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리산리(法) : 본래 동면 지역으로서 가리산 아래 있다고 해서 가리봉, 가리산이라고 하였는데 1916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우풍개, 젓바치, 굴아우를 병합하여 가리산이라 하고 군내면(인제읍)에 편입되었다.
◆ 가리봉1 : 가리산
◆ 가리봉2 : 가리산리
◆ 가리산(加里山) : 가리산리
◆ 굴아우 : 가리산 서쪽에 있는 마을로 산에 바위굴들이 많이 있다.
◆ 대맥이 : 대목이
◆ 대목이 : 가리산 동쪽에 있는 마을로 대목이 고개 밑이 됨.
◆ 대묵이 : 대목이
◆ 안가리산 : 가리산 안족에 있는 마을
◆ 옥녀탕(玉女湯) : 대목이 큰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으며 둘레는 한평 정도이고 수심은 3m 정도이며 튼 길에서 동쪽 10리 부근에 있다.
◆ 우풍포(愚豊浦) : 우풍개
◆ 젓바치 : 전나무가 무성했던 마을
◆ 진무대(陳茂垈) : 진무터
◆ 하령산 고개 : 하우고개2
◆ 하영산 고개 : 하우고개2
◆ 하우고개1 : 하우고개 밑에 있는 마을로 하우현이라고 한다.
◆ 하우고개2 : 젓바치에서 덕적동으로 넘어가는 큰 고개로 옛날에 두 사람이 싸우고 원님에게 소송을 하러 가다가 이 고개에서 화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 하우현(下雨縣) ; 하우고개1
◆ 회전동(檜田洞) : 젓바치
<인제읍의 유래> 상동리
남북리
합강리
가아리
덕산리
덕적리
고사리
원대리
하추리
귀둔리
가리산리
군의 소재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본래 현내면(縣內面)이라고 하여 하도리(下道里), 상도리(上道里), 덕산(德山), 덕적리(德積里), 청계동(?溪洞), 고사동(古沙洞), 7개리를 관할하였는데 1906년에 군내면(郡內面)으로 고치고 상도(上道), 동(東), 남 (南), 북(北), 합강(合江), 덕산(德山), 니(泥), 가아(加兒), 덕적(德積), 고사(古沙), 차평(車坪)의 11개 里로 개편(改編)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行政區域) 통폐합에 따라 동면(東面)의 원대(院垈), 하추동(下楸洞), 이탄(耳呑)을 편입(編入)하여 귀둔(貴屯), 하추(下楸), 원대(院垈), 가리산(加里山), 고사(古沙), 남북(南北), 상동(上洞), 합강(合江), 가아(加兒), 덕산(德山), 덕적(德積)의 11개 리로 개편하고 1916년 인제읍(麟蹄邑)으로 고쳤다. 1948년 38˚선이 생기면서 38˚선 이북 10개 리가 共産 治下로 넘어가고 38˚선 이남 원대리는 홍천군(洪川郡) 신남면(新南面)에 편입되었다가 1951년 에 다시 편입되어 11개 리를 관할하게 되었으며, 1979년 5월 1일 대통령령 제9409호에 의거하여 읍으로 승격하였으며 행정리(行정리)는 19개리다. 동쪽으로는 양양군 서면(西面), 서쪽은 남면(南面), 남쪽은 기린면(麒麟面)과 남면 북쪽은 북면에 닿아 있고 군 단위 기관이 집중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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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동리(法) : 본래 현내면(縣內面), 군내면(郡內面) 지역으로 상도리(上道里), 하도리(下道里), 동리(東里)로 구분되었으나 1916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를 통합하여 상동리(上東里)로 개칭하였다. 행정리는 5개리이다.
◆ 기룡산(起龍山) : 인제읍의 진산으로 그 모습이 용이 업드려 있는 것 같으므로 복룡산(伏龍山)이라 하였는데 그 후에 엎드려 있는 용보다 일어나는 용이 낫다하여 기룡산(기룡산)이라 고쳤다.
◆ 댕댕이 버덩 : 남북리(南北里)와 경계가 되는 산부리 끝에 있는 버덩으로 댕댕이가 많았다고 한다. 현재 한전출장소가 위치한 곳.
◆ 명당마루: 상동리 앞에 있는 큰 들로 명당의 집터가 있다고 하며 경지면적이 일만여평이다.
◆ 복룡산(伏龍山) : 현재의 기룡산(起龍山)으로 와룡산(臥龍山)으로도 불리웠다.
◆ 비봉산(飛鳳山) : 내린천(內麟川) 건너 산으로 봉이 날아가는 모양이라서 붙여진 산이름이다.
◆ 산정터 : 내린천(內麟川) 건너 산 위에 있던 정자터로 경치가 좋아 놀이터로도 이용된다.
◆ 상도리(上道里) : 상동리(上東里)를 관통하는 국도를 중심으로 해서 남쪽의 길 윗마을을 일컬으는 이름이나 지금은 쓰여지지 않는다.
◆ 상도리장(上道里場) : 인제장(麟蹄場)
◆ 상동(上東) : 상동리(上東里).
◆ 상두 : 상동(上東)의 변성이름이나 현재는 한 사람도 사용하지 않는다.
◆ 시장께(市場) : 인제장(인제장)이 서는 마을.
◆ 오사희(烏斯回) : 중세기 이후 인제가 맥국의 영향권에 있을 당시의 이름
◆ 영소현(靈昭縣) : 조선시대초 사용했던 인제현의 이명.
◆ 옥토랑 : 명당마루에 있는 봇도랑으로 지금은 새마을 사업으로 복개가 되었다.
◆ 와룡산(臥龍山) : 기룡산(起龍山)의 옛 이름으로 복룡산(伏龍山)이라고도 불렀다.
◆ 읍창(邑倉) : 조선시대의 쌀 창고로 1759년 당시에 그 규모가 29간이나 되었다.
◆ 인제(麟蹄) : 옛 지명은 저족(猪足), 희제(?蹄)라 하였으나 돼지보다는 기린이 영물스럽다하여 940년경에 인제로 개칭하였다.
