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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Ⅰ> 뉴라이트 들여다보기 ①,②,③,④ | ||||
《통일뉴스》는 최근 등장한 뉴라이트에 대해 자세히 조망하는 '<뉴라이트 기획Ⅰ> 뉴라이트 들여다보기'와 <뉴라이트 기획Ⅱ> 내가 본 뉴라이트', '<뉴라이트 기획Ⅲ> 현장취재, 뉴라이트'를 연속해서 싣는다. 아직 뉴라이트 스스로 자기 정립이 덜 되었고, 이 분야에 대한 선행 연구나 취재가 많지 않아 미흡한 점도 없지 않겠지만 현 시점에서 가능한 한도에서 총정리한다는 입장에서 아래와 같이 첫 번째 기획 연재를 먼저 시작한다.
1. 뉴라이트, 어떻게 볼 것인가?(김치관, 통일뉴스 편집국장)
김치관 기자 2006-05-08
뉴라이트전국연합 이영해 운영위원장은 "국내에서 뉴라이트라는 용어는 작년(2004년) 후반에 동아일보에서 보수라는 말의 어감이 너무 좋지 않아서 '신보수'라고 해야 소용이 없을 것 같고 해서 생각해낸 이름이 뉴라이트"라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뉴라이트'는 기존 우익(수구보수)세력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의도에서 사상과 이론, 인물과 조직을 새로이 재정비해 등장한 우익(수구보수)세력의 사회정치적 운동에 대해 수구언론이 붙여준 명칭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전환의 계기, 6.15공동선언과 2002 반미촛불 우익에 속하는 뉴라이트라는 새로운 집단이 우리 사회에 등장하게 된 것은 특기할만한 현상이다. 1987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우익세력은 굳이 자신을 정당화하거나 변호할 필요가 없는 확고한 집권 기득권세력으로서의 지위를 누려왔기 때문이다. 저항세력에 대해서는 단지 '좌익'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나 87년 이후 우리 사회에서 민주화운동, 통일운동이 본격화되면서 요지부동이던 우익세력의 역사적 정통성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대통령 직선이라는 자신들의 기득권마저 흔들릴 수 있는 정치지형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그들이 좌익이라고 딱지 붙인 세력은 민주화운동세력으로 역사적 전통성을 얻었고 우익세력은 수구보수세력으로 낙인찍혔다. 심지어 '우익은 죽었는가'라는 외침이 우익진영 내부에서 터져나오기까지 했다. 그러나 87년과 92년 대통령선거에서 여권 주자인 노태우, 김영삼의 집권으로 수구보수세력은 비록 나름의 변신을 거듭하긴 했지만 맥락이 끊기지 않고 주류세력으로서의 지위를 이어왔다. 우리 사회에서 수구보수세력의 입지가 결정적으로 뒤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98년 대선에서 김대중이 승리하면서부터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대북 햇볕정책과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 발표는 반공반북을 명분으로 배타적 지위를 누려왔던 기존 수구보수세력에게 결정타가 되었다. 이후 위기의식을 느낀 수구보수세력은 격렬한 반북시위를 벌이며 햇볕정책에 반대해 나서기도 했지만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바라는 대세를 뒤집을 수는 없었다. 이어 2002년 두 여중생의 죽음을 계기로 한 반미 촛불시위와 2002년 노무현 정부의 탄생, 뒤이은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과 탄핵반대 시위는 이제 수구보수세력이 더 이상 우리 사회의 주류세력(메인 스트림)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거듭 확인시켜줬다. 또한 시청광장에 모여 인공기를 소각하는 등 격렬한 친미반북 대규모 집회시위 방식으로는 역사의 도도한 물결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수구보수세력은 위기의식을 넘어 2007년 대선의 기회마저 놓치게 되면 역사 속에 묻히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사존망의 기로에 서게 돼 새로운 해법찾기에 발벗고 나서게 된 것으로 보인다. '주사파 출신 전향 386'과 '시민운동가 출신 전향 목사'의 악수 1998년과 2002년 대선에서의 패배를 경험한 수구보수세력은 사상이론의 빈곤과 참신한 인물의 부재를 절감했고, 시민운동조직과 인터넷매체라는 새로운 시대적 양 날개를 구비하고 있지 못한 사실을 깨달았다. 특히 기존의 수구보수적 이미지를 가진 정당만으로는 2007년 대선에서도 필패가 예견되자 이들은 발빠르게 대응에 나서고 있으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대응책이 정치권 외곽에 뉴라이트 조직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뉴라이트 조직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기존 정치권에서 때묻지 않은 새로운 인물들이 필요했고 이러한 수요에 부응해 나선 세력은 이른바 '주사파 출신 전향 386'과 '시민운동가 출신 전향 개신교 목사'였다. 먼저 '전향 386' 그룹을 살펴보면 일찍이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함께 시작된 80년대 운동권 일부의 사상전향은 1996년 민족민주혁명당의 내부 분화를 거치면서 1999년 북한민주화네트워크 결성으로 이어졌다. 강철 김영환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전향 386'들은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와 주체사상을 버리고 북한민주화를 외치며 '공동체주의'를 표방해 나섰고, '시대정신'이라는 기관지를 발행했다. 뿐만 아니라 탈북한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비서와도 손을 잡았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가 들어서면서 386세대 대표주자들이 국회와 청와대 등 정계에 진출하는 동안 이들은 '전향 주사파'라는 핸디캡을 극복하지 못하고 외곽에서 시대의 추세인 대북 화해정책을 정면으로 거부하며 '반북'노선을 견지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전향 386들은 노무현 집권과 촛불시위, 탄핵반대 투쟁을 지켜보면서 기존의 공동체주의를 버리고 신지호, 류근일 등 다양한 세력들과 손잡고 2004년 '자유주의'를 기치로 자유주의연대(2004. 11. 23)로 집결하기 시작했으며, 교과서포럼, 뉴라이트씽크넷, 의료와 사회포럼, 자유네티즌협의회폴리젠,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 한국기독교개혁운동 등과 연대해 뉴라이트네트워크(2005.10.18)를 구축함으로써 뉴라이트의 일익을 자처하기에 이른다. 한편 경실련 설립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서경석 목사와 두레공동체 설립자인 김진홍 목사 등 개신교 계통의 합법적 시민운동을 강조하다 돌아선 목사들은 기존 운동권을 비판하며 '공동체자유주의'를 내세우며 뉴라이트 관련 지역조직과 직능, 계층조직을 아우르는 뉴라이트전국연합(2005. 11. 7)으로 결집하는 모양새를 취하게 된다. 뉴라이트전국연합에는 각계의 수구보수 성향의 인사들이 망라돼 있으며, 다양한 지역조직과 뉴라이트교사연합(2006.1.23) 등의 직능조직, 뉴라이트 대학연합과 뉴라이트 청년연합(2005.12.19) 등 계층조직, 일본, 베트남, 미국, 호주 등의 해외지부를 두고 있다. 2003년 중도 시민단체를 표방하고 나선 바른사회시민연대는 진보진영의 참여연대를 모방해 바른정치운동본부, 법률구조지원센터, 과거사 진상규명모니터링단 등 산하 활동기구를 두고 있으며, 사회정치적 사안들에 대해 성명을 발표하고 기자회견을 개최하는 등 우파단체로서는 드물게 시민단체로서의 영역을 쌓아가고 있다. 이외에도 뉴라이트 계열은 학계와 교사, 문화계, 사법계, 대학가 등 각 영역에도 다양한 조직을 구축하는 과정에 있다. 흘러간 레퍼토리, 반북 더하기 신자유주의 현재 가장 대표적인 뉴라이트 조직이라 할 수 있는 '뉴라이트네트워크'와 '뉴라이트전국연합'은 공통적으로 '공동체자유주의' 혹은 '자유주의'를 사상적 기반으로 표방하고 있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본축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각 분야의 정책을 살펴보면 정치에 있어서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거세된 극단적 자유주의에 치우쳐 있으며, 경제에 있어서 국가개입 최소화와 시장자유 극대화, 대외개방 강조, 교육자율화와 법치주의 강조 등 대체로 '신자유주의' 정책기조를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으며, 최종 목표로 조국의 선진(국)화를 내걸고 있다. 또 하나의 주요한 주장은 북한 인권과 민주화를 내세우고 있는 점이다. 