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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
-뎃생&채색화 / 조안숙 "따르릉" 전화 받는 아들의 소리가 건너 방에서 들려온다. "응? 어머니? 야야 말도 마라.건강을 넘어서 훨훨 날아다니신단다. 여성회관으로 그림 배우러 다니시거든.응? 실력? 초등학교 수준이지, 하하하." 저 녀석이!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 아들의 호탕한 웃음소릴 들으며 살짝 눈을 흘기고 멋쩍게 웃어보았다. "조안숙 입니다. 나이는 73세이고요. 치매 걸리지 않으려고 나왔습니다." 뎃생과에 등록을 하고 첫 시간에 자기소개를 할때 모두들 늙은 학생을 반겨주었다. 용기도 났지만 한편 젊은 학생들 따라갈 일이 걱정되었다. 역시 늙어서 떨리던 손은 긴장이 되어 더욱 흔들려 분명 직선을 그었는데 포물선이 그려져서...... 초등학교, 입학하면서부터 교실 뒤 게시판에는 언제나 내 그림이 붙어 있었다. 세계 제 2차 대전, 미 군함에 일본 비행기가 신나게 폭탄을 떨어뜨려 꽝 소리가 날 듯, 그 리고 태평양 바닷물은 물기둥이 되어 하늘에 솟구치는 멋진 그림.(내 나름대로) 중학 교 땐 6.25전쟁, 풀, 나무 등을 휘여 잡고 높은 산으로 도망가는 인민군들, 총을 쏘며 쫓아가는 국군 아젔들의 그림, 자화상을 그려 오라는 숙제가 있는 날, 호롱불에 앞 머리 그을리며 그린 그림은 예쁘지 않고 길쭉한 얼굴에 비쩍 마른 나. 선생님들이 지 어주신 별명은 그림쟁이. 고등학교 땐 동양화(딱 1년) 계에서 유명하신 고(故)라상묵 선생님(무명시절) 덕에 전쟁 통에 넉넉한 연습시간은 없었지만 선생님의 도우심으로 (사실 대부분 선생님 손길) 제 1회 국전에 엉겁결에 입선 됐다. 하지만 그림과는 영 거리가 먼 길을 지금까지 걸어왔다.그래도 내 마음속에는 언제나 그림이 있었다.퇴 직을 하고 편한 시간들을 한지공예,비즈공예,양재 등에 빠져 있었고 미대 청강생 으로 들어가 배워볼까 하는 생각뿐 그림에 대한 동경은 아득한 산 너머 따뜻한 고향같은 마음으로 접어두고 살아왔다.작년에 시흥으로 이사를 와서 복지회관,동사무소 등을 찾아 미술교육이 있나 알아봤지만 춤과 노래는 많았으나 미술은 없었다. 다행히 노인 일자리를 통해 어린이 집 동화 할머니로 보람 있는 시간을 보내다가 동네 노인 대학 에서 목요일마다 장구를 가르치기에 목요일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며 열심히 4개월 간 배웠다. 어느날 정왕동 복지회관 앞,시니어 클럽에서 교육이 있어 왔다가 우연히 여성회관에서 내건 플래카드를 보게 되었다. 여성대학 수강생 모집에 '미술과'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바로 이거다 하는 생각과 함께 가슴이 통통 튀며 내 마음은 순간 그냥 젊어져 버렸다. 남들이 웃으면 어쩌나, 주책바가지 할마시라 하면 어찌 나 하는 생각 따위는 흘려버리자. 평생 잊지 못하고 마음에 담아둔 그림들이 마구 쏟아져 나와 옴몸에 다닥다닥 붙어 나를 기쁘게 해주었다.신천동에서 회관까지는 막히지 않으면 버스로 40분이 걸린다. 자리가 없어 서서 오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좋다. 언니라 불러주는 선생님도 좋고,언제나 따뜻하게 대해주는 젊은 친구들도 좋다. 한 장 한 장 그림이 완성될때 남들이야 어찌보든 내개 소중하고 명화 중 명화이다. 여성회관에 나오면서 목요일을 애타게 기다렸던 노인대학은 친구들에겐 미안하지만 그만두었고 지금은 더욱 애타는 기다림으로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화요일의 짧은 수업시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 이틀 후 목요일은 기다릴 수 있지만 목요일 집에 돌아올 때는 다음 화요일까지가 너무 길고도 길기에.... 며칠전 아들이 소리 높여 외쳤다. "동네 사람들~ 우리 어머니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신 어머니십니다!" 12월 초에 종강이고 1월에 개강이라 춥고 미끄러워 4월에 등록할 거라는 말을 듣고 며느리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안돼요,어머니.그치지 마세요.따뜻하게 입고 가시면 되잖아요?파이팅!' 시인이신 신달자 교수님 말씀이 생각난다. "50세나 60세에 시작하는 것이 늦지 않고 오늘이 늦지 않는 시간이다.지금 시작하라." 그래요!지금 시작 할래요! 미술학원에 갓 들어온 어린아이가 빨주초노파남보 색깔 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두리번거리며 보고 있다. 이 아이가 바로 지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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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2007년 여성회관 수기에는 이렇게 정겨운 글이 실려 있었군요. 꿈을 펼쳐가고 자기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고, 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며 행복 입니다. 조안숙님의 수기 잘 읽었습니다 좋은 작품 올려 주시고 늘, 행복 하시길 기원 드립니다.
젊은이 못지않게 그림이나 글, 모든일에 열정을 다 하시는 모습이 아름다운 분이시죠. 우리 채색반의 보배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