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옥희 생활복지사입니다.
천혜경로원의 오랜 후원자이면서 자원봉사자이시고 때때로 직원이신 김혜경집사님께서
남아메리카를 다녀와서 쓰신 여행기입니다. 직원분들, 회원님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글을 쓰신 김혜경집사님의 동의를 얻어 글을 올립니다. 즐거운 여행되십시오
남아메리카를 다녀와서
1월17일
안전과 평안을 향한 인간의 생각들은 참으로 세심하고 세분화 되어있는지라.
남미를 가면서도 LA를 지나간다는 이유로 인천공항에서 신발까지 벗어 검색을 당하고
대한항공 앞에서도 등에진 배낭을 조사당함을 받고 나서야 오후 7시30분에 탑승하여
로스엔젤레스를 향하여 11시간이나 타고가서 비행기 내려 왼손,오른손 지문찍고 조금 뒤로
물러서서 얼굴사진 한번 찍히고 검열 까다로운 입국절차를 끝내고 시내에 들어서서
몇년전에 보았든 할리우드거리에 서서 바닥에 찍힌 손자국을 보면서
스타들의 이름을 읽기도 하고 75년만의 추위가 왔다는 LA의 차가운 날씨를 느껴본다.
저녁을 먹고 그날밤에 기운도 좋지 한국에서부터 좁은 좌석에 앉아서 숙면도 하지 못했는데
비행기를 다시 타고 멕시코의 칸쿤으로 날아간다.
18일
체첸이사로 이동하여 마야유적지 91계단의 피라미드와 전사의 신전으로 다니다가 경기에 이긴
승자에게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니! 명예로운 헌신은 생명보다 앞선다는 논리가 지배적인
시대에서 살다가 죽어간 젊고 건강한 가문좋은 청년들의 희생에 가슴이 아프다 못해 저린다.
그날밤 우리는 다시 칸쿤을 출발하여 쿠바의 아바나로 향한다.고국을 떠나서 처음으로 발을 뻗어
내 몸을 눕혀 본다. 침대위에 허리를 펴서 단신을 눕힐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 인가? 무엇을 더 바라리요. 눈을 감고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음에 ....
19일
혁명광장에서 도시의 중앙에 걸린 체게바라의 거대한 사진을 본다. 그의 우수에 젖은 모습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였으리라. 상상해본다.
북한에서 6년간 한국어 공부를 했다는 쿠바의 아줌마 가이드는 자기 오빠도 가이드를 한다네.
쿠바를 방문하는 한국 사람들을 꽉 잡고 있는 남매간임을 듣고 우리는 웃었다.
헤밍웨이가 집필한 곳으로 가서 정원에 앉아도 보고 그가 바라본 바다도 내려다본다.
낚시하면서 탄 배도보고 아름다운 정원에서 그를 생각해본다.
구/신시가지를 둘러보면서 쿠바사람들은 쾌활하고 다정스러운것 같고 활기차 보인다.
오고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정이 가는 도시다. 쿠바의 시가 판매점에서 통통한 시가의 냄새도
맡아본다. 카피톨리오도 들리고 16시55분 쿠바를 그새 떠나야 한다니 참 아 쉽 다.
멕시코시티에 내려서 짐을 가지고 호텔로 향한다.
20일
목동에게 나타난 성모마리아의 간구로 세워졌다는 과달루페 성당을 갔더니 마침 미사중이라
그 많은 인파를 보면서 깜짝 놀랐다. 자기집에 있는 성물을 가지고 와서 기도와 미사를 드리고
다시 그것들을 가지고 돌아가는 사람들 소풍을 와서 성당 곳곳에서 삼삼오오 모여 앉아 즐겁게
식사하는 모습의 신도들의 홍수를 보노라니 그들의 신심이 얼마나 순종적이고 열심인지...
어디서도 볼 수 없었든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발현하신 성모님이 목동의 만토에 새겨진 모습을
보니 400년이 지났어도 변하지 않았다고 하네. 세상에 없는 물감과 천이라고 한다니 그저
놀랄 뿐이지. 성당에서 묵주를 몇 개사고 우리는 테오티와칸으로 이동한다.
