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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경 미
<잘 쉬다 갑니다. 땡큐>
아침에 출근해서 유니폼 어깨에 한 팔을 집어넣으려는데 낙서처럼 휘갈겨 쓴 한글이 퍼뜩 눈에 들어찼다. 선은 인터폰 위에 걸려 있는 흑판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손끝만으로 유니폼 단추를 꿰면서 석현우? 하고 나지막하게 뇌었다. 설마 이곳에서 밤을 새운 것은 아니겠지. 군데군데 털이 빠져 바둑무늬를 그리고 있는 청색 코르덴 소파에 힐끗 눈길을 던졌다. 오래 앉아 미적거리면 납작하게 눌린 털이 무두질을 한 가죽처럼 반질거리는 그곳에는 아무런 자국도 담겨 있지 않았다.
“선, 305호 장기투숙 손님 있지. 잠시 피해 있으... 단속....”
말의 어미를 채 뱉지 못하는 사장의 인터폰을 받은 것은 어제 퇴근 무렵이었다. 뒤로 웨잍, 웨잍, 하는 영어가 다급하게 얹혀졌다. 경찰이 뜬 모양이었다. 선은 카운터의 선을 뽑고 305호로 연결된 버튼을 힘주어 눌렀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발신음이 몹시 지루하게 느껴졌다. 검정 기타 집을 어깨에 걸고 방금 전 로비로 들어서는 것을 분명 보았는데, 샤워 중인 걸까? 할 수 없이 선은 엘리베이터를 탔다. 파라다이스 인에서 한인타운은 십여 분의 거리였고 그곳의 바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그가 불법체류자일 거라는 것쯤은 몇 번의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 그가 텔레비전에서 사라진 것은 꽤 오래 전이었다. 무슨 스캔들 때문이었겠지,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외투 깃을 세우고 보도블록 위에서 푸른 신호를 기다리고 서 있는 그의 브로마이드 사진은 한 때 여학생들의 책상 앞을 장식하기도 했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를 알아보았지만 노래 제목은 기억나지 않았다. 배가 고프고 쓸쓸하고 혼자였네, 라는 노랫말만 아슴푸레 떠올랐다. 벨 소리의 수위가 높아져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비상키를 꺼냈다. 찰칵, 그제야 아는 얼굴이 나왔다. 젖은 머리카락을 수건에 감싸쥐고 나온 그는 허둥지둥 바지만 꿰어 입고 선잠 깬 아이처럼 어리둥절한 낯빛이었다. 가슴에는 미처 씻어내지 못한 비누 거품이 아직도 기포를 터뜨리고 있었다.
“미안해요, 밑에 폴리스가 왔나 봐요.”
축축한 이마 아래 검은 눈동자가 경련하듯 짧게 흔들렸다. 대답 없이 그는 침대 발치에 던져놓은 스웨터를 집어 물기로 번들거리는 목에 훌렁 껴입었다. 발 밑으로 물방울이 똑똑 떨어졌다. 무심한 낯으로 돌아서기가 멋쩍어 선은 생각지도 않은 말을 불쑥 꺼냈다.
“계실 곳이 없으면 밑의 지하실에 내려가 계셔요. 그곳은 안전지대니까요.”
비상 계단으로 내려서는 그의 정수리를 잠시 쫓다가 선은 엘리베이터를 탔다.
로비에는 거구의 흑인 경찰이 사장과 얘기 중이었다. 튜브를 낀 것 같은 비대한 허리에는 두텁떡처럼 큰손이 얹혀 있었는데 바로 그 아래, 총구를 감싼 검은 권총이 삐딱하게 걸려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하이! 하고 검은 입을 쫙 열어 유난히 흰 이를 양껏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곁에 선 사장의 얼굴은 웃는 낯인지 우는 낯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단속을 핑계삼아 진을 칠 때마다 그는 앓는 소리를 했다. 사람 사는 나라는 어디고 똑같아, 저놈들 아니면 숨 좀 쉴 텐데.
세탁기에 어제 거둬다 놓은 시트를 말아 넣고 가루 세제를 쏟아 부었다. 돌돌 말린 내용물이 이쪽저쪽으로 요란하게 몸을 틀어대고 있는 것을 한참 지켜보다 선은 휴게실로 돌아갔다. 예전에는 선말고도 두어 명 이 방을 드나들었지만 이제 그녀만 남았다. 어느 날 파라다이스 인 옆에 무성한 잡목들이 뭉텅뭉텅 베어 나가고 포크레인 두 대가 마주 오가며 터를 닦았다. 족히 2미터는 되는 땅이 패이고 레미콘 트럭이 철퍼덕 철퍼덕 시멘트를 쏟아 부었다. 그때마다 잘려나간 잡목에 앉아 쉬던 까마귀들은 세차게 깃을 털며 날아올랐다. 사장은 넋놓고 구경만 할 뿐이었다.
모던하고 깨끗한 여관이 오색 풍선을 매달고 개점식을 하던 날, 카운터에서 길게 한숨을 내쉬던 사장은 하나 둘 종업원을 내보내는 것으로 손익분기점을 맞추려 했다. 그때부터 아침 식사 준비는 그의 몫이 되었다. 자동차 뒷 트렁크에 실린 모닝빵과 씨리얼, 그리고 껍질째 먹을 수 있는 검붉은 사과 한 바구니를 안고 그가 로비로 들어서면 파라다이스도 전날 밤의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깨어나 잠시 부산함을 맛본다. ‘누구든 들어와 쉬었다 가세요. 아침 햇살에 젖은 옷이 마르는 동안 따뜻한 커피를 마시세요. 누구든 이곳으로 들어오는 이는 환영이랍니다.’ 식탁을 차리면서 그는 속편한 사람처럼 응얼응얼 팝송을 읊었다.
301호, 302호, 303호... 깨끗이 도색은 했지만 싸구려 문짝임에 틀림없는 객실 앞을 스쳐지나갔다. 그녀는 오래 전부터 문자보다 기호가 편한 사람이었다. 더구나 알파벳이 나열된 서양인들의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은 상형문자 해독만큼이나 헷갈렸다. 장기투숙 손님은 305호 남자밖에 없었고 어제 겨우 두 개의 룸만 찼을 뿐이므로 선의 손은 그만큼 한갓졌다.
