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산행일지 : 울산시 상북면 신불산(때늦은 억새평전)
일시 : 2002년 11월 23일(토) 09:00-20:30
차량 : 승용차 이용, 언양IC 경유 등억온천에서 시작
날씨 : 맑음

다들 올해는 가을이 없다고 한다. 10월 중순경부터 추워진 날씨가 가을을 느낄 겨를도 주질 않고 벌써 입동을 지나고 어제는 소설까지 지냈으니 이미 겨울이 아닌가. 갑작스레 준비없이 찾아온 추위 탓에 단풍구경도 제대로 한 번 못하고, 낙엽을 밟으며 그 흔한 고독 한 번 느껴보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니 그렇지 않아도 짧은 가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속상해 할만한 올해인 듯 하다. 그러나 거짓말처럼 오늘 같은 날도 예비되어 있었나 보다. 비록 아침안개가 자욱하여 내려오는 고속도로에서는 간간이 교통사고도 눈에 띄었으나 오늘 한날의 날씨는 우리가 익히 잘 아는 늦가을 날씨 그대로였다.
8시경 우리 집을 출발하여 1시간 10여분만에 언양IC를 나와 양산방면으로 좀 내려오다 작천정, 자수정동굴 방향으로 우회전하여 10여분만에 등억온천에 도착하였다. 온천과 호텔 등 생각 외로 많은 시설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었다. 간월산장 부근에 주차를 하고 신발끈을 동여 메었다. 우리의 시야에 펼쳐진 간월산과 신불산은 비록 겨울산의 모습이었지만 깨끗하다 못해 시린 모습으로 다가왔으며 기온도 포근하여 우리를 설레게 만들었다.
신불산 정상 4.3km, 간월산 정상 3.5km, 홍류폭포 0.8km라고 세 줄로 쓰여진 이정표 앞, 10시 45분, 오랫동안 맘속으로만 그려오던 신불, 간월, 취서산으로의 등행시작이다. 홍류폭포까지는 편안한 길이다.
출발지에서 Shawn 이란 이름의 뉴질랜드 남자를 만났다. 울산에서 영어학원 강사로 있는 그는 한국에 온지 불과 4-5개월에 신불산 4회, 가지산 2회, 지리산, 가야산, 천황산, 재약산 등 이 땅에 사는 나보다도 훨씬 많은 산을 단시간에 오른 경험을 가진 정말로 산을 좋아하는 이로 보였다. 손수 수첩에 그려놓은 등산지도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홍류폭포다. 작지만 물줄기가 30여m의 높이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이 친구와는 여기에서 헤어졌다.
좌측으로는 신불산으로 가는 주등산로이고 우측으로는 간월산으로 가는 등산로이다. 우리는 우선 우측의 간월산 길을 택했다.
오늘 하루에 영남의 알프스 세 곳의 정상을 우리 발로 밟고 싶은 욕심이 등억온천으로 방향을 잡게 했고 다시 이 길로 접어들게 하였다.
곧바로 가파른 경사의 길이 시작되었다. 여유도 주질 않고 계속되는 급한 등산로를 한시간여 올라와서야 우리가 간월산 방향을 놓친 것으로 여겨졌다.
이미 간월산은 큰 계곡 건너 우측에 우리의 발과 비슷한 고도에 버티고 있었으니까. 돌이켜 보건데 홍류폭포에서 우측으로 더욱 진행한 후 산길을 탓어야 했나보다. 잠시쉬기도 했으나 길은 생각보다 멀고 힘들었으며 서리가 내린 길은 간간이 미끄럽기도 했지만 어린 노각나무의 귀여운 모습과 땀을 흘리는 그 상쾌함은 기분 좋은 것이었다.
주능선에 올라서니 12시45분, 꼬박 2시간이 걸린 셈이다. 우리가 올라온 곳은 신불산 정상을 좌측 100여m에 둔 신불산 언저리였다. 우측의 간월산 방향으로 향했다. 간월산으로 가려면 내리막길을 내려가 간월재에서 다시 오르막길을 올라야 한다.
발아래 많은 차량이 주차한 간월재가 있고 비스듬히 이어지는 간월산이 30여분 거리에 있었지만 갔다가 돌아오기에는 시간적 어려움이 있으리라 여겨져 여기서 내려보는 것으로 간월산을 갈음하기로 한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압권이었다. 지난 6월 우리가 올랐던 쌀바위와 가지산이 지척에 있고, 영남의 알프스가 한눈에 들어오는 주능선에서의 경치가 너무 좋다. 첩첩둘러쌓인 산들의 명암은 한폭의 동양화 같다. 멀어질수록 희미하게 그 색을 밝혀나가는 모습이 마치 현실은 비록 어둡지만 밝은 먼 미래를 약속해주는 것처럼 보였다. 새파란 하늘과 가슴시리는 깨끗한 공기도, 그리고 나즈막한 관목들과 털옷을 벗어버린 억새도 좋았다.

