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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따라 구례 사성암에서 순천 선암사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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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암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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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배지영 |
| 토요일 이른 아침에 친구 선미와 아들 제규, 나 이렇게 셋이서 길을 나섰다. 비가 와이퍼로 슬슬 차창을 닦아야 할 만큼 와서 “그냥, 되는대로 가자”로 정했다. 전주 군산 자동차 전용도로를 지나 남원 가는 길로 갔다. 군산에는 아직 안 핀 목련꽃이 곳곳에 활짝 피어 있었다.
구례까지 갔다. 산수유 꽃 한 번 볼까? 근데 산수유 마을까지 가면 차도 많고 사람도 많을까 봐 ‘잘 알려지지 않은 산수유 마을’ 로 갔다. 차에서 내리니 비를 맞은 흙냄새가 났다. 산수유나무가 있는 밭두렁 안으로 들어가니 땅이 질척거렸다. 우리는 대단히 각박한 도시에서 온 ‘서울 쥐’처럼 역시 시골 공기가 좋다고 하면서 조금 걸었다.
구례 쪽으로 가는 길에는 자잘한 벚나무가 있다. 저 작은 것들도 자기 할 일을 다 하느라고 안간힘을 쓰며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따라가다 보니 사성암 가는 길이었다. 그 쪽은 벚나무가 훌쩍 커서 꽃도 늠름하게 피었다. 시간도 이르고 날씨도 흐려서 사람도 차도 없었다. 차에서 내려 셋이서 꽃길을 걸었다. 둘에게는 계속 가라고 하고 나는 차를 가지러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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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례 읍에서 사성암 가는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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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배지영 |
| 사성암은 자라 오(鰲)자를 쓰는 오산 꼭대기에 있다. 그러니까 자라 머리에 절집이 있는 거다. 절집까지는 길이 나 있지만 운전도 자신 없고, 표지판에 3km라고 써 있어 길 한 쪽에 차를 세웠다. 한쪽 손엔 우산을 들고, 혹시 배고프고 목이 마를까 봐 배낭까지 멨다.
나 혼자면 괜찮겠는데 선미랑 제규랑 셋이서 사성암으로 올라가려니 아득했다. 길섶의 제비꽃을 보면서, 길 옆구리에 핀 진달래꽃을 보면서, 머리 속으로는 계속 차를 가져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생각했다. 그러면서 차가 지나갈 때마다 히치하이킹을 시도하기도 했다. 2년 전만 해도 혼자 걷고 있으면 태워주겠다는 차가 많아서 귀찮은 적도 있었는데… 차들은 무심하게 지나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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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벼랑에 붙어서 있는 절집, 사성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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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배지영 |
| 얼마쯤 왔을까? 제규도 선미도 발걸음이 느려졌다. 누군가 태워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은 버려야 했다. 내가 달려 내려가서 차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구불구불 내리막길을 달리니까 가속도가 붙었다. 내 발자국 소리가 점점 커지고, 딱 맞춰서 소나기가 퍼부었다. 우와! 기분이 좋았다.
차를 가지고 다시 올라가다 보니까 제법 걷긴 걸었다. 그런데 차에 제규랑 선미를 태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가 나왔다. 비포장 길이 끝나는가 싶어서 안심했더니 길 폭이 좁아졌다. 우리는 주춤하다가 다시 올랐다. 나중에 우리 뒤를 쫓아오던 사람들을 주차장에서 만났다. 그들은 우리에게 “여기가 추풍령인가?”라고 웃으면서 이야기 했다.
사성암은 4명의 스님 원효, 도선, 진각, 의상이 수도했다고 해서 사성암이다. 절집은 긴 축대를 두고 벼랑에 붙어 있다. 약사전 안에 들어가면 원효 스님이 손톱으로 파서 새겼다는 마애불이 있다. 무술을 배우면 날 수 있다고 믿는 제규처럼, 나도 옛 성인 중에는 산을 눈 깜짝 할 사이에 오르내리고, 바위에다 손톱으로 부처님도 새길 수 있다고 반쯤은 믿는다.
