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라오스
라오스 국가의 배경과 구성민족, 최근의 정치사회 사정, 한국과의 관계를 나름대로 정리했으니 이제 신비의 나라 라오스에 여행을 생각하는 분들을 위하여 여행 안내자의 입장에서 아름다운 라오스 산하와 풍광, 마을마다 하나씩 있는 불교사원과 이 가운데 살고 있는 순박한 라오스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할까 한다. 인근 타이란드가 관광 케치프레이즈로 놀라운 타이란드(Amazing Thailand)라는 말을 쓰는데 내가 라오스 관광청장이라면 나는 미소의 나라 라오스로 오세요(Welcome to Laos, Land of Smiles)라고 하겠다.
영어 단어중 가장 긴 단어가 무언가라는 퀴즈의 정답은 웃음(smiles)이라는 단어라는데 S와 S사이가 일마일이 되기 때문이란다. 웃음에도 여러 가지 웃음이 있지만 라오스 사람들의 웃음은 그의 종족귀속 여부와 아무관계 없이 너무나 순수한 마음이 얼굴 피부 밖으로 베어 나오는 율동과 숨결 그 자체이다. 순결무구라던가 천진난만이라는 단어는 라오스인의 웃음을 묘사하기 위해 예비해둔 말이리라. 이러한 웃음은 어디로부터 오며 어떻게 이런 웃음을 웃을수가 있을까? 만약 쉰 세대의 필자를 라오스에 보낸 신의 예정이 있다면 라오스의 웃음을 보고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 보라는 뜻이 있었을 것이라 믿는다. 아마 백제 관음이나 반가사유상이 띄우고 있는 미소가 라오스의 미소에 가장 가까우리라. 거기에 부끄럼 타는 새색시의 웃음도 보이고 인생을 달관한 고승의 웃음도 보이며 인생만사 다 겪은 사람이 생을 관조하는 듯한 웃음도 보이며 해탈과 열반을 눈 앞에 둔 석가의 웃음도 보인다.
무엇보다 라오스 사람의 웃음은 저 앙코르 왓 석조건물에 아로새겨진 무희(舞姬) 압사라의 매력적인 미소에 방불(彷佛)하다. 웃음을 모르고 각박한 삶에 찡그리고 있는 한국인이여 라오스의 웃음을 배우러 오라. 이 천진난만하고 순결무구한 웃음은 우리가 가난이라는 이름으로 멀리하고 꺼리는 소박한 생활(simple life)에서 가능한 것으로 안다.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들, 뭐하나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 자연과 더 불어 살며 해뜨면 일어나고 해지면 잠자리에 들며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일가가 힘을 합쳐 도와주고 기쁜 일이 있으면 모여 춤추고 노래하는 가운데 이런 신비로운 미소를 지을 수 있으리라.
라오스는 아직도 산업사회가 아니고 산악지대는 화전 농법에 의존하기 때문에 주기적 이주가 불가피하며 이로 인해 채취경제와 수렵경제가 병존하고 있다. 평야 지대라 해도 화폐는 건축자재와 약품 등 필수품과 담배와 음료수 등 약간의 기호품을 사는데 필요한 뿐 쌀과, 채소, 물고기는 자급자족하는 수준이니 사람들이 소위 돈독이 올라 있지 않다. 돈은 부처님께 시주할 때나 정령에 대해 존경을 표시하는 하나의 정표요 기호일 뿐 투기의 대상이 아닐뿐 아니라 꼭 가져야만 되는 필수품도 아니다. 소유(to have)를 떠나 존재(to be)로 만족할 때 이 한 몸 사는데, 내 가족 부양하는데 필요한 노동이 있으면 그뿐일 것이다.
가난하기 때문에 풍요한 것이 라오스 사람들이다. 예수가 말씀하셨다 던가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 이 있나니 천국이 그대 것이오" 라고. 나는 이 번역이 잘못되었다고 본다. 마음이 가난한자가 아니고 마음이 풍요한자라야 맞다. 영어에 혹시 "가난"이라고 되어 있더라도 히브리어에서 번역이 잘못되었을 것이다. 히브리어도 "가난"으로 되어 있다면 예수 말씀을 잘못 적었을 것이다. 돈이나 지위나 가진 것은 없어도 마음이 풍부하면 자족하는 사람이니 복 있는 사람이요. 복 있는 사람은 지옥이 따로 없으니 지상이 곧 천국이다. 이들은 천국에 사는 천사의 웃음을 띄고 있다. 한국인의 탈무드라고 생각되는 명심보감(銘心寶鑑) 성심(誠心)편인가에 족함을 알면 즐거움이 거기 있고 탐심을 부리면 근심이 거기있다(知足可樂 務貪卽憂)고 했는데 지극지당한 말이다. 작년에 이곳 근무를 끝으로 정년 퇴임한 일본의 사카이(堺) 대사가 생각난다. 그는 이곳에서 4년을 근무했는데 그는 그가 근무한 어느곳(제네바, 베이루트, 방콕, 카라치 등이다) 보다도 라오스가 좋단다. 메콩강의 물고기로 여러 가지의 요리를 직접 만드는 것과 라오스 여인의 웃음을 사진에 담는 것을 무상의 취미로 삼는 사람이다.
