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2 3 4 5 6 7 8 9 10 11 12 |
국내 하이엔드 제품 세계 시장에 도전장
태광산업이 해외 시장에 소개한 앰프와 스피커시스템들
당시 국내 하이엔드 시스템 개발은 대기업 뿐만아니라 중소기업체들도 나름대로 참여 하이엔드 오디오시스템 개발하는데 주도적인 역활을 해왔으나 IMF 이후 극심한 타격을 입고 난 후 거의가 손을 들고 있는 상태다.
다시 말해 의욕적으로 출발 하이엔드 제품에 도전해 왔던 영세성 기업체들 대부분이 자본력의 뒷받침이 없어 결국에는 경쟁력이 문제가 되어 도산하는 업체가 늘어났다. 그러나 이들 회사들이 개발한 제품 중에는 아직도 성능이 우수하게 평가받았던 제품들이 있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다른 부분과는 달리 음향 기기 산업은 단기간에 걸쳐 완숙한 제품이 생산될 수 없는 것으로 장기간에 걸친 꾸준한 기술 개발과 음향 튜닝등을 통해 가능한 것으로 이를 위한 자금력 약화로 결국에 가서는 경영상의 어려움을 맞게되고 여기에 기술력의 한계까지 부딪쳐 중도에 포기하게 된다.
한마디로 말해 급진적이면서 왕성한 활동성의 가능성을 갖고있는 국내 오디오 산업이 겉모양만큼 그 내용이 알차지 못한것도 문제다. 지금이나 그때나 마찬가지지만 우리 나라 하이엔드 시장은 거의 무방비상태에서 참신한 기술력이나 경제적인 뒷받침 등이 없어 자생 능력을 갖춘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예를 들어 최근의 스피커 유닛 제조 업체를 살펴보자. 우리주변 국가에서 양산되고 있는 저가격 경쟁에 밀려 계속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로서 스피커 유닛제조 업계는 계속 도산 위기를 맞고 있어 앞날이 불투명한 상태다.
스피커 관련 사업은 자동차용인 카 오디오를 비롯해 컴퓨터, 홈 시어더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계속 증가되고 있는 추세다. 그런데도 스피커 제조 산업이 계속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원인은 그 동안 기술이나 연구 개발에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여하간에 저 가격대의 동남아산에 밀려 계속 고전을 면치 못하고있는 실정은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과거의 안일한 기술이나 제조 방식으로는 새롭게 도전하고있는 저 가격대의 제품에 밀려나기 마련이다.
하이엔드 제품의 개발이 활발해 지려면 국내 부품산업에서도 이들 제품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고성능의 부품개발도 시급한 일이다. 결코 하이엔드로 가기 위한 국내 오디오 산업의 노력은 하루아침에 이루어 질 수 없는 일로서 이를 위한 기술 습득에 배전에 노력을 기울인다면 불가능한 일만도 아니다.
특히 신소재 부품에 대한 기술 연구가 발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서 하이엔드 제품 개발은 절대 불가능한 일로서 지속적인 선진 제국의 높은 기술을 연구해 우리 것으로 소화해 주었을 때 가능하다.
이에 앞서 전문 기술자 양성과 숙련 기능공 확보도 중요한 문제라고 보는데 기초기술 교육이 있어야 할 것이고 제조회사들이 당기 이윤에만 집념하지 말고 장기적인 일환으로 기술개발에 과감한 투자가 이루어진다면 국내 오디오 산업도 제 2의 도전이 가능해 지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싶다.
엔지니어들을 주축으로 한 기술 개발과 제품 디자이너 그리고 경영자 등 삼위일체가 이루어져 제품이 만들어 놓았을 때 소비자들의 관심을 불러모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꾸준한 노력과 성실한 제품개발에서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 50년대의 오디오 상점이란 SP 음반이나 소형 라디오등을 취급하고 있을 정도의 규모였다. 특히 8.15 해방과 더불어 닫아온 6.25란 엄청난 비극은 일본인들에 의해 운영되어온 다소의 전자산업 시설물 등마저 파괴, 황무지로 만들어 버렸다.
전자산업의 불모지였던 60년대까지 당시의 상황에서는 SP 음반이나 유성기를 판매하는 곳이 오디오 상점의 시초였다고 할 수 있다.
"2원 짜리 레코드 1장이 1원으로 가격을 내렸다"는 것과 "조선명창들이 조선 고유의 명곡을 녹음했다."라는 선전문구였다. 그러나 유성기라는 기기 자체가 일반 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과 같은 존재여서 유리창 안에 진열되어 있는 제품을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이분은 만주에서 통신기 엔지니어로 종사한 일이 있는데 당시에는 일본의 내셔널(지금의 파나소닉) 시설을 인수, 음향 기기를 조립하면서 시작되었다.
50년대 을 전후로 해 음악을 위한 프로그램 소스로는 SP 음반이 전부였는데 6.25 이후 60년대 말경에는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45회전용 일명 도너츠 음반이 소개되면서 전축에 관심이 많아졌다.
외국에서 들어온 78회전 SP 음반은 중량 감 있게 두툼하게 만들어져 있었는데 한 것이 주로 컨트리 송 등이 선보였지만 이를 위한 유성기가 고가여서 상류층 가정에서나 사용될 정도였다.
당시의 유성기나 전축은 마치 부의 상징적인 존재로서 군림, 가보로서 취급될 정도였다. 여하간에 SP시대의 음반이나 유성기가 요즘에 와서는 고가의 골통 품으로 등장 50년대의 위치로 다시 돌아 간 듯한 느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