해와 달의 피라미드에 올라가서 정점에서 기를 받고자 느끼고자 기를 뿜어내는 돌위에 정좌하고
앉아본다. 많은 사람들이 손을 뻗어서 기를 숨쉬고자 한다.
케샬코아즐 등등 아즈텍 문명의 유적지를 둘러본다.
멕시코시티의 이곳저곳도 다녀보고 소깔로성당, 대성당, 템플로아요르 등을 보면서
어디든지 만만치 않은 도시의 풍경과 유적지들의 의미를 마음속으로 되새겨본다.
저녁23시15분에 멕시코시티를 떠난다.
21일
새벽 6시 우리는 페루의 수도 리마에 도착 한다.다시 갈아타고서 13시30분 아르헨티나로 달려간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대통령궁과 국회의사당, 탱고의 발상지 보카지구를 보러 버스에서 내리는데
한편에서는 탱고의 음악이 흐르고 아름다운 젊은 남녀의 탱고 춤이 한창이다.
"여인의 향기"에서 알파치노의 절제된 그 춤이 생각나는 것은 ?춤은 매혹적 이다.배우고 싶기도 하다.
저녁에 탱고쇼를 가는 옵션이 있는데 우리는 낮에 보았기에 가지 않기로 하였다.
22일
8시55분 이과수에 도착하여 폭포를 향하여 오르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하면서
시원한 물줄기의 폭포에 그리고 그 장엄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바라보기만 한다.
군데 군데 쏟아져 내리고 문득 캐나다의 나이야가라를 기억한다.
클라이막스는 악마의 목구멍이라는 곳에서 자연의 웅대함에 문득 무서움을 느낄 정도로 광대한
구멍으로 모든 것을 빨아 들이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한다.거대한 물줄기의 원천은 어디인가?
봉선아씨와 합창한다."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마음속에 그리어 볼 때"
23일
파라과이, 브라질, 아르헨티나 삼개 국 접경지대를 강가로 지나면서
파라과이 인디오 촌으로 가는 배를 탄다. 브라질의 관광객도 많이 타서 함께 주위를 둘러본다.
선장의 배려로 느닷없이 이국의 배안에서 70년대 은희의 "꽃반지 끼고"를 듣는다.
얼마나 반갑든지 그리고 이어지는 처녀뱃사공의 전주가 나오기에 일부러 뒤돌아보고 있었더니
한마음이 되어서 신나게 낙동강 강바람에. 를 박수치며 신나게 부르고 있는
모습들을 보면서 서로가 박장대소 하면서 좋아하였다.
인디오 마을의 어린 처녀들이 만든 팔찌, 목걸이를 사면서
개울건너 작은집에 긴머리 소녀야. 그 마을로 가서 보니 추장도 계시고 누가 주고 떠났는지 천을
펴고 물건을 파는 그 속에서 영광굴비 라고 찍힌 나일론 보자기를 펴고서 장사하는 어린
여자아이가 있어서 얼마나 웃었는지 티베트의 오지에서도 광명체육관 ,주산학원, 태권도, 그리고
밀알 선교원 이라고 인쇄된 옷을 입고 있기도 하고 현대라고 적힌 버스도 있더니.
야 !그야말로 한글의 세계화 아닌가?
더 많이 주어서 세계를 한글로 덮히게 함이 옳은 일 인줄 아뢰오. 돌아오는 배안에는
상파울로 에서 온 자매(18살,16살)가 뱃전에 나와서 삼바춤을 신나게 추었다.우리 팀에서도
몇 명이 참가하여 친선의 삼바춤을 함께 추기도 하면서 그런데 그 자매들의 몸매가 정말
S-LINE 이였다.어쩌면 다리도 그리 긴지.타고 나는 것임을 알았다.
그리고 친절하고 꾸밈이 없고 순수해보였다.
브라질 쪽의 이과수 폭포를 바라본다. 관광객으로 넘쳐나고 뿜어내는 파워에 몸이 젖고 머리가
젖어서 마치 시골에서 완행열차타고 방금 서울역에 도착한 시골아줌마로 변모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 모습을 브라질 경찰이 찍어대니 놀랄 일이다.
어찌 이리도 큰 폭포를 이쪽에만 주셨는지...두고 온 내 나라가 생각난다.