이들은 대체로 북한 정권과 인민을 분리해서 북한 인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북한 정권을 민주화(김정일 정권 타도)하겠다며 극단적 반북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북 화해정책에 대해서도 강한 반감을 표출하고 있다. 결국 이들은 박세일로 대표되는 '공동체자유주의', 그러나 사실상 신자유주의와 강철 김영환으로 대표되는 '북한 민주화론'을 결합해 '반북 신자유주의'를 공통적으로 내세우고 있으며, 궁극적 기치로 조국 선진(국)화를 치켜들고 있다. 결국 기존 수구보수세력의 논리와 하등 차이가 없는 '흘러간 레퍼토리'를 달라진 얼굴들을 내세워 리메이크해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들은 성향적으로 '원리주의'에 가까워 '신(New)'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정도로 '강경한 반북, 극단적 신자유주의'에 경사돼 있다. 한나라당의 행정수도 이전과 사학법 개정 반대투쟁,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을 보면 기존의 정치권보다 오히려 내용적으로는 더 치우친 극우적 입장임을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학계 일각이 '개발론'적 관점에서 근현대사를 재해석하며 최근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을 발간하는가 하면 교과서포럼을 통해 중고교 역사교과서에 메스를 들이대고 있다. 또한 자유기업원, 전경련, 삼성경제연구소 등 재계 일각에서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이론을 체계화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뉴라이트 조직의 재정적 후견 역할을 맡고 있다. 조중동이 끌고 수구인터넷신문이 밀고 이처럼 기존 정치권과는 다른 '전향 386'과 '전향 목사'들을 앞세우고 '반북 신자유주의'로 논리무장한 뉴라이트 세력은 기존 조.중.동으로 불리우는 수구언론의 집중적 지원을 받으며 등장하고 있다. 뉴라이트 주요 임원들이 기성 수구언론의 필진으로 대거 활약하고 있고, 뉴라이트 조직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뉴라이트 조직을 뒤에서 실질적으로 끌어가고 있는 것은 조선일보 등 수구언론이라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또한 기존 진보적 인터넷신문들에 대항해 초기의 '독립신문'같은 과격한(?) 행태를 지양하며 '데일리안'(2004.4), '프런티어타임스'(2004.11), '뉴데일리안'(2005.11) 등 수구보수적 인터넷신문들이 잇달아 창간돼 이들의 논리를 확산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북한민주화네트워크는 직접 '데일리NK'(2004.12)를 창간해 반북적 시각을 여과없이 드러내고 있으며, 자유주의연대는 '뉴라이트닷컴'(2005.4)을 개설하는 등 뉴라이트 각 조직들이 인터넷 홈페이지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목표는 2007년 대선과 그 이후 뉴라이트전국연합의 김진홍 상임대표는 자신들의 단점에 대해 "첫째, 우파는 단결되지 않는다. 둘째, 우파는 희생하려 하지 않고 누리기에만 열심이다. 그래서 우파운동에 돈을 내지 않고 좌파 욕만 열심히 하고 있다. 셋째, 좌파에는 수만 명의 훈련된 프로 운동가가 있지만 우파에는 아마추어 운동가만 있다 넷째, 우파에는 전략이 부재하다"고 평가했다.(중앙일보 2006.3.8) 그의 진단처럼 아직 뉴라이트의 조직이나 이론과 정책이 정연한 체계를 갖춘 단계라기 보다는 초기 단계를 거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급속하게 조직을 확대하며 각 영역으로 확장해가고 있는 추세에 있는 점도 제대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들은 공공연히 2007년 대선에서 정권 '탈환'을 다짐하고 있으며, 한나라당과 극우세력과의 3각 연대를 예고하고 있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의 행사장에 한나라당의 유력 정치인들이 줄을 잇고 있으며, 수구언론과 인터넷매체들의 이를 집중 보도하고 있다. 자유주의연대 신지호 대표는 "뉴라이트는 뉴라이트대로, 정통우파운동을 해오던 분들은 해오던 분들대로 내실을 갖추고 실력을 키우고 각각 당당하게 참여를 해서 한나라당에 요구할 것은 요구하는 겁니다. 그리고 만약에 거기서 연합전선이 승리한다면 한나라당은 사라지고 새로운 정당이 탄생하겠죠"라고 구상의 일각을 밝혔다.(한국인터넷언론협회 인터뷰, 2006.2.1) 다만 방법론에 있어서 뉴라이트전국연합이 현단계부터 한나라당과 보다 공개적인 연대를 과시하고 있는데 반해 뉴라이트네트워크 측은 한나라당과의 연대는 대선 직전까지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보다 고도한 전술'이 효과적이라는 입장에 서있을 뿐이다. 아직까지는 뉴라이트의 성장, 발전의 토대가 주요하게는 노무현 정부의 미숙함이나 진보세력의 대안제시 능력의 부족에 근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자체 선거가 끝나고 나면 급속하게 정국이 대선을 향해 치닫게 될 것이고, 뉴라이트 세력 역시 보수성향의 대권 후보와 어떤 형태로든 결합이 불가피할 것이다. 따라서 2007년 대선 결과가 우리 사회의 지형을 바꾸어놓을 것임은 물론 뉴라이트의 명암도 갈라놓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뉴라이트를 단순히 2007년 대선용으로 만 보아 넘겨서는 안 될 요소도 있다. 미국의 네오콘(신보수주의) 세력과 일맥상통할 수 있는 뉴라이트 역시 우리사회의 수구보수진영의 일각을 담당해 장기전에 대비한 진지를 구축하고 지속적인 영향력 행사를 시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네오콘 일각에서 나온 "부시 2기 행정부가 친북적 (노무현) 정권 대신 한국 국민을 상대로 직접 대화하고 한국의 국내 정치세력과 연대해 한국을 과거의 동맹으로 되돌려야 한다"(위클리 스탠더드 2004.11.22)는 주장은 유념해 보아야할 대목임에 틀림없다. 실제로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등 반북단체들이 미국 CIA의 외곽조직이라 할 수 있는 NED(민주주의를 위한 전국 재단)의 기금을 지원받는가 하면 북한인권국제대회에도 NED가 거액을 지원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주시해야 할 것이다.
② 뉴라이트 등장의 사회역사적 배경 임영태 (통일뉴스 전문기자)
뉴라이트의 핵심에는 운동권 출신의 '전향386'과 '시민운동가 출신의 전향 개신교 목사들'이 있다. 이들 뉴라이트들이 자신의 사상을 선회하여 지금에 이르게 되는 바탕에는 1990년대 이후의 국내외적인 사회정치적 사건들이 위치하고 있다. 소련과 동구권의 현실사회주의 붕괴와 미국 중심으로의 세계 질서 재편, 전지구적 자본주의 확산과 신자유주의 발호, 북한의 식량난과 경제위기 및 대량 탈북 사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화해 정책과 우익세력들의 위기감 등이 그것이다. 이제 이런 문제들을 중심으로 한국의 신우익 세력이 등장하게 되는 배경을 추적해 보자. 1989년 11월 유럽에서 동서 냉전의 상징이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그로부터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1990년 10월 3일 동독이 서독에 흡수통일된 가운데 독일연방공화국이 새롭게 탄생하였다. 그리고 1991년 1월 17일 미국과 이라크 사이에 걸프전이 터졌다. 이라크 군은 전쟁 개시 4일만에 쿠웨이트에서 물러났고, 미국은 완벽하게 승리하였다. 소련이 사라진 조건에서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서의 미국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 순간이었다. 역사적 격변은 계속되었다. 1991년 12월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소련)의 대통령 고르바초프가 사임하고 소연방이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소련 사회주의의 슬픈 종말이었다. 1990년대 초반, 현실사회주의는 자기모순의 무거운 짐을 견디지 못한 채 끝내 무너지고 말았다. 미소 중심의 냉전체제가 해체되면서 세계사는 새로운 전환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두 개의 체제간 대립이 소멸된 자리에 전지구적 자본주의가 자리 잡았다. 제도사회주의, 현실사회주의의 실패로 진보운동이 위기를 맞게 되고, 보수화 물결이 세계를 휩쓸기 시작하였다. 사회주의의 견제력이 상실되면서 자본주의의 거침없는 폭주가 시작되었다. 미소 양극의 냉전체제가 사라진 자리를 미국의 일방주의가 차고 앉았고, 자본의 요구가 극대화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미국의 일극주의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지난 세기 사회주의와의 대결 속에서 자본주의가 이룩한 여러 성과들-교육, 의료, 복지, 노동, 공공서비스 등에서 이룬 건강하고 진보적인 성과들-이 거침없이 공격받았고, 평등.진보.