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음과 흔들림없음_ 생명평화경 두번째
참선, 명상, 수행 하면 핵심적으로 강조되는 것이 깨어있음과 흔들림 없음입니다.
불교에서 수행론으로 제시되고 있는 팔정도에서 깨어있음과 흔들림 없음에 해당되는
개념이 정념과 정정입니다.
[정념]은 바르게 깨어있음, [정정]은 바르게 흔들림 없음을 뜻하지요.
여기에서 바르다고 하는 것이 무엇일까. 그냥 깨어있다, 흔들리지 않는다, 하면 될 텐데,
왜 굳이 [바를 정]자를 쓰는가? 대부분 이 문제를 제대로 천착하지 않고 있습니다.
바름의 문제를 명확하게 해야 합니다.
바름의 내용이 없는 맹목적인 깨어있음은 망상이 될 위험이 있습니다.
단순한 흔들림 없음은 오히려 쓸데없는 자아도취, 신비주의, 실용주의, 기복주의 라는
환상에 현혹될 위험이 있습니다.
수행을 통해 전생을 보고 미래를 예언하고 물 위를 걷고 불치병을 치유하는 등의
신비한 힘을 얻으려고 합니다. 마음이 편안하다, 몸이 건강하다, 머리가 좋아진다,
사업이 잘 된다, 재수가 좋다는 등 실용적인 효과를 노립니다.
명상을 해가는 과정에서 그런 현상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머리가 좋아지고 건강이 좋아지고 서울대학교에 가고 돈을 잘 번다 고 해서
과연 행복해질 것인가. 전생을 보고 미래를 예언하고 물 위를 걷고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등 신비한 능력이 생긴다고 해서 과연 좋은 세상이 될 것인가?
얼핏 생각하면 해답이 될 것 같지만, 사실은 해답이 되지 않습니다.
훨씬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올바름 즉 진리의 길과 그 정신에 근거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명심할 것은 대안을 모색 할 때 올바른 방향과 길을 따라 제대로 해야 문제가 풀리고
바람을 이루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이 점을 간과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청매선사의 [십무익송]을 봅시다. 청매선사는 서산대사의 제자입니다.
임진왜란 때 승병장으로 활동도 했습니다. 한국불교 선객들 사이에서는 고고하게
은둔수행을 한 가장 모범적인 선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3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청매스님의 토굴터를 찾기 위해 지리산 곳곳을 찾아 다니는 스님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함께 보려고 하는 것도 그 분이 남긴 것입니다.
그 핵심은 올바른 방향과 길을 모르고 수행을 하면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고
수행을 해도 이익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치 모래를 쪄서 밥을 지으려고 하는 것처럼
부질없는 헛수고 일뿐 생명의 바람이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이지요.
1. 마음을 돌이켜 보지 아니하면 경전을 보아도 이익이 없다.
2. 바른 법을 믿지 않으면 고행을 해도 이익이 없다.
3. 원인을 가볍게 여기고 결과만을 중요하게 여기면 도를 구하여도 이익이 없다.
4. 마음이 진실하지 않으면 교묘하게 말을 잘해도 이익이 없다.
5. 존재의 본질이 비어있음을 달관하지 못하면 좌선을 해도 이익이 없다.
6. 아만심을 극복하지 못하면 법을 배워도 이익이 없다.
7. 스승이 될 덕이 없으면 대중을 모아도 이익이 없다.
8. 뱃속에 교만이 꽉 차 있으면 유식해도 이익이 없다.
9. 한평생 모나게 사는 사람은 대중과 함께 살아도 이익이 없다.
10. 안으로 참다운 덕이 없으면 밖으로 점잖은 거동을 해도 이익이 없다.
우선 참선, 구도, 고행 등에 관계 된 것만 살펴보겠습니다. 아주 중요한 내용입니다.
‘정법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확신이 없으면 목숨을 걸고 고행을 해도 이익이 없다.’
‘존재의 본질이 비어있음을 달관하지 못하면 밤낮으로 좌선을 해도 이익이 없다.’
‘원인을 소홀히 하고 결과만을 중요하게 여기면 용맹심으로 도를 구해도 이익이 없다.’
그러니까 그냥 열심히 참선을 한다고 해서, 치열하게 고행을 한다고 해서, 열정적으로
도를 구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수행을 하더라도 올바른 방향과 길을 따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올바른 방향과 길이 없이 맹목적으로 수행을 하면 당사자의 의도나 바람과는 다르게
기복주의 신비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같은 문제의식으로 볼 때 지금 우리가 공부하려고 하는
생명평화경과 백대서원절명상은 어떤 일 보다도 우선적으로
중요한 올바른 방향과 길을 제시하는 내용입니다.
대승불교에서는 올바른 방향과 길을, 존재의 실상 생명의 실상 본래부처 본래면목
이라고 했고 초기불교 수행론으로는 삼법인 사성제라고 했습니다.
참선, 명상, 구도, 수행, 기도 등 그 무엇을 하든 올바른 방향과 길을 가야만
문제가 풀리고 염원이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올바른 방향과 길이 없이 그냥 하는 수행은 헛수고 일뿐만 아니라
차라리 아니함만 못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들을 염두에 두면서 동안거 공부와 수행을 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