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이었으므로 비가 오지 않았어야 했다. 이슬비라기에는 너무 많이 와서 경치가 잘 보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와이퍼를 계속 움직여야 했다. 나는 로스앤젤레스와 산티에고의 중간쯤에서 계속 남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학교는 고속도로에서 오른쪽으로 벗어난 곳에 있었으며, 운동장은 바닷가와 나란히 하고 있었다. 바닷가 쪽으로 라구나 페르디다(Laguna Perdida)라는 이름이 붇게된 진창이 어둠침침한 빛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멀리 떨어져 있어 조그맣게 보이는 푸른 해오라기는 물결이 이는 바닷가에서 작은 입상처럼 서 있었다.
나는 자동문을 지나 운동장으로 들어갔다. 푸른 제복을 입은 반쯤 머리가 흰 사람이 경비실에서 나와 내 앞으로 다가왔다.
" 출입증 있어요?"
" 스폰티 박사와 만나기로 했어요. 제 이름은 루 아처입니다."
" 그렇습니까. 여기 방문자 명단에 이름이 있어요."
그는 가슴주머니에서 타이프라이터로 친 명단을 끄집어내어 마치 글을 아는 것이 자랑스럽기라도 한 것처럼 휘두르며 말했다.
" 본부빌딩 앞에 주차할 수 있습니다. 스폰티 박사의 사무실은 안으로 들어가면 바로 있어요."
그는 100야드 정도 떨어진 회색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는 경비실로 들어갈려다 무릎을 두드리며 말했다.
" 무릎이 좋지 않아요. 1차 대전 때 다쳤죠."
" 그렇게까지 늙어 보이지는 않는데요."
" 사실 그래요. 15살 때 영장이 나왔으니까요. 18살이라고 그랬죠. 그 때는 그런 애들이 많았어요."
그는 약간 계면쩍은 듯 말을 이었다.
" 전쟁 맛을 보려고요."
주변에는 학생이 아무도 없었다. 학교 건물은 아무 것도 없는 넓은 공지에 넓게 지어져 있었다. 유칼립투스 나무가 잿빛 하늘 아래 덤성덤성 서 있었다.
" 힐만이라는 학생 알아요?"
경비원에게 물어보았다.
" 그 녀석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죠. 문제아예요. 도망치기 전에는 동관을 휘저었죠. 패치선생님이 꽤나 고생했죠."
" 패치 선생님?"
" 예, 패치 선생님이 동관 사감이신 데 학생들과 함께 살죠. 신경께나 쓰시고 살아요."
" 힐만 학생이 어떻게 했는데요?"
" 패치 선생님 말에 의하면 선동을 했대요. 여기 있는 학생들도 다른 어떤 곳에 있는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시민권이 있다고. 사실 여기는 없거든요. 여기 있는 애들은 좀 이상한 애들인데 대부분 머리가 좀 돌았어요. 그 외에도 할 말이 많지만 당신은 믿지 못할 거 에요. 제가 14년 동안 이 문을 지키고 있었는데...."
" 토미 힐만은 이 문을 통해 나갔어요?"
" 아니오. 그는 담을 튀어 넘어갔어요. 한밤중에 학생 기숙사 철조망을 자르고 슬그머니 나가버렸죠."
" 그저께 밤에?"
" 그래요. 아마 지금쯤 집에 있겠죠 뭐."
힐만이 집에 있었으면 내가 여기를 왜 와.
스폰티 박사는 내가 주차하는 것을 보고 있었든 것 같다. 그의 사무실 문 밖 비서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왼손에는 버터우유잔을 들고 오른손에는 열량없는 웨야스를 들고 있었다. 그는 웨야스를 한 입에 털어넣고 우물거리며 손을 내 밀었다.
" 만나서 반가워요."
그는 약간 탄 얼굴에 혈색이 좋았으며, 풍채도 좋았으나 체중이 늘어나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그는 눈이 약간 떨고 있어 감정적인 사람이나 감정을 통제할 줄도 아는 사람인 것 같았다. 그가 입은 옷은 검은 줄무늬로 비싼 것인데 몸에 잘 맞았다. 그의 손은 부드러우면서도 차가웠다.
스폰티 박사는 나도 알고 있는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해 간단히 언급했다. 짖은 색 마호가니 책장과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회색 빛은 장의사 집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마치 학교와 선생님들은 학생들 때문에 다 죽어가고 있는 것처럼.
약간 슬픈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앉으세요, 저가 장거리 전화에서 말한 것처럼 약간 문제가 있어요. 대개 우리는 잃어버린 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내는데 사립탐정을 고용하지는 않아요. 그러나 이번 문제는 제가 생각하기에 좀 특별한 경우 같아서..."
" 뭐가 특별한 거죠?"
스폰티는 버터우유를 한 모금 마신 후 혀로 윗입술을 핥으면서 말했다.
" 아니.. 참 점심 드시겠어요?"
" 괜찮아요."
안달하는 듯이 유리잔에 조금 남은 우유를 흔들면서 말했다.
" 그런 게 아니고, ... 주방에서 뭐 좀 따뜻한 것을 가져오게 하면 되요. 오늘 메뉴는 빌 스칼로피니(이탈리아식 송아지 고기 요리) 인데"
" 괜찮아요. 그것 보담 저가 일할 수 있게 정보를 좀 더 주셨으면 좋겠는데요. 도망친 아이를 찾는데 왜 저를 불렀죠? 아이들이 꽤 도망을 치나보죠?"
" 당신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그렇지는 않아요. 우리아이들은 대부분 학교에서 조용히 생활하죠. 우리 학교에서는 매우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어요. 그런데 토마스 힐만 녀석은 여기 온지가 일주일도 안되면서 단체생활을 하려고 하지 않아요. 참 힘든 녀석이죠."
" 그게 특별하다는 겁니까?"
" 솔직히 말해서 아처씨, " 약간 주저하듯이 말을 이었다.
" 이 문제는 저의 학교에서 다루기가 힘든 문제라서. 저는 사실 힐만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를 잘 다루기로 약속했거든요. 그 애 아버지는 랄프 힐만이라는 사람인데 그 사람이 하도 주장해서. 그 사람이 지금 자기 아들의 도망 - 음 도망이라기보다는 부정퇴가라고나 할까요 - 이 전적으로 우리 책임이라는 거에요. 만약 자기 아들이 조금이라도 상해를 입었다면 우리를 고소하겠대요. 우리가 전에도 이런 고소를 당한 적이 있었는데 성립되지는 않았지만.... 그렇지만 우리 학교 명성에 아주 좋지 않아요."
" 패치 녀석이 잘못했어." 그는 중얼거리듯 덧붙였다.
" 패치가 어떻게 했는데요?"
" 잘은 모르지만 불필요한 폭력을 쓴 것 같아요. 남자대 남자로서 그 사람을 욕하는 것은 아니지만, 패치에게 가서 직접 이야기해 보세요. 그 사람이 자세한 이야기를 해 줄 거예요."
" 좀 있다 그 사람에게 가 볼 거예요. 그렇지만 당신이 그 소년에 대해 좀 더 이야기 해 주세요."
" 저도 그렇게 잘 몰라요. 학교에 들어올 때 가족관계라거나 의사관계 같은 것들을 자세히 쓰기는 하지만요. 힐만씨가 써 준다고 했는데 아직 안 보냈어요. 그 사람에게 뭘 받아내는 것은 무척 힘들어요. 그 사람은 매우 자존심이 강하고 성마른 사람이에요."
" 그리고 돈도 많구요?"
" 그 사람이 어느 정도 부잔지는 잘 모르겠어요. 우리 학교 학부형들은 대부분 다 잘사는 편이거든요." 약간 속물적인 웃음이 그의 얼굴에 번졌다.
" 힐만씨를 만나보아야 하겠어요. 그 사람 이 동네에 살아요?"
" 그래요. 그렇지만 그 사람 만나지는 마세요. 최소한 오늘은 만나지 말아요. 조금 전에도 전화를 받았는데 만나면 화만 돋굴 뿐이에요."
스폰티는 책상에서 일어나 창문 쪽으로 가서 주차장을 내려다보았다. 나도 창문 쪽으로 갔다.
이슬비는 안개처럼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 그 소년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그의 습관이나 그 밖에 것들 모두요."
" 아마 패치가 줄 거예요. 저보다는 그 소년을 더 잘 알아요. 그는 매일 그 소년과 만나니까요. 또 여사감을 만날 수도 있어요. 맬로우 여사인데 그 여자는 사람을 잘 보아요."
" 두 사람 다 있었으면 좋겠네요." 나는 스폰티와 이야기하기가 싫어졌다. 그는 나와 그 소년의 도망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 같았다. " 그 소년은 몇 살이고, 어떻게 생겼어요?"
스폰티의 눈이 작아지고, 그의 출렁이는 뺨이 약간 붉게 물들었다. " 당신 그렇게 말하는게 싫은데요."
" 그건 당신 마음이고, 톰 힐만은 몇 살이에요?"
" 열일곱"
" 사진 있어요?"
" 학교에 들어올 때 사진을 제출하라고 했는데 제출하지 않았어요. 그가 생긴 모습을 간단히 말하면 그가 입고 다니는 맞지 않는 옷을 봐준다면 꽤 잘생긴 아이에요. 키는 한 6피트 정도로 큰 편이고, 자기나이보다는 더 들어 보여요."
" 눈 색깔은?"
" 짙은 푸른색, 머리는 짙은 갈색이고, 아버지를 닮아서 말상이에요."
"그 밖에 식별할 만 것 있어요?"
그는 어깨를 움칠했다. "난 몰라요."
"그가 어떻게 왔죠?"
"물론 치료받기 위해서죠. 그런데 효과가 날 만큼 오래 있지 않았어요."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당신은 그를 다루기 힘든 아이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지금까지 이야기 한 것을 보면...."
"지금까지는 그랬죠. 오늘날 같은 성이 범람하는 시대에 젊은이들이 어떤 병을 앓는다는 것을 말하기는 쉽지 않죠. 우리는 어떻게와 왜를 모르는 상태에서도 종종 도움을 주곤 하지요. 그렇다고 내가 의사라는 것은 아니지만요."
"저는 당신이 의사인줄 알았어요."
"저는 아니지만 일하는 사람 중에는 치료 의사와 정신과 의사가 있어요. 그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데도 톰은 아직 의사와 상의조차 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렇지만 그가 높이"
"높다니요?"
"감정적으로 격해 있어 통제를 못했어요. 그 애 아버지가 그를 데리고 왔을 때는 아주 좋지 않았어요. 안정제를 주긴 했지만, 여러 상황에 같은 방식으로 대처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 애가 많은 문제를 일으켰어요?"
"그랬죠. 솔직히 말해 그 애를 찾는다고 해도 다시 받지 못할 것 같아요."
"그래도 당신이 그 애를 찾으려고 나를 고용했잖아요."
"달리 방법이 없으니까요."
우리는 금전문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수표를 받고 동관으로 걸어갔다. 패치를 만나기 전에 계곡 건너편의 산을 올려다보았다. 산은 구름에 덥혀 반만 가린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외로운 푸른 해오라기는 해오라기 떼가 모여있는 곳으로 날기 시작하였다.
제 2 장
동관은 흉하게 뻗은 1층 짜리 건물로 널찍한 주변의 경관과 조화되지 않았다. 높고 작은 유리창에서는 더럽고 기분 나쁜 공기가 흘러나오는 것 같았고, 철저하게 폐쇄되어 있었다. 마치 감옥이 감옥 아닌 것처럼 보이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건물 정면에는 뾰족한 키 작은 나무들이 잔디를 둘러싸고 있었는데 장식이라기 보다는 장벽으로 보였다. 풀들은 비가 왔는데도 생기가 없었다.
내가 들어갈 때 아이들은 문 앞에서 줄을 맞추어 걷고 있었다. 나이들은 12살에서 20살까지로 다양했지만 같은 모습이었다. 특이한 공통점으로는 모두 패잔병처럼 걷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것을 보니 1차 대전이 끝날 무렵 라인에서 우리가 잡은 어린 독일 군인이 생각났다.
두 명의 선도가 줄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그들을 뒤따라 걸어갔다. 큰 라운지에는 남루한 가구들만 있었다. 두 선도는 탁구대로 똑바로 걸어가 라켓을 들고 바람막이 옷에서 공을 꺼낸 후 치기 시작했다. 다른 대여섯명의 아이들은 그 것을 구경하고, 네다섯명은 주저앉아 만화책을 보았으며, 나머지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리저리 서서 나를 쳐다보았다.
면도를 해야할 정도로 수염이 긴 아이가 나를 쳐다보며 웃었다. 그 웃음은 밝았지만 내가 잘못 본 것처럼 사라져버렸다. 그가 내 곁에 다가와 어깨로 내 팔을 건드렸다. 마치 개가 친한 것을 증명하는 듯이 하는 행동이었다.
