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흥미로운 글이라서 옮겨왔습니다.)
사진을 배우게 되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부닥치는 문제이며, 넘기가 쉽지 않은 고비가 바로 "비싸고 좋은 고급 기종의 카메라를
사야 좋은 사진을 만들 수 있다" 는 고급 병에 걸리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사진 애호가들이 들뜬 호기심과 보물을 발견한 어린아이 같은 순박한 열정으로 사진에 뛰어 들었다가 그 정력을
카메라 섭렵에 탕진하고 지쳐 떨어져 나가게 되는 무서운 병이기도 하다.
요즈음 허영꽤나 부린다는 강남의 돈 많은 아줌마들이 밍크 모피로 된 수영복을 입고 해수욕장에 나가는 것처럼 말리기도
지극히 힘들다.
이와 같은 기계에 대한 맹목적인 숭배나 경외 감이 사라진 연후에 야 진정으로 자신의 예술에 대한 고뇌가 가능한 것이니
사진의 세계는 그 다음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먼저, 비싼 카메라가 왜 비싼지에 관하여 이야기부터 해보기로 하자.
'라이카 (LEICA)'가 그렇게 좋은 것이어유?
제일 먼저 라이카가 나오는 이유는 비싸기로 유명할 뿐만 아니라 그만큼 얼토당토 않은 전설이 제일 많은 기종이기 때문이기
도 하다.
내가 보기에 이 라이카는 너무 비싸다.
중형이나 대형 중에 있는 비싼 기종들은 그래도 카메라가 그만큼 크고 나름대로 주장할만한 꺼리가 있지만 겨우 35미리에
불과한 이 라이카가 이렇게 비싸서야 말이나 되겠는가?
라이카에 대한 전설은 대충 다음과 같은 것들인데 '렌즈의 성능이 환상적이다.' '중형 카메라를 쓰느니 라이카를 쓰면 중형과
같은 성능, 해상도를 얻을 수 있다.' '전지로 확대해도 입자가 보이지 않는다.' '기계가 정교하고 고장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총알도 뚫지 못할 만큼 단단하다.' 등등 이다.
내가 제일 처음 써본 라이카는 R3이다.
렌즈는 주미크론(Summicron) f2.0이었다.
사실 라이카에 대한 황당한 이야기들을 그대로 믿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뭔가 차이가 좀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8배의 루페로 아무리 들여다봐도 다른 카메라로 찍은 사진과 차이를 모르겠다.
뭐 좀더 샤프한 맛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입자가 작은 것도 더더욱 아니었다. 11X14로 확대한 사진에서도 차이를 느낄 수가
없다.
도대체 펜탁스(Pentax)나 니콘(Nikon)으로 찍은 사진과 어디가 틀리다는 얘긴가?
안광이 지배를 철하도록 필림을 들여다본 끝에 결론을 내렸다.
"음... 아마도 내가 사력이 짧아 라이카의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없는 모양이구먼. 좀 더 써 보면 알겠지."
그래서 처음엔 라이카가 얼마나 좋으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역시 라이카는 뭔가 틀려..' 라고 대답을 했다.
그 사람들도 그런 대답을 기대하고 물어본 것이니까.
그런데 사진을 아무리 더 찍어봐도 도저히 모르겠다.
'뭔가 이건 아닌데.....'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내가 보기엔 솔직히 칼짜이스의 프라나(Planar) 렌즈가 훨씬 더 좋아 보였다.
지금은 R3에서 M4를 거쳐 라이카 M6를 쓰고 있다.
이 라이카 M6는 내가 정말 아끼면서도 35미리 사진 작업에 즐겨 사용하는 주력 사진기다.
아무튼 그래서 라이카를 삼신 할머니처럼 믿고 있는 라이카 매니어들에게 도대체 어디가 차이가 나는 것인지 물어보기
시작했다.
