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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노래]
함께 가자 우리 - 김남주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셋이라면 더욱 좋고 둘이라도 함께 가자
뒤에 남아 먼저 가란 말일랑 하지 말자
앞서가며 나중에 오란 말일랑 하지 말자
일이면 일로 손잡고 가자
천이라면 천으로 운명을 같이 하자
둘이라면 떨어져서 가지 말자
가로질러 들판 물이라면 건너주고
물건너 첩첩 산이라면 넘어주자
고개 넘어 마을 목마르면 쉬어가자
서산 낙일 해 떨어진다 어서 가자 이 길을
해 떨어져 어두운 길
네가 넘어지면 내가 가서 일으켜주고
내가 넘어지면 네가 와서 일으켜주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언젠가는 가야할 길
누군가는 이르러야 할 길
가시밭길 하얀 길
에헤라, 가다 못 가면 쉬었다나 가지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먹고 살기 힘든 세상에 '내 일 아니'라고 모른 척하며 살지 말고
조금 더 눈을 크게 뜨고, 가슴을 열어 주변을 둘러 보는 '우리' 였으면 합니다.
스피커 볼륨을 높이세요. 노래가 나옵니다. 곡명은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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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경이의 세상보기]
삼형제
그들 중 막내는 나이가 30대이고
중간은 40대
그리고 맏형은 50대입니다.
그 중간에는 3자매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6남매인 셈입니다.
50대인 맏형은 장남인데 30대 중반 경부터 노동운동을 시작해서
항상 그 집안의 근심과 걱정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운동을 한다는 건 어려운 일인가 봅니다.
한때 직장에서 해고가 되었는데 어머님이 생활비를 대주신다며 아파트 현장에 일을 나가셨습니다.
청소부인데 30만원 월급을 받아서 15만원은 큰아들네 생활비로 주시고 나머지로 당신들이 쓰신다며...
새벽 출근길에 비탈길을 내려오시다 빙판길에 넘어져서 엉덩뼈에 금이 갔지만
가족에게도 직장에도 모두 숨기시고 몇 달 간을 그렇게 일을 하셨습니다.
그 일로 결국은 큰 병을 얻어서 환갑도 못 넘기시고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그래서 그 아들은 지금도 어머니를 생각하면 늘 눈시울을 붉히고 있습니다.
40대인 둘째는 대학을 졸업하고 가수였던 아가씨와 결혼을 해서
백화점사업 유통업 유흥업소 등 이런저런 사업을 하다가 IMF때 결정적으로 망해버렸습니다.
지금은 철근공으로 건설현장에서 노동을 하고 있는데 기술이 조금 부족하나봅니다.
그래서 몸 사리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한다고 합니다.
일거리가 부족할 때도 다른 사람들은 다 그만두게 하면서도 둘째만큼은 놀리지 않고 나오게 한다고 합니다.
팔목을 다쳐서 퉁퉁 부었는데도 현장을 잃을까봐서 하루도 쉬지 않고 새벽이면 집을 나섭니다.
보다 못한 가족들이 "한 달 만이라도 쉬라”고 해도 “요즘 같은 불경기에 이 현장 잃으면 나는 끝장이다” 라면서 고집을 피웁니다.
산재처리를 해주겠다고 50대인 그의 형이 말해도 안 듣습니다.
오야지에게 피해를 줄 수 없다나요...
그러다가 어머니처럼 다른 큰 병을 얻으면 어쩌려고...
30대인 막내는 어렵다는 관문을 뚫고 공무원이 되었습니다.
집안에서는 한시름 놓았죠.
그래도 저 앞길은 어느 정도 보장이 되었다 싶었으니까.
그런데 6년 만에 그도 해고가 돼 버렸습니다.
노동조합 간부라나요.
80세를 바라보는 그의 아버지는 화병이 나서 병원을 시도 때도 없이 들락거립니다.
살기 참 어려운 세상입니다.
2005년 5월 안산노동인권센터 대표 송 일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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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소식]
'5월'
화섬연맹 대성산업가스 비정규직지회
화섬연맹 위원장의 독단적인 합의에 의해 투쟁이 종결되었다.
연맹위원장과 대성 부사장과의 '교섭'도 아닌 '독대'로 5월 17일 합의하였다.
