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당별 의석수 | ||
CPP |
Funcinpec |
Sam Rainsy | |
제2차 총선(1998.7) |
64석 |
43석 |
15석 |
제3차 총선(2003.7) |
73석 |
26석 |
24석 |
ㅇ 훈신펙과 삼랑시당은 연대하여 민주연합(Alliance of Democrats)을 결성, 훈센 총리 퇴진을 요구함에 따라 총선 이후 1년 가까이 신정부 구성이 지연
2) 제3차 총선 이후 정국 동향
ㅇ 2003.8 국가선거관리위원회(NEC), 제3차 총선 결과 공식발표
- 두 야당은 훈센 총리를 퇴진시키기 위해 연대, 민주연합(Alliance of Democrats) 결성 발표
ㅇ 2003.9 제3대 국회 개원식 개최(Chea Sim 상원의장 주재)
- CPP 소속 당선자 73명만 참석(야당 소속 의원전원 불참)
ㅇ 2003.10 제3대 국회의원 당선자 선서식 개최(Sihanouk 국왕 주재)
- 국회의원 당선자 123명 전원 참석
ㅇ 2003.11 시아누크 국왕 주재 3당 대표자회의에서 아래 신정부 구성원칙에 합의
- 차기 정부는 3당 연립정부로 구성(총리지명권은 CPP가 보유)
- 국회의장은 훈신펙당의 라나리드 총재로 하며, 부의장은 3인으로 구성
- 부총리는 4인으로 구성(CPP 2인, 야당 각 1명)
ㅇ 2003.12 민주연합측은 인민당(CPP)의 국회의장과 총리 동시표결 주장을 이유로 내세워 신정부 구성 논의를 결렬
- 이에 대해 국왕은 훈센 총리의 총리직 계속 수행 지지 입장을 표명하고, 신병 치료차 출국(중국 및 북한 체류)
ㅇ 2004.3월 이후 최근까지 인민당(CPP)과 제1야당인 훈신펙당간 소위 "2.5(two and a half) 권력분점" 방식을 전제로 연립정부 구성을 위한 실무협상 개최
* 2.5방식 : 인민당과 훈신펙당을 주축으로 하되, 삼랑시당 소속 일부인사가 훈신펙에 참여,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방식
3) 제3기 연립정부 구성 합의
ㅇ 2004.6월초 훈센 총리와 라나리드 왕자(훈신펙당 총재)간 제2차 여야 영수회동을 통하여 실무협상에서 합의되지 못한 아래 쟁점사항에 대해 원칙적으로 합의
- 국회 원구성 및 연립정부 내각 인준안 동시 표결
- 치아심(CPP 총재)을 상원의장으로, 라나리드 훈신펙당 총재를 국회의장으로 추대
- 훈센(현 총리)을 정부수반으로 하는 CPP와 훈신펙당간 연립정부 구성
ㅇ 2004.6.26 연립정부 내각 구성을 위한 26개 부처 각료직 배분 및 연립정부 운영 방안에 대해 합의
- Co-Minister로 운영되는 상기 내무부, 국방부, 재경부의 3개 특별부처를 제외한 23개 일반부처 장관 중 CPP에서 14명, 훈신펙에서 9명 임명
CPP(14) |
Funcinpec(9) |
① 관방부 |
① 보건부 |
② 외교부 |
② 농촌개발부 |
③ 기획부 |
③ 공공사업교통부 |
④ 상무부 |
④ 교육청소년체육부 |
⑤ 농림수산부 |
⑤ 문화예술부 |
⑥ 국토관리부 |
⑥ 노동부 |
⑦ 환경부 |
⑦ 여성부 |
⑧ 산업자원부 |
⑧ 종교부 |
⑨ 수자원기상부 |
⑨ 관광부 |
⑩ 사회복지부 |
|
⑪ 체신부 |
|
⑫ 공보부 |
|
⑬ 법무부 |
|
⑭ 대의회 및 감찰부 |
|
ㅇ 2004.6.30 국회 원구성 및 내각 인준안 동시표결에 필요한 헌법규정 채택을 위해 임시국회 개원에 합의
ㅇ 상기 여야간 "협력에 관한 합의의정서(Protocol of Agreement on Cooperation)"에 따라, 2004.7.8 소집된 임시국회에서 국회 원구성 및 내각 인준안 동시표결에 관한 헌법절차 마련
- 양당 소속 전체의원 99명중 96명 참석(삼랑시당 소속 의원 24명은 전원 불참), 참석의원 전원의 만장일치로 통과
ㅇ 2004.7.15 국회 원구성 및 내각 인준안 국회 통과, 제3대 국회 및 제3기 연립정부 공식 출범
- 총 26개 부처 및 2개의 외청으로 구성