◆ 인제향교(麟蹄鄕校) : 본래 상동리(上東里) 북쪽에 있던 것을 광해군때 현감 이치(李峙)가 서쪽으로 옮겼다가, 순조때 현감 신진하(申鎭夏)가 다시 동쪽으로 옮겼는데 1934년 홍수로 인하여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 인제현(麟蹄縣) : 태조 23년에 희제현을 인제현으로 개칭하였다.
◆ 저족현(猪足縣) : 인제의 옛 지명으로 지형이 돼지발족 같이 생겼다 하여 지은 이름이다.
◆ 하도리(下道里) : 상도리의 아랫 마을
◆ 희제현(?蹄縣) : 선덕왕 6년에 저족현을 희제현으로 개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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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리(法) : 본래 동면지역인데 1916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살귀미, 조림이, 금발이, 뒤울을 병합하여 남북리(南北里)라 하고 군내면에 편입되었다. 남리(南里)와 북리(北里)를 병합했다 해서 남북리(南北里)라 명명하였다. 행정리는 2개리다.
◆ 가넷고개 : 남북리에서 남면(南面) 건이원(建伊院)으로 가는 고개로 1958년 군부대에서 도로를 확장하고 고개마루터에 "군축령(軍築嶺)"이라 새긴 석비를 세워 지금은 군축령(軍築嶺)으로도 불리워진다.
◆ 가로교(加路橋) : 가넷다리, 군축교 이전의 소교량으로 1964년 12월에 놓았던 목조교(木造橋) 였으며 길이는 190m였다.
◆ 갯골 : 남북리(南北里) 서북쪽 긴 골짜기 안에 있는 마을
◆ 갯골칠반 : 갯골팔반 동쪽 마을로 행정구역상으로 7반이였으나 지금은 폐동되고 1가구만 농사철에 기거를 하고 있다.
◆ 갯골팔반 : 갯골 막바지에 있는 마을 이였으나 화전정리 사업으로 폐동되었다.
◆ 검발리(劍發里) : 금바리
◆ 경노정(敬老亭) : 군축령고개 옆 산에 있는 정자로 육군 제3군단장 오덕준(吳德俊) 장군이 노인들을 위하여 1958년 8월에 건립하였다.
◆ 군축교 : 가넷다리의 새 이름
◆ 금바리 : 살귀미 남쪽에 있는 마을로 검발리라고도 부른다. 옛날에 사금을 바리로 실어 냈다고 전한다.
◆ 남리(南里) : 남북리 남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가운데 돌무더기가 곳곳에 담처럼 쌓여 있었다고 전한다.
◆ 남바우뜰 : 남북리 남쪽에 있는 돌
◆ 냉꼴 : 어름냉골이 줄인 말
◆ 담안 : 남리의 이명
◆ 댕댕이 : 남북리 북쪽 기룡산(起龍山) 있는 골짜기로 댕댕이가 많았다고 전한다.
◆ 동리(東里) : 남리의 동쪽에 있는 마을
◆ 뒤울 : 남리 뒤에 있는 마을
◆ 바우골 : 비봉산 후미에 있는 골짜기로 바위가 많은데 연유하여 부르는 지명
◆ 범골 : 남리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부터 호랑이가 많이 출현하여 범골이라 하였다.
◆ 북리(北里) : 남리에서 북향마을
◆ 사구미(沙丘尾) : 살귀미
◆ 사구미교(沙丘尾橋) : 남북리 본 마을과 살귀미를 연결하는 교량으로 168m이고 1989년 12월에 준공되었다.
◆ 사대(寺垈) : 절터
◆ 산귀미 : 살귀미를 말하며 옛날 맛있는 과일이 많이 생산된다고 해서 산귀미(産貴味)라로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으나 강안(江岸)의 형세로 보아서 사구미(砂丘尾)가 타탕한 지명이다.
◆ 상도리(上道里) : 상동리의 상도리와 이접한 마을로 경계를 분명히 지울 수 없으나 1759년 당시(현내면 당시의 행정리)에 93호에 366인 거주하였다.
◆ 서리곡(西里谷) : 서릿골
◆ 서릿골 : 남북리 서쪽에 있는 산골짜기로 안막에는 '백련정사(白蓮精舍)"라는 절이 있다.
◆ 시장께 : 시장이 서는 상도리 쪽에 있는 마을
◆ 아미산 : 인제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경관이 빼어나 1990년 2월 19일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 어름냉골 : 갯골 입구에 있는 보현사 경내에서 나오는 샘으로 얼음같이 차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용소(龍沼) : 조림이 앞에 있는 소(沼)로 용이 있다하여 용소라 부르고 지금도 일부 사람들이 이 소 부근에서 부정한 짓을 하면 용이 노하여 비를 내리게 한다고 믿어 가뭄이 계속되면 이곳에서 제를 올린다.
◆ 인제교(麟蹄橋) ; 갯골 어구에 있는 다리로 1932년에 놓았으나 인제 시가지 도로 확포장 공사로 1989년에 확장했다.
◆ 재우덕(在隅德) : 절터 북쪽에 있는 마을
◆ 절터 : 살귀미 동남쪽 산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절이 있었다.
◆ 조림리(照臨里) : 조림이
◆ 조림이 : 금바리 서북쪽에 있는 마을
◆ 지소 : 조림이 서쪽 가로리로 뻗어있는 기다란 소(沼)
◆ 태극공원(太極公園) : 경노정이 위치한 주변, 오덕준(吳德俊) 장군이 육군 제 3군단장으로 재직시 이곳에 경노정을 건립하고 주변에 약간의 조형물을 설치하고 태극공원(太極公園)이라 명명하였는데 지형이 태극형을 이룬데 연유한다.
◆ 팔봉산(八峯山) : 조림이 뒤에 있는 산으로 여덟개의 봉우리를 이루고 있다.
◆ 포곡(浦谷) : 갯골의 한자 표기명
◆ 하도리(河道里) ; 상동리(上東里)의 하도리(下道里)와 인접한 마을로 1759년 당시(군내면 당시 행정리)에는 120호에 518인이 거주하였다.
