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박한 탐색
‘데스메탈’ 이란 것이 있다. ‘헤비메탈’과 더불어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음악이다. 기존의 정형화된 틀을 파괴하고 깨고 부수는 듯한 소리에 따라 몸을 흔들고 열광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그 순간만은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다하여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그들은 ‘사탄음악’이라 불리는 이 파괴적인 음악이나 장면들을 통해 갑갑한 현실에서 해방되는 대리만족을 얻기 때문이다.
이 현상은 단순하지가 않다. 기성체계에 저항하는 하나의 상징으로 채용되는 것 같다. 파괴적인 체험에서 대리만족을 얻고 그 순간만은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어서 좋다는 의식, 기성체계이든 그 어떤 것이든 부수고 깨고 싶은 무언의 저항의식 내지는 반항의식의 이면에는 참다운 자기성장을 방해하는 악마의식이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따져봐야 할 일이다.
문학에서 악마주의는 보들레르를 들 수 있다.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체계에서 악이라는 선의 상대적인 것을 불러 그것을 상징화하고 이미지화함으로써 인간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악마성을 들추어낸다. 동양적 사고 체계 속에서도 성선설이니 성악설이니 하는 것이 있다. 어느 것이 옳은 것이냐를 묻는 것보다 인간의 내면에는 선과 악이라는 이중적인 모습이 내재 되어 있고 어느 쪽이 강세이냐에 따라서 선한 인간도 될 수 있고 악한 인간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선과 악은 시대에 따라 상대적이긴 하지만 물질문명의 발전 속도에 비해 정신적 빈곤을 체험하는 현대에는 이런 악마의 활동이 더욱 활발하다고 보여진다. 그러면 황폐해진 정신의 탈출구는 없는 것인가. 악마주의에 휘둘려 나락의 끝에서 헤쳐 나오지 못하고 말 것인가. 그러나 인간에게는 지혜가 있다.
여성인권센터 비망록
1.
팔손이 나뭇잎 바람에 뚝뚝 떨어지는구나 아이스크림, 나뭇가지 개미 달라 붙는구나
바람이 치마를 뒤집는구나 보이지 않는 네가 아니 보이는 네가 내 마음을 헤엄치고 다니는구나
주부극단 파라질 연극 연습하는구나 따르릉 따르릉 전화 안 받니? 너는 어쩜 너밖에 모르니? 저 아이들이 불쌍하지도 않니? 그래 난 내 멋대로 살기로 작정했어. 왜 난 전화를 받지 않을 자유도 없어?
2.
옥상에 빨래 펄럭이고 수박 껍질 말라가고 해 품은 물 비명 없이 사라진다
엄마가 엄마의 뺨을 때린다 딸이 딸의 팔을 붙잡는다 옥상에 빨래들 팔이 자란다 하얀 머리카락이 자란다
엄마가 엄마의 귀를 물어뜯는다 딸이 딸의 손가락을 물어뜯는다
이천년 전 물달개비 꽃가루, 국화 꽃가루, 편충알, 회충알이 바람에 흩날린다
송진 시집 『지옥에 다녀오다』 중에서
위 시는 차용된 이미지가 기괴해 보이지만 지극히 일상적인 체험에서 출발하고 있다. 우선 떨어지는 나뭇잎에서 시의 전체 분위기를 전달한다. 떨어지는 것과 상승하는 것의 충돌로 대립각을 세워 극적 효과와 더불어 긴장감을 가져온다. 1에서는 하강의 이미지이고 2에서는 상승의 이미지다. 달콤한 아이스크림이 묻은 나무 가지에 개미떼가 달라붙는 이미지는 전혀 달콤하지 않는 주부 연극배우의 이미지와 겹쳐져 가정생활과 거리를 두고 있는 여인, 한 개성을 발견하는 도구로 사용한다. 주부로서의 끝없는 실패, 추락은 길들여진 또는 합리적이지 않은 주부는 더 이상 주부일 수 없다. 그래서 시적화자는 자유를 주장하고 싶다. 그것이 2에서 상승할 수 있는 모티브를 제공한다. 옥상에 널어놓은 빨래들이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에서 진정한 자유를 발견한다. 엄마 빨래는 엄마 빨래대로 자유롭고 딸의 빨래도 마찬가지다. 서로 간섭하지 않고 마음대로 펄럭인다. 그것들은 이천년 전 자연들이 간직하고 있던 유전인자 속에 들어 있는 섭리와 같다. 아름다운 것이나 그렇지 못한 것이나 다 자연의 섭리이며 그것들 속에는 자유가 내포되어 있다. 꽃가루나 알은 생성, 즉 상승의 이미지다.
송진 시인의 시에 드러나는 것은 악마주의는 아니지만 그것이 표방하는 오랜 기간 동안 역사를 지배해 온 이성주의 또는 합리주의적 서구사상에 싫증을 느낀 독자들에게 뭔가 신비롭고도 기존의 윤리·사회 체계를 넘어설 것 같은 자유분방한 그러나 극히 의도적인 일상으로부터 허구 혹은 진정성 건져 깨어있는 의식으로 유혹하는 뉴에이지 운동 같은 것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부산에서 태어나 1999년 다층 신인상으로 등단한 송진 시인은 ‘특이한 상징적 수법과 일상적 언어 논리에 위배된 표현’(김경복)으로 내면에 고여 있는 부조리를 토한 뒤 새로운 가치와 진정한 자유를 위해 고투하는 시를 치열하게 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