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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청회색의 엘이디 랜턴 불빛에 등산로의 바윗덩이들이 창백하게 드러났다. 두터운 눈을 뒤집어써야 할 이 계절에 눈 한 점 묻어 있지 않는 바위들은 발가벗은 맨살로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다. 겨울은 허연 입김과 간혹 발길을 어지럽히는 웅덩이의 얼음장으로나 간신히 느껴졌다. “벌써 허얘야 하는데, 올해는 이상허네예”라고 진주 산꾼 유동훈씨는 말했다. 그래도 12월 말로 접어들면 지리산록은 어김없이 흰 눈으로 두툼해질 것이다.
그런데 원, 저렇게나 많고 저렇게도 밝을 수 있을까. 나목 가지 사이로 뵈는 별들은 차디찬 빙점 이하의 시린 빛으로 쏟아지고 있다. 너무 많아서 주체할 수 없어, 마구 여기저기 흩뿌린 듯했다. 가늘고 날렵하게 휜 초승달도 여기 청정한 지리산 중턱서는 강렬한 발광체 같아서 나무 그림자를 바위면에 선명히 드리웠다. 그러니, 오늘 일출은 예사롭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천왕봉 일출맞이 새벽 산행 취재에 나선 길이었다.
새벽 5시30분 화장실 불이 훤히 밝혀진 로타리산장을 지났다. 법계사의 어느 스님이 도량석(道場釋)을 도는 것일까. 목탁 소리가 어둠 저편 형광등 빛이 희미한 법계사로부터 들려왔다.
1월1일은 무박 일출맞이 산행 가능
천왕일출은 전날 장터목대피소까지 올라가 하룻밤을 묵으며 보는 것이 정석이지만, 정초엔 이런 정석을 따르기 어렵다. 장터목은 물론이거니와 천왕봉 주변의 로타리, 치밭목대피소도 12월31일 밤엔 화장실까지도 초만원이다. 때문에 무박산행으로, 버스 안에서 자며 지리산으로 달려가 1월1일 새벽 두세 시경부터 천왕봉 등행을 시작하는 이들이 거의 모두다. 이들 일출맞이객이 너무도 많아, 중산리 계곡길이 아예 메워지다시피 한다. ‘3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속언은 천왕일출이 비길 데 없이 멋지고 또 보기도 힘들다는 의미일 터인즉, 그것을 1월1일 정초에 딱 맞추어 보고자 하는 이들의 속내엔 그만큼 간절한 무언가가 들어 있는 것인가. 지리산 국립공원 중산리 조상수 분소장은 이렇게 말했다.
“천왕일출 보러 백무동쪽에서도 올라가지만, 중산리쪽이 가까워서 제일 많지요. 중산리에서 천왕봉까지 어른이 대개 4시간 정도면 됩니다. 하지만 정초엔 사람이 많아 지체되는 시간도 길어져서 6시간쯤 걸려요. 한 번은 31일 밤 11시부터 보냈더니 천왕봉 정상에서 일출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어져 추워서 혼났다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제는 일출 시각에 딱 맞춰서 밤 한두 시경 입산을 시킵니다. 이 날 딱 하룹니다. 그 외엔 야간산행 안돼요. 일몰 2시간 전까지, 일출 2시간 전부터만 입산시키죠. 예외 없어요.”
작년엔 12월31일 밤 11시부터 들여보냈다가 폭설이 너무 심해서 로타리대피소에서 모두 되내려오게 했다고 한다. 조 분소장은 “하지만 뭐, 그런 일은 아주 드물지요” 했다. 지리산의 연중 청명일수는 약 80일이며, 1월1일의 천왕일출은 이태에 한 번, 일출다운 멋진 일출은 세 해에 한 번 꼴로 볼 수 있는데, 올해가 바로 그 해라고 하니 이번 정초 해맞이객은 엄청나서 예년의 5,000명 선을 훨씬 넘을 것이다.
