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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시평》
도시인, 그 존재하는 몇 가지 방식
_윤관영1)
1. 도시인 _ 그와 나
꽃향기 싱거워 다 틀렸다
저렇게 슬금슬금 피는 꽃
꽃 아니다
저렇게 설렁설렁 부는 바람
바람 아니다
간밤의 눈이 모든 봄을 덮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최영철, 「봄 폭설」전문, 『愛知』
시적 인식이 이처럼 단호하고 명징할 수 있을까. 맞다, 아니, 그래서 시적 인식이다. 얼렁뚱땅 넘긴 시련은 더 혹독하게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확연하게 보여주고 있다. IMF를 이른 시일 내에 극복한다는 프로젝트 아래 진행된 무분별한(부실) 카드 발행이 부메랑이 되어 결국은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수 많은 신용불량자를 만들어냈고, 부실기업을 키워왔다. 그나마 수출은 되고 있다 하나 고용창출이 없고 구매력을 잃은 개개인들이 무기력증에 빠져있는 게 현실이다. IMF 때보다 더 어렵다는 말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도시인, 이 말만큼 현대인의 삶을 지칭하는 말도 드물다. 농촌이라고 해서 도시인의 특성이 적용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다 뿐이지 그 특성의 적용에 있어서는 같다. 도시인의 특징은 생존,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생산과 소비, 교환 가치의 원리가 적용되는 생활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존재해내야 한다. 밀려나면 어디로 간단 말인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말은 끝내 도시인, 개개인이 자신을 독려하는 말이다. 남의 탓이나, 조건 탓, 정부 탓이 아니라 끝내는 내 탓으로 돌리고 생존에 매진해야 한다. 남의 탓을 하고 있을 정도로 도시인의 삶은 호락호락한 상태가 아니다.
이자를 위하여 일기를 쓰자고 다짐한다/이자를 위하여 선인장 가시를 들여다본다/…/이자를 위하여 전철을 기다리는 동안 안전선을 툭툭 찬다/…/이자를 위하여 나무들의 이자를 생각한다/이자를 위하여 자동차의 이자 속도를 계산해본다/…/이자를 위하여 세탁소에 맡긴 옷을 찾지 않는다/이자를 위하여 일기를 쓰지 못한다
―맹문재, 「이자를 위하여 일기를 쓰지 못한다」부분, 『리토피아』
여기서 ‘이자’는 도시인이기에 지불해야할 대가 같은 것이다. 몸뚱이가 발 디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지불해야할 자릿세 같은 것이다. (이 사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주차비다. 물론 주거비는 사람이 내는, 그러니까 주‘인’비인 셈이다.) 〈일기를 쓰〉자는 것은 자신을 더 가혹하게 몰아붙여야 한다고 인정하는 마음가짐이고, 〈다짐한다〉는 것 또한 자신을 몰아붙이는 자기강제다. ‘선인장’ 가시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 나와 비교되는 존재로 - 생활을 견디어낸 그 모습을 대견하게 여기는 데서 오는 시선이고, 도시인은 퇴근길에 어떤 쓸쓸함이나 지친 상태로 인해 자학하듯 발끝으로 ‘안전선’을 툭툭 차본 경험이 대부분 있다. ‘이자’ 자체에 대한 생각은 이자가 불러일으킨 것이고 옷을 찾지 않는 것은 무기력한 삶을 의미한다. 물론 더 큰 문제는 스스로 다짐한 것을 지키지 못하는 ― 일기를 못 쓰는 ― 핍진이다. 동일한 주제에 대한 생각을 산문적으로 진술한 이 시가 주는 공감은 도시인의 불확실한 삶 자체가 불러온 것이다.
