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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시학>, 2008년 봄호.
신달자 깊이 읽기
맹문재 : 선생님, 안녕하세요. 이번에 출간한 『열애』로 ‘영랑시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셨다니 축하드립니다. 오랫동안 시를 써오셨는데, 그 노력의 대가라고 생각합니다. 지난해는 불교문학상도 수상하셨지요. 이렇게 좋은 일이 이어지고 있으니 아주 기쁘네요. 근황은 어떠신지요?
신달자 : 감사합니다. 모든 것이 과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책임감 같은 것을 느낍니다. 책임감을 안심시키는 시를 써야 한다는 의욕도 없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봄호의 청탁 원고들을 쓰려고 오대산 주변에서 일주일간 머물렀다 왔는데, 실망만 하고 돌아온 것 같네요.
맹문재 : 원고 청탁이 몰리는 것을 보니 선생님의 진가가 더욱 발휘되는가 봅니다. 그래 건강은 괜찮으신지요? 「싸리집」을 읽어보니까 선생님께서 건강관리(?)를 나름대로 하시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되는데, 여쭤보지 않을 수 없네요.
신달자 : 우선 웃음이 나오네요. 개고기가 몸에 좋다는(?) 것을 선생님도 아시는군요. 음식 중에 안 먹는 척하는 것이 있는데 개고기가 그런 것이 아닌가 합니다. 즐기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의사의 권고로 처음엔 먹기 시작해서 요즘은 누가 사준다고 하면 택시를 타고 달려가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한번 드셔보세요. 좀 비싸지만 매력이 있습니다.
맹문재 : 선생님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네요. 저는 아직 개고기는 안 먹지만, 못 먹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의 방향을 돌려보지요. 선생님께서 이번에 간행한 시집 『열애』는 열두 번째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부지런히 창작활동을 해오셨다고 볼 수 있지요. 그동안 발간한 시집에 대해 차례대로 소개해주실 수 있는지요? 시집마다 사연이 있고 또 주안점이 있을 테지요. 사실 이 부탁은 시간이 많이 들고 어려운 것인데, 앞으로 선생님의 시세계를 연구할 후학들에게 좋은 나침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드려보는 것입니다.
신달자 : 첫 시집인 『봉헌문자』(1973년 11월 20일 간행, 현대문학사)는 박목월 선생님의 주선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시절의 덜 삭은 감정들이 사뭇 경직된 언어로 표현되어 있는 것이 지금도 보입니다. 그래도 「조춘」 같은 시는 귀하게 생각합니다. 진실성이 시퍼렇게 살아있으니까요.
두 번째 시집인 『겨울축제』(1976년 11월 10일 간행, 조광출판사) 또한 관념적인 것이 두드러지면서 진실을 덮어버리는 묘기를 부리는가 하면 시의 목을 누르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세 번째 시집인 『고향의 물』(1982년 11월 30일 간행, 서문당)은 비닐이나 얇은 은박지 같은 관념이 벗겨지면서 시의 내부가 들여다보이는데, 너무 낙천적으로 다루려고 한 경향이 보입니다. 그렇지만 시집에 수록된 「겨울성묘」「노모」「뒷산」「말하는 몸」등은 저의 정체성이 드러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네 번째 시집인 『모순의 방』(1985년 12월 10일 간행, 열음사)에서는 힘을 받기 시작하는 작품들이 보이는데 들쑥날쑥하네요. 「광야에게」 같은 작품은 존재의 그림자가 지상에 누울 곳이 없어 방황하는 정신적 갈등과 허무주의를 잘 살려낸 평가를 받고 있는데, 제가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 시집에는 대학의 국어 교제에 수록된 작품들도 몇 편 있습니다.
다섯 번째 시집이 『아가』(1986년 10월 20일 간행, 행림출판)입니다. 이 시집은 내실을 기하고 있던 행림출판사가 기획으로 시작한 것이었는데, 발표하지 않은 전작시집으로 북 디자이너 정병규 선생이 마음먹고 표지를 만들었지요. 제법 큰 광고도 해서 그 시절 몇 만부 정도 나갔습니다. 자연과 인간과 사랑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동일시하는 탐미적인 응시로 77편을 묶은 부드러운 시집입니다. 이 시기에는 늦은 나이에 대학원 공부를 시작했는데 얼음 속에 두 발이 빠진 듯 거의 포기 상태에서 세상을 다시 보게 되었어요. 존재 하나의 가치가 우주와 닿는다는 생각을 그때 했지요. 그 뒤를 이어 바로 『아가․2』(1988년 6월 7일 간행, 문학사상사)를 간행했습니다. 여섯 번째 시집이지요. 저는 이 시집이 출간 연도나 출판사가 다르지만 앞에서 낸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일곱 번째 시집은 『새를 보면서』(1988년 12월 5일 간행, 문학세계사)입니다. 이 시집으로 ‘대한민국 문학상’을 받았어요. 제가 문단에 데뷔해서 처음으로 받은 문학상이었습니다.