절을 할 줄 몰라 법당 안에 들어가려면 항상 머뭇거리게 되는데 사성암에서는 망설이지도 않았다. 무릎 꿇고 앉아 있기만 했다. 한 달에 한 번 수녀원으로 피정을 다니는 선미 얼굴도 편안해 보였다. 열린 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좋았다. 어릴 때 홍역 앓고 나서 토방에 앉아 볕이 내리쬐던 마당을 보던 것처럼 몽롱하면서 좋았다.
사성암은 여느 절집처럼 기와 불사를 받는데 그 다음이 다르다. 다른 절집들은 한쪽에 쌓아두는데 사성암은 기와 한 장 한 장을 돌담 위에도 올려놓고, 언덕길 옆에도 세워놓고, 모양 내서 포개 놓기도 해 그 모습이 어여쁘다. 제규는 기왓장에 주소와 소원 성취 같은 게 써 있는 걸 읽으면서도 “기왓장격파장에 써 있는 건 시 같아”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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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와 불사 받아서 돌담 위에 올려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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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배지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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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는 기왓장이 시 같아 보인다고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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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배지영 |
| 요사채, 지장전, 약사전, 대웅전, 종각, 산신각들을 보느라 오르락내리락 했다. 비도 우리처럼 오락가락 하면서 내렸다. 섬진강도, 구례 읍내도, 지리산 자락도 보였다.
우리는 주차장에서 갑자기 서둘렀다. 우리 앞에 차가 3대나 간다. 그 뒤에 붙어가기로 했다. 차 4대가 줄을 지어 가는데 우리 바로 앞에 있는 봉고차에서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몸에 잔뜩 힘주고, 길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그런 표정이었다.
이탈리아 차들은 표정이 있다고 읽은 적 있어서 이탈리아에 갔을 때 로마 시내의 작은 차들을 열심히 살펴봤지만 내 눈에는 그런 게 안 보였다. 그런데 사성암 내려오는 길에 마침내 표정 있는 차를 만난 것이다. 제규랑 나는 신나게 웃었지만 고소공포증이 있는 선미는 자기하고 똑같은 표정의 차를 보는 게 좀 힘들어 보였다.
그렇다면 우리 차에도 표정이 생겼을까? 차에서 뭔가 기분 나쁘게 타는 냄새가 났다. 자갈길 위를 달리는 것처럼 자꾸 뭔가에 걸리는 것 같아서 가다 서다를 되풀이했다. 할 수 없이 남편한테 전화했다. 급경사일 때 나오는 무슨 기능이라며 너무나 명랑하게 “그거 좋은 거야”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차는 새로운 기능을 쓰게 돼서 신나는 표정이었을까?
내려오면서 보니까 길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처음 올라올 때 포장길, 그리고 흙으로만 이뤄진 울퉁불퉁한 길, 그리고 포장이 돼 있지만 운전자를 겁먹게 만드는 좁은 길. 걷기 걱정스럽고 운전도 자신 없다면, 처음 포장길 끝난 데까지만 차로 온 다음에 세워놓고 걸어오면 되겠다. 물론 처음부터 걸어오는 사람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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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진강가에서 빨래하는 할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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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배지영 |
| 내려와서 벚꽃 터널 옆에 차를 세웠다. 남편이 싸 준 도시락을 들고 강가로 내려갔다. 빨래하는 할머니도 있고, 엉덩이를 들썩이면서 밥을 먹는 중년들도 있었다. 제규는 밥 한 번 먹고, 반찬 삼아서 소금쟁이 한 번 보고 했다. 선미는 “아! 좋다. 아! 좋다”를 연발했다. 나는 어디로 갈까 생각했다. 꽃길을 따라 쌍계사 벚꽃 10리 까지 갈 수도 있겠다. 하지만 꽃이 이만큼 피었으면 선암사도 근사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은 선암사 승선교에 반한다. 하지만 나는 반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다리 아래로 내려가 홍수에도 무너지지 않는 자연 암반 홍예의 튼튼함과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찍는다. 나는 그저 승선교 같은 다리 위를 걷는 느낌을 조금 알 뿐이다. 난간도 없이 흙길인 다리를.