◆ 화장터(火葬垈) : 군축령 선착장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화장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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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강리(法) : 내린천(內麟川)과 소양강(昭陽江)이 합하는 곳이 되므로 합강(合江)이라 하고, 또는 합강정(合江亭)의 이름을 땄다고도 한다. 1916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평리(泥坪里) 일부를 병합하였다. 행정리는 3개리다.
◆ 검은소 : 합강리 서쪽에 있는 소(沼)로 깊어서 물빛이 검게 보인다.
◆ 느티나무께 : 느티나무가 있는 마을로 나무의 둘레가 15m가 넘고 수명은 500여년이 넘었으며 보호수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또 이 느티나무는 영험하여 해로운 일을 하면 마을이나 나무를 해친 사람에게 재앙이 따른다고 한다.
◆ 덕산다리 : 소열다리
◆ 된숨이 : 된숨이 버덩
◆ 된숨이 버덩 : 합강리 앞 합강되는 사이에 있는 약 2천평의 버덩으로 양쪽으로 강물이 흘러서 섬처럼 떠 있었으나 지금 수해로 모두 씻겨나가고 돌무더기만 남아 있다.
◆ 리빙스톤교 : 소일평과 덕산리를 연결하는 다리. 6.25 당시 인제지구 한미 합동 작전 중 리빙스톤 중령(당시 포병대대장)이 이끄는 포병 병력이 작전상 후퇴를 하게 되었는데 그 해가 1951년이었다. 홍수로 인하여 범람하는 급류를 건너지 못한 관계로 많은 인명과 보급품, 그리고 장비의 손실을 보았으며 리빙스톤 중령은 중상을 입고 야전병원으로 후송되어 치료 중 사망하였는데 임종 직전에 부인이 입회한 자리에서 이곳에 다리를 놓아 줄 것을 유언으로 남겨 부인이 놓은 다리로 리빙스톤교라 명하였다. 당초에는 교량가설 공사를 미군부대에서 맡았으나 강우량이 너무 많아 공사 추진이 불가능함을 판단하고 원대로 복귀하고 한국군인 3개 중대병력이 투입되어 가설하였다. 당초에는 아이빔 목재를 깔아 가설하고 붉은색 칠을 하여 붉은 다리로도 불려진다. 현재의 교량은 1970년에 육군 제1107야전 공병단에서 가설한 것으로 길이가 148m에 달한다.
◆ 만호대(萬戶垈) : 만호대
◆ 만호터 : 된숨이 남쪽. 강물이 합류되는 그 안 산에 있는 만호첨사의 터로 성을 쌓았던 흔적을 찾아 볼 수가 있다.
◆ 물안골 : 소열이와 이평리(泥坪里) 사이에 있는 골짜기
◆ 미륵(미륵) : 합강정 터에 있는 돌부처. 나무장사를 하던 박명천(朴明天)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강물에 빠져 있으니 건져달라"하므로 이상히 생각하여 헤엄을 잘치는 김성천(金聖天)에게 부탁하여 강물 안을 찾아보니 빛을 내는 큰 돌기둥이 있으므로 건져내어 부처를 만들어 집을 짓고 모신 뒤로 모든 일이 잘되어 큰 부자가 되었을 뿐 아니라 자식을 못 낳는 여인이 정성으로 빌어 아들을 얻은 뒤로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 미륵천(彌勒川) : 합강리 앞강의 옛 이름
◆ 배채계곡 : 벼챙이 계곡을 최근에는 배채계곡이라고 부른다.
◆ 불근다리 : 리빙스톤교
◆ 소열다리 : 리빙스톤교
◆ 소열이 : 합강리 북쪽 내린천 변 들 옆에 있는 마을
◆ 소일평1(消日坪) : 소열이
◆ 소일평2(消日坪) : 소열이 앞에 있는 들로 5만 7천평에 달한다.
◆ 옷바치 : 옷밭
◆ 옷밭(옷밭) : 만호터 아래 내린천 강변. 옷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 이평리(泥坪里) : 이평이
◆ 이평이 : 소열이 북쪽 들 옆에 있는 마을로 진흙 구렁이었다.
◆ 절골 : 소열이 서쪽에 있는 산골짜기로 절이 있었다.
◆ 중앙단(中央壇) : 현재 합강 정자가 위치한 곳에 옛날에 제단이 있었다. 이곳은 강원도의 중심지로 조선시대에는 가뭄이 들거나 질병이 만연할 때면 도내 26관의 관원(현재의 시장·군수)이 이곳에 모여 제례를 올렸다고 전한다.
◆ 합강교(合江橋) : 합강배터에 놓여진 다리로 1985년 원주지방국토관리청 시행으로 (주)삼호가 시공하였으며 길이는 170m에 달한다.
◆ 합강배터1 : 합강배터 앞에 있는 마을
◆ 합강배터2 : 합강정 앞에서 덕산리로 건너다니던 나루터
◆ 합강정1 : 합강리
◆ 합강정2 : 합강리에 있는 정자
◆ 합강정진(合江亭津) : 합강배터
◆ 합강정터 : 합강 동쪽 강가에 있는 정자터로 전망이 매우 좋아 "놀기 좋기는 합강정, 넘기 좋기는 거니고개(홍천군 두촌면)"라는 노래도 있다.
◆ 홍진포(洪津浦) : 합강정 앞강에 있는 포구의 옛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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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아리(法) : 본래 개면이. 가면이 또는 가아면촌(加兒面村)이라 하였는데 1961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용숫골, 다소골, 진두루, 반쟁이, 갈밭구미, 텃골, 솔정지를 병합하여 가아리(加兒里)라 하였다. 행정리는 2개이다.
◆ 가면이 : 가아리
◆ 가아면(加兒面) : 가아리
◆ 가아면촌(加兒面村) : 가아리
◆ 갈밭구미 : 새말 남쪽 모퉁이에 있는 마을
◆ 개면이 : 가아리
◆ 광치(光峙) : 조선시대 중엽에 이르기까지 불러오던 광치령(光峙嶺)의 본명이다.
