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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오조가 게송을 짓도록 하다 |
‘유상 복전’ 위주로 하던 시절 대중격려 뒷일부촉 위해 당부 「오조가 하루는 문인들을 다 모이게 하고 말씀하셨다. “내 너희들에게 말한다. 세간 사람은 생사일(生死事)이 가장 큰 것인데, 너희들은 종일토록 다만 복전(福田)만 구하고, 생사고해에서 벗어날 생각은 없구나! 만약 자성을 미혹하였다면 복을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벗어날 수 있으랴. 너희들은 이제 가서 스스로 지혜를 살펴서 자기 본심인 반야(般若)의 성품을 가지고 각자 게송 하나씩을 지어 나에게 가져오너라. 만약 큰 뜻을 깨친 사람이 있으면 법과 법의를 전하여 제6대조로 삼으리라. 머뭇거리지 말고 빨리 거행하라. 생각으로 헤아리면 곧 맞지 않으리라. 견성(見性)한 사람은 모름지기 언하(言下)에 곧 보는 것이니 만약 이와 같은 자는 칼을 휘두르며 싸우는 데서도 또한 볼 수 있느니라.」 출가자 분상에서는 생사문제 즉 일대사인연을 해결하는 것이 가장 요긴한 일입니다. 부처님도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출가하셨고 조사들과 많은 선지식 또한 그러했습니다. 〈대혜어록〉 23권에도 “진실로 생사의 문제는 지극히 중대한 일이며 무상(無常)은 신속하니 자기의 본분사를 밝히지 못했다면, 종사를 참문(參門)해 생사의 속박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일단의 일은 지금 우리 자신의 일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오조스님 회상에서는 무상의 복전을 쌓는 일보다는 유상의 복전을 구하는 일을 위주로 하고 있었기에 시절인연을 잘 알고 계시는 오조스님께서 대중들을 격려하고, 한편으로는 걱정하시면서 뒷일을 부촉하기 위해 성품을 밝힌 지혜로운 눈이 있다면 게송을 지어오라 하신 것입니다. 알고 보면 이미 드러난 일 밖에 또 다시 무슨 일이야 있겠습니까마는 시절인연은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요. 「대중이 처분을 받고 물러나와 서로 말하기를 “우리들 무리는 구태여 힘들여 마음을 맑히고 게송을 지을 것 없다. 설사 게송을 지어 화상께 바친들 무슨 이익이 있으랴. 신수(神秀) 상좌는 현재 교수사(敎授師)로 계시니 필시 저 분이 법을 얻을 것인데 우리들이 게송을 짓는다고 해도 부질없이 힘만 들이게 된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대중은 모두 생각을 쉬고 말하기를 “우리들은 뒷날에 신수대사에게 의지할 것이다. 어찌 번거롭게 게송을 지으랴!”하였다. 신수는 생각하였다. “모든 대중이 게송을 짓지 않는 이유는 내가 저들의 교수사인 까닭이니, 내가 어차피 게송을 지어 화상께 바칠 수밖에 없다. 만일 내가 게송을 바치지 않는다면 화상께서 어떻게 나의 마음 속 견해의 심천(深淺)을 아시랴. 내가 게송을 바치려는 뜻이 법을 구하는 것이라면 옳은 일이라 하겠거니와 조사의 자리를 빼앗는 데 있다면 옳지 않은 일이다. 이것은 범부가 성인의 자리를 빼앗으려는 생각과 무엇이 다르랴. 그렇다고 또한 게송을 바치지 않는다면 마침내 법을 얻지 못할 것이니 참으로 어려운 일을 당하였구나”라고 하였다.」 〈경덕전등록〉에 따르면 신수선사(606~706)는 개봉 사람으로 성은 이씨였습니다. 어려서 유교를 가까이 하다 출가했고, 기주 쌍봉에 있는 동산사에서 5조 홍인대사를 만나 좌선으로 업을 삼다가 고행하기를 맹세한 후, 나무하기와 물 긷기를 자기의 일로 행하며 도를 구했습니다. 홍인대사가 말없이 그를 알아보고는 더욱 소중히 여기며 “내가 제도한 사람이 많지만 ‘깨달아 앎(解悟)’에 그를 미칠 사람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단경〉에는 혜능선사를 출현시킬 조역자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신수스님은 당대를 대표하는 훌륭한 스님임은 분명하지만, 갈등하는 그림자 속에 본연의 모습이 있음을 즉시에 깨달았다면 두 분의 큰 스승이 출현했을 것입니다. 안국선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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