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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란다스의 개 퍼즐(1000피스)
책장 앞에 책을 가리운 채 세워놨다. 가운데 검은 줄은 유리 진열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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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코리아 극장(1969년 촬영?)
플란다스의 개
벨기에 플란다스 지방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소년 네로와 개 파트라슈의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이다.
포악한 주인으로부터 버림받아 죽기 일보 직전인 파트라슈를 정성껏 보살펴 살려낸다.
이들의 보살핌에 감동받은 개는 스스로 우유수레를 끌려고 한다.
네로와 파트라슈는 우유수레를 끌면서 가난하지만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
네로의 꿈은 안트베르펜 대성당에 걸려있는 루벤스의 그림을 보는 것과
루벤스와 같은 유명한 화가가 되려는 것이다.
알로아와 사랑을 하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이들의 사랑은 이루어지질 않는다.
길에서 주은 인형을 알로아에게 주던 날 밤
우연히도 그날 알로아의 집에 불이 나고 네로는 방화범으로 누명을 쓰게 된다.
알로아의 아버지는 네로가 불을 지른 것으로 오해한다.
동네사람도 네로를 냉대하여 네로에게 우유 배달을 거절한다.
결국 할아버지는 숨을 거두고 밀린 집세를 못 내서 집에서 쫓겨난다.
크리스마스 전날 콩쿠르에 출품한 작품이 낙선하여 절망한다.
눈 속에서 알로아의 아버지가 잃었던 돈주머니를 주워서 돌려주며 파트라슈를 부탁한다.
오갈 곳 없는 네로는 성모대성당으로 지친 몸을 끌고 간다.
파트라슈는 기회만 엿보다가 알로아의 집을 빠져나와 네로를 찾으러간다.
그가 그토록 동경하던 루벤스의 그림을 보고 파트라슈와 꼭 껴안고 얼어 죽는다.
몇 년 마다 한 번씩(열 번은 넘는다.) 영화 플란다스의 개의 마지막 장면이 불연 듯이 떠오른다.
내 기억 속의 마지막 장면은 네로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아버지의 시체를 해부해서 보여주는 장면으로 생생이 남아있다.
이런 생각들이 40여 년 동안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왜 이런 영상이 떠오르는지 깊이 생각해 보지는 않았다.
떠오르는 기억이 동화와는 어울리지 않는 다는 생각만 했을 뿐이다.
바람결이 스쳐지나 듯 지나치기만 했었다.
아버지와 아주 어렸을 때 영화를 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 후 플란다스의 개 동화를 읽었고
티비에서 방영하던 만화영화도도 빠지지 않고 보았다.
단편으로 제직된 애니메이션 영화도 보았다.
그러나 내가 기억하고 있는 장면은 어디에도 없었다.
꿈을 꾼 것일까?
15년 전쯤엔 일어 원서를 구입했다.
초등학생들에겐 플란다스의 개 책을 선물하곤 했다.
금년 2월경 플란다스의 개 퍼즐을 맞췄다.
다시 애니메이션을 보고 감동에 젖는다.
네로와 파트라슈의 아름다운 우정
알로아와의 이루지 못하는 사랑
화가가 되려는 꿈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모습
어떠한 상황에도 절망 않고 이웃을 원망하지 않고 사는 모습
가난하지만 정직하게 살아가는 모습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루벤스의 그림을 보고 열광하는 모습
궁금증을 풀어보기로했다.
과연 내가 영화는 실제로 본 것인지?
언제 어떤 극장일까?
단서는 극장 외벽에 대한 단편적인 기억이다.
네이버 지식검색에도 올리고 영화진흥위원회 게시판에 문의해도
공식적인 자료에는 플란다스의 개에 대한 기록이 없다고 한다.
“1960년~1964년까지의 개봉 영화 리스트를 살펴본 결과 민원인께서 말씀하시는 <플란다스의 개>에 대한 내역은 발견하지 못했다.” 는 답변을 받았다.
꿈에서 본 것일까?
어려서부터 간간히 떠오르던 네로가 바라보고 있던 마지막 신체해부 장면은 착각인가?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6살 때 아버지와 플란다스의 개를 보러 간적이 있냐고?
나이가 들어 기억이 좋지 않으신지 정확한 대답을 못하신다.
“어려서 어디를 가든 나를 데리고 다녔기 때문에 아마도 영화를 봤을 것이다.”라고 하신다..
그 무렵 즈음해서 히치코크 감독의 <새>도 본 기억이 난다.
새 떼가 인간을 공격하고 창문을 부시는 장면은 지금도 뇌리에 생생하다.
무서움에 떨며 영화를 봤다.
그 후로 공포영화는 보지를 않는다.