우리나라에는 관광자원도 없게 하시고 .지하자원도 별로이게 하시더니
주여 우리에게는 똑똑한 머리를 주셨나이까? 누구도 넘 볼수 없는 지혜를 주실랍니까?
이과수를 앞에서 뒤에서 옆에서 그도 모자라서 마꾸꼬사파리를 가시는 분들이 많아서
옵션을 안하는 짱언니, 봉선아씨, 내동생, 그리고 나 미운 오리새끼 넷이서 벤치에 앉아 기다리는데 방금
사파리 마치고 내린 인디아 아줌마가 가까이 와서 물어 본다. 재팬 or 코리아? we are korean.
자기도 한국인 친구가 있다면서 김치 잡채 불고기 좋아한다고 웃으면서 우리 사이에 끼어 앉으시네.
그로부터 63세라고 자기를 소개하면서 그리스 문자를 전공하는 교수라고 말하기에 우리도 편하게
서로의 나이를 말하기 시작하다가 이런저런 사생활을 밝히다가 인도 아지매 손금을 봐주겠다네.
즐겁게 손바닥 내미는 시간을 가지고 어쩌고 하다가 더러는 정확하기도 한 말씀도 많이 하시네.
그러다가 마침내 내린 결론은 네사람 다 결혼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것을.......이라고 말하여서
얼마나 신나게 웃었는가. 즐거운 시간 이었다 여자 다섯이서 ...
알아듣는 단어를 조합하여 그 여자의 말을 해석하면서 우리는 동심으로 돌아가서
그리고 순수한 여자로 돌아가서 지나간 날을 아쉬워하기도 하면서
처녀이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시간에 ..앞날을 알지도 못하고 시집부터 가서 오늘에 이르렀으니...
오호 통제라. 놓친 열차가 아름다운 것처럼 그래도 결혼하여 좋은 일도 많았는데 스스로 위로하고
다시 인도 여자와 만날 날을 기약하지도 못한채 아쉬운 이별을 하고 .....
24일
이과수에서 세계 최대 수력발전소인 이따이쁘댐을 관광하였는데 규모나 크기에
압도당하는 기분이 였다. 더러는 대단한 것을 보면 언제나 나는 남자가 세상에 존재하여야 함을 더욱 느끼게 된다. 남자는 힘인것을. 하기사 산업 공학적으로 모든 것을 힘 안 들이고 할 수도 있는가? 지금 시대에는 ... 그래도 규모가 큰 것을 보면 그들에게 감사를 느낀다.
이과수를 출발하여 히오에 도착하여 놀랬다. 호텔이 너무 안 좋아서 ..어지간만하면 그냥 넘어가는 김혜경 도저히 아리랑고개를 넘을 수 없어서 궁리를 하다가 말다가 하다가
가이드에게 전화하여 방을 좀 바꾸어 주심이 마땅하겠다고 말하였다.
25일
코르코바도 언덕의 예수상을 보러 가는데 영국에서 출발한 크루즈손님 3,000명이 갑자기 단체로 히오항에 도착하였기에 언덕을 오르는 기차도 사람으로 넘쳐나고 있었다.
기차를 타고 얼마간 가다보니 노래하는 카수들이 승차하시네.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마도 사랑을 노래하리라. 공연이 끝나고서는 모자를 내밀어 수금도 하시네.
언제나 팔 벌려 날 오라하시는 주님을 뵈오니 마음이 평안하고 주님 계심이 축복인 것을 안다. 동서남북으로 예수상을 꼼꼼히 보다가 둘러보니 한켠 에서 미사를 드리고 계시네..
미사에 참석하여 은혜를 받고 백발이 성성한 신부님을 보니 괜히 눈물이 났었다.
슈가로프산의 케이블카를 타보고 위에서 보는 경치의 아름다움이여
저기 바다가 보이고 히오데자네이로의 미항은 세계적으로 소문난곳이 아닌가?
H.STERN보석박물관에서 기념으로 돌세개를 받고 구멍 뚫어서 목걸이에 걸라고 하네.
근무하는 직원들의 세련됨이 여행복으로 편하게 입은 나를 돌아보게 하누만.
이빠네마와 코파카바나 해안을 눈으로 보면서 나는 브라질에 서있음을 안다.