◆ 광치령(光峙嶺) : 작은텃골에서 양구군(楊口郡) 남면 광치동(光峙洞)으로 가는 큰 고개로 가아면에서 질러가는 길도 있다.
◆ 노전평(盧田坪) : 갈밭구미
◆ 다소곡(多小谷) : 다소골
◆ 다소골 : 진두루 북쪽 산골짜기 안에 있는 마을
◆ 대터골 : 큰 텃골
◆ 반장(半場) : 반정(半程)이라고도 불리면 상촌(上村)과 하촌(下村)사이 거리의 반절이 되는 곳에 있는 마을
◆ 반장이 : 반장, 반정
◆ 상촌(上村) : 가아리 윗쪽에 있는 마을로 새덕이, 용숫골, 물안엣골이 딸려 있다.
◆ 새덕이 : 용숫골 밑 둔덕에 형성된 마을
◆ 새말 : 반장이 남쪽에 있는 마을로 양구로 가는 길가가 되는데 술집이 있었다.
◆ 새술막 : 새말
◆ 소허곡(小墟谷) : 작은텃골
◆ 솔정지 : 갈밭구미 남쪽에 있는 마을로 큰 소나무와 정자가 있었다.
◆ 송정리(松亭里) : 솔정지
◆ 신덕리(新德里) : 새덕이
◆ 앙금밭 : 다소 서쪽에 있는 밭으로 토질이 녹말처럼 부드럽다 하여 부쳐진 이름이다.
◆ 연애개 : 솔정지 북쪽에 있는 냇물로 흘러 내려오는 물이 이곳에서 줄어든다고 한다.
◆ 용수곡(龍水谷) : 용숫골
◆ 용숫골 : 가면이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고 하는 용소(龍沼)가 있었다고 한다.
◆ 용수동(龍水洞) : 용숫골
◆ 작은터골 : 텃골의 작은 마을
◆ 장평(長坪) : 반장이 서쪽 들에 있는 마을로 진두루라고도 부른다.
◆ 진두루 : 장평
◆ 청계동(?溪洞) : 가아리 가운데에 있는 골짜기
◆ 청계동포(?溪洞捕) : 청계동 앞에 있는 내 이름으로 옛날에는 권대감제(權大監祭)로 유명하였다
◆ 초당꾸미 : 가아리와 이평리 경계에 있는 마을로 산 귀퉁이에 초당이 있었다.
◆ 큰텃골 : 텃골의 큰 마을로 가아리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 터골 : 가아리 서쪽에 있는 마을
◆ 하촌(下村) : 가아리 아래쪽에 있는 마을로 새말, 다소골, 큰텃골, 작은텃골을 총칭하는 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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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산리(法) : 덕산(德山) 아래가 되어 덕산(德山)이라 하였으며 1916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차평리(車坪里)를 병합하여 덕산리(德山里)라 하였으며 군내면에 편입되었다.
◆ 고춧골 : 선바우 아래에 있는 곧은 골짜기를 말한다.
◆ 광대목 : 덕산 동쪽에 있는 산인데 산의 형세가 광대가 노는 형국이라고 한다.
◆ 귀영소 : 웃말 앞에 있는 소(沼)로 모양이 구유와 비슷하다.
◆ 노로목고개 : 덕산리와 고사리의 경계 지점으로 내린천 변에 있으며 453지방도로가 개설되기 전에 바람굴 부근으로 넘어 다녔는데 그 고개가 노루목을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나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
◆ 늪둔지 : 덕산 북쪽 끝 둔지에 있는 마을이며 밤나무가 많았다.
◆ 덕봉(德峯) : 덕산리 남쪽에 있는 산으로 모양이 덕이 있어 보인다고 한다.
◆ 덕산1(德山) : 덕산리
◆ 덕산2(德山) : 덕봉
◆ 독산고개 : 양짓말에서 북면 원통리로 가는 고개
◆ 무당소 : 웃말 위쪽에 있는 소(沼)
◆ 바람굴 : 샘터와 노루목 사이에 발달된 석각이 있으며 이곳에서 찬 바람이 나와 한 여름에도 시원하다 하여 바람굴이라 하였다. 도로 확포장공사로 바람이 나온다는 석각 일부는 파손되었지만 지금도 이곳을 지나면 시원하다.
◆ 박쥐굴 : 덕산 양지마을에서 동북쪽 3㎞ 지점에 있는 자연동굴로 박쥐가 많이 서식하고 있었으며 피난처의 구실도 되었다.
◆ 사곡(寺谷) : 절골
◆ 상촌(上村) : 웃말
◆ 샘터 : 합강대교에서 노루목 고개 쪽으로 500m 지점에서 나오는 샘으로 여름에는 매우 차고 겨울에는 얼지 않는다.
◆ 선바우 : 덕산 동쪽 산 위에 우뚝 서 있는 바위이며, 바위 밑에서는 좋은 샘물이 나온다.
◆ 수변촌(水邊村) : 아랫말
◆ 수병 : 아랫말
◆ 아랫말 : 덕산 아래에 있는 마을로 내린천의 강변에 위치하였다.
◆ 양지말 : 덕산 양지쪽에 있는 마을로 양지촌 중촌이라고도 한다.
◆ 여네골 : 덕산 동쪽에 있는 마을로 냇물이 흘러오다가 이곳에 이르러 갑자기 줄어들었음에 연유하여 부른 지명이다.
◆ 연애골 : 여네골의 변성된 이름
◆ 웃말 : 덕산 위쪽에 있는 마을로 상촌(上村)이라고도 한다.
◆ 율평리(栗坪里) : 늪둔지
◆ 음지말 : 덕산리 음지쪽에 있는 마을
◆ 인골 : 덕산리 동쪽에 있는 마을로 난리때 피난처가 됐다고 한다.
◆ 인동(人洞) : 인골
◆ 장군바위 : 무당소 밑에 있는 바위로 장군이 서 있는 모습이다.
◆ 장군석(將軍石) : 장군바위
◆ 절골 : 웃말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절이 있었다. 사곡이라고도 부른다.