ㅇ 2004.7.16 제3기 연립정부의 첫 각의 소집, 향후 4년간 부패퇴지 및 개혁을 통한 경제성장 및 빈곤타파에 주안점을 둔 소위 "사각전략(Rectangular Strategy)" 발표
정치
(가) 정체 : 입헌군주국(왕은 헌법과 자유민주주의, 다원주의에 따라 나라를 다스림)
(나) 국왕 : 지위 및 기능 - 생존기간 중 국가의 수반, 국회의 동의에 따라 각료 등 고위직 공무원, 군인, 대사, 법관의 임명에 대한 서명권, 군 최고통수권, 국제조약에 대한 최종 서명 비준권 등을 보유
* 상징적 권한이나, 시아누크 왕이 1941년 이후 공산정권기를 제외하고는 줄곧 국왕 또는 총리 등 국가수반이었으므로 국민들의 절대적 신망을 유지하고 있어, 헌법상 부여된 권한 이상의 영향력을 보유
- 승계 : 국왕 사망시 7일 이내 '국왕 선출위원회'(국회의장, 총리, 불교종정(2명), 국회 제1, 제2 부의장)에서 Ang Duong, Norodom 또는 Sisowath왕가 출신의 30세 이상 남자 자손 중 후계자 선출
- 현국왕 : His Majesty Norodom Sihamoni
(다)) 정부
ㅇ 형태 : 의원내각제
ㅇ 총리, 부총리, 장관, 각료급 차관(Public Function, Civil Aviation)으로 구성. 현재는 부총리, 국방장관, 내무장관이 CPP, Funcinpec으로부터 각 1명씩이며, 각 부처 차관도 연립정부 내 양당간 분점
ㅇ 총리는 국회 부의장의 동의에 따라 국회의장이 추천하는 제1당 인사를 국왕이 임명하며, 기타 각료는 총리 내정자가 국회의원 또는 국회에 의석을 가진 정당인사들로 내각을 구성, 국회의 신임을 얻으면 국왕이 일괄 임명 - 현 총리 : Hun Sen
(라) 의회
1) 하원
ㅇ 보통, 직접, 평등, 비밀선거에 의해 선출되는 122명으로 구성. 임기: 5년
2) 상원
ㅇ 40세 이상 6년 임기의 61명(하원 재적 의원수 절반) 선출직 의원으로 구성
3) 정당
ㅇ 정당법이 미비하여 규제장치가 확립되어 있지 않으며, 1998년 총선시 39개 정당이 참여
ㅇ 현재 의석을 가진 정당은 3개, 연립정부에는 2개 정당이 참여
ㅇ 캄보디아 인민당 (CPP) : 캄보디아 공산당의 후신으로 Chea Sim이 총재, Hun Sen 총리가 부총재. 1993년 총선에서 패배, 집권당 지위를 빼앗기게 되었으나, 행정력과 군사력을 장악하고 있던 이점을 살려 시아누크왕과 타협, 연립 정부 구성에 성공. 1997.1월 이래, 10여개 군소정당과 제휴협정, 1998년 총선을 통해 제1당으로 부상.
ㅇ 민족연합전선 (Funcinpec) : National United Front for an Independent, Neutral, Peaceful and Cooperative Cambodia의 불어식 약자. 반 베트남 투쟁을 위해 시아누크 공이 이끌던 정파로서, 1993년 선거시 시아누크가 국가 수반이 됨으로써 아들인 라나리드 왕자가 총재. 1993년 선거에서 제1당으로 부상, 1998년 총선후 CPP와 연정 구성. 라나리드 총재는 1998년 총선을 대비, 1997.1월 이래 BLDP, KNP 등을 규합, 민족연합전선(FUN) 구성, 크메르루즈 세력 규합 노력하였으나 1997. 7월 사태시 망명. 총선 이후 CPP와 제휴, 현재 Funcinpec 총재겸 국회의장임.
ㅇ Sam Rainsy : 1995년 Funcinpec소속 재무장관 Sam Rainsy가 당에서 축출, 의원직까지 상실한 후 크메르 민족당 (KNP : Khmer Nation Party)결성. 인권, 환경, 노동문제를 이슈화, 반정부 활동 활발히 전개. 1997.2월 Funcinpec이 주도하는 FUN에 가담. 1998. 총선기간 중 당명을 Sam Rainsy 당으로 개명, 현재 국회에 의석을 보유한 유일 야당임.
ㅇ 불교자유민주당(BLDP) : 반 베트남 투쟁을 위해 Son Sann이 이끌던 '크메르민족 독립전선(KPNLF)의 후신. 1998년 총선에서 패배후 해체됨.
4) 지방정부
ㅇ 전국을 22개 주(Province), 2개 직할시(Pailin시, Kep시)로 구분
ㅇ 주. 시 아래 183개 군(District), 1,609개 면(Commune)과 13,406개 부락(Village) 있음.
