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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한씨(淸州韓氏) : 시조 : 한란(韓蘭)
시조 란은 기자의 후예로 상당한씨를 습성하였다는 우량의 32세손으로 전한다. [청주한씨족보]에 의하면 그는 서기 928년(태조 11)고려 태조가 후백제 견훤을 정벌할 때 장검을 들고 함께 출전하여 삼한 통합에 공을 세워 개국벽상공신으로 삼중대광 태위에 올랐으며 청주 방정리에 세거 하였으므로 후손들은 청주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청주한씨는 특히 고려와 조선 전반기에서 크게 세력을 떨쳤으며, 왕실을 배경으로 한 권력의 중축에서 크고 작은 정치적 사건은 한씨의 입김이 닿지 않는 예가 드물었다. 이러한 가문을 더욱 빛나게 한 대표적인 인물을 살펴보면 란의 7세손 강이 고려 고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감찰어사를 시작으로 벼슬길에 올라 여러 관직을 역임한 후 충렬왕 때 성절사로 원나라에 다녀와 [고금록]을 저술했으며 첨의중찬으로 치사하였다. 밀직사 영의 아들 종유는 충혜왕 때 첨의평리로서 일등공신에 녹훈되어 한양군에 봉해지고, 충목왕 때 좌정승에 올랐다. 이어 1349년(충정왕 1) 한양부원군에 진봉되어 치사한 후 낙향 하였다가 공민왕 때 서영관이 되어 왕의 지극한 대우를 받았으며 시문에 뛰어났고 명사들과 함께 술에 취하면 [양화사]를 읊었으므로 양화도라 불리웠다. 간의대부 사기의 아들 악은 우정승으로 상당부원군에 봉해져서 지도첨의사사 대순, 정당문학 중례, 첨의평리 방신 등 일곱 아들과 함께 명성을 날렸다. 한편 충목왕 때 15세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한 수는 밀직사사 공의의 아들로 우왕이 즉위하자 밀직제학, 동지밀직을 거쳐 상당군에 봉해지고 수충찬화공신으로 청성군에 개봉되어 판후덕부사에 이르렀다. 특히 그는 깊은 학식과 덕행으로 유명했고 글씨에 뛰어났으며, 만년에 늙고 병든 몸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세월의 흐름을 슬퍼하며 읊은 시가 전해진다.
◎ 야좌차두시운 오늘도 또 저물어 가니 인생은 참으로 슬픈 것 마음은 항시 얽매여 있고 늙으니 병마저 따른다. 방이 한기가 드니 등불도 꺼지고 창이 밝아오니 달이 떠오른다. 이 심정을 말할 사람 없고 홀로 음을 따서 시를 지어 본다.
조선조에 와서는 수의 아들 상환, 상질, 상경, 상덕 4형제가 모두 뛰어나 가문을 크게 중흥시켰다. 그중 차남 상질은 조선이 개국되자 주문사로 명나라에 들어가 국호를 조선으로 결정받고 돌아온 인물이며, 셋째 상경은 우왕 때 문과에 올라 여러 벼슬을 지내고 이성계의 개국을 도와 개국삼등공신에 책록되어 도승지를 역임하고 정종 때는 각 도의 관찰사와 공조판서를 지냈으며 태종 때는 우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올라 서원부원군에 봉해졌다. 청주한씨를 명문세족의 반석위에 올려놓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명희는 영의정 상질의 손자이자 감찰 기의 아들이다. 그는 말직인 경덕궁직을 시작으로 벼슬길에 올라 수양대군의 심복이 되어 계유정난에 공을 세워 정난일등공신에 오르고, 세조가 즉위하자 좌부승지로 좌익일등공신에 책록되었다. 2년 뒤인 1457년(세조 3) 이조판서에 올라 상당군에 봉해졌고 이어 영의정에 이르러 신숙주 등과 함께 [신제대전]의 초안을 완성했다. 그의 슬하에 아들 보와 딸 넷이 있었는데 맏딸은 세종의 부마인 윤사로의 며느리가 되었고, 둘째 딸은 영의정 신숙주의 맏아들에게 출가했으며, 셋째 딸은 예종의 비, 넷째 딸은 성종의 비가 되었다. 한편 학문과 인품으로 세조의 아낌을 받아 덕종의 스승이 되었던 계희는 관찰사 혜의 아들로서 이조판서를 역임하고 남이의 옥사를 다스린 공으로 익대삼등공신으로 서평군에 봉해졌으며, 아우 계순은 이조판서를 지냈다. 좌의정 확의 딸은 덕종의 비가 되었으며, 아들 치인, 치의, 치레 3형제가 모두 뛰어났다. 광해군 때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에 오른 효순과 첨지중추부사를 지내고 호조참판에 추증된 여해는 우의정을 지낸 응인과 함께 가문을 한층더 중흥시킨 인물들이며, 동방 제일의 명필로 일컬어진 호는 인조 때의 학자 교와 더불어 학명을 날렸다. 석봉 호는 어려서부터 지극한 어머니의 격려로 서예에 정진하여 중국의 서체와 서풍을 모방하던 풍조를 벗어나 독창적인 경지를 확립하여 정묘한 필치로 만인을 매혹시켰으며, 김정희와 함께 조선 서예계의 쌍벽을 이루어 동양의 명필로 크게 명성을 떨쳤다. 그밖의 인물로는 효종 때 우의정을 역임한 흥일과 숙종 때 대사헌 세량, 순조 때 영의정 용구, 고종 때 우의정 계원 등이 뛰어났다. 한말의 의병장 봉수와 상렬은 독립운동에 몸바친 태홍, 상호, 우종. 필호, 훈, 흥, 흥근 등과 함께 명문의 대를 이었으며, 만해 용운은 3.1운동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 항일 투쟁에 주동적인 역할을 맡았고 불교의 혁신과 작품 활동을 계속하여 일제에 항거하는 민족 정신과 불교에 의한 중생제도를 시로 노래했다.
