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冶中공부방>
第 2 講 二重過歲(음력 설)와 祭祀文化
李 大 根
(2010. 2. 20)
<머리말>
- 지구상에서 지금 陽曆/陰曆으로 “二重過歲”를 하는 나라는 韓國밖에 없다. 또 자기 祖上에게 철철이 “祭祀”지내는 문화를 가진 나라도 韓國밖에 없다. 그럼 韓國은 왜 이런 특수한 文化/風俗을 갖는 나라로 되고 있을까?
- 二重過歲와 祭祀는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한국인은 자신의 평소 사회생활은 세계 공통의 ‘陽曆’으로 하면서도 過歲(설)만은 陰曆과세를 고집한다. 그렇게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祖上에 대한 祭祀를 양력으로 하기 싫어하기 때문일 것이다.
- 二重과세와 祭祀문화! 이는 지금 한국사회에 중대한 惡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람들이 잘 모르고 살고 있지만, 한국이 지금처럼, 1) 모든 일에 原則과 基準이 없고, 2) 公과 私를 구분하지 못하고 3) 名과 實이 일치하지 못하고, 4) 不正-부패-不條理가 만연하고, 5) 허례허식과 奢侈/浪費가 심하고, 6) 迷信이나 祈福사상에 빠지는 것 등이 모두 이 二重과세/祭祀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 二重과세와 祭祀문화는 이제 한국 고유의 전통적 美風良俗으로 치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위에서 본 것처럼, 그것은 우리 사회에 여러 가지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을뿐더러, 글로벌 시대에 세계추세에도 전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 달2월의 <공부방> 주제로 이 문제를 잡아보았다.
1. 陽曆과 陰曆
- 陽曆(solar calender)은 일찍이(BC 11세기 경) 이집트에서 1년을 365일로 하는 ‘太陽曆’을 만든 것이 그 始初라고 한다. 그 후 보다 정확하게 1년을 365.25일로 고쳐 4년마다 하루(閏日)를 넣어 366일로 하는 ‘율리우스曆’이 나오고, 다시 16세기에는 이 閏日을 100년마다 한번 씩 줄여 400년에 97회만을 閏日(366일)로 하는 ‘그레고리曆’으로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반면 陰曆은 달(月)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만들었다. 보통 ‘月曆(달력)’이라고도 하는 음력은 달의 朔望(초하루와 보름)을 기준으로 한 달을 29.5일로 정하고 4년마다 閏月(윤달)을 넣어 조정하는 식이다. 이는 처음 中東(아랍)지역에서 만들어져 中國을 통해 韓國에 전해지고, 한국은 三國시대부터 사용해왔다고 하며, 舊 韓末 高宗 34년(1896년)에 양력으로 바꾸었다.
- 陽曆이 陰曆보다 훨씬 정확하고 과학적이다. 4년에 하루(윤일)와 한 달(윤달)의 차이이니 적어도 30배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일찍부터 세계 모든 나라가 양력을 쓰고 있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農事일과 관련하여 음력이 더 효과적이란 말도 있었으나(中國은 음력을 ‘農曆’이라 칭함) 그것은 잘못된 이론이고, 다만 漁業에서는 潮水 흐름 때문에 음력이 有效하다고 할 수 있다.
2. 새 해 맞이(過歲)
- 인간은 누구나 空間과 時間의 제약 속에서 살아간다. 삶의 터전인 空間은 그래도 옮겨 살 수 있지만(冶爐에서 서울로), 시간은 절대 그를 수가 없다. 단적으로 生老病死가 그것을 말해준다. 누구나 1년 365일이 지나면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 이것이 過歲다.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날(기준일)은 1년에 한 번, 즉 ‘설날’이어야 한다. 이 당연한 원칙이 지금 한국 경우는 ‘新正’, ‘舊正’으로 두 번으로 되어 있다. 1년에 나이를 두 번 먹는 꼴이나 다름없다.