2-① 도시인 _ 나의 현주소
이자를 지불해야 하는, 그것도 과도하게 지불해야 하는 도시인의 삶은 되다. 이런 ‘된 마음’을 이기려고 주말 여행을 떠나는 도시인도(어떤 피해의식에서), 과도하게 지불해야 하는 비용 때문에 욕구를 접는 도시인도 그 삶이 대근하긴 마찬가지다. 〈개도 짖고 고양이도 울던 날, 유독 토끼의 벙어리 노릇에 마음이 닿는다〉(김록,「마임」, 『현대문학․6』)는 연민이야말로 바로 도시인의 이 고된 삶에서 오는 것이다.
무거운 번역서로 주둥이가 벌어진 가방이나
울러메고
밀고 밀리는 지하철에서
틀어진 옷가지나 매만지다가
지구의 끝으로 떠난 그대들 편지나 읽으며
봄이 오는
서울역 환승구에서
그립거나 그리운 얼굴들
그립지만 너무 낯설고도 익숙한
그대들을 보네
―조하혜, 「서울역」부분, 『다층』
〈무거운 번역서로 주둥이가 벌어진 가방이나/울러메〉는 전투적인 삶이면서, 동시에(여기서 지하철은 도시인에게 가장 치열한 삶의 격전장이다) 〈지구의 끝으로 떠난 그대들 편지나 읽으며〉 그리운 얼굴이나 떠올리는 수동적인 삶이 도시인인 나의 현주소다.
〈하늘을 쳐다보는 일보다/땅 바라보는 일 잦아져/내 그림자와 자주 만나〉고 〈내 그림자/밤도시 헤매는 일 줄어들고/방구석에 누울 때 많아지〉고 〈그림자도 나이를 먹는〉(양전형, 「그림자도 나이를 먹는다」부분, 『다층』)것이 도시인인 내가 삶 속에서 나를 인식한 그 결말이다.
2-② 도시인 _ 그들의 현상태
〈자, 한 잔/눈물겨운 것이 어디 술뿐일까만/그래도 한 잔〉(김사인, 「빈방」부분, 『문학․판』)한다고 해서 도시인, 그 다수이자 개개인의 슬픔이 어디 가는 것이 아니다. 술은 순간을 이기는 방편일 뿐이지 그 대안은 아니다. 다만 여기서는 절망적인(‘눈물겨운’) 삶일지라도 긍정하자는 커다란 배수진으로 읽힌다.
도시와 농촌의 구분은 도시와 좀더 주변적인 도시를 의미할 뿐, 경쟁 논리가 첨예하게 적용된다는 면에서는 같다. 따라서 〈팔없는 나무/그림자를 데리고 서 있다/…/한 번 박히면/어떤 나무도 도심을 벗어나지 못한다/…/삶도 살 수 없기에 죽음도 살 수 없다〉(김대희, 「가로수」, 『창조문학』)는 진술은 설득력을 갖는다. 〈한 번 박히면/어떤 나무도 도심을 벗어나지 못하〉듯이 도시인 그 누구도 도시의 구속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것은 죽음마저도 그렇다. 죽음마저도 도시의 논리에 철저히 지배받는다.
〈지하철 신도림 역에 내리면/화살들이 정신없이 쏟아진다/…(중략)…/화살에 맞고도
그 많은 사람들이/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잘 살아가고 있다〉(신미균, 「화살표」,『시와사람』). 여기서 〈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전혀 잘 살아가고 있지 않다는 반어적 진술이며,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피를 흘리며 살고 있음을 의미한다. ‘화살표’는 내몰리는 도시인의 삶을 상징하는데, 그것도 〈정신없이 쏟아지〉는 상태다. 서울의 ‘신도림’이라면 주변부 삶들이 집중적으로 드나드는 관문이 아니던가.