ㅇ 지방 정부의 책임자는 중앙 정부에서 임명하며, 주지사와 부지사 직을 양대 정당이 분점
5) 사법제도
ㅇ 3심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나, 정치적․사회적 변화에 따른 법령의 정비가 미비하여 국제적으로 인권침해 지적이 많은 편임
- 지방법원 : Province와 Municipality에 설치
- 고등법원 : 수도 Phnom Penh에 설치
- 대법원 : 수도 Phnom Penh에 설치
ㅇ 9인 헌법위원회 및 국왕이 주재하는 최고사법위원회(Supreme Council of the Magistracy)가 사법의 공정성을 보장토록 헌법에 규정하고 있음
6) 군사
ㅇ 캄보디아 군병력은 최근까지 약 20만명으로 추정되었으나 과거 3년간 30,000여명을 감축하고, 유령병력 16,000여명을 병적에서 삭제한 결과 1999.12월 현재 140,696명이 병적 등록됨.
ㅇ 98.10 캄보디아 연립정부 수립 후 캄보디아는 감군계획을 시행 중인 바, 2003년 1단계 계획 종료시 약 100,000명, 2008년 2단계 계획 종료시 약 60,000명 군병력 유지 계획임.
(4) 국토
(가) 지리
캄보디아는 인도차이나 반도의 남서쪽에 위치하며, 국토의 넓이는181,035 km2(남한의 2배, 베트남이나 이탈리아의 절반 정도)이다. 적도에서 10도 북쪽에 위치하며 프놈펜이 수도이다. 타이랜드와 라오스를 서쪽과 북쪽에 국경으로 대하고 있고 동쪽과 남동쪽으로는 베트남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4개의 직할시, 20개의 주, 172개의 군, 1,547개의 면으로 나뉘어지고 435km의 해안을 가지고 있다. 캄보디아는 많은 강이 교차하는 저평원으로 주로 이루어져 있고 태국과 접해 있는 북부 국경 지역과 남서부에 산지가 있을 뿐이다. Cardamom산맥은 북서쪽에 1500m급의 산들로 구성되며 북서에서 남동으로 발달해 있으며 동쪽에 우뚝 솟은 캄보디아에서 제일 높은 산은 Phnom Aural(오랄산)으로 1,771m에 달하며 기막힌 경치를 자랑한다. 남동쪽으로 발달된 Cardamom 산맥은 500-1000m 급의 산들로 구성되며 ꡒElephant Rangeꡓ라고 부른다. 메콩강은 캄보디아의 동쪽 중심부를 가로질러 400km을 캄보디아내에서 흘러 베트남에 이른다. 메콩강은 발생지는 티베트(중국영토)의 ꡒ탕그라ꡓ산으로 중국,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그리고 베트남을 거쳐 South China Sea에 이르는 장장 4,200km의 긴 강이다. 이 강은 우기가 되어 강이 범람하게 되면, 캄보디아 중부에 있는 아시아 최대의 거대한 호수인 툰레샆 호수(Tonle Sap Lake)로 흘러들어 메콩강의 수위를 조절하게 된다. 호수의 넓이는 건기 때에는 2600㎢에 불과하지만 우기가 되면 10,000㎢가 되며 비가 많이 왔을 때는 13,000㎢ 까지 늘어난다. 건기가 되어 메콩강의 수위가 내려가기 시작하면 호수의 물은 다시 강으로 흘러 만조 때에 바닷물이 강으로 역류하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남북 450㎞, 동서 580㎞에 달하는 타원형태를 띠고 있다. 산림이 65.7%이고 농지는 20.65%로 농지 총면적은 36,460㎢ 이다.
(나) 기후
기후는 열대몬순 기후이며, 고온 다습하다. 5월-10월은 우기로 남서풍이 불며 고온다습하며 우기 중 평균 강우량 1,270-1,900mm에 달한다. 한편 건기는 11월-4월까지이며 건기 중 서늘하고 건조한 날씨가 11월-1월까지 계속되며 2월-4월중에는 북서풍이 불며 건조한 가운데서도 혹서가 지속된다. 한편 우기에도 아침에는 비가 거의 오지 않으며, 주로 오후에 비가 내린다. 연중 가장 더운 달은 4월로서 최고 기온은 35℃이며, 가장 추운 달인 1월의 최고기온은 20℃ 이며 일교차는 8 - 11℃에 달한다. 강우량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심하여, 바다를 향하고 있는 남동 고지의 연간 강우량은 500mm에 불과하나, 중부 저지대의 연간 강우량은 1400mm를 넘고 있다. 연간 강우량의 80%는 4월부터 10월중에 집중되어 있다.
(5) 국민
(가) 인구
캄보디아의 총인구는 2000년 추정 치에 의하면 약 12.1 백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 중 약 13%에 해당되는 약 150만명이 수도 프놈펜에 거주하고 있으며 Sihanoukville(16만명), Battambang(9만명), Siem Reap(8만명) 등에 분포 되어있다. 90년대 이후 인구증가율이 다소 늘어나 약 3%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장기간에 걸친 내전으로 인해 그리고 폴 포트 시절의 무자비한 혁명에 의해 약 200만명 이상의 양민 특히 지식층이 살해되는 통에 29세 이하의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전 인구의 66.9% 이며 또한 남성, 여성비가 47:53으로 불균형을 보이고 있다.