여기가 어디라고 이 멀리로 와서 국제적인 도시의 모습을 보고 있다니 ....
마리까낭 축구 경기장을 들어 가볼려고 하였는데 마침 수리중이라 입장을 할 수가 없고
어쩔것인가 .산넘고 물건너 구름따라 왔다하지만 오는날이 문잠근날이니 돌아설 수밖에
남미의 한식집들은 인심도 좋고 반찬가지수도 많고 친절하고 맛있으니 고맙기만 하다.
저녁식사 후에 히오 삼바쇼를 보러 간다고 하는데 가서 무대에 올라가서 대한민국 국민이 이곳에 와서 쇼에도 참가하고 있음을 알리고 나라를 홍보해야 한다고 대한민국 짜짜짜짠짠 할려고 박수연습을 버스안에서 몇 번이나 하고 축구응원단처럼 열심히 연습하였다.
이곳 가이드는 많은 꿈나무 들의 축구 유학을 돕는 사람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박주영과 몇몇 선수들의 대부라고 말하기도 하였지. 역시 축구의 나라답게 축구유학을 일찍부터 온다함을 들으니 전문가는 어릴적부터 키워지는 것을 느낀다. 도처에 선각자들이 있음을 배운다.
26일
히오를 출발하여 칠레의 산티아고에 도착하여서 축구유학을 칠레로 온 가이드를 만났다.
다리부상으로 인하여 지금은 대학에서 경영학전공을 한다는 그는 방학 중에 아르바이트로 우리를 만나게 되었다네. 그와 함께 비나델마르지방과 아름다운 바닷가마을 발파라이소로 이동 하였다.전망대에서 바다를 내려다 보면서 우리네 아파트처럼 엘리베이터 비슷한 것을 타고 내리는 해변 아파트(?)를 보면서 계단식 집의 설계도 멋진 것을 보았다.
칼라풀한 도시의 개성적인 건축들을 보면서 도시의 획일화 보다는 튀어서도 조화를 이루는 것은 좋은것이다. 산티아고로 돌아와서 피라미드성당을 보았는데 특이하기도 하고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성당인 것을 본다. 언제나 거기서도 주님은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대통령궁은 시간이 넘어서 밖에서만 바라보고 넓은 광장 에서 새들과 함께 사진도 찍고
산크리스토발 언덕에 올라 성모님을 영접하고 그 넉넉한 품을 부러운 듯 쳐다보고 있었다.
영원한 우리들의 어머니 마리아....그는 아들을 내어주고 얼마나 처절한 아픔을 느꼈을까?
처녀시절부터 남이 겪지 못할 어려움 속에서 잉태한 아들을 어찌 또 보낼 수가 있었을까?
같은 어머니로서 문득 오늘 마리아를 보면서 에미의 고통을 헤아려본다.
27일
산티아고를 떠나 페루의 리마에 도착하여 황금박물관,대통령궁,아르마스광장에 서서
연기를 피우면서 사람들에게 붙은 나쁜 기운을 몰아내어 준다는 심령술사{?}들을 군데군데서 보면서 묘한 기분을 느낀다. 그리고 줄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남녀노소의 얼굴표정에서
치료사를 신뢰하여 몸을 맡긴 채로 눈을 감고선 그들을 .바라보노라니 .믿어준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서로를 인정 할 수 있음은 좋은 사회를 이루어 가는 기본인 것을 안다. 생각난다 “때문에”가 아니라 “덕분에” 우리는 버스를 타고 또 떠난다. 빠라카스로
28일
04시30분에 일어나 추울까봐서 무장(입에는 마스크, 눈에는 선글라스, 머리에는 모자, 그리고 따뜻한 옷을 입고 )을 하고 바닷가에 이르렀더니 모터보트가 대기하고 있네. 뱃전에 앉아서 바다 위를 달린다. 그런데 꼭 도로를 달리는 것처럼 가다보니 바다는 표시도 없는데 둔덕을 지나기도 하고 마냥 같은 스피드로 무한질주가 아니라 더러는 걸리기도 하는 것이 이상도 하였다. 얼마쯤 가다보니 왼쪽으로 사막에 그림도 그려져 있고 더 나아가서 보니 바위섬에 그 많은 새는 어디서 왔는지 ..물개 또한 어떻게 모아졌는지 온통 하늘위에 ,섬의 바위위 기암절벽에, 새 새 새 그리고 소리 지르고 있는 물개 떼를 어찌 설명 할 수 있으랴? 새들의 군무를 보면서 자연과 공생하는 동물들의 삶에 대해서 기이함을 느낀다.
