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졸업 후 직장생활 3년, 예비군훈련 4년차인 나이 서른.
그 당시 친구와 나는 인생의 재미를 다 본 것만 같은 삼십대의 무기력감에 사로 잡혀있었다.
남먹는거 다 먹어보고 남입는거 다 입어보고 남하는거 다 해보다
남은 건 화려한 '왕년'과 쥐꼬리만한 적금통장 한개 뿐이였던 우리는 장미빛 미래를 설계해보자 마음먹고 회계분석까지 해가며 의욕적으로 돈 많이 벌어 성공했다는 얘기듣고 사는 사람들과의 비교방식으로 우리 미래를 사례분석하여 투자방안을 모색해 보았다.
우선 소주 한잔 마시고 진지한 토론을 벌였다.
지금까지 내가 저축한 국민연금을 한방에 받는다구 가정해서 연금의 현가계수로 계산해보면 1,000만원이 안되니 그것의 역수인 저당상수, 즉 내가 65세일 때까지 일년에 얼마씩 낼껀가를 계산해보니 기본이자율을 5%로 했을때 1천만원 곱하기 1 마이너스 가로열고 1 플러스..
에잇..쌞!!. 계산불가..
어차피 토지는 한정이 되어있다..는 부증성을 띄는 관계로 부동산의 불패신화를 맹종하던 우리는, IMF체제 아래 경제위기감이 좀 잦아지려하는 조짐을 보이던 2001년 당시 한창 부동산 값이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우리는 주택건축경기가 일반경기와 역행하고, 부동산경기는 일반경기에 후행한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당시 살짝 회복경기를 보이던 부동산투자에 대해 논하던 차에, 수중에 개뿔도 가진 게 없음을 잘 알고있었으므로 전세를 끼고 집을 구매하는 레버리지 효과를 극대화해 보자며, 일단 여기저기 강남의 복덕방을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기초조사 결과, 하향여과가 거의 없는 서울 강남의 아파트를 단타 매매가 수익성이 높다고 판단, 이를 해보기로 마음먹고 나름대로 치밀하게 양도소득세 중과세도 계산하고, 물리적/기능적/경제적 감가수정도 고려하고, 3년기간 원리금균등상환 받아소유기간 (2년거주는 위장전입으로 대체) 동안 챙길 실질임료 (순임료+필요제경비)를 받을 것까지 모두 감안하여 3년 후 팔아제끼려고 머리를 굴려, 2001년 당시 은마아파트 값을 4억원, 은행이자율을 5%로 했을 때 기대수익과 정보비용을 이용해 투자가치를 계산해보았다.
부동산중개업자의 정보로는 3년후 6억원이 된다고 했으니 3년후 현재가치는 기대수익 3억원을 요구수익률5%로 할인한 금액에서 만약 하나도 오르지 않는다고 가정한 3년 후 4억원을 빼서..
매수가격4억원 곱하기 예상이익율... 에잇!!.. 이런 제길..쌞.
정보비용 계산포기.
계산하기 싫어 부동산 단기투자는 포기했었지만 어쨌든 장밋빛 인생을 설계해야 했기 때문에 친구와 나는 은행과 투자신탁회사에서 상담도 하고, 경제전문TV도 보고, 경매로 돈버는 법 등 재테크와 부동산에 관련된 서적도 닥치는대로 읽고, 인터넷 재테크의 귀재들 사이트를 기웃거리고, 동호회 정모도 나가보고, 수도권 근방 전원주택 택지개발지구도 찾아가 보고, 하여튼 이것저것 할 수 있는 방법은 죄다 동원해서 골똘히 연구하고 발품팔아 몇가지 세부적인 계획을 세운 바,
- 나름대로 기초조사하고 재태크에 해박한 관계전문가와 의견도 청취하고 이 계획으로 인해 술 먹는 시간이 줄어 혹시 관계가 소원해 질지도 모르는 직장상사와 단란주점에서 협의하고,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잘 안만나지던 나머지 친구들을 한데 모아 중지를 모아보자는 의미로 자리를 마련하여 심의도 마쳤다. - 행여 나중에 보증서달라거나 돈 빌려달라는 소리하지 말라며 우리 둘을 경계하는 나머지 친구들에게 우리도 지지않고, 떼돈 벌면 우리에게 아쉬운 소리나 행여하지 말아달라고 서로 약정하는 조까 씨바라마 니가 술값내..로 마무리되는 자리가 돼버리고 말았지만 -
결국 친구와 나는 한국경제가 안고 있는 인플레위험이나 고질적인 사업상의위험, 부동산만이 가진 유동적위험이 없는...
