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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3월 7일 국무회의를 개최, 영화진흥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현행 146일인 스크린쿼터의 50% 축소를 강행했다. ‘한미 FTA 저지와 스크린쿼터 사수’를 천명한 영화계뿐 아니라 농민, 교수, 시청각분야 종사자, 문화예술분야 종사자, 교육학부모단체, 보건의료단체들이 연일 한미 FTA 결사 반대를 외치며 4월 범국민대책위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 국가 간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을 위해 모든 무역 장벽을 제거시키는 협정인 자유무역협정(FTA), 왜 이들은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을 반대하는가? 대미 무역협정에 있어 늘 영화와 한 쌍을 이루던 자동차와 비교하며 현재 스크린쿼터의 이슈를 되짚는다.
1994년 5월 17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가 당시 김영삼 대통령 앞에 올린 보고서는 여느 보고서와는 달리 전 국민이 그 내용을 오래도록 잊지 못했다. 6천 5백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인 할리우드 영화 <쥬라기 공원> 한 편이 1년간 벌어들인 흥행 수익이 한국 자동차를 150만 대 수출해 벌어들인 수익인 약 8억 6천만 달러와 맞먹는 수준이라는 것이었다. 한국의 자동차산업은 수출 1위, 무역흑자 1위, 고용 창출 1위의 효자 산업임에도 불구하고 1993년 전 자동차업계가 수출한 물량은 150만 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64만 대였다. 반면 1997년 5월 30일자 'LA타임스'가 업계 관계자를 정보원으로 공개한 <쥬라기 공원>의 총 수익 추정치는 테마 파크 수익을 제외하고 약 25억 6천만 달러, 현재 환율로 약 2조 5천 6백억 원인 셈이다. <쥬라기 공원>의 생산원가는 불과 650억 원이었다.
영화와 자동차, 자본주의의 꽃
영화와 자동차는 20세기 자본주의가 낳은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대표적 상품이다. 영화가 상품이 아니라 정신이자 혼이라고 말하는 것은 자동차가 쇳덩어리라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어불성설이다. 자동차는 제조업 부문의 어느 상품보다 문화적인 가치가 크다. 인간의 시공간적 체험과 사회적인 위치를 재구성하는 자동차는 원산지와 브랜드, 모델마다 각기 다른 상징과 취향을 드러낸다. 우수한 승차감과 핸들링은 때론 감동까지 안겨준다. 그러나 자동차는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공산품이다. 원천기술이 있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다면 동일한 품질의 상품을 싸게 많이 만들 수 있다. 반면 영화는 소품종 대량생산을 하는 것도 아니고 다품종 소량생산을 하는 것도 아닌 개별 영화 한 편 한 편이 다른 목적과 다른 방법으로 생산되는 프로젝트형 상품이다. 자동차는 생산 원가와 소비자 만족도가 정비례하지만 영화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17억 원짜리 이탈리아 스포츠카 마세라티와 2천만 원짜리 뉴 EF 소나타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당연히 마세라티라고 답할 사람이 대부분이겠지만, 2천 7백억 원짜리 <킹콩>과 46억 원짜리 <왕의 남자>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대답은 달라질 수 있다.
일찍이 김명곤 문화관광부 장관 내정자가 한 칼럼에 썼듯이 “영화는 다른 예술 장르에 비해 창작에 소요되는 비용이 몇 십 배 혹은 몇 백 배에 이르기 때문에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이 구사되고 치밀한 마케팅이 무엇보다 중요시된다. 문제는 영화가 자동차나 전자제품과는 전혀 다른 상품이라는 데 있다. 영화는 기계적인 생산과정과 함께 창조적인 아이디어와 열정, 인생에 대한 통찰 등 수치로 계산할 수도 없고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도 없는 고도의 지적, 정서적 작용이 복합된 결과로 탄생된다”(한국일보, 1998년 3월 28일 자). 영화의 생산 요소에는 자본이나 기술뿐 아니라 감독과 배우 등 창의적 인자가 가지고 있는 언어, 세대, 인종, 민족, 지역성 등이 포함돼 있다. 농산물이 아니면서도 생산지 날씨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영화를 상품이지만 문화 상품이라고 한다. 국가 간의 교역에 있어 상품은 비교우위론에 입각해 유리한 것은 만들고 그렇지 않은 것은 사오는 게 이득이라는 게 자유시장경제의 골자다. 하지만 문화 상품은 비교우위에 있는지 아닌지가 유일한 생산 기준은 아니다. 영화학자 강한섭은 “문화 상품의 중요성은 그 시장 크기에 있는 게 아니라 한 국가가 자국의 국가 정체성을 이미지로 시각화하고 이야기로 재구성하기 위해 얼마나 큰 자원을 동원할 수 있고 그것을 운용하는 효과적인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가 없는가를 결정하는 데 있다”(<한국의 영화학을 만들어라>, 1994)고 지적한 바 있다.