그의 방은 말끔했다. 썼던 수건들은 하나로 뭉쳐 문 앞에 놓아두었고 어설프긴 해도 시트도 곱게 덮여 있었다. 사이드 테이블 옆에 기타 집만 선의 방문에 길게 목을 빼고 쳐다보는 듯했다. 칙칙한 빛깔의 커튼을 제치고 창을 밀었다. 구릉지 위에 자리잡고 있는 파라다이스의 서른 개 방 어느 창이든 똑같이 내려다보이는 것은 하늘과 땅을 경계짓는, 직선으로 곧게 뻗어 있는 시멘트 도로 하나뿐이다. 사람들은 저 도로 끝에서 흙먼지를 피우면서 나타나 며칠간 묵었고 또 꼬리 잘린 도마뱀처럼 황황히 달아나곤 했다. 아침이면 1층 로비 옆에 붙은 식당에 앉아 신문을 읽고 지독히 맛이 없는 푸석푸석한 사과를 베어 물던 그들은 선에게 늘 같은 얼굴 같은 표정으로 기억되었다. 그래도 한 번쯤은 지친 어깨를 쉬었다 가기에 그리 나쁜 곳을 아니었다고, 마른 먼지처럼 더러운 이곳도 햇살 한 줌은 섞여 있더라고 생각해줄까.
소매를 걷어붙이고 카펫을 밀었다. 쓰레기통을 비워내고 욕조에 세제를 흩뿌렸다. 수세한 욕조는 막 닦은 치아처럼 윤이 났다. 수건으로 물기를 훔쳐내고 스프레이 방향제로 마무리했다. 시트를 갈기 위해 침대로 갔을 때 전화기 뒤에 삐뚜름하게 꽂혀 있는 신문 조각이 눈에 띄었다. 선은 무심코 그것을 집어 올렸다.
왕나비 3억 마리 9월말 휴스톤 관통.
오른쪽 상단과 하단에 ‘곤충의 왕이라고 불리는 왕나비의 자태’, ‘주요 식량원인 해바라기 밭을 통과하는 왕나비 떼"라는 설명을 단 사진 두 컷도 함께였다. 미주판 한국신문에서 오려낸 모양이었다.
나비? 선로를 이탈한 기차 바퀴처럼 덜컹 선의 가슴이 내려앉았다. 그와 함께 본 나비...그게 무슨 계절이었더라. 그때 그녀는 종로 5가에 위치한 한 무역회사의 여사원이었다. 그리고 막 제대해 복학을 앞두고 있던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 가난한 연인이었던 둘은 지하철 역을 만남의 장소로 애용했고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데이트를 했다. 퇴근이 늦어져도 그는 몇 시간이고 기다려 선의 얼굴을 본 뒤에 일어섰다. 고집불통이라고 눈을 흘기면서도 선은 그런 성격이 둘의 마음에 움을 틔웠을 것이라고 기꺼이 생각했다. 어느 날, 지하철 속에 길 잘못 든 나비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역사에 있는 누구도 나비 따위에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와 선의 시선은 나비를 쫓아 한참을 헤맸다. 나비는 아랑곳없다는 듯이 황홀한 원무를 선보이다가 거짓말처럼 사뿐히 그의 무릎에 내려와 앉았다. 그는 손가락 새로 찢길 듯 말 듯 위태로운 날개를 민첩하게 채어 잡았다. 그리곤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선의 입 속에 넣으려고 했다. 선이 어깨를 빼며 도리질을 쳤고 옆자리에 앉은 아주머니가 둘을 보며 빙그레 웃고 있었다. 그때 그 나비는 어디로 간 것일까. 이상하게 기억은 거기에서 뚝 끊겨 있었다.
선은 신문 기사를 꼼꼼히 읽어 내려갔다.
......9월말 약 열흘 동안 텍사스의 대부분 지역에서는 하늘을 덮은 ‘왕’들을 보게 될 전망이다. 올해는 기후조건이 좋아 특히 장관을 이룰 듯. 왕나비는 밀크위드, 메역취, 해바라기 등이 많은 지역에 몰리며, 차가운 날씨가 지나간 뒤 첫 번째 마른 날 오전 9시부터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텍사스주의 공원 야생동물부는 전화 1-800-468-9719를 통해 왕나비 관찰에 좋은 장소와 시간을 안내해줄 계획이다. 텍사스의 중심부를 동북...남서 방향으로 횡단하는 이들 나비 떼의 진행로는 가장 동쪽 끝에 휴스톤이 놓여 있다. 마지막 경유지인 이곳을 거쳐 따뜻한 남쪽의 멕시코로 집단 이주하기 때문...
선은 그런 나비 떼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으므로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선이 아는 주위엔 아무도 나비 따위에 관심을 두는 사람은 없었다. 다달이 날아오는 수표 첵에 머리를 싸매고 미합중국의 경제지침에 발맞추기 바쁜 그들이었다.
갑자기 바람이 창문을 비집고 새어 들어왔다. 커튼이 펄럭 소리를 내다 제풀에 가라앉았다. 선은 전화기로 신문 조각을 꾹 눌렀다. 카터에 청소기를 싣고 방을 빠져나오려다 불현듯 되돌아갔다. 찔러놓은 신문 조각을 반 정도 빼놓았다. 테이블 서랍까지 늘어진 그것은 하루의 일정을 알리는 메모처럼 중요해 보였다. 이런 기사를 오려 놓고 들여다보았을 그도 나비에 대한 기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게 분명했다. 이제는 자물쇠에 채워져 깊은 물 속에 잦아들었겠지만 그래도 어느 낮 아니면 저녁, 못 견디게 그 물에 발이라도 담그고 싶은 날, 그런 날이 그에게만 없으리라는 법도 없을 테니까.