"새로운 사감이세요?"
"아니, 내가 알기로는 패치가 사감일텐데..."
"그는 곧 짤릴거에요." 주위에 있는 몇 명이 웃었다. 수염난 애는 코미디언처럼 폼을 잡으며 말을 이었다. "여기는 폭력적 병동이에요. 사감은 오래 못 가요."
" 내 눈에는 그렇게 폭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데, 패치는 어디 있어요?"
" 식당에 있어요. 몇 분 있다 그가 오면 우리가 즐길 시간이죠."
" 너 나이에 너무 냉소적이다. 너 몇 살이니?"
" 아흔 아홉" 주변에 있는 아이들에게서 응원하는 듯한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패치는 겨우 마흔 아홉 살인데 우리한테 아버지 노릇하려니 힘들지 않겠어요"
"맬로우 여사는 어디 있니?"
" 그 여자는 자기 방에서 점심으로 술을 마시고 있을 거예요." 밝은 적의를 가지고 있었던 그의 눈이 어두운 느낌으로 바뀌었다. " 아버지세요?"
"아니"
앞뒤로 왔다갔다하는 탁구공 소리가 의미없는 대화처럼 들렸다.
구경하고 있는 아이들이 말했다. "아버지가 아니래."
수염을 기른 소년이 말했다. "아버지가 아니고 어머니일지 모르잖아. 어머니세요?"
"엄마처럼은 안 생겼는데, 가슴이 없잖아."
"우리 엄마도 가슴이 없어. 그래서 항상 빠꾸 먹는 기분이야."
"그만해, 얘들아." 기분 나쁘게도 애들은 내가 아버지나 아니면 어머니라도 되었으면 하는 게 그들의 눈에 나타나 있었다. "나한테 빠꾸 먹는 기분은 아니겠지? 안 그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수염 긴 애는 나를 보며 미소지었다. 이 번에는 그 미소가 아까보다는 오래갔다. "이름이 뭐예요? 저는 프레데릭 틴달 3세에요."
"루 아처 1세란다."
나는 그 소년을 데리고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갔다. 그는 내 손은 밀어냈지만 따라와서 부서진 가죽 소파에 앉았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전처럼 하던 일을 했다. 그 중 둘은 시끄러운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추었다. "파도타기는 죄가 아니라네." 하는 소리가 후렴처럼 계속 이어졌다.
" 프레드, 너 톰 힐만 잘 알아?"
" 약간요, 당신 그 애 아버지 세요?"
" 아니 나는 애가 없다고 했자나."
" 어른들은 항상 거짓말만 하잖아요." 어른이 되기 싫다는 듯 머리를 뺨으로 잡아당기면서 말했다. "저의 아버지는 나를 군사학교에 보낸다고 했어요. 정부에서 한 자리 하니까요." 담담하게 조금도 뽐내는 기색없이 말했다. 그런 후 목소리를 낮추어서 "톰도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은가 봐요. 그래서 이 곳에 잡혀왔죠. 마술왕국으로 가는 모노레일을 탔어요." 씁쓸하고 희망없는 지푸림이 그의 얼굴에 나타났다.
" 톰하고 그 이야기를 했니?"
" 약간요, 이곳에 오래있지 않았으니까요. 5일인가, 6일인가? 일요일 밤에 와서 월요일 아침에 갔으니까요." 가죽 찢어진 곳을 만지작거리며 불안한 듯이 덧 붙였다. "형사에요?"
"아니"
"그런데 질문하는 모습이 형사같아요."
"톰이 형사가 관심을 가질만한 짓을 했니?"
"우리 모두가 그래요. 안 그럴 것 같아요?" 그는 뜨겁고 냉정한 눈으로 방을 둘러보다 춤추는 버림받은 어릿광대에 눈을 멈쳤다. "젊은 애가 아니면 동관을 볼 수 없어요. 나도 범죄를 저질렀죠. 50달러 짜리 수표에 유명한 사람의 사인을 위조하고 주말여행으로 샌프란시스코에 갔었어요."
"톰은 무슨 죄를 지었대?"
"차를 훔쳤다나 봐요. 초범이라 집행유예를 쉽게 받았어요. 그런데 그 애 아버지는 그 애를 격리시키려고 여기에 넣었어요. 당연하게도 톰은 아버지와 싸웠고."
"그럴 것 같애."
"톰에 왜 관심이 많아요?"
"그 애를 찾아야 하거든"
"그래서 이 곳에 넣으려고요?"
" 여기서 안 받아 줄 걸."
"재수가 좋군요." 무의식적으로 그는 내게서 조금씩 떨어져갔다. 나는 그 애에게서 야성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으며, 그의 슬픔을 느꼈다. "저도 갈 곳만 있으면 이 곳을 탈출하겠어요. 그러면 정부 고관께서는 소년원에 넣을 거에요. 그러면 돈도 굳겠지만."
"톰은 갈 곳이 있었어?"
곁눈질로 나를 쳐다보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말할 것 같아요?"
"그러니 부탁하잖아."
"그가 갈 곳이 있어도 저에게 말했을 것 같아요?"
"여기서 누가 톰이랑 가장 친했니?"
"그는 아무와도 친하지 않았어요. 그가 이 곳에 왔을 때는 하도 화가나 있어서 그 사람들이 독방을 주었어요. 저가 살짝 그 방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이야기했는데 많은 이야기는 못했어요."
"그가 뭘 할 것인지 몰라?"
" 그는 아무 계획도 없었어요. 그는 토요일 밤에 폭동을 일으키려고 했는데 우리 모두가 겁쟁이어서... 그래도 그는 날라버렸어요. 굉장히 흥분한 것처럼 보였는데..."
"약간 정신이상이야?"
"우리 다 그렇지 않아요?" 관자놀이를 두들기면서 미친 표정을 지었다. "아저씨 저의 정신감정 받아 보실래요?"
"나중에"
"한번 해 보세요."
"프레드, 중요한 이야기인데 톰은 어리고 또 너가 말한 것처럼 약간 맛이 갔잖아. 이틀 밤이나 행방불명이니 잘못되었으면..?
"여기 있는 것 보다 나쁘려 고요."
"그렇지만 너는 나가지 않았자나. 톰이 어디 간다는 말 정말 하지 않았어?"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뭔가 이야기 했지?"
"아뇨." 그렇지만 내 눈을 마주보지 못했다.
패치가 방에 들어오니 태평스런 분위기가 급속히 변화되었다. 춤추는 두 소년은 레슬링을 하는 척 했고, 만화책은 돈 다발이 없어지듯 사라져버렸다. 탁구치던 아이들의 공은 어디로 갔지?
패치는 중년에 머리가 좀 빠졌고, 턱에 살이 많았다. 배가 나와서 옷 앞에 주름이 생겨있었다. 얼굴에도 권력을 즐기는 듯한 주름이 많았는데 조그만 입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방을 한바퀴 둘러보는 그의 눈은 흰자위가 붉게 변했다.
전축으로 걸어가서 끈 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점심시간은 음악시간이 아니야. 음악시간은 저녁 후인 7시부터 7시 30분 까지야." 탁구치던 소년을 보면서 한마디 더 했다. "새겨들어, 디링. 낮에는 음악을 들으면 안돼. 너가 반장이잖아."
"예, 선생님."
"탁구 친 사람은 누구야?"
"그냥 폼만 연습했어요."
"공은 어디서 났어. 내 서랍에 잠가 두었는데."
"그 곳에 그대로 있을 텐데요."
"그럼 너가 치던 공은 어디 있어?"
"모르겠는데요, 선생님." 디링은 바람막이 옷을 더듬었다. 그는 멍청하게 생긴 애로 목젖이 조금 나왔으며, 숨겨놓은 탁구공처럼 생겼다. "이게 어디서 났지?"
"그 공 내 책상에서 가져왔지?"
"아뇨, 운동장에서 주운 것 같은데요."
패치가 연속극 동작으로 디링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패치 뒤에 있게 된 애들은 인상을 쓰거나(용용죽겠지), 손을 내젓거나, 허리를 흔들거나 돌리는 동작을 했다. 한 소년은, 춤추던 애 중 한 명인데 조용히 뒤따라가면서 목을 베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는 죽어가는 검투사흉내를 낸 후 자기 자리로 되돌아갔다.
패치는 인내심이 많은 목소리로 "너 이 공 내 책상에서 가지고 왔지. 개인적으로 탁구공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거 알고 있지? 너는 동관규칙위원회의 위원장이고 이 규칙을 만드는데 많이 협조했지?"
"그랬어요."
"그렇다면 공을 다오."
그 소년은 패치에게 공을 건냈다. 패치가 공을 바닥에 놓기 위해 웅크리자 뒤에 있던 애들은 발로 차는 시늉을 했다. 공을 뒤굽치로 우그러뜨리고 나서 못쓰게된 공을 디링에게 주었다.
"디링, 미안해. 그렇지만 나도 너처럼 규칙을 지켜야 한단다." 패치는 방안 가득한 아이들을 일일이 확인하듯 둘러보고는 온화하게 말했다. "자 얘들아 일이 있는 사람은..."
"내가 볼일이 있어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소파에서 일어섰다. 내 이름을 말하고는 조용히 이야기 할 수 있는지 물었다.
그는 내가 그의 후임자가 아닌가 하고 불안한 미소를 지으며 "그러지요. 제 사무실로 갑시다. 디링과 브랜슨 너희 둘이 잘해."
그의 사무실은 창문이 없는 4각형의 방으로 어지러진 책상과 길다란 의자 2개만 있었다. 그는 라운지에서 떠드는 아이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문을 닫고, 책상에 불을 켠 후 한숨 쉬었다.
"애들은 꽉 잡아야 해요." 그의 말은 기도처럼 들렸다. "누구 이야기 하실려구요."
"톰 힐만"
그 이름은 더욱 그를 위축시켰다. "그 애 아버지가 보내셨어요."
"아니, 스폰티 박사가 당신과 이야기 해 보라고 했어요. 저는 사립탕정입니다."
"그래요." 그는 입을 내 밀면서 "스폰티가 내 잘못이라고 그랬죠. 항상 그러지만."
"그는 단지 불필요한 폭력에 대해 말했을 뿐이에요."
"말도 안되는 소리!" 그는 깍지 낀 손으로 책상을 내려쳤다. 그의 얼굴은 벌게 졌다가 다시 흑백 사진처럼 창백해졌다. 단지 흰자위가 붉게된 그의 눈만 색깔을 유지하고 있었다. "스폰티는 이 짐승같은 놈들과 생활을 안하니 모르지. 나는 체벌이 필요할 때가 언제인지 안단 말이야. 나는 25년 동안 불량청소년 일을 했는데..."
"진정해야 겠어요"
조금 후 그의 주름살이 펴졌다. 진정이 된 모양이었다. "나는 이일이 좋아요. 진짜로. 하여튼 내가 배운 것은 이 것 뿐이니. 나는 애들을 좋아하고, 애들도 나를 좋아한단 말이에요."
"내가 본 바로는"
그는 내가 비꼬는 소리를 못들은 것 같았다. "힐만이 오래 있었으면 나랑 친구가 되엇을텐데..."
"왜 못 그랬어요."
"그 자식이 도망갔자나요. 당신도 아시면서. 그는 정원사에게서 가위를 훔쳐 침실 창문을 뚫고 철장밖으로 달아났어요."
" 정확히 언제 그랬어요?"
"토요일 밤인데요, 11시에 점호를 했고 아침 점호 사이에요"
"그 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요?"
"토요일 밤에요? 그는 다른 학생들을 선동하여 거주하는 직원을 공격할려고 했어요. 그 때 나는 저녁 식사 후 조리실에 있었는데 그가 선동하는 소리를 들었어요. 그 애는 자기들이 권리를 빼앗겼으므로 권리를 찾기 위해 싸워야 한다는 것을 설득하고 있었어요. 몇 흥분한 아이들도 가세했고요. 그렇지만 내가 힐만에게 입 닥치라고 하자 그가 나에게 덤벼들었죠."
"그가 당신을 때렸어요?"
"내가 먼저 때렸죠. 나는 그게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내가 권위를 유지해야 애들을 다스릴 수 있죠." 그는 주먹을 만지작거리면서 말했다. "그 녀석을 뻗게 했죠. 당신도 남자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해요. 내가 뻗게 하자 애들이 카운트를 하드라니까요. 당신도 애들이 존경할만한 것을 보여주어야 해요."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어요?" 나는 그의 말을 자르기 위해 물었다.
