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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스토리 박붕배
국어교육연구에 평생을 바치신 - 박붕배 교수 찾아서
김순진
박붕배 선생의 서재가 있는 서초동으로 찾아간 날은 봄 날씨 답지 않게 더운 날이었다. 무엇을 여쭐까? 어떤 말씀을 해 주실까? 책에서만 뵙던 원로 학자를 만난다는 설렘으로 지난밤을 설치고 일찍 사무실에 출근 하여 스토리문학관 최현근 회장을 만난 것은 서초역 2번 출구에서 2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박 선생은 시내에서 국어학자들의 모임인 한글학회 모임이 있는 날이라 오후 3시 이후에나 시간이 있으니 그 때 오라는 전화 통화가 있었음에 우리 일행이 조금 일찍 도착하여 전화를 하니 ‘한 삼백 미터 후방에 오고 있다.’는 목소리가 까랑까랑하였다. 전화를 끊고 나니 팔순의 나이에도 선생은 청년처럼 뛰어오고 있었다.
주차장에서 잠시 인사를 나누며 오피스텔 로비로 들어서니 때마침 엘리베이터가 빨간 불을 켜고 정지되어 있었고 ‘점검중이라는 운행하지 않는다.’는 경비원의 말이 있었다. 노학자(老學者)는 경비원에게 화를 낼만도 하련만 우리 일행에게만 ‘이거 미안해서 어쩌지요?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 하필 엘리베이터를 점검할 게 뭐람?’하며 혀를 끌끌 차면서‘허허, 운동 삼아 오르시지…’라며 앞장서서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팔순의 박 선생이 앞장을 서고, 그 뒤를 환갑의 나이인 스토리문학관 최 회장이 숨 한번 고르지 않고 8층이나 되는 계단을 올랐지만 평소 운동량이 많지 않던 필자는 목젖까지 올라오는 숨을 고르며 어른들 앞에서 내색도 하지 못한 채 오를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8층에 도착을 하니 선생은 숨도 고르지 않고 바로 청동으로 된 낯설지 않은 문패가 걸린 ‘한국국어교육연구소’라는 사무실 문을 열고 우리 일행을 안내하였다. 사무실로 들어서니 아주 오래된 책에서 풍겨 나오는 냄새가 보통 노인들의 방에서 나는 담배 냄새 비슷한 할아버지 냄새와는 달리 ‘서원기문자향(書原氣文字香)’이 풍긴다고나 할까? 구수하고 옛날이야기가 소물소물 풍기는 듯한 냄새가 우리 일행을 감싸며 반겨주었다.
국어교육학문에만 일생을 바친 노학자(老學者)사무실이라 그런지 사무실은 어느 것 하나 사치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말 그대로 소박함이 배어있었고 사환 하나 두지 않고 선생은 직접 차를 타 주시는 배려를 잊지 않았다.
이에 국어국문학자이신 박붕배 선생과 스토리문학관 최현근 회장, 그리고 필자와의 대화내용을 대화체로 싣는다.
필자 : 선생님, 이렇게 반갑게 맞아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실례지만 연세가 어떻게 되셨나요?
박교수 : 음, 26년생이니까 울 나이로 일흔 아홉이지…
필자 : 아이구, 연세가 그렇게 연만하신데도 8층이나 되는 높이의 계 단을 한 번도 쉬지 않고 올라오세요? 정말 대단하시네요. 저 는 두 분 뒤에서 힘들다는 말도 못하고 억지로 올라왔네요.
최회장 : 나두 중간에 한 번 머뭇했는걸요. 허허허
박교수 : 나는 젊었을 땐 건강이구 뭐구 챙길 여유가 없었지요. 거의 잠을 자지 않고 연구에만 몰두했는걸요. 내 체구가 작지만 남들이 대추나무 방망이라고 했다우. 단단하다구 말이에요.