다시 복도로 나왔을 때 굴참나무 밑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석현우가 눈에 띄었다. 길게 끌리는 카키색 진 바지에 어제 입었던 스웨터 차림인 그는 산보라도 하듯 할랑한 걸음으로 굴참나무 주위를 서성였다. 잠시 후 그는 땅위에 불거져 나와 있는 나무 뿌리를 발로 한 번 툭 차보더니 이내 그곳에 올라섰다. 건들건들 무게중심을 잡아 허리를 세우더니 성큼 저쪽 뿌리로 건너뛰었다. 장난기 많은 아이가 일나간 엄마를 기다리고 있다가 보여줌직한 행동을 그는 몇 차례 반복했다. 카터를 밀다말고 선은 가만 멈춰 섰다. 그녀가 아는 불법체류자들이란 늘 초조하고 의심 많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노골적으로 사람을 경계하는 이들이었다. 한국에 IMF가 터지고 부도를 맞은 사람들이 관광비자를 쥐고 들어와 몇 달씩 묵고 떠나갈 때 그들의 얼굴엔 하나같이 위기감이 감돌았다. 그중 한 명은 노골적으로 선을 유혹하기까지 했다. 그린 카드 없이 일을 구한다면 낮은 임금과 언제 추방당할지 모르는 위험 부담을 동시에 떠안아야 했다. 사장이 아니었다면 선은 그 남자에게 당할 뻔했다. 내쫓기면서 그는 육두문자를 내뱉고 굵은 눈물 방울을 거침없이 떨구어냈다. 갑자기 당한 봉변보다도 남자가 보여준 절망적인 몸부림이 선에게는 더 큰 충격이었다. 제발 날 놓아 줘, 이렇게 살 순 없단 말이야. 선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울부짖던 남편도 그런 마음이었을까. 도너스 가게, 그로서리, 이삿짐 센터, 세탁소... 남편이 거친 직업들이 슬라이드 필름처럼 빠르게 망막에 맺혔다 사라졌다. 그녀는 그녀대로 새벽 2시까지 영업하는 한국음식점에서 일했다. 마른 장작처럼 뻣뻣해진 다리로 집으로 돌아오면 졸립다는 생각 외에는 머릿속이 펑 터져 나가는 느낌이었다.
페루 여자가 운영하는 건물 관리자로 들어간 남편은 모처럼 힘든 육체 노동에서 벗어나 얼굴이 환해졌다. 야간 근무를 마치고 아침 느지막이 귀가한 날, 그는 머쓱한 표정으로 나이아가라 여행 티켓을 내밀었다. 선은 까맣게 몰랐다. 죄책감을 덜고 조금은 가뿐해진 마음으로 돌아서기 위해 그가 여행을 주선했다는 사실을. 인디언 선물 가게에서 손으로 깎은 나무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는 그를 보고 그딴 걸 뭐 하러 사냐고 핀잔을 주었다. 호텔에서도 굳은 등만 보인 채 잠들었다. 어쩌다 살갗이라도 닿으면 흠칫 벌레처럼 몸을 웅크렸지만 선은 기미조차 채지 못했다. 남편이 떠난 것이 마치 자신의 그런 무신경 때문이기나 한 것처럼 자책했던 날들이 선에게 오롯이 남았다.
실수했구나, 순간 현우는 후회했다. 송수화기 속으로 여자의 날숨소리가 약하게 새어나왔다. 이어지는 짧은 침묵, 겸연쩍어 손바닥으로 관자놀이를 문지르는데 쉬는 날이 없어서요, 끊어질 듯 작은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말없이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청소나 하는 여자에게 데이트 신청이라니, 그것도 나비 구경이라니, 현우는 자신의 수작이 우스꽝스러워 코웃음쳤다. 하긴 이곳 지리를 알 수 없는 그로서는 누군가 가이드가 필요했을 것이다. 굳이 여자가 아니라도 상관치 않았을.
서른 둘 셋? 아니 그보다 더 어릴지도 모르겠다. 이런 곳에서 청소를 하고 있는 걸로 봐서 더 어릴 것 같지는 않은데.... 카터를 미는 가는 팔과 마른 몸이 도무지 여기와 어울리지 않는 묘한 여자다. 짐작이 틀림없다면 그녀는 자신의 이름쯤은 기억해낼 것이다. 석, 현, 우. 결코 낯설 수 없는 이름을. 김이라는 자신의 성을 버리고 희성인 석을 택한 건 그 같은 사람들에게는 흔한 일이었다. 석현우는 김현우에게 많은 것을 선사했다. 어디를 가나 광적인 팬들에게 에워싸였고 주위엔 친구와 여자가 득실댔다. 유난히 손가락 끝이 뭉툭한 이비인후과 의사의 단언이 있기 전까지는. 의사는 엑스레이 사진을 불빛에 비춰보며 하얗게 비어 있는 그의 후두 한 곳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터널 중간까지 걸어 들어갔는데 기차 소리를 들은 기분이었다. 3옥타브를 자랑하던 목소리가 절단나자 그는 더 이상 석현우가 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현우는 석현우가 부려놓은 미끼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열린 창으로 굴참나무 잎사귀들이 바람에 쓸려 가는 소리가 들렸다. 구름이 낮게 드리워져 있지만 하늘은 빈 링거병 속처럼 말갰다. 중고 픽업을 몰고 꼬박 3박 4일을 달려왔다. 늦여름 더위에 지친 벌판과 바다만큼 넓은 호수 캠핑장에서 하룻밤씩 묵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 귓속에서 덜그럭거리고 자갈 굴러가는 소리가 났다. 모포 위에는 하얀 모래가 실지렁이처럼 꾸물꾸물 껴있었다. 사흘째 되는 날은 훈풍이 부는 사막 한가운데서 핸들을 쥔 채 고꾸라졌다. 한나절을 달려도 사람 그림자 하나 볼 수 없던 지독한 곳이었다.
숙소로 정한 파라다이스는 천년의 바람을 견뎌온 것처럼 위태롭고 음산하게 구릉지 위에 서 있었다. 옆 좌석에 놓인 기타를 꺼내고 차 문을 힘껏 닫자 나뭇가지에 까맣게 붙어 있던 까마귀들이 마치 카드를 섞고 있는 듯한 소리를 내며 일제히 날아올랐다. 어서 오세요, 파라다이스 인입니다. 로비로 들어서자 얼굴에 검버섯이 가득한 늙은 남자가 오랜만에 고국말로 인사를 건넸다.