◆ 중촌(中村) : 양짓말
◆ 진사집터 : 양짓말 서쪽에 있으며 진사(進士) 해주 최씨가 살았던 집터를 말한다.
◆ 차평리(車坪里) : 아랫말 북쪽 들 옆에 있는 마을로 수레가 다니게 될 것이라고 해서 차평리라고 한다.
◆ 하촌(下村) : 아랫말
◆ 한양동(漢陽洞) : 음지말 남쪽 내린천변에 있는 마을로 조선시대에 한양 사람이 와서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
◆ 한양못 : 한양촌에 있었던 못으로 넓이가 4천여평에 달했지만 지금은 매몰되어 자취도 찾아 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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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적리(法) : 덕절(德節)이 있어서 덕절곡(德節谷)이라 하던 것이 변하여 덕적골 또는 덕적동이라 하였는데 1916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장승평(長承坪)과 덕산리(德山里)의 일부를 병합하여 덕적리(德積里)라 하고 군내면에 편입되었다.
◆ 간촌(間村) : 샛말
◆ 갈밭매기 : 덕적리 동쪽에 있는 마을로 갈대밭이 있었다.
◆ 고대(高垈) : 높은터
◆ 기령대(起靈垈) : 부채바위 밑에 있는 바위
◆ 노전동(盧田洞) : 갈밭매기
◆ 높은터 : 무나무텃골 북쪽에 있는 마을로 지대가 높아 붙여진 지명
◆ 더뜸이 : 덕적 동남쪽에 있는 산골짜기로 짐승을 잡기 위하여 덫을 많이 놓았었다.
◆ 덕적골 : 덕적리
◆ 덕적동(德積洞) : 덕적리
◆ 뒷말 : 덕적리 뒤에 있는 마을
◆ 등지거리 : 덕적리 남쪽에 있는 골짜기
◆ 무나무텃골 : 덕적리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나무가 무성한데 연유하여 붙여진 지명
◆ 문목곡(門木谷) : 무나무텃골
◆ 범바우 : 범바웃골 가운데에 있는 바위로 범과 비슷하게 생겼다.
◆ 범바우골 : 절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범바위가 있다.
◆ 부채바우 : 뒷말 북쪽에 있는 바위로 부채처럼 생겼다.
◆ 부채바웃골 : 부채바우가 있는 골짜기로 절이 있었다 한다.
◆ 샘바치 : 샛말 뒤에 있는 3만여평의 밭
◆ 샘밭 : 샘바치
◆ 샛말 : 장승평(長承坪)과 용부터 사이에 있는 마을. 간촌(間村)이라고도 한다.
◆ 소와골 : 샛말 동쪽에 있는 마을
◆ 솔정지 : 등지거리 아래에 있는 마을로 소나무가 많이 있다.
◆ 용부대(龍富垈) : 용부터
◆ 용부터 : 무나무텃골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덕산리 장군석에서 나온 용마가 이곳에 와서 죽었다는 설화가 있다.
◆ 우와곡(牛臥谷) : 소와골. 소가 누워있는 형상이다.
◆ 장승고개 : 장승평에서 가리산으로 가는 고개
◆ 장승평(長承坪) : 갈밭매가 남쪽에 있는 마을로 장승이 있었다.
◆ 저뜸이 : 더뜸이
◆ 절골 : 솔정지에 있는 골짜기로 절이 있었다.
◆ 한석산(寒石山) : 고사리(古沙里)와 하추리(下楸里), 덕적리(德積里)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으로 해발 1119m가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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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사리(法) : 본래 동면 지역으로서 고새울, 또는 고사촌(古沙村), 고사동(古沙洞)이라 하였는데 1916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합강리(合江里)와 하추리(下楸里)일부를 병합하여 고사리(古沙里)라 하였다.
◆ 고사동(古沙洞) : 고사리
◆ 고사촌(古沙村) : 고사리
◆ 고새울 : 고사리
◆ 굿바웃골 : 피아시 남쪽에 있는 마을로 산에 굴바우가 있다.
◆ 굿아웃골 : 굴바웃골의 변한 지명
◆ 냉정터 : 피아시 남서쪽 강변에서 샘이 솟는데 그 물이 얼마나 찬지 손을 담그고 5분을 견디지 못해 붙여진 지명이다. 생활근거는 고사리가 되지만 행정구역으로는 원대리에 속한다.
◆ 노영골 : 피아시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영골, 영곡이라고도 한다.
◆ 다래버렁 : 고새울에 있는 마을로 다래가 많았다.
◆ 대골 : 순께에서 동쪽 강 건너에 있으며 1960년대까지 민가가 있었으나 지금은 폐동 되었다. 생활근거는 고사리가 되지만 행정구역상으로는 원대리에 속한다.
◆ 명지소 : 피아시에 있는 소(沼)로 명주실 한 꾸러미가 모자랄 만큼 깊다고 한다.
◆ 미음밭 : 냉정터 옆에 있으며 항상 그늘이 져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밤골 : 방골
◆ 방골 : 노영골 남쪽에 있는 마을로 산이 사방으로 둘러있어 방처럼 생겼다.
◆ 벌바우 : 장수터 밑에 있는 바위로 벌집이 많았다고 전하나 지금은 도로확포장 공사관계로 폭파되어 사라졌다.
◆ 벌바우소 : 벌바우 밑에 있는 소(沼)
◆ 삼바치 : 텃말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삼밭이 있었다.
◆ 삼밧재 ; 삼바치에서 텃말로 넘어가는 작은 고개
◆ 삼전치(蔘田峙) : 삼밧재
◆ 섬밭 : 장수터와 원대리(院垈里)사이를 흐르는 강 안에 섬처럼 떠있는 밭
◆ 순께 : 고사리 북쪽 내린천 변에 있는 마을로 순채가 많이 자생한다.
◆ 순포 : 순께
◆ 승께 : 순께
◆ 신댕이 : 순께 앞 강 건너쪽에 있는 마을로 지금은 폐동되었다.