제일 흔한 대답은 11X14 정도론 차이가 나지 않고 전지로 크게 확대를 해야 그 차이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이미 11X14에서도 입자가 보이기 시작하는 필름이 더 크게 확대하면 선명해질 거라고?
너무 어처구니가 없는 대답이어서 실제로 더 확대를 해볼 필요를 느끼지도 못했다.
더 웃기는 경우는 중형 카메라로 찍은 사진보다도 좋다는 사람이 많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은 자기가 촬영한 필름을 자세히 보기나 하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일까?
내가 실제로 사용해본 제일 값싼 중형 사진기인 야시카(Yashica) TLR로 촬영한 사진 보다 라이카의 사진은 훨씬 못하다.
네가티브 면적이 4배정도 차이가 나는데 사진의 선명도를 서로 비교한다면 이건 고등 학생과 초등 학생이 싸우는 권투시합
같은 거다.
처음부터 체급이 맞지 않는 것이다.
35미리는 35미리끼리, 중형은 중형끼리 비교를 해야 공정한 것이고 또 35미리와 중형 카메라는 각자 고유한 쓰임새가 있는
것이므로 서로를 비교해서 이것이 저것보다 낫다 아니다를 논할 일이 아닌 것이다.
중형 필림의 면적이 35미리 보다 4배 넓다는 의미는 같은 성능의 렌즈를 사용하였을 때 사진이 4배 더 선명하다는 것을
의미 한다.
그런데 라이카로 찍은 사진이 중형 카메라로 찍은 사진보다 더 좋다면 라이카(Leica) 렌즈는 중형 카메라의 렌즈보다 4배
이상 더 선명하단 말인가?
일반적인 렌즈의 해상력이 60lpm(lines-per -millimeter) 정도 인데 라이카의 렌즈는 최소한 240lpm을 넘는다는 말인가?
오늘날의 렌즈는물리적인 한계에 가까운 해상력을 가지고 있는데 라이카(Leica) 렌즈는 어떻게 물리적인 법칙을 무시하고
240lpm을 낸단 말인가?
중형 야시카는 그렇다 치고 중형 핫셀브라드나 롤라이프렉스도 최고급 렌즈를 가지고 있는데 라이카(Leica) 렌즈는 최고급
렌즈보다도 더 최최고급이란 말인가?
라이카의 사진은 다른 35미리 사진기와 비교해 보면 사실 특별히 흠 잡을 데는 없다.
적어도 니콘이나 캐논 렌즈로 찍은 사진과 비교해 더 떨어질 것도, 더 나을 것도 없다.
그러나 중형 카메라보다 더 낫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말로 어이없는 일이다.
그리고 이 정도면 이 계통에서는 광신도에 가깝다.
'믿으면 곧 보이리라'는 식으로 그렇게 믿는 사람의 눈에는 거친 입자도 선예한 윤곽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이왕 시작한 김에 라이카 광신도들을 좀더 몰아 붙이기로 작정하였다.
니콘과 라이카로 찍어놓은 사진을 몇 장 골라서 테스트를 하기로 한 것이다.
라이카 렌즈가 그렇게 환상적이고 다른 렌즈는 도저히 따라올 수 없다니까, 그 사진들 중에서 라이카 렌즈로 찍은 것과 니콘
렌즈로 찍은 것을 가려내 보라고 내밀었다.
이 짖궂은 테스트는 사실 아무도 호응을 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말았는데, 내가 사진을 내놓으면 일부는
질겁을 하고 급히 전화할 곳이 있다는 둥, 자리를 피하고 일부는 마치 계룡산 도사 같은 표정으로 그런 차이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거라 대답했다.
글쎄. 눈에 보이지도 않는 차이면 도대체 무슨 차이인가?
사진은 시각 예술이 아니던가?
사실 차이가 있을 리 없다.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데 다른 사람의 눈에만 보이는 것이 있을 리 없고 설령 있다고 해도 그 사람 눈에만 보일 터이니 '이야기 속으로' 같은데
나오는 '귀신붙은 사진기'이거나 아니면 '자신이 자기 스스로를 접대하는 자기 만족'일 뿐이다.
