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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Spain
(스)España. 공식 이름은 스페인 왕국(Kingdom of Spain/Reino de España).
유럽 남서쪽 끝에 있는 국가.
이베리아 반도의 약 85%를 차지하는 스페인은 서쪽으로 포르투갈과 접해 있고
남쪽으로는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북아프리카와 마주보고 있다.
한편 피레네 산맥과 안도라 공국이 프랑스와 국경을 이룬다.
영토는 본토와 지중해의 발레아레스 제도 및 대서양의 카나리아 제도로 구성되며,
스페인이 수세기 동안 주권을 행사해온 모로코 북부의 세우타 시와 멜리야 시 역시
모로코의 종주권 주장에도 불구하고 스페인령으로 간주된다.
스페인은 유럽에서 역사가 가장 긴 나라 가운데 하나이자 가장 강성했던 나라로,
16∼19세기에 걸쳐 대제국을 건설한 바 있다. 지정학적으로 아프리카와 유럽의 교차점이며,
지중해와 대서양을 잇는 관문으로서 유럽·아프리카·지중해·대서양의 문화 유산을 골고루 간직하고 있다.
그 때문인지 스페인의 문화는 서유럽의 여타 국가들과는 다른 독특한 색채를 띤다.
1978년에 제정된 헌법에 따라 입헌군주국이 되었으며, 경제적으로는 서방세계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회원국인 스페인은 미국과의 쌍무협정을 바탕으로 이 기구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밖에 국제연합(UN), 유럽 의회, 유럽 경제공동체(EEC) 등에 가입했다.
외교적·문화적·경제적 측면에서 남아메리카 국가들과의 교류가 활발하며
미주상호개발은행(IADB) 및 미주기구(OAS) 등 아메리카 대륙의 국제기구와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면적 505,990㎢, 인구 40,998,000(2002).
자연환경
- 지형 -
반도의 대부분은 평균고도가 800m인 메세타라는 고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 색인 : 메세타센트랄).
고원은 북부가 남부보다 약간 높은 가운데 칸타브리카 산맥, 이베리코 산맥, 모레나 산맥, 포르투갈 접경의 낮은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스페인은 지형적으로 중앙고원을 중심으로 5개 지역, 즉 북동부의 에브로 강 유역, 남부의 과달키비르 강 유역, 동부의 발렌시아 해안지역, 북동부 구석의 카탈루냐 산악지역, 피레네 산맥에서 서부 산지에 이르는 북부 지역 등으로 구분된다.
- 하계와 토양-
하계망은 크게 3개가 있다. 고원을 흐르다가 대서양으로 유입되는 두에루· 타호· 과디아나 강이 이루는 하계망이 그것인데,
이중 두에로 강은 고원 북부를, 나머지 2개 강은 고원 남부를 흐른다.
피레네 산맥과 이베리코 산맥의 물이 유입되는 반도 최대의 유량을 보유하는 에브로 강은 거의 직선으로 흐르다가 지중해로 들어간다.
모레나 산맥과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물이 모이는 과달키비르 강은 동쪽에서 남쪽으로 흐른다.
이 3대 하계망 외의 주요 강으로 남동부에서 흐르는 후카르 강과 세구라 강을 꼽을 수 있다.
주요 광물은 결정질 암석과 석회암이며, 북서부에 습윤한 산성 토양, 동부와 남부에 석회질 토양, 칸타브리카, 북부 이베리코,
카르베토베토니카, 모레나 산맥, 두에로 하곡 및 사라고사와 살라망카에 규산질 토양이 나타난다.
고원의 고지대 및 동부와 남부 지역에서는 침식작용에 의한 토양의 황폐화 현상이 특히 심하다.
자연침식 외에 벌목을 통한 침식도 무시 못해 1920년대 이래 정부에서는 침식을 막기 위한 정책을 펴고 있다.
- 기후 -
북위 27°(카나리아 제도)와 44°사이에 걸쳐 있는 스페인은 북반구 온대지역으로 일반적으로 서부 지중해성기후권에 속한다.
북대서양풍이 연중 계속 불어오며, 사하라로부터 불어오는 덥고 건조한 기류의 영향도 받는다.
피레네 산맥과 칸타브리카 산맥은 여름 동안 아열대기류의 북부 한계를 이루어 건조한 기후가 유지되게 하는 등
스페인 기후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 색인 : 레반테).
스페인은 기후에 따라 크게 3지역으로 구분된다.
해양성기후인 대서양과 지중해 연안지역의 평균기온은 겨울에 9℃, 여름에 18℃이며,
연평균강우량은 965㎜이다. 중앙 고원지역은 대륙성기후로 평균기온은 겨울에 4℃, 여름에 24℃이고, 연평균강우량은 380㎜ 이하이다.
마지막으로 2,750m 이상의 산악지대는 겨울에 0℃ 이하, 여름에 11℃ 이하의 평균기온과 1,150㎜ 이상의 연평균강우량을 보인다.
- 식생과 동물 -
북부지역은 습윤한 기후로 낙엽수림과 초원으로 덮여 있고, 북부 고원과 에브로 강 유역은 습도가 낮고 기온차가 심해
주로 곡물이 생산된다. 에브로 강 상류지역과 남부 고원, 안달루시아, 동부지역에서는 올리브와 포도가,
발렌시아와 무르시아의 관개지역에서는 오렌지를 비롯한 감귤류와 쌀이 재배된다.
