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봉은 대견봉(大見峰:1,084m)이다. 산 정상의 바위모양이 신선이 거문고를 타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비슬’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남쪽으로 조화봉(照華峰:1,058m)·관기봉(觀機峰:990m)과 이어지며, 유가사(瑜伽寺) 쪽에서 올려다 보면 정상을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바위 능선이 우뚝 솟아 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낙동강의 경치가 아름답고 봄철에는 철쭉·진달래, 가을에는 억새 군락이 볼 만하다. 스님바위·코끼리바위·형제바위 등의 이름난 바위와 달성군 옥포면(玉浦面)의 용연사(龍淵寺)를 비롯하여 용문사(龍門寺)·유가사 등의 사찰이 산재한다. 그 가운데 용연사 경내의 석조계단(石造戒壇:보물 539)과 대견사지 삼층석탑(大見寺址三層石塔:대구유형문화재 42)이 유명하다. 대구광역시 외곽의 위락지인 냉천계곡(冷泉溪谷)과 천명(天命)·장군수(將軍水) 등의 이름난 약수터가 있어 유람객이 많이 찾는다. 1986년 2월 22일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두산백과)
비슬산... 출발하면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냥 대구인근에 있는 산.... 정도
그러나 진달래가 비록 전성기를 며칠 놓쳤다고 해도 그 산세며 탁트인 정상의 능선들
그리고 30만평이 넘는 진달래군락지등... 그냥 정상에 머물다 오는 평범한 산이 아니라
정상능선은 만끽할 수 있는 색다른 산... 매우 기억에 남을 산이라 하겠다. 컨텐트도 있고....
유가사에서 산행이 시작된다. 저멀리 대견봉이 보인다.
목조건물이 주는 질감.. 저곳에서 살면 왠지 심신이 쇄락해질 것 같다
수많은 시비들이 보인다. 음. 내려오면서 천천히 봐야지....
유가사를 출발하여 정상 대견봉을 오르고 진달래 군락지를 거쳐 내려오는 코스
4월의 신록... 모두가 연두의 신록을 좋아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 신록색이다
비슬산의 맛중에 이렇게 등산로가 인공이 많이 가미되지 않은데 있다...
제법한 석벽도 있고 .. 처음에 큰 기대 안한것 치고 너무 좋다
드디어 능선에 올라서다.. 멀리 진달래 군락지와 강우관측소가 보인다
녹색이 이렇게 다양하게 전개된다... 녹음방초가 꽃보다 낫다라는 말을 실감한다
이런 풍경을 두고 절경이라고 하지 않던가.... 흠 비슬산.. 다양한 풍경이 좋다
바위위의 이끼와 벼랑의 소나무... 이역시 작은 절경이라 하겠다
한국산이 가지는 맛.... 그대로
제 철을 맞은 진달래와 석벽과 이끼와... 한국의 봄이 그대로 드러난다
늘어선 날망들... 저 능선을 쭉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 ?
이러한 조망과 능선을 가진 산이 그리 많지 않고...이렇게 팍 트인 시야 또한 많지 않다
정상 대견봉 직전의 바위 직벽.. 순산 맨손클라이밍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불쑥 일어난다
정상 직전의 봉우리에서.....
다시 조금 더 걸어 정상으로 간다.
대견봉이라고 되어 있지 않고 천왕봉이라고..... 왜 이렇게 천왕봉이 많은 ?
줄서서 사진을 찍은 사람들을 뒤로하고 진달래 군락지로 향한다, 대견사 4.2km
본격적으로 진달래들의 향연이 시작된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영변의 약산 진달래 꽃 아름따다 가실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이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역시 소월은 천재다... 저걸 즈려밟고 어떻게 가 ?
만개한 진달래 사이를 누비는 사람들... 1주일 전에는 산 전체가 발갛게 물들었다는....
비슬산 진달래 만개일 맞추기가 로또보다 어렵다는 산대장님의 말씀 그러나 이만만 해도 호사의 극치를 이룬다.
특이한 관측소라 한컷 잡아본다. 설명은 내려가다 찍은 아래사진에...ㅋㅋ
울긋 불긋 꽃대궐.... 가는 봄을 만끽한다
이런 풍경에 말을 다는 것을 사족이라고 한다. 필요없는 뱀다리....