"그 애를 방으로 데려가서 눕히고 스폰티에게 그 사건을 보고했어요. 나는 스폰티가 그 소년을 패드가 있는 방에 눕힐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는 내 말을 안 들었어요. 힐만을 패드가 있는 방에 눕혔더라면 힐만이 도망치지 않았을 걸요. 우리끼리 이야기지만 힐만이 도망간 것은 스폰티의 잘못이죠." 그는 단호하게 말을 끈은 후 은근함 목소리로 덛붙혔다. "이 말을 스폰티에게는 하지 마세요."
"당연하죠." 나는 패치에게서 유용한 정보를 얻지 못해 낙담되기 시작했다. 패치는 방안에 있는 가구처럼 초라하게 보였다. 애들이 있는 곳에서 나오는 시끄러운 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제들이 다 찢어 놓기 전에 잠깐 갔다 올께요."
"힐만이 어디 있을지 혹시 짐작 가는 데가 없어요?"
패치는 내 물음에 잠간 생각했다. 그 소년이 사라진 바깥세상을 생각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였다. "엘 에이, 애 들은 대개 엘 에이에 가요, 안 그러면 산디에고나 국경쪽으로 가죠."
"아니면 동쪽으로 가든가?"
"부모님이 그 쪽에 계신다면 그러기도 하죠."
"아니면 바다 건너 서쪽으로?" 그를 놀리면서 물었다.
"그러기도 해요. 어떤 애는 30피트짜리 배를 훔쳐 섬으로 가기도 했어요."
"많은 애들이 도망갔나 보네요."
"몇 년 동안 많은 애들이 바뀌었어요. 스폰티는 소년원처럼 엄격한 감금장치를 만드는 것을 반대했어요. 내가 보기에는 스폰티는 아이가 도망가면 건 수를 올리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도망가면 경찰에 인도하면 되니까요."
패치의 목소리는 이 학교가 전망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어떤 사람이 내 뒤에 있는 문을 두드렸다. "패치"하는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말로우 여사님."
"애들이 점점 말을 안 들어요. 내 말은 전혀 안 들어요. 당신 여기서 뭐해요?"
"회의중이에요. 스폰티가 사람을 보내서"
"좋죠. 사람이 더 있으면."
"그게 아니에요." 패치는 급하게 문을 열고는 "당신 일이나 하세요. 말로우씨. 나는 스폰티가 알고 싶어하는 당신 결점 몇개를 알고 있어요."
"그야 저도 그래요."
그 여자는 짙게 루즈를 바르고, 염색한 붉은 머리를 앞부분을 말아 올리고 있었다. 10년쯤 유행이 지난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가짜 진주 몇 개가 박혀있었다. 그 여자의 눈은 안 밖에서 일어난 일에 놀라고 있었으나 표정은 즐거워 보였다.
"그 여자가 나를 본 모양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아처에요. 스폰티가 힐만 찾으라고 보냈죠."
"잘생긴 애였죠. 최소한 폭력주의자가 폭력을 행사하기 전에는"
"정당방위였어. 난 애들 때리는 취미가 없다고. 나는 동관의 권위를 유지해야 하고 나를 때리는 것은 자기 아버지를 때리는 것과 같아."
"어버지, 다른 곳에서 권위를 찾으시죠. 그렇지만 이번 주에 어떤 애한테 손을 대기만 하면 죽여버릴거야."
"패치는 정말로 그 여자가 자기를 죽인다는 것을 믿는 것처럼 그 여자를 보았다. 그리고는 일어서서 시끄런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갔다. 방음벽을 댄 것처럼 갑자기 조용해졌다.
"불쌍한 패치, 그 사람 여기 너무 오래 있었어요. 우리 모두 다 불쌍하죠. 너무 오랫동안 좀 돈 애들과 같이 지냈어요. 다 바보같은 짓이죠."
"그런데 왜 퇴직 안해요"
"우리도 바깥 세상에 적응을 못해요. 늙은 범죄자처럼. 그게 진짜 문제죠."
"여기 사람들은 자기 문제를 토론할 준비를 하고 있는가 봐요."
"정신병원과 같은 분위기이니..."
"그렇지만 내가 원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없어요. 힐만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내 생각을 말할까요?"
그 여자는 조용하게 말했다. 마치 크게 말하면 밸런스가 깨지는 것처럼. 그녀는 패치의 사무실로 들어와 나를 보면서 책상에 기대었다. 책상에 있는 램프에 비친 그녀의 얼굴은 마녀처럼 생겼다.
"톰은 잘생긴 좋은 소년이었어요. 그는 자기가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재빨리 알고는 날라버렸어요."
"그가 왜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거죠?"
"자세히 말해드릴까요. 동관은 기본적으로 인격이나 성격에 문제가 있거나 사회부적응 성향이 있는 애들이죠. 만약 문제가 더 많다면 서관에 보내죠."
"톰은 서관으로 가야 했어요?"
"말도 안돼요. 그는 여기에 올 아이가 아니에요. 내 생각에는 돈이 걸린 것 같아요. 저도 한 때는 꽤 잘 나가는 임상심리학자였어요."
"스폰티박사는 톰이 돌았다던 데요"
"그 사람은 그 생각밖에 못해요. 얘들한테 돈이 얼마나 드는지 알아요? 한 달에 천 달라에다 더 드는 돈이 있어요. 음악교습이나 집단치료 등에." 그 여자는 거칠게 웃었다. "대개는 그 부모가 여기 있어야해요. 이 보다 더 심한 곳이거나."
"한 달에 천 달라 라니까요. 그러니까 스폰티라는 사람은 일년에 2만5천 달러를 긁어 들이죠. 이 돈은 애들을 보는 우리에게 지불하는 돈의 6배도 넘어요."
그 여자는 불평이 많았다. 불평이 진실을 말하는 경우도 많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스폰티라는 사람? 무슨 의미예요?"
"그 사람은 의사가 아니에요. 다른 진짜 박사도 아니고. 그 사람 교육행정으로 남쪽 어디에서 적당히 학위를 받았겠죠. 그 사람 무엇에 대해 논문을 썼는지 알아요? 중규모 기숙사에서 식당물품 보급이던가?"
"톰 이야기해요. 그는 정신병 치료가 필요없는데 그 애 아버지는 왜 여기에 데리고 왔지요?"
"저도 몰라요. 저는 그 애 아버지도 모르고. 아마 보기 싫어서 그랬겠죠."
"왜요?"
"그 애에게 문제가 있어서 그랬겠죠."
"그 일에 대해 톰과 이야기해 보았어요?"
"톰은 그 일에 대해 말을 안 했지만 표정을 읽었죠."
"그 애가 차를 훔쳤다는 이야기 들었어요?"
"아뇨, 그래도 그 애 변명할 수는 있어요. 그 애는 매우 불행한 애이고, 죄도 지었죠. 그래도 그 애는 당신이 생각하는 악성범죄자는 아니에요. 하긴 악성범죄자는 없지만."
"톰을 좋아하시는 것 같네요."
"거의 보지 못했어요. 그 애는 말을 하지 않았고, 저는 애들에게 강제하지 않아요. 수업시간을 제외하고는 그 애는 방에만 있었어요. 뭔가 하려는 것 같았는데..."
"폭동 계획 짜는 거요?"
그 여자의 눈에서 놀람이 나타났다. "그 이야기 벌써 들으셨어요. 그 애는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적극적이었어요. 그렇게 이상하게 보지 마세요. 저는 애들 편이에요. 안 그러려면 뭐 하러 여기 있겠어요."
나는 맬로우여사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 여자도 그 감을 느꼈는지 내 쪽으로 와서 내 손을 만졌다. "당신도 톰 편이죠?"
"그 애를 알기 전까지는 유보할래요. 누구 편이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니."
"아니에요. 누구 편이냐는 항상 중요해요."
"토요일 밤에 톰과 패치 간에 무슨 일이 일어났어요?"
"저도 몰라요. 토요일 밤은 휴무라서. 알고 싶으시면 뭔가 찾을 수 있을 거에요. 아처씨"
그 여자는 미소지었고, 나는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그 여자는 다른 사람을 생각해 주는데 그 여자를 생각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3장
그 여자는 잠겨져 있지 않은 옆문으로 나를 데리고 나갔다. 비는 약간 거세져서 내 얼굴을 적실 정도였다. 빽빽한 구름은 산으로 모여들고 있었고, 따라서 비는 쉽게 그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본부 건물 쪽으로 갔다. 스폰티는 내가 그 부모를 만나고 싶어한다는 것을 말했을 것이다. 그 애 부모는 좋아하지 않겠지만. 사람들이 톰을 좋아하든 아니든 문제는 톰인데, 아직까지도 그 애의 습관이나 성격에 대한 어떤 명확한 정보도 얻지 못했다. 그 애는 박해받은 10대이고, 늙은 여자에게 매력을 보일 수 있는 프레드 3세와 같이 약간 정신이상일 것이다.
나는 앞을 잘 안보고 걷고 있었는데 추자장에서 택시에 부딪힐 뻔했다. 신사복을 입은 사람이 뒷자리에서 내렸다. 나는 그가 나에게 미안하다고 할 줄 알았는데 그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 남자는 키가 크고, 은빛 머리였으며, 영양이 좋았고, 옷을 잘 입고 있었다. 아마 보통 때 라면 잘 생겼을 것이나 그 때는 약간 수축된 느낌이었다. 그 사람은 행정실로 갔다. 나는 그 사람 뒤를 따라갔는데 스폰티의 비서를 나무라고 있는 것을 보았다.
"죄송합니다만 힐만씨, 스폰티 박사는 회의 중이라서 저가 통보해 드릴 수 없어요."
"통보하는게 좋을 걸." 힐만은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기다리시는게."
"못 기다려, 내 아들이 범죄자의 손에 있는데. 범죄자들이 내 돈을 갈취하려는데."
"정말이에요?" 그 여자의 목소리는 비직업적이고 날카로왔다.
"난 거짓말 안해"
그 여자는 뭐라고 중얼거리며 스폰티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문을 조심스럽게 닫았다. 나는 힐만에게 내 이름과 직업을 말하고는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스폰티 박사가 당신 아들 찾아달라고 나를 불렀어요. 당신과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지금 하는게 좋겠죠."
"그럽시다."
우리는 서로 악수했다. 그 사람은 키가 크고 강한 인상을 주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의 얼굴은 귀족적이었는데 머리가 좋다거나 능력이 있다거나 또는 예절이 바르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돈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깨가 넓고 가슴도 잘 발달했으나 악수하는 손에 힘을 주지는 않았다. 그 사람은 놀란 개처럼 몸을 떨고 있었다.
"당신 범죄자와 갈취 같은 말을 했죠?"
"그래요." 그렇지만 그 사람의 강철같은 회색 눈은 스폰티 사무실의 문을 보고 있었다. 그 사람은 화풀이할 상대와 이야기하고 싶은 것 같았다. "저 사람들 저기서 뭐하는 거죠?" 그는 약간 거칠게 말했다.
"그게 무슨 문제가 되요. 당신 아들이 납치되었다면 스폰티가 뭘 할 수 있겠어요. 경찰이 나서야지."
"아니, 경찰은 안돼요. 나는 경찰과 연락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어요." 그 사람의 의심하는 듯한 눈이 내 눈과 처음으로 마주쳤다. "혹시 경찰 아니세요?"
"사립탐정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한 시간 전에 엘 에이에서 왔어요. 톰에 대한 소식 어디서 들었어요? 누가 당신에게 명령했어요?"
"갱들에게서요. 우리가 집에서 막 점심을 먹을 때 전화가 왔어요. 그 사람은 나에게 조용히 일을 처리하자고 했어요. 안 그러면 톰을 절대로 못 볼 것이라고."
"그가 그렇게 말했어요"
"예"
"그 밖에 그가 한 말은?"
"그 들은 톰이 어디 있는지 정보를 팔겠데요. 그 말은 인질금을 좋게 말한 것 아니에요?"
"얼마 달래요?"
"25,000달라"
"그 돈 있어요?"
"오늘 오후에 만들었어요. 주식 좀 팔고. 여기 오기전에 중개인에게 들렸죠."
"빨리 만들었네요. 힐만씨." 그 사람은 내가 존경해 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근데 여기는 왜 왔어요?"
"그 놈들을 믿을 수가 없어서요."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사람은 내가 스폰티 일을 한다는 것을 잊어버린 건지, 아니면 못들은 건지. "톰이 여기서 도망가는 유혹을 받은 것은 이 안에 있는 누군가가 도와주었기 때문이고, 그 놈들은 다 연결되어 있을 거에요."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저는 여기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어요. 한 사람이 토요일 저녁 때 톰과 싸웠고, 그래서 톰은 망을 자르고 담을 뛰어 넘었어요. 학생 중에 하나가 이를 증언했으니 아마 맞을 거에요."
"그 학생은 공식적 이야기를 부정하는 것이 무서워서 그랬을 거에요."
