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아침 일어나자 마자 일기 예보를 들어보니 강수량5mm 란 기상대 예보를 듣고 간산을 강행 하기로 마음먹고
박정희 체육광으로 출발 하였다.
08시30분 동료7명과 함께 세종대왕 태실이 있는 성주로 향했다.
성주 세종대왕 태실에 도착하니 세종대왕님이 우리일행을 산듯한 날씨로 우리들을 반겨 주셨다.
한양의 좋은 명당을 두고 성주까지 왔서 태실을 조성했을까하는 마음이 앞셨다.
성주 세종대왕 왕자 태실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의 태봉에 자리한 실은 조선 세종 20년에서 24년(1438~1442) 사이에
조성된 전국 최대 규모의 태실지로 수양대군을 비롯한 세종의 18왕자와 단종의 태 등 19기의
태실이 안장되어 있다. 각각 태비(胎碑)를 하나씩 앞세운 태무덤이 이 앞줄에 11기, 뒷줄에 8기가
늘어서 있다.
처음에는 20여기의 태실을 두었으나 수양대군이 단종을 축출한 뒤 이를 반대한 수양의 동복동생
금성대군, 배다른 한남군, 영풍군, 그 사건에 무고로 연좌된 화의군 및 계유정란에 죽은 동복동생
안평대군의 태ㅔ와 장태비등은 세조 3년(1457) 산아래로 파던져 졌으나, 1975년 흩어진
기단석을 찾아 복원했다. 줄의 첫 번째에 자리잡은 수양대군의 태무덤 앞에는 귀부와 이수까지
갖춘 태비가 하나 더 세워져 있다. 훗날 임금에 올랐기 때문이다. 세조가 왕위에 등극한 뒤
예조판서 홍윤성은 세조의 태가 이곳에 묻혀 있음을 알리고 비를 세웠는데, 세조의 잘못을
미워한 백성들이 비석에 오물을 퍼붓고 돌로 찍고 갈아서 거의 글자를 알아볼 수 없게 닳아서
옛 자취를 대변하고 있다. 화강암으로 만든 19기의 태실은 조선왕조 태실의 의궤에 따랐고
지상에 석실을 만들고 그 속에 백자로 된 태호가 들어있고, 그 위에 기단석, 중동성, 개첨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태봉 근처에는 신라 때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선석사가 있는데, 태실이
조성된 뒤로는 태실을 지키는 절이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