남동부에서는 관개를 통한 화초, 철 이른 과일, 채소 등의 재배가 이루어진다.
북부와 중남부의 산악지역에서는 소가 사육된다.
고원지대에는 양이 가장 흔한 가축이며, 돼지는 서부와 북서부를 비롯한 스페인 전역에서 사육된다.
피레네 산맥과 북동부 산악지대에서 여전히 곰과 늑대가 발견되지만 대부분의 야생동물류는 거의 멸종되었으며,
스페인 야생염소, 사슴, 멧돼지 등도 보호구역에서나 볼 수 있다.
- 국민-
지정학적 위치상 수많은 민족이 이베리아 반도로 들어와 정착했다.
선사시대에는 켈트족 등 북부 아프리카와 서유럽 민족이 반도 북부에 정착했다.
지중해 연안에는 북부 아프리카인들이 거주했던 것으로 보이며, 고대 그리스인과 페니키아인들이 동부 및 남부 해안을,
그리고 카르타고인들이 남동부를 차지했다. 그후 로마인들이 처음으로 반도 전역을 정복했다.
로마의 몰락 이후 반달족과 서고트족 등 게르만계 민족이 이동해왔고,
711년 아랍인의 침입 이후 8세기에 걸쳐 아랍의 지배하에 놓였다 (→ 색인 : 이슬람교). 그러나 이후 유럽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스페인은 프랑스·이탈리아·포르투갈 등 인접 국가와 유사한 지중해 유럽 국가가 되었다.
거의 5세기에 걸친 통합과정을 거치면서 생활양식과 문화적인 전통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인종적·문화적으로 통합되어 집시를 제외하고 눈에 띄는 소수 민족은 없다.
그라나다·마드리드·바르셀로나·무르시아 등의 도시에서 비교적 큰 집시 공동체가 발견된다.
이외에 일부 극단적인 바스크 민족주의자가 있으나 지난 2세기에 걸쳐 여타 지역과 교류가 이루어져
인종적인 순수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따라서 현재 인종집단의 구별은 언어를 통해서만 확인된다.
- 언어 -
현대 스페인 표준어는 로망스어 계통인 카스티야어로 스페인 전역에서 사용된다.
그중 카스티야어를 가장 정확하게 구사한다고 정평이 난 지역은 바야돌리드 주와 부르고스 주를 비롯한 카스티야라비에하 지방이다.
남부 프랑스의 프로방스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카탈루냐어는 고도로 발달된 언어로서 시·소설·희곡 등 문학 분야에서 전통이 깊다.
이외에 갈리시아어는 13세기 카스티야의 알폰소 10세에 의해 왕실문학어로 채택되기도 했으나
쇠퇴하여 지금은 시골과 갈리시아의 어민들 사이에서만 쓰인다.
한편 바스크어는 카스티야어와 가장 뚜렷하게 구분되는 언어로 기원은 분명하지 않지만
로마시대 이전부터 사용되었고, 지금은 바스크 지방과 나바라 지방의 시골·어촌·소도시에서만 쓰인다.
- 종교 -
스페인 국민들이 가장 많이 믿는 종교는 로마 가톨릭교이다.
대다수의 스페인인들은 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결혼하며, 성당 묘지에 묻힌다.
그러나 산업화·도시화로 교회가 스페인인들의 일상생활에까지 미쳤던 막대한 영향력이 줄어드는 등,
스페인인들의 종교생활이 변해가고 있다. 소수 종교 가운데는 개신교가 가장 많은 신자를 확보하고 있다.
스페인 개신교 교파 중 전통적으로 우세했던 형제단교회와 복음주의침례교회는 수많은 신자를 확보하고 있으며, 그
밖에 여호와의 증인,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모르몬교 등이 20세기 중반에 급격히 교세를 확장했다.
- 인구-
출생률과 사망률
스페인의 출생률·사망률은 유럽의 평균치와 거의 일치하며, 대부분의 개발도상국보다 낮은 편이다.
전반적으로 출생률이 떨어지는 추세인데 20세기 중반 이후에 그러한 현상이 더욱 뚜렷해진다.
카나리아 제도, 안달루시아, 무르시아, 바스크 등지의 인구 자연증가율은 높은 편이며,
카스티야라누에바와 카스티야라비에하를 비롯한 고원지대의 출생률은 전국에서 가장 낮다.
인구이동
스페인 국민들의 전통적 이민 형태인 중남 아메리카로의 이민은 스페인 내란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없어졌다.
1950∼60년대에 수많은 사람들이 경제호황의 분위기를 타고 서유럽으로 진출했으나 그후 대부분 돌아왔다.
국내 인구이동은 스페인 내란 이후 두드러졌다.
공업화의 추세로 시골에서 도시로의 이주가 활발하여 1930년대 중반 이후 도시인구가 3배가량 증가했고,
그에 따라 중앙고원 등지의 소규모 촌락들의 인구는 현저히 감소했다.
인구분포
인구의 약 2/3는 해안지역에, 나머지 1/3은 전국토의 절반이 넘는 고원과 에브로 강 유역에 거주한다.
그중 내륙인구의 1/3은 마드리드에 집중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바스크·갈리시아·발렌시아·카탈루냐의 해안지역과 카나리아 제도 및 발레아레스 제도의 인구밀도는
서유럽과 비슷한 반면 고원의 북부, 나바라, 아라곤 등지는 매우 낮다.
