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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로운 소망을 가지며
강 영 택 (서울 동북고)
1992년 서울의 어느 신학대학에서 교육을 위한 대화 모임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잊을 수 없는 중요한 두 가지 간증을 들었다. 하나는 30년이 넘도록 교육학을 연구하고 후세 교육을 위해 한평생을 바쳐온 노 교육학자의 고백이었다. 그 분은 대학에서 교육학을 연구하며 미래의 교사를 교육하는데 진력했으며, 보다 질 높은 학교 교육을 위해 우리 나라 최초로 교육대학원을 설립하였고, 나아가 외국의 선진 교육이론을 들여와서 우리 나라의 학교 교육에 적용할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한국교육개발원이라는 거대한 연구소를 개설하는데 앞장을 서기도 했단다. 그러나 그분은 정년 퇴직을 앞두고 가만히 우리 사회와 교육 현실을 생각해 볼 때 이전에 비해 나아진 것이라고는 별로 발견할 수 없는 현실 앞에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우리 나라의 교육 문제는 결국 복음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복음적 진리 위에 교육을 세워 나갈 때만 우리 나라의 교육은 우리 나라의 미래를 밝힐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그러한 일을 위해서 조그만 기독교 교육 연구원을 설립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어느 장소에서 한 미국 할아버지를 만났던 이야기였다. 그 할아버지는 한국에 대해 잘 알지도 모르는 미국의 시골 할아버지였단다. 그런데 어느 날 꿈속에서 하나님께서 나타나 한국이라는 나라로 가서 이 메시지를 꼭 전하라는 말씀을 듣고 어쩔 수 없이 한국에 오게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 내용은 두 가지였다. 한국 교회가 고아와 과부를 돌보지 않는 죄악과 한국 교육의 문제에 무관심한 죄악을 회개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이 두가지문제를 회개하지 않으면 한국은 돌이킬 수 없는 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리라는 메시지였다. 교육의 문제가 단순히 일반 사회의 문제일 뿐 아니라 한국 기독교인 모두의 심각한 문제란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
이상의 두 가지 이야기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대단히 중요한 교훈을 제시해 준다. 우리 나라 교육의 현실에 대해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참여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특별히 교육의 현장에 서 있는 기독교사인 우리는 성경적 교육개혁의 최전선에 서 있어야 할 자들이다. 성경적 세계관과 기독교교육에 대해 먼저 알게 된 우리가 현실적 장벽에 부딪혀 그 사명을 수행하지 못하고 좌절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나라 교육의 황폐함의 책임을 우리에게 물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한국 교육의 진정한 변화를 이루어내야 하는 막연한 책무만 주어져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이들이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교육의 분명한 목표와 개혁의 방향을 우리는 성경의 계시를 통해 알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우리 나라에 근대 교육이 도입된 이후 얼마나 많은 교육개혁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가? 대통령 직속에 교육개혁 위원회를 두고 제대로 된 교육을 실현해보고자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 왔는가? 문민정부 이후 계속되고 있는 교육개혁은 과히 혁명적이라 할만큼 강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학교 현장에서 느끼는 교육의 변화는 과연 얼마나 되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과거에 비해 오늘날 우리 학생들의 삶이 얼마나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이 없으면 백성이 방자하게 행하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잠29:18). 이 말씀은 우리나라 교육이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가를 분명히 보여준다. 성경적 진리만이 풀리지 않는 한국 교육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으며 우리 사회의 앞길을 바르게 열어줄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성경에 바탕을 둔 기독교 교육으로 한국 교육을 개혁하고자하는 소망을 갖는다. 그런데 다행한 것은 서구사회에서도 이미 우리와 유사한 과정을 거쳤다는 사실이다. 기독교 정신으로 시작한 서구 사회와 학교가 세속화되어 문제 투성이가 되었을 때 믿음의 선각자들은 먼저 학교를 바꾸어 나갔던 것이다. 무신론적이며 인본주의 학교를 하나님의 진리를 토대로 한 학교로 변화시키기 위해 그들은 자신의 삶을 헌신하였다. 이러한 기독교 학교 운동은 서구 교회의 부흥을 꾀하고 있고, 서구 사회의 미래를 밝히는데 공헌해 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여기서는 우리에게 좋은 모범이 되는 서구 사회의 기독교 학교 운동에 대해 먼저 살펴본 뒤 이와는 다르게 전개된 우리 나라에서의 기독교 학교에 대해 고찰하겠다. 그리고 나서 그것을 토대로 하여 우리 나라에서 기독교 학교 운동이 왜 필요하며 한국 사회를 변화시키는 기독교 학교 운동이 되기 위해 해결해야 할 우리의 과제가 무엇인지 논의하고자 한다.