K는 아직 뉴욕 할렘의 싸구려 아파트에서 죽을 쓰고 그를 기다리고 있을까. 맥주 깡통이 뒹굴고 마리화나 냄새가 자욱한, 창고처럼 휑한 아파트에서 마치 그를 겨냥하듯 다트 판에 화살촉을 꽂을지도 몰랐다.
“네 놈을 처음 봤을 때 알아 봤다구, 엉덩이에 냄새를 풀풀 풍기며 다가오는 널 처음 봤을 때 알아봤단 말이지. 흐응, 난 파리거든. 그것도 똥파리, 알아?”
그를 만난 것은 홍대 앞의 한 카페였다. 비가 흩뿌리고 있던 가을 초입이었다. 우산 없이 오는 비를 다 맞고 약속 장소에 들어섰을 때 자리에는 익히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 탁자 두 개를 맞붙이고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건너편 가장 먼 자리에 머리를 푼 그가 강렬한 눈빛으로 현우를 쏘아보았다. 그만이 초면이었다. 누군가 그를 소개했다. 뉴욕대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있다는 그가 단편영화의 음악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단편영화는 만들어지지 못했고 그는 학기에 맞춰 돌아가야 한다며 하릴없이 시간만 소비하고 말았다며 실소했다. 모두 엉망으로 취했고 그날 밤 한 여관에 투숙했다. 여자들도 몇 있었던 것 같은데 다음날 깨어보니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없었다. K만이 엉클어진 머리를 앞으로 쏟은 채 담배를 빨고 있었다.
두 번째 만남에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알몸으로 엉켰다. K는 현우를 리드해 나가며 솔직하고 미련 없이 즐기자고 했다. 곧이어 둘은 그레코로만 선수들처럼 맞붙어 땀을 흘렸다. 동전의 양면처럼 마주볼 수 없으면서도 등을 대고 붙어 있던 둘은 각자 자신을 껴안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낯을 돌리자 K는 욕망의 잔해인 정액을 화농처럼 뚝뚝 떨어뜨렸다. 처음 경험한 일이었지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현우는 삶에서 일어나는 선택의 순간마다 재빨리 한쪽을 포기해버리는 좋은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을 실험의 대상물로 올려놓고 자학하느니 차라리 생각 없는 놈으로 취급당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
뉴욕에 온 첫날, K와 함께 센트랄 파크에 갔었다. 꽝꽝 언 호수 표면에는 스멀스멀 한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났다. 몇십 년 만에 오는 추위라고 K는 목을 옹송그리며 말해주었다. 스케이트를 들고 오고가는 아이들도 보였지만 웬일인지 호수는 텅 비어 있었다. 둘은 어깨를 맞붙이고 담뱃불을 당겼다. 금방이라도 한바탕 눈을 퍼부을 듯 하늘이 뿌옜다. 찬 공기 속으로 둘의 담배 연기가 매듭처럼 꼬여 섞어들었다.
“평소에 여긴 야생 오리들이 많아. 겨울이 오면 다 어디로 가는 줄 알아?”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K가 말했다.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었던 녀석이 늘 궁금해 했거든. 누가 트럭 같은 걸 가지고 와서 싣고 가는지 아니면 혼자서 어디로 날아가는 것인지... 여길 올 때마다 유심히 봤는데 오리들 나는 게 영 시원찮더라. 사람들이 던져준 식빵 조각에 몸이 분 거지. 제법 쌀쌀한 날인데도 오리들은 뒤뚱거리며 돌아다녔어. 언젠가 살얼음 낀 호숫가에 고개를 파묻고 죽어 있는 오리들을 봤지. 그리곤 그것들이 여기를 떠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됐어. 그 녀석을 만난다면 내가 말해 줄 수 있을지도 몰라. 오리들은 그냥 얼어죽더라고 말야. 그걸 볼 수 없었던 넌 행운아였다고 말야.”
그래? 심드렁하게 대꾸했을 뿐 현우는 굳게 입을 닫았다. 자신을 뒤따라 뉴욕까지 와 주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K는 평소답지 않게 말이 많았다. 얼어죽은 오리에게 가치부여를 하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로 말하자면 가볍게, 가볍게 살고 싶은 사람이었다. 스스로도 착각할 정도로 포장된 시간을 보낸 뒤, 세상은 그 정도 교훈은 깨우쳐주었던 셈이다. 재취입한 곡이 실패로 끝나고 그를 에워쌌던 사람들이 하나둘 등을 돌렸다. 살아서 무덤에 든다면 이런 기분이 아닐까, 하고 번민하던 때였다. 그 즈음 전날 과음을 한 것도 아닌데 아침에 눈을 뜨자 침대가 흠뻑 젖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요의도 느끼지 못하고 싸버린 오줌에서는 지독한 지린내가 물씬 풍겼다. 욕지기가 솟구쳤다. 욕조에 집어넣고 세게 물줄기를 쏟아 부었다. 발버둥치듯이 시트를 짓이겼다. 똥을 싸놓았다고 해도 이것보다는 덜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 현우는 마음의 평정을 되찾았고 인과관계에 무심할 수 있었다. 해외 연예지부에 등록했다면 비자기간을 연장할 수 있었을지 몰랐다. 그러나 그런 기관에 어정거림으로 부딪치게 될 사람들이 피곤했다.
