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작은 국어사전에는 ‘싸가지’에 대한 단어도 안 나오고 설명도 없다. 그런데 신기철․신용철이 편저한 《새우리말큰사전》(삼성출판사, 1975)에 보면 ‘싸가지’는 ‘싹수머리’라 되어 있고 ‘싹수머리’는 ‘싹수’로 되어 있다. 그리고 ‘싹수’는 “앞으로 잘 트일 만한 낌새나 징조”로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싹’을 말한다.
이 싹이라는 말은 나무나 풀의 씨앗에서 ‘떡잎’이 나오는 것을 이른다. 생물이 떡잎을 틔우는 것을 싹이라 한다. 그런데 나무나 풀의 씨앗에서 나오는 ‘싹’을 사람의 경우에는 ‘싹수’로 쓰인다. ‘싹수’는 어떤 사람의 ‘앞이 트일 징조’를 가리킨다. 이 싹수‘는 ’싹수가 노랗다‘ ’싹수‘가 보이다로 쓰인다. ‘싹수’를 .목표대 이기갑 교수는 전라도에서 ‘싸가지’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싸가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전라도의 ‘싸가지’는 ‘싹수’와 같이 긍정적 의미로 쓰이지 않고 부정적 의미로 많이 쓰인다. 그래서 ‘싸가지가 있다’로 쓰이지 않고 ‘싸가지가 노랗다’, ‘싸가지가 없다’ 등으로 쓰인다. 다시 말하면 사람의 행동이나 말이 형편없음을 가리키는 의미로 쓰인다.(엠파스, 2003)라 하였다. 그리고 사람이 아주 형편없을 때는 ‘싸가지 없다’는 말은 줄여서 그냥 ‘싸가지’라고 쓰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싸가지 없는’ 국회의원들이 이번 17대 국회에도 존재하고 있다는데 놀랐다.
6월 7일 17대 국회의 개원식은 다른 정권의 국회개원식과는 의회사상(議會史上) 의미가 달라야 했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로, 먼저 다른 때와는 달리 국회의원 2/3가 교체되었다. 그리고 초선의원이 다른 때와 달리 180명으로 전체 60%가 넘는다. 이것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줄곧 구태의연한 국회상(國會像)에 넌더리를 느낀 한국사회 대다수 공동체구성원들의 국회가 변신하였으면 하는 바람을 말해준다. 그런데도 일부 ‘싸가지 없는’ 의원님들 때문에 17대 국회의 개원부터 실망감이 앞선다. 그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개원식 축하연설을 하기 위해 의회에 입장할 때와 연설 도중의 일부 의원들의 ‘싸가지 없는’ 행태 때문이다.
의회민주주의는 다른 민주주의의 여러 제도와 함께 서구적 가치관에서 왔다. 따라서 의회에서의 의원예법은 당연히 서구의회에서 모방되었다. 삼권분립을 상징하는 국회의 개원식에 입법부의 수장이 축하연설을 하는 순서가 있다. 그래서 대통령은 국회가 개원하는 날에 국회를 방문한다. 동아시아의 예는 귀한 객은 문밖에서 맞이한다. 그러나 의회민주주의는 서구에서 왔기 때문에 의회예법 또한 서구식이다. 그래서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 의회에 들어설 때 질서유지상 집주인인 의원들이 자기 자리에서 일어서서 맞이하도록 하고 있다. 이것이 의회민주주의를 취하고 있는 모든 나라에서의 공통된 의원예법이다.
그런데도 당일의 17대 국회개원식 중계를 보면 일부 ‘싸가지 없는’ 의원님(정형근, 박계동, 이해봉, 박형규, 이종구)들이 앉아서 대통령을 맞이하는 장면이 목격되었다. 이것은 분명 ‘싸가지’다. 민주주의가 삼권분립의 체제를 취하고 있지만 사실상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입법부와 행정부의 등위적 병존체제를 취하고 있다. 이를 감안해 볼 때 의원예법을 저버린 것은 ‘싸가지’ 이전에 민주주의의 등위적 병존체제를 포기하는 일부 무식한 의원님들의 추태로 보인다.
더구나 손님인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 축하연설을 하는데 그것이 싫든 좋든, 좋은 말에는 박수를 치고 듣기 거북한 말에는 침묵을 지켜주는 것이 집주인인 의원들의 도리이다. 그런데 일부 ‘싸가지 없는’ 의원님들이 “박수를 뭐하러 치노”(특히 경상도 대구 서구을 출신의 이해봉의 발언), 그리고 대통령의 발언에 조소를 보내는 의원님(박계동, 김성조)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 ‘싸가지’다. 이들은 입헌의회제도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의원들이다.
이제는 우리사회의 모든 것이 변신할 때다. 역사발전에서 변신은 필연이다. 변신이 없으면 미래를 향해 갈 수 없다. 변신은 보다 이상적 세계로 나아가려는 몸부림이다. 그래서 변신이 없으면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다. 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국사회 구성원들은 그 변신을 바랬다. 그래서 초선의원을 60%나 뽑아 주었고, 젊은 연령층으로 교체하였다.
그런데도 국회가 아직도 변신할 줄 모른다면 우리 정치의 미래는 어둡다. 요즈음 아이들도 변신하지 않는 장난감은 가지려 하지 않는다. 이렇게 일찍이 변신문화에 젖어있는 미래세대에게 아직도 변신할 줄 모르는 ‘싸가지 없는’ 의원님이 있다니 한심한 노릇이다.
이번 국회개원식에서 ‘싸가지 없는’ 몇몇 의원님의 명단을 보니 16대와 그전의 국회에서도 ‘싸가지’로 놀았던 의원님들이 대부분이다. 이 변신할 줄 모르는 ‘싸가지’들 때문에 17대의 젊고 초선인 선량한 의원들이 오염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다.
우리 속담에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국회의원이 되고부터 지금까지 변신하지 못하고 계속 ‘싸가지’로 나오는 의원님들이 있다. 이 때문에 우리는 국민소환제도를 서둘러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