◆ 영곡(嶺谷) : 노영골
◆ 영꼴 : 노영골
◆ 용소(龍沼) : 장수터에 사는 韓氏가 장사를 낳았다가 화를 입을까 걱정하여 죽이었는데 이 소(沼)에서 용마(龍馬)가 나와서 주인을 찾으며 울고 다니다가 이 소(沼)에 빠져 죽었다는 설화가 전해오고 있다.
◆ 율곡(율곡) : 방골, 밤나뭇골이라고도 부른다.
◆ 장수대(將水垈) : 장수터
◆ 장수터 : 피아시 남쪽에 있는 마을로 조선시대에 韓氏 집에서 장사를 낳았는데 장사는 역적이 될 우려가 있다하여 그 부모가 죽였다고 한다.
◆ 지름바우 : 장수터 서남방 내린천 강 건너에 있는 바위로 항시 젖어 있어 미끄럽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행정구역으로는 원대리(院垈里)에 속한다.
◆ 지소 : 순께에 있는 기다란 소(沼)
◆ 창바우 : 장수터 서쪽 강변에 있는 바위로 창과 비슷하다.
◆ 텃말 : 고새울에 있는 마을
◆ 피아산고개 : 피아실 고개
◆ 피아시 : 피아실고개
◆ 피아실 : 삼바치 남쪽에 있는 마을로 피아실 고개 밑이 된다.
◆ 피아실고개 : 피아실에서 덕적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피나무가 무성했다고 한다.
◆ 피야치1(皮也峙) : 피아실
◆ 피야치2(皮也峙) : 피아실 고개
◆ 허군재 : 텃말 위에 있는 마을로 허(許)씨가 터를 잡고 살았다 한다.
◆ 허군치(許君峙) : 허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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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대리(法) : 본래 동면지역으로서 院집이 있었음으로 원터, 원대(院垈)라 했다고 전하고, 관음원(觀音院)이란 소암자(小庵子)가 있었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전해오고 있다. 1919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원대리(院垈里)라 하였다.
◆ 간촌(間村) : 샛말로 현재 원대초등학교가 있는 마을
◆ 낡은텃골 : 샛말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 내삽현(內揷峴) : 안삽재
◆ 내회동(內繪洞) : 안저울
◆ 너래물나들이 : 옹달말과 희동의 경계지점으로 물가에 너래가 많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다름고개 : 다름재
◆ 다름재1 : 박달고치
◆ 다름재2 : 박달고치에서 남전리 반장동으로 가는 고개
◆ 말거리 : 안삽재에서 기린면 토현마을로 넘어가는 고개
◆ 무등목 : 응달말 동북방향에 있는 작은 동산
◆ 물알 : 간촌아래 마을로 마을에서 흘러내리는 냇물이 내린천과 합수되는 곳을 말한다.
◆ 물앙골 : 물안골
◆ 뭔골1 : 응달말
◆ 뭔골2 : 응달말 서남간에 위치한 깊은 골짜기
◆ 꺽지소 : 양지말서 응달말로 가는 내길 위에 있는 소로 꺽지가 많아서 꺽소라고 하였으나 지금은 수해로자취만 남아 있다.
◆ 미아골 : 응달말에서 희동으로 가는 길에서 서쪽에 위치한 골짜기
◆ 바깥삽재 : 삽재 바깥쪽에 있는 마을
◆ 바깥저울 : 저울 바깥쪽에 있는 마을
◆ 박달고치1 : 윗고개 북쪽에 있는 마을로 다름재 아래가 된다.
◆ 박달고치2 : 다름재
◆ 배터께 : 장수대에서 원대리로 가는 나루터를 말하나 1976년에 교량을 설치하여 지금은 나룻배를 사용하지 않는다.
◆ 분고개 : 안저울과 바깥저울의 두 마을 중심에 있는 고개로 분치(分峙)라고도 한다.
◆ 분치(分峙) : 분고개
◆ 붕고개 : 분고개
◆ 비로꼴 : 비록골
◆ 비록골(飛鹿谷) : 지형이 사슴이 날아다니는 형상이라 지은 이름으로 응달말에서 희동으로 가는 골짜기를 말한다.
◆ 비록동(飛鹿洞) : 비록골에 있는 마을이었으나 폐동되었다.
◆ 삽재1 : 응달말의 이명
◆ 삽재2 : 삽재 마을에서 고사리의 장수터로 가는 고개
◆ 샛말 : 간촌·응달말과 원대 사이에 있는 마을 (지금의 학교가 있는 마을)
◆ 선유동(仙遊洞) : 옛날에 선녀들이 놀던 곳이라 하여 지은 이름
◆ 수침동(水寢洞) : 무안골
◆ 싸리재 : 싸리가 무성하다해서 지은 고개 이름
◆ 안두리 : 내린천이 굽이쳐 흐르는 안쪽에 있는 들이라 하여 원래는 안뜰이라 하였는데 세월이 굽이쳐 흐르면서 안두리로 변하였다. 들의 면적은 이만여평이 넘으나 실 경작지는 만여평에 불과하다.
◆ 안삽재(內揷在) : 응달말 동쪽에 있는 마을
◆ 안저울(內檜洞) : 저울 안쪽에 있는 마을로 예전에 잣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 양지말(陽地洞) : 샛말
◆ 역논 : 응달말 중앙에 있으며 면적은 천여평에 불과하다. 조선시대에 역둔전이었다고 한다.
◆ 역답(驛沓) ; 역논
◆ 와현1(瓦峴) : 욋고개1
◆ 와현2(瓦峴) : 욋고개2
◆ 욋고개1 : 원대 북서쪽에 있는 마을로 욋고개 밑이 된다.
◆ 욋고개2 : 원대리에서 남면 남전리로 가는 고개로 옛날에 기와점이 있었다고 하나 자취를 찾을 수가 없다.
◆ 외삽현(外揷峴) : 바깥삽재
◆ 외회동(外檜洞) : 바깥저울
◆ 왜갈산 : 응달말과 양짓말 사이에 있는 산으로 왜가리가 많이 서식했다해서 부쳐진 이름이다.
◆ 왜골 ; 응달말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 원대(院垈) ; 샛말과 와현 사이에 있는 마을로 원터라고도 한다.