충북 청원군 남일면 방서리 경기도 강화군 양사면 북성리 충북 청원군 남일면 방서리 함남 정평군 주이면 일원 평북 영변군 오리면 세죽동 평북 선천군 수청면 안산동
世 |
28 |
29 |
30 |
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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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
39 |
40 |
서제공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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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 |
석 |
섭 |
재 |
용 |
승 |
근 |
희 |
수 |
석 |
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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澤 |
晳 |
燮 |
在 |
鏞 |
承 |
根 |
熙 |
壽 |
錫 |
澈 |
충성공파 |
호 |
동 |
현 |
기 |
흠 |
영 |
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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浩 |
東 |
炫 |
基 |
欽 |
永 |
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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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령공파 |
이 |
교 |
석 |
수 |
상 현 |
재 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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履 |
敎 |
錫 |
洙 |
相 鉉 |
在 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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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도공파 |
이 |
교 |
석 |
수 |
상 |
희 섭 |
규 재 |
원 |
옥 |
헌 |
오 |
립 |
세 |
履 |
敎 |
錫 |
洙 |
相 |
熙 燮 |
奎 在 |
元 |
玉 |
憲 |
五 |
立 |
世 |
이판공파 |
원 |
동 |
우 |
기 |
현 |
연 영 |
일(변) |
수(변) |
수(변) |
심(변) |
옥 |
사(변) |
언(변) |
源 |
東 |
愚 |
基 |
鉉 |
淵 泳 |
一 |
수 |
수 |
心 |
玉 |
사 |
言 |
서천군파 |
정 |
백 |
택 |
석 |
섭 |
재 |
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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廷 |
百 |
澤 |
晳 |
燮 |
在 |
宗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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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관공파 |
원 |
동 |
우 |
기 |
만 |
구 |
병 |
녕 |
성 |
희 |
경 |
재 |
정 |
源 |
東 |
愚 |
基 |
萬 |
九 |
炳 |
寧 |
成 |
熙 |
庚 |
宰 |
廷 |
삼등공파 |
회 |
백 |
택 |
동 |
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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會 |
百 |
澤 |
東 |
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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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흥공파 |
회 호 |
백 식 |
택 동 |
동 병 |
섭 규 |
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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會 鎬 |
百 湜 |
澤 東 |
東 炳 |
燮 圭 |
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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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판공파 |
원 |
백 동 병 |
섭 우 석 |
규 기 수 |
상 용 석 |
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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源 |
百 東 秉 |
燮 愚 錫 |
奎 基 洙 |
相 鎔 錫 |
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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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성공파 |
렬 |
규 |
진 |
호 |
주 |
희 |
재 |
|
|
|
|
|
|
烈 |
圭 |
鎭 |
浩 |
柱 |
熙 |
在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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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공파 |
정 |
모 |
렬 |
치 |
현 |
구 |
동 |
환 |
|
|
|
|
|
禎 |
模 |
烈 |
致 |
鉉 |
九 |
東 |