내용은 1)해고자 2명에게 각각 7,500만원 생계비(!) 지급,
2)민/형사상 고소/고발 취하이다.
안산공대 대학노조
5월 25일로 파업 48일차. 학교 총동문회를 중심으로 교수분과위원회, 학생분과위원회, 직원연합회, 사옥아카데미 등 5개 단체가 모여 ‘학교바로세우기’ 출정식을 진행하였다.
출정식 이후 농성장인 노동조합 천막을 철거하라는 협박을 하였다. 그러면서 천막의 노조 물건들을 부수고, 욕설과 폭언을 자행을 하였다. 이후 그들은 교무처장실을 점거하며 난동을 부렸다.
노조는 이에 항의하여 집기 파괴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기로 하였으며, 6월 2일 학교 측과 교섭을 진행할 예정이다.
전국 여성노조 안산시흥지회
초등학교 주5일제 관련하여 급식조리사에 대한 노동조건 저하 없는 주5일제 쟁취를 위한 설문조사 진행 중이다.
경기서부지역 건설노동조합의 농성투쟁, 승리로 마무리
-5월 10일, 천막농성 29일 째, 교섭 재개후 5회 만에 잠정합의
요구안이었던 '해고자 복직', '일자리 50%을 노조 무료취업알선센터에서 이용'으로 잠정합의하였으며, 단체협약은 계속 진행하기로 하였다.
1차 합의사항
왕환식 쟁의부장을 원직에 복직시키며, 불법용역을 통한 인력수급을 노동조합을 통해 50%를 수급하며, 향후 6개월 이내에 100%로 전환한다. 원창건설은 단체교섭을 성실하게 임한다.
2차 합의사항
일용직으로 들어갔던 5인에 대하여 입사일로부터 직영으로 전환하여 배치하며,
노동조합을 통한 인력 수급은 50%에 대한 임금 지급은 110공수 이내는 다음 달 5일 지급, 110공수 이상의 인력이 출력할 시는 직영과 같은 다음 달 20일에 지급한다.
기능공 형틀목수 5인을 결원 발생 시 우선 고용한다. (구두 합의; 공정상 직영이 필요할 시, 팀의 타절시 노동조합 전임자에게 통보하고, 고용에 관하여 노동조합과 협의한다.)
3.단체협약(주요 내용)
노동조합 활동을 보장한다.
전임자 1인(왕환식쟁의부장)에 대하여, 10일의 유급 노동조합 활동을 보장한다.
현장위원 3인에 대하여, 1일의 유급 노동조합 활동을 보장한다.
신규채용시 조합원을 우선 고용한다.
재하청금지는 건설산업기본법에 준한다.
서울,경인지역 수도권이주노동조합(MTU)
MTU 위원장인 안와르(Anwar)동지가 5월 14일(토) 새벽 일정을 마치고 귀가하던 도중 출입국 사람들에 의해 폭력적으로 연행됐다.
19일(목) 목동 출입국 앞에서 표적연행과 폭력연행에 대한 항의집회가 있었다.
이 날 집회는 민주노총 경기본부 주최였고, 50 여명의 동지들이 참가하였다.
5월 29일 여덟 번째 안산이주노동자문화제가 열렸다. 문화제는 쭉~~ 계속된다.
5월 31일 안산시 의회에서 ‘지역사회와 이주노동자’란 주제로 지역시민사회단체들과 토론회가 열렸다.
경기일반노조 이마트 분회
5월 28일 경기일반노조와 연대단위들이 ‘신세계이마트 전국행동의 날’ 같이하여 집회와 1인시위가 진행되었다.
신세계 자본은 조합원에게 3개월 정직 및 출입금지, 표현의 자유 제한 가처분 등 갖은 탄압에 이어 지노위에서 정직이 부당한 징계라는 결정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2005.5.9. 인사위에서 전 조합원 해고라는 초법적 불법행위를 자행하였다.
매월 넷째 주 금요일에 행동의 날은 계속 진행된다.
민주노총 경기본부 안산지구협의회
5월 24일 화요일 안산역에서 최저임금 선전전과 비정규직 설문조사, 변호사 노무사들과 같이하여 거리 상담을 진행하였다.
매주 화요일 동명상가, 중앙역, 정왕역, 상록수역 순으로 저녁 6시부터 이와 같이 진행할 예정이다.