우리도 이름 하여 고등동물이 아닌가? 참으로 멋진 빠에스타섬 일년에 한번씩 동물들의 배설물을 수거하여 비료로 쓴다고 한다. 그래서 평상시에는 감시인도 있다하더니 창으로 보이는 문에서 우리에게 잘가라고 손을 흔들고 있네. 그의 고독이 문득 생각남은 어찜 인고 .아름다운 새들의 보금자리여 !물개들의 반상회장소인 섬을 떠나면서 그런 곳도 있다니 하고 느낌표 무수히 찍다가 돌아간다. 다시 그 부두로 돌아와서 아침으로 어죽을 주기에 고추장 넣어서 먹으니 맛있게 한 그릇을 비우고 나서 나의 견해로는 고추장이야 말로 국제적인 장류의 선두주자임을 ....인정하게 된다. 이음식 저음식 먹기에 어려운 것도 고추장으로 해결 할 수 있음을....한국 사람은 안다. 다시 버스를 타고 나스까로 이동하여 나아간다.
조종사 빼고 다섯명씩 조를 짜서 우리 경비행기에는 유태영, 김영귀, 김봉선, 김혜명, 김혜경 함께 타고 기분 좋게 출발을 하였는데 어째 머리가 기분이 안 좋다는 신호를 보내는데
어쩔 것 인가. 참고 이 그림 저 그림 훑어보면서 어떤 것은 세 번도 반복해 보고 조종사는 설명하느라 소리 지르지, 비행기는 작아서 흔들림이 크지 ,헬리콥터 소리는 시끄럽기가 정신없지, 양 날개를 바꾸어 가면서 저공비행 했다가 오르락 내리락 하지 그야말로 있는 정신도 들락 날락 하는 상황에서 갑자기 김영귀씨 손들어 GO 라고 외친다.
속으로 그랬지 어디를 또 가자는 거야. 속도 안 좋은데 계속 GO표시를 하니 참 갑갑한데 .“아아 참아야 한다기에 눈물로 보냅니다. 여자의 일생.”.그러나 그의 아들 태영 씨가 눈치를 채서 조종사에게 말하더니 드디어 우리는 중도하차하기로 결정하여 BACK TO THE STATION 하는 중에 문득 내려다보니 어머머머 나스까 땅위에 한글로 씌여있네. “호기심”이라고 아니 무슨일이야 대체 호기심이라니 .이런 곳에 저런 글귀를 남겨서 어쩐다는 것이야. 오매 창피스러워라. 사고없이 도착하여 보니 많은 여자들은 힘이 들었노라고 말 하두만 .다행이여 우리도 그 등수 안에 물어볼 것도 없이 당당하게 들었으니. 지금 말이지만 나스까 경비행기 탄다는 아지메 있으면 내가 말릴 것이여. 구경도 제대로 못하고 대단히 힘들 일이 될 것이니 사서 고생하지 말라고. 가이드선생에게 말했다 .그 잘난 한글 나스까 라인에도 있더라고 어찌 그것도 보셨냐고 보기 어려운 일 하셨다고 말하시네. 모방송사에서 그 글자 박아논 덕분에 현지 경찰서로 잡혀 갔다나 어쨌다나 그래서 봐주기로 하여서 그 문제가 넘어 갔다나 .내말이 다 맞는 것은 아니고 나도 들은 말이지만 어째 그런 글을 새길 연구를 하였는지. 위장의 흔들림 속에서도 눈은 밝아서 남 먼저 내다보는 그런 사람임을 인정받게 되었지만. 어째 찜찜 하구만...말이나 글은 해야할곳과 적혀져야할 때와 장소가 있는 법 인것을.....