주택청약저축을 얌전히 들기로 했다.
뭐, 물론 일각에서 혹자들은 우리를 보며 한심하다는 둥, 소심하다는 둥, 그럴 줄 알았다는 둥, 시간과 에너지 낭비하고 유난만 떨었다는 둥, 그 동안 계획세우면서 쳐마신 술값으로 로또를 샀어도 벌써 부자되서 은퇴했을 거라는 둥 튀어나온 조디로 여러 소리를 짖어댔음에도, 친구와 내 맘속에 한번 자리잡은 '인생 한방'의 불씨는 꺼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불같은 의욕이 용트림하게 되었다. 그렇구나.. 로또가 있었구나..
공신력 있는 2차저당시장에 투자하기는 상대적으로 위험률이 낮아 이자가 너무 박했고, 그렇다고 주택상환사채는 사업자등록이 필요한 회사채인 기명증권이라 살 수가 없었고, 소액투자자에게 유리하다는 REITs 투자나 복리의 이자를 주는 국민주택채권을 사기에는 터무니없게 돈이 모자랐다.
그렇다. 결국 돈이 문제였던 것이다.
신용을 담보로 몇억씩 대출받을 수 없던 우리는 나중에 적금타면 꼭 하리라 다짐하며 소주잔을 들어야했다.
그후, 시간은 유수같이 흘러
직장생활 7년, 민방위 2년차인 2005년 현재.
은마아파트는 시세6억원을 돌파했고, 친구는 유학 갔다와서 해외영업부로 들어가 매일 야근하고 바이어 접대하고, 한달에 한두번 쉬는 날에는 선을 보러다니느라 얼굴이 시커멓게 삭았으며, 나는 공부한답시고 모든 직원들의 부러움과 박수를 받으며 장렬히 한국자산관리공사를 퇴직했다.
그런데.. 공부를 빙자한 백수.. 아무도 날 학생으로 봐주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날부터인가 난, 어디가서고 돈많이 벌어 은퇴한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어른들한테는 뭔가 해보려다 6개월만에 말아먹었다고, 인생 수업료 냈다고 말하는 편이, 공인중개사 되려고 회사그만두었다는 말보다 훨씬 설득력있게 들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난달, 향학열에 불타는 만학도를 격려차 휴가비를 갖고 위문공연을 한 녀석에게 나는 물었다.
아직도 돈 벌고 싶으냐.. 친구에게 물으니, 물론이다.. 대답하며 니가 공인중개사되면 멋지게 투자한다.. 하고 말하며 한잔 들이키길래 요때다 싶어.. 그럼 말나온 김에 전직 금융권 출신인 나에게 안전하게 니 돈을 몽땅 맡기라고 말하자 녀석은 쭈볏거리며 적금 부은지가 하도 오래되서 통장 비밀번호를 모른다고 한다.
1234 아냐? 내가 말했더니.. 말이 없다.. 역시.. -_-
말을 뱅뱅 돌리다 결국 녀석은 비용이 좀 들고 신경이 쓰이더라도 위탁관리보다는 자기관리가 낫겠다며 얄팍한 내 제안을 신사적으로 묵살했다.
아깝다.. 접근까지는 성공했는데 Closing을 못했다.
이 친구와 청약저축을 부은지 벌써 3년이 넘었다.
청약부금, 청약저축, 청약예금이 있는데 이중 국민주택기금을 조성하는 입주자저축자금으로서 민간건설중형국민주택이나 국민주택을 청약 할 수 있는 상품이 주택청약저축이다.
5년간 무주택 세대주였던 나는 1순위(2년24회납이상) 자격을 얻기위해 그동안(월2~10만원한도) 열심히 청약저축을 부어 공공건설임대주택에 입주를 신청한 바, 당첨되어 분양권을 부여받았다.
어차피 우리동네가 주거환경개선사업이 시행될 여지도 없거니와 정비구역으로 지정될 날도 요원한 바, 상대적으로 초기 상환금액이 부담없는 임대아파트 쪽으로 투자를 결정함이 나은 것 같았다. 따라서 시세차익을 얻기위해 입주 후 5년이란 시간을 고스란히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약간의 보증금과 차임료로 평생을 눌러앉을 수 있는 국민임대아파트와는 달리 5년 후 소유권이전이 가능한 공공임대아파트이기에 계약금을 내기전 사업승인 인가시에 전매를 해서 종자돈을 마련할까..하는 생각도 했지만, 1가구1주택 양도소득세 (2년거주, 3년소유) 특례 상 어차피 5년거주 후 명의이전 가능한 비과세대상이라 그냥 일단 중도금 붓고 들어가 임대료 내며 살기로 마음 먹었다.