미국의 기간산업인 미국영화의 전 세계 시장점유율은 약 85%이며, 이중 할리우드 6대 메이저 스튜디오의 점유율은 약 80%다. 미국영화, 그중에서도 할리우드영화의 전 세계 시장점유율은 단일 상품 최고 수준이다. 예를 들어, 전 세계 도로에 GM이나 포드, 클라이슬러 등의 미국 자동차만 85%가 깔려 있다는 상상을 해보자. 아무리 공산품이라 해도 아찔하지 않은가. 그런데 교역은 물론이고 교류의 차원까지 검토돼야 할 문화 상품인 영화가 85%라는 높은 비율로 독과점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영화의 중심 할리우드가 있는 캘리포니아 주를 한 국가로 보고 주내 총 생산을 산출했을 때, 캘리포니아 주는 이미 1998년 총 생산 1조 달러, 세계 7위에 해당하는 규모를 넘어섰다.
한국영화와 한국자동차의 경쟁력
반면 한국영화의 전 세계 시장점유율은 1999년부터 2003년까지 5년 평균 약 2%다. 한국영화의 국제 경쟁력은 거의 없다. 같은 기간 한국영화의 자국 시장점유율은 약 45%다. 한국영화의 내수시장 경쟁력은 분명히 있다. 한국영화의 미국시장 내 시장점유율은 0.1% 미만이다. 한국영화의 미국시장 경쟁률은 거의가 아니라 아예 없다. 같은 기간 미국영화의 전 세계 시장점유율은 약 85%, 자국 시장점유율은 약 95%, 한국 내 미국영화 시장점유율은 약 40%다. 이번에는 자동차를 시장을 비교해보자. 전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미국차의 시장점유율은 약 25%로 1위다. 한국은 약 7%로 7위 정도다. 한국차의 미국시장 내 점유율은 약 4%, 미국차의 한국시장 내 점유율은 약 1%다. 놀랍게도 문화 상품인 영화에 비교해 공산품인 자동차가 상대적으로 호혜적인 교역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지난해 한국영화 자국 시장점유율은 59%로 올라섰고, 한국 내 미국영화 시장점유율은 36%대로 떨어졌다. 한국영화의 경쟁력이 충분히 있다는 근거로 인용되는 수치지만 영화산업의 독과점 구조와 한국영화의 전 세계 시장점유율을 고려해볼 때 한국영화의 경쟁력이란 지극히 과대평가된 면이 있다. 지난 2월 2일 열린 ‘스크린쿼터 사수 영화인 대책위 투쟁 선포 기자회견’에서 양기환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사무처장은 “그렇다면 스크린쿼터제를 영원히 유지하자는 말인가?”라는 한 기자의 질문에 “미국영화 전 세계 시장점유율이 50% 이하로 떨어지거나 한국영화 미국 시장점유율이 20%라도 되면 고려해보겠다”고 답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보호 무역의 핵심이자 대표적인 제도는 관세다. 관세는 경쟁을 하되, 최소한의 ‘공정한’ 경쟁을 하기 위한 제도라 할 수 있다. 수입 자동차는 대당 약 8%의 관세가 매겨지고, 이는 소비자가격에 그대로 반영되므로 일정한 구매억제 효과를 낳는다. 그러나 영화는 수입가격이 아닌 필름의 복사 가격인 프린트 1벌 당 3백만 원을 기준으로 붙는다. 그마저도 영화관 티켓 가격에는 반영이 안 되므로 소비자에게 관세로 인한 구매억제 효과는 거의 없는 셈이다. 관세를 통한 보호무역이 불가능한 것이 영화 상품의 특성이다. 원본 한 편을 여러 벌의 복사본으로 뜬 다음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2시간 정도의 관람 시간을 점유한 대가로 돈을 내기 때문이다. 때문에 극장의 연간상영일수의 일부를 자국영화로 상영하도록 하는 스크린쿼터제는 영화라는 상품의 특성에 맞게 고안된 보호무역 제도이자 영화산업의 할리우드 독과점 지배를 완화시키는 반(反)독점 제도인 것이다.