29일
리마를 출발하여 꾸스꼬 공항에 당도하니 고도가 3400m라서 갑자기 숨이 막혀온다고 그러시네. 우리는 떠나기 전에 예방약을 먹은 이유인지 별문제가 없어서 다행이었지만 두통과 숨참 그리고 기분 나쁨이 교대로 나타나는 사람이 많다고 호소가 빗발치고 있구만 그려.
기차역으로 이동하여 가는 중에 가이드 미쓰 권이 사준 알도 굵은 옥수수를 먹으면서
“맛도 있네, 크기도 하네, 따뜻하니까 더 좋으네 ”하면서 마주앉아서 얘기하면서
여유만만으로 주위도 보면서 화기애애하게 즐거움을 싣고서 기차는 잘도 달려간다.
마츄피츄역에 내리니 비오시네 .블루칼라의 우의를 덧입고 우산 들고 산으로 올라간다.
안개 속에 서있는 마츄피츄. 세계의 불가사의라고 어릴적부터 책에서 배웠는데 그곳에
와서 내 눈앞에 서있는 마츄피츄를 보는 신기함이여! 어찌하여 지금 이곳에 내가 와 있는것인가? 참으로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는데 마츄피츄가 나를 보고 서있네. 그러나 마츄피츄는 수줍은 새색시 마냥 부끄러움이 많아서 안개로 단장을 하고 있다. 서서히 옷을 벗어 가는 모습을 본다. 다시 긴긴 머리로 휘감겼다가 풀어졌다가를 반복하면서 자신을 내어 보이기
시작한다. 아!놀라움이여, 신비로움이여! 그리고 부르고 있네 나를 향하여 다가서라고 발디뎌 밟아보라고 .. 아름다움이여! 견고함이여 ! 주인들은 어디를 가고 방문객들로 그곳은 넘쳐나고 있었다. 어디간들 그러하지 않으랴만 여기서 살든 사람들의 지능은 얼마 였을까? 어떻게 이런 건축물들을 남겨서 아직도 건재하고 든든히 서서 새로운 사람들과 교제하고 있는 것 일까? 언제고 어느 때고 어디서고 문화는 이어져가고 대를 이어가면서 그들을 연구하여 그 속에 들어가서 동화가 되는 것을...그들은 왜 기록을 남기지 않았을까?
자기들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함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그 사람들은 누구일까?
나는 무어라 할말이 없다. 그냥 보고 느끼고 놀랄뿐 .....감동은 너무 커서 글로 적을 수가 없고 언어의 한계를 느끼므로 누군가 물으면 나는 말하리라 .가서 보라 .느끼고 숨쉬어보라
그러면 알 것이고. 인정 할 것이다. 나의 말없음의 이유에 대하여. 오르고 내리고 살피고
만지고 생각하고 오감을 총동원하는 관광을 지금 하고 있다. 내려오는 버스에서 보니 대여섯살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우리는 버스 안 에서 달리고 그는 발로 뛰기 시작한다. 여기 저기서 우리보다 먼저 도착하여서 손을 흔들더니 마지막 구간에서는 차에 올라와 동정을 불러 일으키는 목소리로 말하네. “굳바이. 아디오스. 사요나라”. 그래서 우리가 누군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니까 하니 그 아이가 외치듯 말한다.” 안 녕 히“ 어떤 시청자는 울기도 하시고 조금씩 거두어서 그 아이에게 주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저리 잘 달리면 커서 마라톤선수도 될 것인데 그리 되었다는 기사가 아직 나지 않았으니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 있는 사람이 없는가? 하고 의문이 들기도 한다만 내 걱정 할 바 아니니..우리는 우루밤바강을 지나 다시 꾸스꼬로 돌아 와보니 잉카의 문명은 년대를 거슬러 올라가고 저녁 먹으러 갔다가 2차로 따라오든 사람들이 길을 잃어 버려서 가이드는 들락날락 하는 가운데 밤에 옛 성당도 보고 12각 32각의 돌을 본다. 도시 계획화된 꾸스꼬를 보면서 나는 문득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색색의 치마를 입고 모자 쓰고 그렇게 늙어가고 싶다. 자연 속에서 .꾸스꼬의 한복판에 서보라. 그대도 그런 생각을 하리라 .나처럼 떠나기 싫은 편안한 도시를 기억하리라....마음속에서 오랫동안..