사회주의와 같은 개념들이 역사의 낡은 유물처럼 폄하되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는 끝났다'는 식의 자본주의의 영원성이 찬양되는 가운데,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환상과 신화가 조직적으로 유포되었다. 미국의 힘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경배도 이어졌다. 이 같은 세계사적인 격변과 충격은 한국 사회에서 뉴라이트라는 신우익 세력이 배태되는 토양이 되었다. 이탈자 대부분은 생업전선으로 돌아갔고, 그 중 일부는 신자유주의자로의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하였다. 그뒤 이들은 진보운동에 대한 거침없는 독설과 증오를 드러냈다. 이들 1차 전향는 PD(민중민주주의)계열이 대부분이었는데 뉴라이트의 중심 인물 가운데도 일부가 활동하고 있다. 김영삼 정권의 등장과 함께 자유주의 개혁이 진행되면서 민중진영의 운동력과 주도력이 현저히 약화되었다. 동시에 사회 전반에 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확산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었다. 김영삼 정부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자유주의 시장경제 이데올로기의 확산, 경제권력(삼성으로 대표되는 국내 거대자본과 국제자본)의 영향력 확대에 크게 기여하였다. 물론 자유기업원과 전경련, 삼성경제연구소 등의 활약상도 컸다. 현재 뉴라이트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다고 평가되는 '공동체자유주의'의 대변자 박세일은 김영삼 정부에서 정책 수석을 지내면서 그 역할을 충실히 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뉴라이트의 사상적 토대가 되는 자유주의(자유주의, 신자유주의, 공동체자유주의 등)가 사회 전반에 광범위하게 유포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무차별적 수용의 귀결점은 IMF였다. 그리고 IMF는 다시 미국식 경제 시스템의 확산과 영향력 확대라는 악순환을 낳았다. 북한의 경제위기와 대량 탈북자 사태 사회주의권 붕괴는 세계 질서를 근본적으로 뒤바꿀 정도로 엄청난 사건이었지만, 그것이 한국 사회운동에 미친 영향은 당장에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그것은 분단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전개되는 한국 사회운동의 특성 때문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충격이 가해졌다. 북한의 식량난과 경제위기, 그리고 대량 탈북자의 발생이었다. 이와 함께 '북한 붕괴론'이 기정사실처럼 유포되고,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크게 확산되었다. 한편에서는 '곤경에 처한 북을 도와야 한다'는 민족적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하였지만, 북에 대한 이미지는 '가난과 굶주림'으로 고착화되기 시작하였다. 이런 상황은 진보운동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연결되었고, 사회적으로 보수화의 기반으로 작용하였다. 사회주의(북)에 대한 자본주의(남)의 승리이데올로기가 널리 유포되었으며, 그것은 다시 시장만능주의와 극단적 (신)자유주의가 확대될 수 있는 조건으로 작용하였다. 무비판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수용한 결과 IMF라는 폭탄을 맞았지만, 한국은 다시 미국(IMF)의 요구대로 '신자유주의 개혁'을 무조건 수용함으로써 시장주의이데올로기는 더욱 확산되었다. 소련의 붕괴가 PD계열에 타격을 주었다면, 북한의 경제위기와 대량 탈북자 사태는 NL(민족해방)계열에 타격을 주었다. 이 과정에서 '주사파 출신의 전향386'이 탄생하는데,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출신의 내부 분화 과정에서 전향한 인물들이 주축을 이룬다. 이들의 전향은 그야말로 극에서 극으로의 전환이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 '강철 김영환'이 민혁당의 해체 과정에서 한 다음과 같은 말이 그런 상황을 극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북한 정권은 인민의 편에 서 있는 게 아니라 인민의 반대편에 있다. 우리는 혁명가이므로 인민의 편에 서서 싸워야 한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북한 혁명이다. 인민을 굶주리게 하고 억압하는 김정일 정권을 타도하려 한다."(우태영, 『82들의 혁명놀음』, 219쪽.) 이들의 전환을 쉽게 폄하할 수는 없지만, 이들의 변환에서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이 가진 생명력을 새삼 실감할 수 있음은 사실이다. 이들 '주사파에서 전향한 386그룹'은 '푸른사람들'이란 조직을 만들고, '시대정신'이란 기관지를 내면서 반북 이념을 전파하는 한편, 북한민주화와 탈북자 지원 활동을 전개한다. 이들은 전 북한 노동당 비서 황장엽과도 손을 잡았고, 한동안 '진정한 주체사상', '공동체주의'를 표방하기도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자유주의'로 자신들의 사상을 정리한다. 전향 386그룹은 결국 '북한 민주화론'에서 더 나아가 사고의 패러다임 전체를 완전히 뒤바꾸게 되는 것이다. 이들은 과거 자신들의 주장과 한국사회의 진보적 담론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자유주의 사상으로의 귀착하여 신자유주의 세계화, 미국의 일극적 세계 질서와 이라크 침략, 한미동맹 강화, 영어공용화론, 흡수통일 등을 일방적으로 옹호하게 된다. 그들의 사고 방식과 사상은 미국의 패권적 세계관을 완벽하게 수용한 것으로써 한국의 기존 우익들의 세계관과 완전한 합일의 경지게 이르게 된다. 1998년 김대중 정부의 탄생으로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형식적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완성단계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의 탄생이 갖는 더 큰 중요성은 남북 사이에 대결의 시대를 끝내고 화해협력과 통일의 시대를 열었다는 점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과 현대 정주영 명예회장 등 민간의 노력이 결합되어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고, 6.15 공동선언이 발표됨으로써 한반도는 새로운 시대, 통일시대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6.15선언과 통일시대의 개막은 그동안 오직 반공에 목매고 있던 수구 기득권 세력에게는 엄청난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 대한민국은 '피로 물든 반공 투쟁을 통해' 탄생했으며, 반세기 동안 '반공을 제1의 국시로 삼는' '반공국가'로 기능해왔다. 그런데 6.15선언은 이 같은 '반공국가' 대한민국의 새로운 전환을 의미하였다. 더 이상 국가권력 자체가 반공의 도구로 작동하는 시대는 끝났으며, 따라서 '반공국가'의 해체가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이제 한국은 냉전시대의 비정상적인 '반공국가'에서 남북화해 협력 시대에 걸맞는, 사상의 다양성을 포용하는 시민적(또는 사회적) 민주주의 국가로 거듭 태어나야 하는 것이다. 6.15정상회담으로 남북관계, 나아가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의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하게 되자 수구 기득권 세력이 반발하기 시작했다. 한국내 수구세력의 반발은 2001년 미국에서 부시 정부의 등장과 밀접하게 맞물려 돌아갔으며, 김대중 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를 계기로 조직화되는 양상을 나타냈다. 부시 정권의 등장으로 북미관계가 냉각되고 2차 북핵위기로 남북관계에 제동이 걸리자 국내 수구 세력의 본격적인 행보가 시작되었다. 이들의 행보는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한 조.중.동 등의 반발과 맞물리면서 한나라당을 필두로 장외집회를 개최하는 등 조직화 양상을 띠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2002년 대선과 맞물려 김대중 정부의 화해협력 정책에 대한 보수 세력의 전방위적인 압박과 공격이 전개되었다. 특히 미 의회조사국이 진원지가 된 정상회담의 비밀자금 제공설이 유포되면서 한나라당과 보수언론 등 수구세력의 총공세가 벌어졌으며, 결국 이 문제는 노무현 정부에서 대북특검으로 귀착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조건에서도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이 당선되는 이변이 연출되었다. 그것은 두 중학생(효선.미선)의 사망 사건을 계기로 불기 시작한 반미.