2. 외국에서의 기독교 학교 운동
미국이나 호주의 경우 국가의 설립 자체가 기독교 신앙의 유지와 관계가 있는 만큼 학교도 초기부터 기독교 정신에 기초해 있었다. 그러나 역사의 진행에 따라 학교는 세속화의 길을 걷게 되었고, 그에 따라 학교는 많은 문제점들을 양산하게 되었다. 이에 20세기 들어 새로운 기독교 학교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먼저 호주의 경우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1993년은 호주의 기독교 학교 건립 200주년이 되는 해였다. 호주의 기독교 학교는 호주의 역사와 거의 맞먹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실제 내용은 전혀 그렇지를 못했다. 대부분의 교회들은 기독교 학교를 포기한 채 국가가 학교를 독점해 왔으며 카톨릭 교회만이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러다가 기독교 학교가 새롭게 생겨난 것은 최근인 1960년대에 들어와서였다. 화란에서 기독교 교육을 받아온 세대들이 호주로 이민 온 후 호주의 공교육에 대해 불만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학교를 포함하여 세상의 모든 사물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인정하기를 원했고, 그들 자녀들을 올바르게 양육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부여한 가장 중요한 책무란 사실을 기억했다. 그래서 그러한 신앙고백을 실천하기 위해서 8년에 걸쳐 기도하며 기금을 모으고 준비한 끝에 1962년 드디어 첫 기독교 학교를 탄생시켰다. 이것이 현재 호주의 두 개의 커다란 기독교 학교 흐름 중 하나인 ‘학부모 운영의 기독교 학교’(Christian Parent Controlled School)의 시작이다. 이들 기독교 학교들은 개혁 교회와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도 그 설립과 운영은 여러 종파의 배경을 가진 기독교 학부모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1970년대 정부의 재정 지원에 힘입어 급속한 성장을 보여 1997년 현재 74개 학교에 20,000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는 호주의 대표적인 기독교 학교 연맹으로 성장했다. 학교의 기본 정신을 발전, 계승시키기 위하여 매년 교사와 이사회원을 대상으로 하는 전국 대회를 갖기도 하고, National Institute of Christian Education (NICE)라는 대학을 설립하여 기독교 학교의 교사를 양성시키기도 하고, 교육과정과 자료들을 개발하기도 한다. 그들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는 말씀에 순종하여 호주의 모든 청소년들을 변화시키려는 소망을 갖고 노력하고 있다.
호주의 또 하나 기독교 학교의 큰 흐름은 ‘기독교 공동체 학교’(Christian Community School)이다. 이들 학교는 학교교육이 부모들의 책무인 동시에 교회의 사역이라는 고백 위에서 설립되었다. 그래서 지역 교회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교회 구성원들에 의해 학교가 운영된다. 지금은 호주와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121학교, 22,500명 학생이 등록되어 있는 거대한 기독교 학교 연맹으로 자리잡은 기독교 공동체 학교(CCS)의 시작은 그야말로 대단히 보잘 것 없었다. 1974년, 전직 교사였던 두 명의 침례교 목사 Robert Frisken 과 Peter Hester는 일반 학교가 그들 자녀들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준다는 데 공감을 하고 그리스도 중심의 새로운 학교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주중에 사용하지 않는 교회 건물을 이용하여 자녀를 양육하는 가정과 협력한다면 그러한 학교 교육은 지역 교회의 중요한 사역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해 시드니에서 기독교 학교 설립을 위한 임시 위원회를 구성하였다. 그리고 2년 동안 학교로 사용할 교회당을 빌리고 헌신할 교사를 찾고 기독교 학교에 대한 이론적 기초를 세우는 등 준비를 해나갔다. 학교의 목표를 엡 4:15에 근거하여 학생 각자의 은사를 개발시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성숙에 이르게 하고, 교회와 지역사회 속에서 책임 있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봉사의 삶을 살게 한다는 목적을 분명히 세웠다. 드디어 1976년 14명의 학생으로 조그만 학교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학교에 대한 큰 계획을 갖고 계셔서 이와 유사한 기독교 공동체 학교들이 계속해서 생겨나기 시작했다. 곧이어 학교 관계자 훈련 프로그램이 생겨나고, 소속 학교들에 대한 소식과 기독교 교육에 대한 논문을 실은 소식지가 발간되었다. 그리고 Institute of Christian Tertiary Education(ICTE)를 설립하여 기독교 교육에 대한 학문적 연구와 교사 훈련, 교육과정 개발을 지속적으로 하게 되었다.