어려서의 기억은 이후의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인터넷 검색에서 플란다스의 개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다.
인터넷 상 문의도 하고 검색을 해도 극장 이름을 찾을 수가 없다
서울 중고등학교를 나온 친한 형에게 전화를 한다.
국제 극장 옆에 있던 극장 이름이 무어냐고?
바로 답변이 나온다.
"시네마 코리아 극장이란다."
윗 사진에서 보듯이 타일로 장식한 극장 외벽이 기억에 떠오른다.
“학생시절인 60년대 몰래 여러 번 갔었고, 그 옆에 아카데미 극장이 있었단다.”
그때 기억의 편린들은 어떤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다.
전철을 타고 서울로 향한다.
1960년대로 돌아간다.
덕수궁 돌담을 끼고 시청 쪽으로 향하면 과거 국회의사당 앞에 문화공보관이 있었다.
구 국회의사당 자리는 서울시의회로 바뀌었다.
그 옆에 코리아나 호텔이 있고, 국제극장 자리는 광화문 빌딩으로 바뀌었다.
1966년 우리나라 최초로 만들어진 세종로 지하도를 건넌다.
지금은 서울 역사박물관으로 바뀐 옛 경희궁터 이자 구 서울고등학교를 향한다.
광화문 뒤편 당주동 골목으로 들어선다.
1972년도엔 학원 골목이었다.
짬만 나면 학원 친구들과 광화문, 삼청동, 계동, 화동 일대를 휘젓고 다니곤 했다.
김연식이란 친구가 떠오른다.
얼굴이 하얗고 키가 큼직했던 학교이름은 잊었지만 같은 학교 친구와 둘이서 다녔다.(박정포?)
174센티 되는 비쩍 마른 친구, 중화동에 살던 얼굴이 갸름한 친구,
그 후 고등학교 때는 학원이 모여있는 종로는 자주 왔었지만
광화문 일대는 거의 올 일이 없었다.
1978년 세종문화회관 개관 기념으로 베르디 오페라 아이다 공연에 엑스트라로
출연하면서 광화문을 왔었다.
80년대 초까지 광화문을 왔었고 그 후는 오더라도 교보문고만 들리곤 했다.
구세군빌딩과 새문안 교회. 종근당 제약 간판, 의수를 제작하는 곳은 그대로 남아있다.
변웅전 아나운서가 사회를 보던 엠비씨 체육관이 있었다.
역사박물관을 들러 서울시 지도를 구입한다.
옛 과거를 되살리는 데는 지도와 사진이 최고이다.
내가 다니던 연수학원 자리는 유리창이 다 깨져 나간 채 빈 건물로 남아있다.
그 당시에는 5층짜리 건물로 높아보였는데 이제 보니 건물 전체가 자그마하다.
흉물스럽게 버려져있다.
과연 여기가 대한민국 서울 중심가 광화문일까 의아하다.
1950년대 6.25 전쟁 직후 모습이다.
이 건물뿐만 아니라 여러 동의 고만고만한 규모의 건물들이 버려진 채로 을씨년스럽다.
저녁을 사먹던 분식집들은 다 사라지고 없다.
매운 맛에 달콤했던 떡볶이, 순두부 백반의 맛이 혀끝을 간 지른다.
그때 순두부백반이 80원인가 했다.
엄마가 몰래 용돈을 가끔씩 5백원이나 주셨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2만5천원 쯤 된다.
1972년 말에 고등학교 입시가 없어진다고 발표가 나고 나도 학원을 그만두었다.
1974년도 고등학교 1학년 시절 단과반 학원 수강료가 3천원씩 했었다.
고등학교 무시험 1기생이다.
이 해에 지하철이 개통되고 육영수 여사가 돌아가셨다.
며칠전 고등학교 졸업 30주년 모임이 있었다.
나이만 지천명이다.
구글에서 검색해보니 1959년에 만들어진 영화 플란다스의 개가 있다.
아마존을 통해 미국에 주문을 했다.
한참을 기다렸는데 ...잘못 보내 왔다.
1999년에 만들어진 플란다스의 개가 우송되어 왔다.
이메일을 보냈다.
1999년 판은 돌려줄 필요 없고 1959년 판으로 다시 보내 준단다.
품질이 조악하다. 불법 복제판임이 확연하다.
어찌하랴.. 말도 통하지 않으니 항의할 수 도 없고
아마존에는 판매자 정보를 제공하는데 불량이라고 보냈다.
그 사이 원작 동화를 다시 읽었다.
1959년 판을 보는데 마지막 장면에 루벤스의 그림이 나온다.
할아버지의 죽음과 예수의 죽음이 오버랩 되면서 할아버지 시체를 해부한 모습으로 각인되었나보다.