파라다이스에서 제공하는 커피와 빵으로 아침을 때우고 룸으로 올라왔을 때 후레지아 냄새가 살짝 코끝에 잡혔다. 잔주름 없이 팽팽하게 펴진 시트가 여자가 다녀갔음을 알려 주었다. 여자의 향내 같은, 낯선 그 냄새가 싫지 않았다. 전화기 밑으로 빠져 나와 있는 신문 조각이 보였다. 어젯밤 여자의 방에서 갖고 나온 것이었다. 창고나 다름없는 그 방에는 낡은 철재 책상과 캐비닛, 종이짝들이 수북히 쌓인 상자들이 포개져 있었고 신문은 상자 맨 위에 반으로 꺾인 채 놓여 있었다. 책상에 기대 신문을 훌렁훌렁 넘기는데 나비 떼 기사를 발견했다. 자성을 가진 두 개의 물체가 결합하듯 나비는 날개를 꼭 맞붙이고 꽃술에 걸터앉아 있었다. 옆의 것은 까맣게 하늘을 덮고 있는 나비 떼의 행렬을 멀리서 잡고 있는 사진이었다. 그래픽 무늬를 그리는 날개도 점박이 몸도 온통 까맸다. 흑백 인쇄물이라 그런지 원래도 그런 색깔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벼 낱알까지 훑고 지나간다는 메뚜기 떼들이나 이유 없이 육지로 올라와 죽은 고래 떼들의 기사를 본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많은 나비들의 이동은 처음이었다. 무슨 목적이 있을 법도 한데... 신문에는 그 이유까지 밝혀 놓지는 않았다. 단순히 장관이 틀림없을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홍보용 기사였던 것이다. 서랍에서 카터 칼을 찾아냈다. 금을 그어 기사를 도려냈다.
그에게도 나비에 대한 기억은 있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동네에서 오래 내과병원을 운영해 그는 김냇과네 집 아이로 불렸다. 그 말을 할 때 끝에 살짝 묻어나던 호기심과 의혹의 뉘앙스를 현우는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머니는 자살했다. 좁은 시멘트 벽 틈에 끼어 고개를 꺾고 죽어 있던 어머니를 발견한 사람은 옆집 일하는 누나였다. 얼굴이 심하게 얽어 현우의 친구들에게 곧잘 놀림을 받곤 했던 그 누나는 찢어질 듯한 음성으로 온 동네에 어머니의 죽음을 알렸다. 일조권을 무시한 채 지어진 병원 집과 나란히 붙은 옆집 사이에는 사람이 지나다닐 수도 없을 만큼의 좁은 틈만 유지하고 있었다. 담벼락에 끼여 어머니는 선 채로 죽어 있었던 것이다. 누구도 어머니가 왜 그 장소를 택했는지 알아내지 못했다. 아마도 쉽게 눈에 띄는 장소가 아닌 만큼 단단히 작정을 한 것이 아니겠냐는 추측만 무성했다. 장례식 날 외할머니는 아버지의 가슴을 치며 발을 동동 굴렸다. 내 딸 살려내, 아이고 분해, 아이고 억울해.
의처증이 심한 아버지 밑에서 어머니는 숨소리조차 제대로 못 내고 살았지만 아버지의 트집은 담 넘어 날아온 공처럼 늘 일방적이었다. 그런 날이면 밤새 안방에서는 어머니의 매맞는 소리가 들렸다. 장례식 날 어머니는 밥그릇 가득 소복이 담긴 생쌀 위에 나비 문양을 또렷이 남겼다. 현우야, 네 에미 나비가 되어 이제 훨훨 날아갔다 보다. 외할머니는 팽 코를 풀고 또다시 섧게 곡을 했다. 사춘기에 접어들기도 전에 현우는 입을 닫았다. 세상은 경작할 아무런 이유도 없는 그 무엇이라고 생각했고 제도권 밖에서 헤매기 시작했다. 음악에 빠질 수 있었던 계기도 그것에 무관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다시 재혼했다. 그리고 그 여자에게도 똑같이 악행을 되풀이했다. 척박한 모래땅에서 자란 사지식물 같은 인상을 주는 여자는 현우에게 다소곳했지만 등뒤의 시선은 짐승의 자식을 보는 듯 혐오감을 내비췄다. 여자는 나비가 되어 날아갈 생각은 없어 보였다. 이복동생 둘을 낳았고 아직도 아버지와 살고 있으니까.
신문 조각을 집어들고 침대에 길게 누웠다. 한 손을 머리에 받치고 다른 손으로 종이를 거꾸로 돌려 눈 위에 갖다댔다. 해바라기 밭 위, 까맣게 하늘을 덮고 있는 나비들이 점묘화를 이루고 있는 사진이 아찔하게 다가왔다. 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영혼의 무게처럼 가볍디가벼울까. 신문에 실린 사진만으로 상기도 추억을 불러일으키는데 실물의 나비 떼들은 아름다운 풍경만으로 끝을 내지는 않을 것 같았다.
K는 아직도 그래피티 벽화가 너저분하게 늘려 있는 할리데이 지하도를 건너다닐까. 때없이 훌쩍 차도로 뛰어내려 쌩쌩 속력을 내고 달리는 자동차 사이를 겁 없이 통과할까.
‘I know these people... two people... they were in love each other."
스프레이를 분사해 마구 갈겨놓은 듯한 낙서를 읽고 있을 때 K는 빔 벤드스 영화에 나오는 대사야. 파리, 텍사스! 하고 건너편에서 소리쳤다. 그리고는 영화의 주인공처럼 쓰고 있던 캡 창을 꾹 누르고 뚜걱뚜걱 걷는 시늉을 해 보였다. 현우는 하하, 소리내어 웃었다. 시간이 나면 둘은 거대한 낙서장인 지하차도 밑을 걷다오곤 했다. 얼마 안 가서 그곳이 게이 구역이라는 것을 알았고 초조하게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던 그들이 팔려나가기를 희망하는 게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지러운 원색의 그림을 배경으로 검고 흰 얼굴들이 자동차 불빛에 따라 일제히 고개를 빼면 현우는 자신의 초상을 보는 듯해 속이 메슥거렸다. 그것 때문에 다트 판에 떠난다, 라는 메모를 화살촉으로 눌러놓고 K 곁을 떠나온 것은 아니었다. 적당한 선에서 종지부를 찍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서로의 존재가 버거울 때쯤이면 이미 늦은 것이기에.