1930년에는 인구의 1/4만이 도시에 거주했으나 지난 50여 년간 이촌향도의 인구이동이 급격히 진행되어
지금은 대부분의 국민이 인구 1만 명 이상의 도시에 거주한다.
넓은 국토와 출생률 감소로 인구폭발현상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마드리드·바르셀로나·빌바오 등의 산업지역에서는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른 인구과잉과 경제적 불평등을 겪고 있으며,
환경오염문제 역시 심각하다.
경제
1950년대 중반 이후 정치적·경제적 고립에서 벗어나면서 경제발전이 가속화되어
1960년대와 1970년대 초에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스페인은 공업국가로서 농림수산업에 종사하는 경제활동인구가 20%가 채 안 된다.
1958년에 국제통화기금(IMF), 1959년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963년에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1977년에 EEC 회원국이 되었다.
농업
스페인은 유럽 최대 농업국 가운데 하나이지만 국토의 대부분이 척박하여 농축산업에 항상 어려움을 겪어왔다.
특히 최근 제조업의 급격한 발전으로 농업이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감소하고 있다.
농업에 있어서 직면한 주요문제들은 주로 남부지역에 잔존하고 있는 부재지주 소유의 대토지 라티푼디아와
불규칙한 강우, 토양침식, 냉해 등이다.
한편 주기적인 한발로 인한 피해를 극복하기 위해 18세기에 대규모의 수로와 댐이 건설된 이래
20세기에는 방대한 규모의 관개계획이 수행되었다. 토지이용과 생산성 면에서 보리와 밀이 가장 중요한 곡물이다.
보리는 주로 남동부에서 재배되고 밀은 카스티야라누에바·카스티야라비에하·아라곤·에스트레마두라에서 경작된다.
까다로운 지중해성기후에 가장 잘 적응하는 감귤류는 주로 발렌시아와 카스테욘에서 생산되며,
라티푼디아의 주요작물인 올리브는 거의 대부분 기름으로 가공된다.
라만차와 라리오하 및 카탈루냐·발렌시아·말라가의 구릉지대 등지에서 경작되는 포도를 기반으로 스페인은
유럽의 3대 포도주 생산국으로 발돋음했으나,
품질이 낮은 포도주의 과잉생산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주요가축으로 소·양·염소가 사육된다.
공업
역사적인 유산과 전통주의가 스페인의 공업발전을 저해했으나,
1950년대 중반 이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공업화를 이루었다.
한편 전통적인 경공업지역들이 여전히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마니세스의 요업, 하티바의 제지, 세고비아·소리아·베하르·부르고스 등지의 모직산업,
바르셀로나 주변의 면직업 등이 그 예이다.
20세기말에 들어서는 첨단산업이 집중적으로 육성되고 있다. 중공업은 주로 북부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빌바오는 중세부터 철강업의 중심지였고 마드리드는 경공업과 더불어 기계공업과 금속업이 발달했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초까지 스페인에서 가장 성공적이면서 경쟁력을 지녔던 조선업은 1970년대 중반의 경기침체 이후
철강업 및 직물업과 더불어 산업재구조화의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금융
1922년 이후 정부가 참여하고 있는 에스파냐은행(Banco de España)이 스페인의 중앙은행이며,
그외 시중은행들은 정부의 규제 속에서 대부분의 업무를 수행한다.
기업들은 대부분 이들 은행이나 1941년에 설립된 국가 소유의 지주회사인 산업공사(Instituto Nacional de Industria/INI)에서
자금을 확보한다. 한편 많은 민간투자자금이 해외로부터 유입되고,
국민들은 주식 투자보다 저축을 선호하여 스페인 주식시장은 비교적 발달이 미약한 편이다.
주요투자국은 미국·독일·영국 등이다.
무역
원유수입 때문에 만성적인 무역적자를 겪고 있다.
주요 무역상대국은 EEC의 회원국들과 미국·일본 등이며, 멕시코 등 중앙·남 아메리카의 국가들과도 거래가 활발하다.
1996년 현재 운송장비 수출이 총수출량의 1/5을 차지하며, 농산물·기계 등도 주요 수출품목에 든다. 한편 수입부문에서는 기계·에너지 제품이 총수입량의 1/5 이상을 차지하며, 운송장비·농산물 등의 수입도 활발하다.
급격한 경제성장 과정에서 유발된 무역적자는 관광수입과 노동력 수출에 따른 이민 송금으로 메워지고 있다.
교통
이베리아 반도에 처음으로 교통로가 건설된 것은 로마 시대인데, 그 당시의 광범위한 도로망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근대적인 도로망은 18세기 부르봉 왕조 초기에 형성되었다.
부르봉 왕가는 수도를 반도 중앙에 위치한 마드리드로 정하고, 중앙에서 주변부로 뻗어 나가는 방사상 도로체계를 수립했다.
1967년에 세워진 레이더(아스팔트 도로망) 계획에 따라 기존에 사용빈도가 높았던 도로들을
아스팔트로 포장하고 최소한 2차선으로 넓혔다. 20세기말 이 계획의 대상은 모든 간선도로로 확대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의 교통은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혼잡하며, 특히 해안도로에서 극심한 체증을 겪고 있다.
스페인은 유럽에서 9번째로 철도를 건설한 나라이다.
바르셀로나-마타로 철도(1848)와 마드리드-아란후에스 철도(1851)를 시작으로 철도망의 건설은 19세기 중반에 점진적으로 확충되었다.