신새벽의 어둠이 고스란한 숲속에 들어서면 다소간 길이 헷갈렸다. 이런 어둠 속에서는 앞선 사람의 무수한 족적이 굵직한 선으로 그어지는 한겨울 눈밭 길이 차라리 찾아 오르기가 더 쉬울 것이다.
법계사 위의 조망이 트인 너럭바위에 서자 저 멀리 주황색으로 은근히 타오르는 듯한 도회가 보였다. “저기 왼쪽 것이 진주, 가운데가 사천, 저기 오른쪽이 광양이라예.” 유동훈씨가 어둠 속에서도 손을 들어 가리키며 말했다. 발 아래로 검은 산봉 그림자가 엎드렸고, 그 위로는 벌써 뿌연 여명이 내비치고 있었다.
산불예방기간 중이면 굳게 닫히는 철문을 지날 때까지도 컴컴하던 발치께가 사람들이 안에 돌무지를 쌓아둔 썩은 나무둥치 옆을 지나며 갑자기 훤히 밝아왔다. 숲이 벗어진 탓이다.
회색 공기층 뚫고 붉은 해 붕긋
검은 바위 아래 가로로 5m 넘게, 텐트 높이로 길쭉하게 형성된 저 바위굴은 폭풍우가 몰아칠 때도 아늑할 것이다. 그곳은 이미 제법 고도가 높아진 곳이라, 숨었던 산릉들이 무리지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웅기중기 일어난 산릉들 위로 가로로 길게 퍼진 저것은 무어라 해야 좋을까. 잿빛의 그 띠는 오히려 바다보다 더 반듯하다 싶게 수평의 선을 그으며 천지간을 가르고 있었다.
“스모그네.”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스모그란 삭막한 말 한 마디로 단정지어버리고 말기엔 그 광대하고 아스라한 멋이 아쉬웠다. 우리가 내뿜는 숨결이 그저 더러운 것이 아니듯 저것도 우리의 삶이 호기(呼氣)한, 하늘가에 어린 부우연 입김 같은 것일 터다. 비록 잿빛이며 하늘 아래 고인 물처럼 착 가라앉아 있기는 해도, 아름다웠다. 그 잿빛 대기층의 표면은 태양의 붉은 기운과 만나며 기이한 빛의 조화를 보였다. 청자색에 보랏빛이 뒤섞인 기나긴 띠 같은 것이 그 잿빛의 바다 위를 뒤덮었고, 나목들이 그 경계와 반공의 희끄무레한 초생달을 제멋대로 꿰고 있었다.
여명은 이미 지상의 것들을 속속들이 드러냈다. 남부능선 허리께의 깊이 주름진 굴곡도 후벼 파낸 듯 선명해졌다. “이제 일출이 얼마 안 남았는데….” ‘취사야영 흡연 중점 단속지역’ 플래카드가 걸린, 바위틈새에서 쫄쫄쫄 물이 흘러나오는 천왕샘터 앞에서 유동훈씨는 혼잣말처럼 그렇게 한 번 채근하고서는 천왕봉 직전의 개선문 바위벽 뒤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오전 7시25분, 몇 가닥 잿빛의 공기층 위로 섬광 가닥을 내비치는가 싶더니 태양은 이내 온 산하를 황금 햇살로 축복했다. 일행의 얼굴과 천왕봉 정상비석이 불그스레한 주황빛으로 물들었고, 저 아래 검푸른 구상나무 이파리들에 얹힌 상고대들은 찬란한 보석으로 빛났다. 등 뒤 반야봉 오른쪽의 푸르스름한 이내의 띠에는 삼각형의 천왕봉 그림자가 선명히 드리워졌다.
태양은 잿빛 구름층을 꿰뚫고 오르며 그것을 희디흰 솜털 구름으로 뒤바꾸었다. 우리는 바위에 편히 앉아 보온병에 담아온 따끈한 물과 과자 조각을 천왕일출에 더불은 성찬으로 삼았다. 거기에 손톱만한 부족함도 없었다. 살진 새 두 마리가 옆의 바위 위에 올라앉아 함께 아침 햇살을 즐겼다. 햇살 무리는 경호강을 은빛 실뱀으로 희롱하다가 진양호로 건너갔다.