시흥안산지역일반노조
조합원이 있는 동영사업장에 한국노총의 가면을 쓴 유령노조가 확인되어 시흥 한국노총에 항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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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영화? 살 같은 영화!] 노동자다 아니다
김미례 / 2003 / 60분 / 다큐멘터리 2004년 스위스 프리보그 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부문 대상 수상
내용
일한 만큼의 임금을 받으며 사회보장제도의 보호 속에서 안정된 일자리에서 일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 노동자들의 바램이다.
법은 노동기본권으로 이들을 보호하고 있다. 즉 노동자는 자신들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단결해서 사용주에게 단체협약을 요구하며 단체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업주에게는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뭉치는 것이 달가운 일이 아닌 것이다.
산업화가 시작된 이래로 자본은 정권과 결탁해서 노동조합을 탄압해 왔지만,
노동자들은 투쟁력으로 자신들의 권리를 찾고 지켜왔다.
그러나 90년대 이후로 노동시장의 유연화 전략에 의해
다변화되고 있는 고용형태는 많은 비정규직과 특수고용노동자들을 양산해 내고 있다.
특수고용노동자는 사용주와 실제로 사용종속관계에 있지만
고용형태가 독립사업자로 되어 있으며,
이는 노동자에게는 당연한 권리인 '노동기본권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할 때 물리적인 방식으로 탄압을 하던 이전과는 달리,
이제는 고용형태에 의해 너희들은 노동자가 아니고 사장이라며 노동기본권 자체를 박탈해 버린 것이다.
이들 특수고용노동자들 중에서 회사에 정규직으로 고용되어 일해오다가
소사장제가 도입이 되면서 회사로부터 낡은 레미콘을 강제로 불하 받아 지입차주가 되어
노동기본권을 박탈당한 레미콘기사들이 있다.
이들은 고용형태가 지입차주인 개인사업자로 바뀌면서
불안정한 고용과 실질적으로 더 낮아진 임금으로 생활의 어려움에 처한다.
이들은 2000년 9월 노동조합을 만들었고 지난 해(2001년) 노동기본권 쟁취와 주휴무쟁취, 부당노동행위 사업자 처벌을 요구하며 총파업 투쟁을 힘있게 전개해 나간다.
그러나 사용자들은 레미콘 기사들이 노동자가 아니고 '사장'이기 때문에 노조를 인정할 수 없다며 단체교섭을 거부한다.
지노위에 중노위에 노동자라는 행정해석을 요구했지만 일관성 없는 판결이 내려지고,
12월 고등법원과 검찰에서는 애매모호하지만 노동자가 아니라는 판결문을 받게 된다.
9개월 동안의 힘든 과정 속에서 총파업의 대오를 풀고 현장에 복귀해서
또는 현장에 복귀하지 못해 거리에서 고등법원의 판결을 기다리던
레미콘기사들에게 확실한 패배감을 안겨준다.
그러나 레미콘 기사들은 노동조합의 역사를 보건데 언제 법이 정권이 노동자의 편을 들어 준적이 있었느냐며,
오로지 조직된 힘으로 투쟁력으로 이 난관을 돌파해나가겠다는 결의를 한다.
모두가 월드컵과 선거로 들뜬 2002년,
고등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힘든 파업투쟁의 경험으로 자신을 노동자로 자각을 한 남아 있는 조합원들과 집행부는 조직강화에 주력해 나간다.
이 다큐멘테리에서 건설운송노동조합을 실례로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자성 문제의 본질은 무엇이며,
갖은 탄압 속에서도 자신을 노동자로 인식해 나가면서
노동조합을 지켜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속에서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의 노동자의 투쟁과 삶이 무엇인지 답을 찾아 보고 싶다.
<자료출처 : "김미례" 감독 홈페이지 - http://mi-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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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세상] "쑈(show)하는 사람 "
학교를 같이 다니는 아주머니 한분이 계신다.
아주머니는 봄 소풍을 다녀오신 후, 단짝이 생기셨다.
학교 오실 때, 가실 때, 수업 받으실 때도 그 단짝과 늘 붙어 다니신다.