스페인은 국영의 원칙하에서 철도망을 건설했지만 민간기업이나 개인에게 철도 건설과 99년간 운영을 맡긴 적도 있었다.
그러나 스페인 내란으로 철도망이 심하게 파괴되자, 국영제만이 철도를 복원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스페인 국립철도망(Red Nacional de los Ferrocarriles Españoles/Renfe)이 설립되었으며,
1964년에는 장기철도현대화계획이 시작되었다. 마드리드·바르셀로나·세비야에는 대도시권 지하철망이 있다.
국제무역은 주로 해상을 통해 이루어진다.
주요해상로는 중남 아메리카와 미국으로의 항로이며, 주요항구는 빌바오·타라고나·바르셀로나·알헤시라스 등이다.
이중 계획과 재정을 제외하고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자치항구로는 바르셀로나·빌바오·우엘바·발렌시아가 있다.
스페인의 2대 국제항공사인 이베리아항공사와 아비아초항공사는 산업공사가 최대 주주인 주식회사이다.
마드리드 공항이 승객 수송에 있어서 1위이며, 팔마데마요르카 공항과 바르셀로나 공항이 각각 2, 3위를 차지한다.
경제제도와 정책
경제에 대한 정부 영향력이 매우 크다.
철도·전화·방송국 등을 관장하는 회사를 포함하여 다수의 기업이 국가 소유이며
산업공사를 통해 경제 전반이 통제된다.
조세를 통한 재정수입은 1960년대만 하더라도 스페인 경제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분야였다.
이 시기에 국민의 수입 수준은 급등했으나, 정부의 조세수입은 그에 비례하여 늘지 않았다.
이에 조세의 기반을 늘리고 효과적으로 징수하기 위한 법이 세워졌다.
1970년대말에는 정부가 복지사업에 관심을 두고 예산을 늘리기 시작했다.
노동조합은 1930∼40년대 파시스트 정권하에 조직된 신디케이트
시스템(고용자·노동자·국가의 이해관계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체계)이었다.
1971년 초 의회는 정부가 제안한 노동조합활동에 관련된 기본법을 통과시켜
경영자·기술자·노동자들이 독립적인 조직을 가질 수 있도록 보장했으나,
정부 감독하의 수직적이고 포괄적인 신디케이트 체계는 여전히 존속되었다.
그후 1977년 독립된 노동조합이 법으로 인정되었으며, 1980년에는 다양한 노동문제를 다룬 노동법이 제정되었다.
1950년대 말이래 기술관료라고 불리는 집단이 스페인 경제를 근대화·국제화하려고 노력했다.
그들의 기본 신념은 포괄적인 고속성장을 이루고 경쟁을 장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경제 개별부문에 미쳤던 영향은 실질적이라기보다 형식적이었으며,
정부보조금을 줄이거나 없애는 일에 실패하여 결과적으로 기업체들의 정책이 여전히 정부의 규제에 종속되었다.
그러나 그후 스페인은 정부의 개입을 줄여나가는 방향으로 경제정책을 세우는 데 점차 역점을 두어
공업계획통제완화, 가격통제완화, 금융체계자율화, 1978년 외국은행의 영업허가에 대한 입법, 1981년 이자율자율화 등의 정책이 실시되었다. 다른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스페인은 불경기·인플레이션·실업을 이겨내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펴오고 있다.
정치·사회
1938∼78년 스페인은 성문헌법 대신 일련의 기본법으로 통치되었다.
스페인은 1978년에 제정된 헌법에 민주주의·법치주의·중상주의 경제에 기반을 둔 입헌군주국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신헌법은 오랜 갈등의 원천인 중앙-지방 관계를 새로이 정립하여, 국가의 통일성을 유지하면서 지역자치권을 인정했다.
즉 지역자치가 가능하나 스페인 전체의 이해를 위반할 수 없고, 중앙정부가 자치권을 통제한다.
- 정치 -
정부
국왕은 국가의 수반으로서 모든 외교관계에 있어서 스페인을 대표한다.
또한 국내적으로는 새 법을 승인하거나 거부할 권리를 가지며, 의회를 소집하거나 해산시킬 수 있다.
그밖에 국민투표 요구권, 총리를 비롯한 각료들의 임명권·해임권, 총리직 후보자를 추천할 수 있는 권리 등을 가진다.
또한 군통수권자로서 전쟁을 선포하고 평화조약을 조인할 수 있다.
스페인의 의회(코루테스헤네랄레스)는 상원(카마라알타)과 하원(카마라바하)으로 이루어진 양원제로 스페인 국민을 대표하며
그들의 주권을 수호한다. 하원의원은 각 주에서 보통선거에 의해 4년마다 선출되며,
상원은 각 지방과 섬에서 4년마다 뽑히는 4명의 의원들로 구성되는데 하원이 상원보다 강력한 입법권을 갖고 있다 (→ 색인 : 코르테스).
행정조직은 총리, 부총리, 각부처 각료로 구성되어 있으며, 국제·국가 정책, 민간·군사 행정, 국가방위를 담당한다.
총리는 대개 다수당의 제의에 따라 국왕이 추천하는 후보를 의회표결을 거쳐 국왕이 임명하는 형식으로 선출된다.