여덟 번째 시집은 『시간과의 동행』(1993년 8월 23일 간행, 문학세계사)입니다. 어느 대학에 이력서 내었다가 떨어지고 나서 고통을 지우기 위해 영하 40도의 연변을 다녀온 이야기를 연작으로 실었습니다.
그 다음의 시집이 『아버지의 빛』(1999년 2월 5일 간행, 문학세계사)입니다. 이 시집에서 저의 시 세계가 완연히 변화했다고 주위로부터 평가를 받았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해이기도 한데, 아버지라는 한 인간 존재에 대한 객관적인 시선을 가지면서도 혈통을 이어받은 딸로서 통렬하게 그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열 번째 시집이 『어머니, 그 삐뚤삐뚤한 글씨』(2001년 5월 25일 간행, 문학수첩)입니다. 이 시집으로 ‘시와시학상’을 받았습니다.
열한 번째 시집은 『오래 말하는 사이』(2004년 10월 25일 간행, 민음사)입니다. 시집에 수록된 「침묵피정」은 제가 가장 사랑하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열두 번째 시집이 이번에 간행한 『열애』(2007년 10월 12일 간행, 민음사)입니다. 이 시집으로 ‘영랑시문학상’을 받았는데, 제가 낸 어떤 시집보다 공을 들였습니다. 어느 페이지를 열어도 거기에 내가 꿈틀합니다. 상처와 한 가족을 이루고 혈통을 나눠가지려는 고통의 섬뜩함이 시집 속에 들어 있습니다. 좀더 자세하게 소개하고 싶지만 지면 관계상 이 정도로 마칠까 합니다.
맹문재 : 그동안 출간하신 시집들을 자세하게 소개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선생님의 시세계를 고찰할 때 나름대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면 이야기의 방향을 이번에 간행한 시집으로 돌려보지요. 시집에 수록되어 있는 「소」는 한 인간의 운명을 강하게 환기시키고 있습니다. 사나운 소 한 마리를 몰고 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 아닐까 어쭙잖게 생각해봅니다. 선생님께서 생을 패대기칠 만큼 힘들게 소 한 마리를 몰고 온 삶이란 어떤 일인지요? 어느 한 가지로 단정 짓기는 어렵겠지만 듣고 싶네요.
신달자 : 이 지면을 가지고는 도저히 어려울 것 같아요. 대학시절의 일기장은 헤픈 말들의 시장이었어요. 경험 없이 쏟아낸 허무, 외로움, 상처, 비극, 눈물, 죽음, 배신……. 손끝에 불을 붙이는 화형식 같은 말들을 결혼하면서 모두 체험했다고 하면 될까요. 말을 먼저 하고 체험을 뒤에 한 셈이지요.
맹문재 : 결혼에 대해 말씀해주셨으니 좀더 여쭈어보겠습니다. 이번 시집에 들어 있는 「나는 폭력 영화를 본다」나 「우리들의 집」은 지난번 시집 『오래 말하는 사이』에 수록되어 있는 「여보! 비가 와요」와 마찬가지로 가슴 뭉클한 작품입니다. 남편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려볼까요?
신달자 : 남편으로서는 별로였지만 우리나라에는 필요한 그런 사람이었어요. 경영학을 전공한 교수였는데, 너무 잘사는 것은 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지요. 그에 의하면 나는 늘 허영에 들뜬 여자였습니다. 그는 문화보다 먹는 것을 다 함께 해결하는 것을 우위에 두었습니다. 그의 논문들은 거의 노동자 쪽에서 생각하는 노사문제를 다루는 것이었는데, 방송 중에 회사 경영에는 반드시 노동자가 합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다가 방송국의 사정을 황당하게 만들기도 했어요. 가족을 위해서 리어카도 끌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남편 이야기는 재미없네요. 다른 남자에 대하여 말하면 안 됩니까?
맹문재 : 아주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언제 그 선생님이 쓰신 논문들을 읽어보고 싶네요. 이번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열애」는 선생님의 성숙한 인생관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상처를 회피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가지고 놀겠다는 자세는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생(生)에 대해 적극성을 가지게 된 계기나 연유를 듣고 싶네요.