煥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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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공파 |
섭 용 |
규 |
석 호 |
수 연 |
병 |
희 |
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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燮 容 |
圭 |
錫 鎬 |
洙 淵 |
秉 |
熙 |
在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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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랑공파 |
해 |
근 |
렬 |
치 |
현 |
구 |
동 |
훈 환 |
재 길 |
찬 휴 |
용 병 |
배 균 |
용 종 |
海 |
根 |
烈 |
致 |
鉉 |
求 |
東 |
勳 煥 |
在 吉 |
燦 休 |
容 炳 |
培 均 |
鎔 鍾 |
판사공파 |
|
교 |
석 |
수 |
상 |
희 |
규 |
탁 |
|
|
|
|
|
|
敎 |
錫 |
洙 |
相 |
熙 |
奎 |
鐸 |
|
|
|
|
|
양혜공파 |
재 |
동 |
섭 |
기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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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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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在 |
東 |
燮 |
基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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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절공파 |
이 |
교 |
석 |
수 순 |
상 정 |
희 |
규 기 재 |
종 흠 탁 |
자 승 태 |
직 영 |
병 연 |
균 배 |
용 종 |
履 |
敎 |
錫 |
洙 淳 |
相 楨 |
熙 |
奎 基 載 |
鍾 欽 鐸 |
滋 承 泰 |
稙 榮 |
炳 然 |
均 培 |
鎔 鍾 |
참의공파 |
이 |
교 |
석 |
수 |
상 |
희 덕 |
재 |
탁 |
태 |
직 |
병 |
균 |
종 |
履 |
敎 |
錫 |
洙 |
相 |
熙 悳 |
載 |
鐸 |
泰 |
稙 |
炳 |
均 |
鍾 |
시와공파 |
익 |
일 |
명 |
심 |
승 |
목 |
형 |
토 |
진 |
수(변) |
식 |
화(변) |
규 |
翊 |
日 |
命 |
心 |
承 |
木 |
炯 |
土 |
鎭 |
수 |
植 |
火 |
圭 |
정랑공파 |
이 |
교 |
석 |
수 |
상 |
희 |
|
|
|
|
|
|
|
履 |
敎 |
錫 |
洙 |
相 |
熙 |
|
|
|
|
|
|
|
정혜공파 |
종 환 |
태 원 |
정 동 |
섭 |
상 규 |
덕 호 |
재 준 |
탁 표 |
태 병 |
직 균 |
병 용 |
균 순 |
종 근 |
鍾 煥 |
泰 源 |
禎 東 |
燮 |
相 奎 |
悳 鎬 |
載 準 |
鐸 杓 |
泰 炳 |
稙 均 |
炳 鎔 |
均 淳 |
鍾 根 |
예빈윤공파 |
정 |
창 현 |
종 식 |
수 원 연 |
정 |
환 섭 |
규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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鼎 |
昌 鉉 |
鍾 植 |
洙 源 淵 |
禎 |
煥 燮 |
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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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계공파 |
이 |
교 |
석 |
수 |
상 |
희 섭 |
규 재 |
탁 대 |
태 원 |
식 |
병 |
균 |
종 |
履 |
敎 |
錫 |
洙 |
相 |
熙 燮 |
圭 在 |
鐸 大 |
泰 元 |
植 |
炳 |
均 |
鍾 |
세조묘 |
한확 |
|
세조묘 |
한명회 |
|
충혜왕묘 |
한악 |
|
고종묘 |
한장석 |
|
봉암서원 |
한명회 |
충남 연기군 봉암 |
봉암서원 |
한충 |
충남 연기군 봉암 |
봉산서원 |
한수 |
경기도 개성 |
용계서원 |
한백유 |
전북 태인 |
문암서원 |
한백겸 |
강원도 원주군 칠봉 |
검암서원 |
한일휴 |
충북 청주 |
풍계서원 |
한산두 |
경북 풍기 |
예산서원 |
한원진 |
경기도 인천 |
임천서원 |
한몽삼 |
경남 진양 |
성산서원 |
한우신 |
|
신안서원 |
한호겸 |
전북 임실 |
신안서원 |
한필성 |
전남 신안 |
산안서원 |
한명운 |
전남 신안 |
신안서원 |
한명유 |
전남 신안 |
고창서원 |
한양오 |
전북 남원 |
종용사 |
한교 |
충남 금산 |
충렬사 |
한온 |
전남 장흥 |
의열사 |
한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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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모사 |
한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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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사 |
한호운 |
평북 정주 |
충민사 |
한덕문 |
평남 안주 |
남전사 |
한호성 |
전남 구례 |
인곡사 |
한여해 |
충북 충주 |
종용당 |
한순 |
충남 금산 |
충신문 |
한명윤 |
경기도 화성 |
열려정려 |
원주변씨 |
한천뢰의 처 |
호부정려 |
공신옹주 |
한경침의 처 |
정려 |
한몽일녀 |
미계녀 |
정려 |
전주이씨 |
한홍일의 처 |
정려 |
칠원윤씨 |
한석건의 처 |
정려 |
단양우씨 |
한종환의 처 |
정려 |
덕수이씨 |
한성량의 처 |
정려 |
연안이씨 |
한영세의 처 |
정려 |
원주이씨 |
한득종의 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