총리 이하 각료들은 의회에 책임을 진다. 행정부는 의회의 신임투표를 요구할 수 있으며, 총리는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요구할 수 있다.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스페인은 지방정부의 새로운 위상을 모색했다. 1978년의 헌법 제8조에 따라 역사·경제·문화를 공유하는 주들로 자치지방을 설립하는 것이 보장되었다.
이렇게 설립된 지방들은 자치권을 갖게 되었지만, 스페인 전체의 이익을 해칠 수는 없다.
1984년에 이르러 자치법령에 의해 승인된 지방은 17개에 이르렀다.
1883년에 처음 도입된 주(州)는 1978년의 헌법에서 중앙정부의 정책 수행을 위해 일군의 시와 자치체들을 묶어 세운 행정구역이라고 규정되었다. 시(자치체)는 지방정부의 단위로 시의회가 그 행정을 담당한다.
시의회는 또한 시장을 선출한다.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와 같은 대도시들은 특별시의 지위를 갖는다.
군사
국방부하에 육·해·공군이 있으며, 국왕이 총사령관을 맡는다. 모든 성인 남성이 병역 의무를 갖는 징집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입대에서 제외되는 경우는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복무기간은 15∼18개월이다. 경찰은 군사조직에 속하지 않고 내무부가 관할한다.
한편 스페인의 가장 오래된 경찰조직인 민간경비대는 내무부의 관할이지만 군대의 한 단위를 이루기도 한다.
사회
스페인의 교육은 1970년에 제정된 교육기본법에 근거하고 있다.
교육단위는 취학 전 교육, 초등교육, 중등교육(바치예라토), 고등교육, 평생교육 등으로 나누어져 있다.
초등교육은 6∼13세, 중등교육은 14∼16세의 교육을 담당한다.
중등교육을 마치면 예비대학과정과 2차 전문학교를 이수할 자격을 얻으며,
그후 고등교육기관에 해당하는 대학과 전문기술교육기관에 입학할 수 있다.
사회보장제는 전문직, 상공업 노동자를 포괄하는 노동조합, 기타 농어업, 철도, 광산업 등과 같은 특수 부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며,
자영전문직은 제외된다.
- 문화-
문화환경
스페인이 로마화의 시기에 접한 고전문화는 스페인 문화 형성에 강력하고 중요한 영향을 끼쳐왔다.
이슬람교도 지배기와 레콩키스타기(재정복기)에 전파된 이슬람교-오리엔트 문화와 유대교 문화로 스페인 문화는 더 독특해졌다.
이슬람교-오리엔트 문화와 서유럽 문화의 교차점으로서 스페인은 문화전파의 교량 역할을 수행해왔다.
16∼17세기는 황금시대라 일컬어질 정도로 문화가 번성한 시기로 정치·문학·과학·철학 등의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남겼다.
그러나 18세기 이후 유럽 문화가 세속화되면서 종교(로마 가톨릭교)적인 성격이 강한 스페인 전통문화는 점점 유럽의 여타 문화로부터 멀어졌고, 19세기에는 스페인 사회의 국수주의 지향 부문과 유럽 지향 부문간의 갈등이 나타나기도 했다.
모든 시기에 걸쳐 나타났던 스페인 문화의 특성은 그리스도교의 영감, 개별성을 존중하는 인문주의 경향, 적당한 절충주의,
정신 세계의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한 분투 등이다. 현대의 스페인은 유럽의 지적 흐름에 개방되어 있으나,
독특한 사유 및 행동양식의 특성을 버리지 않는다.
건축
스페인 현대 건축의 중심지는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이다.
마드리드의 주요공공건물들은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사에스 데 오이사, 알레한드로 데 라 소타,
호세 안토니오 코랄레스, 로만 바케스 몰레순, 호세 라파엘 모네오 등이 설계한 것이다.
바르셀로나에는 19세기말부터 20세기초까지 카탈루냐인 안토니오 가우디가 건축한 호텔·아파트·교회 등이 있는데,
이들의 건축양식은 매우 독특하다.
미술
3명의 뛰어난 조각가 파블로 가르가요, 훌리오 곤살레스, 알베르토 산체스가 20세기 전반기의 스페인 조각계를 이끌었다.
이들은 전통적인 기법을 거부하고, 창의성을 마음껏 발휘한 공통점이 있었으나 스타일은 각각 매우 독특했다.
20세기 중반에는 호세 플라네스, 크리스티노 마요, 카를로스 페레이라,
호르헤 데 오테이사 등 전통적인 작가들과 실험정신이 강했던 앙헬 페란트 등이 활동했다.
에두아르도 치아다는 스페인 조각가 가운데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로서
금속·시멘트·목재·설화석고를 재료로 여러 유명한 작품을 창작했다.
20세기 전반기에 스페인 화단은 파블로 피카소, 후안 미로, 살바도르 달리 등 3명의 거장을 배출했으며,
마드리드파의 화가들과 다니엘 바스케스 디아스와 벤하민 팔렌시아 등도 창작활동이 활발했다.
음악
마누엘 데 파야, 호아킨 투리나, 오스카르 에스플라 등이 세계적인 음악가로서 한 세대를 풍미한 후
20세기초에 태어난 일군의 작곡가들이 스페인 음악계를 이끌어왔다.
연주자로는, 기타에 안드레스 세고비아, 나르시소 예페스, 레히노 사인스 데라 마사 등이, 바이올린에는 레온 아라,
빅토르 마르틴, 곤살로 코메야스 등이, 피아노에는 라파엘 오로스코, 에두아르도 델 푸에요 등이 큰 명성을 얻었다.