"그 학생은 아니에요. 힐만씨. 당신 아들이 유괴되었다면 여기서 도망간 이후의 일이에요. 그 애는 범죄조직과 관련되어 있어요?"
"톰이요? 아니에요."
"그가 차를 훔쳤다고 들었는데요."
"스폰티가 그랬어요? 그 사람이 그런 말을 하다니."
"다른 사람에게서 들었어요. 애들은 차를 훔치지 않아요. 범죄조직과 관련되었다면 모를까."
"그 애는 훔치지 않았어요." 힐만은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그 애는 이웃집에서 차를 빌렸는데 사고로 차를 부수었어요. 그래서 흥분해 가지고..."
힐만도 흥분해서 거친 숨과 함께 말을 뱉었다. 그 입이 움직이는 모습은 크고 날씬한 물고기가 공기 중에 나와 숨쉬는 것 같았다.
"25,000달러는 어떻게 할 거에요? 다음 지시를 기다리고 있어요?"
힐만은 고개를 끄떡이고 낙심한 듯이 의자에 앉았다. 스폰티 방의 문이 열렸는데 스폰티는 그 방에서 우리 대화를 듣고 있었던 것 같았다. 얼마나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스폰티는 비서실로 나왔다. 비서가 곁에 따라 나왔고, 길고 창백한 얼굴을 가진 남자도 뒤따라 나왔다.
"도대체 납치라는 게 무슨 말이에요?" 스폰티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목소리를 낮추고 달래는 듯한 목소리로 "죄송합니다 힐만씨" 라고 덧붙였다.
힐만은 의자에서 소파로 바꾸어 앉아있었다. "점점 더 미안해도 괜찮소. 누가 내 아들을 여기 서 빼 돌렸는지, 어떤 환경이었는지, 누가 묵인했는지 알아야겠소."
"그 애는 자신의 자유의지로 나갔어요."
"그리고 당신은 손을 땠어요?"
"그 일에 대해 우리는 아무 책임이 없지만 아처씨를 도와달라고 고용했지 않았어요. 여기 계신 분은 스케리씨로 우리 학교 감사관인데 지금까지 이야기했어요."
창백한 얼굴은 엄숫하게 고개를 숙였다. 대머리인데 정수리에 검은 선으로 머리가 납작하게 붙어있었다. 그 사람은 간결한 목소리로 말했다.
"스폰티와 저는 지난 주 당신이 지불하신 돈을 되돌려주기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지금 막 수표에 싸인했는데 여기 있습니다."
그 남자는 수표를 건냈다. 힐만은 둘둘 말아 스케리에게 던졌다. 그 종이는 스케리의 빈약한 가슴에 맞고는 땅에 떨어졌다. 내가 그것을 주워들었는데 2,000$라고 쓰여있었다.
힐만은 급히 방에서 나갔고, 나는 힐만을 따라 나갔다. 스폰티가 내게 맞긴 일을 그만두라고 하기 전에 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힐만은 택시에 오르려고 하고 있었다.
"어디로 가시려고 합니까?"
"집에요, 집사람이 풀이 죽어 있어요."
"제가 모셔다 드릴게요."
"당신이 스폰티 편이라면 싫어요."
"저는 누구 편도 아니에요. 스폰티는 당신 아들 찾아달라고 저를 고용했어요. 저는 지금부터 당신 아들을 찾으려 하는데 당신과 부인이 저를 도와주었으면 좋겠어요."
"어떻게 도와 드려야죠?"
"그 애에 대해서 알고 싶어요. 친구가 누구인지, 어디에 잘 가는지"
"그런 것 알아서 뭐해요. 그 애는 지금 갱들에게 잡혀있고, 갱들은 돈을 달라고 해요. 저는 돈을 줄 생각이지만."
힐만에게 문을 열어준 택시 운전사는 눈과 입을 크게 벌리고 듣고 있었다.
"그 정도가 아닐 거에요. 그렇지만 여기서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택시 운전사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저를 한번 믿어보세요. 제 매제가 고속도로 경찰이고 저는 입이 무거워요."
"당신 일은 아니에요." 힐만이 말했다.
힐만은 택시 운전사에게 돈을 지불했고, 우리는 내 차가 있는 곳으로 갔다.
우리가 앞 좌석에 앉자 내가 말했다. "돈에 대해 이야기합시다. 우선 이 돈 2,000$을 버릴 생각은 아니죠?" 나는 수표를 펴서 힐만에게 주었다.
낙심한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는가? 긴 침묵, 전화 벨 소리, 여자 목소리로 잘못 걸린 전화. 힐만의 경우에는 2,000$짜리 수표 이야기. 힐만은 수표를 악어가죽 지갑에 넣었다. 그리고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손으로 눈을 몇 번 비비고는 의자 뒤로 몸을 뉘었다. 성난 까마귀가 그의 생명을 쪼아 먹는 것 같은 소리가 그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한참 후 그가 말했다. "다시는 이런 곳에 넣지 않겠어요." 그의 목소리는 지금까지 중 가장 인간다웠다.
"엎지른 우유보고 울면 뭘해요"
"울지는 않아요." 그는 몸을 폈고, 그의 눈은 말라 있었다.
"저도 말싸움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어디 사세요?"
"엘 란쵸, 여기서 도시가는 중간에 있어요. 빨리 가는 길을 가르쳐 드릴께요."
수위가 수위실에서 나왔다. 우린 서로 인사했고 수위가 문을 열어 주었다. 힐만이 가르쳐 준 길을 따라 가는데 검은 새가 지저귀는 잡초 우거진 황무지를 지나갔다. 교외에 들어서자 교외에 들어서자 대학 캠퍼스 주변에 새로운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었다. 막 비행기가 이룩하려는 공항을 지났다. 힐만은 비행기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당신 아들 그 학교에 왜 넣었죠?"
그의 대답은 조금씩 천천히 흘러 나왔다. "저는 겁을 먹었어요. 그 애가 잘못된 길로 빠졌을까 봐요. 그래서 막아야겟다고 생각했죠. 그 학교에서 바로잡아주면 다음 달에는 보통학교에 보낼려고 했어요. 그러면 고등학교 3학년인데."
"그 애의 문제에 대해 좀 자세히 말해 주세요. 차를 훔쳤다는 거에요?"
"그 것도 문제의 하나이지만, 좀 전에 말했지만 사실 훔친 것은 아니에요."
"좀 자세히 말해주세요."
"그 애가 몬 것은 리 칼슨의 차에요. 리 칼슨과 제이 칼슨은 이웃 사람인데. 새 다트(차 이름)에 시동 열쇠를 꼽아두고 밤새도록 바깥 주차장에 둔다는 것은 차 몰고 싶어하는 사람을 부르는 거 아니에요? 저가 그 집에 그렇게 말했는데 제이는 그러지 않았다고 해요. 그 집에서 톰을 나쁘게 말할 생각이 없었거나 톰이 차를 파손시키지만 않았어도 괜찮았을 텐데. 저도 그 사람도 보험에 들었고. 그런데 그 사람들은 감정적으로 처리했어요."
"차가 파손되었어요?"
"완전히 갔어요. 그 애가 운전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그런데 다행히 사고가 낫는데도 그 애는 상처하나 없이 빠져 나왔어요."
"그 애가 어디 갔었는데요?"
"집으로 오는 중이었어요. 사고는 집 현관 앞에서 일어났어요. 집에 가면 그 곳을 볼 수 있어요."
"그 애는 어디 갔었데요?"
"말을 안해요. 그 애는 밤새도록 나가 있었는데 그기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안해요."
"언제였어요?"
"토요일 밤. 일주일전 토요일 밤이에요. 경찰은 아침 6시에 그 애를 붙잡았는데 저한테는 의사에게 보이는 것이 좋다고 해서 그렇게 했죠. 물론 육체적으로 다친데는 없지만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았을 테니. 저가 그 애에게 밤새 어디에 있었냐고 묻자 화를 내드라고요.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어요. 그 애는 늘 조용했어요. 그런데 그 날은 제가 그 애에게 아무런 권리도 없다고, 내가 진짜 아버지냐고 그랬어요. 저는 화가 나서 한 대 올려붙였죠. 그랬더니 그 후로는 한 마디도 안하는 거에요."
"술을 마신 것 같아요?"
"아뇨, 전혀, 술 냄새는 나지 않았어요."
"마약은?" 그가 나를 쳐다보는 눈은 커졌고 한심한 듯 했다.
"그렇지 않아요."
"저도 그랬으면 좋겠지만 스폰티 박사가 당신 아들이 진정제에 과민반응을 보였다고 했어요. 그건 마약 상용자에게 흔히 일어나는 일이에요.
"내 아들은 마약 안해요."
"오늘 날 많은 젊은이들이 마약을 하는데 부모들은 전혀 모르고 있죠."
"아니에요. 그 앤 마약 안해요. 단지 사고의 충격으로 그랬을 거에요."
"의사가 그렇게 말했어요?"
"샌리의사는 정형외과에요. 그 사람은 정신적 충격에 대해서는 몰라요. 하여튼 그 의사는 아침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몰랐어요. 아침에 그 애 대문에 판사실에 들렸을 때 아무도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어요."
나는 기다렸다. 앞창에서 와이퍼 소리가 났다. 푸른색과 흰색 사인이 노견에 [엘 란초]라고 쓰여 있었다. 힐만은 집에 도착하는 것이 기분 좋은 듯 "엘 란쵸"라고 말했다.
"400미터쯤 가서 고속도로에서 빠져나가요."
나는 차의 속도를 줄이면서 "그 날 아침에 어떤 일이 일어났어요?" 라고 말했다.
"도저히 말할 수 없어요. 또 이 상황과 관계도 없고."
"관계가 없는지 어떻게 알아요."
힐만은 집과 이웃이 침묵을 강요한 듯 대답하지 않았다.
"칼슨 가족이 톰을 나쁘게 취급했다고 말했죠?"
"예, 그렇게 말했고 그건 사실이에요."
"그 이유가 뭔지 아세요?"
"그 집에 스텔라라는 딸이 있는데 톰과 사귀고 있어요. 그 집 부모는 이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특히 부인 쪽이 그래요. 저의 집사람도 싫어해요. 그게 문제죠."
나는 주 도로에서 빠져나갔다. 보조도로는 큰 돌로 만든 문기둥 사이를 지났다. 야자수가 일렬로 서 있는 중앙도로가 엘 란초를 양분하고 있었다. 이 곳은 부유한 지역으로 거주자들에게는 어떤 문제도 일어날 것 같지 않았다.
큰 집들에는 넓은 잔디밭이 있었다. 어떤 집은 사유의 골프코스가 길을 따라 있었다. 클럽 수영장의 다이빙 탑이 밝은 알미늄색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지랑이 같이 불행한 일이 언제나 모두에게 일어나고 있다.
길은 어떤 골프코스에서 구부러져 있었다. 힐만은 직선으로 가면 닿았을 벙크의 깊은 구덩이를 가리켰다. 그 위의 소나무가지가 부러져 있었다.
"저 곳이 차 사고가 난 곳이에요."
나는 차를 세웠다. "사고가 어떻게 일어났는지 설명해 주실래요."
힐만은 내 말을 듣지 않은 것처럼 했다. 우리는 차에서 나왔다. 시야에는 4명의 골퍼가 탄 두 대의 카트를 제외하고는 어떤 차도 보이지 않았다.
"브레이크를 밟은 흔적이나 미끄러진 흔적이 없는데요. 당신 아들 운전 잘해요?"
"잘해요, 운전을 내가 직접 가르쳤어요. 그 애와 많은 시간을 함께 했죠. 사실 몇 년 전부터 회사에서 제가 해야할 일을 조금씩 줄였어요. 그 이유는 톰이 커는 것을 지켜볼려구요."
그의 말은 마치 애가 크는 것이 부모의 즐거움이라는 것처럼 좀 이상하게 들렸다. 나는 당황했다. 정말로 힐만이 톰과 가깝게 지냈다면 톰의 첫 번째 잘못인데도 왜 라구나 페르디다 학교 같은 곳에 집어 넣었을까? 그렇지 않다면 톰이 다른 범죄를 저질렀던 것을 알고 있었던게 아닐까?
골프 카트 한 대가 커브를 돌더니 다가왔다. 힐만은 손가락으로 아는 체 하더니 내 차로 갔다. 사고현장을 보고있다는 것이 멋적은 모양이었다.
차를 몬 후 내가 말했다. "나는 당신에게 솔직하게 말하는데 당신은 안 그런 것 같아요. 라구나 페르디다는 약간 돌았거나 조그만 범죄를 저지른 애들을 보내는 곳이죠. 나는 톰이 그 곳에 갈 필요가 있었는지 아니면 강제로 보내졌는지 알고 싶어요."
"나는 톰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랬어요. 좋은 이웃인 칼슨이 차량절도로 그 애를 고소하겠다고 그랬어요."
