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트롯 안동 콘서트
딸 덕분에 눈 귀가 호강했다. 엄마가 미스트롯 재방송을 자주 봐서인지, 어느 날 문득 표 두장 끊었단다. 거금 12만원씩이나! 내야 원래부터 검소절약 세대이니 그런 것 안 즐기는데, 턱 하니 끊어놓고 가란다. 안 간다니 아내도 안 간다고 삐진다. 그래서 구체 없이 갔다.
구경 잘 했다. 미스트롯 1등부터 10등까지 차례로 출연해서 열창이다. 역시 송가인이가 생긴 모습대로 감정이 풍부했다. 음량 음질 음감 면에서 역시 1등다웠다. 2등 정미애도 열창에 좋은 목소리고, 홍자도 좋았다. 진성이도 출연해서 '안동역에서'를 불렀다.
이 노래들으면 스물두 살 되던 1975년 2월 어느 날 이른 아침 안동역이 생각난다. 시 '솔꽃이 피는 고개', 그녀가 있는 학보사, 낙동강 영호루 첫 데이트, 편집국장, 파면, 추졸, 군대. 1976년 6월부터 제2하사관학교와 육군종합행정학교를 마치고 하사계급장을 달고 간 겨울 울산 622방공포병대대 본부포대 내무반 첫 회식, 군대 컵 소주 잔 앞에 놓고 부른 노래가 남진의 '가슴 아프게'였다. 그렇게 첫사랑이 운명을 금 그었다. 같은 하늘 어디선가 곱게 늙어가겠지. 안동역에서 때문에 청춘의 상처가 자꾸 들쑤셔져서 안 좋다. 가라앉을 만하면 테레비에서, 안동역 근처를 지나면 노래비가.
미스트롯 모두가 혼신을 다해 노래를 불렀다. 공연 수익도 수익이지만 가수들은 끼와 흥이 유별나다. 그것 없으면 천금을 줘도 못 한다. 일하는 사람은 열심히 일하고, 노래 부르는 사람은 열심히 노래 부르는 게 열린세상이다. 2시에 했고 6시에 재탕인데도 안동체육관이 꽊 찼다. 안동 돈 다 긁어가나?
나는 트로트 체질이다. 어려서부터 들은 게 트로트다. 나중에 마흔 넘어서야 랩이니 머니 등 등 유행가에도 여러 창법이 있는 걸 알았다. 2,30대 땐 아 으악새와 황성옛터, 40대 땐 삼포가는 길과 하얀 면사포, 50대부턴 내 제일 애창곡은 '전선야곡'이다. 곡조 가사가 가슴을 진하게 울린다. 육이오전쟁 영화 '고지전'을 보고 더욱 마음에 새겼다. 영화 넌픽션 연출이지만,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민족의 보편적 감정을 잘 나타냈다. 마지막 고지전을 앞두고 새벽 안개속에 울려퍼지는 가라앙이피 휘날리는 전선에 다알바아암......, 남군 북군 모두 김이박정최손강......, 한 핏줄. 제2의 동족상잔은 없어야 한다.중공군 미군, 마찬가지로 전쟁은 없어야 한다. 그들 모두 청춘들로서 어느 한 집의 귀하디 귀한 가족이다.
호모 사피엔스? 합리적 인간? 그 덕분에 문명이 발달할수록 대량학살인가? 그러나 호모 루텐스, 유희하는 인간, 지금 저 모습처럼 노래와 춤으로 즐거운 사람들은 전투와 전쟁을 싫어할 것이다.
트로트 열풍이 거세게 분다. 한 20년 동안 트로트가 숨을 죽이고, 청년문화 유행가들이 휩쓸더니 다음엔 방탄소년단이니 무슨 걸그룹이니 득세했다. 근데 송가인이 덕분에 트로트가 살면서 중장년 층의 기와 흥이 살아나고 있다. 청년들도 복고풍으로 트로트를 좀 부른다. 근데 요즘은 케비에스 에프엠 대구음악방송 클래식을 즐겨 듣는다. 책상 가에 라디오를 걸어놓고 아침에 눈 뜨면 켜고, 저녁부터 자기 전까지 듣는다.
열창을 듣보다가 문득 조상 생각이 떠올랐다. 삶의 흥분과 죽음의 영원한 침묵, 극과 극이다.
2020년 이 추운 겨울 산능선 비룡산 묘골과 화장산 작은 부계골에 누워 계신 조상들의 뼈가 생각났다. 다음에 산소 갈 때는 작은 테이프라디오를 사서 송가인이 노래를 들려드려야겠다.
돌아오면서 바라보는 안동의 밤거리. 인생이란 저 멀리 하늘에서 뭉쳐진 기운이 합쳐지면서 사람의 형상을 이루어 피가 돌아 희로애락 하다가, 유성처럼 떨어지거나 행성처럼 오래 살거나 모두, 송가인이 한많은 대동강아 곡조에 실려 땅속으로 들어가는 것.
평생 유행가를 부르며 살아간다. 첫사랑은 흔적이 없지만, 스물여덟에 인연한 아내는 현실이다. 생활과 자식 둘을 낳아 길렀다. 십년 후일까 이십 년 후일까 아니 몇 년 후일까, 인명재천이지만, 수십 년 후에는 확실하게 명호면 삼동리 458번지에 함께 누워 겨울 밤하늘을 바라보며 도란도란 생시 적을 회고할 것이다.
2020년 1월 18일 안동 열락연재에서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