지난 2000년 한국영화사 최초로 미국 최대 벤처 자본 중 하나로 꼽히는 워버그핀크스로부터 3천만 달러의 외자를 유치한 시네마서비스의 경우 '향후 5년간 스크린쿼터 보장'이 투자의 조건이었다고 한다. 워버그핀크스는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 중의 하나인 20세기폭스의 대주주이기도 했으며, 미국 내 극장산업에 5천만 달러를 투자한 경험도 있다. 이러한 영리한 자본이 스크린쿼터를 전제 조건으로 당시 한국영화 최대의 제작, 배급사인 시네마서비스에 이익을 보겠다고 투자한 것은 영화산업의 핵심이 원본 제작이 아닌 유통에 있으며, 스크린쿼터제가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 할리우드영화와의 완전 경쟁을 피하고 한국영화의 상영을 보장하는 장치로 유효하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문화 협약, 미국과 이스라엘만 반대한 이유
지난해 11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33차 유네스코 총회에서는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을 위한 협약, 즉 문화 다양성 협약이 채택됐다. 문화 다양성 협약은 문화 상품의 사회, 문화적인 상징성을 인정하고 국제법 차원에서 문화 약소국의 다양성을 보호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 의한 각국의 문화 주권, 문화 자율성 침해가 우려됐던 바, 지적재산권을 교역 품목에 포함시킨 WTO 체제 출범 이후 이 문제가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문화 다양성 협약은 5조와 6조를 통해 자국 내에서 문화 표현의 다양성을 보호 및 개선할 수 있도록 각국이 채택한 정책 및 방안을 합법적으로 인정했다. 한국의 스크린쿼터 등이 이에 해당된다. 또 20조에서는 당사국은 이미 가입한 기타 협약을 해석하고 적용할 때, 혹은 국제 협정에 가입할 때 본 협약의 관련조항을 고려한다고 명시했다. 지금 한국과 미국이 맺으려고 하는 FTA의 경우도 문화다양성 협약을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협약은 찬성 148표, 반대 2표, 기권 4표로 채택됐다. 반대표를 던진 국가는 미국과 이스라엘 딱 두 나라지만 따지고 보면 결국 한 나라다. 할리우드를 이끄는 세력이 유대인이니까. 2002년 기준으로 문화산업 순이익 600조 원 중 절반을 해외에서 벌어들인 미국은 18년 동안 자리를 비웠던 유네스코에 복귀해 28개 수정조항을 내놓으며 끝까지 협약 채택에 저항했다. 미국의 국무장관인 곤돌리자 라이스는 총회에 참석한 각국 대표에게 서한을 보내 협약 채택을 늦출 것을 촉구했지만 결국 협약은 통과됐다.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는 부동산 정책, 조세 정책 등이 줄줄이 실패하자 임기 내 가시적인 경제성과를 위해 한미 FTA의 조속한 체결을 남은 임기 동안 국정 최대의 과제로 발표했다. 미국은 FTA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현행 스크린쿼터 일수의 절반 축소를 요구했고 우리 정부는 지난 1월 26일 기습적인 축소 발표에 이어, 3월 7일 국무회의에서 영화진흥법 대통령 시행령 개정을 통해 스크린쿼터 절반 축소를 강행했다. 미국에 'NO'라고 말할 수 있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언한 노무현 대통령은 협상 전 지시나 다름없는 미국 측의 스크린쿼터 축소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면서, 우리 정부의 협상력 부재를 장밋빛 전망으로 호도하고 있다. “한미 FTA가 체결되면 자동차, 전자 업종의 미국시장 진출로 총 생산이 늘어나고 고용이 증대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도 각 분야별 대차대조표를 내놓거나 여론 수렴을 위한 공청회조차 제대로 열지 않았다. 정부는 우리나라가 대미수출의존도가 높은 나라이기 때문에 한미 FTA 체결이 불가피하다면서, 대미 수출 비중이 가장 높은 자동차 수출이 낮춰진 관세로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주장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현대자동차의 앨라배마 현지 공장 건설의 예에서 보듯 국내 자동차산업의 미국 현지 생산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어 과연 FTA로 얻을 수 있는 득실이 어느 정도일지 의문은 더 커진다.