탈미 정서의 대중적 확산과 촛불 시위, 새로운 감각의 젊은층의 등장과 인터넷의 활약, 2002년 월드컵 열기와 한국인의 자부심, 역동적인 문화 정서의 결합 등이 어우러져 가능했다. 결국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 수구 세력은 다시 뼈아픈 패배를 맛보아야 했다. 김대중 정부의 화해협력 정책과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다시 노무현 정부의 등장으로 보수세력의 위기감은 크게 확산되었다. 수구기득권.극우반공.반공보수 세력을 망라한 보수세력은 두 번의 정권교체로 권력으로부터의 소외감이 매우 커졌으며, 반세기 동안 지속되어온 '반공국가'가 해체되기 시작했다는 데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위기의식을 갖게 되었다. 그 때문에 보수세력은 권력을 탈취하기 위해 무리하게 의회쿠데타(대통령 탄핵)를 감행하지만, 오히려 역풍을 맞아 심각한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된다. 보수우익세력의 위기의식은 대중 동원 방식의 극단적인 행동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2003년 보수우익세력은 '반핵 반김 국민행동본부'의 주도 아래 대규모 군중을 동원하여 '3.1절 국민대회', '6.25 반핵반김 한미동맹 강화 6.25국민대회', '건국 55주년 8.15 국민대회' 등을 감행한다. 여기에는 기존의 극우세력과 더불어 한국 보수.우익 세력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보수 기독교 세력이 대형 교회를 중심으로 조직 동원력으로 결합한다. 하지만 서울 시청앞 광장에서 성조기를 휘날리며 인공기를 불태우는 이들의 생경하고 광적인 행동에 국민들은 눈살을 찌푸리게 되고, 그 때문에 '8.15 국민대회'를 계기로 우익 내부에서도 행동 패턴을 두고 분화가 일어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우익 내부에서는 '자기반성'(?)과 전술상 변화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그것을 대변한다는 취지 아래 뉴라이트가 등장한다. 더 이상 과거 수구 우익과 같은 방식으로는 대중적인 호응을 얻을 수 없다는 판단 아래, 김영환, 신지호, 홍진표 등의 '전향386'과 서경석, 김진홍 등의 '시민운동에서 돌아선 개신교 목사들'과 식민지반봉건론.포스트모던에서 '중진자본주의론'.'문명사관'으로 전향한 이영훈 등의 교수들이 결합되어 속속 조직이 결성된다. 이들 조직은 2004년부터 본격적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자유주의연대(2004.11.23), 뉴라이트 네트워크(2005.10.18), 뉴라이트 전국연합(2005.11.7)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미국의 세계 전략과 국제적 연대 또는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 뉴라이트란 이름표를 달고 나온 신우익은 그 출발점과 존재 양상, 활동 방식 등에서 차이가 있는 등 일률적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그들 사이의 이념적 공통점은 분명하게 발견된다. 그 주된 이념적 카테고리는 '반북+신자유주의'이며 궁극적 지향점은 '선진(문명)화된 조국 건설'이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북한의 정권 교체 및 민주화, 남한에 의한 자유주의 방식의 흡수통합, 한미동맹 강화(그 주장의 근거가 주로 과거에는 북한위협론이었다면 현재는 중국위협론이라는 차이가 있음), 작은 정부 큰 시장, 개인의 자유와 사유재산권의 절대화, 민중운동 등 대중과 사회에 대한 엄격한 법치주의 적용, 극단적 경쟁논리와 대외 경제 개방 논리, 반노동 친자본에 선 시장주의, 민중주의를 배격한 엘리트주의와 자유주의 등등으로 표현될 수 있다. 이들의 주장은 미국의 일극적 패권에 기초한 세계 질서 및 신자유주의 세계화 논리와 정확히 일치한다. 결국 이것은 힘과 강자에 대한 숭배이며, 힘에 의한 질서에 대한 일방적 추종으로 미국의 하위동맹자로서의 행동 패턴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전향 386그룹', '시민운동 출신의 우파 개신교 목사들', 관료출신의 신자유주의자가 결합한 신우익이 등장하는 바탕에는 국내 정세뿐만 아니라 네오콘이 장악한 부시 정권의 등장이라는 국제정치 상황이 존재하고 있다. 간단히 도식화 한다면 촛불 시위로 대변되는 반미정서의 대중화, 남북 화해협력 정책과 탈미 지향성을 내포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등장은 미국에게 새로운 '민간 파트너'의 존재를 필요케 하였고, 여기에 호응하여 탄생한 것이 뉴라이트라고 볼 수 있다. 이들 뉴라이트는 등장 배경 뿐만 아니라 활동 배경에도 미국이 존재하고 있다. 뉴라이트는 NED(민주주의를 위한 전국재단)의 자금지원을 받아 북한 인권대회를 개최하였으며, 나아가 미국, 일본의 반북.보수우익 단체들과 연대하여 북한을 압박하거나 한국 정부에 압력을 가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나아가 이들은 미국의 일극적 패권주의를 옹호하는 다양한 논리를 거침없이 설파하는가 하면, 자유기업원, 전경련, 삼성경제연구소 등 재계 일각의 신자유주의 경제논리를 그대로 전파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뉴라이트로 지칭되는 신우익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반공국가'에 종속된 하수인으로서 활동하던 기존의 기회주의적 수구 우익과는 달리, 운동적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해가는 '소신 우익', '이념 우익'을 표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들 뉴라이트가 주창하고 있는 논리나 주장은 본질적으로 '흘러간 레파토리'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이들의 활동은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전술 구사 또한 상당히 세련되었다는 점에 유념해야 할 것이다. 아마도 이들 뉴라이트의 단기적 목표는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수구 언론-전통반공세력-기타 다양한 반개혁.반진보 세력과 연대하여 정권을 탈취하는 것이 될 것이지만, 보다 장기적으로는 자신의 이념적 지향과 목표대로 한국 사회를 개조해 가고자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뉴라이트를 미국과 일본의 네오콘(또는 신우익)과 대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③ 뉴라이트, 그들은 누구인가? 김치관 기자 2006-05-15
주사파 전향386, 김영환과 '시대정신 그룹' <북한인권운동과 함께 한국사회의 전반적인 사상운동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통절히 느끼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한때 주사파의 '강철'로 하여금 뉴라이트운동에 뛰어들게 만들고 지난주에 출범한 뉴라이트재단에 적극 참여하게 된 이유이다.> 주사파(주체사상파)의 원조격인 '강철' 김영환이 5월 3일자 조선일보에 시론 <다시 '5월의 노래' 부르며> 를 통해 마침내 뉴라이트 운동가로 공식 데뷔했다. 99년 10월 4일자 '반성문' 전문이 조선일보에 실린지 7년 만에 역시 조선일보를 통해서다. 그는 99년 '반성문'에서 운동권 전반에 걸쳐 친북적인 분위기를 확산시킨 것 북한의 대남전략에 말려들었다는 것 북한 주민들의 인권문제에 대한 남한 사회 및 국제 사회의 관심이 늦어지도록 한 것이라고 반성하고 "만약 앞으로 제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북한의 비참한 인권실상을 국내외에 알려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지원을 이끌어내며 좀 더 나아가서 김정일체제를 무너뜨리고 북한을 민주화시키기 위해 모든 힘을 바치고 싶습니다"라고 밝혔다. 물론 그의 사상전향은 이보다 빠른 95년 4월 월간 말 지 인터뷰를 통해 사실상 공개된 바 있었다. 7년이 지나 김영환은 다시 '북한인권운동'과 '한국사회의 전반적인 사상운동'을 주창하며 '뉴라이트운동에 뛰어들게'되었다고 공개 선언했으며, 지난 4월 26일 뉴라이트재단 설립추진 기자회견장에 공식 참여해 카메라 프래쉬를 받았다. 그 전부터 북한민주화네트워크의 기관지인 격월간 시대정신 이나 인터넷신문 데일리NK 에 기고하는 등 공개적인 문필활동을 했지만 뉴라이트 운동가로서 자신을 커밍아웃하고 공개적인 장소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나라당과 조중동, 그리고 자유총연맹 등으로 대표되는 기존 수구보수세력과의 차별성을 선언하며 등장한 뉴라이트의 핵심에 김영환을 필두로 하는 '전향한 주사파 386'이 위치하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이번 김영환의 커밍아웃은 그간 배후에 머물러 있던 그가 보다 공개적인 활동을 선언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서울대 82학번인 김영환은 주체사상을 최초로 대중적으로 소개하고 구학련(구국학생연맹), 반제청년동맹, 민혁당(민족민주혁명당) 등 주요한 주사파 조직을 사실상 지도했을 뿐만 아니라 사상 전향을 거친 뒤에도 꾸준히 이른바 '북한혁명'(북한민주화)을 주창해온 핵심인물이다. 