그가 하는 업무는 막대한 무상원조(년간 7-8천만불에서 1억불 정도이며 우리의 대개도국 무상원조 총액 5천만불과 대비해 보라)를 나눠주느라 이곳 저곳 여행하는 것이 주임무다. 그는 언제부터 얻은 병인지 모르나 위암을 수술한지 얼마 안되었다 하는데 그 얼굴 어디 한점 근심이나 짜증이나 못마땅한 표정을 찾을 수 없다. 늘 싱글벙글 웃는 얼굴이 기본형인데 아마 천성적으로 타고난 낙천적인 성품에 라오스로부터 배운 미소의 덕이리라. 나도 그런 웃음만 배울 수 있다면 이곳 근무 연장을 자청해서라도 배워가고 싶다. 열살이 될 때까지 전남의 화순에 살았다는 사카이 대사는 지금도 고향 구마모토의 옛친구들과 라오스-구마모토 친선협회를 조직하여 이들을 모시고 라오스에 봉사활동을 위해 가끔 온다.
나는 아직까지 친구가 다녀간 적이 없다. "라오스? 타이란드라면 몰라도 거기 라오스는 아무것도 없잖아! 뭐 살 것도 팔아 볼 수 있는 것도 없고" 그런데 나는 "이 사람아 내가 있잖은가? 나보러 오기가 그렇게 어려운가?" 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없다. 근 30년을 혼자만 바쁜 척, 세상 근심과 나라 걱정도 저 혼자 다 맡은 듯, 때로는 대단한 출세를 준비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으니 나에게 훗훗한 미소와 인정과 고향과 옛 정을 느낄 수 없었으리라. 그렇다! 이제부터 라오스인의 웃음을 배우러 오라고 해야겠다.
라오스 여행을 안내하겠다면서 라오스인의 웃음만 장황하게 설명해 독자의 실망이 클 줄 안다. 역시 보여줄 것이 아무것도 없구나 라고 결론 내리지 말고 좀더 당신 의 삶의 질이 라오스인 보다 더 나은지 곰곰이 생각해 보기 바란다. 우리는 개발의 세대를 거쳐옴으로서 너무나 물질과 개발자체의 환상에 젖어 삶의 진수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비근한 예를 들어 우리 개인당 국민소득(PCI)이 작년 8천불을 넘었는데 라오스인의 그것은 아시아 위크 잡지에 표시된 대로라면 268불이고 화폐로 물건을 바꿀 수 있는 수치(PPP)로 쳐도 1,300불에 불과하니 아무리 후하게 잡아도 우리의 6분의 1이다. 여기에 화폐경제, 물질만능의 소위 문명인들이 빠지기 쉬운 돈이나 물질이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함정이 있다.
우리가 계상하는 소득에는 교통사고로 인한 제비용(견인차가 버는 돈, 보험 회사가 버는 돈, 자동차 수리업이 버는 돈)이 포함되 있다. 교통사고라는 "불행"은 감추어지고 이 "불행"이 국민소득이라는 부의 증가로 계상되는 것을 이론으로는 알아도 그 의미를 생각해 보지 않고 있다. 라오스 국민의 행복은 물질과 정치제도에서 구하기 보다 자연에 순응하는 지혜와 자연과 함께 사는 공생의 원리와 가족과 부처님의 자비가 베푸는 사회보장에 있다. 사시사철의 여름 기후는 그 자체가 무상의 국민소득이다. 우리가 겨울에 지출하는 난방을 위한 연료비가 필요 없고 여름에 전력난을 토로할 정도로 에어콘을 틀지 않고도 서늘한 그늘이 있다. 몬순의 바람이 비를 몰아주고 강물이 불으면 물고기가 절로 자란다. 근처 산하에는 야채에 대용할 수 있는 산나물이 있고 심고 가꾸지 않아도 먹을 수 있는 풀이 항상 거기에 있다. 논에는 벼만 심어 놓으면 우리같이 제초제를 쓰지 않아도 김매기를 해주지 않아도 잡풀이 거의 없다. 이는 친수성(親水性) 잡풀이 논이 아니라도 충분히 생존할 공간이 있기 때문에 한국의 논같이 잡풀이 극성스럽지 않아서 일 것으로 생각된다.