나는 이 사람들을 알고 있지, 두 사람을, 그들은 서로 사랑했지... K는 기분이 나면 ‘파리 텍사스’ 표지판이 찍힌 사진을 쥐고 사막을 횡단하던 한 사내의 내레이션을 읊곤 했다. 그 말은 지금 어때? 라는 말을 암시했고 그런 날이면 둘의 육신은 승전고를 울리는 아프리카 전사들처럼 춤을 추었다. 때때로 현우는 매직 유리가 설치된 핍쇼의 어두운 방에 돌아앉아 주절주절 말을 쏟아내고 있는 깡마른 사내를 떠올렸다. 휴스톤을 택했던 것은 그것 때문이었을까. 사내가 아내를 찾은 곳도 바로 이곳, 휴스톤이었다.
여자가 찾아온 것은 해가 저물어 어스름이 막 돌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유니폼을 벗은 여자는 허벅지를 꽉 조이는 청바지와 하얀 폴로 셔츠를 받쳐입고 있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엷은 갈색 립스틱만 칠하고 있는 데도 훨씬 앳돼 보였다.
“나비는 보러 갈 수 없지만 저녁 식사를 같이 했으면 해서요. 아는 사람 식당이 이 근처거든요.”
현우는 거절하기가 더 쑥스러워 따라 나섰다. 어차피 저녁을 먹어야 했고 말벗이 그립기도 했다. 노래를 부르기로 했던 바는 이미 한달 전에 문을 닫아 버렸고 중간에 다리를 놓아준 사람은 온다간다 말없이 사라졌다. 그런데도 현우는 미적거리고 이곳에 머무르고 있었다. 이제 어디론가 떠나야 하는 핑계를 만들어낼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현우에게 여자란 그런 원인 제공의 건너편에 서 있는 부류들이었다. 선택이란 힘든 일이 아니었다. 차도 위로 굴러가는 자동차의 물결처럼 흘려들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여자가 찾아 들어간 곳은 식당이라기보다는 작은 선술집이었다. 민속 주점처럼 한지가 발라져 있고 사이사이 벽에 곰방대와 갓이 검은 대못에 친친 감겨 있었다, 출입구 앞에는 큰 지게가 놓여 있고 그 속에는 옛 장터에서 사온 듯한 술병, 호롱불, 꽈리들이 올망졸망 실려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급하게 날조된 세트장처럼 엉성했다.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서양식 간이 바 때문인지도 몰랐다. 칵테일을 위한 서양 술병들이 즐비하게 갖추어져 있었지만 그곳에 앉아 술을 마시는 사람은 없었다. 여자는 칸막이로 된 구석자리를 택했다.
“아깐 많이 당황했어요.”
마주앉은 여자가 눈으로 메뉴판을 읽어 내려가며 말했다. 새침해 보이는 첫인상과는 달리 스스럼없는 말투였다. 현우는 소리나지 않게 웃었다. 아마도 여자는 곧 이렇게 말하리라. 좋아하는 음식이 있으시냐고, 오늘은 제가 사드리는 거니깐 마음놓고 드시라고, 그러나 여자는 그런 현우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메뉴판을 엎어놓고 말없이 주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는 사람이라고 하더니, 현우는 재떨이로 마련된 장독 뚜껑을 공연히 한 번 들었다 놓았다. 급하게 나오느라 담배를 잊었던 것이다. 오 분쯤 지난 뒤에 여자가 돌아왔다.
“여기서 얼마 동안 일했거든요. 받아야 할 돈이 아직 남았는데 통 줄 생각을 안 해서... 그렇다고 같이 오자고 한 것은 아니에요. 장사가 잘 안 돼서 그렇지 그렇게 나쁜 사람들은 아니거든요. 오늘 여기서 술 한잔하고 깨끗이 잊어버릴려구요. 나쁘지 않죠?”
아무려나,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곧 불고기와 된장찌개와 밑반찬이 쟁반 가득 얹혀왔다. 술은, 소주가 낫겠죠? 여자의 말에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술병을 집는 현우에게 여자가 전 술을 못해요, 하며 자신의 술잔을 저만치 밀어놓았다.
선은 오늘이 자신의 생일이라고 남자에게 말하진 않았다. 그런 것에 의미를 둘 만큼 그녀의 생활이 여유 있지가 않은 탓도 있었지만 부러 잊고도 싶었다. 이혼하고 그 해 맞은 생일날, 혼자 우두커니 창 밖을 내다보다가 뛰어내리고 싶을 정도로 한국이 그리웠던 적이 있었다. 하늘은 파랬고 목화 솜 같은 구름이 천천히 흘러가고 있는데 정말 누구라도 손을 뻗어 준다면 그대로 그의 노예라도 될 것만 같은 날이었다. 말이 그리웠고 따뜻한 위로가 필요했지만 전화 한 통 걸려올 때가 없던 그 날, 오빠 집에서 조카들을 돌봐주며 살고 있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랜만에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자 눈물 방울이 굴러 떨어졌다. 돌아가고 싶다고 울먹였다.
“조카들이 자라고 있다. 호적 더럽힐 생각 말아라.”
단호하게 내뱉는 어머니의 말이 아니었다면 선은 그날 내내 값싼 감상에서 허우적거릴 뻔했다. 한 해씩 생일을 보낼 때마다 선은 차츰 자신에게 냉정해졌다. 혼자서 끼니와 집세와 자동차 유지비를 벌어야 하는 여자에게 자기 연민쯤은 감정의 사치에 불과했다. 수지는 선의 몸에서 마른 먼지 냄새가 난다고 했다. 김치 냄새가 아니고? 묻는 선에게 넌 왜 사랑을 안 하지? 하고 정색을 하고 물었다. 파라다이스를 제집처럼 들락거리는 멕시칸 창녀인 수지, 그녀는 언젠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주었다. 몸 팔기 시작한 열다섯 살 때부터 자신은 그 동네에서 가장 싼 매음녀였다고. 그런 수지도 달콤한 꿈을 꾼다. 곧 피앙세를 만났대, 점을 봤거든. 떠날 거야, 여기만 아니라면 어디든 해피할 테니. 손으로 그린 물그림 같은 행복이라는 말. 선은 자신도 모르게 입가를 으그러뜨리며 차갑게 웃어 보였다. 남편도 태평양 건너 땅을 행복이라는 단어와 착각했다.