◆ 음지동(陰地洞) : 응달말
◆ 응달말 : 삽재, 바깥삽재, 응달마을, 음지촌이라고도 하나 지금은 응달말, 뭔골이라고 부른다.
◆ 장군바우 : 장군석
◆ 장군석(將軍石) : 구한말시대 장군이 큰 반석을 옮겨 놓았다 하여 불려진 이름이며 이곳에서 좀 떨어진 곳에 굴이 있는데 6.25당시 지방인사와 경찰관들이 이곳에서 피난하였다고 한다.
◆ 저울(檜洞) : 바깥저울과 안저울을 통칭하는 이름
◆ 절골(寺谷) : 욋골과 바깥저울 사이에 있는 골짜기로 절이 있었다고 하며 지금도 3m 높이의 돌탑이 있다. 이곳에 있었던 절 이름이 문헌상에 나타나 있지는 않으나 "관음원(觀音院)"이었다는 말이 전해오고 있으며 사학자였던 故 김중권(金重權)씨는 원대리가 은리(隱里)로 표기된 고적자료를 들어 "숨은 곳에 있는 절"이라 설명하고 신라말기에 낙랑공주와 죽방부인 박씨가 머물러 있던 "둔도암"일 것이라는 해석을 한 바 있다.
◆ 정자동(亭子洞) : 정짓골
◆ 정짓골 : 안삽재에서 기린면 북리 다락구미로 넘어가는 골짜기를 말하며 옛날에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 조동(鳥洞) : 샛말, 새마을의 잘못된 한문표기로 한국독립사 하권에 실린 무장항쟁일지 내용중 "1908. 7. 1 50인 인제동북방 조동에서 교전"으로 기록된 것은 샛말의 잘못된 표기임.
◆ 조롱고개 : 외삽현에서 내삽현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고개가 낮아 조롱하며 넘는 고개라해서 붙여진 이름 ◆ 쪽박골 : 열녀 삼척김씨 묘가 있는 골짜기
◆ 천연대동(千年代洞) : 천연덕골
◆ 천연덕골 : 샛말과 욋고개 사이에 있는 마을
◆ 천연터골 : 천연덕골
◆ 청량골(?陽谷) : 내삽현과 배터께로 이어지는 골짜기
◆ 청량동 : 청량골
◆ 풍덩골 : 샛말 남쪽 골짜기
◆ 해기네터골 : 천연덕골 건너마을
◆ 학인대동(學仁垈洞) : 해기네터골로 불리웠으나 지금은 거의 사용하는 사람이 없다.
◆ 화채간터 : 응달말 중앙을 흐르는 물가를 말하며 상여집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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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추리(法) : 본래 동면 지역으로서 추동(楸洞)의 아래쪽이 되므로 하추동(下楸洞)이라 하였는데 1916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싸리목이, 농금이, 닥밭구미, 박수터, 더디미, 샛말, 검은석을 병합하여 하추리(下楸里)라 하였다.
◆ 가래울 : 하추리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가래나무가 많이 있었다.
◆ 간촌(間村) ; 샛말
◆ 갈터 : 가래울
◆ 거무세기 : 검은석의 변화된 지명
◆ 검은석 : 하추동 남쪽에 있는 마을로 검은 빛깔의 돌들이 있음
◆ 노루목 : 싸리목과 박수터 사이에 있는 고개로 노루사냥의 목이 되었다.
◆ 농금대(弄琴垈) : 농금이
◆ 농금덕 : 농금이
◆ 농금이 : 싸리목이 북쪽 산위에 있는 마을로 지형이 거문고를 타는 형국이라서 농금대라고 했다.
◆ 닥밭구미 : 박수터 동북쪽 후미에 있는 마을로 닥나무 밭이 있었다고 한다.
◆ 더디미 : 검은석 동쪽에 있는 마을로 더디밋재 아래가 된다.
◆ 더디밋재 : 더디미에서 기린면 북리 하답으로 가는 고개로 나무와 숲이 우거져 낮에도 어두워서 더듬으며 넘어 다녔다 해서 더듬이라 했다.
◆ 도대미 : 더디미의 변절된 이름
◆ 박수대(泊水垈) : 박수터
◆ 박수터 : 하추 동쪽에 있는 마을로 예전에 큰 장마로 마을이 전부 떠나가고 모래만 널려 있었다고 한다.
◆ 배나무골 : 박수터 뒤에 있는 마을로 돌배나무가 많이 있었다.
◆ 상추동(上楸洞) : 추동리 윗마을
◆ 새덕이 : 닥밭구미 옆에 있는 마을
◆ 샛말(間村) : 싸리목과 노루목 사이에 있는 마을
◆ 싸리메기 : 싸리목이
◆ 싸리목 : 싸리목에서 농금이로 가는 고개로 싸리나무가 많았다.
◆ 싸리목이 : 하추 북쪽에 있는 마을로 싸리목 고개 아래가 된다.
◆ 추동(楸洞) : 가래울
◆ 뉴항(杻項 : 싸리목
◆ 뉴항동(杻項洞) ; 싸리목이
◆ 하추동(下楸洞) : 하추리
◆ 흑석리(黑石里) : 검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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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둔리(法) : 본래 춘천부(春川府) 기린현(麒麟縣)이 있었던 곳으로 귀둔, 또는 이탄(耳呑), 이둔(耳屯)이라 하였는데 1415년 기린현(麒麟縣)의 소재지를 지금의 방동(芳東)으로 옮기면서 인제군(麟蹄郡) 동면으로 편입되고 1916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피래, 군량밭, 양지말, 용숫골, 오작골, 황골, 곤배골과 기린면 북리의 일부를 병합 귀둔리(貴屯里)라 하여 인제면(인제읍)에 편입되었다. 행정리는 2개리다.
◆ 가칠봉(加漆峰) : 기린면 진동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봉으로 해발1164m가 넘는다.