천왕일출은 동쪽이지만 일출 이후 풍광은 남쪽 중산리 방면이 월등 뛰어났다. 남부능선과 그 너머 저 멀리 아스라한 곳까지 산릉들이 겹겹이 서로 다른 농담으로 펼쳐져 있다. 정초 아침 이곳 천왕봉 일대는 이런 풍경들을 보려는 사람들로 한 발자국도 움직이기 어려울 만큼 빽빽하다. 그들이 두 손 모아 기원하는 것, 그것이 올해는 모두 이루어지기를-.
햇살에서 주황빛이 모두 걷힌 뒤 비로소 우리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저기 저 아래의 마을은 아직 검고 찬 산그림자가 걷히지 않은 채다. 흑갈색으로 드러난 암부 넘어 통천문을 지났다. 햇살 세례에 속절없이 무리로 떨어져 내린 상고대 조각들이 밟힌다.
빛이 어둠을 걷어내는 찰나의 순간
제석단 고사목 지대로 들었다. 여전히 대기는 미동도 없고, 오랜 세월 풍우에 씻긴 거대 동물의 뼈처럼 하얗게 탈색된 구상나무, 가문비나무 고사목들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아프게 찌르고들 섰다. 고사목 밑둥의 누런 풀들이 헝클어진 가발 뭉치들 같다. 고사목은 태반이 비스듬히 기울어 있다. 저 멀리 반야봉이 배경으로 선 이곳 제석단 고사목 지대의 풍치는 아마도 십여 년 뒤면 옛 사진으로나 남을 것이다.
장터목대피소 바깥의 갈색 식탁에 앉아 점심을 폈다. 파일 재킷을 입는 것만으로도 따뜻해질 만큼 날씨가 푹했다. 이런 겨울은 재미없다. 겨울 속의 봄 같은 날은 속이 상한 만두처럼 못마땅하다.
세석으로 가는 길의, 몇 해 전 기암봉과 구상나무에 수북이 얹힌 눈으로 설경의 표본을 보인다 싶게 감탄스러웠던 곳도 무심히 지났다. 길은 잃어버린다는 게 이상할 정도로 뚜렷하고 이정표도 요소마다 있지만, 그러나 지난 여름 길을 잘못 들어 도장골로 빠졌다가 한 사람이 숨진 사고가 있었다. 산오이풀을 좋아하는 멧돼지가 길 옆 풀섶을 마구 파헤쳐 놓았다.
연하봉(1,730m)을 지나며 유동훈씨는 꼭대기 좀 보소, 한다. 꽃봉오리 같은 기암이 얹혔으니 연화봉이라 불러야 할까. 내일 아침 다시 올라와 일출맞이를 할, 커다란 암괴 몇 덩이로 이루어진 촛대봉 정상 북쪽 목덜미를 넘자 주루룩 두루말이 밀어 펼친 듯 세석평전이 펼쳐진다. 평전 한 가운데 암갈색 지붕을 한 세석대피소는 일부러라도 한 번 묵어보고 싶을 만큼 외양이 멋지다. 다 좋은데 아쉽다면, 사람들이 아이젠을 착용한 채로 잠시 들어서서 몸을 녹였다 갈 수 있는 여유 공간이 없다는 점이다.
훤한 새벽, 세석대피소에서 촛대봉 오름길. 단 10분이면 된다. 천지간에 이미 푸르스름한 기운이 가득하다. 이런 날 일출이야 기대해볼 것 없다며 촛대봉으로 올랐다. 그런데, 앞서 오른 사람이 기성을 지른다. 가로로 굵게 고랑을 이룬 광대한 운해가 천왕봉 허리춤까지 차올랐다. 천왕봉~촛대봉~삼신봉 능선의 이동쪽만 그득히 흰 구름이 담겨 있다. 그 이서쪽은 멀리 남덕유의 윤곽선이 뚜렷할 정도로 청명하다.
