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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 년경 아프리카 말리(Mali)의 밤바라(Bambara)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철로 된 조각들(Iron sculptures)에는 목 주름(neck frill)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세 뿔을 가진 동물이 새겨져 있었다. 다음의 그림에서 가운에 뿔은 앞쪽으로 향해 있고, 목 주름은 동물의 등쪽으로 반쯤 이어져 있는 것이 케라톱스 계열의 공룡(ceratopsian dinosaur)인 카스모사우르스(Chasmosaurus)를 매우 닮아 있었다. 긴 꼬리, 웅크리고 앉아 휘어진 몸체, 펴진 다리 또한 케라톱스 계열의 공룡의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었다.
1924년에 로마시대 형태의 납으로 된 사람이 만든 유물들이 아리조나주 툭손(Tucson) 근처에서 발굴되었다. 데이비드 해처(David Hatcher)의 책 ‘북아메리카와 중앙아메리카의 잃어버린 도시들(The Lost Cities of North & Central America, p.331)에 기록된 것처럼 이 유물들에는 독특한 조각들이 새겨져 있었는데, 특별히 한 자루의 칼에 분명한 공룡의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그 칼은 아리조나 역사학회에서 지금도 보관중이다.
단단한 판과 뿔을 가진 생물체가 카나다 온타리오주, 슈피리어호 주립공원의 미쉬페치우(Misshepezhieu) 지역 아가와 록(Agawa Rock)에서 크리 인디언(Cree Indian)의 그림이 발견되었다. 또한 오른쪽의 것은 나스카(Nasca) 문명의 것으로 보이는 한 개의 잉카유적지에 묻혀있던 돌(Inca Ceremonial Burial Stones)의 사진이다. 1571년에 스페인 정복자는 페루지역에서 이상한 동물이 그려져 있는 돌들의 발견에 관한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다. 오늘날 1100 개 이상의 이러한 돌들이 카브레라(Javier Cabrera) 박사에 의해서 발견되었다. 1930 년대 초, 그의 아버지는 이카(Ica)의 수많은 페루인들의 무덤에서 이러한 부장품 돌들을 발견하였다. 그는 이러한 몇몇의 돌들에 공룡과 같은 모습의 동물들이 그려져 있는 것에 주목하였다. 오른쪽 사진은 지질학자 돈 패턴(Don Patton)이 수집한 하나의 'therapod stone' 이다. 리마(Lima) 대학을 은퇴한 카브레라 박사는 이러한 발견들이 과학자 사회에서 가치있는 것으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신뢰성은 긴 목의 동물이 그려져 있는 도자기와 공룡처럼 보이는 동물이 반복적으로 수놓아져 있는 나스카 무덤(AD 700 년경)에서 나온 아름다운 벽걸이 융단(아래 왼쪽)이 리마 박물관에 전시되었을 때 강화되었다. 정말로, 이카의 돌들에 새겨져 있는 모습들은 고생물학자인 스티븐 체르카스(Stephen Czerkas)가 발견한 것과 유사하게 등에 주름을 가진 용각류(sauropod) 공룡을 나타내고 있었다.