◆ 개용소: 용숫골 동북쪽 사이에 있는 작은 소
◆ 곤뱃령 : 곰뱃골에서 기린면 진동리의 강선리(降仙里)로 가는 큰 고개로 목초지가 발달되어 있는 반면 산채와 약초가 다량으로 산출된다.
◆ 곰배령 : 곤뱃령
◆ 곰뱃골 : 양지말 동쪽에 있는 마을로 지형이 곰배(고무래)같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 구렁뚝 : 귀둔에 있는 들로 구렁이졌다.
◆ 군량동(軍糧洞) : 쇠물안골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군량(軍糧)을 생산해 내는 밭이 있었다고 한다.
◆ 군량밭1 : 군량동
◆ 군량밭2 : 군량동 앞에 있는 7만여평의 밭으로 의병난 때 의병들이 양식을 쌓아 두었다고 전해온다.
◆ 군량밭 고개 : 군량동에서 쇠물안골로 가는 고개
◆ 군량전 : 군량밭2
◆ 귀둔 : 귀둔리
◆ 내우재 : 내위재
◆ 내위재 고개 : 내위재에서 쇠물안골로 가는 고개
◆ 느릅재 : 쇠물안골에서 군량동으로 가는 고개로 느릅나무가 많았었다.
◆ 대선봉(代仙峯) : 용수동 북쪽에 있는 산으로 높이가 1167m나 된다.
◆ 때방골 : 낭떠러지가 곳곳에 있어 지은 골짜기 이름이다.
◆ 말등바우고개 : 황골에서 버덩말로 가는 고개로 모양이 말등과 같은 바위가 있다.
◆ 물난바우 : 장터거리 서쪽 산꼭대기에 있는 바위로 바위틈에서 샘물이 솟아난다.
◆ 버덩말 : 양지말 옆 버덩에 있는 마을
◆ 본용소 : 용숫골에 있는 소로 폭포 아래에 있으며 용이 등천했다는 전설이 있다.
◆ 소말골 : 쇠물안골
◆ 쇠물안골 : 의병난때 의병들의 소와 말의 물을 먹이던 곳이라 한다.
◆ 쉰질매버덩 : 피래 동쪽에 있는 버덩으로 의병들이 소와 말을 쉬게 하였던 곳이다.
◆ 양지말 : 피래 서남쪽 양달에 있는 마을
◆ 역답(驛沓) : 버덩말에 있는 들로 경지면적은 3만평에 달하고 조선시대에 역둔적이었다.
◆ 오작골 : 귀둔리에서 정동쪽에 있는 마을
◆ 오작동(五作洞) : 오작골
◆ 옥답터 : 귀둔 동쪽에 있는 옥(獄)터로 기린현의 옥(獄)이 있어던 곳
◆ 용수동 : 용숫골
◆ 용숫골 : 곰배골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용소가 있다.
◆ 우마동(牛馬洞) ; 쇠물안골
◆ 이둔(耳屯) : 귀둔리 옛이름
◆ 이탄(耳呑) : 귀둔리 옛이름
◆ 장단너미 : 장터거리 남쪽에 있는 논
◆ 장터거리 : 버덩말 옆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절이 있었다.
◆ 절골(寺谷) : 버덩말 옆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절이 있었다.
◆ 점봉산(點鳳山) : 귀둔과 기린면 진동리, 양양군 서면의 경계를 이루며 해발 1424m가 넘는다. 전설에 의하면 조선시대에 어떤 사람이 이 산속에서 사주전(私鑄錢)을 만들어 냈는데 망치질 소리가 "점봉산 돈 닷돈 점봉산 돈 닷돈" 하는 소리로 들려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려 결국 관가에서 알게되어 처형을 당했다고 한다.
◆ 정당골 : 정동, 곰배골
◆ 정동(丁洞) : 곰배골
◆ 정산령(丁山嶺) : 곤뱃령
◆ 큰샘물터 : 장터거리 남쪽 산 밑에 샘이 나는 곳이며 이곳에서 산골이 났었다.
◆ 평지촌(平地村) : 버덩말
◆ 풍곡리(豊谷里) : 현내면 소재지에서 동쪽 40리에 위치한 마을로 1759년 당시에는 14호에 62명이 거주하였으나 1843년 이전에 폐동되고 지금은 지명조차 불리워지지 않고 있다.
◆ 피래 : 난리에 피난와서 이룬 마을이라고 하나 지금은 두 가구가 살고 있다.
◆ 향교둔지 : 향교터
◆ 향교터 : 버덩말 서쪽에 있는 기린현의 향교가 있던 터
◆ 황골 : 장터거리 위에 있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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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리산리(法) : 본래 동면 지역으로서 가리산 아래 있다고 해서 가리봉, 가리산이라고 하였는데 1916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우풍개, 젓바치, 굴아우를 병합하여 가리산이라 하고 군내면(인제읍)에 편입되었다.
◆ 가리봉1 : 가리산
◆ 가리봉2 : 가리산리
◆ 가리산(加里山) : 가리산리
◆ 굴아우 : 가리산 서쪽에 있는 마을로 산에 바위굴들이 많이 있다.
◆ 대맥이 : 대목이
◆ 대목이 : 가리산 동쪽에 있는 마을로 대목이 고개 밑이 됨.
◆ 대묵이 : 대목이
◆ 안가리산 : 가리산 안족에 있는 마을
◆ 옥녀탕(玉女湯) : 대목이 큰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으며 둘레는 한평 정도이고 수심은 3m 정도이며 튼 길에서 동쪽 10리 부근에 있다.
◆ 우풍포(愚豊浦) : 우풍개
◆ 젓바치 : 전나무가 무성했던 마을
◆ 진무대(陳茂垈) : 진무터
◆ 하령산 고개 : 하우고개2
◆ 하영산 고개 : 하우고개2
◆ 하우고개1 : 하우고개 밑에 있는 마을로 하우현이라고 한다.
◆ 하우고개2 : 젓바치에서 덕적동으로 넘어가는 큰 고개로 옛날에 두 사람이 싸우고 원님에게 소송을 하러 가다가 이 고개에서 화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 하우현(下雨縣) ; 하우고개1
◆ 회전동(檜田洞) : 젓바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