구름바다 위로 햇살이 펼쳐졌다. 푸르딩딩한 재색이 순식간에 걷히며 운해는 눈부신 황금 빛의 바다가 된다. 우리는 빛이 어둠을 걷어내는 찰나의 순간을 보았다. 강렬한 빛으로 역동성이 생긴 운해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구름덩이 아래의, 거무스름한 산봉들이 얼비치는 공간은 심해 속 같다.
해가 솟아오르며 운해는 평정을 잃고 중천으로 난무하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얼마 후, 장터목으로 걸음을 옮기다 돌아본 남동편 하늘가엔 몇 덩이 뭉게구름만 보였다. 천하절경도 지나고 나면 모두 미망 속의 환영만 같다.
/ 글 안중국 차장 tksdkr@chosun.com
/ 사진 허재성 기자 heophoto@hotmail.com
천왕봉 일출맞이는 주변의 장터목, 로타리, 치밭목 3개 대피소에서 자고 다음날 해야 한다. 지리산 국립공원 관리사무소가 야간산행은 위험하다는 이유로 일출 2시간 전이 되어야 입산을 시키기 때문이다. 1월1일만 예외적으로 일출 6시간 전부터 산행을 허용한다. 그러므로 1월1일 이외엔 천왕봉 무박산행은 어렵다.
대피소에 가서 자려면 또한 일몰 2시간 전에 입산해야 한다. 일몰 전에 안전한 대피소에 도착해야 한다는 것이니, 대피소를 예약했다고 하더라도 이 점 염두에 둔다. 정초 이외의 날을 잡으면 느긋한 산행과 편안한 대피소 이용이 가능하다. 그리고 기왕 일출산행에 나섰다면 촛대봉 일출도 욕심을 내본다.
이렇게 천왕일출과 촛대봉 일출 둘 모두를 볼 예정이고 지리산행도 나름대로 즐기고 싶다면 중산리~로타리대피소~천왕봉~장터목대피소~촛대봉~세석대피소~거림골 코스를 2박3일 일정으로 엮는다. 첫날 로타리대피소에서 1박, 다음날 천왕일출을 본 뒤 세석대피소에 가서 1박, 다음날 촛대봉 일출을 보고 거림골로 하산하거나, 아니면 장터목으로 되돌아가 법천계곡으로 하산하도록 일정을 잡는 것이 무난하다. 대원사~조개골~치밭목대피소~천왕봉으로 전반부 코스를 잡는 것도 좋다.
1박2일 일정으로는 중산리~로타리대피소(1박)~천왕봉~장터목~중산리가 무난하다. 첫날 오후 4시 이전에 중산리 매표소에 도착해야 이 날 로타리대피소까지 들어가 잘 수 있다. 다음날은 새벽 4시경 로타리대피소를 출발해야 천왕일출 시각에 맞출 수 있다. 중산리~로타리대피소~천왕봉까지는 약 5.4km로 4시간쯤, 로타리대피소에서 천왕봉까지는 2시간 남짓 걸린다.
중산리분소를 지나 200m쯤 오르면 지리산중에서 사라진 기인 허우천을 기리는 비석, 화장실, 야양장 관리사무소가 선 삼거리가 나온다. 다리 건너 곧장 이어지는 길은 자연학습원 가는 길이며, 산행로는 왼쪽의 야영장관리소 앞으로 난 길이다.
길은 곧 숲속으로 이어진다. 뚜렷하고 정비도 잘 돼 있는 숲속 계곡길을 따라 1시간쯤 오르면 등산로 왼쪽으로 칼을 잘라 세워놓은 것 같은 칼바위가 나타난다. 장터목 가는 유암폭포 길과 로타리대피소 길은 이 칼바위 위 약 100m 지점에서 갈라진다. 오른쪽 길이 법계사 길로서 이 길로 접어들어 조금 걸어오르면 짤막한 구름다리가 나온다. 이 다리를 지나 로타리산장까지는 약 1시간 거리. 완경사의 숲길이 이어진다.