비료를 뿌리지 않아도 소출은 조금 떨어지나 100% 무공해의 맛 좋은 쌀이 생산된다. 또 혹시 흉년이 들거나 월급만으로 살기가 곤란해지면 집안의 형제나 처갓집에서, 삼촌집에서 무상으로 쌀과 채소를 나누어 준다. 이도 저도 없는 고아나 의지 없는 노인은 마을의 절로 가면 먹고 잘 곳은 걱정하지 않고 얼마든지 지낼 수 있다.
따라서 절에는 늘 먹을 것이 있으며 누런 천 한 장만 걸치면 의복은 족하므로 더 바랄 것이 없다. 가난하고 불쌍해 보이는 것은 우리들이 문명에 도취된 속된 눈(俗眼)으로 보았을 때 그렇다는 것이지 바람따라 물따라 사는 이들에게는 잔잔한 삶의 리듬일 뿐이다. 불교절기 마다 축제가 있고 우기가 걷히고 청명한 계절이 오면 선남선녀는 자연스럽게 짝을 찾아 인연을 맺으며 결혼식에는 친척이 모여 축복하고 노래 부르며 춤춘다.
건기가 끝나는 4월 중순은 이들의 전통 설날로 아는 사람이나 낯선 사람이나 차별없이 쌀가루를 발라주고 물을 뿌려주며 한해의 복을 빌어준다. 곧이어 5월에는 폭죽을 쏴올리고 처녀 총각이 만나 사랑을 속삭인다. 모내기가 끝나고 메콩의 물이 불은 9-10월에는 동네별로 편을 갈라 노젓기 경주를 하고 이긴 쪽이 음식을 내어 대접하며 함께 마시고 노래하고 춤춘다. 11월은 국가적 차원에서 탈루앙이라는 축제가 일주일간 계속되는데 일년간 생산한 물건들을 전시하고 감상하며 또 한차례 노래하고 춤춘다.
이로서 여러분이 라오스에 와 보실 시기를 대강 말씀드렸다. 물론 도로가 포장 안된 불편함이 있고 지방 여행시는 잠자리가 푹신하지 않은 스파르타식이랄까 군대 막사와 같은 여관에 머물러야 하고 말라리아에 걸릴 위험도 있다. 이러한 불편함을 감수하고 인간의 원초적인 아름다움을 볼 눈이 있는 사람만 라오스를 찾아오기 바란다.
필자의 개인적인 감상을 말하면 실로 40년만에 닭우는 소리를 들으며 새벽을 맞이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아홉 살 때 산촌 고향을 떠난 후 닭우는 소리듣기가 어려웠고 병아리의 아장아장한 생명력을 감상할 기회가 없었는데 이곳은 어디를 가나 닭우는 소리,개짖는 소리는 공으로 들을 수 있다. 사시사철 병아리를 까기 때문에 그 몽글몽글한 생명력을 사시사철 감상할 수 있어서 살아있다는 사실만에도 감사한 마음이 생긴다.
해외근무중 닭 울음으로 새날을 맞이하는 곳은 여기 비엔티얀이 처음이고 轨일 것 같다. 하기는 93년 여름 모스크바에서 키르기즈스탄의 수도 비쉬켁에 출장 갔을 때 호텔에서도 새벽닭 우는 소리를 들은 적은 있다. 그때는 쏘련방 붕괴 직후의 스산함 때문이었는지 중앙아시아 장닭의 목청이 덜 트여서였는지 별 감동이 없었는데 라오스에서 듣는 백단향림의 계명성(鷄鳴聲)은 각별한 흥취가 있다.
여러분 중에 필자처럼 닭울음과 병아리몸짓이 그리운 사람,가난의 풍요로움을 아는사람은 꼭 라오스를 방문하시기 바란다. "차탈리 부인의 사랑"에 나오는 여주인공 같이 사랑에 목마른 여성도 라오스에 한번 오시는게 좋겠다. 사철 병아리의 생명력을 볼 수 있으니까. 그러나 목을 축여줄 "산지기"를 만나는 것은 팔자소관으로 돌릴 수 밖에 없다. 술마심의 진수와 화조월석(花朝月夕)의 흥취를 아는 풍류남아도 한번쯤 오시기 바란다.
곳곳에 씨암탉과 벌레쪼아 먹고 큰 진짜 토종 촌닭이 널려 있으니 향기로운 라오소주(라오카오라 하는데 꼭 문배주 맛이다)와 가지꺽어 산(算)놓을 벗만 있으면 취해본들 어떠리오. 행여 라오스 여인이 아름답다느니 또 그 중에는 피부가 우리보다도 더 흰 사람이 많다느니 하는 소문을 듣고 혹시나 하는 음흉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오시지 않는 것이 좋다. 라오스는 도둑도 없지만 몸을 파는 여성도 없다. 최근은 개방정책과 인근 타이란드의 영향으로 소박하지만 약초를 쓰는 스팀사우나와 사원에서 유래했다는 전통적인 맛사지 만은 받을 수 있다.
<출처:모름 요구시 삭제> |
출처: 라오스 원문보기 글쓴이: 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