신달자 : 저는 형편없이 나약한 인간입니다. 겁이 많아 목이 말라도 밤에는 마루에 있는 물을 나가서 먹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서른다섯 살에 가장이 되었어요. 열 식구나 되었어요. 그때부터 방에 쥐가 들어와도 내가 잡아야 하는 무서운 현실에 놓이고 말았습니다. 전 평지를 걸어가면서도 늘 오른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우리말에 닥치면 산다는 말이 있지요. 환자와 노모와 어린아이들을 앞에 두고 어찌 적극성을 띠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맹문재 : 잘 알겠습니다. 선생님께서 감당했던 남다른 어려움들이 이해가 되네요. 이야기의 방향을 다시 돌려보지요. 아무래도 이번 시집에서 주목되는 점은 ‘몸’에 대한 관심입니다. 지난번 시집 『오래 말하는 사이』에서부터 특히 볼 수 있는 면인데, 이번 시집에서도 지속되고 있네요. 「저 산의 녹음」 같은 작품에서는 그 깊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애의 장면을 묘사하면서도 에로틱하게 느껴지지 않는 사랑의 깊이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몸을 제재로 한 작품들을 쓰시는 의도가 궁금하네요.
신달자 : 몸은 행복한 사람이나 불행한 사람이나 근본이 아닙니까? 몸뚱이가 없다면 병도 기쁨도 배고픔도 없을 겁니다. 정신만이 고급문화가 아니라 더 절박한 것이 몸이라는 의견에 저는 동의합니다. 정신 지향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육체가 갖는 현실적 울림을 시인으로서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맹문재 : 그렇군요. 선생님의 시세계에서는 또한 ‘아버지’ ‘어머니’의 영역이 상당히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빛」 연작이며 『어머니, 그 삐뚤삐뚤한 글씨』 시집에서 여실히 확인할 수 있는데, 이번 시집에서도 여전합니다. 부모님에 대한 애정, 애증, 그리움 등이 복합되어 있다고 보입니다. 2006년 10월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에서 가진 대담에서 선생님께서는 부모님들이 바라던 대로 살지 못한 것에 대해 빚을 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작은어머니」의 상황도 곁들여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 소개를 다시 부탁드려 볼까요?
신달자 : 그렇습니다. 그것은 확실히 제 시의 기틀을 이루는 주제라고 할 만합니다. 핏줄이라서가 아니라 제 아버지와 어머니는 독특한 삶을 사신 분들입니다. 아버지는 모든 것을 가졌다가 왕창 망했지요. 여자와 돈과 권력을 모두 가졌지만, 60대 중반을 넘기면서 좌절하고 맙니다. 저는 아버지를 시인이라고 믿고 있어요. 틀을 싫어해서 가출도 몇 번 하셨는데, 40대에서 88세까지 일기를 쓰셨어요. 그것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 한이 됩니다. 어머니는 박복했습니다. 저 하나를 바라보며 제발 출세해서 당신의 한을 풀어 달라고 정화수를 떠놓고 기도를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배신을 했지요. 사랑이란 기묘한 이름으로 어머니 가슴에 비수를 꽂았습니다. 제 시는 그 비수를 하나씩 뽑아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아버지 어머니를 생각하면 눈물이 흐릅니다. 도무지 마르지가 않아요. 술에 취하면 남자가 그리운 게 아니라 아버지 어머니가 그립고 그래서 울게 되지요. 남자가 그리워도 “엄마!” 하고 웁니다.
작은 어머니는 아버지의 셋째 여자였는데 제가 좋아했습니다. 아버지를 만나 인간적인 대접을 받지 못하고 상처 속에서 외롭게 살았습니다. 어느 산기슭에 잘못 솟아난 버섯같이 늘 외진 곳에서 어둡게 살았습니다.
저는 지금 뉴욕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와 작은 회사에 다니는 딸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남편이 없으니까 그 아이가 제 호주가 되더군요. 기가 막힌 일이지요. 그래서 제가 호주처럼 모시고 삽니다.
맹문재 : 선생님의 가족사는 다시 들어도 가슴이 짠합니다. 그러면 시와 관계된 말씀을 듣기로 하지요. 선생님께서는 시를 열심히 쓰는 것뿐만 아니라 「문학이 쌓인다」에서 보듯이 다른 시인들의 작품도 열심히 읽고 계십니다. 시를 읽을 때 관심을 두는 점이 있는지요?
