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4대왕 광종(光宗, 949~975)의 개혁
1. 왕권과 호족 세력의 대립 : 혜종 때 왕규의 난.
2. 전제 왕권 강화
가. 주현공부법(州縣貢賦法, 광종 원년 949년) : 광종 원년에 왕권 강화 정책의 일환으로 원보, 식회, 원윤, 산강 등에 명하여 실시된 것으로 국가 수입 증대를 위해 지방의 주현 단위로 해마다 바치는 공물과 부역의 액수를 정하였다.
나. 칭제건원(稱帝建元, 광종 1년 950년) : 스스로 칭제(稱帝)하고 개경(開京)을 황도(皇都), 서경(西京)을 서도(西都)라 칭하고 광덕(光德)・준풍(峻豐)이란 독자적 연호를 사용하였다
다. 노비안검법(奴婢按檢法, 광종 7년 956년) : 노비 실태를 조사하여 억울하게 노비생활을 하고 있는 양인(良人)을 조사하여 방량(放良)케 하였다.
라. 과거제도(科擧制度, 광종 9년) : 중국 후주(後周)의 전리대리평사(典理大理評事) 쌍기(雙冀)의 건의를 받아들여 과거제도를 실시하였다.
마. 백관의 공복제정(광종 11년 960년) : 관료제도의 안정을 위해 자(紫)・단(丹)・비(緋)・록(綠)의 공복을 제정하였다.
쌍기(雙冀)
후주의 등주(登州)에 있는 무승군(武勝軍)의 절도순관(節度巡官)·장사랑(將仕郞)·대리평사(大理評事)를 지낸 쌍철(雙哲)의 아들로서 광종 7년 956년 후주의 전리대리평사(典理大理評事)로서 봉책사(封冊使)로서 장작감(將作監) 설문우(薛文遇)를 따라 고려에 왔다가 병이 나 고려에 머물게 되었는데 병이 낫자 그를 만나본 광종이 후주의 허락을 받고 원보한림학사(元甫翰林學士)에 임명했다. 광종 9년 958년 과거제도 설치를 건의했고 이해 5월 처음 실시된 과거에서 지공거(知貢擧)를 맡았다. 이때 시(詩)·부(賦)·송(頌)·책(策) 등으로 시험을 실시하여 진사(進士) 갑과(甲科)에 최섬(崔暹)·진긍(晉兢) 등 2명, 명경과(明經科)에 3명, 복업과(卜業科)에 2명을 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