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가까운 마을 티벳에서 내려온지 보름.
세번째로 장만한 디지탈 사진기를 잊어버려 가면서, 여행중에 찍은 3천여장이 넘는 사진을 줄이고 줄여 정리는 해 놓았지만, 이 핑계 저 핑계로 오늘에야 첫 여행기를 올린다.
서양친구 둘과 후원차 운전사 둘 등으로 9명이 함께 했던, 칭하이[靑海]성의 씨닝[西寧]에서 출발하여 쿤룬[昆崙]산 부터는 평균 해발 고도 4,000m가 넘는 탕구라[唐古拉]산맥을 가로 질러 티벳[TIBET]의 라싸[拉薩]까지 이어진 1,944km의 5차 기행[騎行].
예정보다 8일이나 일찍 도착하여 한국에서 비행기 타고 날아 온 왕여우[網友:인터넷 친구] 하오마루[haomaru,안규제]님을 기다렸다가, 4천m가 넘는 산 7개, 5천m가 넘는 산 2개를 넘어 닿은 윈난[雲南] 쿤밍[昆明]으로 2,000여 km의 6차 기행...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 가물 거리는데, 힘든 여행 중에 남긴 몇자의 메모. 그나마도 비를 맞고 번져서 암호를 풀듯이 해석을 하는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뿐만인가! 남들이 보기에는 재미 없는 여행기가 되겠지만 나의 여행기는 끝까지 굳굳하게 이어 질 것이다.
이 기행기를 쓰는 나의 바램은 티벳 산간 도로의 사정과 해발고도의 정황이 잘 표시되는 "티벳 자전거 여행 지침서를 남기고 싶은 욕심"이다
한편으로는
이전과 마찮가지로 걱정이 앞서는데.... 로인과 안 사장[하오마루님은 호남 최고의 도시 광주에서 인디안 의류를 운영하는 사장님이시란다.]님. 셋이서 그 어느 때 보다 오붓하고 좋았던 자전거 여행을 제대로 표현을 해 낼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있으며, 한 쪽으로는 티벳 여행중에 거의 매일 비가 내려, 계곡의 맑은 물을 보지 못한 아쉬움과 한 여름에 떠난 여행이기에 만년설을 만족 할 만큼 보지 못한 아쉬움이 있음을 미리 밝힌다.
그런가 하면 남들은 더워서 바다로 산으로 피서 여행을 고생스럽게 떠날 때, 우리는 추위에 떨면서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를 보낸것 같은 행복도 누렸다.
이번에는
같이 떠났던 서양친구 제이쓴과 애쉬가 목적했던 라싸까지 같이 못 달림으로 해서...
중간에 고산병으로 해서 700여km를 차를 타고 이동을 함으로 하여... 등등의 이유로 "반쪽짜리" 절반의 여행이었다.
기차[汽車]를 타고... [제 5차 기행, 첫째날 - 05,06,18(토)]
시간은
가는 세월에 얹혀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에 지는 대로 흐르고 흘러....
지지난해
중앙 아시아의 우루무치[烏魯木齊] 를 다녀온 이래
2년여...
나 홀로
북치고 장고치며
그 장단에 춤까지 추어 가면서...
준비를 한다고 했지만....
나름대로 사방팔방으로 부지런히 뛰면서 찬조해 줄 스폰서를 찾았지만...
공교롭게도 이번 차에는 단 한푼의 찬조금도 없이 떠날 날을 맞이하게 되었다.
다행이
미국인 친구 제이쓴의 참가로, "친구 따라서 티벳에 가게 된..." 영국인 친구 애쉬도 나섰고, 자칭 나의 영원한 자전거 동지인 로인[老尹 : 尹相美를 부르는 존칭], 끝까지 제이쓴이 가는지 눈치를 보면서 참가를 유보하였던... 우루무치까지 같이 달렸던 뚱땡이 씨위에[西越:黃凱], 버스를 타고라도 따라 가겠다고 나선 망구[할머니 이후이윈:李揮雲], 내가 운영하는 까페의 회원으로 북경에 유학중인 이쁜이 김소롱[金昭朧]. - 소롱! 이 "昭"자가 맞지?
그리고, 렌트카를 운영하는 리위엔량[李元良]은 나의 꼬드김에 차를 끌고, 왕타이라이[王泰來]라는 로따꺼[老大哥:늙은 형님]친구까지 불러서 참가를 하였다.
그리하여 "올림픽 맞이 기행단"은
한국,미국,영국,중국... 4개국에
7인의 자전거 선수(?)와 2인의 운전사
남자 5명에 "미녀 3총사와 같은 수의 여성" 등등 총 9명의 남녀노소 다국적군(?) 전사로 구성이 되었다.
++ 6월 18일 칭다오 5 4 광장에서의 출발식. 이번은 노랑 - 노랑색 웃도리와 황포[黃布] 좌로부터 리위엔량, 애쉬, 김소롱, 탱이, 뚱땡이 씨위에, 망구 이후이윈, 인샹메이,제이쓴, ++
이번에도
현지 방송과 신문인 칭다오 TV와 칭다오 조보를 비롯하여, 동포가 발행하는 한글신문인 연해 소식과 칭다오의 한국상회에서 발행하는 칭다오 저널등등의 매체들이 취재 차 찾아 주었다.