원그림을 보면 예수가 창에 찔려 배에서 피가 나오는 모습이 보인다.
영화 스토리가 원작과는 판이하게 차이가 난다.
분명히 보았음직한 장면들이 곳곳에 나온다.
영화 중간 중간의 배경이 낯설지가 않다.
퍼즐 맞추듯 기억의 조각들을 짜 맞춘다.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원작을 많이 각색했다.
1959년 판 플란다스의 개를 1963년에 분명히 보았음을 확인했다.
그런데 한국에 이 영화를 수입한 적이 없다는데 어디서 보았을까?
종교학자 정진홍 님의 말에 의하면
" 회상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지난 과거를 지금 이 자리에 현존하게 하면서
그것을 새로운 처음이게 한다." 고 말한다.
과거에 잠겨있던 <플란다스의 개>를 현재 되새김질하여 또 다른 <플란다스의 개>로 되살려 본다.
플란다스의 개 퍼즐을 바라보며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참고)
(홍경한/미술비평)님의 글에서
루벤스는 17세기 베르메르나 렘브란트 등과 동시대 인물로서 플랑드르 회화의 거장으로 인정받는 작가이자.
그는 궁정화가로서 호화롭고 화려하며 장식미가 뛰어난 바로크양식의 그림을 주로 그렸다.
루벤스의 고향 플랑드르는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감이 있다.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만화 플란다스의 개(플랑드르의 개)때문이 아니가 싶다.
실제로 만화 플란다스의 개에는 루벤스의 그림 두점이 등장한다.
<십자가에 들여 올려지는 예수님>과 <십자가에 내려지는 예수님>이다.
이 두 그림은 플란다스의이 개에서 네로가 평생 동안 무척이나 보고 싶어 했던 작품이다.
평소 커튼 속에 감춰 놓아 금화 한 닢이 있어야만 볼 수 있었다.
이 두 그림은 지금의 벨기에 안트워프 대성당(성모대성당)에 있으며
1610-1612년 안트워프 시장의 요청으로 성당 내부 제단화로 제작되었다.
그런데 네로가 죽기 직전까지 그림을 볼 수 없었던 것은
귀족주의를 표방하던 웬만한 서민들은 명작을 볼 수 없던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유추케 하는 대목,
물론 지금도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들어설 때 쑥스러워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당당하게 들어가도 된다.
저때처럼 금화 한 닢 없어도 얼마든지 좋은 작품들을 관람할 수 있다.
(2007년 2월 부터 생각해 오던 것을 2007년 6월1일 오늘에야 마무리 짓는다.)
첫댓글 오늘 이별여행이라 내일 마저 읽어보고 느낌을 쓰겠습니다./6.2.어제 곤지암으로 차 안에서 두번을 읽었습니다. 어렸을 때 춘부장 님과 영화관을 갔던 추억을 가지 신 점은 제게는 부러움입니다. 예전에 전혜린이 자기의 유년시절은 솜사탕같았다라고 했었지요. 저 역시 과거의 추억에서 벗어나 살지는 못합니다. 흰구름 님께서 다시 찾은 광화문 주변에서 그 옛날의 풍경이 스쳐지나가고,과거의 추억들과 현재의 체험들이 섞여 마치 기시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나 합니다. 왜 우리사회에서 58년 개띠가 갖는 의미를.....지 아들 고등학교에 입학시켜려고 고교평준화를 만들고......웃기는 나라입니다. 요즘은 그 딸년이 또 정치를 하고.....
데자뷰(기시감) - 처음 만난 사람인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하거나 처음 간 곳이 과거에 가 본듯이 느끼는 현상. <프란다스개>의 마지막 장면이 기시감 현상은 아닐 것이다. 기시감이었다면 플란다스의 개를 관람하며 그 장면을 떠올려야하는데 나는 영화를 보며 내 기억들의 진위 여부를 판단해 본 것이다. 즉 과거의 기억의 정확성을 1959년도 판 <플란다스의개>를 통해 확인한 것이다. 아마도 지 아들 때문에 고교평준화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웃기는 나라이다. 지금도 여전히 웃기는 짓을 되풀이 하고있는 웃기는 나라이다.
The term "d?j? vu" (IPA:/de?a vy/) (French for "already seen", also called paramnesia from the Greek word para (παρα) for parallel and mnimi (μν?μη) for memory) describes the experience of feeling that one has witnessed or experienced a new situation previously.The experience of d?j? vu is usually accompanied by a compelling sense of familiarity, and also a sense of "eeriness", "strangeness", or "weirdness". The "previous" experience is most frequently attributed to a dream, although in some cases there is a firm sense that the experience "genuinely happened" in the past. -위키에서
참 감동적인 만화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