“최근 발견된 용각류 디플로도쿠스(diplodocid)의 피부가 찍힌(인상) 화석은 알려진 공룡들과는 매우 다른 외관임을 밝혀냈다. 화석화된 피부는 척추의 가운데 줄(row)이 있었고.... 몇은 꽤 좁았고, 다른 것들은 넓었으며, 더 원추형이었다.” (Geology, 'New Look for Sauropod Dinosaurs,' December, 1992, p.1,068) (참조 : 페루 고대 무덤의 공룡 예술품들 http://www.creation.or.kr/library/itemview.asp?no=763)
1945년 고고학자인 줄스루드(Waldemar Julsrud)는 멕시코 아캄바로(Acambaro)의 변두리 지역인 엘토르 산(El Toro Mountain) 아래에 묻혀있는 점토로 된 작은 입상들을 발굴했다. 결국 33,000개 이상의 흙으로 구워진 조각상(ceramic figurines)들이 고대 츄피쿠아로(Chupicuaro) 문명(BC 800~AD 200)이 발달했던 지역에서 발굴되었다. 줄스루드 발견의 진위는 그 많은 토상들 중에 공룡의 모습이 있었기 때문에 도전을 받았다. 1954년 멕시코 정부는 조사를 위해서 한 팀의 고고학자들을 파견했다. 1955년에 UNH의 인류학 교수인 헵굿(Charles Hapgood)은 광범위한 방사성동위원소 연대측정과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실시된 열발광 실험을 포함한 종합적인 조사를 수행하였다. 1990년에 또 한번의 조사가 멕시코 정부와 함께 일을 하는 고고학자인 닐 스티디(Neal Steedy)에 의해서 수행되었다. 그래서 줄스루드의 발굴품들은 많은 조사들 속에서도 살아남았고, 멕시코 정부는 암시장에서 몰래 이 유물들을 거래한 두 사람을 감옥에 보내기까지 하였다. 더욱이 공룡은 매우 기민하고 활발한 자세로 형상화되었는데, 최근의 과학적인 증거들과도 잘 일치하였고, 이것을 만든 사람들이 이 생물을 실제로 관찰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카의 돌에서와 같이 일부 용각류들은 분명한 등 주름(spinal frill) 을 가지고 있었다. (참조 : 멕시코 아캄바로의 공룡 조각상 http://www.creation.or.kr/library/itemview.asp?no=462, 아캄바로의 점토상들에 대한 12명의 목격자들 http://www.creation.or.kr/library/itemview.asp?no=2049 )
1960 년에, 저명한 보석 디자이너인 임마누엘 스타웁(Emanuel Staub)은 펜실베이니아 대학으로부터 가나(Ghana)에서 얻어진 작은 일련의 금 조각들(gold weights)에 대한 복제품을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것들은 동물학자들이 즉각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동물들의 모습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 중 하나는 스타웁이 보았을 때까지 알려진 어떠한 동물과도 일치하지 않았다. (Shuker, Dr. Karl P.N., In Search of Prehistoric Survivors , 1995, p. 20). 그 동물의 뒷다리 부분(마치 두 발 동물과 같은)에 대한 독특한 사진으로, 이 수수께끼의 금 동물상(gold figurine)은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적당한 위치에서, 스타웁은 이 신비로운 동물 조각이 놀랄 만큼 공룡을 닮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마도 이 조각상은 오늘날까지 적도지역의 원시 늪지대에 살고 있다고 말해지는 용각류인 모켈레 므벰베(Mokele-mbembe)를 모델로 한 것으로 보여진다.
다음 그림은 나머(Nar-mer) 왕의 승리를 보여주고 있는 히에라콘폴리스(Hierakonpolis)로부터 나온 긴 목을 가진 용(dragon)을 그린 석판(slate)으로 된 파레트(palette, 갑옷의 겨드랑이 받이)와 살아있는 모습으로 여러 곳에서 표현된 한 쌍의 공룡처럼 생긴 동물을 묘사하고 있는 고대 파레트이다. (taken from p. 93 of Pritchard's book The Ancient Near East in Pictures ).
콜로라도 마니토 스프링(Manitou Springs)에 있는 한 박물관에는 이상하게 생긴 조각되어진 공예품이 있다. 그것은 볏을 가진 머리, 양쪽에 눈, 그리고 부리 모양의 입을 가진 대략 30cm 정도 되는 인디언의 주술 막대기(Indian prayer stick)이다. 이 아름다운 예술 작품은 놀라우리만치 익수룡(pterodactyl)을 닮았다.
색슨족 방패(Saxon shield)에 그려져 있는 이 그림은 익룡(pterosaur)과 같은 생물체가 쉬고 있는 것을 나타낸다. 날개는 비늘같은 측면을 따라 뒤로 접혀져 있다. 이빨들로 가득한 긴 부리, 볏(crest), 명백한 꼬리 날개(tail vane) 등 모든 것은 너무도 분명히 나타나 있다. 날아다니는 파충류 widfloga(멀리 나는 생물)는 색슨족에게 잘 알려져 있었고, 이 방패는 써튼 후(Sutton Hoo) 매장지로부터 출토되었다. 그것은 대영박물관(the British Museum)에 전시되어져 있다.