30일
꾸스꼬를 출발하여 푸에르토 말도나도로 가는 기내에서는 비행기 오르기만 하면 주는
주스 한잔도 없네 .아무리 시간이 짧다 하지만(30분)비행기 타고 물도 못 얻어먹은 곳으로 말도나도를 기억 하리라.공항에 내리니 후끈한 열기가 전신을 휩싸고 돈다. 게다가 마중 나온 차를 보았더니 창 달릴 곳을 손 넣어 보았더니 문도 없고 나무의자로 시원한 차내 분위기에 모두 깔깔거리고 웃는다. 그리고 힘든 꾸스꼬 에서 내려왔으니 숨쉬기에도 좋았으리라. 얼마간 가다가 관광회사에 들러 보니 밀림지대로 구경 가는 사람이 많으네.
시장에서 과일과 물과 필요한 물품을 사서 배에다 싣고 떠난다. 그래서 노래 불렀지 순풍에 돛달고서 어서 떠가자 .서산에 해 지면은 달 따온단다.
두둥실 두리둥실 배 떠나가네. 물 안 맑은 강 위로 배 떠나가네.
우리가 묵을 로찌에 도착하여 와따까메라는 새 이름이 붙은 방을
배정받아 들어서니 한쪽면만 벽으로 되어있고 온통 모기장으로 도배를 해 놓았두만
시원도 하라구. 그러나 역시나 덥지비 발목을 넘는 장화로 신을 갈아 신고서
아마존 정글지역 원숭이 섬을 보러 가는 길에 역시나 선택받은초선(조선)사람들은
머리도 비상하지. 집에서 가지고온 모기향을 세분화하여 각 마디마다 불을 붙여서
모기가 뜯어먹고자 기다리는 밀림 속으로 냄새를 풍기면서 흔들면서 다니니
모기는 멀리로 도망가고 원숭이는 바나나 먹을 려고 나무에서 내려오고 정글북이 떠오르네.
한참을 설명 들으면서 다니다가 돌아오는 길에 외국인들을 만나서 연기 나는 모기향을 선물로 안기고 롯지로 돌아왔다. 질퍽한 밀림 속을 장화신고 다녔으니 얼마나 좋은가?
작은 것이지만 준비되어져 있음은 좋은 것인것을....
롯지의 매니저 할베는 인상도 좋으시네 .방안에 있는 그네에 누워 흔들리면서
노래도 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말도나도의 달밝은 밤에 에코아마조니아 롯지 에서
처음으로 캠프파이어를 한다네. 막강한 힘의 페루가이드 아저씨덕분에 둥글게 둘러앉아
먼저 노사연의 “만남을 부른후 노래도 하고 춤도 추다가 짱언니의 사회로 간단한 게임도 하고 스웨덴에서 페루까지 유학 온 잘생긴 총각들과도 어울리고 그러다가 봉선아씨 팔을 무엇이 물었는지 통통 부어서 나무장작은 불이 훨훨 잘 타고 있는데 우리는 돌아왔다. 방으로
봉선 아씨 왈 혹여 물린 것으로 인하여 어려운 일에 봉착하거든 자기 유산으로 어찌 어찌 하라고 유언을 미리 하길래 여러 증인을 세우겠노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나저나 물린데가 덧나지나 말아야 하는데..방안에서도 밤새 모기향을 피워놓고 잠 잔후 아침에 일어나 옆집의 선화씨를 만났더니 방안에 실뱀이 들어왔더라고 하여 눈들이 동그래 지기도 하였다.
31일
다시 배에다 짐을 싣고 말도나도의 롯지를 떠난다.어제 씻은 옷들이 덜 말라서 며칠 가지고 다니면 천이 변할 것 같아서 고민하다가 바람불고 볕좋은 뱃전에서 등에 빨래를 지고 말리기로 결정 한 후에 .어디보자 안전핀도 있고 종이 집는 집개도 있고 그리하여 짱언니는 펄럭이는 국기마냥 면바지 걸어서 말리고. 배를 탔으니 풍악을 울려야지.