"그렇게 무서운 건 아니잖아요. 첫 번째 범죄라면 기껏해야 집행유예일텐데. 안 그래요?"
"물론 그렇죠."
"그렇다면 뭐가 무서워서?"
"저는..." 그가 뭐라고 말하려 했다. 그러나 그가 너무 정직한 것인지 아니면 두려움을 너무 잘 알아서 인지 말을 계속하지 못했다.
"일요일 아침 당신이 판사에게 갔을 때 그 애가 무엇을 했어요? ."
"아무 짓도 안했어요, 정말이에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그 애를 때렸잖아요. 당신은 말을 안하고 있지만."
"그랬어요. 당신이나 다른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지만. 지난 일요일에 무슨 일이 일어났건 지금 상황과 무관한 것 아니에요. 우리 아들은 납치를 당했어요. 그는 불쌍한 희생자에요. 알겠어요."
나는 당황했다. 2만 5천 달러는 나에게는 큰 돈이지만 힐만에게는 큰 돈 같지 않았다. 만약 톰이 범죄자의 손에 있다면 그 정도의 돈으로는 만족할 것 같지 않았다.
"만약 범죄자들이 더 많은 돈을 요구한다면 얼마까지 줄 수 있어요?"
그는 나를 잽싸게 쳐다보았다. "무슨 말인지?"
"유괴자들은 점점 더 많은 요구를 하죠. 나는 그 놈들이 그럴 경우 어떡할지 알고 싶어요. 2만 5천 달러로 만족할 것 같지는 않아요."
"집사람이 도와준다면 더 낼 수 있죠."
"그런 일이 없도록 기도나 합시다."
4장
힐만의 사도(私道)는 대문에서 큰 참나무와 잔디밭으로 되어있는 긴 길을 꽤 많이 지나도록 이어져 있었다. 집은 거대하고 오래된 스페인식 대 저택이었다. 흰 벽에 유리창에는 정교한 철제 장식이 있었으며, 붉은 타일 지붕은 비가 와서 젖은 채 빛나고 있었다. 밝은 검정색의 캐딜락이 주차하고 있었다.
"오늘 아침 내가 차를 몰려고 했는데 운전 할 것 같지가 않아서. 태워 주셔서 고마워요."
마치 퇴거명령 같았다. 그가 발을 내디뎠을 때 나는 심한 배반감을 느꼈다. 나는 배반감을 삼키고 그를 뒤따라가 현관문을 닫기 전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가 마음쓰고 있었던 사람은 그의 부인이었다. 그녀는 현관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뒤가 높은 스페인식 의자에 구부리고 앉아있어 실제보다 적게 보였다. 그녀의 뱀가죽 구두는 깨끗한 타일 바닥에 놓여있었다. 그 여자는 이쁜 엷은 갈색머리를 가진 40대로 보였다.
소용없다는 느낌의 쓸쓸함이 그녀 주위에 맴돌고 있어 실물이 아닌 인형처럼 보였다. 그녀의 푸른색 옷은 그녀의 푸른 창백함을 더욱 비참하게 보이게 했다.
"엘레인, 괜찮아?"
그녀는 무릎을 가슴에 붙인 채로 오랫동안 앉아 있었던 것 같았다. 고개를 들어 남편을 쳐다보고 다시 2층 전체를 비추고 있는 거대한 스페인 풍의 샹들리에를 쳐다보았다. 샹들리에의 전구는 철로 장식된 잎에 달려있는 이상한 과일처럼 보였다.
"샹들리에 밑에 앉지 말아요. 떨어질 것 같아요. 여보 떼어 버립시다."
"그걸 거기에 단 것은 당신 생각이었잖소."
"옛날 일이에요. 너무 비어 있는 것 같아서..."
"떼면 빌 것 같아요. 아직도 튼튼한데." 그는 그녀 곁으로 다가가 머리를 만졌다. 우린 비를 맞았어요. 당신 기분 좀 풀어요."
"조금 전에 당신이 오는지 보려고 걸어 나갔어요. 당신이 간지 꽤 오래 되어서."
"그럴 수밖에 없었소."
그녀는 남편의 손을 잡아 머리에서 가슴 쪽으로 내린 후 꼭 쥐었다. "무슨 소식 들었어요?"
"당분간은 연락이 있을 것 같지 않아요. 돈을 준비했어요. 딕 랜들로가 오후에 가져가 줄거요. 그 때까지는 전화나 기다리는 수밖에."
"기다린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에요."
"그래요. 당신, 강제로라도 다른 일을 생각해 봐요."
"어떤 다른 일."
"아무 거나." 나는 그가 뭔가를 예로 들려다 결국 아무 말도 못하는 것을 보았다. "어쨌든
당신 이렇게 추운 곳에서 그렇게 앉아 있는 것은 안 좋아요. 다시 폐렴에 걸릴지 몰라요."
"그렇기야 하겠어요."
"하여튼 다른 방으로 가요. 마실 것 만들어 줄테니."
그는 그때서야 나를 기억했는지 돌아보았으나 부인에게 소개하지는 않았다. 아마 그럴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나를 소개하는 말을 부인에게 하기가 어려워서 인지. 떱뜨레한 감이 들었으나 그 들을 따라 세 계단쯤 올라가서 불이 피워져 있는 좀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불 곁에 서 있었고, 남편은 스페인 투우사 포스터로 장식되어 있는 홈바로 갔다.
그 여자는 내게 악수를 청했는데 그 손은 얼음처럼 찼다. "불을 쪼이세요. 경찰이에요? 우린 경찰을 안 부르기로 했는데..."
"전 루 아처라는 사립탐정입니다."
남편이 홈바에서 물었다. "당신 뭐 마실래요?"
"압상트"
"그게 좋겠어?"
"쑥이 들어 있어 기분이 좋으니까요. 그리고 스카치 위스키도 좀 넣어 주세요."
"아처씨는 뭘로 드실래요?"
나는 같은 것을 주문했다. 술이 한잔 필요했다. 힐만 부부가 좋아지기 시작했고, 그 들에게 점점 신경을 쓰게되었다. 그들은 한 사람의 관중 앞에서 즉흥비극을 연기하는 직업적인 연극배우처럼 보였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의 걱정이 가짜라는 것은 아니다. 단지 너무 걱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힐만이 술 석 잔을 쟁반에 바쳐 들고 왔다. 불 앞에 있는 긴 테이블에 쟁반을 놓고는 각자의 잔을 건네주었다. 그리고는 불쏘시개로 불을 휘저었다. 불 꽃이 굴뚝을 타고 높이 올랐다. 그 순간 그의 얼굴은 붉은 야만인 같았다.
그녀의 얼굴은 술잔 앞에서 더욱 창백했다. "아처씨, 우리 아들은 우리에게 매우 잘 했어요. 당신 그 애가 집으로 오는 일을 도와 주실래요?"
"예, 그런데 경찰에 안 알리는 것이 과연 좋은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여기는 내 지역이 아니라서..."
"그게 무슨 문제가 되어요?"
"정보원이 없어요."
"여보. 아처씨 말 들었어요? 아처씨는 경찰에 알려야 한데요."
"들었어요. 그렇지만 그러면 안되요." 힐만은 집의 모든 무게가 자기 어깨에 놓여진 것처럼 깊은 한숨을 쉬었다.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톰을 위험에 빠뜨릴 수 없어."
"저도 그래요. 돈을 주고 애를 데려와야죠. 아들이 없는데 돈이 무슨 소용있어요."
약간 이상한 제2막이 시작되는 것 같았다. 나는 톰이 가정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약간 이상한 중심이다. 신이 희생을 강요하고 그기서 이익을 얻고, 어떤 경우에는 벌도 준다. 나는 톰을 동정하기 시작했다.
"힐만 부인, 톰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그녀의 죽은 표정에 삶의 흔적이 나타났다. 그녀가 막 입을 열려고 할 때 힐만이 소리쳤다. "집사람을 끌어들이지 말아요."
"그렇지만 아직도 톰이 어떤 애인지 모르겠어요. 저는 톰이 어제 어디로 갔는지 단서를 잡아야 해요. 톰이 어떻게 유괴범과 연루되었는지를 알아야 해요."
"저도 톰이 어디 갔는지 몰라요." 부인이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야, 알았으면 데리고 왔지." 힐만이 말했다.
"그렇다면 다리 품을 팔아야겠군요. 사진이나 주세요."
힐만은 커텐을 젖히고 옆방으로 들어갔다. 그 방에는 두껑이 없는 그랜드 피아노가 어둠 속에 희미하게 보였다. 그는 은색으로 가장자리를 한 한 소년의 사진을 들고 왔는데 그 사진의 얼굴은 힐만과 매우 닮았다. 그 소년의 검은 눈은 반항적으로 보였는데 내 생각이 반영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얼굴은 지성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하였으며, 입술은 비웃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사진 가져도 되요. 다른 좀 작은 것이 있으면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기 좋은데."
"여러 사람에게 보인다고요?"
"그래요, 내가 얼굴을 설명할 수는 없지 않아요."
"이층 제방에 가면 적은 사진이 있어요. 가져다줄께요." 엘레인이 말했다.
"뭐 올라갈 필요 있겠어. 그 애 방에 가면 있을 텐데."
"그 애 방을 보세요. 그런데 당신이 찾는 것은 싫어요." 힐만이 말했다.
"왜요?"
"나는 당신이 사진을 여러 사람에게 보여주는 게 맘에 안 들어요. 톰도 프라이버시가 있지 않겠어요."
우리는 서로를 감시하면서 이층으로 올라갔다. 나는 힐만이 내가 무엇을 찾아낼까 두려워하는지를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물어볼 수도 없고. 모든 것이 억제되어 있는 듯 했으며, 어는 순간 힐만이 폭발하면 나를 내쫓을 것 같았다.
그는 문 앞에 서 있었고, 나는 방을 재빨리 관찰했다. 침실인데 매우 컸다. 방안에는 책상, 의자, 테이블, 침대가 있었는데 모두 손으로 가공한 듯한 비싸 보이는 것이었다. 항해하고 있는 배의 모형이 있었고, 벽에 기하학적으로 균형잡힌 오드봉의 그림이 걸려있었다. 바닥에는 나바호족의 카펫이 깔려있었고, 양털이불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톰이 보트나 항해에 관심이 많았어요?"
"특별히 그런 것은 아니에요. 제에게 외돗배 요트가 한 척 있는데 가끔 승무원 노릇을 해 주었어요. 그게 문제가 되나요?"
"그가 항구 주변에서 논 적이 많았어요?"
"아니오."
"그렇다면 그 애는 새에 관심이 많아요?"
"그렇지 않을 걸요."
"누가 이 장식들을 골랐어요?"
"내가 골랐어요." 방 저쪽에서 엘레인이 대답했다. "내가 이 방을 장식했는데 톰이 좋아하는 것 같았어요. 그랬지 여보."
힐만은 뭔가 중얼거렸다. 나는 방을 가로질러 창문 쪽으로 갔다. 창밖에는 골프장의 경사진 언덕을 따라 숲이 보였으며, 고속도로에는 많은 차들이 어린애 장난감처럼 이쪽 저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나는 톰이 밤에는 여기 앉아 고속도로 차량 불빛을 보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꺼운 음악 책이 가죽소파에 펼쳐진 채로 있었다. 표지에는 아름다운 피아노 곡집이라고 쓰여 있었다.
"톰이 피아노 쳐요?"
"잘 쳐요. 10년이나 레슨을 받았어요. 그런데..."
그의 아내가 그의 어깨에 대고 조금 당황해 하는 소리를 냈다.
"이게 뭐하는 거예요?"
"뭐 하다니요. 당신들로부터 정보를 얻는 것은 돌에서 피를 뽑아내는 것 같군요."
"나는 피 없는 돌 같은 느낌이에요." 엘레인은 약간 찌푸리면서 말했다. "오래된 가족 싸움의 원인을 파헤치는 것 같군요."
"우린 싸우지 않았잖아." 힐만이 말했다. 이번이 톰과 내가 의견이 맞지 않은 처음이야. 톰이 돌아오면 잘 될 거야."
"알았어요. 그런데 톰이 집에 없을 때는 보통 어디에 가요?"
힐만 부부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톰이 어디에 가는가 하는 비밀이 서로의 얼굴에 쓰여져 있는 것처럼 쳐다보았다. 붉은 전화에서 나오는 벨소리가 순간적인 침묵을 깨뜨렸다. 엘렌이 수화기를 잡았다. 그 순간 그녀의 손에 있던 사진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녀는 남편에게 기대어 쓰러지려고 했다. 힐만은 아내를 껴안았다.
"이 전화는 우리에게 온 것이 아니에요. 톰의 개인 전화기예요."
"저가 받을까요?" 벨이 두 번째 울릴 때 내가 물었다.
