13)” - 윌리암 블레이크의 작품>
(4)무의식의 특징
A. 자율성(Autonomy)
무의식은 의식작용에 구애받음이 없이 그 스스로의 법칙에 따라서 움직여 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무의식은 의식작용보다도 더 영원하며 때로는 의식을 능가하는 특성을 가진다. 그러나 이 자율성은 하나의 창조적 자율성이다. 무의식은 의식을 그 자율적인 힘으로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에게 여러가지 미래에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B. 代償作用(또는 補償作用, Compensation) - '무의식의 의식에 대한 관계는 代償的이다'
무의식은 의식에 결여된 것을 보충하는 역할을 하며, 그럼으로써 그 개체로 하여금 정신적인 통합을 이루게 인도한다(ex. 의식이 너무 일방적으로 知的이면 무의식은 情的인 특정을 띠며, 의식이 지나치게 外向的이면 무의식은 內向的인 경향을 띤다 - 심리유형론).
사회적인 사람은 가정에서는 말이 없다. 무의식이 균형적인 사람으로 말을 적게 만든다.
무의식은 어떤 사건을 일으켜서 보상과정으로 일으킨다. 참고 살았던 사람이 폭발적으로 되어진다. 미녀와 야수가 만남으로 야수가 변화되어지는 것, 음향의 조화, 무의식을 수용함으로 동화되어진다.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 무의식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고 그 이해의 바탕 위에서 가설을 세우지만 무의식이란 끝까지 알 수는 없는 것이다. 융의 말대로 “무의식은 진실로 무의식적이다.”
무의식은 미지의 세계이다. 균형을 이루는 것, 융의 전집이 20권이다. 내가가지고 있는 책50권이다. 융에 대해서, 참된 자기를 찾아 나가라. 궁극적인 목적이다. 모든 삶의 경험에서 찾았던 사람이 융이다.
융의 무의식에서는 신성 불성과 같은 존재이다. 슬픔과 기쁨 속에서 찾아가는 복된 삶이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귀한 자료 공유해 주셔서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