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주명의 <제주도 수필>에서 인문학 수필을 배운다
양 경 직
석주명(石宙明:1908~1950) 박사는 나비 박사로 세계에서 유명한 분이지만, 다양한 수필 쓰기로도 정평이 나 있다. <병아리의 죽음>. <만년필과 피아노>, <울릉도 개구리>, <마라도 엘레지>, <생물학과 영한사전>, <한자 제한론>, <南나비 傳> 등 다양다미(多樣多味)한 맛깔스런 수필들이 많다.
제주도 민요 <오똘또기>를 채집하여 악보로 만든 분이기도 하다. 책에 오돌또기 악보와 채집 과정이 수필 형식으로 아주 잘 실려 있다.
나비박사 석주명이 제주도에 나비를 연구하러 내려갔다가 제주도에 매료되어, 제주도에 관한 것이라면 수필 형식으로 많이 기록하였다. 나비 채집과정 역시 일기나 수필 형식으로 재미나면서도 현장감 있게 기록하기도 했다.
<제주도 수필> 3. 인문편에 전설, 종족 , 역사. 방언, 외국인과의 관계, 민속, 지리, 촌락, 산악, 인구 등을 참으로 다양하게 실었다.
위의 목차를 잘 보기를 바란다. 3편 인문에 실린 글들은 인문학을 발굴하여 기록한 글들이라 얼핏 수필이 아니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엄연히 수필 이름을 걸고 쓴 글들이다.
제목만 보아서는 수필 느낌이 와닿지를 않을 것이지만, 수필의 영역은 서사 서정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기에 얼마든지 쓸 수가 있다는 말이다. 1편, 2편은 전형적인 인문학이지만 3편은 어디까지나 인문학 수필로 저술되어 있다.
“수필은 곧 역사다.” 하는 말이 있다. 참으로 옳은 말이다. 그런데 많은 수필에서 특히나 영어 이니셜로 K니 S니 해서 글들을 쓴다. 굳이 상대의 명예를 훼손한 것도 아닌데 본명을 쓰지 못하고 이니셜로 쓰는지 도대체가 이해가 안 된다.
1900년대 초에 소위 지식이란 사람들이 글에 이니셜을 쓰기 시작하면서 번진, 일종 영어 꽤나 알고 있다고 잘난 척 하느냐고 쓰기 시작된 것인데, 지금까지 아무런 의식없이 따라하고 있는 것이다. 훗날 문학평론가들이 문학사를 쓸 때 K나 S는 그저 K나 S일 뿐인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석주명의 인문학적 수필은 평가를 달리 할 수밖에 없다.
석주명이 쓴 <울릉도의 개구리>란 전형적인 인문학 수필을 보면 “수필은 곧 역사다.”란 중요성을 다시금 느낀다. 한 구절을 옮겨본다.
“그러나 여기서 중대한 사실을 기록해야만 하겠다. 위에 적은 것 중에서 개구리에 대해서만은, 10년 전에는 타당한 일이었겠지만 현재는 부당하게 된 데 대하여 설명하겠다. 현재 울릉도에서 근무하고 있는 산림주사(山林主事) 김용택(金龍澤) 씨가 1937년 6월 초순에 죽변(竹邊)으로부터 참개구리 약 20 마리를 한 마리에 1전(錢) 씩 주고 사서 도동(道洞) 근처의 못에 놓아 준 일이 있었다. 이것이 차차 만연하여 10 여 년 동안에 5백 미터 이상을 제외한 전도(全島)에 분포 되었다.”.......(중략)
내가 왜 이런 글을 쓰냐 하면 요즘 어느 수필 잡지이든 수필의 소재가 천편일률적이기 때문이다. 서사나 서정에만 지극하게 국한된 글들만 쓰고, 평론가들 또한 서사나 서정에만 평을 하기에 이런 병폐가 있다고 본다. 수필을 가르치는 현장의 수필 선생님들 또한 그렇다고 본다.
"수필은 무엇이든지 담을 수 있는 용기(容器)이다.” 라고 가르쳐 놓고는 정작은 서사나 서정에만 치우쳐 버리니 천편일률적인 글만 나올 수밖에.
이런 면에서 이번 계간《에세이문학》 (2009년 여름호 106호)에서는
김진악의 수필춘추,
오병훈의 북리뷰,
김홍근의 철학 아카데미,
최민자의 수필 읽기,
정경희의 문화초대석,
이영주의 뉴욕통신,
정끝별의 시 읽기,
황주리의 그림이 있는 에세이,
에세이광장(임만빈, 이종열, 김용옥)
양경직의 한자 에세이는 다양다미의 읽을거리였다.
그 사람이 아니면 쓸 수 없는 글, 그런 글이 인문학 수필이다. 인생에 정답이 없듯 문학은 더욱이나 정답이 없다.
살아오면서 전문적인, 아니 굳이 전문은 아니더라도 매니아로 공부하고 배운 것들을, 수필 그릇에 많이많이 담았으면 하는 마음을 전하면서 잠시 군소리 같은 글을 남겨 본다.
첫댓글 위에 열거한 열두 편의 작품은 수작임에 틀림없지요. 더구나 "수필은 무엇이든지 담을 수 있는 용기(容器)이다.”라고 피력하신 석선생님의 의견에도 이의가 없구요. 그런데 제 바람은 수필이 문학성을 띄었으면 좋겠다는 쪽으로 기울거든요. 어쩐다지요?ㅎ
"수필은 무엇이든지 담을 수 있는 용기(容器)이다.” 이 말은 석주명 선생이 한게 아니구요.....네, 문학성 있는 글은 당연히 중요하구요, 인문학 수필도 중요하다는 말을 하는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