맞은편 남자는 묵묵히 숟가락질만 하고 있었다. 밥 한 숟갈에 불고기 두어 점, 그리고 소주잔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 동안 변변한 음식을 먹지 못했던 걸까. 햄버거 간판을 쳐다만 봐도 신물을 올렸던 적이 생각나 선은 씁쓸하게 미소지었다. 된장찌개를 접시에 덜어 그의 앞에 놓아두었다.
시금치 나물을 집던 젓가락을 멈추고 현우는 멍하니 여자를 쳐다보았다. 갑자기 코끝이 시큰해졌다. 누군가 자신을 위해 배려를 해준다는 것이 얼마 만일까. 일하는 시간이 다른 K과는 일요일 오후, 점심을 해먹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것도 프라이팬에 냉동 식품을 끓여 서로 아귀다툼을 하며 퍼먹었다.
라자니아를 뚝뚝 끊어 먹는데 입 주위에 묻은 토마토 케첩을 보고 K는 무릎을 꺾은 채 껄껄 웃어댔다.
“너 그러고 보니깐 진짜 흡혈 박쥐다.”
“그렇게 부르지 말랬지.”
“그럼 박애주의자로 불러줄까? 남자도 여자도 다 사랑하니까.”
휴지로 입가를 문지르는데 K는 한 손으로 머리통을 꽉 감싸쥐었다.
“닦지 마, 흉하진 않아.”
입 주위를 머물다가 들어온 K의 혀는 달짝지근한 맛이 났다. 손을 뻗어 현우의 성기를 만지작거리며 목소리를 살릴 수 있다면 너, 이것도 자를 수 있었겠다. 파리넬리가 되고 싶었겠다. 응? 하고 약을 올렸다. 관 둬, 하면서도 현우는 그가 제멋대로 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오래 됐어요. 이렇게 여자와 함께 식사를 한 게....”
남자의 말에 선은 젓가락질을 멈추고 빤히 그를 올려다보았다. 검은 머리카락 때문에 그늘진 이마를 손가락으로 가만히 넘겨주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그랬다면 밀가루 반죽같이 하얀 이마가 드러났을까. 구레나룻과 턱 선을 타고 내려오는 남자의 것 같지 않은 부드럽고 고운 턱선. 불빛 아래 비춰진 불투명한 눈동자가 갑자기 딴 세상에 내팽개쳐진 십대 소년의 것처럼 한 차례 불안하게 흔들렸다. 갑자기 늑골께가 아려왔다. 모성이 있다면 이런 것이 아닐까.
남자를 따라 룸으로 올라간 선은 정신이 아뜩해졌다. 집으로 가자고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어쩌자고 자신의 일터인 파라다이스를 택했는지, 심장이 터질 듯 팔딱였다. 남편이 떠난 뒤 그녀는 매일 한인 신문 구직난을 뒤졌다. 어느 날 파라다이스 인 청소부 급구, 라는 광고를 보았다. 인으로 찾아갔을 때 늙은 남자가 나와 선을 훑어보더니 우리는 오십 정도의 아줌마를 원해요, 했다. 그 나이면 카운터나 웨이트리스 정도의 일자리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을 텐데, 하고 말꼬리를 흘리면서. 훨훨 날아가 버릴 수 없다면 아예 꽁꽁 제 몸을 말아 쥐고 숨어버리고 싶은 선의 마음을 그가 알 리 없었다. 늙은 남자의 표정에 철없는 막내딸을 바라보듯 측은한 빛이 감돌자 선은 무작정 매달렸다. 결국 그는 끌끌 혀를 차면서 그럼, 나중에 그만 둘 때 미리 언질이나 주라고, 저번 사람이 말도 없이 나가버려 늙은 마누라가 몇 날 고생했다고 덧붙였다. 그의 짐작과는 달리 선은 이곳에서 3년을 버텼다. 시간제 고용자들을 부리는 일쯤은 그녀에게 넘겨졌고 매니저라는 우스꽝스런 명찰도 달았다.
남자는 룸에 들어오자마자 능숙하게 웃옷을 벗어 던지고 선의 옷을 벗겨 내렸다. 침대에 꼼짝도 않고 누워 있던 선의 마음은 웃자라 휘청거리는 쑥대궁처럼 자꾸만 흔들렸다. 이대로 뛰쳐나가 버릴까, 아니면 미안하다고 이럴 기분이 아니라고 말이라도 해볼까. 상념들이 너울너울 춤을 출수록 몸은 갑충처럼 굳어 갔다. 피부에 남자의 입술이 닿을 때마다 모래가 와 닿는 것처럼 쓰리고 따가웠다. 반응 없는 선을 깨닫고 남자는 결국 상체를 세웠다. 침대 끝에 걸터앉아 사이드 테이블 위에 놓인 담배를 빼 물었다. 남자의 등을 보며 선은 시트를 잡아당겼다.
지난 주, 수지의 집에 초대를 받아 갔었다. 아파트에는 히스패닉 남자 둘이 감자 칩과 맥주를 마시며 히히거리고 있었다. 수지는 그들 중 한 명과 방으로 들어갈 거라며 그녀에게 열심히 설명했다. 선, 너도 즐겨. 젊음은 잠시야. 언제까지 그러고 살래? 오늘은 매춘도 굿바이. 어느 틈에 무릎을 맞붙이고 앉은 남자가 바지 지퍼를 열고 있었다. 퍽 큐! 선은 그를 확 밀쳐내고 아파트를 뛰쳐나왔다. 후들후들 손이 떨려 자동차 키가 꽂히지 않았다. 운전을 하는 동안 눈물이 헌 데에서 나오는 진물처럼 질질 새어나왔다. 몸뚱이를 가졌다는 것이 끔찍하고 슬펐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수치심과 분노가 뒤섞인 감정이 잦아들자 동그랗게 몸을 말고 누워 있는 그녀가 외따로 떨어진 한 마리의 고치처럼 느껴졌다.