그밖에 뛰어난 지휘자와 가수들이 많으며, 주요관현악단으로는 스페인 국립관현악단, 스페인 방송관현악단 마드리드 카메라타 등이 있다.
문학
스페인 문학의 화려한 전통은 현대작가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
스페인의 근대소설은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 Don Quixote〉부터 시작된다.
스페인 내란은 정치뿐만 아니라 스페인 예술의 분수령을 이루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대표적인 문학 장르가 시에서 소설로 넘어간 점이다.
그러나 스페인 내란 이전에 시 운동을 벌였던 '1927년 세대'는 내란 이후의 시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는데,
알레한드로(1977, 노벨 문학상 수상)와 다마소 알론소가 그 대표적인 작가이다.
20세기의 스페인 시인 가운데 국외에서 가장 유명해진 작가는 서정시인 후안 라몬 히메네스(1956년 노벨 문학상 수상)이다.
20세기의 주요소설가로는 라몬 페레스 데 아얄라, 가브리엘 미로, 라몬 호세 센데르 등이 있으며,
그중 1940년대초 종전 후 세대의 작가로는 라파엘 산체스 페를로시오,
카르멘 마르틴 가이테, 헤수스 페르난데스 산토스 등을 꼽을 수 있다.
스페인 출신의 역대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로는 히메네스·알레한드로 외에도 극작가인 호세 에체가라이(1904 수상)와
하신토 베나벤테(1922 수상), 그리고 소설가인 카밀로 호세 셀라(1989 수상) 등이 있다(→ 스페인 문학).
연극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좋은 작품과 공연활동이 부족하여, 관객 유치가 어려웠으나
1978년 문화부에서 스페인 국립 드라마 센터를 설립하여 우수한 국내외 작품을 무대에 올림으로써 연극계의 활력을 되찾았다.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극장은 아마추어와 전문가들이 함께 소속된 테아트로 인데펜디엔테이다.
영화
영화는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분야이다.
특히 20세기말에는 이탈리아·멕시코·프랑스·독일·베네수엘라·아르헨티나 등과 합작하여 많은 작품을 만들었다.
전통문화
오늘날까지 가장 면면히 이어지는 전통문화는 대중축제이다.
종교적 의미를 지니는 이러한 축제들은 수세기 동안 대중적·자생적 형태를 유지해오다가
1960∼70년대에 전통가치의 위기와 함께 침체되었으나, 20세기말 다시 활성화되었다.
스페인의 또 다른 주요전통문화인 투우는 스포츠와 축제의 성격을 함께 지니고 있다.
투우의 전통은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지금과 같은 양식은 18세기에 갖추어졌다.
관련기관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학술기관은 1713년 펠리페 5세가 카스티야어의 순수성과 품위유지를 위해 설립한 왕립언어 아카데미이다.
이밖에 왕립역사 아카데미, 왕립 산페르난도 미술 아카데미, 왕립의학 아카데미 등이 있으며,
1938년에는 이 아카데미들을 총관장하는 스페인 학술원이 설립되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을 비롯해
마드리드·바르셀로나·세비야·빌바오 등지에 유명한 박물관과 미술관이 많이 있다.
역사적인 관점에서는 마드리드의 군사박물관과 바르셀로나의 해양박물관이 흥미를 끈다.
또한 19세기까지 다른 유럽 도서관의 모델이 된 엘에스코리알 도서관과
18세기에 설립된 왕립도서관(19세기에 마드리드 국립도서관이 됨)이 있다.
스페인의 유일한 오페라 극장인 바르셀로나 시의 리세움 극장에서는 매년 일정한 시기에 공연이 열리며,
마드리드에서는 매년 오페라 페스티벌이 개최된다.
그밖에 다양한 방법으로 문화발전에 기여하는 여러 재단들이 있다.
신문·방송
1970년대 말 프랑코 체제에서 민주사회로 전환하는 데에 언론기관들이 큰 역할을 했다.
1966년에 제정된 신문보도법 가운데 억압적인 요소들이 제거되었으며,
1978년 헌법에는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스페인의 언론분야는
경제적으로도 성공을 거두어 신문 발행부수가 계속 늘고 있으며, 새 신문과 정기간행물들이 창간되고 있다.
스페인의 유력 신문으로는 바르셀로나의 〈방과르디아 La Vanguardia〉와
마드리드의 〈파이스 El País〉, 〈아베세 A. B. C.〉 등이 있다 (→ 색인 : 방과르디아 에스파뇰라).
1923년 마드리드에서 첫 라디오 시험방송이 있었고, 이듬해에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에 2개의 상업 라디오 방송국이 세워졌다.
1937년 라디오나시오날에스파뇰라(국영 라디오 방송국)이 설립되었으며,
내전이 끝난 1939년에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라디오 방송망이 마련되었다.
1970년대말부터 1980년대초까지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의 구조개편이 있었다.
1975년 제네바 협정에 따라 1978년 새로운 라디오 주파수 배분을 위한 정부계획안이 통과되었다.
1983년까지 스페인 텔레비전 방송은 정부 소유의 2개 방송사가 도맡았으며 스페인어로만 제작·편성되었다.
텔레비전 방송은 라디오 방송과 함께 정부기구인 라디오텔레비시온에 스파뇰라(R. T. V. E.)의 통제를 받았다.