++ 5 4 광장의 원형 무대에 올라 출정식 때 참가자를 소개하는 중... 뚱땡이는 어디로 빠지고 가지 않는 차오 따꺼[趙大哥]가 올라 왔네...? ++
우리의 출정식을 위하여 1년이 넘게(!) 연습을 한 칭다오의 유명한 빠따후[八大湖] 요고대[腰鼓隊]의 축하 공연이 준비 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무척 어렵게 "뭐시기" 대학 유학생들이 조직한 사물놀이패를 찾았지만, 인원이 적어서라고 말을 흐리며...하도록 노력을 해 보겠다는 말만 들었지, 못하겠다는 통보는 듣지 못하여 무척이나 기다렸는데.... 그리하여 아쉽게도 칭다오 인민들에게 우리 농악의 신명나는 소리울림은 들려 주지를 못하였다.
그 날은 아내와 큰 딸이 창고형 대형 슈퍼마켓으로 내 여행에 필요한 물건들을 사러 갔었는데... 사물놀이패를 만나러 갔다가 만나지는 못하고 전화 통화만 했었다. 그 때 서두르다가 내 인생에 두번째로 자동차 열쇠를 차 안에 두고 잠그는 실수를 하였다.
소낙비가 쏟아지고...
소는 풀려서 내 뛰는데...
마당에는 털려고 꺼내 놓은 깻단이 널려 있고...
설사가 나서 아랫배가 땡기고 아픈데...
허리띠는 옭매여서 풀리지 않고...
젖병은 소독도 못했는데 애기는 배가 고프다고 자지러지게 울고,
부엌에서는 밥이 타는 냄새가 퍼져 진동을 하고....
그 사이 공기 나쁜 실내에 있던 아내에게서 "딸내미가 요상허니 빨리 올 수 없느냐?"는 전화가 왔고... 되지도 않을 사물놀이패를 찾는다고 땀을 비오듯이 쏟으며 귀중한 시간을 보내다가, 뒤늦게 허둥대며 나를 기다린다는 그 매장 옥상으로 올라가니 110 전화로 구급차를 불러 놓은 상황... 그날 그렇게 딸은 엠블란스에 실려서 401 해군병원으로 끌려(?)갔다.
++ 이 공연의 이름은 " 揚帆靑島" ++
지난번
차오 따꺼가 올림픽 맞이라는 명목으로 헤이룽쟝[黑龍江]의 모허[墨河]로 갈 때에도 내가 주선을 해준 자전거 묘기단이 이번에도 기꺼이 축하 공연을 해 주었기에 주머니의 먼지를 털어 그들에게 차비를 제공하여 주었다.
출정식이 끝이나고
12시 25분에 출발.
나는 이어폰을 꽂아 음악을 듣고, 운전사 옆에 앉은 왕선생은 쏘우쥐[手機:손 전화]를 꺼내 게임을 즐긴다. 망구와 로인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수다가 계속 이어지는데... 베이징에서 밤차를 타고 달려온 소롱양과 뚱땡이 씨위에는 잠의 세계로...
난 중국 면허를 가지고 있지만 운전에 참견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많은 한국 사람들이 "연태"라고 부르는 엔타이[煙臺:연대]에서 시작되어 쟝쑤[江蘇]의 엔윈깡까지 이어지는 통싼[同三] 고속도로를 찾아 오른다는 것이 헤맨다. 뻔딴[竹+本蛋:바보, 얼간이]같으니라고...
14시 쟈오난[膠南] 통과.
떠나기 며칠 전에 핑두[平度]에 사는 박옥란이 가르쳐 준, 한글로 보내는 딴신[短信:문자메세지]으로 오래 떨어져 지내야 할 아내와 작은 딸에게 섭섭함과 미안한 마음을 담아 날리는 중에도 차는 얼음판을 미끄러지듯이 잘 닦인 고속도로를 타고 내 닫는다.
공자의 고향 취뿌[曲阜]에서 지닝[濟寧]으로 달려가는 중간에 갑자기 하늘이 시커먼 구름으로 덮이더니 우에서 좌로 바람이 엄청 세차게 불어 차가 휘청거리면서 달린다. 자전거는 타지도 않는데, 바람을 동반한 비가 내리니 걱정이 앞섰다.
21시 반. 670km를 달려 쟝쑤의 란카오[蘭考]현 도착.
며칠간 기차를 타고 이동을 하여야 하니 먹을 것을 각자 알아서 준비하라고 일렀기에 과자는 물론이고 마른 오징어와 과일등등 많은 먹거리가 준비되었고, 이동 중에 수시로 꺼내서 나누어 먹었다.
어느 휴게소에서 점심은 두 기사만 먹었고, 저녁은 현지인들과 어울려 흙먼지가 날리는 길거리에서 위생과 맛을 포기한 대신에 엄청 싸게 먹음.
오늘의 이동거리와 지출내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