연평균 인구증가율 1960-1992 ; 1.7% 1992-2000 ; 2.9% 2003 : 2.49%
1천명당 유아 사망률 1999년 ; 101명 1992년 ; 116명 1960년 ; 146명
평균수명 - 영양실조, 열악한 보건 환경, 오염된 음료, 질병, 지뢰, 전쟁 등으로 평균수
명은 53세이다.
(나)종족
크메르인이 전체의 80%를 점유하고 있으며 베트남, 화교, 짬족 등 30여 소수인종이 20%를 점유하고 있다. 소수 인종의 인구는 총 인구의 20%로 1,000,000-2,000,000명의 베트남인, 363,000명의 중국인, 180,000명의 챰족(Cham)과 말레이 모슬람(Malay Muslims) 그리고 다양한 원주민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베트남으로부터의 이민이 급속도로 증가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 단체들은 파리 협약에 서명한 1991년 이후 캄보디아에 거주하고 있는 베트남인이 불법이민자를 포함 200만명 이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캄보디아에 거주하는 중국계 주민도 약 60만명에 달할 것이라는데 동의하고 있다. Cham-Malay인도 1999년에 약 250,000명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챰족은 힌두의 챰파족 후예로서 과거 안남의 중부지역 이남에 살던 민족으로 베트남 중부 지역인 나짱에 가면 그 유적들이 남아있다. 이들은 15세기에 북베트남족들에게 밀려나 캄보디아에 정착하였다. 이들은 회교사원을 짓고 주로 강가에 몰려 어업에 종사하며 살고 있다. 또 소수민족으로 리우족(고산족)이 동북부지역인 라타나끼리, 몬돌끼리, 프림 비어, 스땡 트랭 지역에 살고 있는데 윗도리를 입지 않는 여인의 풍속 등 다양한 풍속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33가지가 있으며 12만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외부 크메르인으로부터 야만인으로 취급 받아와서 외부인들과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데 크메르 루즈군 중에는 이 고산족 출신들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최근 중국 본토인에 대한 캄보디아 여행이 자유화되면서 엄청난 양의 중국인이 캄보디아에 방문하고 있으며 그 중 상당수가 캄보디아에 불법 체류하거나 제3국으로 나가기 위한 중간 거점지역으로 활용하고 있어 각종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다. 특히 중국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이 한국이나 서방국으로 가기 위한 거점지로 캄보디아로 들어오고 있으며, 이민 사기 또는 매춘이 성행한다.
(다)종교
캄보디아 국민의 대다수는 HINAYANA 불교 신자들이다. 종교의 자유가 인정되지만 국교는 불교이다. 소수의 힌두교 신자와 이슬람 신자 그리고 프랑스 통치 시 일부 지식인 사이에 선교된 천주교 신자가 3만명이 있고 최근의 기독교 선교 바람을 타고 각국의 선교사들의 선교지 각축장으로 변했다.
한 현지 교회가 여러 다른 종파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60명 이상의 한국 선교사들의 각종 선교활동이 활기를 띠고 있어 단시간 내에 많은 기독교 신자가 생길 전망이다. 캄보디아의 불교는 남방 불교로 소승불교 (HINAYANA, LESSER VEHICLE) 이다.
불교 도입의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으나 13세기 - 14세기에 도입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크메르 루즈 점령 직전인 1975년까지 국교이었다. 캄보디아가 신앙하는 HINAYANA 불교는 권위주의적이거나 배타적인 성향이 덜하며 타종교에 대해서도 비교적 관용적이다. 선한 업의 인과응보적 축적을 통해 존재에 대한 환상과 욕망을 극복한 상태가 득도의 경지로서 실현되면 이것이 해탈이라고 한다. 첫째 고통은 존재하며, 둘째 고통은 원인이 있으며, 셋째 원인은 존재에 대한 욕망에 기인하는 것으로, 넷째 8단계의 수도를 통해 이러한 욕망을 끊을 수 있다는 것이다.
폴 포트 시대 이전에는 약 8만명의 승려가 있었는데 크메르 루즈군은 1975년부터 1979년까지 대부분의 승려를 학살하였으며 전국 3,000여개의 사원을 파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1980년대 말부터 불교는 다시 국교로 지정되었다. 캄보디아 불교계의 종정인 ꡒ마하고사난다ꡓ스님은 1994년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국가의 평화를 기원하는 평화 행진운동을 벌려 크메루즈군 진지까지 들어갔다. 이 행진으로 2명이 피살 되기도 했다. 그는 또 1995년에는 지뢰 사용 및 제조 금지 운동을 벌려 1997년에는 크메르주즈군도 이 행진에 참가하게 하는 등 성공을 거두었다.
힌두교는 불교가 도입되기 전인 1세기부터 14세기까지 종교로써 앙코르 왓도 사실상 힌두교의 사원이었다. 이슬람교는 소수민족인 챰(Cham)족이 믿고 있다.
