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은 출석 점수가 좋았습니다. 12명 참가.
1학년들이 수련활동으로 건강이 안 좋아 몇 명이 불참했지만 다들 아침 일찍 모여 줘서 고마워요.
학교에서 190번을 타고 중앙동에서 내려 40계단 거리에 들어섰습니다.
기차사진관에서 탐방 기념 인증샷을 남겼지요.
' 문학 속 우리고장 탐구반' 이라고
근데 사실 문학 작품을 읽고 감상하려니 좀 힘들군요.
다들 책 읽을 시간도 없고, 책 수준도 중학생과 맞지 않은 경우가 많으니.....
그래서 답사 성격이 우리 고장 알기 쪽으로 기우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게 어딥니까?
다들 잘 모르는 우리 고장에 대해 우리만큼 아는 이도 드물지 않을까요?
대구탕 집 앞에서 절반은 카메라 밖으로 숨고 절반만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이 곳이 바로 부산문화방송발상지라는군요.
언덕을 향해 나아가니 젖먹이 아이를 업고 젖을 먹이는 엄마상,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사진상, 뻥튀기 아저씨를 지납니다.
이들의 모습에서 전쟁 후 고단했던 우리네 삶의 흔적을 볼 수 있네요.
멀리 계단이 보입니다.
40계단입니다.
40계단 기념비 뒷면엔 손로원의 '경상도 아가씨'란 노래 가사가 새겨져 있습니다.
수련활동의 피곤함을 이기고 열심히 답사하는 유진이 화이팅!
"사십계단 층층대에 앉아 우는 나그네
울지 말고 속 시원히 말 좀 하세요
피난살이 처량스레 동정하는 판잣집에
경상도 아가씨가 애처러워 묻는구나
그래도 대답없이 슬피우는 이북 고향
언제 가려나"
계단에는 슬픈 눈빛으로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신사가 있네요.
손을 잡으니 뒤에서 노랫소리가 울려퍼집니다.
살며시 손을 잡고 위로합니다.
"얼마나 고단하세요?"
달팽이관처럼 생긴 건물 속으로 빙글빙글 돌아 올라가니 40계단 문화관이 보입니다.
조금 걸었는데도 왜 이다지도 벅찰까요?
엘리베이터의 힘을 빌어 5층으로 이동합니다.
해설사님이 근, 현대사를 단숨에 요약설명해 주시니 더 이해가 쉽네요.
"야들아, 사진 좀 찍자.
다들 도망만 가지 말고......"
5,6층 전시실이 마련되어 있어서 부산의 역사를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때마침 일본인 관광객들이 한 무리 들어 오네요.
용두산공원 주변은 조선시대 초량왜관이었다지요.
그러고보니 우리 고장은 일본과 참 인연이 깊은 동네네요.
초량왜관은 대마도의 일본인이 건너와 약 500여 명이 거주하며 우리나라와 무역을 했답니다.
무려 10만평의 대지를 이용했다니 놀랍지요.
요즘 남포동을 주름 잡았다고 보면 되겠네요.
근데 남자들만 거주할 수 있었다네요.
만약 조선인과 밀거래를 하거나 조선의 여인들이 그들과 통하다 적발되면 사형을 당했답니다.
용두산 가는 길에 마주한 동광초등학교 옛터 기념비가 보이네요.
남일초등학교와 동광초등학교가 합쳐져 지금의 광일초등학교가 되었다네요.
그러고보니 우리 답사반에도 그 후배들이 몇 명 있네요.
용두산종각
용두산타워입니다.
사진의 순서가 바뀌었네요. 117m 높이의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입니다.
가는 길에 들른 전시실입니다.
우리 학교 미술샘의 작품도 보입니다.
그래서 더 반갑고 좋네요.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풍경.
2층 세계악기전시관을 둘러 보는 중입니다.
사장님이 직접 악기 연주도 해 주시고, 같이 어울려 장단도 맞추고 하니 즐겁습니다.
이곳은 예전 초량왜관, 일본인 거주지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영화 속에서 보던 풍금을 연주해 봅니다.
전국 18개 꽃시계 중 유일하게 초침이 있다는 꽃시계.
아쉽게도 카메라 들고 가는 것을 깜빡 잊었기에 휴대전화로 찍다보니 블루투스 기능을 잘 몰라서
사진을 제대로 못 올렸습니다.
우리는 김밥을 먹고 지친 나머지 근대문화역사관은 다음 보수동 책방골목 탐방 때 다시 하기로 하고
일정을 접었습니다.
추운 날씨에 김밤과 음료를 먹었지만 나름 유익한 시간이었죠.
다음 답사 후기는 여러분이 올리세요.
근데 회원 등록 좀 하세요. 아무리 바쁘기로서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