휴스턴으로 가는 도로로 접어들면서 현우는 ‘파리 텍사스’라는 푯말과 마주쳤다. 영화 속의 마을을 직접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하늘은 푸르스름하게 저물어 가는데 그는 마을 깊숙이 차를 몰았다. 우체국, 보건소, 가스 충전소와 꽃집을 지났지만 사람들이 눈에 띄지 않는 이상할 정도로 한적한 동네였다. 군데군데 서 있는 목조 집들도 빈집처럼 고요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무 사이에 해먹이 걸려 있는 집 앞에 차를 세웠다. 탈색한 듯이 하얀 피부의 사내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배운 지 얼마 안 됐던지 자꾸 페달을 놓쳤고 그때마다 자전거는 위태롭게 비틀거렸다. 그때 창문이 열리고 금발의 젊은 여자가 나와 제이미, 하고 외쳤다. 막 오븐에서 꺼낸 케이크처럼 부드럽고 따뜻한 음성이었다. 아이는 아쉬운 듯 두어 번 콧잔등을 찡그리다가 자전거를 끌고 집 뒤로 사라졌다. 창문이 닫히고 잠시 후 여자 실루엣도 사라졌다. 웬일인지 현우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모락모락 훈김을 올리는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고 있을 그들이 더할 나위 없이 부러웠다. 그에게 가족이란 과거완료로 끝난 사람들이었다. 째지는 듯한 고함소리에 놀라 부스스 주먹으로 눈을 비비며 일어난 아침, 어머니는 마침표로 그의 가슴 한 자락을 닫아 버렸다. 도대체 어머니는 무슨 생각으로 좁은 담벼락 틈새로 뛰어 내렸을까. 어둔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가벼워야 솟아오를 수 있다고 그래야 끈 풀린 풍선처럼 훌훌 날아갈 수 있다고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닐까.
“제가 마음에 있어 하지 않으면 제 친구는 이렇게 말하곤 하죠. I know these people, two people, they were in love each other."
픽, 여자가 웃음소리를 냈다. 어둠이 싫었던 것일까. 여자는 침대를 빠져나가 커튼을 활짝 열어제쳤다. 고장난 우주 정거장 미르호에서 내다본 풍경처럼 창밖에는 아직 보름이 되지 못한 달과 총총한 별이 붙박여 있었다. 우두커니 돌아서 있는 여자의 맨 어깨가 마른 수건처럼 쓸쓸해 보였다. 현우는 곁에 놓인 기타를 집었다.
“늘 이러진 않아요. 정말이에요. 나쁘지 않는 밤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뜻에서 부르는 거예요.”
너무 외롭고 쓸쓸한 날 나 청바지를 기워 입고 거리로 나섰었지요.
거리로 가면 진정 나를 사랑해줄 님이 있을까봐, 싶어서요.
주머니 속에서 몇 개 동전이 짤랑거리고
누구에게도 나는 차 한 잔, 이라고 말하지 못했지요.*
그의 노래가 방안에 낮게 깔렸다. 고운 목소리네,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마른버짐같이 건조한 선의 마음이 촉촉이 젖어들었다. 갑자기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짓궂은 미소를 대동한 채 선의 입에다 나비를 집어넣으려 애쓰던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금이라도 달려간다면 볼 수 있는 풍경처럼 선명히 떠올랐다. 돌이켜 갈 수만 있다면 선은 오로지 그때를 선택했을 것이다. 우르르 우르르 전철 바퀴 구르는 소리가 쉴새없이 지나갔다.
그때 그 나비를 지상으로 날려보낸 기억은 없다. 힘을 다 소진할 때까지 나비는 지하 갱도에서 입구를 찾아 헤맸을 것이다. 어둡고 침침한 곳에 떨어져 마침내 꽃잎 같은 날개를 접었을지도 모르겠다. 가슴 한켠에서 살별 하나가 뚝 떨어져 내렸다. 지독한 악몽을 꾸고 난 사람처럼 선은 후드득 몸을 떨었다.
현우는 조심스럽게 다가와 자신의 어깨를 집는 여자를 올려다보았다. 울고 있었던 것일까. 반쯤 드러난 얼굴이 달빛에 번들거렸다. 함께 가요, 어디든. 채감 낮은 목소리로 여자가 웅얼거렸다. 여자의 손을 거머쥐었다. 작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고물거리고 손아귀에 잡혀졌다. 젖혀진 창으로 굴참나무 그림자가 방 안 깊숙이 들어섰다. 바람이 부는지 잎새들이 나부꼈다. 보호색으로 무장한 애벌레처럼 여자의 몸에 얼룩덜룩 무늬가 졌다. 그의 가슴도 마찬가지였다. 가볍게 여자를 밀어 침대에 눕히면서 현우가 말했다.
“나비는 화석이 되기 힘들대요.”
“왜요?”
“날개가 너무 약하고 부드러워서... 화석이 되기도 전에 사라진대요.”
여자의 눈이 스르르 감기는 것이 보였다. 정박을 끝낸 배가 어디론가 떠나갈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여자란 늘 그런 빌미를 제공해 주는 존재일 뿐. 언젠가 친구 녀석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대중 가수들은 자신의 첫 곡대로 인생을 살더라는. 배가 고프고, 외롭고 갈 곳이 없었네, 노래가 귀 울음이 되어 천천히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현우도 눈을 감았다. 밀린 잠을 자듯 눈꺼풀은 무겁게 닫혔다. 어둠 속에서 슬픈 리듬의 노래는 끝나지 않았다.
남자의 방은 텅 비어 있었다. 사이드 테이블 옆에 비스듬히 세워져 있던 기타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옷장 안에는 내용물이 빠져나간 옷걸이만 휑뎅그렁하게 걸려 있었다.
카펫을 밀다가 선은 침대 바닥에 떨어진 신문 조각을 발견했다.
‘왕나비 3억 마리 9월말 텍사스 관통, 올해는 기후조건이 좋아 특히 장관을 이룰 듯해.“
종이를 접어 유니폼 주머니에 넣었다. 누구든 파라다이스 인으로 들어오면 삶의 각질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그가 누구든지 할당된 하루를 비듬 털어내듯 떨쳐 버리고 바람뿐인 황량한 도시를 향해 떠나가더라도 주린 모습은 아니기를. 선은 지긋이 입술을 물었다. 추억을 건조시키기에 알맞은 햇살이 창 밖에서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 장정일의 시 "블루진 블루스"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