(라)) 국민성
캄보디아의 국민성은 대체로 양순하고 단순하며, 낙천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또한 양면성도 띄고 있어, 정직성과 비정직성, 생활 절약성과 낭비성, 겸손성과 교만성, 감성적과 이성적 등의 양면성이 좀 극단적인 면도 있다. 캄보디아인들은 관대하며 예의에 어긋한 행동을 잘하지 않는다. 한국과 다른 점이 있다면 싸우는 사람을 구경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술이 취해도 그렇게 주정하는 사람이 없다. 특히 외국의 지배를 오랫동안 받아서인지 외국인에 대해서 존경심이 있다. 캄보디아인은 근면성과 진실성, 충성심이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 주인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일하는 충성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군주와 신하와의 관계는 군주가 신하의 모든 것을 책임져 주었을 때 가능하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는 낮가리가 심하여 일반적으로 점잖고 어려워하지만 일단 가까워지면 버릇이 없어지는 사람도 있다. 관계에 따라서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다. 별로 소일거리가 없어서인지 몰라도 조그마한 접촉사고만 나도 우르르 몰려들어 구경한다.
매년 11월에 열리는 물의 축제때는 별로 볼 것도 없는 보트 경기인데 전국에서 몰려들어 프놈펜 시내 일대는 발 딛을 틈도 없을 정도이다. 운전을 하다 보면 일방통행로를 반대로 들어오는 차량 등 선진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교통 위반을 해대지만 당하는 쪽에서도 눈살을 찌프리지 않고 이해해 준다. 그 반대로 자신이 운전할 때는 상대가 이해해 주기 때문이다. 무질서 속에 질서가 있다고나 할까? 서로 신체충돌이 있으면 먼저 사과를 하는 편이다. 예스, 노우가 분명하지 않고 딱 부러지지 않아 마찰을 잘 일으키지 않는 회색의 색깔을 가진 사람을 볼 수 있는데, 폴 포트 시절의 영향을 받아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느 쪽에 설 수 없는 성격으로 형성된 것 같다.
캄보디아는 최후진국들에서의 관청인 커미션이 곳곳에서 위력을 발휘한다. 직원들이 물건을 사면 당연히 5-10%는 직원에게 돌아가는 수가 많다. 주고받는 것이 한국에 비해 정확한 민족성을 가지고 있다. 식당에서 밥을 먹어도 흔히 먹는 차 한 잔도 가격은 싸지만 계산에 올라온다. 한국 사람에 비해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점을 가끔 발견하게 된다. 즉흥적이고 감정적이어서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실수를 저지르는 한국 사람을 가끔 볼 수 있다. 시간개념이 적고, 특히 차가 없는 사람과 약속했을 경우 비가 올 때면 약속은 자동으로 연기된 것으로 보면 된다.
미루거나 늦추는 등 질서의식이 조금은 부족하나 안일주의와 편의주의 사상을 갖고 있어 명예로운 행사를 좋아하며 무슨 일을 하다가 안되면 운에 돌리는 운명론적 사상에 익숙하다. 요즘에 와서는 아이들의 생일 잔치 등을 대단히 크게 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때는 점잖게 옷을 입고 참여하여야 한다. 타인에게 우애심과 동정심을 배려하고 성인과 웃어른, 각계 지식인을 존경한다. 캄보디아 국왕인 시아누크는 ꡒ국민들이 겉으로는 겸손하고 친절해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야수적인 나쁜 피가 흐르고 있으니 불교를 통해 자신을 순화시켜야 한다.ꡓ고 캄보디아 인들에게 항상 경고하고 있다.
또 본인의 견해로는 세계에서 자존심이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자존심이 강한 민족으로 생각된다. 당장 먹을 것이 없는 직장인이 자존심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는 사례를 본인은 많이 목격했고, 자존심을 지키느라 눈앞에 있는 이익을 포기하는 사례도 많이 보았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단순한 캄보디아 사람들을 다루기 쉬울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캄보디아에 사업을 하려고 왔지 자기 자존심을 찾으러 온 한국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한국인도 감정이 격하고 자존심이 강해 현지인과 부딪치는 경우를 본다. 수년 전 자기 보디가드의 총에 맞아 숨진 한 한국인도 캄보디아인의 자존심을 심하게 건드린 케이스가 아닌가 생각된다. 미국에서는 자신의 머리를 심심하면 장난삼아 건드리고 때린 상관을 살해한 캄보디아인이 있었다. 문화적인 차이를 감안해 판사가 집행유예로 석방시켰다고 한다.
캄보디아에서 성공한 사람을 만나보면 몇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항시 웃고 NO라는 단어는 안 쓴다는 것이다. NO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위기에서 모면하는 비법을 터득했으리라.
(마) 문화수준
60년대에는 동양의 진주라고 불리울 정도로 아름다웠고 아시안게임을 치루기도 했었으나, 장기간의 정치투쟁과 폴포트 치하의 공산혁명으로 인해 거의 모든 문화가 말살되고 지식층 계급의 대부분이 학살되어 문화라고 불리울 만한 대상조차 남아 있지 않다. 90년대 후반 들어 정치가 안정되기 시작함에 따라 다시금 단절되었던 서방과의 관계 정상화 및 개방정책으로 다소 문화, 예술면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가고 있지만 아직은 국가재건, 생계 해결에 급급한 실정이다. 전체 문맹율이 29%이나 되고 수도 보급률이 40%에 불과 하다.