학생 때에는 검도, 유도, 수영, 럭비, 등산 등 안 해본 운동이 별루 없었지요. 한강을 헤엄쳐 건너갔었는걸요.
필자 : 우와, 정말 대단하시네요.
최회장 : 박 교수님은 젊으셨을 때나 지금이나 얼굴에 주름만 조금 생 겼지 그대로이신 걸요.
박교수 : 늘59~60Kg을 유지했었는데 정년 이후에 갑자기 체중이 늘 더라구요. 그래서 아는 후배의사에게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 더니 당료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 이후로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고 매주 등산을 하는 등, 운동으로 당뇨병을 이기 고 건강을 찾았지요. 지난주엔 지리산의 바래봉(鉢山)을 올라 갔다 왔고 다음주에도 또 산에를 가기로 약속이 되어 있답니 다. 화내지 않고 즐겁게 사는 것이 건강엔 최고에요. 속 끓이 지 말고 책 읽고 연구하며 정서를 활기 있게 사는 것이 건 강엔 가장 중요하다고 봐요.
필자 : 네에 잘 알겠습니다. 부끄럽습니다. 저도 건강을 위해 운동을 꾸준히 해야겠네요. 선생님! 고향은 어디신지요? 좀 송구스런 말씀이지만 사모님 만나실 때 배경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박교수 : 허허허, 별 걸 다 물으시네요.
내 고향은 충청남도 부여군 양회면으로 13대째 내려오는 고 령박씨의 집성촌이지요. 대대로 선비의 집안이었고, 할아버지 께서는 중인(상인 등)보다는 소과(생원, 진사)에 힘쓰라 가르 치셨지요. 할아버지는 어린 나에게 한문을 가르쳐야 하는데
내 손자를 내가 때리며 가르칠 수 없으니까 친구에게 보내서
글공부를 시키셨답니다. 그 할아버지의 친구가 제 한문 선생
님이시고 나중엔 제 처의 할아버지가 되셨지요. 그러니까 두 분이 저와 제 처의 가약을 맺어주셨지요.
제 처는 저보다 4살이 아래로 황희 정승의 후손으로 청백리
의 곧은 집안이었습니다. 혼인 당시 제 처는 17세였는데 일 제시대라 정신대에 보내지 않으려고 조혼을 시켰답니다.
처 할아버지인 훈장 선생님께 초등학교 입학 전에 명심보 감, 통감, 소학, 예기 일부를 배우고 맹자를 읽다가 12세에 초등학교를 입학했지요. 우리 때엔 늦게 학교에 들어가는 애 들이 많았으니까요. 17세에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했구요. 나를 만나 공부 뒷바라지 하느라 고생이 많았지요. 지금은 아내가 골다공증이라 내가 빨래도하고 다리미질도 하
며 서로 도와가며 살고 있지요. 두 늙은이 죽는 날까지 오순 도순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필자 : 선생님! 그런 모습이 정말 보기 좋으네요. 존경합니다.
그간 학문을 해 오시면서 크게 도움주신 분이나 문우, 절친 한 친구, 자랑하고 싶은 제자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박교수 : 나를 한국의 학자답게 살도록 도움을 주신 분은 두말 드릴 것도 없이 조윤제(趙潤濟 1904~1976) 박사입니다.
하루는 조 박사께서 내게 물으셨어요.
“박군! 목로집 아는데 있나?”
