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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가을학기에 졸업한 최모씨는 토익성적이 990점 만점에 920점이다. 영어로 의사소통에 있어 문제될 것이 없는 정도의 점수지만 그는 영어면접에서만 수차례 고배를 마시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최씨는 “토익 900점 넘는 친구들 중 자유롭게 의사소통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되겠나. 토익 점수 900점 넘기려고 1년을 넘게 매달려서 얻은 점수인데 인정받지 못하는 게 너무 속상하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신입사원 채용 시 토익성적을 신뢰할 수 없다며 자체 영어시험으로 이를 대체하겠다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토익성적이 730점을 넘을 경우 어떤 상황에서도 적절한 대화를 할 수 있으며, 860점을 넘어서면 아무문제 없이 충분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토익 900점이 넘으면서도 영어 면접시험에서 간단한 질문에도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는 지원자가 허다하다. 그만큼 시험성적과 실제 영어구사능력은 별개라는 게 인사담당자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A기업의 한 인사담당자는 “한국 학생들의 영어 성적은 높지만 활용능력은 떨어진다는 비판은 예전부터 제기돼온 만큼 작년부터 토익시험은 하나의 참고일 뿐 당락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기업 자체 영어시험으로 신입사원을 채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적은 높으면서도 영어소통이 전혀 이뤄지지 못하다보니 토익점수를 믿지 못하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초등학교 과정부터 대학까지 10년 넘게 영어교육을 받고 1년에 6조원이 넘는 사교육비를 쓰면서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학생 김모(여,24)씨는 “아무래도 고등학교 때까지 입시위주의 영어교육으로 10년여를 교육받다 보니 영어를 하나의 언어수단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시험 성적에만 치중하는게 대부분인 것 같다. 그렇다보니 토익도 마찬가지로 성적은 높지만 이에 따른 실력은 없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며 입시위주의 교육을 원인으로 꼬집었다.
실제로 영어 교사들을 대상으로 실용 영어교육 실태를 조사한 결과 대학입시 제도가 존재하는 한 수능 준비 영어 교육 때문에 일선학교에 자율적인 영어 교육을 맡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일선 고등학교에서 영어과목을 담당하고 있는 이남희 교사는 “교육과정상에는 영작문 지도를 비롯해 실용영어를 가르치도록 명시하고 있으나 대학입시 준비 때문에 독해와 문법 중심의 수업을 근본적으로 바꾸기는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 교사는 “근본적으로 입시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현재 영어교육에서 나아질 것은 전혀 없다“면서 ”무엇보다 이미 초.중등 때 학생들 영어능력의 격차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고등학교로 진학해도 한 반에서 같은 교육과정으로 수업을 할 수밖에 없는 평준화교육도 이 같은 결과를 초래하는 또 다른 원인“이라 진단했다.
즉 현재 입시교육 위주의 교육정책으로는 성적위주의 영어교육에서 나아질 수 없다는 것이 일선 교사를 비롯해 전문가들이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는 영어교육의 한계라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교육인적자원부는 지난 8월 오는 2009년부터 현행 제7차 교육과정의 문제점을 수정 보완해 단위 학교차원의 수준별 수업을 내실화하겠다는 내용의 교육과정 수정 고시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실용적이고 자연스러운 영어교육을 실시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 말하기, 쓰기 등 표현기능과 관련된 성취기준을 구체적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선 교사들은 교육부의 이번 방침에 회의적인 반응이다. 발표 내용은 이미 몇 차례 교육정책으로 제시했던 내용들로, 말만 바뀌었을 뿐 구체적인 해결방안은 여전히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쓴소리를 가했다.
영어교육에 있어 가장 큰 문제점은 입시위주의 교육정책이다. ⓒ프리존뉴스
초등학교 교사 김미선씨는 “정부가 발표한 교육정책이 실현되려면 아마 정부예산의 대부분을 교육정책에 쓰지 않는 한 불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사는 이 같은 이유로 우선 교사의 증원이 현재의 두 배 이상은 돼야 가능할 것이며 학습교구 즉 시청각 교재와 교구예산에도 엄청난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수준별 수업 운영을 위해 아무리 일선 학교에 자율성을 부여해봤자 실현 가능성이 희박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들도 영어교육의 해결방안으로 일선 교육 현장의 교육 여건과 시대적인 요청을 감안, 시험위주의 교육정책이 아닌 실용 영어 교육 정책 수립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즉 교육 현장요구에 부응하는 정책만이 가장 시급히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라면서 교육정책의 해결과제로서 우선 입시제도의 수정을 들고 있다.
실제로 중·고등학교 교육이 대학입시와 맞물려 있는 현실에서 영어교육은 시험대비용으로 전락, 학생들은 대학이 요구하는 수준의 독해·작문 능력에는 크게 미치지 못할뿐더러 사회가 요구하는 소통능력도 갖추지 못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원인이 입시위주 교육정책인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회화 중심의 소통 능력은 초등영어, 중학영어에서 완결 짓고 고등학교 이후에는 대학에서 필요한 고급 지식의 습득과 표현을 위한 읽기와 쓰기 능력위주의 교육으로 전환해 학생들이 입시위주의 영어교육 부담을 덜게 하는 것이 시급한 당면과제라는 것이다.
이를 위한 방안으로 현실적으로 지적되고 있는 영어전담교사의 부족문제는 인턴교사제나 자원봉사제를 도입함으로써 천문학 적 예산을 들이지 않고도 질적 교육을 높일 수 있다고 제시하고 있다.
교육학 박사 김은미씨는 "국내 대학(원)생 중 외국에서 살다온 학생들을 비롯해 중등교육의 회화정도를 다룰 수 있는 인재는 전국적으로 상당 수에 달할 것"이라면서 교사부족의 현실적인 문제의 대안으로 대학(원)생의 인턴교사 및 자원봉사제 도입을 제안했다.
실제로 현재 대학에는 특별전형으로 모집한 영어권에서 거주한 대학(원)생이 상당수에 이르고 있어 이들을 정규 수업이 아니라 한정된 역할을 수행하는 보조교사로 활용한다면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김 박사는 "이 같이 공교육 수준의 질을 높임으로서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 저소득층 자녀의 교육격차를 해소할 수 있으며, 동시에 사교육비 절감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며 영어교육의 내실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기업수준으로 커지고 있는 영어학원들과 각종 학습지, 그리고 테이프 등 교재 시장까지 합칠 경우 우리 영어 산업규모는 5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여기에다 해외 어학연수비용까지 보태면 한 해 6조원 이상의 돈이 영어만을 위해 투입되고 있다.
경제의 글로벌화가 심해지고 국제표준어로서의 영어의 위치가 더욱 확고해져가는 상황에서 영어능력을 키우는 것은 이제 생존의 조건이다. 그러나 이런 엄청난 돈과 시간, 그리고 노력이 영어능력 향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단순한 시험성적 올리기에 사용되는 우리의 현실에서 정부는 탁상공론에 그칠 것이 아니라 교육 현장에서 요구하고 있는 일선교사들의 목소리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되짚어봐야 할 것이다.
첫댓글 영어는 어려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