좀 짧은 말로 줄이면 '셀프 접대'라고 말할 수 있겠다.
"???....."
무엇을 스스로 접대하는고 하니 자신의 눈은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미묘한 차이 라도 구분해 낼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가졌다고 추켜 세운다는 얘기다.
라이카 렌즈 제작소이 라이츠(LEITZ)사의 기술 자료를 아무리 훌터 보아도 라이카 렌즈의 해상력이 다른 메이커의 렌즈보다
우수하다는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나도 깜짝 놀란 사실이지만) 라이카 렌즈들은 구면 수차를 완전히 수정하지 않고 약간 남겨 두어 해상력을 의도적으로
떨어트리고 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3차원의 피사체를 2차원의 인화지에 재현하는 사진기 렌즈에서 해상력을 다소 희생시키더라도 보다 입체감
있는 묘사를 해주기 위해서 이다.
또한 라이츠사는 사진을 선명하게 하기 위하여 렌즈의 해상력을 올리는 대신 콘트라스트를 올리는 방법을 더 선호한다.
렌즈의 콘트라스트가 높아지면 피사체의 윤곽이 더 뚜렷하게 구분되어 보이게(즉 밝고 어두운 차이가 크다) 되는데,
이것은 렌즈가 더 세밀하게 묘사(해상력이 높다)할 수 있다는 것과는 틀린 얘기이다.
결론적으로 라이츠 렌즈군은 구면 수차가 남아 있어 해상력은 생각처럼 높지는 않고 오히려 약간의 흐려짐을 가지고 있지만
이것을 높은 콘트라스트의 윤곽선으로 보상하여 선명한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어졌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진이 선명한 듯 하면서도 부드럽게 묘사되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는 것인데 그러고 보면 라이카 렌즈의 맛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라는 계룡산 도사급의 촌평이 뭔가 예언에 가까운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쩝... 내가 짧은 안목으로 도사 앞에서 발칙하게 까불었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 라이카 렌즈로 찍은 사진과 다른 렌즈로 찍은
사진을 구별해 낼 수 있는 혜안을 가지지 못하였다. 도사는??)
어쨌든 이런 독특한 묘사 능력은 렌즈의 사양을 토대로 한 추정일 뿐이고 실재로 느끼기는 다소 힘들다.
그 이유는 선명한 듯 하면서도 부드러운 독특한 묘사력이 인화지 위에 재현될 정도로 구면 수차를 많이 남길 수가 없기
때문인 것이다.
오늘날은 과학적 데이타와 기술 자료를 무작정 신봉하는 시대라 구면 수차를 많이 넣어 해상력이 다른 회사의 제품보다 떨어
지는 렌즈를 만든다면 자명하게 물건이 팔리지 않게 된다.
외국의 여러 사진 잡지나 인터넷의 사진 관련 싸이트를 보면 온갖 렌즈에 대한 꼼꼼한 테스트들이 올라와 있는 것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자료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뭐가 좋은 건지 알기 힘들게 되어 있고 이거나 저거나 다 똑같은 것이다는 것을 이렇게 어렵게
얘기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런 테스트들은 신빙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개인의 취향이나 의견 같은 주관적인 것은 무시하고 '해상력 테스트'나 'MTF 테스트'
등의 객관적 데이타에 의존하게 된다.
그러니 라이츠사가 해상력을 낮게 잡아 렌즈를 디자인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오래된 기종에 붙어 있는 구형 렌즈들은 라이카 고유의 특징이 강하다.
라이츠의 스크류 마운트(Screw Mount) 카메라는 IIIG기종을 끝으로 1956년에 생산이 중단 되었는데 당시에 35미리 카메라
시장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던 '짜이스 이콘(Zeiss Ikon)'사의 콘탁스(Contax) III와는 뚜렷한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이 당시에 라이카 IIIf나 IIIG에 사용되었던 주마(Summar), 주미타(Summitar), 엘마(Elmar) 렌즈들은 구면 수차로 인하여
해상력은 떨어지지만 독특한 흐려짐이 있어 다른 렌즈(특히 면도날로 자른 듯이 선명한 묘사를 하는 짜이스의 렌즈)와 차이가
났던 것이다.
