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고·경북고·광주일고 지고, 외국어고 뜨고’.
판·검사 임용자 출신고교의 주류가 바뀌었다.
▲ 사법시험 다수 합격자 배출 고교의 판도가 바뀌고 있다. 과거 몇몇 학교가 대부분을 차지하던 현상도 사라져, 고교 출신별 학맥을 통한 파벌이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올 2월 34기 사법연수생 수료식 장면/조선일보 DB | |
지난 33년간 임용된 전체 판·검사의 출신 고교 ‘빅3’는 경기고·경북고·광주일고였다. 최근 5년 동안의 추이를 조사했더니 빅3가
순천고·대원외국어고·휘문고로 바뀌어 있었다.
1974년 서울과 부산에 처음 도입된 ‘고교 평준화’ 실시 이후 법조계 명문고 판도가 크게 변한 것이다. 특히 1984년 개교한 특목고인 대원외고는 최근 5년간 사시 합격생이 매년 1위였다. 2000년 13명, 2001년 19명, 2002년 23명, 2003년 37명, 2004년 41명 등으로 급증 추세다.
이는 본지가 사법연수원 1~34기(1972~2004년) 수료자 9573명과 같은 기간에 임용된 판사 3013명, 검사 2180명의 인적 사항을 사법연수원과 대법원 및 법무부에서 입수, 엑셀 프로그램으로 분석한 결과〈표 참조〉 드러났다.
1~34기까지 전체 판사 임용자 3013명(퇴직자 포함)을 출신 고교별로 보면, 경기고(140명), 경북고(101명), 서울고(71명), 광주일고(70명), 전주고(60명)의 순이었다. 같은 기간 검사 2180명(퇴직자 포함)의 출신 고교 순위도 엇비슷하다. 경기고(96명), 경북고(85명), 전주고(53명), 광주일고(46명), 경복고(42명)의 순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외국어고나 지방의 비평준화 지역 고교가 강세를 보이면서 출신 고교별 순위가 뒤바뀌고, 특정 고교 출신이 다수를 점유하던 비율도 크게 낮아졌다. 다시 말해 법조계 내 고교를 중심으로 한 ‘학맥 파벌’이 재편되고 있는 셈이다.
최근 10년간 판사 임용자는 순천고(19명), 대전고·서울고(각 16명), 달성고·학성고(각 15명) 등의 순이었다. 하지만 최근 5년 동안에는 순위가 또 바뀌어 달성고·학성고(각 12명), 대원외고·순천고(각 11명), 광주고·대전고(각 9명)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검사 임용자도 비슷하다. 최근 10년간에는 순천고(21명), 휘문고(13명), 상문고(12명), 진주동명고·마산고(각 11명) 순으로 검사를 배출했다. 반면 최근 5년 동안만 보면 순천고(12명), 휘문고(8명), 대원외고·진주동명고(각 7명), 경기고·단대사대부고·안동고·영동고(각 6명) 순으로 나타났다.
한편 과거 사시 합격자가 100명 또는 300명 시대일 때 절대 다수를 차지하던 서울대 출신 사시합격생의 비중은 ▲1997년 53.8% ▲1998년 42.9% ▲1999년 38.5% ▲2004년 33.5%로 급격히 줄고 있다.
최근 10년간 판사 임용 1위(19명)·검사 임용 1위(21명), 최근 5년간 특목고를 제외한 일반고 중 사시 합격자 배출 1위(55명).
전남 순천고가 서울 강남 소재 고교와 외국어고를 제치고 ‘판·검사 배출 명문고’를 차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윤정근(尹丁根) 교장은 “가난한 집안의 수재들에게 사법시험 합격만큼 매력적이고 현실적인 목표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1980~1990년대에 법대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 비율이 특히 높았다는 것이다.
또 1970~1980년대 권위주의 정권 시절 호남차별 때문에 자격시험인 사법시험을 선호했다는 분석도 있다.
천연필(千連弼) 운영위원장은 “호남 출신이 상대적으로 차별받던 시절에 임용고시인 행정고시보다는 사시를 지망하는 동문들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덕분에 ‘문과(文科) 강세’가 전통으로 자리잡았다. 2001년에는 문과반 덕분에 수능시험 상위 20개교에 포함되기도 했다. 올 들어 비평준화 고교에서 평준화 고교로 전환했어도 이런 전통은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학교측은 말했다.
순천고 출신 현직 판사로는 이태운(李太云) 서울중앙지법 민사수석부장 등 19명, 현직 검사로는 강영권(姜永權) 서울서부지검 부장검사 등 32명이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