기독교 학교 운동에 헌신한 이들은 기독교적 정신에 기초하여 건립된 호주가 최근 인본주의와 무신론에 의해 침식당하고 있고, 특히 교육체제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음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기독교 학교를 사용하여 이러한 세속적 영향력을 대적하게 하며, 호주를 의롭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국가로 변화시키리라는 분명한 소망을 갖고 있다.
미국에서 기독교 학교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1636년에 설립된 미국 최초의 대학 하버드를 비롯하여 예일 대학, 프린스톤대학 등이 모두 교회에 의해 설립되었거나, 교회와 밀접한 관련하에 운영되는 학교였다. 그러나 18,9세기를 거치면서 위의 대학들은 급속도로 세속화 되어갔다.
미국에서 다시 기독교 학교의 부흥을 위해 노력한 무리들 중에 대표적인 사람들은 화란에서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미국으로 이민 온 자들이었다. 그들은 개혁주의 신앙을 바탕으로 19세기 중반부터 기독교 학교를 설립하여 자녀들의 순수한 신앙 유지라는 목적을 위해 교회를 통해 학교를 운영해 갔다. 또한 이들보다 조금 늦은 시기에 화란의 신학자 Abraham Kuyper의 신학의 영향을 받은 이들은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확립하기 위해 기독교 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들은 국가나 교회에 의해 운영되지 않고 부모들이나 위원회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 특징이었다.
이들 학교들은 개혁주의 신학에 토대해 있었으며 개혁 교회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다. 그들은 기독교 학교를 발전시키기 위해 교사 교육과 기독교 학교들의 연합체 형성에 주력하였다. 먼저 교사 교육을 위해서는 개혁 교회에 의해 설립, 운영되고 있는 칼빈대학에서 기독교학교 교사 준비 과정을 운영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대학원 과정을 개설하여 교사들의 수준을 높이는데 주력하고 있다. 그리고 개별 학교에서 할 수 없는 중요한 일들을 수행하기 위해서 1920년 기독교 학교 연합이 창설되었고, 1979년 CSI(Christian Schools International)로 확대 발전하였다. 여기서는 북미 지역의 기독교 학교를 위해 교사 교육과 학부모와 교사를 위한 잡지 발간, 교재와 교육자료 개발 등을 하고 있다.
1983년 현재 CSI 소속의 기독교 학교들은 382개 학교, 74,541명의 학생들이 등록하고 있는 북미의 중요한 기독교 학교 그룹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이들 학교들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 역시 많다. 먼저 학교와 교회와의 관계 정립이다. 기독교 학교가 특정 종파적 성격만을 고집할 때 학교의 폭이 좁아지고 지원하는 학생들의 확보도 어려워질 것이다. 다음, 재정의 어려움이다. 대개의 사립 학교들이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독교 학교도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서 정부로부터 세금의 우대나 등록금 지원 등과 같은 재정 지원의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교육과정 개발과 관련된 문제이다. 기독교 학교의 설립 목적에 부합하도록 신앙과 학문이 통합된 교육과정 개발은 앞으로 계속 연구되어야 할 과제라 할 수 있다.
위에서 제시한 기독교 학교 흐름과는 성격이 다른 또 하나의 기독교 학교 운동은 근본주의적 개신교도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들은 미국 사회가 그 토대가 되었던 기독교 정신에서 벗어나 세속적 무신론의 영향하에 있음을 안타깝게 여겼다. 이들 기독교 학교가 학산 된 계기가 되었던 사건이 1962,3년 대법원에 의해 선고된 일반학교에서의 예배와 기도의 금지였다. 일반 공립 학교가 기독교 정신에서 멀어질수록 학교내 폭력이며, 마약 남용, 학문적 수준 하락, 성의 문란, 무능한 교사, 저급한 유행으로 가득찬 학교 문화 등의 문제들이 심화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녀의 교육을 국가에 맡길 수 없으며 부모들이 직접 책임을 져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학부모의 교육 참여는 기독교 학교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했다. 이들 기독교 학교 운동가들은 학교 교육이 국가에 의해 통제되거나 규제되어서는 안되며 학교 교육은 교회 사역의 연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현재 5,000-6,000개의 기독교 학교 중 90% 정도가 교회의 후원을 받고 있다. 이들 기독교 학교는 자녀들에게 구원의 확신을 분명히 심어주고 있으며, 세상과 구별된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고, 권위에 대한 순종, 애국심의 강조 등으로 미국 사회에서 그리스도의 군사로 살아가도록 가르치고 있다.