이런 흐려짐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쨌든 오늘날 생산되는 라이츠 렌즈들은 이런 것을 잘 느낄 수
없다.
당시의 짜이스 렌즈의 선명한 묘사는 'Bite look'(깨물어 뜯은 자국처럼 선명하다는 의미)이라는 말을 유행시킬 정도 였는데
짜이스의 테짜(Tessar)를 복사한 라이츠의 엘마(Elmar) 렌즈나 프라나(Planar)를 복제한 주마(Summar) 렌즈는 원조 렌즈와
같은 성능을 도저히 낼 수가 없었고, 라이츠는 렌즈의 해상력이 아닌 분위기로 승부를 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라이카에 대한 황당 중의 황당,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구라의 지존을 소개하자면....
'라이카의 렌즈는 시각 장애인이 만든다'는 이야기이다.
소문인즉슨 라이츠사는 기계적인 가공도 믿지 못하여 손끝의 감각이 크리넥스 홑 겹을 두 쪽으로 가를 수 있을 정도로 예민한
시각 장애인을 고용하여 렌즈를 쓱 더듬어보고 잘 깎였는지 아닌지를 판정한다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자신이 직접 본 것처럼 (한 손으로는 아끼는 라이카를 쓰다듬어 가면서) 천연덕스럽게 얘기하는 사람들을 보면
거의 샤머니즘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이다.
이런 무속의 경지에 이르는 발상도 따지고 보면 다분히 동양적인 것인데 서구인들이란 (특히 독일인들은 더욱 더) 확고한
물리적인 법칙과 과학적인 측정 기술을 저희 조상들의 음덕보다 훨씬 더 신뢰하는 부류들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렌즈를 만져보고서 판정한다는 것은 아마도 '렌즈 만드는 것'과 '고려 청자 만드는 것'을 구분할 줄 모르는 사람이 동양인들이
지어낸 말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라이카는 하나쯤 가져 볼만한 사진기다.
잘 만들어진 기계이며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디자인을 가지고 있고( R기종은 이 말에서 빼고 싶다) 또 주위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 수도 있다.
라이카라는 이름은 사진의 역사에서, 그리고 카메라의 역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그런 카메라를 소유한 덕분에
덩달아 부러움의 눈초리를 받게 된들 그리 나쁠 것도 없는 일인 것이다.
하지만 '환상적인 작품이 우수한 렌즈에 힘입어 쉽게 만들어 질' 거라는 기대 때문에 라이카 같은 비싼 카메라를 사고 싶어
한다면 그건 정말 말리고 싶다.
사실은 생각과는 반대로 사진을 배우는데 커다란 장애물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고가의 장비를 아끼지 않고 함부로 쓸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이다.
보통은 사진기의 광택을 보존하느라 가죽 케이스에 꼭꼭 싸서 여인네가 은장도 품고 다니듯 가지고 다니는데,
심지어 샷타에 무리가 갈까 봐 사진을 잘 찍지 않는 사람도 있다.
렌즈도 너무나 비싸기 때문에(어차피 사치품은 다 그런 거지만) 이것 저것 필요한 대로 사서 쓸 수가 없다.
서너 달 동안 이 카메라를 아끼느라 노심초사하다가 아예 사진에 대한 흥미가 피곤으로 변해 버리는 사람도 보았다.
이렇게 되고 나서도 사진을 제대로 배우거나 잘 찍게 되는 사람을 나는 본적이 없다.
진짜로.
사진기가 본래의 목적에 종사하지 못하고 위세를 떨치는 용도로 전용되면 그 사람의 사진 세계도 거의 끝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