3. 도시인 _ 그 불안의식
도시인의 불안의식은 존재 그 자체에서 오지만 많은 경우 사람에게서 온다. 여기서 한 사람, 혹은 몇몇이 착하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또한 친분, 친족이라는 사실도 큰 의미가 없다. 이 불안의식은 사람뿐 아니라 사람이 만든 조직, 기구, 폭 넓게는 사회로부터 온다. 권력 또한 가진 자가 누리고 행사한다는 의미에서 불안의식을 키우는 괴물이다. 여성에게는 남성이 불안의식을 키우는 존재일 수 있다. 그러니까 도시인의 불안의식은 사람의 문제이고 사람이 만든 구조의 문제이다. 몇몇 특정 인물의 문제가 아니다. 아래 유정임의 시는 시사하는 바가 많다. 도시인으로서 여성이 갖는 본질적인 불안의식이 이 시 속에 있다.
지쳐있을 시간 쯤
스스로의 몸에 미등을 켜고 길을 달린다
그때
그가 헤드라이트를 켜고 뒤따라오며
내 뒤통수를 환하게 들쑤신다
갈수록 불안한 속은 점점 환히 드러난다
도망치듯 속도를 내 본다
나무들 이상한 낯색으로 뒤로 가며 흘끔거린다
계속 같은 속도로 뒤 따라오는 그
속도를 줄이고 한 쪽으로 비켜가며 앞을 양보한다
앞으로 나서지도 않는 집요한 스토커
들켜버린 미숙한 길은 점점 비틀거리고
각도를 조금씩 달리 할 때마다 빛은
갈비뼈 엉성한 내 옆구리에서 번쩍, 반사된다
그의 길을 내주고 방향을 틀어 잡는다
퍽!
그가 마지막 내 뒤통수를 쳤다고 느꼈을 때
휙, 뒤돌아보았다
서쪽 궁창에서 그가
혼자 비틀거리는 나를 무심히 보고 있다
―유정임, 「혼자서 비틀거리다」전문, 『창조문학』
유정임의 시는 제목이 암시하는 바가 있다. 〈혼자서 비틀거리〉는 것은 스토커가 따라붙는 절대고독의 시간을 혼자 견뎠다는 의미가 된다. 사실, 절대고독의 순간은 나눌 수 없고 나눌 수 있다면 그 고독은 해소된다. 역설적으로 둘 이상의 집단이 되면 그 고독은 해소되겠지만 타인에게 고독을 강요하는 어떤 상태를 이루고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이 섬쩍지근한 마음을 갖게 한다.
여기서 화자는 스토커로 명명된, 그것도 〈집요한 스토커〉로 알고 있었던 것이 〈서쪽 궁창에서 그(달)가/혼자 비틀거리는 나를 무심히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허나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화자가 그런 사실을 인지했다고 해서 〈집요한 스토커〉에 대한 경계심이 풀리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바로 도시인의 삶 속에서 여성이 갖는 또 하나의 질곡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 시는 운전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4. 도시인 _ 그 불안의식의 역설
역설적이게도 생은 이 불안의식이 있어 생이다. 불안의식이라는 이 괴물은 적에 대해 고민하게도 하지만 스스로를 처절하리 만치 되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이 것이 불안의식의 역설이다. ‘바닥을 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어 이제는 느리지만 올라갈 일만 있다는 믿음의 다른 표현이다. 이 밑바닥에서 꿈꾸는 것은 그래서 최고의 정점이다. 이 도시인의 불안의식이 만든 정점이 유토피아다. 불가능한 것을 보게 하는 지점이 그 밑바닥이기에 가능하다.