어릴 때 살던 옛집에도 다리가 있었다. 마당 가장자리에는 울타리처럼 대숲이 있었고, 대숲과 길 사이에는 개울이 있어서 다리가 있었다. 다리는 큰물(장마)이 지면 꼭 떠내려가 버렸다. 동네사람들은 비가 그치면 통나무를 걸치고 흙을 다져서 다시 다리를 만들었다. 엄마가 고맙다는 뜻으로 마당에 모깃불을 피우고, 멍석을 깔고, 동네 사람들한테 팥죽을 돌리게 만들던 다리.
이런 얘기를 하면 제규는 “헐, 그런 옛날 시대부터 엄마가 살았어?”라고 한다. 학교 1년 후배면서 친구인 선미는 마치 30살쯤 차이 나는 사람하고 걷고 있는 것 같다는 얼굴로 나를 봤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선미는 이유식을 먹고 챙 넓은 모자를 쓴 채 놀이터에서 놀던 도시 아이였기 때문이다.
계곡 물소리가 들릴 때부터 제규는 세수라도 하고 싶다고 내려가려고 했다. 나는 제규에게 “이따 올 때 가자”라고 말하면서도 자신이 없다. 이따 내려갈 거면 지금 못 갈 것도 없으면서. 제규가 먼저 냇가로 내려가고 우리도 따라 내려갔다. 축구화를 신어서 미끄러웠지만 물 속으로 빠지진 않았다. 산자락 아래부터 저기 먼 데까지 진달래가 골고루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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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암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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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배지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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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암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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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배지영 |
| 야생 차밭을 지나 선암사 절집 안으로 들어갔다. 목련, 꽃 진 모양 그대로 있는 수국, 홍매화, 벚꽃, 동백, 수양 벚나무, 산수유가 빛바랜 단청과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와 수염을 기른 할아버지에게 활력을 주고 있었다. 죽어도 좋을 만큼 찬란한 순간들도 봄꽃처럼 스러지고 가슴에 남는다. 그걸 알면서도 다시 처음처럼, 절집의 봄을 느끼는 사람들 틈에 우리도 가만히 섞였다.
선암사에서 송광사로 넘어가는 길이 있다. 산길도 있고, ‘굴목이재’라는 신랑 신부 가마가 오가던 길이 있다. 나도 그 길을 가 본 적 있다. 어떤 아저씨들이 송광사에서 선암사로 넘어와서는 우리보고 송광사 어떻게 가냐고 물었다. 우리는 “주차장까지 가면 돼요”라고 말했다가 오던 길에 송광사 표지판을 지나쳐 온 것이 생각나 우리차를 타도 된다고 했다.
그런데 송광사는 생각보다 멀었다. 이 길이 맞나 그렇게 속으로 생각했을 뿐인데 아저씨들도 괜히 차 얻어 탔나 긴장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송광사 표지판이 보이고, 가는 길 내내 벚꽃도 예뻐서 송광사에 도착했을 때는 아늑했다. 아저씨들은 기름값 하라고 2만원을 주셨다. 나도 50번쯤은 공짜 차를 타 봤다. 그 중에 몇 사람은 내 소매를 끌고 가 공짜 밥도 먹여줬다. 아저씨들도 내가 맛 봤던 좋은 기분을 느끼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에 돈을 돌려줬다.
길을 좀 돌았지만 어차피 우리에겐 계획이 없었다. 곡성으로 가서 기차가 다니는 길 아래로 차를 달렸다. 남원쯤 왔을 때는 어두워져서 어떤 꽃도 보이지 않았다. 앞서가는 차를 아무리 살펴도 표정 같은 건 없었다. 묵묵히 군산까지 왔다. 꽃이 준 생기는 충분해서 배가 안 고팠다. 저녁 밥 대신 맥주 한 병 먹고 집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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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암사 목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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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배지영
출처 오마이뉴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