김영환과 오랫동안 궤적을 같이해온 조혁, 한기홍, 홍진표 등은 '푸른사람들'(1995년)이라는 공개단체를 거쳐 '북한민주화네트워크'(1999년)를 결성하고 격월간《시대정신》(1998년)이라는 기관지를 통해 자신들의 바뀐 사상을 공표하고 실천해왔다. 《시대정신》은 한기홍을 발행인으로 김영환, 홍진표, 이숭규, 조혁 등이 편집위원이나 주요 필진으로 활약했으며, 여기에 황장엽이 주요 필진으로 가세했고 손광주(통일정책연구소 연구위원), 곽대중(전 전남대총학생회장), 이춘근(자유기업원 부원장), 복거일(소설가) 등도 글을 실었다. 이들은 스스로를 '시대정신 그룹'이라고 자칭할 정도로 《시대정신》은 이들을 묶어주고 이론적 논의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홍진표, 『지성과 반(反)지성』) '시대정신 그룹'의 실천조직에 해당하는 북한민주화네트워크는 조혁을 이사장으로 출범해 이후 황장엽이 상임고문을, 한기홍이 대표(운영위원장)를 맡고 있다. 또한 북한민주화네트워크가 운영하는 인터넷신문 'The DailyNK'는 동아일보 출신의 손광주가 편집인이다. 김영환을 필두로 하는 전향한 주사파 386그룹의 대표격인 '시대정신 그룹'은 이후 신지호, 류근일 등과 손잡고 '자유주의연대'라는 보다 큰 틀의 조직을 만들었으며, 결국 뉴라이트 조직들의 연대체인 '뉴라이트네트워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한기홍은 연세대 81학번으로 '푸른사람들' 시절부터 김영환과 관계를 맺고 《시대정신》발행인이자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로서 '시대정신 그룹'의 간판 역할을 맡고 있다. 홍진표는 서울대 82학번으로 전민련과 범민련, 민족회의, 전국회의 등 전통 재야단체에서 통일문제를 담당했고 김영환과 사상적 편력을 같이해왔다. 현재는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정책실장과 자유주의연대 집행위원장을 담당하는 등 뉴라이트 진영의 실무 책임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최근 류근일 조선일보 주필과 대담 형식으로 『지성과 반지성의 대화』라는 책을 내고 자신의 사상적 편력과 생각들을 자세히 털어놓았다. 이들 386세대보다 후배그룹으로는 최홍재(고려대 87학번) 자유주의연대 조직국장, '시대정신 그룹'의 영향권으로 포섭된 전북지역 학생운동권 출신인 허현준(전북대 88학번) 자유주의연대 청년국장, 이광백(원광대 89학번)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원과 곽대중(전남대 92학번) '데일리엔케이' 논설위원 등이 있다. 이외에도 뉴라이트 조직에 직접 이름을 올리고 있지는 않지만 푸른사람들 초대회장이었던 구해우는 고려대 84학번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적도 있고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장관이 몸담았던 '미래전략연구원'을 이끌었으나 최근에는 '바른 한미FTA실현을 위한 국민운동본부'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반미청년회 의장이었던 고려대 82학번 일명 '조국' 조혁은 '푸른사람들'과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초대 대표를 맡았으나 이후는 공개적인 활동에 나서지 않고 있다. 전향386이 뉴라이트운동에서 주목받고 있는데 대해 "언론들이 이들을 주목하는 이유는 이들 전향한 우파들은 과거 운동권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또 헌신성과 전투성에 기초해서 기성 우파들에 비해 훨씬 세련되게 좌파 운동권과 대적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는 자체 분석은 어느 정도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김수영, 시대정신, 2004.겨울) 그러나 "'권력 386'이 1990년대에 정치로 입문한 자유주의자들이라면, 뉴라이트는 2000년대에 정치입문을 꾀하는 자유주의자일 뿐"이라는 비판도 있다.(이종태, 데일리서프라이즈, 2005.4.28) 무엇보다도 주체사상의 가장 열렬한 신봉자였던 그들이 국정원에 반성문을 제출하고 기소유보 및 공소보류 처분을 받은 뒤 가장 극단적인 반북주의자로 변신한 대목과 북한민주화네트워크가 미국 CIA(중앙정보국)의 외곽조직으로 알려진 NED(민주주의를 위한 전국 재단)의 자금을 지원받고, 이들이 주최한 북한인권대회에도 NED에서 거액이 지원되고 있다는 대목이 이들의 '원죄'가 될 가능성이 높다. 뉴라이트의 전사, 신지호와 류근일 '시대정신 그룹'과는 조금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전향386의 대표주자로서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가 '뉴라이트 전사'로 일선에 나서고 있다. 연세대 81학번인 신지호는 이른바 'PD(민중민주주의) 계열'로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거쳐 한국사회주의노동당과 한국노동당을 통해 정치세력화를 시도했으나 92년 월간《길》에 전향글을 발표하고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NL 주사파계열'보다 전향의 시점이 좀더 빨랐고 그만큼 사회 적응도 빨라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삼성경제연구소 등에서 근무하는 등 주로 학계에서 북한에 관해 공부했으며, 현재는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겸임교수이다. 신지호는 토론회에 단골 연사로 등장하고 언론에도 활발하게 얼굴을 내밀고 있으며, 직설적이고 공격적인 화법으로 대표적인 뉴라이트 주자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신지호는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2005.12.9)에 출연해 자신의 주장을 강변하다 사회자의 제지를 여러차례 받고 마이크가 꺼지는 해프닝을 빚었으며, 인터넷에서는 신지호 대표에 대한 항의글이 줄을 잇기도 했다. 이들 386세대와는 다른 또 한 명의 뉴라이트 전사는 다름아닌 자유주의연대 상임고문인 류근일(68)이다. 그는 서울대 정치학과 56학번으로 이승만과 박정희시대에 민주화운동으로 3차례 옥고를 치렀고 이후 전향해 조선일보에서 보수적 필봉을 휘날렸다. 조선일보를 퇴직했던 그는 다시 '류근일칼럼'으로 조선일보에 복귀했으며, 홍진표와의 시국대담을 통해 우파 기성세대와 전향386세대와의 대화를 시도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벌이며 뉴라이트 '전사'로 앞장서고 있다. 류근일과 김대중 조선일보 전 주필과의 관계 등을 고려할 때 그의 뉴라이트 참여는 단순한 한 개인의 가담이라기 보다는 수구보수언론의 대명사인 조선일보와 뉴라이트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눈길이 쏠리지 않을 수 없는 대목으로 읽힌다. 시민운동 출신의 김진홍.서경석 목사 전향386 그룹이 뉴라이트의 중심적 한 축을 이룬다면 다른 한 축은 주로 상층부에서 김진홍, 서경석 등 시민운동가 출신의 전향한 개신교 목사들이 담당하고 있다. 김진홍(65) 목사는 일찍이 빈민선교에 투신해 두레공동체를 일궈오는 등 진보적 활동을 해왔으나 우파로 사상전향해 지금은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으로서 뉴라이트 운동의 일각을 이끌고 있다. 그는 "나도 1970년대에 민주화운동의 말석에 참여했던 사람으로서 우리가 당연히 선진국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어 왔다. 그런데 근년에 이르러 이런 믿음이 흔들린다. 이러다간 선진국은커녕 지금의 자리도 지켜 나가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런 불안감을 품은 이웃들이 연대해 뉴라이트 운동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고 밝힌 바 있다.(동아일보, 2004.12.19) 지난해 11월 7일 뉴라이트전국연합 창립대회에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비롯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도지사, 한화갑 민주당 대표 등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했지만 그가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을 맡기까지는 우여곡절도 많았다. 원래 자신이 몸담았던 '기독교사회책임'이 '뉴라이트네트워크'에 불참을 결정하자 기독교사회책임에서 빠져나와 뉴라이트네트워크에 몸담았으며, 뉴라이트네트워크가 뉴라이트전국연합에 불참하자 다시 이곳을 빠져나와야 했다. 