늘 먼 데를 바라보는 너
잘 놀라는 너
꽁무니에 커다란 흰 무늬를 가지고 있는 너
네가 누웠던 자리에
가만히 두 손을 포개고 누워보고 싶다
노루귀 노루발풀 노루오줌 노루삼의 풀들과 이름을 나누어 가져 꼬리가 없어졌다
먼 데를 바라보는 버릇이 있어
아름다운 몸을 가진
짐승
노루가 누웠던 자리에
나도 그대로 가서
풀이 누운 자리에 몸을 맞추고 누워본다
몸이 차츰 순해진다
노루가 누웠던, 저 자리
―조용미, 「노루가 누웠던 자리」전문, 『실천문학』
〈노루귀 노루발풀 노루오줌 노루삼의 풀들과 이름을 나누어 가져 꼬리가 없어졌다〉는 인식은 재미있는 신비한 해석이다. 하지만 화자의 몸은 도시에 있다. 정반대의 자리, 불가능한 자리에 있다. 이 불가능을 가능한 꿈으로 치환하는 것은 물론 바닥인 현실이다. 그러나, 누구라 하여 〈노루가 누었던 자리에/나도 그대로 가서/풀이 누운 자리에 몸을 맞추고 누워보〉고 싶지 않을까, 바닥인 현실은 최정점을 꿈꾸게 하는 것을. 즉 유토피아는 최악의 어떤 상태가 구체화 시키는 그림, 이상향이다. 산은 이미 사람들이 가지 않아 정글이 된, 혼자 가기엔 무서운 곳이 되었다는 사실보다는 꿈만이 전부인 게 바닥에 있는 자의 절박한 바람이다. 가능성 여부는 이미 다른 차원의 말인 것이다.
도시인의 이 불안의식은 〈종지마다 담겨 있었다/어머니, 오직 몸이 經典이었다〉(조성자, 「조왕신」부분, 『현대시학․5』)고 자신의 뿌리와 전통에 대해 성찰하게 만든다. 바장이게 만든다. 그리고 살피게 하고 또 눈길 가게 만든다.
아파트 후문 입구, 작업복을 입은 사내가 또뽑기 좌판을 펼쳐 놓는다./…/순간 한쪽 돛에 툭 금이 간다. 에이 재수야, 아이들은 손을 털고 일어서 놀이터 쪽으로 달려가고 사낸 이내 동전 통에 누워 있는 백동전과 함께 오수에 빠진다. 바다가 달아난 사내의 잠, 저녁 무렵 구멍 숭숭 뚫린 다 타버린 연탄재 두 장으로 길가에 남겨진다.
―박현주, 「그의 바다는 아직 살아있다」부분, 『시안』
내 생이 끕끕해 보아야 타인의 생이 보인다. 내가 아파해 본 만치 보인다. 현실의 외피를 넘어서 그 이면까지 보인다. ‘또뽑기’ 좌판이 예사롭지 않게 보이는 것도, 거기서 〈한쪽 돛에 툭 금이 가〉는 것이 보이는 것도, 〈구멍 뚫린 다 타버린 연탄재 두 장으로 길가에 남은〉 사내의 하루를 보는 것도 끕끕해 본, 끕끕한 생의 불안의식이 타인의 삶을 나의 삶으로 전이시키는 데서 오는 보임이다.
그냥 참고 살아간다는 게 눈물겨워
누가 손바닥을 찍어놓은 것일까 이렇게
한 생을 건너간다는 징표같은 것,
그러나 저 손바닥엔 체온이 없고
지문도 없어
죽음 같은 고요가
아파트 주차장의 땡볕을 견딘다 그냥 참고
살아간다는 게 서럽고 눈물겨워
저 혼자 말라붙은
시멘트의
손자국, 박수 갈채도 없이
―오정국, 「흐르는 물을 붙잡고 서서」부분, 『시안』
이 불안의식은 도시인들로 하여금 몸을 움직이게 만든다. 산책하게 만들고 관찰하게 만든다. 살피게 만들고 사물을 내 살붙이로 인식하게 만든다. 시멘트 콘크리트를 치고 누군가 찍어놓은 손바닥 지문을 〈그냥 참고 살아간다는 게 눈물겨워/누가 손바닥을 찍어놓은 것〉으로 인식한다. 사소한 장난일 수도 있는 손바닥 찍어놓은 일이 〈이렇게/한 생을 건너간다는 징표같은 것〉으로, 그리고 〈살아간다는 게 서럽고 눈물겨워/저 혼자 말라붙은〉 것으로 확대해석 하게 만든다. 마치 생이 〈손자국, 박수 갈채도 없이〉 견디는 것처럼 말이다. 그것이 흐르는 물을 붙잡고 서있다는 설정은 그 양의 미미함 속에서 땡볕을 견딘다는 측면에서 보면 얼마나 간절한 일인가.