(6) 보 건
1인당 GDP 300달러 이하의 세계 최빈국의 하나로 일일 칼로리 섭취량이 2,021칼로리에 불과 하며 1병상당 인구 476명으로 일부 도시 중산층만이 의료혜택을 누리고 있으며, 내전 및 공산혁명으로 지식층의 대표로 많은 의사 및 의료진들이 학살되어 의료수준이 극히 낙후되어 있고 특히 국가보건 예산이 취약하여 전염병 방역 및 예방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일부 통계에 의하면 HIV 보균자수가 1.5%에 이르고, 시골에서는 말라리아 등에 걸리면 손도 못 쓰고 의료 혜택을 못 받는 경우가 많다. 수인성 및 소화기성 유사 전염병인 장염, 타이포이드 등도 만연해 있다.
(7) 교 육
전통적인 교육 방법은 사원이나 파고다에서 스님들에 의해 교육되었었다. 현재는 프랑스의 교육과정과 비슷하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1975년-1979년 사이의 폴 포트 통치 기간 동안 완전히 파괴되었던 교육체제의 재건은 사회적, 경제적 발전의 초석이 되었다. 1980년 이후 상당히 개선되고 있으나, 양질의 교사 부족, 예산 부족 등으로 교육체제의 개선이 늦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캄보디아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월드 뱅크 등 세계 각국에서의 지원은 아래와 같다.
기본교육시설의 확충 및 재건
교사의 질을 높이기 위한 교사의 교육제도 재구성
고등교육 및 기술교육교사의 질 향상을 위한 계획 입안과 실행
대학교육의 상황은 다음과 같다.
1) 프놈펜대학 : 1960년에 설립되어, 1988년에 ꡒTeacher Training College with the School of Languagesꡓ을 합병하면서 확장되었다. 5개의 자연과학과와 6개의 사회학과, 도합 11개의 학과가 있다.
2) The Institute of Technology(ITC) : 전신ꡒThe Institute de lꡑAmitieꡑ Khmero-Sovietiqu eꡓ가 1981년에 다시 문 열은 것이다. 건설, 전기, Agricultural Hydraulics, Mines and Geology 그리고 industry Chemistry 등 5개의 학과가 있다.
3) The National Institute of Management(NIM) Law, Accounting 그리고 Management 2년 제이고, Business Administration는 4년제로서 졸업 후 학사 증을 받는다.
4) The Faculty of Law and Economic Science(FLE) 4년제 대학으로 졸업 후 법학 학사와경제학 학사 학위를 받음.
5) ꡒThe Facility of Public Health Scienceꡓ : 의학, 약학 그리고 치과 의사 그리고 약사를 배출한다.
6) The ꡒChamkar Daungꡓ Agricultural Institute: 농학, 수의학, 산림학 그리고 수산학의 4과가 있다.
7) 예술대학 : 회화과, 조소과, 무용과, 음악과 그리고 그 외의 학과가 있다. 무용과와 음악과는 옛날 스테디움 옆에 위치하고, 미술대학은 국립박물관 뒤에 위치하여 관광객들의 발길이 많은 편이다.
8) 그 외의 외국 원조 학교
프랑스의 원조로 FLE & ITCRK
미국의 원조로 조지타운 대학의 중소기업 중심의 교육과 캄보디아어 선생을 위한 언어 교육이 NIM 에서 있다.
미국의 원조로 샌프란시스코 대학의 사업법률 교육이 역시 NIM에서 있다.