뉴라이트전국연합 결성과정에서도 뉴라이트전국연대 측과 마찰을 빚기도 했으며, 이 과정에서 전향386 뉴라이트의 결집체인 자유주의연대로부터 "물론 김진홍 목사와는 한 때 뜻을 같이 한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김 목사는 낙선 정치인들과 가까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기존 뉴라이트 단체들의 충정어린 권유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손을 잡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어쨌든 뉴라이트전국연합은 뉴라이트의 전국화, 대중화를 표방하며 수구보수언론의 조명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장했고 뉴라이트 전국연합의 공동대표는 강혜련(이대) 김성이(사회복지사협회 회장) 김진영(강원대) 남지우(안양대) 유석춘(연세대) 이주천(원광대) 제성호(중앙대, 대변인 겸직) 최병일(이화여대) 서경규(한국외대) 등 주로 교수들이 맡고 있다. 김진홍 목사는 매일 아침 12만 5천여 명에게 '김진홍 목사의 아침묵상'이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발송하고 있고 각종 강연회 등을 통해 뉴라이트의 전도사로서 선두에 서 있다. 그러나 뉴라이트전국연합 출범에 즈음해 PBC라디오 '열린세상, 장성민입니다'에서 김진홍을 인터뷰한 장성민은 인터뷰 소감을 통해 "뉴라이트전국연합은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나 비전, 대안도 내놓지 않은 채 출범했다"면서 "(김 목사의) 주먹구구식 발표는 마치 대학생 찌라시를 읽는 기분"이라고 혹평했다. 서경석(58) 목사는 본격적인 시민운동단체의 비조격이라 할 수 있는 경실련(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을 창설한 장본인으로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경험도 있긴 하지만 재야 시민운동가로 분류되어 왔다. 그러나 경실련 출범 당시부터 기존 민중운동과의 차별성을 명백히 하고 합법주의적 경향을 고수해와 참여연대 류의 시민운동과는 구분되기도 했다. 지금은 기독교사회책임의 공동대표와 선진화정책운동을 모태로 최근 결성된 선진화국민회의 공동대표로서 뉴라이트와는 한발짝 떨어진 채 중도보수를 표방하고 있으며, 중도를 표방한 인터넷신문 '업코리아'를 창간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서경석은 기독교사회책임 창립식에서 "'기독교사회책임'이 뉴라이트로 불리우는 것을 원치 않았던 이유도 여와 야, 보수와 진보의 대립을 넘어서서 무엇이 옳은 길인가를 찾아 의연하게 그 길을 가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라며 "'기독교사회책임'은 이 시대의 제일 중요한 과제가 체제내의 진보가 아닌 체제 밖 좌파세력에 대해 결연히 맞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뉴스앤조이, 2005.11.24) 그러나 그의 최근 행보를 보면 중도라는 표명과는 달리 뉴라이트와 조직만 다를 뿐 거의 동일한 행보에 나서고 있다. 평택사태에 대해 '자유민주주의와 국가공권력 수호 비상국민회의'를 조직해 평택 미군기지 캠프험프리스 앞에서 '미군기지 환영궐기대회'와 서울 시청앞 광장에서 '공권력수호 비상국민회의' 개최를 준비하는가 하면 '바른 FTA 실현 국민운동본부' 결성에도 적극 관여했다. 물론 이들 조직에는 뉴라이트전국연합 등이 함께 하고 있다. 또한 기독교 내 보수진영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인권위원회 위원장으로서 "나는 그동안 남북나눔운동을 통해 북한을 많이 도왔다. 때문에 친북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마냥 친북을 할 수는 없다"며 "이제 친북 하면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다"고 말했는가 하면 북한 봉수교회는 가짜라고 주장하기도 했다.(뉴스앤조이, 2005.5.23) 경실련 사무총장 출신인 이석연 변호사도 서경석 목사와 행보를 같이해 '선진화국민회의'에 참여하고 있으며, 보수적인 법조인 모임인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 공동대표와 헌법포럼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행정수도이전반대' 위헌소송을 대리한 바 있다. 개혁적 시민운동에 앞장섰던 두 개신교 목사에 대해 "중도를 표방하는 서경석 목사, 뉴라이트를 신봉하는 김진홍 목사 등을 주축으로 한 중도우파 기독교세력이, 부시 대통령의 승리를 이끈 미국 복음주의를 본받아 급부상했다"는 분석도 눈여겨 볼만하다. (최소란, 뉴스앤조이 2006.3.31) 안병직과 일군의 전향학자들 전향386과 전향목사 그룹이 뉴라이트 운동의 양대 축을 형성하고 있다면 이들에게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고 있는 그룹은 역시 전향한 일군의 학자들이다. 뉴라이트네트워크의 사상적 자원을 제공한 그룹은 자유주의연대 소속 지식인들과 김영호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와 김종석 홍익대 교수 등 중진학자들로 구성된 뉴라이트싱크넷 소속 학자들이 있으며, 뉴라이크재단이 창설되면서 안병직 교수가 참여해 안 교수가 설립한 낙성대경제연구소 출신의 이대근, 이영훈 교수 등이 동참하게 된 것이다.(동아일보, 2006.4.27) 이들중 가장 눈에 띠는 인물은 뉴라이트 진영의 싱크탱크를 자처하며 지난 4월 26일 발족한 뉴라이트재단의 이사장 안병직(70) 서울대 명예교수이다. 뉴라이트재단 창립행사에 참여한 뉴라이트 계열의 주요 인사로는 안병직을 비롯해 이대근(성균관대 명예교수), 김영호(성신여대 교수, 뉴라이트싱크넷 운영위원장), 김종석(홍익대교수,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신지호(자유주의연대 대표), 윤창현(서울시립대 교수), 하진오(시대정신 운영위원장), 한기홍, 김영환, 홍진표 등이다. 안병직은 원래 학계에서 학현학파로 불리는 진보적 경제학자 진영으로 분류됐고, '식민지반봉건사회론'을 주창하며 진보 학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진보운동진영에 막강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80년대 중반 '중진자본주의론'을 내놓으면서부터 오른편으로 선회했다. 84년 일본 나카무라 사토루 교수의 '근대 세계사상의 재검토'라는 논문을 읽고서 "연옥(煉獄)을 통과하는 지적 고뇌 끝에" 전향했다고 한다. 전향의 시점이 빠른 편이었다. 이후 85년 일본 도쿄대 교수로 자리를 옮겼던 안 교수는 귀국해 '낙성대경제연구소'를 개설해 일제 식민지 시절 한반도의 경제가 발전했다고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창했다. 임대식 ≪역사비평≫ 주간은 "신우익의 주장과 조갑제 한승조의 주장에 크게 다른 점이 없다"며 다만 "친미반공과 독재의 역사를 적극 해석"했던 구우익에 더해 신우익은 "친일과 식민의 역사까지 적극 해석한다"고 정리했다.(역사비평, 2006.봄) 식민지근대화론과 중진자본주의론을 뼈대로 한 그의 이론은 이른바 '낙성대파'로 불리며 보수학계에서 통용되고 있으며, 이영훈.이대근 역시 그와 나란히 뉴라이트 진영의 학계 주자로 나서고 있다. 자유주의연대 대표인 신지호도 전향 과정에서 안병직의 이론적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안병직은 참여정부를 '건달정부'라고 직격탄을 날리는가 하면 "북한 정부는 완전히 희망이 없는, 종말에 직면한 정부"라고 단정하고 "다시 피가 끓는다"며 '치열한 사상전'을 예고했다.(조선일보, 2006.4.25) 그는 식민지근대화론을 내놓는데 그치지 않고 최근 독도문제에 대해 '조용한 대응'을 주장하고 나서 일부 네티즌의 강한 항의를 받았으며, 한상범 등은 그를 '친일학자'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는 현재도 일본 후쿠이현립대 대학원 특임교수이기도 하다. 안병직 교수의 제자이자 낙성대경제연구소 소장인 이영훈(55)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뉴라이트네트워크 참가단체인 교과서포럼 공동대표를 맡고 있으며, 보수학계가 『해방전후사의 인식』에 대항해 내놓은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편집위원으로도 참여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도 한때는 80년대 중반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의 아성으로 불렸던 한신대 경제학과 멤버였으나 안병직의 영향으로 식민지근대화론을 취했다. 이영훈은 2004년 MBC 100분토론 패널로 출연해 정신대가 조선총독부의 강제동원이 아니라 한국인의 자발적으로 참여로 이뤄진 상업적 공창이었다는 요지의 망언을 해 파문을 일으켰는가 하면 일제 토지수탈론은 왜곡이라는 취지로 발언하는 등 문제성 발언을 자주했다.(프레시안 2004.9.3) 박효종(59) 서울대 국민윤리교육과 교수는 교과서포럼 상임대표로 2008년도부터 시작되는 제8차 교과과정에 개입해 중.고교 교과서를 개정하는 운동에 앞장서고 있으며, 뉴라이트의 단골 연사로 각종 토론회에 등장하는가 하면 동아일보 객원논설위원으로 현안들에 대해 보수적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또한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역임한 그는 이 단체에서 구성한 '과거사 진상규명 모니터링단' 단장을 맡고 있다. 