미얀마인이 눈 속으로 나는 까마귀 쫓고
스리랑카인이 눈 날리는 허공 우러르고
타이인이 눈 쌓인 마을 향하다가
고개 숙이고 돌아서서 터벅터벅 걸어가며
해 뜨거운 고향땅 떠올려볼 때,
반대편에 승용차 세우고 내린 한국인 하나
오줌 갈기고 자지 잡고 털며 진저리치고는
세 아시안 곁눈질하며 승용차 타고 쌩 떠난다
저쪽 갓길엔 지린내나는 김 오르고
이쪽 갓길엔 함박눈에 발자국들 덮인다
―하종오, 「불법 체류자」부분, 『시평』
생을 흔드는 불안의식은 역으로 제 생을 되돌아보게도 하지만 그 폭을 넓게 하기도 한다. 그 눈길은 타국인인 ‘불법 체류자’에게도 머문다. 눈이라고는 맞아본 일이 없었을 그들이 〈해 뜨거운 고향땅 떠올려보〉게 만드는 눈 오는 현실에 대해 눈 돌리게 한다.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 숙명같은 현실을 수긍하면서 동조하는 눈길이 주장하는 바 없이 묘사(주장)되고 있다.
5. 도시인 _ 추스르기
도시인, 그 삶의 쓸쓸함과 불안의식은 생존의 위협에서 나온다. 과연 살아낼 수 있을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회의는 건강하게 살아내자는 의지를 그 속에 이미 내장하고 있는 것. 이 한 폭의 수채화 같은 김수우의 시는 ‘~같다’고 조심스러워 하지만 단호한 긍정이 있다.
도살장에 팔려갈 늙은 소의 코 끝에 붙은
살구꽃잎 한 장
소와 꽃잎이 들여다보는
길끝, 광주리 하나 걸어온다
살 수 있을 것 같다
자전거 시장꾸러미에 높다랗게 얹혀 실려가는
붓꽃 몇 송이
나를 본다, 모든 꽃은
오랜 약속에 붙이는 느낌표이다
얼마든지 살 수 있을 것 같다
―김수우, 「장터의 봄」전문, 『愛知』
어떤 거대한 가능성을 보고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절망감은 로또복권 만이 희망이라고 주기적으로 사게 만들기도 한다― 〈도살장에 팔려갈 늙은 소의 코 끝에 붙은/살구꽃잎 한 장〉이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을 주고 〈자전거 시장꾸러미에 높다랗게 얹혀 실려가는/붓꽃 몇 송이〉가 새로운 해석(‘오랜 약속에 붙이는 느낌표라는’)을 가능케 하면서 〈얼마든지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불어넣기도 한다. 그냥 희망이 아니라 일수를 찍는 치부책 같은 쟁여진 희망이다.
〈확연한 빚만 켜켜이 쌓여 있는 여름,〉에는 〈쪼매 늦었죠, 니년은 그새/밀린 지각비가 얼만 줄이나 알어?〉 다그쳐 물어도 〈양지다방 김양은 허기만 더할 말대답 대신/스쿠터 엔진 소리로 콧방귀를 뀌는〉(박성우,「자귀꽃」부분, 『창작과비평』) 것도 생을 견디는 한 방식이다.