"그렇게 해 주세요."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톰?" 높은 소녀 목소리였다. "톰이야?"
"누구세요?" 나는 최대한 소년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상대편 소녀는 한숨을 쉬면서 전화를 끊었다.
나는 수화기를 놓으면서 "소녀이거나 젊은 여자예요. 톰을 찾았어요."
전화의 여자 목소리가 엘레인에게 힘을 주었는가 보다. "별 일 아니에요. 아마 스텔라 칼슨일 거예요. 그 애가 이번 주 내내 전화를 걸었어요."
"그 애는 항상 이렇게 전화를 끊어요?"
"아니에요. 어제는 길게 통화했어요. 많은 질문을 했는데 저는 거의 대답하지 않았어요. 그 애는 톰을 못 본 게 틀림없어요."
"그 애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어요?"
"모를 거예요." 힐만이 대답했다. " 그 일은 우리 가족 밖에는 몰라요. 사람이 많이 알면 알수록 나빠지니까요." 그는 마지막 말을 조용히 내뱉었다.
나는 전화기에서 일어나 엘레인이 떨어뜨린 사진을 주웠다. 엘레인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내가 앉아 있던 침대로 가 쓰러졌다. 나는 점점 연극이 잘 진행된다고 생각했다. 안 그러면 신이 그 들을 달래주지 않을 것이고, 그들 근처에도 오지 않을 테니까. 그녀는 침대에 누워 진정하고 있더니 다시 엎드려 움직이지 안 않다.
힐만과 나는 조용히 아래층으로 내려와 문제의 전화가 오기를 기다렸다. 전화기는 거실 구석에 하나 있고, 식기실에도 있었다. 나는 전화가 오면 식기실에서 들을 생각이었다. 식기실 옆에는 그랜드 피아노가 있는 음악실이었다. 그 다음이 식당이었는데 박물관의 복원실 같은 침침한 냄새가 났다.
옛날에는 이 냄새가 매우 심했을 것 같다. 식당은 이 집과 꼭 같은 방식으로 지었는데 무겁고 어두운 기둥, 두꺼운 벽, 깊고 작은 창문, 아마 이 건물을 지은 사람은 중세의 영주 같이 자기의 힘을 과시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힐만은 배반자처럼 어울리지 않았다. 마치 남의 집에 사는 것 같았다. 힐만 부부는 톰이 있었을 때에도 이 거대한 저택 구석에서 왔다갔다 했을 것이다.
우리는 거실로 되돌아 왔다. 나는 힐만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힐만의 하인은 두 사람이며, 스페인계 부부로 이름은 페레즈인데 톰이 어렸을 때부터 있었다고 했다. 페레즈 부인은 부엌에 있는 것 같고, 페레즈는 멕시코에 친척들을 방문하러 갔다고 했다.
"페레즈가 정말 멕시코에 있어요?"
"그럴 거에요. 페레즈 부인이 시날로아에서 온 엽서를 받았어요. 어쨌든 페레즈 가족은 우리 가족에게 헌신적이고, 특히 톰에게 잘 해요. 그 사람들은 우리가 이 집을 살 때부터 있었어요."
"얼마나 오래 사셨어요?"
"16년 정도요. 저가 해군에서 제대했을 때 다른 두명의 기술자와 같이 샀어요. 우리 셋은 여기서 기술기업 이라는 회사를 차려 군대와 나사(NASA; 미우주항공연구소)에 부품을 공급했는데 크게 성공했어요. 요즘은 반 쯤 은퇴한 상태에요."
"은퇴하기엔 너무 젊지 않아요?"
"그런 점도 있죠." 힐만은 자기 이야기 하는 것이 마음에 안드는 모양이었는지 딴 곳을 쳐다 보았다. "그래도 아직까지 이사회의 의장이에요. 일주일에 두 세 번만 회사에 가죠. 골프를 많이 치고, 사냥이나 항해도 해요." 그는 인생이 따분한 것 같았다. "이번 여름에는 톰에게 대학 수학을 가르쳤어요. 여기 고등학교에서는 가르치지 않으니까요. 톰이 칼텍(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이나 M.I.T.(메사추세츠 공과대학)에 갈려면 알아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요. 저는 M.I.T.를 나왔는데 엘레인은 래드클리프 대학에 다녔죠. 엘레인은 비콘 스트리트에서 태어났어요."
힐만은 우리 가족은 돈이 많을 뿐 아니라 좋은 대학을 나온 일류 시민이에요 라고 자랑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감히 우리에게 이런 시련을 안기다니. 그는 큰 얼굴을 두 손으로 바치고 있었다.
전화가 울렸다. 전화소리가 들리지 말자 나는 식기실로 뛰었는데 문 앞에서 앞치마에 손을 닦고 있는 조그마하고 동그라한 여자와 부딪힐 뻔했다. 그녀의 감정이 많은 검은 눈에 내 모습이 비쳤다.
"저가 전화 받을 까요?"
"저가 받을 게요. 페레즈 부인."
그녀는 다시 부엌으로 갔다. 나는 문을 닫았다. 식기실에는 형광등이 하나 뿐이어서 어두웠고 거실의 작은 공간 같았다. 전화기는 서랍 안에 있었는데 벨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나는 조심해서 수화기를 들었다.
"절대 안 그랬어요. 저는 당신이 편지에 지시한 대로 했어요."
"힐만 당신 믿을 수 있어? 만약 이 전화에 추적장치를 달았다면 전화를 끊을 것이고 톰은 두 번 다시 못 볼 거야."
위협이 쉽게 나왔다. 그 사람은 이런 일을 즐기는 듯 목소리에 생기가 있었다.
"끊지 말아요." 힐만의 목소리는 간청하면서도 싫어하는 기색이 흘렀다. "돈을 줄게요. 잠깐만 있으면 누가 돈을 가져올 거예요. 당신이 말만하면 가져다줄게요."
"잔돈으로 2만 5천 달러?"
"50달러 짜리는 한 장도 없어요."
"표식은 하지 않았지?"
"저는 당신이 편지에 시킨대로 했어요. 우리 아들만 무사하다면..."
"사진 보낸 거 받았지? 힐만씨 당신이 말을 잘 들어서 좋아요. 나도 이런 일을 하는 게 싫으니까. 이렇게 이쁜 애를 당신과 떼어놓다니."
"톰은 지금 당신 곁에 있어요?"
"바로 곁은 아니지만 근처에 있어."
"톰과 말할 수 있어요?"
"안돼."
"톰이 살아 있는지 어떻게 알아요?"
그 남자는 한 동안 말이 없었다. "힐만씨 나를 못 믿으면 나도 당신 믿기 어려워."
"그렇지만 어떻게..." 힐만의 말은 끊겼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할지 알어. 내가 그렇게 비열한 놈 같아? 힐만씨 그건 문제가 안돼, 문제는 내가 너 같은 놈을 믿느냐야. 힐만씨 난 당신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
침묵 속에서 한숨만 오갔다.
"어쨌던 내가..."
"당신이 어쨌다고요?" 힐만은 절망에 빠져 말했다.
"힐만씨 당신 믿을 수 있어?"
"저를 믿으세요."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 사람이 다시 말할 때에도 그 소리는 계속 들렸다. "그래, 믿기로 하지. 넌는 내가 얼마나 나쁜 놈인지 하루 종일 생각했겠지. 어쨌든 지금은 일할 시간이니. 나는 돈이 좀 필요한데 인질금은 아니고, 솔직히 말해 당신 아들은 납치된게 아니야. 그 애가 제 발로 우리에게 왔다고."
"그럴 리가" 힐만의 말은 그의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내 말을 안 믿어? 물어봐, 물어 볼 수 있으면. 나는 너를 도우려고 하는데 돈을 좀 받고 말이야. 그러니까 정보비지. 너가 나를 거짓말쟁이로 보던 나쁜 놈으로 보던, 하늘이 보고 있으니..."
"이건 인간의 성격문제가 아니잖아."
"너는 그렇게 생각해?"
"여보세요. 지금 일할 시간이라고 했잖아요. 간단히 돈을 언제 어떻게 건네주면 되는 지만 말해요. 그러면 돈을 줄 거예요."
힐만의 목소리는 높아갔다. 그 사람의 목소리도 심술궂고 커졌다.
"그렇게 급히 서둘지 말어. 조금 있다 전화할 테니 까먹지 말어."
"빨리 전화해 주세요."
"기분 좋은 시간인데 즐겨야지. 힐만씨 다시 한번 생각해 봐. 말에서 내려 무릎을 꿇는 기분을." 그 사람은 전화를 끊었다.
힐만은 내가 거실에 갈 때까지 수화기를 들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수화기를 놓고 정신이 없는 듯 회색머리를 흔들면서 내 쪽으로 왔다.
"그 사람에게서 톰이 살아있는지 알아내지 못했어."
"저도 들었어요. 그 놈들은 항상 그래요. 그놈들의 자비심을 믿어야죠."
"자비심이라고, 그 놈은 미친놈이야. 그 놈은 즐기고 있어. 톰은 고생을 하고 있는데."
"그래요, 그놈들은 즐기고 있어요. 충분히 즐겼고 돈까지 줄테니.."
"톰이 위험하겠지요? 그렇죠?" 힐만의 머리가 점점 내려갔다.
"아니에요. 그 놈은 완전히 미친 것 같지는 않아요. 그래도 약간 제 정신은 아닌 것 같아요. 내가 보기에는 아직 아마추어이고, 좀 도둑 정도인데 큰 일을 하다보니 약간은 제 정신이 아니겠지요. 이 사람이 아침에 전화한 그 사람이에요?"
"예."
"내가 보기에는 혼자인 것 같아요. 그 목소리 다시 들으면 기억하겠어요? 당신과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 예를 들어 전에 고용되었다가 해고되었던 사람은 아니에요?"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우리는 숙련공만 고용해요. 그런데 이 놈은 하천한 놈 같아요. 당신은 그의 자비심을 믿으라 했지만." 그의 얼굴은 무섭게 변했다.
"당신 아들 생명이니. 그런데 톰이 제 발로 걸어오 다는 말이 정말일까요?"
"그럴 리가 없어요. 톰이 얼마나 착한데."
"뭘 보고 그렇게 믿죠?"
힐만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확신하는 것 같았다. 힐만은 홈바로 가서 버본 한 병을 꺼내드니 잔에다 붇고는 병은 던졌다.
"톰이 자기 친구나 다른 사람을 고용해서 이런 유괴행위를 꾸몄다고 생각할 수는 없어요?"
그는 내 머리에 던져버릴까 하고 생각하는지 잔을 들어 올렸다. 그가 고개를 돌릴 때 나는 그의 얼굴에 나타난 분노를 볼 수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당신 왜 그렇게 이상한 생각을 해서 나를 괴롭혀요?"
"나는 당신 아들을 모르잖아요. 당신은 잘 알겠지만."
"그 애가 내게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어요."
"당신은 그 애를 라구나 페르디다에 집어 넣었잖아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어요."
"왜요?"
그는 분노에 찬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당신 또 다시 그 따위 이상한 소리를 하면 패 주겠어. 그런 말을 하지 말아요."
"나는 톰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야 해요. 만약 그가 스스로 유괴를 계획했다면 당신을 패 주든지 돈을 더 받아야겠죠. 경찰에 알리는 것이.."
"당신 미쳤어요?"
"톰은?"
"톰이야 정상이지. 솔직히 말해 아처씨, 난 당신도 싫고 당신 질문도 싫어요. 내 집에 머물 것이 아니라면 나가 주셨으면 좋겠어요."
나는 걸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무언가가 나를 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뭔가가 마음에 걸렸다.
힐만은 위스키 병을 꺼내서 가득 붓고는 반쯤을 단숨에 마셨다.
"내가 당신이라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겠어요. 오늘이 당신 평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일지도 모르니까요."
"당신 말이 맞아요." 그는 고개를 천천히 끄떡이더니 술을 마저 마시고는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는 이층에 있는 부인 곁으로 가 버렸다.
5장
나는 조용히 문으로 걸어 나갔다. 내 차의 트렁크에서 모자와 비옷을 꺼내 쓰고는 바람이 부는 찻길로 걸어나갔다. 참나무 밑에는 낙엽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돌고 있어 옛날의 기억을 되살려 주었다. 17살 때 시에라 산맥에 있는 구릉지대의 멋진 목장에서 여름을 보낸 적이 있었다. 8월말이 다가오자 바람은 시원해졌다. 그 때 여자친구를 알게 되었는데 여름이 완전히 가기 전에 나무 아래서 만났다. 그 때 갑자기 더웠던 것으로 기억된다.