목로집이라는 곳은 원래 술값만 받고 안주값을 받지 않는 곳이 지요. 보통 나들목에 많이 있는 주점이구요. 원래 ‘나들목’이라 는 말은 인터체인지라고 불렀는데 내가 ‘나들목’이라는 말을 붙 였지요. 그런 중요한 말을 만들고 연구할 수 있게 나를 잡아준 분이 조윤제 박사입니다. 그 후 저는 도로 가장자리를 ‘갓길, 자락길’ 등으로 표현하도록 하였지요. 말을 목로주점으로 꺼내 서 이런 말이 나왔는데 조윤제 박사는 국어국문학을 연구하는 길을 걷게 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사람 사는 도리까지 가르쳐 주신 큰 스승이십니다. 내가 국어교육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지 탱해 주신 분 중 한 분으로는 손봉락 교수를 꼽을 수 있구요. 선배로는 강윤호(이화여대 교수)를 말씀드리렵니다. 강윤호 교 수와 함께 젊은 시절에 학문하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할 수 있 습니다. 학문의 기본 방법을 전수해 준 고마운 선배지요. 또 문 형학습(文型學習)을 일러 주고 국문도 문형이 있다고 이끌어준 연세대 박창기 교수도 도움받은 선배로 꼽고 싶네요. 가장 절 친한 학문 친구는 이병호 편수관(문교부 교과서 편수관)을 들 수 있습니다. 동기동창이고 평생을 함께 한 친구지요. 제자로는 인천대 이현복 교수(수필춘추 발행인)을 들 수 있구요.
필자 : 그러시군요. 살아오시면서 도움을 주는 분들도 많고 도와주 신 분들도 많으셨을 줄 압니다. 저희 [스토리문학관]과 「월간 스토리문학」에는 선생님 같으신 대 학자분이 지켜주시기에 마 음 든든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최회장 : 박 선생님! 저는 선생님을 뵈면 한번 꼭 여쭙고 싶은 말씀이 있었어요. 선생님은 왜 돈도 안 되고 머리 아픈 국어교육자의 길을 걷게 되셨나요?
박교수 : 아버지는 일제시대에 개화교육을 받으신 분이었지요. 아버지 께서는 내가 의사나 변호사가 되길 바라셨지요. 그런데 할아 버지의 생각은 좀 다르셨어요. 의사나 변호사를 하시는 분들 께는 좀 미안한 말씀이지만 그 직업은 조선시대엔 중인에 속 했지요. 대대로 양반 집안으로 내려오던 우리 집안에 할아버 지께서는 진사나 생원을 하라고 하셨는데 그것도 선비였기 때 문입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일제 식민지 정책에 반감을 많이 가지고 계셨는데 나도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나 봐요. 특히 언어, 생활, 문화, 정신, 사상 등에 관한 동화정책에 반발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반발심이 내 안에서 자라서 마침내 ‘내 나 라 국어를 지키고 가르치는 일이 내 천직이다.’ 라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하실 때, 모 든 사람의 글눈을 뜨게 하여 쉽게 배워서 쉽게 쓰게 하는 정 신과 계급 타파의 정신을 계승하여 국어 선생이 되고 싶었어 요. 그래서 서울사대부고에서 10여년 국어선생을 하고 서울교 대로 옮겨 30년을 재직하다 정년퇴직 했지요.
문학이라는 것은 크게 나누어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첫째는 정서를 아름답게 하는 것이고
둘째는 국민의 생활향상을 위한 교육에 바탕을 두는 것이지 요.
전자는 시인이나 소설가 등 문학가들이 해 주면 되는 것이고 나는 그 사람들 쓴 시, 소설을 가르치고 보급하는 일에 일생 을 걸었던 겁니다.
문학을 어떻게 보급하느냐는 국민으로 하여금 인생을 즐겁게 살 수 있고 의미 있게 살다 가는 방법을 터득시켜 주는 일이 라고 봐요.