그 밖에 ADB의 협조로 캄보디아의 국립은행 내에 장거리강좌 식의 런던대학 교육 프로그램이 은행원들의 기술 향상을 위해 마련되어 있다
(8) 물가 현황(US$1=3,990 Riel)
프놈펜 식품가격
민물고기:5000r/kg 바다고기 : 8,000-30,000r/kg
새우: 35,000r/kg 물오징어 : 8,000r/kg
게 : 8,000r/kg 소고기 : 11,000r/kg
돼지고기 : 10,000r/kg 닭고기 : 7,000r/kg
감자 : 2,500r/kg 양파 : 2,000r/kg
파 : 4,000r/kg 깨 : 2,500r/kg
배추 : 2,000r/kg 무 : 1,000r/kg
토마토 : 2,300r/kg 계란 : 200r/개
앙코르 ! 앙코르- 앙코르여 ! 다시 한번
ꡐ앵콜ꡑ이라는 말은 우리 주의에서도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식민지 시절 프랑스 병사들이 캄보디아의 ꡐ앙코르ꡑ를 보고 감탄하여 ꡐ앙코르ꡑ하고 외친 것이 이 말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자, 이제 이 아름다운 고장에서 찬란한 황금 문명을 만나보자. 과연 과거의 문명은 현재보다 꼭 못한 곳이었을까 하는 의문을 던져주는 앙코르. 인간의 작품이라기엔 너무 웅장하고 너무 아름다우며 너무 정교한 건축물이다. 문명은 거꾸로 앙코르에서부터 쇠퇴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또한 각각의 건축물마다 서려있는 신화와 전설의 의미를 추적해 보는 것은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될 것이다
◆ 앙코르 와트 (씨엠립)
앙코르 와트 (ANGKOR WAT)
세계 최대의 석조건물로 지은 사원으로 이집트의 피라밋, 중국의 만리장성과 버금가는 돌로 지은 사원이다. 1860년 프랑스의 탐험가 헨리 모하트(Henri Mouhot)에 의해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앙꼬르 왓은 UNESCO가 정한 세계적 문화 유산의 하나로서 인류의 값진 문화재이다. 시엠 리프 공항 북쪽 7㎞에 위치한 앙코르 와트와 앙코르 톰은 공항에서 버스로 갈 수 있다. 이 수 많은 돌을 어디서 어떻게 운반하였는지 절로 감탄이 나오는 "앙코르 와트"는 1119~1150년 사이에 쇼바만 2세에 의해 약 2만 5천의 인력을 동원 30여년간 걸쳐 지은 850m ~ 1,050m의 크기를 가진 인류 최대의 사원이다.
12~3세기에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가장 번성했던 앙코르 제국은 당시 인구 100만의 거대한 도시였다. 건축양식은 지층부가 피라밋과 동일한 건축양식을 이용하였으며 석탑은 돌로 지은 후 조각을 하여 만든 석면 부조의 환두 및 우주의 섭리를 묘사한 문구와 형상으로 조각되어 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감탄사를 연발시키는 1.5 Km ~ 1.3 Km 의 호수 안에 약 1Km 의 사원으로 인류 최대의 석조건축물인 "앙코르 와트"는 500 년 동안의 영화를 이제 유적으로 인류에게 남겨놓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사원이다. 동남아시아에 유일한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앙코르 와트", 그 웅장하고 거대한 사원은 관광객의 발을 묶어놓기에 충분한 매력이 있는 곳이다.
앙코르톰은 앙코르 와트와 함께 앙코르 문화의 쌍벽을 이루는 곳으로 앙코르 와트에서 북쪽으로 1.5km 떨어져 있다. 한 변이 3km의 정사각형 모양인 앙코르톰은 높이 8m의 붉은 흙인 라테라이트 성벽과 너비 약 10m의 수로로 둘러싸여 있다. 바이욘 사원에서 동서와 남북으로 뚫린 두개의 도로에 의해 도시가 4 등분된다.
미소를 띄고 눈을 감고있는 자야바르만 부처와 남쪽문의 돌 거인상, 나가 (Nagas), 코끼리의 테라스, 레퍼왕 사원, 첫번째 복도 내부의 양각조각 등이 있다. 우주와 왕국을 표상하는 거대한 건축물의 배열이 앙코르 톰을 잘 나타내고 있다.
앙코르톰의 위대한 건설자인 자야바르만 7세가 12세기 말에 건립한 앙코르톰의 중심사원으로 약 50개의 탐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구조다. 거대한 바위산 모양의 이 사원은 앙코르의 유적 중 유일하게 우물을 갖추고 있다. 바이욘 사원 탑에는 관세음보살의 모습을 한 자야바르만 2세의 웃는 얼굴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부처와 동일시 된 왕의 위력을 세계에 과시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회랑의 벽면에는 그당시 크메르인들의 역사적 사건과 일상생활이 부조로 새겨져 있다.
프레아칸 사원 (Preah Kan)
바이욘 사원 북쪽 3 Km 지점에 위치, 앙코르 여행에서 빠져서는 안될 곳 중의 하나로 자야바르만 7세가 12세기에 세웠다. 복원되지는 않았지만 열대림의 나무뿌리 밑에서도 비교적 보존이 잘 된 듯하다. 이 사원은 처음에는 불상을 조각하였다가 힌두교의 설화와 신성함을 나타내는 조각으로 변화되었다.
프레닉핀
12세기 말에 자야바르만 7세가 건립한 불교 사원이다. 정방형 중심 연못의 원형섬에 불교의 수투파가 세워져 있다. 이 수구파는 두마리의 거대한 나가(머리 7개의 뱀)에 의하여 보호되는 양식을 취하고 있다.
프레룹
동메본의 남쪽에 있어 열대 평야의 조망이 좋은 사원이다. 10세기 중엽에 라젠드라 바르만 왕에 의하여 건립된 이 사원 정상의 목재 구조물은 아예 없어져 버린 흔적이 보인다. 특색은 수호신 석상으로 튼튼한 코끼리상을 이용한다는 점이다.