대견사 전경이다. 사찰의 설명은 역시 내려가면서 찍은 사진으로 ㅋㅋ
대견사 건너편 산의 지그재그 임도가 인상적이어서 한컷
내려오면서 30만평이 넘는 진달래 군락지를 한컷 더 찍어본다. 오늘 내 눈이 호사하였다
다시 한번 녹음방초가 꽃보다 낫다고 우기는 장면. 4월 신록의 현장
자연을 만끽하고... 유가사의 시비들을 둘러본다. 처음 내 발길을 잡은 곳...그래 중학교 2학년 교과서에 있던 프로스트의 시다
중학교 때 저 시를 읽으며... 내가 갈 길과 가지 않을 길을 상상하던.... 시를 읽으며 상념에 잠겨본다
앞으로의 인생에도 계속 가는 길과 가지 못할 길이 놓여질 것이다... 쇄락해진 마음이라 시가 더 와닿는다
유난히 예민하던 중학교 2한년 때... 그 때 국어선생님이 자기 호를 지으라고 해서 지금의 평암이라는 호를 그 때 지었다
시를 읽는 동안 질풍노도의 내 사춘기 시절이 머리속을 달려 지나간다.
이 역시 내 발길을 잡은... 법구경... 그래 깨우침을 위해 노력해야겠다....
오늘 나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은... 서산대사의 선시......
앞으로 자본에서 저 글을 찾아서 평생 써야 겠다... 반듯한 왕휘지 정차제가 어울릴 것 같다
임진왜란 3대 위인은 충무공, 그리고 충무공을 천거하고 전시에 멍청한 선조를 보좌해 내치를 담당한
서애 유성룡 그리고 외교를 담당한 사명당이 아닐까 한다.
사명당이 서산대사의 수제자인 것은 다 아는 사실이고...
서산대사와 사명당은 임란당시 승병을 불러모아 혁혁한 공을 세운것 또한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징비록 등에서 보면 사명당의 외교노력이 없었다면 당시 조선은 역사에서 사라졌을 수도 있었다.
정유재란 당시 명나라군사 11만 7천, 왜군은 14만 ?천인가 되었고 조선군은 3만 7천인가로 되어있다
그런데 왜군장수중 지장인 고니시 유끼나가는 일방적 승리는 어렵다고 보고 명나라와 조선을 양분해 가질 것을
전제로 다양한 명나라와의 외교을 시작한다. 경상, 전라도등 한반도 남단은 일본이 점령하고 나머지는 명나라
영토로 하자는 조건을 명나라 장수들게 던지고 협상을 추진한다.
고니시 유까니가가 순천왜교성에 고립되었을 때... 명나라 장수들이 적극적으로 공격하지 않은 것도
이 협상에서 기인한다. 당시 군사력상황에서 명나라, 일본이 그리 결정하고 휴전을 결정해버린다면
명나라, 왜군 합해 26만 대 조선군 3만 7천... 명/ 일 양쪽이 서로 이익을 봤으니 조선이 대항해 봤자..
이미 파악된 전력에.. 손쉽게 전멸시키고 선조 또한 중국에 끌려가는 것으로 조선역사는 끝났을 것이다.
그 때 사명당은 고니시의 라이벌이자 용장인 가또 기요마사를 와 만난 자리에서
고니시가 공을 독차지하는 것을 시기하고 있는 가또의 심중에서 이러한 고니시의 음모를 알아내고
왜군의 용장인 가또 기요마사를 꼬드겨 고니시의 음모를 분쇄하기 위해 고니시가 히데요시를 속여가면서
협상하고 있다고 히데요시에게 알리게 한다. 이로 인해 히데요시는 격노하고 다시 정유재란이 일어나고
고니시 유까니가의 추진하던 조선양분론의 음모는 분쇄되는데 이것이 사명당의 혜안에서 나온 외교의
결과였다는 것이 이미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조선을 구한 외교가 사명대사...
사명당의 스승인 서산대사의 선시에 .... 그 정신이 그대로 담겨 있다 .. 그 스승에 그 제자
임란이 끝나자... 서애 유성룡은 선조를 버리고 징비록을 집필한다
그러나 광해군과 북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반동의 역사인 인조반정이 일어난다.
그리고 최대 굴욕인 병자호란... 그 이후에도 정신못차린 명분뿐인 북벌론... 지금의 빨갱이 논쟁...
역사는 이리 혼란스럽게 반복되고 있구나..... 비슬산에 와서 남은 평생 교훈이 될 서산대사의 선시를 얻었다...
비슬산을 걸의며 정결해진 마음에... 프로스트를 읽고 순수해지니... 평소에 그냥 읽혀지던 이글이 마음에 들어오게 되었다
끝나고 조금 밑 창녕으로 내려와 맛본 웅어회...
오늘은 내 눈도 호사하고.... 좋은 교훈도 얻고.... 입까지 호사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