필자 : 네에….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문학을 가르치고 보급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마치 할아버지께서 손자에게 도란도란 이야기 해 주시듯 설명해 주 시니 머리에 쏙쏙 들어오고 더욱 솔깃하네요. 국어교육학문을 해 오시면서 보람 있었던 때나 어려웠을 때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박교수 : 일제시대에 동화교육을 받아오면서 우리글의 소중함을 느꼈 지요. 나도 원래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는 소학 천자문 맹자 까지 읽었으니까 한문세대라고 해야 하고 한문출신이라 해야 맞지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디에 의존하려 하는 것이 못마 땅해요. 중국을 본 따려 하고 의존하려 하는 것을 모화사상(慕 華思想)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것이 못 마땅해요. 저도 원래는 서울사대 출신인 국한문혼용파(國漢文混用派)인데, 한글학회인 급진파(急進派)와 양대 산맥 가운데에 중도(中度派)의 뜻을 견 지해 왔지요. 나는 변동 없는 보수도 안 되고 급진적 변화도 안된다고 봐요. 변동 없는 보수는 발전이 없고, 급진적 개혁은 싸우거나 깨지기 쉽다고 보걸랑요. 그러니 양면을 늘 생각하 는 중도가 가장 현명한 실용주의라고 봐요. 언어라는 것은 원
래 그 시대에 따라 생성되고 소멸되기 때문에 사람이 시대에
따라서 만들고 쓰다 버리고 간다고 봅니다. 그러니 한문을 고 집해서도 안 되고 한글만을 고집해서도 안 되지만 그래도 한 글이 우리나라의 말이니 한글을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 각이에요. 사실 한자어가 우리말의 70%니 몇 %니 하지만 요 즘은 외래어가 더 많이 들어와 있고 한자어는 약 30%만 남았 거든요. 따라서 역사의 변운(變雲) 문화의 변운, 시대의 변운 에 따라 순수 우리말 우리글을 파악하고 독자노선으로 국어교 육연구회를 만들어 이끌어 왔지요.
허웅선생께서 한참 후배인 나에게 국어연구에 40여년간 수고 한 것을 안다며 격려해 주시고 한글학회 이사를 맡아달라고 했을 때 학문을 하면서 가장 기뻤습니다. 사람은 역사의 순 리대로 살되 놓아두면 썩고 급진은 저항을 불러오며 보수는 발전이 약하니 스스로의 일을 찾아서 하면서 슬기롭게 대처하 는 중도 지난 40여년을 세종대왕의 한글창제의 근본 뜻을 실 현하는 일을 맡아 국교육과정위원장, 심의위원장 등 4개 위원 장을 맡아 역사의 진혼에 맞추어 국어교육에 공헌하였다고 자 부하며 이 세상에 왔다가는 것을 큰 보람으로 압니다.
힘들었을 때를 말하라면 늘 긴장을 늦추지 않고 살았으니 언 제나 힘들었다고 볼 수 있지요. 젊은 사람들에게도 늘 긴장하 며 살기를 주문해 봅니다.
최회장 : 고맙습니다. 선생님! 이렇게 귀한 말씀을 들으니 자주 좀 찾 아 뵈어야겠네요. 이제 새로 태어나는 「월간 스토리문학」이 나 젊은 작가들을 위해 기대나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 말씀 주세요.
박교수 : 스토리문학관이 지난 2000년 7월에 생겼으니 벌써 만 4년이 되었네요. 그간 최 회장이 스토리문학관 운영하면서 고생도 많이하고 돈도 많이 쓰셨다는 걸 잘 압니다. 밖에서 주욱 지 켜보니까 참여 인사가 국내외로 다양하고, 장르 또한 어느 한 장르 소흘함이 없이 모두 살피면서 수고 많았어요.
최회장 : 아이구, 부끄럽습니다.
그렇지만 저 나름대로 밤잠 못자며 돈도 좀 까먹었네요. 하하 하. 그러나 순수문학을 이만치 궤도에 올려놓았다는 보람도 큽니다. 모두들 몇 개월이니 1년이나 하고 나가떨어지는 마당 이니 말씀입니다. 제가 원래 문학지 하나 내는 것이 평생 소 원이었는데 마침 김순진 씨를 만나 서로 뜻을 맞추었으니 잘 될 겁니다.