중세에 익룡처럼 생긴 동물을 묘사한 또 하나의 그림은 아타나시우스 키르허(Athanasius Kircher)의 1678년 책 ‘지구 아래의 세계(Mundus Subterraneus)‘에 나타나 있다. 이 그림은 너무도 상세해서 피터 웰른호퍼(Peter Wellnhofer, The Illustrated Encyclopedia of Pterosaurs, 1991, p. 20.)는 아마도 그 그림은 발견된 화석에 기초하여 그렸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그것이 더 고대의 보고에 기초한 것처럼 보인다. 키르허의 책에 등장하는 빙켈리트(Winkelried)는 스위스에서 그의 정착 시절 초기에 용(dragon)을 죽였던 것으로 추정되어진다. 익룡과의 가장 명백한 해부학적 불일치(앞 다리)는 용을 묘사하기 위해서 최근의 추가되어진 것이었다. 1919년 스미스(G. E. Smith)가 쓴 책, ’용들의 진화(The Evolution of the Dragon)‘에 의하면, 고대 사람들의 견해는 뱀과 같은 몸체, 박쥐와 같은 가죽 날개, 그리고 두 다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설명되어지고 있다. 앞 다리들은 16세기 까지 추가되어지지 않았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아이손(Aeson)의 아들인 야손(Jason)이라고 불렸던 영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쉿쉿 소리를 내는 용(hissing dragon)에 의해서 지켜지던 황금털의 숫양을 사로잡는다. 용과 싸우는 야손의 이 전설은 많은 재능을 가졌던 유럽의 미술가 살바토르 로자(Salvator Rosa, 1615-1673))에 의해서 아름다운 그림으로 기념되어졌다. 그것은 놀라우리만치 익룡과 유사하다. 로자는 어디에서 이러한 영감을 얻게 되었을까?
1496년에 영국 칼리슬의 주교(Bishop)였던 리차드 벨(Richard Bell)은 칼리슬 성당(Carlisle Cathedral)에 묻혔다. 그 무덤은 여러 동물들이 아로 새겨진 놋쇠(brass) 띠로 둘러져 있었다. 비록 중세 이후 그 위를 걸어 다녔던 무수한 발자국에 의해서 닳아져 있었지만, 공룡과 유사한 특별한 동물의 그림을 분명히 볼 수 있었다. 새들, 개, 뱀장어 등의 사이에서 분명히 새겨져 있는 목이 긴 이들 두 생물체는 사람과 공룡이 함께 살았었다는 증거로서 간주되어야만 한다. (참조 : 벨 주교 무덤의 놋쇠 띠에 새겨져 있는 베헤모쓰! http://www.creation.or.kr/library/itemview.asp?no=2529)
사람들은 이러한 강력한 증거들로 인해 진화론이 매우 의심스러운 이론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정말로 필립 키쳐(Philip Kitcher) 박사는 반창조론적 책자인 ‘남용되는 과학(Abusing Science)’에서 공룡과 사람이 함께 살았다는 이러한 확실한 증거들은 진화론의 기반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1998, p.121). 또한 스트랄러(Strahler)는 앞으로 언젠가는 사람과 공룡이 동시대를 살았음을 확실히 판정 내릴 수 있도록, 공룡의 뼈 사이에 사람의 뼈가 같이 발견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한 발견은 과학적 사실로 널리 알려져 있는 진화의 순서들에 대한 가설을 한 번에 무너뜨릴 것이다. 펑 소리와 함께 진화론은 거짓말이 되어버릴 것이다. (Strahler, Arthur N., Science and Earth History: The Evolution /Creation Controversy , 1999, p. 17.)
불행하게도 다윈 이론의 역사는 이러한 모든 증거들이 진화론 안으로 빠르게 동화(흡수)되어 버린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더 많은 증거들이 빛처럼 드러나, 진화론자들의 근거가 완전히 사라져 버리기를 희망하여 본다.
DRAGONS IN HISTORY
http://www.genesispark.com/genpark/history/history.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