성장한다는 것은 점점 강해진다고도 볼 수 있다. 성장기의 사람들은 강해지는 것이 눈으로 보인다. 스텔라 칼슨도 그럴 것이다. 그녀를 만날 수만 있다면 톰을 아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칼슨가의 우체통은 길을 따라 6-70미터쯤 내려간 곳에 있었다. 칼슨가의 우체통은 칼슨가의 집 모양을 조그맣게 복사한 것인데 덧문까지 똑같이 복사했다. 칼슨가는 푸른 덧문에 하얀 식민지 풍의 저택이었다. 나는 집안으로 들어가 문을 두드렸다.
잘생긴 앞치마를 두른 붉은 머리의 여자가 문을 열더니 차가운 푸른 색 눈으로 나를 쳐다 보았다. "무슨 일이시죠?"
나는 바른대로 말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저 보험회사에서..."
"엘 란초에서는 구걸이 안되요."
"보험을 권유하는게 아니라 전 보험 분쟁 조정자인데요." 나는 지갑에서 내 말을 믿을 수있게 옛날에 사용하던 명함을 꺼냈다. 한 때 나는 보험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부서진 제 차 때문이라면 지난주에 다 끝났을텐데요."
"저희회사에서는 사고 원인에 관심이 있어서요. 아시다시피 통계를 만드느라."
"나는 통계에 관심 없어요."
"그렇지만 보험금을 받았잖아요. 아마 절도든가?"
그녀는 주저하드니 뒤에 본 사람이 있는 것처럼 뒤를 돌아보았다. 마침내 "그래요, 도둑맞았어요."라고 말했다.
"이웃에 사는 젊은 놈이 훔쳤죠? 맞아요."
그녀는 내 말에 얼굴을 붉혔다. "맞아요. 그리고 사고가 났지요. 그놈이 내 차를 훔쳐 사고를 냈어요." 마치 준비하고 있었던 듯 말이 쏟아져 나왔다.
"이상한 경우라서, 칼슨부인, 안에 들어가서 그 일에 대해 말씀 나눌 수 있을까요?"
"그러세요."
그녀는 내가 들어갈 수 있도록 비켜주었다. 나는 전화받는 의자에 앉아 검은 메모장을 꺼냈다. 그녀는 기둥에 손을 대고 한쪽 발은 계단에 둔 체로 서서 나를 내려보고 있었다.
나는 연필을 잡고 물었다. "그러니까 차를 훔쳐타고 가다가 사고를 냈다는 거죠?"
"안 그렇다면 그 놈이 일부러 사고를 냈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럴 수도 있죠."
하이얀 치아가 붉은 입술에 덮어버렸다. 그러더니 입술 양쪽이 오무러졌다. "그걸로 통계 처리하기는 힘들 거예요. 그 놈, 이름은 톰 힐만인데, 우리 딸애에 관심이 많죠. 전에는 꽤 착했었는데. 어쨌든 대부분의 시간을 이 근처에서 죽치고 있죠. 전에는 우리 아들처럼 대해 주었는데, 요즘은 애가 나빠지는 것 같아서." 그녀의 목소리는 화난 것도 같고, 후회하는 것도 같았다.
"어떻게 나빠졌지요?"
그녀는 갑자기 화난 표정으로 말했다.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아요. 보험회사에서 그런 쓸데없는 것을 묻고 다니나. 사람의 성질 같은 것을."
"아, 그 애도 만나봐야죠. 이웃집에 살지요?"
"그 애 부모가 살지요. 그 애를 어디에 보냈다고 하던데. 힐만 가족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아요." 그 여자는 짜르는 듯이 말했다. "그 사람들 나쁜 사람이에요. 아니면 굉장한 바보거나, 그게 아들에게 유전된 거지."
"어디에 보냈데요?"
"교정학교 같은데 겠지요. 그 애는 그게 필요해요. 요즘 점점 삐뚤어지고 있으니."
"어떤 면에서?"
"모든 면에서요. 내 차를 발로 차지 않나, 술에 취해 그랬겠지만. 그 애가 아랫마을에 있는 술집에서 시간 때우는 것을 모를 줄 알고."
"차 사고가 난 그 날 말입니까?"
"여름 내내요. 그 애는 스텔라도 데리고 갈려고 그랬어요. 그래서 사이가 나빠졌어요. 당신이 그 이유를 알고 싶다면..."
"좀 자세히 말해 주실래요. 칼슨부인. 우리는 사고의 사회적 배경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아요." 나는 그녀가 한 말을 쓰면서 말했다.
"한 번은 그 애를 그 곳에 데려갔어요. 한번 생각해 봐요. 16살 짜리 순진한 애를 술꾼들이 득실거리는 그 곳에 데려가다니. 그 후로는 그 애를 두 번 다시 보지 못하게 했어요."
"스텔라는 어땠대요?"
"그 애는 감수성이 많아서요." 그녀는 계단 위를 쳐다보았다. "바깥양반과 나는 톰과 사귀지 못하게 했어요."
"차를 훔치는데 스텔라는 전혀 관계가 없지요?"
"당연하죠."
계단 위에서 조용하고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짓말, 엄마, 엄마도 알잖아요. 내가 말 했..."
"조용히 해, 스텔라. 침대에 누워 있어. 캠프에 못 갈 정도로 아프다면 침대에 누워있어야 해."
스텔라의 목소리가 들리자 칼슨부인은 계단을 반쯤 올라갔다. 칼슨부인은 삼각근육이 발달된 좋은 투우사인 모양이었다. 스텔라는 엄마가 있는 곳으로 내려왔는데 사랑스런 눈을 가진 날씬한 처녀였다. 갈색 머리는 뒤로 묶어 놓았다. 목을 덮는 푸른 스웨터에 주름잡힌 치마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비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덕분에 좋아졌어요. 고마워요. 톰에 대해 거짓말하기 전까지는 병이 거의 나았는데."
"여긴 왜 나왔니, 방에 들어가렴."
"토미에 대해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방에 들어갈게요."
"입 닥쳐"
칼슨 부인은 서너계단을 급히 올라가 어깨를 잡고 그녀를 잡아끌고는 내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졌다. 스텔라는 가늘고 맑은 목소리로 문이 닫힐 때까지 "거짓말"이라는 소리를 반복하고 있었다.
5분쯤 지나 칼슨부인은 옷을 갈아입고 내려왔다. 가죽을 댄 초록색 모자를 쓰고, 격자무늬 코트에 장갑을 끼고 있었다. 그녀는 문을 열었다.
"지금 급히 나가야겠는데요. 미용사는 늦으면 심하게 화를 내요. 당신이 알고싶어 하는 것은 저가 전혀 말해줄 수 없어요."
"아닌데요, 저는 당신 따님의 말에 관심이 많은 걸요."
그 여자는 쓴 웃음을 지었다. "스텔라에게 신경쓰지 마세요. 그 애는 열이 있고 히스테릭해요. 그 애는 사고 이후로 정신이 이상해요."
"그 애가 사고에 관련되어 있으니까요."
"바보같은 소리 하지 마세요." 그 여자는 현관 손잡이를 잡고 말했다. "이제 정말 가야해요."
나는 바깥으로 나갔고, 그 여자는 내 뒤에서 문을 닫았다. 문 닫는 연습을 많이 한 모양이었다.
"당신 차는 어디 있어요?" 그 여자가 내 뒤에서 물었다.
"낙하산 타고 내렸어요."
그 여자는 내가 큰 길로 나갈 때까지 서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드니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힐만의 우체통으로 가서 사도(私道)로 들어갔다. 나무가 바람에 부딪히는 소리는 점점 커졌다. 덤불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스텔라였다.
스텔라는 나무 숲 속에서 갑자기 나타났다. 모자가 달린 푸른 색 스키복 상의를 입고 있었다. 모자를 쓰고 끈을 뺨에 묶고 있어 12살 소녀 같았다. 그 애는 숙녀같은 몸짓으로 나를 불렀다. 손가락을 입에다 대고 있었다.
"엄마 눈에 안 띄이게요. 엄마는 나를 찾고 있을 거에요."
"엄마는 미장원에 간다고 그랬는데."
"그것도 거짓말이에요. 엄만 요즘 맨날 거짓말만 해요."
"왜?"
"버릇이 되었나 봐요. 지금까지 엄마는 거짓말을 안 했는데요. 아빠도 그랬죠. 그런데 토미 사건 이후로는 변했나 봐요. 저도 변했어요." 그리고는 손을 가리고 기침을 했다.
"너 여기서 비 맞으면 안도ㅔ, 감기 걸렸잖아."
"괜찮아요. 별로 아프지 않아요. 캠프에서 애들이 꼬치꼬치 물어보는게 지겨워서요."
"토미에 대해?"
그 애는 머리를 끄떡였다. "그렇지만 토미가 어디 있는지도 몰라요. 당신은 알아요?"
"아니, 나도 몰라."
"당신 경찰이나 그 비슷한 분이시죠?"
"전에는 경찰이었지. 지금은 비슷한 것이고."
그 애는 코를 만지작거리더니 낄낄거리고 웃었다. 그리고는 모자를 벗으면서 말 잘 듣는 새끼사슴과 같은 표정을 지었다.
"무슨 소리 들리시죠. 엄마가 날 찾는 소리예요."
숲 바깥에서 "스텔라"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때문에 죽겠어요. 그렇지만 언젠가는 누군가가 진실을 말하겠지요. 톰이 숲 경사면에 오두막을 지었어요. 옛날에 지은 거죠. 그곳에 가서 이야기해요."
나는 풀이 무성한 오솔길로 그 애를 따라갔다. 가지가 잘 뻗은 참나무 위에 타르를 입힌 지붕이 있는 아메리카 삼나무로 만든 오두막이 보였다. 손으로 만든 사다리는 집과 같은 녹색이었는데 바닥까지 늘어져 있었다. 스텔라는 사다리로 올라가 집안으로 들어갔다. 붉은 깃 딱따구리가 유리가 없는 창에서 나와 옆에 있는 나무로 날아가 앉더니 우리를 보고 지져 겼다. 칼슨부인의 목소리가 경사면 아래서 들려왔다. 그 여자는 목소리는 힘이 있었는데 갈수록 쉰 소리가 나왔다.
"로빈슨 가족같지요." 내가 들어가자 스텔라가 말했다. 스텔라는 간이침대 구석에 앉아 있었다. 간이침대에는 매트리스는 있었으나 담요는 없었다. "우리가 어렸을 때 톰과 나는 하루 종일 여기서 놀았어요." 16살의 그녀 목소리에는 아른한 향수가 깔려 있었다. "물론 사춘기가 되자 여기서 놀지는 안았어요. 여기서 놀기에는 너무 컸으니까요."
"톰을 좋아하는가 보구나."
"그래요, 톰을 사랑해요. 크면 톰과 결혼할 거에요. 그렇다고 우리를 이상하게 보지는 마세요. 애인 사이는 아니에요. 깨끗한 사이에요." 그 애는 그 말이 마음에 안드는지 코를 비벼댔다. "우리는 적당한 때가 오면 결혼할 거에요. 톰이 대학을 졸업하거나 직장을 가지면요. 돈은 별로 문제가 안되니까요."
나는 그 애가 나와 이야기하면서 마음을 달래는 것 같아 보였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짧은 이야기였지만. "이 이야기 어때요?"
"톰 아빠는 부자니까요."
"너네 부모는 어때? 결혼을 허락할 것 같니?"
"아마 못 말릴 걸요."
만약 톰이 살아있다면 그 애의 말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애는 내가 생각하는 만약을 눈치챈 것 같았다. 매우 예민한 아가씨다.
"톰 별일 없죠?" 그 애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랬으면 좋겠어."
그 애는 내 곁으로 와서 소매를 붙잡았다. "톰 어디 있어요? 미스터..."
"아직은 몰라. 내 이름은 루 아처이고, 토미 편에서 일하는 사립탐정이야. 그러니 너는 그 사건에 대해 진실을 말 해줘."
"그러지요. 제 잘못이에요. 엄마하고 아빠는 저를 보호하기 위해 거짓말하고 있는 것이에요. 그렇지만 톰에게는 점점 상황이 나빠져 가고 있어요. 저가 그 일에 책임이 있는 사람이에요." 그녀는 눈을 위로 쳐다보았다. 그녀의 진지한 표정은 어린아이가 기도하는 것 같았다.
"네가 차를 몰았니?"
"아뇨, 저가 톰이랑 같이 있었다는 말이 아니고요. 저가 톰에게 차를 빌려주겠다고 말하고 엄마 방에서 차 열쇠를 가지고 나와서 주었어요. 그 차는 내 차이고요. 내 말은 내가 쓰는 차라는 말이에요."
"엄마도 알고 있니?"
"예, 저가 일요일날 엄마와 아빠에게 말했어요. 그런데 그 전에 경찰에 신고했어요. 그 후로는 전혀 말을 바꾸려고 하지 않아요. 부모님들은 그렇다고 해서 사건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래요."