나의 자리는 제일 입구, 제일 앞, 제일 끝줄이었다(볼일이 급할 때, 요란스럽게 나가지 않기 위해서였다 *^^; ). 그런데 불편한 게 있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칠판에 필기를 하시고 필기하신 자리에서 한참 서 계시거나, 바로바로 지우시는 경우가 있어서 노트 필기하는 것을 종종 놓칠 때가 많았다. 그래서 그 아주머니 주변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아주머니와 나는 그렇게 살가운 사이는 아니지만...
종종 교실 책상 배치가 바뀔 때가 있다. 본 학교는 평소엔 두 줄로 책상 배치가 돼 있고, 시험이나 행사가 있을 땐 한 줄로 돼 있다.
사건이 발생했던 그 날도 시험이 있었던 날이라 책상이 한 줄로 되어 있었다. 나는 여느 때처럼 교실에 도착해 수업 준비를 하고 앉아 있었다. 그런데 내 앞에 의자가 비어 있었다. 그 아주머니는 여느 날처럼 오셔서 다른 아주머니들이랑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계셨다. 수업시간이 거의 다 되어 선생님이 막 들어오셨다.
그런데 아주머니가 갑자기 내 앞 비어있는 책상을 같이 다니시는 아주머니 책상 옆에 갖다 붙이시고는 나에게 미소를 지으시면서 말씀하셨다, 평소에 친하던 사이도 아니던 그 아주머니가.
“복자씨 잘 보이지?”
그리곤 돌아 앉으셨다.
순간 말문이 탁~! 막히는 것이 열이 확~! 받았다.
수업하려고 앉아 있는 나한테 뜬금없이 왜 잘 보이냐고 물어보지? 참네...
그 단짝 아주머니랑 같이 앉고 싶으면 그냥 책상만 옮겨 가면 될 것이지, 내가 먼저 책상을 치워 달라고 부탁을 한 것도 아니고, 안 보인다고 비켜달라고 그랬던 것도 아니고...!
책상을 안 치워도 잘 보이는데! 애꿎은 날 갖고 왜 그러시는지...?!
장애인으로 살다보면, 이 아주머니의 행동같이 ‘자기 좋으라고 하는 행동을 마치 남(장애인) 좋으라고 하는 행동처럼 포장’해서 하는 그런 경우를 종종 당한다.
내가 알기로는 나 말고 다른 장애인들도 이런 경우를 종종 당할 거라 생각한다!
장애인이 겪는 일들 중에 장애로 놀림 당하는 거 다음으로 제일 많이 겪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그때그때마다 왜 그러냐고 반박할 수도 없는 거고...
바보라서 몰라서 가만히 있는 게 아니고, 너무 겪다 보면 지쳐서 ‘그러려니’ 하는 것뿐이다...
장애인들을 갖고 좀 생색내지 말았으면 좋겠다.
*복자씨는 인권센터 회원입니다. 비장애인 중심의 세상에 장애인으로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매달 풀어놓기로 했답니다. 사진은 4월 20일에 있었던 장애인 차별 철폐 대회에 참여한 복자씨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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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살기 위하여]
" 늙은 노동자로 산다는 것"
인권센터 회원인 나는 46년 10월 4일 생으로 올해 60세이고, 비정규직으로 경비직을 하고 있다.
아내 이상미는 52년 생으로 원곡동 벽산아파트 상가 내에서 보쌈, 감자탕 등을 파는 식당 '먹개비' 주방장이다.
딸 은영이는 78년 생으로 그 식당 대표이고, 안산공대 조교(계약직) 3년이면 끝이라 그만 두고 엄마와 식당일을 하고 있다.
아들 찬기는 81년 생으로 붙박이장 설치하러 다니는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그리고 보니 우리 식구만 하더라도 비정규직 태반이다.
새벽 5시 40분 기상. 아침을 대충 먹고 화장실 가고 6시 25분까지는 버스를 타야 7시 전에 일터에 도착할 수 있다.
반월공단 미성 산업 주식회사, 전 직원이 16명밖에 안 되는 작은 회사다.
4월 20일 관리부장의 호출. "4월 30일 까지 재계약을 할지 말지를 결정하라"고 한다. "5월 말일까지 계약인데 너무 빠른 거 아니냐"고 했더니,
"(내가) 그만두면 사람을 구해야 한다"고 했다. 그때부터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비정규직의 서러움을 느낀 지 오래지만, 가슴이 탁 막혀왔다.
'저임금에 시달리면서 벌써 11개월이 흘렀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밤 11시가 넘어서 아내와 딸, 아들이 모였다.