그러나 1983년 이후 카탈루냐와 바스크의 자치정부가 텔레비전 방송사를 설립하고 그 지역 언어로 방송을 시작하면서 1980년대 말에는
텔레비전 방송사의 수가 급격히 증가했다.
이에 사회당 정권은 민간 소유의 텔레비전 방송사 설립을 허용하는 법령을 1989년 도입했다.
역사
2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들이 이베리아 반도에 거주했으나 빙하기 마지막 시기에 사라졌다.
그후 1만 5,000년전 호모사피엔스들이 반도에 살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알타미라 동굴에 벽화를 남겼다.
엘 아르가르 농경문화가 시작된 BC 2000년경부터는 야금기술이 발달하여 청동·은·금 등을 제련했다.
이베리아 반도는 BC 1000년경 해상무역문화를 꽃피웠던 타르테소스족들과 교류를 가졌다. BC 9∼8세기에 피레네 산맥을 통해
이주해온 중앙 유럽의 켈트계 부족들이 원주민들과 혼혈족인 켈트이베리아족을 형성했다.
제2차 포에니 전쟁이 발발한 BC 218년 로마인들의 이베리아 반도에 대한 공략이 시작되어 그후 2세기에 걸쳐 진행되다가
결국 로마인들이 반도에 대한 주도권을 확보했다. 그후 AD 5세기에 게르만계 부족들이 침략해왔으며,
그중 서고트족이 가장 강한 세력으로 부상하여 반도 전역에 걸친 왕국을 세우고 7세기초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였다.
8세기초에는 이슬람교도들이 반도의 대부분을 점령했다.
그후 그리스도교 세력인 카스티야 왕국과 아라곤 왕국이 재정복을 시도해 13세기말에는 이슬람교도들이
통치했던 대부분의 지역을 탈환했다. 1479년 아라곤의 페르난도 3세와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가 결혼함으로써
두 왕국은 하나가 되었고 1492년 이슬람교도들의 마지막 보루였던 그라나다 왕국마저 함락시켰다.
14세기말 스페인은 아메리카 대륙에 식민지들을 거느린 강대국으로 부상했다.
1516년 네덜란드의 통치자였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카를로스 1세가 페르난도에 이어 왕위를 승계했다.
그후 카를로스 1세는 1519년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로 선출되어 카를 5세라고도 불렸다.
1555∼56년에 카를로스는 스페인과 네덜란드의 왕위를 자신의 아들 펠리페 2세에게 넘겨주었다.
합스부르크가 출신의 스페인 왕들 가운데 가장 스페인적이라는 평을 받은 펠리페 2세는 종교광으로
로마 가톨릭교를 수호하고 프로테스탄트를 말소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스페인은 희생이 큰 전쟁들을 치러야 했고 모험적인 군사행위에 휩쓸리게 되었으며 재정은 바닥이 났다.
펠리페 2세 이후 3명의 합스부르크가 왕들은 모두 성격이 유약하여 스페인이 급격히 쇠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1700년 카를 2세가 후손 없이 사망하고 부르봉 왕가의 앙주 공(公)이 스페인의 펠리페 5세로 등극함으로써 합스부르크 시대는 막을 내렸다.
펠리페의 등극으로 스페인 왕위계승전쟁(1701∼14)이 유발되었고 전쟁 결과
스페인은 벨기에·룩셈부르크·밀라노·사르데냐·나폴리를 잃었다. 1808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자신의 형인 조제프를 왕좌에 앉혔다. 그러나 영국과 스페인 군대가 나폴레옹의 군대를 물리쳐 1814년 부르봉 왕가는 복위되었다.
이 전쟁에서의 승리로 스페인은 아메리카 대륙 식민지들의 혁명을 크게 부채질했으며,
스페인은 1898년 미국과의 전쟁을 끝으로 해외식민지의 대부분을 잃었다.
1931년 공화제에 대한 압도적인 찬성으로 끝난 선거 결과에 승복하여 알폰세 8세가 퇴위한 후 스페인은 공화국이 되었다.
그후 1936년 공화파와 국가주의자(파시스트)들의 대립이 스페인 내란으로 확대되었다.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이끄는 국가주의자들은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로부터 군대를 지원받았으며,
공화파는 국내외의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 그리고 자유주의적 경향을 가진 사람들의 지원과 소련의 도움을 받았다.
내란은 결국 1939년 3월 마드리드를 장악한 국가주의자들의 승리로 끝났다.
프랑코 장군 정부의 초기 10년은 매우 참혹했다. 내전 결과 약 100만 명의 스페인인들이 죽거나 이민을 떠났으며,
스페인은 혹독한 정치탄압과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프랑코는 헌법을 대신해 일련의 기본법으로 40여 년간 스페인을 자의적으로 통치했으며,
국가원수·총리·군총사령관과 유일한 합법정당인 팔랑헤당의 당수직을 겸임함으로써 절대권력을 행사했다.
1945년 이후 서방 강대국들로부터 노골적으로 적대시당한 스페인은 UN에서 추방당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이에 프랑코는 교회와 결탁하고 UN으로부터의 추방을 민족단결이라는 미명하에 지지세력을 결집하는 계기로 이용했다.
그러나 냉전체제하에서 미국은 스페인에 대한 적대관계를 철회할 수밖에 없었으며,
1953년 스페인은 미국과 협정을 맺고 군사기지를 제공하는 대신 재정지원을 받았다.