한미 FTA의 불안한 출발
군부 독재시대 한국에서 자동차산업이 국가기간 산업으로 각종 특혜와 지원을 받는 동안 한국영화는 산업의 꼴을 갖추지 못하고 검열의 대상이자 국책홍보의 수단으로 격하되어왔다. 극장은 질 나쁜 쾌락의 제공되는 유흥장으로, 영화인은 딴따라로 취급되었으며 문화적 가치에 대한 평가는 지극히 야박했다. 3S 정책을 폈던 전두환 대통령의 신군부는 경제부흥으로 광주민중항쟁의 원죄를 씻고자 1985년 대미 자동차 협상을 시작했다. 그리고 협상 시작 불과 3개월 만인 1985년 12월 1차 한미영화협상을 타결 지어 한국자동차의 대미 수출을 위해 어느 분야보다 빨리 한국 영화시장을 개방했다. 그래서 영화인들은 한미영화협상을 ‘포니’ 차 협상이라고 불렀다.
<쥬라기 공원>의 쇼크 이후 김영삼 문민정부와 김대중 국민정부는 ‘영상산업국부론’이나 ‘21세기는 문화의 시대’ 등의 슬로건을 내세우며 영화에 관심을 보였지만 그것은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부상한 영화를 정치적 포퓰리즘으로 이용하는 차원에서 그칠 뿐이었지 프랑스, 캐나다 등 많은 나라들이 국제 협상에서 문화적 예외를 관철시키기 위해 보인 태도와는 다른 것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한미 FTA협상 과정에서 보여준 태도는 지극히 실망스러운 것이다. 대선 공약을 어겨서만이 아니다. 스크린쿼터 50% 축소를 강행한 국무회의는 노무현 대통령이 해외 출타 중이었을 때 열렸고, 집권당인 열린 우리당 당의장 정동영 의원과 정동채 전 문화관광부 장관은 서울시극장협회 측과의 간담회를 통해 극장 측이 “스크린쿼터를 축소해도 극장이 자율적으로 106일 선을 지키겠다”고 말했으니 안심하라는 뜻을 영화계에 전했다. 권태신 재경부 제2차관은 “한미 FTA와 관계 없이도 스크린쿼터는 폐지돼야 한다”거나 “그렇게 애국적인 사람들이 BMW, 벤츠는 왜 타고 다니나?”등 부적절한 발언으로 영화계의 반발을 샀다.
현 정부의 표현대로 기껏해야 2만 명도 안 되는 영화산업 종사자의 배신감을 위해 시비를 가릴 생각은 없다. 다만 우리 정부가 한미 FTA 협상 개시 전에 12개 쟁점 중에서 최대 쟁점이던 쇠고기 수입재개, 자동차 배기가스 기준완화, 의약품 약값 산정 문제, 그리고 스크린쿼터 등 4개 쟁점을 모두 양보해버리면서 국민의 건강주권, 환경주권, 건강주권, 문화주권을 스스로 포기하며 최악의 상대라는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로 가고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3월 7일 한국경제의 보도에 따르면 현재 정부는 미국, 캐나다, 아세안 등과 동시다발로 FTA 협상을 벌여놓아 전문인력 부족으로 5월 한미 FTA 본 협상이 시작될 때까지도 공식 협상단이 구성되기 어려울 전망이라고 한다. 미국의 협상단은 139명으로 모두 한 분야를 5~10년 씩 다룬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한국은 인력난으로 “새로 사법연수원생을 뽑아 2~3개월 훈련시켜 교체 보강할 계획”이라고 김종훈 수석대표가 말했단다. 국제화에 뒤떨어지지 않으려면 절대 맺어야 한다는 한미 FTA, 과연 최선의 선택인가? 또한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사진 김태일, 고아영 기자
한승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