3. 우리 나라의 기독교 학교
우리 나라에서 근대 교육의 시작이 기독교 학교와 관계 깊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이다. 1885년 미국 북감리교회의 아펜젤러 선교사에 의해 설립된 배재학당을 최초의 기독교 학교로 본다면 우리 나라 기독교 학교의 역사가 110년이 넘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긴 역사에 비해 현재 우리 나라에 참다운 기독교 학교가 하나라도 존재하는가 하는 질문에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아무튼 지금 까지 우리 나라에 존재하고 있는 넓은 의미의 기독교 학교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겠다. 여기서는 다음과 같이 네 부류로 나누어 고찰하고자 한다.
첫째, 미션학교들이다. 이들 학교는 구한말 외국의 선교사들에 의해 건립된 이후 오늘날까지 비교적 활발하게 설립, 운영되고 있다. 대개는 교회가 설립, 소유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1995년 개교한 안산 동산 고등학교 역시 이 부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들 미션 학교의 공통적 특징은 예배, 기도의 시간, 성경수업 등을 통한 학생들의 전도와 신앙 성장을 학교의 중요한 사명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학교들이 많은 청소년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한 점은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받을 만 하다. 그러나 종교적 활동 외의 다른 교육적 활동에서는 일반 학교와 차별되는 점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학교의 설립 정신도 교육과정이나 학교 행정 등 학교 교육의 구체적 활동에는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다. 오히려 대학 입시를 위한 살인적 경쟁 대열에서 일반 학교들에 뒤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이 미션학교들의 현주소이다. 이처럼 미션학교가 일반학교와의 차별성을 지니지 못하게 된 이유는 기독교 복음을 학문, 교육과 관계된 것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단지 종교적 측면에만 국한한 이원론적 사고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학교를 단지 전도의 장으로 이해하고,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만족해 버린 것이다.
둘째, 전인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기독교계 학교들이다. 풀무고등학교, 거창고등학교 등이 이에 속한다. 1998년 개교한 한빛고등학교도 이 범주에 넣을 수 있을 듯하다. 이들 학교들은 학교의 설립 동기와 목표가 기독교 정신에 입각해있을 뿐아니라 실제 오랜 역사 가운데서도 학교의 설립 정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일반 학교와의 차별성을 보여주고 있다. 올해 개교 40주년을 맞이한 풀무학교의 경우 ‘이웃과 더불어 사는 평민’ 양성이라는 학교 목표에 부합하는 교육 활동을 활발하게 수행하고 있다. 7,80명의 정도의 전체 학생들이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하며 배움과 생활의 공동체를 연습한다. 매일 아침 학생 스스로 성경을 읽고 나눔을 가짐으로 성경의 가르침이 인격 속에 자연스럽게 배어들도록 하고 있으며, 전 교육과정의 30% 되는 농업, 컴퓨터, 목공, 농기계, 가공 등의 실습과목을 통해 다양한 직업의 기초를 탐색하고 노동의 가치를 배우게 하고 있다. 졸업생 모두가 고교생활 중 자신이 가졌던 관심분야와 앞으로의 진로와 관련하여 졸업 논문을 쓰는 것은 풀무만이 갖는 전통이라 할 수 있다.