아프다는 것이 축복임을 안다/앓는다는 것은 내 안에 누군가를 키우고 있다는 것/아픈 몸은 홀몸이 아니라는 것(이대흠, 「달몸살」부분, 『현대시학․6』)
아기천사께서 옹알이를 시작하신 아침 나와 모든 것들의 사이가 한결 좋아졌다 萬事亨通이다(정진규, 「옹알이」부분, 『현대시학․6』)
위에 두 시는 인식의 전환을 말하고 있다. 이대흠은 ‘아픔’을 ‘축복’으로 알고 〈앓는다는 것은 내 안에 누군가를 키우고 있다는 것〉이므로 〈아픈 몸은 홀몸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생을 이겨나가는 것이 꼭 제 한 몸만이 아니라는 것이니, 또 힘내 버틸 존재의 이유가 하나 더 생긴 것이다. 정진규는 비우는 탈속이 한 방식임을 말하고 있다. ‘萬事亨通’이면 아무 문제 없는 것이다. 문제가 소멸되어 아무 문제 없음이 아니라 이 아무 문제 없음은 아직 인간의 언어를 배우기 이전의 상태이니, 그런 상태를 인지하고 ‘모든 것들의 사이’를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은 문제보다는 관계에 주목하는 방식으로 주목을 요한다.
모퉁이가 없다면
자전거 핸들을 어떻게 멋지게 꺾었겠어
너하고 어떻게 담벼락에서 키스할 수 있었겠어
예비군 훈련 가서 어떻게 맘대로 오줌을 내갈겼겠어
먼 훗날, 내가 너를 배반해볼 꿈을 꾸기나 하겠어
모퉁이가 없다면 말이야
―안도현, 「모퉁이」부분, 『문학동네』
도시인, 그 삶의 질곡이 애초 존재하는 것이 삶을 풍요롭게 한다고, 역설적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이 시는 말하고 있다. 생의 질곡인 ‘모퉁이’가 있음으로써 연애도 약간의 방종과 배반의 꿈도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 모퉁이가 없다면 〈인생이 운동장처럼 막막했을〉 것이니 생의 질곡은 차라리 고마운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어깨며 등 떨리는 오 분간, 상처는 그렇게/서로 부대끼며 천천히 가벼워지는 것인지/세탁기는 중심에서 울음을 비워내고야/멈췄다. 멈출 수가 있었〉(윤성택,「탈수 오 분간」, 『시와반시』)듯이 상처는 부대끼면서 가벼워지고 그 울음은 중심에서 나오고야 멈춰지는 것이니 나누고 제 몫의 아픔을 기꺼워해야 한다. 그런가 하면 박성우는 불면을 유단자 급에 이르게 하는 도시인의 생의 핍진함을 이기는 방법으로 〈그럴 땐 끙끙대지 말고 벌떡 일어나/된장찌개를 만들어봐/애호박이며 풋고추 숭숭숭 썰어 넣고/뚝배기에 새벽을 지글지글 끓〉여 보라고 권한다. 그것도 〈도마에 칼 지나는 소리가/집 안 구석구석을 얄밉게 파고들〉 게 해야 한다면서 〈그러니 사뿐사뿐 움직여야 해/불면의 진가를 느끼기엔 혼자가 좋은 거〉(박성우, 「불면증 유단자」부분, 『문학․판』)라면서 불면을 이루는 고통은 결코 나눌 수 없기에 나눌 수 없는 고통을 이기는 이열치열의 묘법을 내놓고 있다.
6. 도시인 _ 그 견디는 방식
과연 시련은 견디라고 있는 것인가? 좀 상투적인 말로 ‘신은 이길만한 시련만 준다’는 것을 믿고 열심히 견디어야 하는가. 살아내면 되는 건가. ‘산 입에 거미줄 치랴’ 믿으며 절대 긍정으로 나가면 되는 것인가. 이런 믿음과 상관 없이 주어진 도시인 절대 다수가 떠맡은 생의 질곡은 어떻게 극복되어져야 하는가? 아래 시는 그 함의하는 바가 많다.