- 1897년 大韓帝國의 성립과 함께 高宗은 시대의 흐름에 맞춘다고 하여 음력을 양력으로 바꾸었으나, 그것이 국민생활에까지 보급되지는 못하였다. 그 후 日本 식민지 시대 총독부에 의한 陽曆過歲가 권장되었으나 제대로 실행되지 못하였다. 여기에는 양력설은 ‘왜놈설’이라 하여 민족진영의 저항이 크게 한 몫 했다.
- 해방 후 음력과세로 되돌아왔다가 朴正熙 군사정부에 의해 檀紀를 西紀로, 陰曆을 陽曆으로 바꾸는 일대 개혁이 단행되고, 過歲도 음력설을 양력설로 바꾸도록 했다. 당시 都市 지역에서는 거의 양력설로 넘어가던 중에 1980년대 전두환/노태우 정부 등장과 함께 무슨 ‘民俗의 날’이니 뭐니 하면서 다시 음력설로 回歸하는 역사의 후퇴를 가져왔다.
- 음력설로의 回歸는 정치를 일반 대중이 원하는 쪽으로 끌려가는 포퓰리즘(populism)의 산물이다. 이때부터 국민들이 자기 멋대로 설을 쇠는 식으로 되어 ‘양력설(新正)’, ‘음력설(舊正)’의 이중과세 풍속이 정착되기에 이르렀다. 새 해 인사를 두 번씩이나 해야 하고, 또 사회지도층 인사까지도 2010년 年賀狀을 보내면서 ‘謹賀新年!! 庚寅 元旦’이라고 써 보내고 있다. 양력 2010년과 음력 庚寅年을 구분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3. 祭祀 文化
- 한국이 언제부터 家禮로 ‘祭祀’를 지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것이 중국의 儒敎/儒學 전통에서 傳來된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어쨌든 祭祀 儀式은 사람이 죽으면 肉體와 魂魄(靈魂)이 분리되어 육체는 죽어 소멸하지만 영혼은 죽어 없어지지 않는다는 믿음(신앙)과 그리고 祖上에 대한 자식의 恭敬이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이루어진다. 儒敎 전통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古代 孔/孟시대 부터라기보다는 朝鮮 시대 性理學(朱子學)의 도입과 더불어 祭祀가 일반화된 것이 아닌가 한다.
※ 기실 孔子는 인간의 死後 鬼神이나 來世 등의 존재에 대해 무척 회의적이었다. 그럼에도 儒家에서는 厚葬과 久喪, 祭祀 등을 강조했다. 이 점에 대해 道敎, 墨家 등으로부터 엄청난 공격을 받기도 했다.
- 祭祀(家禮)에는 忌祭, 祠堂祭, 時祭, 墓祭 그리고 名節 때에 지내는 차례 등이 있다. 음력설이나 秋夕에 지내는 것은 차례다. 차례는 새 해를 맞이한다든가, 새 곡식을 거둔다든가 하는 계절적 의미(西洋의 秋收감사절)를 祖上에 고하는 의미를 갖는다. 이런 점에서 祭祀는 祈福思想과 孝思想이 섞여있다고 할 수 있다.
- 祭祀문화는 埋葬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埋葬문화는 또한 風水地理說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古來로 중국에는 陰陽家(중국 諸子百家의 하나)에 의한 地官(方士)의 벼슬이 있었고, 그들은 吉凶의 占卜, 미래(죽음)를 예언하며, 吉日이나 墓터/집터 등을 잡는 임무를 수행했다. 明堂자리에 墓(埋葬)를 쓰고 祭祀를 지내는 일이 家門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火葬 비율이 62%(2008년)에 이르는 지금 祭祀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4. 陰曆설/祭祀를 어떻게 볼 것인가?
