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다리에는 전해오는 전설이 있는데 고려 고종 때의 권신인 임연(林衍,?~1270) 장군이 자신의 고향집 앞에 있는 세금 천에서 추운 겨울 아침에 세수를 하고 있는데 어떤 젊은 부인이 내를 건너지 못해 발을 구르고 있는 모습이 보여 그 이유를 물어보니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친정에 가려고 나섰는데 물살이 세어 건너지 못하고 있다고 하자 그 처지를 불쌍히 여긴 임연 장군은 용마를 타고 단 하룻밤에 돌을 실어 날라 다리를 놓고 그 부인이 무사히 건너갈 수 있게 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임진왜란과 경술국치, 한국 전쟁 때에도 농다리가 며칠간을 큰소리를 내어 우는 바람에 진천 초평면 마을 사람들까지도 밤잠을 설쳤다는 일화가 전해지는 현존하는 민간의 돌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된 다리로 전해지고 있다. 구체적인 사료가 남아 있지 않아서 농다리가 축조된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초기 가설연대를 고려시대 말기쯤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충북 청주시와 청원군 일원의 삼국시대 지명인 낭비성에서 진천 벽암리에 있는 도당 상성으로 통하는 길목에 있는 것으로 보아 신라 때 설치되었을 거라는 추측을 하는 학자도 있다.
붉은 상판에 올라서서 흐르는 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배를 타고 떠내려 가는듯한 착각을 느끼게 된다.
흐르는 거센 물살을 버티고 쌓여진 교각의 돌들이 크고 잘 생긴 돌들만 선택된 것이 아니라 제 각기 다른 모양의 돌들을 마치 블록을 끼워 맞추듯 맞물려 커다란 힘을 낼 수 있게 쌓아 올린 것을 보면서 우리네 인생살이도 농다리처럼 자연의 순리에 거부하지 않고 모든 이들과 어우러져 지순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작고 볼품없는 하나의 돌멩이가 모여져 교각을 이루고 붉은 상판을 떠받들어 서 있는 모습이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도 이 붉은 상판처럼 인생의 붉은 카펫을 걷는 출중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거칠고 차가운 물살에 몸을 담근 저 교각의 돌처럼 고달픈 삶을 사는 이도 있다.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산다.’는 유행가 가사도 있지 않은가.
우리 모두 나름대로 제 몫이 따로 있어 분명 이 세상에 태어났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