제성호(48) 중앙대 법대 교수는 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이자 대변인을 비롯해 바른사회시민회의 운영위원, 뉴라이트싱크넷 상임집행위원 등 다양한 직책으로 활약하고 있으며 TV토론회 패널로도 자주 얼굴을 내밀고 있다. 이외에도 김일영 성균관대 사회과학부 교수나 김영호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등이 학계에서 뉴라이트 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으며, '영어공용화론'을 제기했던 복거일과 이춘근 자유기업원 부원장은 ≪시대정신≫ 편집위원에 합류했다. 뉴라이트재단이 재창간하는 ≪시대정신≫ 편집위원은 안병직을 비롯해 이대근, 복거일, 이영훈, 이상돈(중앙대 법학 교수), 이춘근, 최창규(명지대 경제학 교수), 홍성주(의료와사회포럼 정책위원장), 김영호, 신지호, 윤창현(서울시립대 경제학 교수), 홍성기(아주대 철학 겸임교수), 김영환, 김일영, 홍진표, 강규형(명지대 역사학 교수), 이광백 등 총 17명이다. 박세일과 세계화와 공동체자유주의 주창자들 학계 출신이지만 정계로 분류될 수 있는 박세일(58)과 이각범(58)은 김영삼 정부시절 청와대 정책기획수석과 사회복지수석 등을 역임하며 당시 '세계화'를 주창했으며, 이들은 지금 서경석 목사와 함께 선진화국민회의에 참여해 이론가로 활약하고 있다. 특히 박세일은 17대 국회의원으로 진출해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과 여의도연구소 소장을 맡아 '공동체자유주의'를 한나라당의 이념으로 정착시켰으며, 행정수도 이전을 반대하며 의원직을 사퇴했다. 그의 공동체자유주의론은 자유주의연대의 공식 이념이기도 하다. 최근 자신의 공동체자유주의 이론을 체계화한 『대한민국 선진화 전략』(21세기북스, 2006)을 출간했으며, 출판기념회에는 정계인사들이 대거 몰려들었는가 하면 일각에서는 그를 서울시장 후보로 추대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박세일은 '한반도선진화재단'을 추진하면서 "싱크탱크로서, 뉴라이트 단체들을 간접적으로 지원하거나 대학교수들 가운데 (뉴라이트 성향의) 그런분들을 지원하기도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연합뉴스, 2006.2.16) 이각범 한국정보통신대학교 교수는 '바른 한미FTA실현을 위한 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를 맡고 있으며, 박세일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이들 외에 뉴라이트전국연합에는 자민련과 한나라당 낙선자들이 적지 않아 향후 정치권으로의 진입을 예고하고 있다. 이외에도 운동권 출신 한나라당 의원들도 주장하는 논지가 뉴라이트와의 친근성이 적지 않아 향후 정계개편 과정에서 연계 가능성이 농후한 것으로 관측된다. 최근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오세훈 캠프에 공동선대위원장으로 합류한 윤여준 전 의원은 중도를 표방하는 선진화포럼을 이끌고 있어 "뉴라이트 진영 등 외연확대 부분에서도 기여하게 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동아닷컴, 2006.5.1)
김치관 기자 2006-05-18
작년 연말 기존 우파 성향의 8개 조직이 뉴라이트네트워크로 연대하는가 하면 뉴라이트 운동의 전국화와 대중화를 내세우며 뉴라이트전국연합이 결성됐고 최근 뉴라이트의 사상이론을 제공하겠다는 뉴라이트재단이 출범했다. 다양한 뉴라이트 조직 혹은 뉴라이트 관련 조직이 산재해 있지만 뉴라이트 조직은 크게는 뉴라이트네트워크와 뉴라이트전국연합으로 양립돼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표1> 뉴라이트 관련 주요 조직
뉴라이트네트워크는 전향386이 주축이 된 북한민주화네트워크와 자유주의연대가 다양한 영역의 우파 조직들과 연대한 네트워크형 조직으로 자체의 움직임은 활발한 편은 아니지만 뉴라이트 단체들을 포괄하고 있다. 최근 뉴라이트 씽크탱크를 지향하며 창립된 뉴라이트재단도 사실상 뉴라이트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단체들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은 뉴라이트운동의 전국화, 대중화를 내걸고 각 지역과 분야별 조직을 급속히 결성하며 세를 불리고 있다. 바른사회시민회의는 선진화국민회의, 기독교사회책임 등과 함께 중도를 표방하며 뉴라이트 조직에 직접 가담하고 있지는 않지만 사회정치 현안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서 보수진영의 참여연대를 착실히 추구해온 점에서 주목할만한 조직이다. 뉴라이트 관련 조직들은 최근 한미FTA나 평택사태 등에 대한 수구보수세력들의 공동 대책기구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1. 뉴라이트의 결집처 뉴라이트네트워크 뉴라이트네트워크는 자유주의연대와 교과서포럼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중이던 8개의 우파성향의 단체가 연대해 지난해 10월 18일 결성됐다. <표2> 뉴라이트 네트워크 참가단체
각 단체들이 다루는 영역이 다양한 만큼 하나의 조직으로서보다는 월 1회의 운영위원회를 통해 운영되는 느슨한 네트워크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대표를 두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뉴라이트네트워크는 그간 우파적 목소리를 내왔던 주요 단체들이 대부분 망라돼있다는 점에서 가장 포괄적인 뉴라이트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전향386이 주도하고 이론적 측면과 반북성향이 강하다. 뉴라이트네트워크는 출발점이 다른 다양한 단체들이 속해있지만 주요한 흐름은 ‘전향 주사파386 그룹’인 이른바 ‘시대정신 그룹’이 주축이 된 북한민주화네트워크에서 출발해 이들이 신지호 등 ‘전향386 전문가 그룹’과 조선일보 류근일 등과 손잡고 자유주의연대를 결성한 뒤 뉴라이트네트워크로 묶여졌다고 볼 수 있다. 뉴라이트네트워크의 핵심 주력은 전향386이며, 중심 조직은 자유주의연대로 볼 수 있다. 이들은 스스로를 ‘486’으로 부르고 있다.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는 “아시다시피 2004년 12월 23일(주: 11월 23일의 오기로 보인다) 저희 자유주의연대가 창립하면서 뉴라이트 운동이 시작됐습니다. 2005년 1월 25일에는 교과서포럼이 출범을 했구요, 3월 24일에는 뉴라이트씽크넷이 발족을 했고 4월 1일에는 시사웹진 뉴라이트닷컴이 창간을 했습니다. 7월 1일에는 자유주의교육연합이 발족을 했고 거기에 기존에 활동하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의료와 사회 포럼 등의 단체들이 가세함으로써 一群(일군)의 뉴라이트 운동 대오가 갖춰진 격이 됐습니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한국인터넷언론협회, 2006.2.1) 이들은 뉴라이트전국연합과는 스스로 일정한 선을 긋고 있다. 뉴라이트네트워크가 결성되기 전부터 이들은 “뉴라이트전국연합, 뉴라이트전국연대 등은 기존 뉴라이트 단체들과 전혀 무관하게 추진되고 있다”며 “기존 정당에 관계하고 있는 인사들이 개인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뉴라이트 용어를 이용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밝혔다.(2005.6.29) 북한민주화네트워크는 뉴라이트 운동으로 출발한 것이 아니라 김영환을 비롯한 전향 주사파 386, 이른바 ‘시대정신 그룹’이 주축이 돼 결성된 북한민주화 운동을 위해 시작됐으며, 2000년부터 미국 CIA(중앙정보국)의 외곽조직으로 분류되는 NED(민주주의를 위한 전국재단)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으면서 역시 NED 등으로부터 재정지원을 받는 북한인권대회를 개최하는 등 반북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조선노동당 전 비서 황장엽이 상임고문을 맡고 있으며, 기관지로 인터넷신문 ‘데일리엔케이’를 발간하고 있다. 자유주의연대는 전향386들을 주축으로 각계 386세대 전문가 그룹이 연대해 결성한 조직으로 ‘공동체자유주의’를 이념적 바탕으로 본격적인 뉴라이트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시사웹진 ‘뉴라이트닷컴’을 운영하고 있다. 조선일보 류근일을 상임고문으로 둔 대목이 이채롭다. 교과서포럼은 학계를 중심으로 현재의 중.교교 교과서에 관해 우파적 우려를 갖고 이에 대한 문제제기와 대안 마련을 위해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있으며, 자유주의교육연합은 전교조에 대한 비판적 입장에서 교사들 중심으로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뉴라이트씽크넷은 뉴라이트의 이념을 정립하기 위해 만들어진 학술연구단체로서 최근 뉴라이트재단이라는 더 큰 틀이 만들어지자 여기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지난 4월 26일 뉴라이트의 사상이론을 담당하겠다고 출범 기자회견을 가진 뉴라이트재단은 자유주의연대, 뉴라이트싱크넷, 교과서포럼,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등 사실상 뉴라이트네트워크 소속 단체들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 이사장을 맡은 안병직을 필두로 하는 ‘낙성대파’ 학자들이 추가된 점이 특징이며 잡지 『시대정신』을 재창간할 예정이다. 2. 뉴라이트 전국화.대중화의 중심 뉴라이트전국연합 뉴라이트전국연합은 단일 조직으로서는 최대 규모의 뉴라이트 조직으로서 뉴라이트운동의 대중화와 전국화를 지향하고 있다. 정치권 인사들이 많고 대중운동을 표방하고 있으며 사상적 색채는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다. 출범과정에서부터 뉴라이트네트워크 및 뉴라이트전국연대와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보수정치권과 언론의 지대한 관심 속에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지난해 11월 7일 ‘공동체자유주의’를 내걸고 김진홍 목사를 상임의장으로 출범했다. <표3> 뉴라이트 전국연합 조직