"왜 톰에게 차 열쇠를 빌려주었지?"
"물론 좋은 생각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어요. 그렇지만 톰은 어디 가서 누구를 만나야 하는데 톰 아빠가 차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였어요. 톰은 축 늘어져 있었어요. 그 날 아빠와 엄마는 저녁 때 외출 나갔고, 톰은 한 두 시간만 사용하고 돌아온다고 했어요. 그 때는 8시 밖에 안되어서 괜찮을 줄 알았어요. 그가 밤새도록 안 돌아 올 줄은 몰랐어요."
"톰이 어딜 갔데?"
"저도 몰라요."
"왜 갔는데?"
"그것도 몰라요. 톰은 자기 생애에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했어요."
"술에 대해서 언급하였어?"
"톰은 술을 안 마셔요. 그는 어떤 사람을 만난다고 했는데 매우 중요한 사람이래요."
"마약 공급자는 아니고?"
그 애의 눈은 놀라서 커졌다. "비꼬지 마세요. 아빠가 저에게 화났을 때 하는 말투예요. 저한테 화났어요?"
"아니 네가 정직하게 말해주어서 기뻐."
"그런데 왜 말을 비비꼬고 그래요?"
"미안해, 항상 주로 나쁜 사람들만 만나서 그런가봐. 대개 엄마나 아빠는 자식이 마약을 하는 줄 모르잖아."
"톰은 마약을 안해요. 마약을 매우 싫어해요. 톰이 어떤 사람과..." 그 애는 손으로 입을 가렸는데 손가락에는 이빨로 뜯은 자국이 있었다.
"무슨 말을 할려고 했지?"
"아무 것도 아니에요."
스텔라와 나 사이의 친밀한 감정은 갑자기 싸늘해졌다. 나는 최선을 다해 친밀한 감정을 살리려고 했다. "스텔라양, 잘 들어요, 나는 재미로 어떤 더러운 것을 찾는게 아냐. 톰은 정말로 위험에 빠져있어. 만약 톰이 마약거래자와 연관이 있으면 꼭 말해야 해."
"그 애들은 톰의 음악 친구예요. 절대로 톰에게 나쁘게 하지 않아요." 중얼거리듯 스텔라가 말했다.
"친구들 중에는 나쁜 친구를 가진 애도 있을 수 있어. 그 애들에 대해 이야기해 줘."
"이번 여름에 톰이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로 피아노를 쳤는데요. 톰의 아버지가 그만두라고 해서 끊었어요. 술집에서 가장 바쁜 시간인 일요일 오후에는 바룸 를로어(Baroom Floor;술집 이름)에 앉아서 음악을 들었어요."
"아까 너의 엄마가 말하던 저질 술집이야?"
"저질 술집은 아니에요. 톰이 나를 저질 술집에 데려가지 않아요. 그냥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곳이죠. 톰은 내가 자기 그룹의 음악을 듣기 바랐어요."
"톰도 같이 연주했구나."
스텔라는 밝게 머리를 끄덕였다. "톰은 피아노를 잘 쳐요. 피아노로 먹고 살아도 될 정도로요. 그들이 주말에 같이 하자고 했어요."
"그들이 누구지?"
"바룸 플로어에서 연주하는 악단이에요. 물론 톰 아빠가 허락할리 만무하지만."
"그 악단에 대해 말을 좀 해 줘."
"그 악단 중에 샘 잭맨 밖에 몰라요. 그 애는 비치 클럽에서 옷 보관하는 일을 하는데, 트럼본을 불어요. 그리고 색스폰, 트럼펫을 부는 애와 드럼치는 애도 있어요. 이름은 몰라요."
"그 애들 어떤 것 같니?"
"진짜 착한 애들은 아니에요. 그래도 톰 말로는 앨범을 만든다고 했어요."
"악단들은 다 앨범 만들려고 하지. 어떤 종류의 애들 같아?"
"그냥 음악하는 애들이죠, 톰은 그 애들을 좋아해요."
"톰은 그 애들이랑 얼마나 같이 지냈어?"
"일요일 오후에만요. 그리고 가끔씩 들리기도 했어요. 톰은 그것을 다른 생활이라고 그랬어요."
"다른 생활?"
"음.... 톰은요, 집에 와서는 공부나 아니면 부모님들이 좋아하는 행동만 해요. 저도 집에서는 그래야만 해요. 사고가 난 후에는 그렇지도 않지만, 요즘은 별로 좋지 않아요."
그 애는 몸을 움츠렸다. 차갑고 눅눅한 바람이 나무 집 창문에서 들어왔다. 칼슨부인의 목소리는 이제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 애를 엄마랑 떼어놓은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렇지만 그 애가 다 말할 때까지는 놓아두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나는 그 애 앞에서 구두 뒤꿈치를 쳤다. "스텔라양, 토요일 저녁 때 톰이 그 음악친구들과 약속한 것 같니?"
"아니오, 그랬다면 저에게 말했을 걸요. 그보다 훨씬 심각했어요."
"톰이 뭐라고 말했어?"
"전혀요. 매우 심각하고 중요한 것 같았어요. 그리고 흥분하고 있었어요."
"좋아서 아니면 나빠서?"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무서워하는 것 같지는 않았어요."
"혹시 아픈 것 같지는 않았어?"
"아프다니요?"
"정신적으로"
"전혀요."
"그런데 왜 톰 아버지는 톰을 그 학교에 넣었을까?"
"정신병원 비슷한데요?" 스텔라는 내 쪽으로 닥아왔다. 얼굴에 그 애가 숨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라구나 페르디다는 좀 그래. 너한테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부모님에게는 말하지 마."
"당연하죠. 전 부모님께 톰 이야기는 안 해요. 더구나 톰이 어디 있었는가는 더 그래요. 다들 위선자들이니까요." 스텔라의 눈은 엄숙해졌으나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당신은 톰이 위험에 빠졌다고 했잖아요. 나쁜 사람들이 테네시 윌리엄즈에게 한 것처럼 귓불을 자르지는 않을까요?"
"그렇지는 않을거야. 그가 있었던 학교에서는 위험이 없었어. 그런데 톰이 그 곳을 탈출한 후 그날 밤이나 그 다음날 나쁜 사람의 손에 떨어졌을 거야. 안됐지만 현재 내가 아는 바로는 그래. 너에게 말하기는 곤란하지만 네가 할 일은 없어."
"아니에요." 그 애는 뭔가 할 것이 있다며 두 번째로 숙녀 같은 표정을 지었다. "톰에게 그런 일이 생겼다면 저에게 일어난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그 애는 손가락으로 조그만 가슴을 톡톡 치며 말했다. "톰이 나쁜 사람 손에 있다면 어떤 사람인지 아세요?"
"그 해답을 얻으려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잖아. 바룸 플로어의 친구들은 아니겠지?"
"모르겠어요. 톰을 가두어 놓았을까요?"
"그렇겠지. 더 나빠지기 전에 그 놈들을 만나려고 해. 톰이 다른 생활을 할 때 어떤 계약을 맺지는 않았니? 특히 지하세계와."
"그런 일은 없었어요. 다른 생활이라는 게 그렇게 다르지는 않았어요. 단지 음약을 연주하고, 감상하고, 이야기하고. 그것뿐이에요."
그 애의 입술은 푸르게 변해갔다. 나는 갑자기 고문당한 아이를 고문하는 악마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은 금방 사라졌다.
"스텔라는 집에 가는게 좋겠어."
그 애는 팔장을 끼고 말했다. "저에게 다 말해줄 때까지는 가지 않겠어요. 전 어린애가 아니라고요."
"그렇지만 이건 비밀을 유지해야 하잖아. 나는 이 비밀을 밖으로 드러내고 싶지 않아. 다른 사람이 알면 더 나빠질 수도 있어."
스텔라는 엄숙하게 말했다. "아빠처럼 뱅뱅 도는 소리만 할 거예요. 톰 집에 인질금을 내래요?"
"그래, 그렇지만 보통의 유괴는 아닌 것 같아. 자의로 그 사람들에게 간 것 같아."
"누가 그런 말을 했어요?"
"범인 중의 한 명이."
그녀의 예쁜 이마에 주름이 접혔다. "그렇다면 톰이 위험에 처해있다는 거예요?"
"아마 톰은 모를 거야. 그들이 톰을 집에 못 가게 하는 것은 아닌 것 같고. 알면 톰이 위험해지겠지."
"그럴 것 같아요." 스텔라의 눈은 세상의 모든 위험이 한 순간에 그녀에게 닥친 것처럼 크게 뜨더니 점점 검게 변했다. "톰이 여러 가지 곤경에 처해있는 것 같아요. 톰의 엄마는 저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걸요. 나는 톰이 자살했거나, 톰의 부모가 조용한 곳에 보냈다고 생각했어요."
"왜 그렇게 생각했지?"
"톰이 그랬어요. 사건 다음날 톰이 전화해서 우리는 이 집에서 만났어요.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는데 당신은 톰에게 헌신적인 것 같으니. 톰은 친구로서 마지막으로 나를 만난다고 하고서는 영원한 이별이라고 했어요. 저는 그가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물었지만 대답을 안 해주었어요."
"자살할 것 같지는 않았어?"
"모르겠어요. 저도 혹시 그런 뜻일까 봐 무서웠어요. 그 이후로는 한번도 못 만났어요. 점점 걱정이 심해졌어요. 오늘 당신을 만나서 말을 들으니 오히려 걱정이 덜되어요. 근데 왜 범죄자들과 같이 어울릴까요?"
"글쎄다. 톰은 친구들이 범죄자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가 봐. 네가 그들 중 누군가를 생각해내 준다면..."
"생각하고 있어요." 스텔라는 얼굴을 찡그리더니 결국 다시 한번 머리를 흔들었다. "생각이 안나요. 토요일 밤에 차를 빌려 가지고 가서 만난 사람이 그들이라면..."
"톰이 그 사람들에 대해 말한 것은 없어?"
"그 사람들을 만나는데 이상하게 긴장하고 있던 것을 빼면요."
"남자인 것 같아, 여자인 것 같아?"
"그것조차도 모르겠어요."
"일요일 아침 얘기 좀 하자. 여기서 만났다고 하였지. 그 전날에 대해 아무 말도 안했어?"
"예, 톰은 사고가 나서 부모님께 혼난 것 때문인지 너무 가라앉아서 물어볼 수가 없었어요. 뭔가를 알아냈어야 했죠? 나는 너무 많이 하거나 적게 하거나 해서 항상 잘못한다니까."
"내가 보기에는 넌 잘 하는 게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엄마와 아빠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부모들은 자식을 제대로 못 보는 법이야."
"아이가 있어요?" 이 질문을 들으니 라구나 페르디다에서 같은 질문을 한 슬픈 얼굴을 한 아이가 떠 올랐다.
"아니, 아이가 없어."
"농담 마세요." 시무룩한 얼굴로 말했다.
"정말이야."
스텔라는 내게 순간적으로 미소를 띄웠다. "길버트와 설리반인가? 전 탐정이 당신같은 줄 몰랐어요."
"보통 탐정과는 다르지." 우리 사이의 의기투합은 한 때 사라졌었으나 다시 되살아났다. "하나만 더 물어 보자. 너의 엄마는 톰이 일부러 차를 부셨다고 생각하는 것 같던데."
"그럴 거예요."
"그렇게 생각할 이유가 있니?"
스텔라는 이 질문의 의미를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글쎄요. 톰이 저에게 그럴 리가 없는데." 그리고는 아마 나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계속해 봐."
"자살하려고 했다면 아무런 신경도 안 쓰겠지요."
"자살하려고 했던 것 같아?"
"그럴지도. 집에 오려고 하지 않았어요. 그 말은 자주 했는데 왜 그런지는 말하지 않았어요."
"차를 좀 봐야겠어. 그 차는 어디 있지?"
"시내에 있는 링고씨의 차 폐차장에 있어요. 며칠 뒤 엄마가 보러 갔는데."
"왜?"
"아마 그 때문에 엄마가 화가 더 나셨을 거예요. 엄마는 전부터 톰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아빠까지도 톰을 싫어하게 되었어요. 차를 고치는 일이 무척 힘든가 봐요. 엄마는 경찰을 불렀고, 저를 죽이려고 했어요."
"그렇지 않아."
"정말이에요." 그렇지만 별로 무서워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톰에 대해 알아낸 것이 있으면 제에게 가르쳐 줄 거죠?"
"네 엄마 생각하면 쉬울 것 같지는 않은데. 가능하면 네가 나에게 연락해 줘. 이 전화번호는 응답기계가 받겠지만 나에게 연락이 돼." 나는 명함을 한 장 주었다.
스텔라는 사다리를 내려가서 나무숲 사이로 사라졌다. 이 젊은이가 세상을 대신해서 미안해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