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쇄원(瀟灑園)은 대나무 수공예로 유명한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지곡리에 있는 조선 중기에 만들어진 사적 제304호로 지정되기도 한 아름다운 조선 중기의 집과 정원이다.
중종대의 처사 양산보(梁山甫:1503~57)가 기묘사화로 스승인 조광조가 화를 입자 낙향해 자신의 은거지로 꾸민 별서정원(別墅庭園:들 같은 곳에 지은 집과 정원)이라고 한다.
소쇄원의 '소쇄'는 공덕장(孔德璋)의 〈북산이문 北山移文〉에 나오는 말로 깨끗하고 시원함을 뜻한다고 한다. 양산보는 이 정원의 주인이라는 뜻에서 호도 소쇄옹(瀟灑翁)이라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소쇄원의 조성시기는 1530~40년대로 추정되며 무등산 북쪽 기슭 광주호에서 흘러내리는 자연계류를 중심으로 자연적인 비탈면의 일부를 계단 처리해 건축물과 첨경물을 배치하고, 조경식물로 15종류의 나무와 5종류의 초화를 심은 약 1,400평의 임천(林泉) 정원이다.
이를 기능과 공간의 특색에 따라 애양단(愛陽壇) 구역 오곡문(五曲門) 구역 제월당(霽月堂) 구역광풍각(光風閣) 구역 이렇게 네곳으로 구분할수 있을 것이다.
소쇄원으로 들어가는 길은 대나무의 고장답게 아름다운 대나무 숲으로 형성 되어 있다.
건축학적으로 주거와의 관계에서 볼때에는 하나의 후원(後園)이며, 공간구성과 기능면에서 볼 때에는 입구에 전개된 전원(前園)과 계류를 중심으로 하는 계원(溪園) 그리고 내당(內堂)인 제월당(霽月堂)을 중심으로 하는 내원(內園)으로 되어 있다.
제월당(霽月堂)은 "비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는 뜻의 주인을 위한 집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며,강의 시간은 일정하지 않으나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가 섞인 입담으로 이곳의 향토역사학자로 보이는 아저씨에 의하여 소쇄원역사에 대한 설명회도 개최되고 있다.
광풍각(光風閣)은 "비갠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라는 뜻의 손님을 위한 사랑방으로 1614년 중수한 정면 3칸, 측면 3칸의 역시 팔작지붕 한식이다.
정원의 구조는 크게 애양단(愛陽壇)을 중심으로, 입구에 전개된 전원(前園)과 광풍각(光風閣)과 계류를 중심으로 하는 계원(溪園), 그리고 내당인 제월당(霽月堂)을 중심으로 하는 내원(內園)으로 구성되어 있다.
광풍각에서 바라다 보면 동쪽으로 애양단(愛陽壇)이라는 현판이 붙은 이 담장이 보이는데 이담장은 조선시대에 축성된 담장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무너지지 않고 역사를 가슴에 앉고 굳굳하게 이자리에 서있기도 하다.
애양단이라는 이름이 붙게된 것은 유난히 햇볕이 많이 들어와 한 겨울에도 계곡은 아직 얼어있으나 이 곳의 눈은 모두 녹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소쇄원 오곡문은 사람을 위한 문이 아니라 물을 위한 문이다 오곡문은 담 밑으로 넓적한 바위를 걸쳐 놓아 소쇄원으로 흘러드는 냇물이 자연 그대로 흐르도록 한 것인데 문이라고 이름 지은 것부터 기발하다.
오곡문은 담 아래 터진 구멍으로 물이 암반 위에서 다섯 굽이를 이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람을 위한 문이 아니라 물을 위한 문이 아닌가 싶다.
그밖에 제월당으로 들어가기 위한 문,,이문은 정말 작은 문이이긴 하지만 안과 밖의 조화가 아름답게 느껴지도록 세워진 한옥 특유의 그런 목조문이기도 하다.
장작같은 나무로 불을 때는 세계적인 한국 고유의 난방시스템인 온돌방식의 불을 지피는 곳인 앙증맞은 아궁이도 보인다.
제월당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작은 계곡을 건너야먄 하는데 사진과 같은 아름답고 앙증맞은 다리도 있다
이곳 담양의 소쇄원은 규모와 건물의 형태는 비록 작고 협소하기는 하지만 복잡한 이시대를 살아가다가 머리가 아픈일이 벌어졌을때 그 복잡해진 머리를 식힐겸 한번쯤 방문을 하여 선조들의 향기를 짐작도 해보며 그야말로 독특한 대나무숲을 천천히 거닐어 보는 것도 스트레스를 해소하는데는 좋은 방법이 될수 있을꺼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