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
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
가포(稼圃) 임상옥(林尙沃)은 정조 3년인 1779년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났다. 고향 의주에 본거지를 둔 만상에 사환으로 들어가면서 장삿군이 된 그는 본점 서기를 거쳐 도방이 되었고, 나아가 최고 경영자인 대방의 지위에 올랐다. 대방이란 오늘날로 말하면 재벌 그룹의 총수와 같다. 당시 이조판서였던 박종경의 정치적 배경을 이용해 국경지대에서 인삼교역에 대한 독점권을 확보한 다음 무역을 시작하였고, 1821년 변무사를 수행하여 청나라에 갔을 때는 베이징 상인들이 담합하여 인삼 불매운동을 벌이자 특유의 기지와 배포를 발휘, 동맹을 타파하고 인삼을 원가의 수십 배에 팔아 막대한 돈을 벌어들인다. 마침내 그는 조선 상계를 이끄는 지도자가 되었으며, 당시 사람들은 그가 조선 제일의 부자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농민보다도 천하게 여기던 시대에 정조는 그를 1832년 곽산군수에 임명했고, 3년 후인 1835년에는 구성부사로 발탁했다. 이런 파격적인 등용을 비변사들이 논척하자 사퇴한 후 빈민구제와 시주(詩酒)로 여생을 보냈다고 하는데, 가포집이라는 문집을 만들었다는 기록은 있으나 전해지지는 않는다. 신분상으로는 천한 장사치였지만 뛰어난 상술로 돈을 많이 벌었고, 자신이 일군 재물을 아주 잘 썼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큰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행장을 알려주는 문헌은 미미하다. 최인호는 고작해야 A4용지 한 장 분량 정도밖에 되지않는 간략한 기록을 토대로 하여 임상옥을 주인공으로 하는 5권의 대하소설 '상도(商道)'를 집필하였다. 그리고 mbc에서는 그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50부작의 대하사극을 제작 방영하였다. 상당 부분이 픽션에 의존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가령 소설이나 드라마에 다같이 등장하는 계영배 라는 전설적인 술잔만 해도 실존하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으나 사실은 전해오지 않는다.
진위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소설이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임상옥은 이재를 추구하는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장사치가 아니라 존경할 만한 인물로 묘사되었다. 그가 훌륭한 것은 상업적 수완이 뛰어난데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렇게 벌어들인 돈을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데 사용했기 때문이다. 99마지기를 가진 부자가 1마지기를 가진 사람으로부터 그것을 빼앗아 100마지기를 채우고, 벼슬아치들은 백성이야 헐벗고 굶주리거나 말거나 가혹하게 세금을 징수하고 고리 환곡변으로 고혈을 짜느라 혈안이 되어 있던 때, 그는 굶주린 사람들에게 저리의 빚을 주었다가 그것을 모두 탕감해 주는 식으로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
그는 말했었다.
"장사란 이익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다."
돈은 돈이 벌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자본금이 없으면 장사를 시작할 수 조차 없으니 돈없으면 돈을 벌 수 없다는 논리가 틀리다고 할 수는 없지만, 돈은 돈이 버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벌어 드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사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이윤이 사람이라는 논리는 타당한 것으로 여겨진다.
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
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
그가 좌우명으로 삼았다는 글이다.
글자 그대로를 해석하면 재산은 흐르는 물과 같고 사람은 곧기가 저울과 같다는 말인데, 곰곰 되새겨 보아도 뜻을 온전히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재상평여수는 모름지기 재산은 물처럼 흘러가는 것이기에 돈을 궤짝에 숨겨 두거나 장독에 넣어 땅속에 파묻어 두는 식으로 사재기를 하면 흐르지 않는 물이 썩듯 폐단이 생긴다는 의미로 여겨진다. 재물은 모우기도 어렵지만 물처럼 흘려보내기도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벌기보다 쓰기가 더 어렵다는 말이 생긴 것이다. 달러가 없는 것이 아니라 환율이 더 오르기를 바래 국가는 환란 위기에 처하거나 말거나 환차액을 챙기려는 사람들이 있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돈을 번 다음 남이야 굶어죽던 말던 나만 배부르면 그만이라는 졸부들은 한번 거머쥔 재물을 물처럼 흘려보내지 않는다. 극도의 이기주의가 나라 살림 전체를 구렁텅이로 몰아 넣고 있는 셈이다. 더불어 살려고 하면 무한한 복록의 근원이 되는데 쌓아두고 흘려 보내지 않으니 전체를 파멸시키는 독으로 변하고 만다.
인중직사형, 사람은 곧기가 저울과 같다니 이것은 무슨 말인가.
사람을 저울로 달았을 때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저울대가 곧다는 것은 저울 위에 몸무게가 아니라 인격을 올려 놓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포 인상옥은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생각을 가졌던 현자라고 할 수 있다. 귀천과 빈부에 걸림이 없이 평등해야 한다는 인본주의는 홍익인간의 이념과 도 맞닿아 있다. 상반의 구별이 엄연하여 상놈은 양반이나 벼슬아치들에게 이리 채이고 저리 치이던 시대에 귀천이 따로 없다는 것을 알아 자기가 이룬 부를 나누고 베풀었던 임상옥은 분명 재물을 쫒던 장사치가 아니라 사람을 경영한 실학파의 꽃이다. 공맹을 추종하는 사대주의자들이 나라를 도탄에 빠트렸던 시대의벽을 넘어 인천의 사표로 우러를만한 실천적 사상가가 된 큰어른이 좌우명으로 삼음직한 명구라고 여겨 진다. .
아쟁 박대성, 장구 박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