5년후 명의이전하자마자 팔아도 (등기 후 1년 미만보유 자산 양도소득세율 50%, 등기 전 미등기 양도소득세율 70%) 비과세 되므로, 어쨌든 5년간은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5년간 한달에 약50만원의 임료를 내야하는 것이다.
지역주택조합원들은 20인이상 동일지역 6개월 거주하는 무주택자나, 60m 이하 1주택 소유자이어야하고, 임대주택 조합원은 국민주택 공급받기 위해 20인이상 동일지역, 동일법인에 근무하는 자 이어야하고 2년내 사업승인도 받아야하니, 이것저것 따져봐도 우리동네에서 주택건설사업이 시행되기를 기다리느니 세내놓거나 싸게 팔아버리고, 5년동안 임료를 내더라도 내가 이사가는 편이 경제적으로 훨씬 유리한 대안인 것 같았다.
게다가 당첨된 곳이 경기도 녹지지역과 접하고 있는 곳이라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받아 한때나마 마음에 두었던 농촌후계자의 꿈을 위로하며 주말체험농장 영농도 하고 싶기도 했었구..
혹시 아는가, 1년에 90일이상 농작물 재배하고 100만원 넘게 벌어 농업인으로 나서게 될지..
5년뒤에 소유권이전등기 경료 후 아파트를 팔아 목돈을 마련하기전에 잔금을 치루어야하니 계획을 좀 세워야겠다.
우선.. 결혼해서 축의금을 걷어야겠다.
우리 부모님께서 여태 부조하신 금액을 합하면.. 음.. 일단 어느정도 충분할 것 같다.
여자가 똑똑하고 성실하면 피곤하므로.. 게다가 말까지 많다면 평생 시달릴 각오를 해야하므로 일찍이 친구와 나는 외국인 여자와 결혼하기로 맘을 먹은 상태이다.
외국인이 국내 토지를 취득하려면 60일내 시군구청장에게 사후신고를 해야하는 번거로움이 따르므로 아무것도 명의로 해줄 수 없는 이유가 충분하기에 일단 혼인신고하면, 대한민국 특유의 가부장적 제도에 익숙하게끔 남존여비의 투철한 정신을 심어줘야하겠다.
돈 많이 벌면 한국여자 분사무소도 둬야겠다.. 라는 치사한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근처에 있으면 걸리니까 관할을 시군구 겹치지 않게 해야겠다.
근데 이런 생각은 왜 드는 걸까..
남자들의 장밋빛 미래에 항상 포함되어지는 명예욕과 불륜의 로망, 사회질서에 반하는 행위에의 동경. 참 어처구니 없는 아이러니이다.
분사무소 들렀다가 러시아인 마누라의 거래정보사업자의 정보망에 걸리면 그 놈이 정보통신사업자로 정보통신부에 등록되어있는지 되묻고 업무정지 시키겠노라 엄포를 놓아야 겠다.
왜 자꾸 이런 쪽으로만 생각이 드는 걸까..
분사무소는 권리분석이 필요없는 한국자산관리공사의 비업무용부동산 공매를 통해 경락받아 마련하고 친구명의로 해놓아야지, 명의신탁자는 5년이하의 징역이나 2억원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므로 상당히 조심해야 하겠다.
여기까지 생각하다 퍼뜩 잠에서 깬다.
베개에 고인 침을 보니 입을 헤벌린, 상당히 행복한 꿈자리였던 것 같은데..
내용은 잘 기억안나고 왠지 가슴 한켠에 살고있는 양심이 콜록거린다.
잠에서 깬 주말 새벽.. 내일도 남들 말처럼 백수인 채로 아침을 맞이하게 되겠지. 시험에 떨어지면 어떤 핑계도 댈 수 없겠지..
불현듯, 70일 남은 시간에 혼자만 안달복달하고 초조해하는 내가 안쓰러워 술한잔 사주고 싶다.
내일은 격무에 시달리느라 폭삭 늙어버린 동섭이에게 전화를 걸어 돈많은 학생이 술한잔 사겠노라며 일산으로 위문공연간다 말하고 그 녀석한테도 나한테도 술한잔 사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