스라스스랑
돌계단 밑으로 수초가 우거진 거대한 연못이다. 이 곳을 내려다 보는 돌사자의 위풍이 아름답다. 이 근처는 크메르 루즈의 끔찍한 학살이 있었던 곳이다.
타프롬
12세기에 세워진 불교사원. 자야바르만 7세의 시기에는 3천명에 가까운 승려들이 살던 대사원이었으나 그후에 방치되었다. 이제는 돌기둥과 천장이 무너져 고색 창연한 기운이 감돈다. 앙코르 유적 중 가장 신비로운 맛을 풍기는 곳으로 꼭 들려야 하는 곳이다.
톤레삽 호수
시엠립시 남쪽으로 15Km를 가면 바다만큼 넓은 호수가 눈앞에 펼쳐진다. 이 호수가 톤레삽 호수이며, 호수 안에는 소수의 수상족들이 살며 호수 주변에는 매우 가난한 캄보디아인들이 살고 있어 이들의 생계대책도 매우 시급하다. 호수의 어족자원은 풍부하나 생활은 빈곤하다. 프놈펜행 고속페리호의 부두가 있다.
◆ 캄퐁솜(콘폼솜) 혹은 시아누크빌(SIANOUKVILLE)
먼지처럼 고운 규사 모래로 덮인 천혜의 아름다운 해변 |
이 곳은 상아색 아름다운 해변이 에메랄드 블루색의 바닷물과 잘 조화된 외국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천연 그대로의 해변이다. 물론 개발도 되지 않았다. 유일하게 노롤정권때 미개보수도 하지 않고 오랜 세월동안 방치되어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건물이다. 이 곳 해변은 원시 그대로 청순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외국 관광객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이 곳 시당국에서는 현재 늘어나기 시작하는 외국인 관광객을 위해 약 900객실을 갖추고 있다. 이 900객실은 한 거대한 호텔이 들어선 것이 아니고 조그마한 미니 호텔이 많이 들어선 것이다. 캄퐁솜은 잘 갖추어진 숙박시설과 스킨스쿠버, 낚시 등 위락시설이 좋아 인기가 높은 관광지이다. 이 곳은 캄보디아 제일의 항구도시이며 해변 도시이다. 프놈펜에서는 차량으로 약 3시간 걸리는 남쪽 해변에 위치해 있다. '시아누크빌'이라고도 불리는데 캄보디아에서는 드문 해변관광지이다. 아직 오염되지 않아 물이 매우 맑으며 수심이 깊지 않아 수영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이곳에서는 코콩(Koh Kong)섬에 갈 수도 있는데 아직 관광객의 발길이 드문 곳이다.
◆ 뚜올슬랭 박물관(Tuol Sleng Museum)
오전 7:00~11:30, 오후 2:00~5:30에 ꡐ킬링필드ꡑ 당시의 참혹함을 보여주는 전시물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 건물은 크메르 루즈 정권 이전에는 Tuol Svay Prey라는 중등학교 건물이었다. 그러나 1975년4월17일 이 학교는 S-21(Security office-21)이라는 수용소로 변하게 된다. 담에는 철조망이 올려지고 교실은 고문실이나 감옥으로 개조되었다. 전직관료, 군인, 승려, 학자, 의사, 교사, 학생, 기술자 등과 그의 가족들이 구금되고 고문으로 죽어갔다. 각종 고문도구와 이곳을 거쳐 대부분 살해된 사람들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는데 끔찍한 전율이 느껴진다. 가슴에 번호표를 단 사진을 찍는 등 기록을 남긴 다음 살해하는 것을 보면 크메르 루즈군들은 죄책감은 커녕 오히려 나름대로 합리성을 가지고 이런 일을 저지른 듯하다. 462번 번호표를 단 모자의 사진이 인상적인데 이들은 당시 외무부 차관의 부인과 아이이다. 첫 돌도 지나지 않았을 아이는 엄마 품에서 곤히 잠들어 있고 엄마는 아이를 안고 죽음 직전에 얼이 빠진 무표정한 얼굴에 본능적인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리고 있다. 캄보디아 지도를 해골로 장식하여 크메루 루즈군들의 잔학성을 함축하고 있기도 한다. 하였는데 보는 이들에게 너무 꿈찍한 인상을 주어 지금은 철거하고 사진만 걸려 있다. 17,000명 이상이 이 수용소를 거쳐 갔으며 앞마당엔 이 희생자들의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103번 거리와 350번 거리의 교차지점에 있다.
◆ 중앙시장(Central Market)
중앙시장 씨클로
프놈펜시 중앙에 위치한 중앙시장은 프랑스 새대 건축으로 매우 거대한 건물이며, 건축양식, 디자인, 실내․외 장식이 예술적이다. 단층 건물로 지붕이 현대식 건물 7층보다 높아 외부가 더운 날씨에도 시장안은 매우 시원하다. 금, 은, 보석을 주로 팔며 시계 등 고가품이 시장안에서 판매되고 네 곳에 출입구가 길다란 화랑을 이루고 있으며 이 네 입구 주변에서는 음식, 꽃 등을 판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