시루 위, 견본으로 뽑아둔
푸슬푸슬 말라가는 콩나물을 볼 때마다
몸에 착 감기는 비단을 덮어주고 싶어진다
검은 보자기를 들어올리는
후끈거리는 콩나물 대가리의 힘은
팅팅 불은 껍질이 찢어지는 순간
그대로 內燃機關이 된 온몸으로부터 발화된 것
실린더는 맹렬하게 한 방향으로 작동하여
부쩍 키가 자라고 아삭아삭해진 콩나물,
있는 힘을 다해
캄캄한 세상을 밀어젖히느라
뒤꿈치가 다 갈라터진 뿌리를 다듬는다
따뜻한 국 한 그릇이 들어올릴
하루의 무게를 가늠해 보며
누군가가 한 움큼 씩
새로 뽑아다 코앞에 들이미는 오늘,
그 연하고 싱싱한 새벽의 젖은 머리에서
―이인원, 「실크터치」전문, 『시안』
〈검은 보자기를 들어올리는/후끈거리는 콩나물 대가리의 힘은/팅팅 불은 껍질이 찢어지는 순간〉에 있다는 인식은 고통의 극점에서 힘이 분출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게다가 그것이 〈그대로 內燃機關이 된 온몸으로부터 발화된 것〉이라니 놀랍지 않은가. 적어도 고통 당하는 모든 존재는 그 안에 내연기관이 있어 발화한다니, 어떤 면에서 도시인의 핍진한 생도 이 앞에서는 엄살이 될 수가 있다. 〈있는 힘을 다해/캄캄한 세상을 밀어젖히느라/뒤꿈치가 다 갈라터진 뿌리를〉 가진 존재가 콩나물이듯이 뒤꿈치 갈라터지게 살면 못 견디고 못 이루어낼 게 없을 것만 같은 위로가 이 시 속에 있다. 이는 상투적인 위로가 아니라 생명이 자신을 발화해 나가는 비밀이 주는 엄숙한 위로가 된다.
카운터를 통과해야 하는
객실이나 고급 커피숍 아닌
라운지 소파에 앉는다.
세일즈 가방을 내려놓고 잠시 쉰다.
테이블이 몇 개,
물소가죽 소파가 어디에 몇 벌 놓였는지
하도 들락거려서 이 라운지는
거리처럼 익숙하다
빌딩들을 누비면서 나는
점점 그 일부를 거리로 빼돌린다.
라운지, 복도, 층계는 내게 거리이다.
엘리베이터도 거리다.
나의 거리가 넓어지고 깊어지고
오묘해진다. 거래처 임원실 행운목이
가로수마냥 푸들푸들하다.
호텔이 납작해진다.
―이명훈, 「호텔 사냥」전문, 『리토피아』
도시인의 가장 큰 특징이 세일즈다. 모든 것이 세일즈 되며 그래서 세일즈맨은 도시인 중 첨병에 해당된다. 시 「호텔사냥」은 세일즈맨이 도시에서 살아내는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수동적으로 어쩌지 못해 견디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물론 세일즈맨인 화자가 하는 일은 물리적인 자리 확보는 아니다. 하지만 〈빌딩들을 누비면서 나는/점점 그 일부를 거리로 빼돌린다./라운지, 복도, 층계는 내게 거리이다./엘리베이터도 거리다.〉에서 보듯 그는 공간을 활용하고 점유한다. 더욱이 그것을 ‘나의 거리’로 여길 수 있는 여유마저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의 거리가 넓어지고 깊어지고/오묘해진다.〉는 진술이 사실적으로 진실하게 들린다. 볕을 받지 못하는 행운목은 불행하지만 가로수마냥 푸들푸들한 게 현실이다.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질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버릴까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
거짓말처럼
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
누그러진 건 오히려
내 울음이었지만, 다만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며칠 뒤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서른 넘어서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한강, 「괜찮아」부분, 『문학동네』
말하고 싶지 않은가, 이 시처럼. 좌절하고 절망하고 불면 속에 지내고 핍진한 생 속에서 끕끕한 도시인에게 이 시의 마지막 연은 많은 울림을 준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어떻게 해야 하는지/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괜찮아/왜그래, 가 아니라/괜찮아./이제/괜찮아.〉
스스로를 기껍게 위로해 주는 경지에 이르러야 생이 환해진다고 이 시는 말하고 있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괜찮아- 라고 긍정할 수 있어야 이 핍진한 생을 건강하게 이어나갈 수 있다.