신달자 : 저는 암호를 싫어합니다. 알아듣지 못하면 근질근질하고 불쾌합니다. 시는 언어로 하지만 질 좋은 정신 사이의 소통을 이루어야 합니다. 멋만 내고 뒤로 숨기기만 하는 시는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진실이 통하고 언어를 적절하게 사용하는, 그래서 무질서하게 놓인 사물과 인간의 삶을 새로운 질서로 살려내는 시를 저는 좋아합니다. 정말로 좋은 시, 질투가 나는 시를 보면 잠이 잘 안 옵니다.
맹문재 : 선생님께서는 1964년 『여상』으로 등단한 뒤 1972년 『현대문학』으로 다시 등단하셨으므로 시를 쓰신 지 어느덧 3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그 세월을 되돌아보면 감회가 새로울 텐데 시를 써온 일이 어떤 점에서 보람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또 어렵다고 생각하는 점은 어떤 것인지요?
신달자 : 좋은 점은 물건을 살 때 저를 알아보고 값을 깎아 줄 때입니다. 어려운 점은 여기 다 술회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늘 때려치운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지만 시가 그래도 제 기둥이며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시 없는 연애도, 시 없는 돈도, 시 없는 권력도, 쉽게 지루하고 권태로웠을 겁니다. 말하자면 생의 알맹이 즉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그러나 시는 평면이 아니라 저에게는 고지이므로 오르는 데에 힘이 듭니다. 무르팍의 힘이 약해지는 것이 어려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신의 비루함 그리고 정신의 가난함 말입니다.
맹문재 : 선생님께서는 어떤 작품을 좋은 시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그 기준이 궁금하네요.
신달자 : 1980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체슬라브 밀로즈(Czeslaw Milosz)는 「헌시」에서 국가나 민족을 구하지 못한 시가 무엇인가라고 물으며, 그것은 공개된 거짓말과 야합, 곧 참수당할 주정뱅이의 노래, 대학 2학년 여학생의 독서물이라고 했어요. 저는 그의 시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의 시에 국가나 민족을 구한다는 생각이 없었으니까요. 오히려 자신을 구원하고자 했습니다. 1980년은 개인적으로 남루한 생에 대한 반기로 늦은 나이에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실과 맞서 싸우려고 손톱을 치켜세울 때였습니다. 가족을 모두 제 등에 업고 비탈길이건 산비탈이건 올라야 하는 그런 궁핍한 시절이었지요.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도 미궁에 몰리고 있었지만 저는 가장이라는 팻말을 들고 이를 악물어야 했습니다. 저에겐 국가나 민족보다 제 식구들의 입이 더 걱정스러웠지요. 밀로즈의 시는 제게 갈등을 일으켰고 저의 시에 대해 절망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좋은 시는 국가나 민족에 국한하지 않고 삶의 모든 배경 안에서 한 찰나와 찰나 사이의 시간성을 주목하고 존재를 키워 보여주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이지 않는 내면의 깊이를 세계화시키는 작품들이 공감을 주지요.
맹문재 : 선생님께서는 에세이와 소설도 집필하시어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계십니다. 100만부가 넘게 팔린 작품집도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문단에서는 이상하게도 장르를 넘나드는 창작 활동을 좋지 않게 바라보는 것 같은데, 산문 창작활동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신달자 : 사람들은 “팔리는 것은 나쁘다. 그러나 팔리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모순이지만 현실입니다. 팔리면 대중적인 것으로, 안 팔리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거나 대단히 무거운 철학적인 것으로 여기지요. 특히 산문이 그랬지만, 한때 소설까지 영역을 넓혀(소설이라고 생각해주지도 않았지만)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산문은 참 좋은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읽을 때마다 감격하는 조선 후기의 문인인 이덕무의 글 같은 감동이 산문의 뿌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특히 『이목구심서』가 그러한데, 중국의 『산해경』이나 『논어』도 산문의 뿌리라고 생각합니다. 산문은 서로 친해지는 고리를 만들어 주고, 이해를 빠르게 하며, 글을 행동으로 옮기는데 유리합니다. 말하자면 모든 문학의 기초는 산문이라고 저는 생각하는 것이지요.
맹문재 : 선생님께서 지금까지 읽은 책 중에서 시를 쓰려는 지망생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추천을 부탁드립니다. 지난번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에서 대담 때는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를 여러 번 읽었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신달자 : 시를 쓰려는 사람은 모든 분야의 책을 읽어야지요. ‘세계문학전집’은 기본이고 과학 사회 정치 예술을 망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무 하나에서 가랑잎 하나까지, 어둠에서 빛까지, 하늘과 땅을, 그리고 허공까지 말입니다. 가령 병원에 걸려 있는 인체의 사진까지 잘 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린 왕자』는 적어도 20번은 읽어야겠지요. 그것만 잘 이해해도 시의 단수가 높아지지 않을까요?
