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명/아빠 닮았다
엄마가 헤어 스타일을 싹 바꾸었습니다. 치렁치렁한 머리를 싹둑 잘라 버리고 퍼머를 한 것입니다. 퇴근해서 집에 돌아온 아빠가 엄마의 그 다글다글 볶은 머리 모양을 보고 감탄사를 연발했습니다.
“아니, 이게 누구야? 나는 남의 집에 잘못 들어온 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
“이쁘다는 거예요. 안 이쁘다는 거예요?”
“베리 굿, 비유티풀, 원더풀이야.”
입에 발린 감탄만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아빠는 싱크대 앞에 서 있는 엄마를 등뒤에서 꼭 보듬어 안고 목덜미에다 뽀뽀까지 해 주었습니다. 엄마는 눈을 흘기면서 아빠의 가슴을 가볍게 뿌리치기는 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들의 그런 모습을 거실 텔레비전 앞에서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샘이가 아빠에게 물었습니다.
“아빠.”
“응?”
“베리 굿, 비유티풀, 원더풀이 뭐야?”
“최고로 예쁘다는 뜻이란다.”
“최고로 예쁘다는 뜻?”
“그래. 우리 샘이가 보기에도 엄마 머리 모양이 예쁘지?”
“응, 예뻐. 베리 굿, 비유티풀, 원더풀이야.”
그 다음날 아침이었습니다. 아빠가 출근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샘이는 엄마에게 미장원에 데려다 달라고 떼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미장원에 가자, 응? 엄마.”
“미장원에는 왜?”
“나도 엄마처럼 머리 자르고 퍼머할 거야.”
샘이의 고집을 엄마는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샘이는 머리가 길었습니다. 아침마다 그 긴 머리를 빗겨 주고, 예쁘게 땋아서 리본으로 묶어 주는 것이 엄마의 큰 일과였습니다.
샘이는 아빠와 엄마의 어느 쪽도 쏙 빼닮지는 않았습니다. 엄마는 얼굴이 긴 편이고 아빠는 동그란 편인데, 샘이는 그러니까 그 중간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샘이를 보는 사람들은,
“어머, 얘 차암 예쁘다. 눈이며 입이며, 어디 나무랄 데 하나 없이 오목조목 아주 귀엽게 생겼네요.”
하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그런 샘이의 머리칼을 잘라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듣기 좋은 말로 타이르기도 하고, 눈을 부라리며 무섭게 꾸짖어 보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엄마는 하는 수 없이 아빠한테 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했습니다.
“여보, 어떡하죠?”
“왜?”
“샘이가 머리를 자르고 나처럼 퍼머를 해달라고 떼를 쓰지 뭐예요.”
아빠는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대답했습니다.
“잘라 주라구.”
“예?”
“그러잖아도 한번 시원스럽게 잘라 주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던 참인데 잘됐지 뭐.”
그러고 보면 전혀 일리가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 즈음 들어 몹시 추운 아침이 반복되면서 치렁치렁한 머리를 감길 때마다 혹 감기라도 들까 봐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던 것입니다.
엄마는 샘이를 데리고 미장원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전날 자기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의 머리를 자르고, 퍼머를 해주었습니다.
그 날은 토요일이었고, 아빠는 일찍 귀가했습니다. 다글다글 퍼머를 한 샘이를 바라보는 아빠의 눈빛이 처음에는 약간 서먹해 보였습니다.
“아빠, 샘이 머리도 엄마처럼 베리 굿, 비유티풀, 원더풀이지?”
“그래 그래. 우리 샘이가 엄마보다 더 예쁘구나.”
아빠는 샘이를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려 목마를 태워 주었습니다. 샘이는 소리내어 깔깔 웃었습니다.
그들 세 가족은 집을 나섰습니다.
서울 외삼촌네는 잠실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다음날이 외할머니의 생일이었습니다.
“아이구, 우리 샘이 왔구나.”
“샘이야, 이리 온!”
여기저기서 야단법석이었습니다. 외할머니가 샘이를 안고 말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를 닮고, 딸은 아버지를 닮아야 어른이 되어서 잘 산다는데, 우리 샘이는 누굴 닮았을까.”
샘이는 스스로 아빠를 닮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모처럼 모인 가족이 그동안 지낸 이야기를 주고받느라고 정신 없이 수선을 떨고 있을 때였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들 곁에서 재잘거리던 샘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샘이가 안 보이잖아. 얘 어디 갔지?”
엄마는 안방 문을 열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엄마는 비명을 지르고 말았습니다. 샘이가 화장대 거울 앞에서 가위로 제 정수리 부분의 머리를 동그랗게 잘라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 아빠 닮았지?”
첫댓글 엄마 아빠를 닮고 싶어하는 어린이의 심리가 예쁘게 잘 그려졌습니다.
동화 3편에 나오는 아이들 행동이 다 귀엽습니다. 아이 답습니다. 나도 동화를 더 잘 써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스런 이야기...,잘 읽었습니다.
아빠에게 사랑받고 관심받고 싶어하는 딸아이의 마음이 예전의 내 모습같습니다. ^^
곧 "나 아빠랑 결혼할거야" 하고 말할거 같은....ㅎㅎ~
동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