이무렵 스페인은 비교적 안정된 상태를 누렸다.
1960년대에 시작된 경제기적은 1973년까지 계속되어 스페인은 전통적인 농업국가에서 신흥공업국으로 변모했다.
특히 기간산업·자동차산업·조선업·장비제조업 등의 분야에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고,
외국자본이 투자되어 급속한 성장을 이루었다.
새로운 경제 기적으로 스페인은 어느 정도 활력을 되찾았다.
그러나 만족감을 느끼는 중산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곤한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팔랑헤당 주도의 노동조합을 불신하기 시작한 노동자들은 기존의 체계와는 별도의 노동위원회를 자체적으로 설립해
법으로 금지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격렬한 파업투쟁을 벌였다.
한편 교회 내에서도 젊은 사제들을 중심으로 주교단의 친정권적인 성향을 비판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1975년은 스페인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한 해였다.
4월 바스크의 극단적인 조직들이 이끄는 테러 행위가 극에 달해 기푸스코아 주와 비스카야 주 등지는 비상국면을 맞이했다
(→ 색인 : 테러리즘).
이에 8월에 반테러리즘 법이 제정되었고, 9월 27일 세계적인 항의에도 불구하고 5명의 테러리스트의 사형이 집행되었다.
11월 20일 프랑코가 사망하고 이틀 후에 후안 카를로스가 왕위에 오르면서 군주제가 부활되었다.
카를로스는 스페인의 민주화에 크게 힘썼다. 1977년에 실시된 선거로 새로 구성된 의회는
정치·경제의 민주화에 착수하여 로마 가톨릭교의 공식적인 지위를 박탈했으며, 자유기업제도와 인권을 보장했다.
또한 여러지방에 제한적 자치권을 부여했다. 그러나 바스크분리주의집단(ETA)의 테러 할동은 계속되었다 (→ 색인 : 에테아).
1978년 입헌군주제를 표방한 헌법이 제정되었으며 1982년 선거에서 사회 노동당이 승리해
펠리페 곤살레스 마르케스를 총리로 한 사회주의 정권이 등장했다. 스페인은 한때 서유럽에서
상대적으로 이질적인 국가였지만 차츰 여타 유럽 국가들에 적절히 동화되었으며, 1986년에는 EEC의 일원이 되었다.
1989년 10월 사회노동당이 재집권에 성공했다. 1990년대 들어서도
중앙정부와 에우스카르디·카탈루냐 등 자치정부와의 사이에 긴장관계가 계속되었다.
ETA가 정치적 지원세력을 상실하긴 했지만 옛 소련 지역에서 급속도로 성장한 민족주의의 영향으로
스페인 국내의 분리주의 움직임이 촉발되었다.
스페인 정부는 주요 무역 파트너인 유럽공동체(EC)와의 보다 긴밀한 정치적 연대와 대외적인 국가신임도의 제고를 위해 힘을 쏟았다.
1992년 스페인은 세비야 국제박람회를 비롯해 바르셀로나 올림픽경기대회,
그리고 콜럼버스 신대륙발견 500주년 기념행사 등을 대대적으로 개최했다(→ 스페인사).
한국과의 관계
1950년 3월 한국과 국교를 수립한 이래 여러 국제기구와 회의에서 한국측의 입장을 지지해왔다.
1970년 4월 주스페인 한국대사관이, 1973년10월 주한국 스페인 대사관이 개설되었다.
양국간에 1972년 4월 사증면제협정, 1976년 3월 과학시술협력협정, 1977년 6월 문화협정, 1988년 11월 체육교류협정, 1989년 6월 항공협정, 1994년 1월 투자보장협정·이중과세방지협정·문화협력협정·범죄인인도협정·경제협력협정 등이 체결되었다.
통상관계는 1969년 이전까지만 해도 미미한 정도에 그쳤지만 1972년 마드리드에 대한 무역진흥공사(KOTRA) 무역관이 설치되고
1973년 순수민간협력기구인 한국-스페인 경제협력위원회가 발족되면서 교역랑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스페인은 1975년 프랑코 사후의 민주화 과정에서 실리 추구 및 개방외교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과도 비공식 교류를 허용하고 있으나 정식외교관계는 아직 수립하지 않고 있다.
오스트리아 등의 중재로 간접교역이 이루어지고 있다.
Macropaedia| 김용창(金容倉) 참조집필
참고문헌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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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grafía de España y Portugal : Manuel de Teran (ed.), 195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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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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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ia del arte en España : Valeriano Bozal, 1975
Manual de estructura social de España : Amando de Miguel, 1974
Informe sociolóico sobre la situación social de España : Fundacion Foessa, 1970
Spain Under Franco:The Economic 'Msiracle' 1959-67. 〈Spain〉 : George Hills, 1970
Las Obras Públicas : Ministry of Public Works, annual
정치·사회
스페인의 헌법재판소 - 그 제도와 기능 : 헌법위원회 편·발행, 1986
스페인 사회운동 연구 :, 노종호 편역, 종로서적, 1986
스페인의 봄 : 야야산진휘범, 박성득 역, 조선일보사 출판국, 1986
스페인 교육제도 : 강석영 편저, 명지출판사, 1984
Manual de derecho administrativo : Ramon Martin Mateo, 1980
Los partidos políticos en España : Raul Morodo, 1979
La constitución Española de 1978 : Oscar Alzaga, 1978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CD GX], 한국브리태니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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