풀무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거창고의 경우도 기독 인재 양성이라는 설립 정신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학교라 평가받는다. 이 학교는 성경에서 가르치는 중요한 정신이라 믿는 민주 정신과 민족 정신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시한다. 그래서 모든 학교 행사들이 이런 정신에 부합하도록 구성된다. 거창고의 새 학기는 3.1절 기념 예배로부터 시작되어 4.19 기념 행사, 8.15광복절 행사를 중요하게 치른다. 4월과 9월에는 대동제와 예술제가 학생들의 주도로 신명나게 이루어진다. 이때는 학생 자치 단체인 학생회와 20여 개의 동아리가 활발하게 참여한다. 일주일에 두 시간씩 있는 성경 수업과 예배 시간은 이 학교의 건학 이념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시간이다. 성경이 가르치는 삶; 정의로운 삶, 인간 존중의 삶, 양심을 잃지 않는 삶을 학생들은 배우고, 공부하는 목적을 분명히 하는 시간이다. 비록 지금은 입시 경쟁의 파고에 초연하기 어려워 학교 초창기보다 학생 자치 활동이며 전인교육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위축되고 있지만 40년이 넘도록 지켜온 민주, 민족 정신이 학교 곳곳에 살아있는 전인 교육의 요람이라 할 수 있다.
1998년 전인교육을 위한 특성화 학교로 출범한 한빛고등학교(전남 담양 소재)는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지덕노체를 겸비하고 공동체적 소양을 갖춘 인간의 양성을 목표로 하는 소위 대안 학교이다. 양로원,고아원, 장애자 시설 등에서의 봉사활동을 하는 ‘더불어 살기’ 교과, 텃밭 가꾸기, 농번기 일손 돕기, 공작활동 등의 ‘땀흘려 일하기’ 교과, 국토 순례, 문화유적 답사, 명사 초청 강연 등의 ‘문화 실체험 학습’ 교과, 모둠별 주제 학습, 환경 생태 탐사 활동 등 ‘우리는 하나’ 교과 등이 특성화 교육과정으로서 보통 교과와 함께 교육되어지는 학교이다.
위에서 살핀 세 학교는 지금까지 우리 교육사에서 중요한 공헌을 해 왔으며 앞으로 그 역할이 기대되는 학교들이다. 이 학교들의 공통점은 우선 학교의 설립이 외국 선교사나 교회에 의해서가 아니라 교육에 뜻을 둔 기독교 선각자에 의해 이루어졌고, 학교의 건학 이념이 분명하고 오랜 역사 속에서도 변질되지 않고 비교적 잘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뿐 아니라 교육목표가 선언적, 형식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정으로 구체화되어 있다. 학교에 따라 표면적 교육과정으로 정착되기도 하고, 잠재적 교육과정으로 녹아 있기도 하다. 그리고 이들 학교는 작은 학교, 기숙 학교를 표방함으로(풀무고의 경우 한 학년에 1개 학급 25명 정도, 거창고과 한빛고의 경우는 한 학년에 4개 학급임)배움과 생활 공동체를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적 세계관의 관점에서 볼 때 이들 학교는 한계점을 지닌다고 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학교 교육의 이념, 목적을 설정함에 있어 성경적 교육관을 철저하게 따르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이들 학교들이 표방하는 전인 교육이 분명 성경을 토대로 하고 있지만 거기에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 복음을 전하는 선교적 사명, 복음으로 세상을 새롭게 하는 문화적 사명 등과 같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질과 관계된 개념들이 분명하지 않다. 다음 교육 이념이 학생들에게 보여지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매체인 교육과정과 교사의 문제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교육과정의 일부에서는 학교의 이념이 잘 나타나고 있지만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보통 교육과정에서는 일반 학교들과 차이가 없다. 기독교 복음이 인간의 전(全)영역의 삶과 관계가 있고, 모든 학문이 제각기 하나의 세계관에 토대하고 있는 것이라면 분명히 모든 교육과정이 일반 학교의 그것과 달라야 됨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교사 역시 기독교 정신을 소유한 자들이어야 한다. 전인교육을 추구하나 그 세계관이 무신론적 휴머니즘에 터해 있다면 교육의 근본적 문제에서 다른 입장을 노출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학교의 교사들은 훌륭한 인격에 교육적 사명감을 지닌 분들이 대부분이지만 성경을 삶의 진리로 고백하는 것이 필수 전제로 되지는 않는 것 같다. 이러한 점들은 이들 학교를 진정한 기독교 학교로 이름하기에 어렵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셋째, 방학을 이용하여 일정 기간 이루어지는 기독교 실험 학교들이다. 기독교사회(T.C.F)에서 1993년, 1994년 실시한 바 있는 겨울 기독학교와 기독교학문연구회 교육연구모임에서 1996년부터 지금까지 실시하고 있는 새롬학교가 이에 속한다. 이들 학교들은 현직 교사들이 기독교 세계관과 교육관을 공부한 뒤 현실 속에서 기독교 교육을 실천한 사례들이다. 겨울 기독학교는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목들이 하나님과 관계없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이 모든 학문과 삶의 주인됨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려는 목적으로 시행되었다. 10명 정도의 현직 중,고 교사들이 기독교 교육학자들의 도움으로 프로그램을 편성하여 4일 동안 캠프 형식으로 학교를 운영하였다. 인간론, 사회, 자연과학, 언어 등으로 과목을 나누어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을 기독교 세계관의 입장에서 새롭게 해석한 내용들을 가르쳤다. 안타깝게도 현재 지속되지 못하고 있다.