“퐁당퐁당 사람을 던지자. 누나몰래 미남을 던지자. 물속으로 걸어가서 누나 손을 만져라.....부모님이 없을때 일을 만들자 부모님이 놀라서 결혼시키게”작사가 박퐁당 교수는 연신 우리를 보시네. 합창을 함께 하실 려고 일흔의 나이가 무색하게 가곡에서부터 트롯트까지 종횡무진으로 넘나드는 노래 실력에 브라보 브라보 퐁당박사의 “청춘아 내 청춘아 어디 갔느냐”?...이다. 퐁당 박사님의 청춘 브라보!
새해가 시작 된지도 벌써 한달이 되었네. 그래서 나또한 5학년9반이 된 것을....
비행기타고 위에서 굽어본 밀림 우거진 말도나도를 떠나 아름다운 해변도시 리마에 도착하여 연인들이 자주 간다는 에로스공원에 앉아 둘러보니 한낮에도 젊은이들이 둘씩 앉아서 사랑을 하고 있었다.“사랑은 어떻게 네게로 왔는가..바람처럼. 햇볕처럼 아니면 꽃바람처럼 왔는가” 릴케의 시가 생각난다. 자유시간이 주어져서 익산의 서동왕자와 그의 아내 선화공주 ,봉선아씨와 짱언니, 혜명이와 나 바다가 훤히 보이는 멋진 카페에서 차 한 잔 마시고 태권도 3단이라는 잘생긴 서비스맨과 이야기도 하면서 남국의 남은 시간들을 보내기도 하였다.페루의 버스기사는 친절도 하시지, 인상도 좋으시지, 인사도 잘하시지, 본적도 있는 것 같지. 두루두루 좋아서 손잡고 반갑게 그리고 서운하여 인사를 한다. 아디오스 마이프렌드라고 페루에서 보낸 일정들이 정말 활기차고 신나고 즐겁게 보냈는데 잊지 않으리라 .그러나 다시 오리라고는 약속하지는 못하리라. 너무 멀어서 비행기 너무 많이 타서 그러나 아름답고 멋진 페루...꾸스꼬...마츄피츄. 말도나도 나스까 그리고 그곳사람들을 기억하리라 .나와 함께 했든 날을...추억하리라. 내 오학년 시절의 그 힘든 시간 중에 느낀 해 낼수 있었다는 자신감을..준 남미에서의 지나버린 몇날들을 ..이밤이 새기전에 나는 다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리라. 나 돌아갈 집을 향하여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기다리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으로 .......
2월1일 리마를 출발한 비행기는 흔들리고 있다.
그래도 중간자리가 하나 비어서 다리라도 뻗고 잠을 청해본다.
연착을 하여서 내리자마자 LA공항에서 바쁘게 다니면서 티켓팅을 하고 비행기에 오른다.
얼마를 간지도 모르게 흘러가다가 운동하러 뒤쪽으로 나가서 몸을 풀고 있는데 누군지도 모르는 손이 내 어깨를 주무르고 이리저리 안마을 하여 주는데 얼마나 고맙든지..그리고 참 시원 하였다. 주님이 남자천사를 보내주셨나? 자리로 돌아와 실내가 조도가 낮아졌길래 나도 주섬주섬 꺼내서 피부건조를 막고자 얼굴에 마스크 팩을 부치고 얼마간 있었다. 시원도하고 기분도 상쾌해지네. 다음에 비행기 탈때도 애용 해야겠다. 피부에게도 평안과 건강을.
허리 펴고 앉아서 기운동을 좀 하다가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그리고 스스로 다짐하였다. 더 나이 들기 전에 멀리로 다녀오리라. 아직 가지 못한 아프리카, 몽고, 인도, 중동으로 여행초반에는 힘들어서 앞으로 남은 여행은 아니 가리라 하였지만 극기 훈련인 남미도 다녀왔는데 어찌 중단하리. 기운을 내서 더 둘러 보리라. 그리고 즐기리라. 내 남은 젊은날을...그리고 더 넓혀보리라. 내 마음을. 여행기도 다시 쓰리라. 그러나 주님이 허락하시면 그리 할수 있으리라. 제 뜻대로 마옵시고 주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2월2일
저녁 다섯시
나는 다시 인천공항으로 무사히 도착하였다.
긴긴 여행을 즐겁게 마치고 손잡아 흔들면서 굳바이를 말하고
17일간의 여행의 대미를 기쁘게 끝맺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