뉴라이트전국연합 측은 광역시.도는 물론 전국 주요 시군구에 지역연합을 구축중이며 현재 6개의 광역지부를 포함해 120개 지역조직이 구성되었다고 밝혔다. 또한 청년연합, 교사연합, 문화체육연합 등 각 분야별 조직이 결성됐으며, 오는 19일 ‘기독교뉴라이트’가 발기인대회를 갖는 등 향후 대학생연합, 여성연합, 불교뉴라이트가 속속 구성될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이달 내로 미국지부가 결성되는 것을 시발로 호주, 일본, 베트남, 뉴질랜드, 브라질, 캐나다, 아르헨티나, 중국, 멕시코에도 해외지부가 결성될 예정이다. 안원중 조직국장은 “각 분야별 조직도 전국단체이기 때문에 부속기관이라는 느낌이 드는 직능단체에서 분야별 조직으로 바꿔 부른다”며 “5월 19일 발기인대회를 갖는 기독교뉴라이트가 가장 강력한 파워를 발휘할 것이고, 조직들이 관리가 안될 정도로 확산추세다”고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뉴라이트전국연합은 자민련과 한나라당 공천 탈락자들이 다수 참여했고 각종 행사시마다 정치인들이 축사에 나서는 등 지나치게 정치적 행보를 보인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또한 준비과정이 충실하지 못한 채 뉴라이트 운동의 주도권을 쟁취하기 위해 급조된 조직이라는 비판도 있다. 뉴라이트네트워크에 속해 있는 단체들이 “‘전국연합’과 ‘전국연대’라는 명칭은 그 의도와 무관하게, 뉴라이트진영을 망라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이는 사실과 다르며, 국민들에게 착오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적절하지 않다”고 공식 논평까지 발표한 것도 이 때문이다.(2005.6.29) 3. 바른사회시민회의 등 중도 표방한 사실상의 뉴라이트 대외적으로 중도 노선을 표방하며 뉴라이트 조직에는 직접 가담하고 있지는 않지만 사실상 뉴라이트와 한목소리를 내는 단체들도 있다. 이같은 조직으로는 바른사회시민회의가 대표적이며 선진화국민회의, 기독교사회책임 등도 같은 맥락에 위치해 있다. ‘바른사회시민회의’는 뉴라이트라는 신조어가 생기기 전에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기치로 2002년 3월 12일에 창립총회를 가진 시민단체로서 가장 활발한 활동력을 보여온 단체이다. 중도를 표방하고 있으나 뉴라이트와 이론과 정책, 인맥과 활동 내용이 사실상 겹치는 대목이 많다. 김성기, 김종석, 김태련, 노부호, 박효종, 유세희 등이 공동대표를 맡고 있으며, 사무총장 현진권, 정책위원장 최병일 등이 주요 간부이며, ‘시대정신 그룹’의 홍진표가 정책실장을 맡고 있다. 특징은 산하에 활동기구를 두어 각 영역별로 활발한 사회정치적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는 점으로 진보진영의 참여연대와 유사하다. 활동기구로는 바른정치운동본부(본부장 김재한), 과거사진상규명모니터링단(단장 박효종), 바른행정본부 (본부장 유민봉), 경제제도연구센터, 경영환경개선운동본부(본부장 노부호), 법률구조지원센터(소장 김기수), 바른법제사법센터(소장 김민호), 바른언론포럼, 바른복지운동본부(본부장 이훈구), 여성포럼(회장 김다은), 문화예술포럼(회장 조희문) 등이 있다. 선진화국민회의는 국가선진화를 목표로 지난 4월 23일 발기인대회를 갖고 출범했으며, 그 전신은 2005년 9월 결성된 중도보수를 표방한 선진화정책운동이다. 이들은 조직 산하에 ‘선진화싱크탱크’를 운영하고 ‘유권자운동’을 두고 있다. 발기인 대표 83명 중에는 경실련 출신의 서경석 목사와 이석연 변호사, 김영삼 정부에서 청와대 수석을 지낸 박세일.이각범 교수, 이명현 전 교육부 장관, 구해우 미래재단 상임이사 등이 있으며, 발기인대회장에는 박근혜, 이명박, 손학규 등 한나라당 대권주자들이 나란히 참석하기도 했다. 선진화국민회의는 보도자료를 통해 “‘선진화국민회의’를 뉴라이트로 분류하지 말아주기를 언론사에 정중히 요청한다. 구태여 진영의 이름을 붙여야 한다면 ‘선진화진영’으로 불러 달라”며 “우리는 또 하나의 뉴라이트 단체가 아니다”고 밝혔다.(2006.4.23) 기독교사회책임은 선진민주사회 기틀 마련을 기치로 2004년 11월 22일 개신교 목사들을 중심으로 출범했으며, 서경석 목사 등이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기독교사회책임 당시 고문이었던 김진홍 목사는 기독교사회책임이 뉴라이트 조직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서경석 목사 등이 뉴라이트와 거리를 두기로 해 김 목사는 개별참가 형식으로 뉴라이트 진영으로 옮겨가 이후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을 맡았다. 4. 한미FTA와 평택사태로 뭉친 우파 조직 남북관계, 한미동맹 등과 관련한 사회정치적 현안이 제기될 때마다 우파진영은 한 목소리를 내며 공동행동에 나섰으며, 강정구 교수 기고 논란, 맥아더동상 철거 논란 등을 계기로 보다 빈번한 연대행동을 구축해왔다. 그러나 기존의 색깔논쟁 등에는 극우단체들의 활약이 중심이었다면 최근 뉴라이트 조직들이 정비되고 새로운 현안들이 제기되면서 뉴라이트 진영의 연대 움직임이 보다 가시화되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한미TFA와 평택사태에 대한 공동 대책기구 활동이다. ‘바른 한미FTA실현을 위한 국민운동본부’(이하 국민운동본부)는 지난 4월 16일 결성제안 기자회견을 갖고 본격 활동에 들어갔으며, 여기에는 기독교사회책임, 뉴라이트네트워크, 뉴라이트전국연합, 바른사회시민회의, 선진화정책운동,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 자유시민연대,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 자유주의연대, 자유지식인선언, 한미우호협회 등이 참여하고 있다. 국민운동본부는 상임대표 이각범, 사무총장 구해우 체제를 갖추고 결성취지문을 통해 “FTA는 한국과 미국의 경제규모를 놓고 볼 때 우리에게는 커다란 이득을 줄 것”이라며 “두 나라가 다 같이 혜택을 보는 전형적인 윈-윈 게임”이라고 밝혔다. 평택사태와 관련해서 지난 5월 11일 우파와 극우파 200여 단체는 ‘평택사태를 걱정하는 비상국민회의’를 열어 ‘자유민주주의와 공권력수호 비상국민회의’(이하 비상국민회의)를 결성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비상국민회의는 국민행동본부, 기독교사회책임, 뉴라이트전국연합, 선진화국민회의,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 자유시민연대, 자유총연맹, 재향군인회, 6.25참전태극단, 한미친선협회 등 13개의 우파와 극우파 단체가 주도했다. 이날 비상국민회의에서 군사평론가 지만원은 군이 시위대에게 발포했어야 대추리에서 일어난 군인과 경찰의 피해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요지로 발언해 물의를 빚었고, 사회를 보던 서경석은 당일 오후 성명을 내어 “발포 주장은 지만원 개인의 의견일 뿐 비상국민회의의 뜻과 배치된다”며 지만원의 퇴출을 선언했다. 이에 대해 지만원은 “김정일 정권, 노무현 정권과 싸우지 않겠다는 서경석은 과거에는 좌파였으며 현재는 회색지대의 농간꾼”이라며 비난했다.(데일리서프라이즈, 2006.5.16) 비상국민회의는 오는 20일 평택 미군기지 캠프험프리스 앞에서 평택지역 주민들이 개최하는 ‘미군기지 환영궐기대회’에 조직적으로 참여키로 했으며, 18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국군격려 국민궐기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23일에는 서울시청 앞에서 비상국민회의의 출범식을 갖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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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악... 긴거는 둘째치고 글자크기가;;; ㄷ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