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유래 월산리(月山里) 의 지명은 월평리(月坪里)와 장월리(長月里) 의 월(月)자와 경산리(京山里) 의 산(山)자를 각각 취하여 월산리(月山里) 라 하였다. 월산리는 월평마을, 장월마을, 경산마을로 있었으나 1971년 동복댐 담수로 월평마을, 장월마을은 수몰되고 경산마을만 소규모로 남아 있다가 1991년 동복댐 주변 이주계획에 의해 경산마을도 폐촌되었다. 월평마을의 뜻은 진들이라는 어원에서 시작하는데 들이 넓게 있으므로 들이름을 진들이라 불렀고 따라서 마을이름도 진들이라 부르다가 한자로 쓰면서 진(長) 들(=달=月) 즉 장월(長月)로 쓰게 된 것이다. 장월마을이 점차 커지면서 이웃한 월평마을의 이름이 붙게되는데 곧 진들(長坪) 이란 의미에서 월평(月坪)이라는 지명을 만들어 낸 것이다. 마을을 세분해 보면 중뜸, 대삿밑에, 이문안으로 구분된다. 1789년 호구총수에는 동복현(同福縣) 내서면(內西面), 1912년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는 동복군(同福郡) 내서면 월평리(月坪里) 로 기록되어 있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시 동복군이 화순군으로 통합되면서 외서면 내서면은 이서면으로 통합되어 화순군(和順郡) 이서면(二西面) 월산리(月山里) (장월리, 월평리, 경산리, 서촌, 난산리 각일부)로 편입되었다. 1971년 동복댐 1차건설시 수몰지구로 편입되어 폐촌되었다.
●주산물(쌀, 보리), 특산물(콩, 채소), 주소득원(쌀, 보리)
●성씨 : 동복吳(30), 김해金(15), 밀양朴(3), 진주河(1), 죽산安(1), 강릉崔(1)
●마을형성 월평마을은 동쪽으로는 동복천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며 천변을 중심으로 평야가 약간 형성되어 있고 서쪽으로는 별산(682.8m)의 등성이 뻗어와 있으며 남쪽은 평지로 이루어져 있고 북쪽은 개천을 경계로 장월마을과 나뉘어 있다. 마을의 형성방향은 서쪽으로 산등을 두고 동쪽을 향하여 형성되었다. 1780년경 동복오씨 吳義鎭(1760 ~ ? ) 이 고흥 풍양 당두리에서 거주하다가 입향하였다. 1810년경 동복오씨 吳俊泳(1790 ~ 1831) 이 남면에서 거주하다가 입향하였다. 1830년경 동복오씨 吳一鎭( ? ~ ? ) 이 충남 공주군 우성면 단평리에서 입향하였다. 동쪽으로는 동복면, 동북으로는 보산리 난산마을, 서남쪽으로는 경산마을, 남쪽으로는 서리 서촌마을, 북쪽으로는 장월마을이 있다.
●유물. 유적 고인돌(3기, 이서남국교 남쪽 밭), 고인돌(14기, 쌍바위), 성산조합터(97-5번지, 오신탁 조합장), 星陽精舍(오근탁수축), 이서지서터(583-3번지), 이서남국민학교터(547-2, 556-2, 555, 554-1, 557-1, 557-2, 558, 557-3번지, 1940. 5. 20월산간이학교개교, 1944. 5. 16이서남국민학교, 1950. 11. 4전소, 1951. 2. 4 복구, 1986. 2. 28폐교, 서리123번지로 이건하여 성산분교로 변경, 1991. 2. 28폐교), 연거리주막터(562-2번지), 이서주조장터(538-4번지, 6.25후 장월 172번지에서 이전)
●민속놀이. 전설. 민담 ⊙마을에 방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스님이 시주를 요구하였으나 박대를 하며 쫓아내자 스님이 말하기를 집건너에 있는 토끼바위의 목을 차면 집안이 크게 번창할 것이라고 말하면서가버렸다. 이에 더 큰 부자가 될 심으로 방부자는 토끼바위를 차 목이 부러지게 하였는데 그 속에서 초새가 날아갔다고 한다. 이후 방부자의 가세는 기울어 완전히 망하고 말았는데 광복후 동네에서 토끼바위를 복원하였는데 이제 수몰되어 버렸다. ⊙당산제 : 이전부터 지내지 않았다. ⊙농악 : 시암굿, 마당볼비를 하였으며 상쇠로는 이만종이 잘 하였다. ⊙당산점 : 당산나무잎이 한물에 피면 모내기를 한번에 하고 나누어 피면 여러번 한다. ⊙이서지서 : 1919년 이서 경찰관 주재소가 야사리 180-1번지에 설치되었다. 1945년 8월 20일 이서지서로 변경하였다. 1949년 2월 24일 야사리에 있던 지서청사가 소실되자 월산리 월평마을 583-3번지 가건물로 지서를 이전하였다가 1950년 12월 3일 6.25로 청사가 소실되었다. 1951년 9월 5일 그 자리에 청사를 신축하였다. 1966년 11월 30일 도석리 석보마을 363-1번지로 이건하여 치안 유지를 하다가 다시 1985년 3월 30일 현재의 야사리 산사마을 427-3번지로 신축 이전하였다. ⊙6.25 수복후 산 114번지 고지에 8사단과 9사단 군인둘이 주둔하였다. ⊙화전놀이 : 마을 사람들이 봄이면 청룡등에 올라 화전놀이를 하였다.
●풍수지리 및 주요지명 ⊙운중반월형국 : 반월산이 마치 반달처럼 생겼다. ⊙산, 등 : 별산, 청룡등(청룡부댕이), 반월산, 코등 ⊙들 : 빈가리, 쌍바우들, 장구배미, 섬배미, 아홉마지기, 홈배미, 용두배미, 아홉마지기, 하만, 섬등 ⊙고개 : 서당고개(싸리재), 도석고개(도석리) ⊙골짝 : 가락골(가래굴), 갈창굴, 경산골착, 코댕이 ⊙바위 : 토끼바위, 쌍바위 ⊙내 : 하만내 ⊙샘 : 이문안시암, 대밭밑에시암 공동시암 ⊙길 : 한거리, 연거리 ⊙터 : 연거리주막터, 자갈삼굿터, 숯굿터, 방죽터 ⊙보 : 진들보, 하만보
●인물 ⊙오용탁(吳鏞鐸, ? ~ ? 歿, 1952. 5. 6 ~ 1958. 10. 13. 이서면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