맹문재 : 이야기의 방향을 조금 돌려보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올 여름에 성지 순례를 다녀오셨지요? 재미있는 일이나 모습 등을 들려주시지요.
신달자 : 특히 이스라엘과 요르단은 충격적이었습니다. 가톨릭에 적을 둔 저로서는 한 번은 봐야 할 곳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사해와 홍해의 물빛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장소며 십자가를 지고 오른 골고다 언덕과 십자가에서 눈을 감은 장소도 보았습니다. 내내 가슴이 떨렸어요.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상가가 죽 늘어선 골고다 주변의 물건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2천년 전 피 흘리는 예수님과 함께 오른다는 생각을 했으니까요.
깊은 밤,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다는 시나이산 중턱 모텔 벽에 큰 도마뱀이 기어가는 것을 보고 기절했습니다. 뱀은 우윳빛이었어요. 꼬박 밤을 새웠지요. 혼자 얼마나 벌벌 떨었는지. 글쎄 나이 많다고 독방을 주었거든요. 잊지 못할 추억입니다.
맹문재 : 선생님께서는 현재 명지전문대학 문예창작과에서 학생들에게 시를 가르치고 계십니다. 저와의 인연도 선생님이 계신 곳에 강의를 맡으면서이지요. 「버들잎 강의」를 읽고 나니 제가 인연이 되었던 그곳의 모습이 선연하게 떠오르네요. 선생님께서는 강의를 잘하시기로 정평이 나 있으므로 학생들에게도 인기가 많지요. 선생님의 교수법에 대해서 듣고 싶네요. 아울러 시를 쓰려는 제자들에게 당부의 말씀을 좀 들려주시지요.
신달자 : 저는 폼을 잡지 않습니다. 별로 아는 것이 없어서도 그렇지만 시만 가지고 이해시키는 것이 아니라 생활하고 연관시키지요. 함민복의 「밥」을 가지고 강의를 할 때는 우선 밥에 대한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고, 밥에 대한 생각들을 말하게 하고, 그래서 밥이 왜 눈물로 읽히는지, 눈물이라는 개념이 왜 밥과 연결되는지 등으로 이끌어 갑니다. 전 학점을 낼 때 수업 태도를 가장 높게 평가합니다. 선생만 말하는 수업이 아니라 학생과 함께하는 것을 강조하지요. 학생일 때 모든 경험을 해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가령 사흘 밤을 꼬박 새우며 책을 읽어 본다든가, 친구들과 토론을 한다든가, 죽도록 글을 써 본다든가……. 한 번 죽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맹문재 : 앞으로 어떤 활동 계획을 갖고 계신지요? 집필하고 계시는 원고가 있는지요?
신달자 : 어떤 남자가 좋냐, 뭐 그런 질문은 끝까지 없네요. 계획이 있긴 합니다. 아직 초고지만 앞으로 ‘종이’를 주제로 전작 시집을 내볼까 합니다. 생각이 그렇지 언제 가능할지는 모르겠어요. 맹문재 선생님이 절 채찍질 해주세요. 너무 고맙습니다. 더 급한 것은 안양대학교에 좋은 남자가 있는지부터 알아봐 주세요. 네?
맹문재 : 노력(?)해보겠습니다. 여러 가지 말씀 감사드립니다. 내내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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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달자
1943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났다. 숙명여자대학교 국어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4년 『여상』으로 여류신인문학상 수상과 함께 등단한 후, 1972년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으로 재등단했다. 『봉헌문자』 『겨울축제』『고향의 물』『모순의 방』『아가』『아가․2』『새를 보면서』『시간과의 동행』『아버지의 빛』『어머니, 그 삐뚤삐뚤한 글씨』『오래 말하는 사이』『열애』 등 12권의 시집과 『시인의 사랑』『너는 이 세 가지를 명심하라』 등 다수의 에세이집이 있다. 1989년 대한민국문학상, 2001년 시와시학상, 2004년 한국시인협회상, 2007년 현대불교문학상 및 영랑시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명지전문대학 문예창작과 교수이다.
맹문재
1963년 충북 단양에서 태어났다. 1991년 『문학정신』으로 등단했다. 시집 『먼 길을 움직인다』 『물고기에게 배우다』 『책이 무거운 이유』 등이 있다. 현재 안양대 국문과 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