장사가 안 되는 모양이다. 식구들의 얼굴빛이 별로다. 회사 이야기를 하였다. 재계약을 할거냐, 말거냐를 이야기를 했지만, 식구들은 이구동성으로
재계약을 하라고 성화다. 경비직 일자리도 구하기 힘들다고 하면서, B아파트 경비는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닌다면서 (그나마 나는 좋은 조건이니) 재계약을 강력히 요구한다.
"나의 생각은 다르다. 이 썩은 세상에 살면서 임금을 올려주지 않는 재계약이라면 나는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장사도 안 되는데 남편까지 속 썩인다고 처는 투덜댄다.
"아빠. 딴 데 가면 써줘? 직장 구하기기 쉬워?"하면서 딸까지 가세하며 나를 압박한다.
4월 24일 일요일이다.
11시 경에 식당에 나갔다. 아내는 "식당엔 왜 왔냐"면서 "회사 재계약하기 싫거든 직장 구하러 다니라"고 한다.
'일요일인데 어디에 가서 알아본단 말인가...!?' 속으로 중얼거리며 식당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가장이 식구들의 생계를 책임지지 못할 때 가장의 권위는 하나도 없다...
무작정 걷다보니 인권센터에 오게 됐다.
일요일인데 송대표가 나와 있다. 전후사정을 이야기 하였더니, 정 안 되면 공공근로라도 하라고 한다. '그래, 공공근로라도 하자. 공기 좋은 산속에서 일하는 것이
막힌 곳에서 장시간 근무하는 것보다 더 인간적인 생활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며 식당으로 갔다.
"알아봤어?" "응, 재계약 안 되면 공공근로 할꺼야. 휴일이라서 알아볼 수가 없더라구."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휴일 핑계를 대고 말았다. "공공근로하면 얼마 주는데?"
차라리 재계약 하라고 인상을 찌푸린다.
4월 30일. 관리부장이 호출했다. 오만원 올려 줄테니 재계약하잰다. "작년 매출의 반밖에 안 돼, 회사 사정이 너무 안 좋다"고 우는 소리를 하며 조른다.
임금을 올려준다니 다행이라 생각하며 "TV를 하나 놓자"고 했다. 관리부장은 쾌히 승낙하면서 "재계약됐다"고 한다. 가족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재계약을 외치던 가족들이 환히 웃는 것처럼 보였다. 껌값 올려준 관리부장의 기분이 제일 좋은 거 같다.
4월 30일자로 차장 한명이 그만 두었다. 며칠 지난 다음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리해고가 아닐까' 생각한다.
관리부장에게 물어보았다. "이 차장 왜 그만두었어요?"하니 관리부장이 자기도 언제 그만두게 될지 모른다고 했다.
'아... 정리해고 시켰구나...'
노동자를 마음대로 해고 시키는 이 사회.
비정규직 노동자가 800만이 넘는데 비정규직을 더 만들려는 정부와 자본가들.
이 세상은 살기가 너무 힘들다. 모든 걸 자기가 해결해야 한다.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것, 그것이 최고의 가치인데도 이 사회는 그것을 능력 있는 사람만 하라고 한다.
돈 없는 많은 사람들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해도 인간답게 사는 삶 근처에도 못가는 것은 왜일까?
왜 최저임금법은 있어도 수많은 경비들은 적용받지 못하고 있는가? 노동부는 왜 있는가?
FM라디오에서 고령화 사회에 대한 토론회를 하고 있다.
유식한 학자, 변호사 등이 나와서 어쩌구저쩌구 떠들어 대지만, 누구하나 노인 노동자에게 최저임금법을 적용받게 하자고 하는 주장하는 이는 없다. 공허한 말장난들만 하고 있다.
아파트 경비나 공장건물 경비들도 주로 24시간씩 교대 근무한다. 이들에게 최저임금을 월 백만원으로 인상하고 근로기준법을 적용하여 시간외 수당, 심야수당 등을 달아주면 고령화 사회를 능히 헤쳐 나갈 수 있다. 왜 이런 것에 대한 논의는 하지 않고 횡설수설하는지 모르겠다.
노사정이 단순경비직도 최저임금법을 적용한다고 합의했다. 합의하면 자본가들이 자동으로 해주는가? 요구와 투쟁 없이는 자본은 나몰라라 하고 있을게 뻔하다.
