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ctio Divina continua 는 성서통독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1996년에 처음 렉시오디비나콘티누아를 소개할 때 [성서통독]이란 말로
소개를 하였습니다.
완독에 목적을 두어 단순히 전체를 읽는 것과는 달리
고유의 방법을 지속적으로 적용시켜하는 영성생활로서의
성서읽기 입니다.
1. 성서통독(聖書通讀) = 렉시오디비나콘티누아
1.1 성서통독(聖書通讀) = 렉시오디비나콘티누아란?
첫번 째 의미: 성서를 통째로 읽는 것입니다.
성서를 하나로 된 큰 책으로 여기고 첫째 쪽부터 마지막 쪽까지,
곧 창세기라고 이름 붙은 부분부터 요한 묵시록이라는 이름을 가진
마지막 부분의 마지막 장까지를 읽어보자는 것입니다.
성서에 관하여(형성시기, 정경성, 저자들 등)공부하는 것이 아니며,
성서의 주변세계, 혹은 성서에서 뽑은 메시지에 대하여
공부하는 것이 목적도 아닙니다.
성서 본문 자체를 접하는 것이며
선별해서 어느 대목을, 어느 낱권으로의 텍스트를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 본문을 파악하며
성서를 통채로 읽는다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곧 창세기 1,1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 내셨다" 에서
요한 묵시록 22, 21까지. "주 예수의 은총이 모든 사람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까지.
성서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구원사의 흐름을 타고 흐르는 것입니다.
이 큰 책은 오랜 시기를 거쳐 형성되었고
각 권이 이뤄지는 데에 관여한 사람들이
제 각기 다릅니다.
각 부분이 두드러지게 전하는 메시지도
다른 양상을 띠고 나타납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양상과 메시지를 담고 있는 부분들은
서로를 알게하고 보여 주는 역할을 하며
전체 안에 담겨져 있습니다.
이 전체를 보는 것...
성서의 각 부분은, 각 권은
구약과 신약의 계시의 전체 맥락에 이끌리면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부분들을 통하여
전체 윤곽이 드러나는 동시에
전체 안에서 각 부분은 그 의미를 명백하게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거시적(巨視的) 관점, 미시적(微視的) 관점의 교류
성서는 어떤 일정한 형식으로 계속해서 간행되는
같은 종류의 출판물을 일컫는 ‘총서’와는 다릅니다.
한 사람의, 또는 같은 종류나 시대의 저작을 모은 ‘전집’과도 다릅니다.
성서 전체에는 그 각 부분들을 꿰뚫는 어떤 굵직한 줄거리가 있습니다.
곧 구원의 역사입니다.
성서읽기를 통해
구원의 역사를 내가 깨닫는다함은 교리를 듣거나
누가 해설한 구원의 역사 이야기를 듣거나 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구원의 역사는 과거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현재 내 삶에서 일어나야 하는,
일어날 수 있는
자유와 생명에로의 초대입니다.
이 초대에 응답할 때
구원의 역사가 내 안에 일어납니다. 완성됩니다.
그 역사는 간단하게 글로 요약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그 대의(大意)는
사람의 삶과 만날 때
그 인생 안에서
그 줄거리를 드러냅니다.
살아 움직이는 줄거리.
여기서 우리는 희망과 구원을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내 삶에 어린
하느님의 뜻을 아는 것, 구원의 역사를 내가 깨닫는 것,
이것이 성서통독을 하는
이유이고 목적입니다.
신앙 안에서
신앙의 경전으로 읽혀질 때
성서는 한 권의 책, 그 이상인 단 하나이고 유일한 책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성서는 친숙한 인생 이야기를 다른 스케일로,
큰 그림 안에 있는 이야기로 합니다.
성서를 읽으며 자기 자신의 이야기는
큰 속에서 작은 가치를 가지며(채우며), 본 뜻을 들려줍니다.
이것을 듣기 위해서
성서를 통째로, 순서대로 죽 이어 읽습니다.
깊이 정독하는 것입니다.
두번 째 의미: 영성생활의 훈련
학문적인 공부가 아닙니다.
누군가에게 전달해야 하는 의무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읽기도 아닙니다.
나 자신을 위한, 유일하고 독자적인 ‘나’를 위한 시간 내기입니다.
주관적인 기호나, 독자나 공동체가 느끼는 필요에 따라
주제에 맞는 본문들을 선택하기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읽기입니다.
이 큰(두꺼운) 책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듣고자
집중해서
통째로
읽기입니다.
그러면서 내 인생 안에 내재한 구원을 역사를 알아듣는 것입니다
...
그리고...
이 때
우리는 예수께서 이미 시작하신 구원의 역사에 예라고 응답하는 것을 통해
한 개인의 삶에서 창조와 구원의 역사를 완성되는 데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역동성
이런 읽기, 곧 성서 계속 읽기에는 어떤 움직이는 힘, 특수한 힘이 있습니다.
영적인 역동성이라고 하겠습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을 체험합니다.
단 한 가지 빠뜨릴 수 없는 조건은
신앙입니다.
이 책 성서의 저자는
바로 하느님이시라는 믿음으로
나를 투신하여 성서를 읽어 나갈 때
‘말씀’이 활동하시리라고 믿습니다.
성서 전체를 이해하는 열쇠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살아 계십니다.
그 때, 이천 년 전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셨고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살아 계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여러분에게 말씀을 들려 주시고 풀어 주실 것입니다(루가 24,25-32).
예수께서 아버지를 계시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누구신지,
사람이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어떻게 사는 것인지 보여 주십니다.
세째: 성서통독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을 들어보십시오.
교회의 가르침:
믿음의 기준을 고려하십시오.
성서의 온전한 의미를 파악하려면 이성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기록된 성경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읽고 주해해야 합니다(계시 12).
그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교 신앙에 걸맞는 세 가지 기준,
곧 성서 전체의 내용과 통일성에 대한 충분한 고려,
온 교회의 생생한 성전,
그리고 신앙의 유추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서 전체의 내용과 통일성에 유의하십시오.
이 기준은 성서 전반을 포괄하는
전체적인 시야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함을 드러냅니다.
이 넓은 시야는 성서 본문의 의미를 넓혀주고,
문학적· 역사적·신학적 맥락 안에서 해당 성서 본문의 위치를 잡아주며,
다채로운 측면과 세세한 사항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밝혀주는 동시에,
다른 본문을 손상시키면서까지
해당본문을 절대화시킬 수 없음을 확인시켜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