- 음력설이나 제사문화는 지난 農耕시대의 삶의 遺産이다. 한 곳에서 代代로 農事를 짓고 살아가는 定住생활을 하던 시대, 가까운 뒷산에 祖上의 墓를 쓰고 자주 살피면서 살던 시절의 문화란 뜻이다. 이제 삶의 공간적 이동이 오늘처럼 격렬하게 일어나고, 또 도시에 나와 농업이 아니라 장사나 하면서 살고 있지 않는가. 美崇山 기슭의 墓주인(귀신)이 무슨 재주로 서울 사는 자기 아들/손자 고층 아파트를 찾아 올 것이며, 또 하루 밤 사이에 무슨 제주로 거기까지 되돌아갈 수 있겠는가?
- 朴正熙 시절 국제적 기준에 맞춘다고 하여 過歲를 양력과세로 바꾸고자함은 물론, 그밖에도 1973년 冠婚喪祭 의식의 간소화를 위한 準則(家庭儀禮準則)을 만들어 공포한 바 있다. 결혼 때 ‘청첩장’을 돌리지 못하게 하고, 초상 때는 屈巾祭服을 못 쓰고/못 입게 했으며, 祭祀는 4代奉祭祀를 2代祖까지로 줄인 것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개혁조치는 1980년대 全斗煥/盧泰愚 정부와 그 후 소위 民主化를 내건 YS/DJ정부에 와서 완전히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매우 애석한 일이다.
※ 拙稿, “朴正熙가 10년만 더 살았더라면!”, 『朴正熙 대통령』(계간), 박정희대통령기념 사업회, 2009년 3월호 참조. 필자는 이 글에서 朴正熙가 10년만 더 살았더라면 다음 5가지, ① 양력과세 ② 관혼상제 간소화, ③ 음식문화 간소화, ④ 거리 간판 정리, ⑤ 北核 문제 사전 해결 등이 그것이다.
- 음력은 양력에 비해 훨씬 非과학적이다. 그럼에도 한국인은 왜 음력을 그렇게 좋아하는가? 그것은 한국인이 ‘迷信’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결혼할 때 四柱/宮合을 본다든가, 移徙할 때 方位/날짜를 잡는 것 등은 물론, 심지어 정치인이 選擧에 出馬하거나 기업가가 신규 투자를 하는 등의 경우에 한국인은 사전에 점쟁이한테 물어보고 결정할 만큼 ‘迷信’을 좋아한다. 점쟁이는 음력으로 점을 친다. 우리가 음력을 시급히 폐기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 하루의 계획은 아침에 하고 한 週의 계획은 월요일에 하듯이, 1년의 계획은 정월 초하룻날에 한다. 따라서 한 해의 시작일(初日)은 마땅히 하루라야 한다. 굳이 음력 초하룻날을 기념하려면 ‘설(舊正)’로 할 것이 아니라 秋夕이나 端午처럼 名節로 하면 된다. 중국의 ‘春節’처럼 말이다(중국 春節은 설이 아니고 명절이다).
- 이 경우 음력설을 하나의 名節로 쇠기 위해서는 우선 이름을 지어야 하고(중국 ‘春節’ 처럼 우리도 ‘立春節’이나 ‘迎春節’ 같은 식으로), 또 지금 같이 歲拜나 祭祀를 해서는 안 된다. 새 해를 맞아 굳이 祖上에게 禮를 올리고자 하면 양력설에 하면 된다. 忌祭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모든 삶의 기준을 陽曆으로 통일해야 한다는 것이 지금 한국사회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다.
5. 맺는말
- 한국은 지금 음력설과 秋夕 두 번의 ‘民族大移動’ 행사(?)를 치르고 있다. 소위 歸省人波로 인해 全國의 도로망이 1년에 두 번씩 엄청난 紅疫을 치르고 있다. 이 얼마나 한심스런 작태인가? 과거 農耕시대에나 있을 법 한 이런 都市 大탈출극(exodus)은 이제 마땅히 없어져야 한다.
- 그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迷信‘에 기대는 한국인의 생활폐습을 뜯어고쳐야 하고, 또 그를 위해서는 祖上에 대한 낡은 祭祀문화도 火葬 시대에 맞게끔 革新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둔다. (이상)
※ 오늘의 時事問題 :
― 司法府의 “MBC PD수첩” 無罪 判決, 무엇이 문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