7. 도시인 _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것은 나의 의지 이전에 주어졌다. 이미 주어진 상황이다. 따라서 도시인 개개인에게 제 몫의 상황이 주어져있다. 상황이 더 절박한 자들일수록 상대적 박탈감이 크겠지만 운명을 탓할 수는 없는 것이고, 이제 액션만이 남았다.
〈침묵보다 더 큰 소리가 없어/만근 구리 종은 귀가 먹었다〉(이경,「적멸」전문,『창조문학』)
침묵도 한 방식이고,
〈세월은 흘렀으나/배가 아프면/이런 욱욱한 돌로/배를 문지르던 날이 있었네〉(문태준, 「돌의 배」부분, 『시와시학』)
스스로를 진단하고 처방하는 온고지신의 방법도 있고,
〈수족관의 장어란 놈이 심심해 죽겠다는 듯이 몸을 뒤틀다가 지나가는 내 눈과 딱 부딪치자 아주 어색한 웃음을 웃는데 나는 저 입천장이 훤히 드러나는 순진한 웃음을 어디서 꼭 한번 본 것만 같으다.〉(이시영, 「기시감」전문, 『시와시학』)
산책과 더불어 사물을 따스히(착하게) 보는 방법도 있고,
초등학생처럼 앳된 얼굴
다리 가느다란 여중생이
유진상가 의복 수선 코너에서
엉덩이에 짝 달라붙게
청바지를 고쳐 입었다
그리고 무릎이 나올 듯 말 듯
교복 치마를 짧게 줄여달란다
그렇다
몸이다
마음은 혼자 싹트지 못한다
몸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서
해마다 변함없이 아름다운
봄꽃들 피어난다
―김광규, 「이른 봄」전문, 『문학과사회』
사람에게서, 어린 학생에게서, 그의 몸에서 가능성을 보는 방법도 있겠다.
지금 도시인의 삶은 비전이 보인지 않는다. 적이 분명해서 총을 들고 나설 수도 없고, 다시 금모으기를 할 수도 없는 현실이다. 차를 팔고 집을 내놓을 호들갑의 시간도 지났다. 희망이 안 보이는 지독한 절망이 오히려 희망일지 모른다. 〈저렇게 슬글슬금 피는 꽃/꽃 아니〉라고 소리치면서, 〈저렇게 설렁설렁 부는 바람/ 바람 아니〉라고 소리치면서 〈간밤의 눈이 모든 봄을 덮〉은 것을 인정해야 한다. 꽃 위에 덮힌 눈은 꽃이 가장 힘들 듯이 도시인의 생존에서 가장 어려움을 당하는 지독한 절망의 당신이 꽃임을 알아야 한다. 한 호흡 죽이면서 소리치자. 아무에게도 말고 나에게, 내 안의 나에게 소리치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1) 시인 | hasunahm@hanmail.net
첫댓글 선배님^^ 벌써 책 나왔어요? /잘 지내고 계시지요?
-책 기다리다 지쳐서 좀 미리 올렸어여~ 다른 곳도 아니고 '창조문학' 카페라는 생각에서~ 어서 책이 나와서 동인들의 시도 보고 했으면 좋겠네여~
-계간 시평을 쓰고부터 읽은 사람의 의견이 참 많이 궁금해집니다. 다소 부족한 부분을 솔직히 지적해 주면 다음 호 쓸 때 많은 참고가 될 터인데, 그게 참 없습니다. 창조문학의 한 차례 업그레이된 모습을 위해서라도 읽은 소감을 좀 달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가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