점심은 오늘도 라면과 밥, 그리고 김치. 둘만의 산행이라 김치가 남았다. 오늘은 과일도 풍부하다. 귤, 사과 그리고 감도 있었다. 그동안 별로 좋아하지 않던 감에 손이 먼저 가는 나를 보며 입맛이 변한 것은 아닌가 여겨진다. 그것도 약간 물러진 감을 좋아하는 걸 보면, 아마 나이탓인가?
점심 후 신불산으로 발길을 옮겼다. 산악회에서 온 것 같은 일행의 무리, 중년의 부부들, 대학생으로 보이는 10여명의 단체 등산객들 등으로 주능선은 왁짜하게 붐빈다. 싱거운 아줌마가 우리더러 잘생긴 총각 둘이라나 뭐래나..아가씨 고맙다고 대꾸해주면서 이런 대화들이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듯하여 싫지는 않았다.
신불산 정상 1,209m. 코닥 DX3900을 든 아저씨에게 사진을 부탁했다가 연장(나의 사진기는 DX3600) 나쁘다는 기분 나쁘지 않은 핀잔을 들으며 정상 기념 촬영. 그리고 돌탑을 끼고 바람을 피해 앉아 부부가 예쁘게 꾸민 찻집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도 매우 좋았다.
동쪽으로는 언양, 양산, 울산 그리고 동해바다까지 차례로 들어오고 그 반대쪽으로는 끝없이 산들만이 달음질하고 있는, 즉 자연과 인간화의 대비된 양면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취서산은 여기서 약 3km. 내리막을 15분 정도 하산하면 좌측으로는 가천마을이 4.15km, 영취산 45분이라는 이정표가 있다.
여기서부터는 신불평전, 억새천국이다. 비록 지금은 말라 키 작고 벗은 억새뿐이지만 쏟아지는 햇살아래 평전을 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연인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장소라고 생각되는 순간 아니나 다를까 저만치서 한 커플이 억새밭에서 쏟아지는 햇살을 즐기고 있다.
식었던 이마에서 다시 땀이 흐를 때면 영취산 정상에 닿는다. 취서산 정상 1,059m. 태극기가 선명하게 새겨진 이 정상표시에는 분명 고도가 이렇게 새겨져 있지만 비석으로된 정상 표지석에는 영취산 1,075m라고 새겨져 있다. 취서산과 영취산 같은 이름이다. 여기서 보는 조망은 신불산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시간이 좀더 있으면 백운암, 극락암을 거쳐 통도사로 하산하고 싶기도 하였으나 해짧은 겨울이라 지산리로 3시30분에 하산을 시작하였다.
4시30분(쉬지않고 빠른 걸음으로 하산) 지산리에 도착하여 통도사 입구까지는 승용차를 얻어타고 여기서 12,000원을 들여 택시로 우리의 차까지 이동했다.
비록 대구로 올라오는 길이 막혀 시간이 지체되었지만 몸도 기분도 행복하고 정화된 하루였다. 다음 산행은 어디로 할까? 벌써 기다려진다.

등고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