로타리대피소~천왕봉 구간은 밤중이라도 랜턴만 있으면 거의 문제없이 길을 찾아 오를 수 있다. 길 양쪽으로 흰 밧줄 난간이 연이어지며, 곳곳에 이정표도 서 있다. 다만 겨울에 눈에 난간 밧줄까지 덮이고 밤 사이의 강풍으로 족적이 뒤덮였을 경우는 길 찾기가 갑자기 까다로워지므로 유의한다. 만약 갑자기 발이 깊이 빠지거나 얼굴에 계속 나뭇가지가 스친다면 십중팔구 길을 잘못 든 것이므로 주등산로를 발견할 때까지 되짚어 나와야 한다.
장터목에서 중산리로 하산하는 길은 거의 외길이고 계곡길이므로 설혹 잘못 길을 들었다고 해도 중산리로 어차피 내려가게 된다. 다만 폭포도 있는 등 절벽지대를 만날 위험이 높으므로 반드시 주등산로를 찾아 내려와야 한다.
장터목대피소에서 샘터 앞을 지나 한동안은 급경사 돌계단길이다. 중간에 명선교, 경기막터교 등의 목교와 구름다리로 계곡을 좌우로 몇 차례 건넌다. 넓고 완경사인 마당바위를 지난 뒤 초록 구름다리를 건너면 절반쯤 내려온 셈이다. 그 후 500m 가서 산불예방기간 중 닫아두는 철문을 지나면 법계사 길과 장터목 길이 갈리는 삼거리. 그 직후에 칼날을 세운 것 같은 명물 칼바위가 나온다. 이후 20여 분 내려가면 중산리 매표소다. 장터목에서 중산리 매표소까지는 3.3km로 2시간30분쯤 걸린다. 지리산 관리사무소 중산리분소 055-972-7785.
◈ 교통
일단 진주까지 가서 중산리행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진주 시외버스터미널(055-741-6039)에서 중산리 가는 버스가 하루 18회 운행. 1시간10분 소요. 중산리에서 진주행 막차는 오후 7시35분에 출발.
♨ 숙박
중산리 두류동 매표소 주차장 앞에 천왕봉의집(055-972-1155), 산꾼의집(972-1212), 용궁산장(973-8646) 등, 1층은 식당, 2층은 민박 방을 들인 상가 건물이 있다. 방이 대개 널찍하여 10명도 충분히 잘 수 있고, 방 앞(건물 내)에 널찍한 평상을 놓아 취사가 가능하다. 인원과 시기에 따라 7만~10만 원선. 산채비빔밥, 찌개백반 등이 5,000원. 상가에 매점도 있다.
지리산덕산관광휴양지 깨끗하고 넓은 방을 여러 개 갖추었으며 조망이 뛰어나다. 4, 5, 6인실의 가족숙박실 5만~12만원, 10~50인 단체실 10만~30만원. 실내 취사는 안 되며, 구내식당 가야정식당에서 다슬기국, 육개장, 찜닭 등을 한다. 조식 가능. 055-972-6269.
지리산통나무산장 차를 바로 옆에 댈 수 있는 독특한 구조의 통나무방이 8동 있다. 4~5인실 주중 60,000원, 주말 80,000원, 가족실 10만~12만 원. 055-291-6301.
그외 계곡모텔(055-972-1441), 대웅모텔(055-973-8181), 드라마산장(055-973-6867) 등이 시설이 좋은 편이다.
◈ 천왕봉 주변의 대피소들
로타리대피소(055-973-1400), 장터목대피소(016-883-1750), 세석대피소(016-346-1601) 모두 실내를 깨끗한 목제 침상으로 꾸몄으며 공단이 직접 관리한다. 이용료 1박에 7,000원, 모포대여료 1장에 1,000원. 각 대피소에서 간단한 과자나 음료 판매. 술, 국물이 발생하는 컵라면 등은 팔지 않는다.
치밭목대피소(전화 없음)는 산악인 민병태씨가 관리하며 간단한 식료품 등 판매. 이용료 5,000원. 모포 대여료 1,000원.
첫댓글 해가 떠 오르기전 바~알갛게 물든 운해가 기가막힌 장관인데 아쉽게도 그림이 보이지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