인권센터 회원여러분, 이제 늙은 노동자들을 위하여 회원들이 나서야 한다. 주로 파견직인 경비들의 임금실태와 근로시간 등을 조사하여 최저임금법에 맞게 임금이 지급되게 하자. 파견업체, 노동부 등에 항의하자.
이 땅에 산다는 것이 정말 힘들지만, 약자를 위하여 일하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것이랴. 늙은 노동자들의 인권이 젊은 노동자들의 미래의 인권임을 직시하자. 그 일을 하기 위해서라도 모두 건강하길 기원한다.
*이번 달은 평생을 노동자로 살았고 현재도 노동자로 살아가는 눈빛이 늘 살아있어 좋은 '민병우' 인권센터 고문님의 글을 함께 합니다. 사진은 7번째 이주문화제 때, 아주 즐거워 하는 모습~* 뒤에 있는 분은 박현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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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의 일기장] "인연"
맑은 밤 하늘엔 별들도 참 많다.
호젓한 산 속에 누워 한참을 밤하늘에 눈을 맡기다 보면, 별들이 쏟아지기도 하고, 내가 하늘로 올라 가는 듯한 환상에 빠져 들기도 한다.
너무 신기해서 길을 가다가도 일부러 드러눕는 버릇이 있었는데, 근래 들어서는 못해본 지 오래다.
현재 내가 있는 지리적 반경은 무한한 우주와 연계되어 있다.
밤 하늘의 쏟아지는 별들은 '나'란 존재를, 안산의 어느 지역에 혹은 아산의 어느 지역에만 한정하지 않는다.
자리에서 일어설 때엔 그런 자각을 하게 된다.
유한한 삶이 쏜살같이 흐르던 시기에 안산에서의 진보적 동지들과의 만남은 삶의 가치를 더 확장하게 한 소중한 만남이었다.
명동성당에서 함께 분노를 보았고, 총선에서는 서로의 뜻이 같음을 확인하였다.
비록 그 만남이 오랜 기간은 아니었지만, 충분한 기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살고자 하는 그 뜻이 어디선들 통하지 않겠는가, 하는 점에서 충분한 시간이다.
충남 아산에 이사를 온지도 1년이 넘어간다.
그 동안 건설현장에서 망치도 잡아보고, 골재판매도 해보다가, 지금은 택시를 운전한다.
이제 10여일이 되간다.그 동안에 또 이 지역의 당원들과 술도 마시고 인연을 만들고 있다.
어디에선들 함께 할 동지들이 있다는건 삶에 큰 힘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일상에서도 사람들은 갈라진다.
택시기사들은 비교적 장거리 손님을 만나면 대박이라 한다.
술 취한 손님이 요금을 내지 않으려고 천원짜리만 만지작거리며 황금 시간을 잡아먹고 있노라면 부아가 치민다.
손님을 태우고 신호 대기를 하며 메타기를 누르지 않으면 "왜? 메타기를 누르지 않느냐"며 "어서 누르라"하는 손님도 있다.
10여일 동안 택시 운전하면서 느낀것은 보통 넉넉한 형편에 있는 사람들이 작은 메너 만큼은 잘 지킨다는 것이다.
어렵고 힘들게 보이는 손님들은 "손님이 왕이다"를 은근히 강조하기도 하며 요금도 철저하지 못하다.
의도된 작은 메너에 충실하며 뒤로는 큰 도독질을 하는 부류들이 많다.
작은 매너조차도 부릴줄 모르지만 열심히 일하고도 가난한 부류들이 있다.
비록 어렵고 더딘 일이지만, 주어진 여건이 힘들고 삶이 피곤하여 껍데기조차 포장하지 못하는 이 시대의 가난한 다수들이,
귀여운 포장정도는 부릴 수 있는 그런 사회를 꿈꾸며, 또한 가난한 자들의 거칠음엔 그 배후를 먼저 보려는 노력이 필요함을 느끼며,
오늘도 택시기사는 손님을 맞으러 나아간다.
*이번 달엔 택시노동자로 일하시면서 민주노동당 당원으로 열심히 살고 계시는 '구본기 회원님'의 일기장을 함께 합니다. 사진은 지난 총선 때 민주노동당 후보 지지 선거 운동 중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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