박교수 : 그래요. 두 분이 함께하면 틀림없이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 믿 습니다. 내가 다른 모임에는 못 나가도 「월간 스토리문학」 행사가 있으면 꼭 참석해서 격려해 드릴게요.
당부하고 싶은 말은 국제화와 세계화 시대에 외국에 거주하고 있는 회원들과 국내의 회원이 서로 다른 문화 다른 의식구조 를 문학으로 담아 교류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넷 문학 에서 오프라인으로 이어져 문학지를 내는 단체는 제가 알기로 는 [스토리문학관]의 「월간 스토리문학」뿐이라고 압니다. 그러니 국제 교류의 좋은 점을 살리는 「월간 스토리문학」것 도의 발전 방향이라 보여 지구요.
또 당부하고 싶은 말은 요즘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너무 자기
도취에 빠지는 경향이 있어요. 자기감정에 치우쳐서 너무 자기
도취에 빠지지 말고 인생의 다듬어진 정서, 다듬어진 생각, 생
활을 되돌아 볼 줄 아는 생각으로 글을 써야 후대 사람들에게
전해져 참고가 되고 교육적 자료가 됩니다. 크게 시대를 생각 하고 민족을 생각할 줄 아는 작가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자면 요즘 작가들은 너무 유행에 민 감한 것 같아요. 유행이라는 것은 모두 같은 생각이라는 겁니 다.
유행을 좇으며 유행성 글을 쓰느니보다 우리글을 다듬고 만 들어 쓰면서 남이 하지 않는 분야, 생각 등의 개성 있는 글을 쓰시기 바랍니다. 이 말은 비단 작가에게만 드리는 말씀이 아 니고 새로 창간될「월간 스토리문학」에도 공히 드리는 말씀입 니다. 남이 쓰지 않는 어휘나 만들어 쓴다고 뾰족하고 송곳 같은 어휘를 쓰면 안 됩니다. 그러면 정서의 실타래가 흐트러 지게 마련이지요. 문맥의 흐름이 부드럽고 매끄럽게 써야 합니 다.
「월간 스토리문학」이 다양한 체험을 가진 사람들을 우대하고 그들이 글 쓸 토대를 마련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사실 생활시조동호회장을 맡으면서 문학에 관계하기 시작 했는데, 이 시집 두 권은 지난 50년간 써온 시와 시조, 한시를 엮어 만든 시집입니다. 그것이 전기가 되어 시, 시조, 한시, 수 필, 여행글 등에 관심을 두다가 [스토리문학관]의 최 회장을 인 연으로 문학에 발을 깊이 들여놓았지요.
「월간 스토리문학」이 그간 [스토리문학관]이 해 왔던 것처럼
인적구성이나 작품의 다양성을 토대로 순수문학을 지향한다면 발전이 기대됩니다.
필자 : 선생님! 이렇게 오랜 시간을 저희 월간 스토리문학을 위해 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세요.
박붕배 교수 프로필
약력
서울대학교, 성균관대학교 및 대학원에서 국어교육학 전공
서울대학교 원로교수
한국교육개발원 연구교수 및 자문위원
일본 동경외국어대학교 객원교수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교환교수
문교부 국정교과서 집필위원장
문교부 교육과정(국어과) 심의위원장
국정교과서 편찬심의위원장
생활시조동호회회장 등 역임
현 한글학회 이사
고령박씨 대종회장
한국국어교욱원구원장
저서
초등국어지도법
국어과교육방법론
국어과교육각론
세계의 자국어교육정책
국어독해 학습의 이론과 실제
현대인의 언어생활
한국의 교과서 변천사
한국국어 교육전사 (上,中.下)
국어과 교육총론 (Ⅰ,Ⅱ,Ⅲ,Ⅳ)
국어과 교육학의 이론과 방법연구
그 외 최신 국어교육의 이론과 현장의 조명 등
100여편의 국어교육 논문이 있다.
일반 문집으로는 시집, 시조․한시집, 수필집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