새롬학교는 기학연 교육연구모임 교사들이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1996년부터 매 방학마다 실시하고 있는 계절학교이다. 이들은 우리 나라 기독교교육계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Dr. Greene이 중심이 되어 Alta Vista 대학에서 개발한 Home Schooling Curriculum을 번역하여 학교의 프로그램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커리큘럼은 모든 교과가 구분없이 주제별로 수적, 공간적, 사회적, 역사적.... 등의 15가지 양상으로 통합되어 있으며, 주제는 ‘개인인 사람’, ‘집단으로서의 사람’, ‘동물’, ‘식물’, ‘지구와 우주’ 등 5가지로 되어 있다. 지금까지 다섯 번에 걸쳐 실시된 새롬학교에서는 사람, 동물, 식물 등에 대해 교육해 왔다. 비록 미국의 것이기는 하지만 체계적인 기독교 학교교육 프로그램을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적용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또한 이 학교에서는 부모들의 교육적 역할을 중시하여 새롬학교 학부모 후원회도 결성, 운영하고 있다.
이들 기독교 실험 학교들은 현장의 교사들이 현 학교나 교회에서 실시되고 있지 못한 기독교 교육 프로그램을 방학을 이용하여 실시함으로써 현 학교와 교회의 교육을 보완하는 측면을 갖는다. 그리고 교육의 목적이나 내용이 성경적 세계관에 입각해 있다는 점을 중요한 의의로 꼽을 수 있다. 아직 정규적인 학교로 자리잡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참다운 기독교 학교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넷째,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해 있는 학교이다. 학교의 철학적 토대와 교육과정, 교사진, 학교 행정 등이 성경의 가르침과 부합하는 학교이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기독교 학교라 할 수 있다. 이런 부류에 속하는 학교가 우리 나라에 있는가 하는 문제는 좀 더 논의가 있어야 되겠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1994년 수원에서 개교한 중앙기독초등학교가 이에 가까운 학교라 판단된다. 이 학교는 일반 미션 학교와 같이 교회에 의해 설립, 운영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물론 학교에 대한 실질적인 준비와 운영은 미국에서 기독교 교육을 공부하고 온 한 목사님에 의해 이루어 졌다. 이 학교는 일반 미션학교와는 달리 학교의 준비, 설립, 운영을 성경적 원리에 입각하여 실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먼저 학교 교육의 기저를 지금까지의 진화론적 교육과정과 인본주의 교육의 관행으로부터 탈피하여 하나님의 창조 과학과 성경적 계시로 삼는다고 분명히 하였다. 그래서 이 학교의 교육과정에서 중요시하는 것이 기독교적 통합과정의 구현이다. 성경적 삶의 원리와 각 교과과정과의 통합, 교과와 생활과의 통합, 특수교과간의 통합, 장애아와 비장애아와의 통합교육을 위해 구체적이 노력을 하고 있다. 교육의 방식에 있어서도 성경적 원리에 근거하여 학생 상호간의 협동심을 유발시키는 협동학습을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이 학교의 특징 중 하나는 성경에서 제시하는 부모의 자녀교육에 대한 권리를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정심방, 학부모 대학, 학부모 성적표 제도, 학부모 토론회의, 학부모 봉사, 아버지 캠프 등과 같이 다양한 학부모 참여 프로그램을 준비해 놓고 실시하고 있다.
아직 역사가 짧은 관계로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기가 어려운 입장이나 학교 설립의 정신이나 학교 운영의 계획에 있어서는 우리 나라 교육사에서 획기적인 것임에 틀림이 없다. 앞으로 이 학교가 건학의 이념을 모든 교육활동에 잘 구현해 내기를 기대하며 앞으로 우리 나라에서 일어날 기독교 학교 운동에 좋은 길잡이가 되기를 소망한다.
4. 기독교 학교 운동의 의의와 과제
지금까지 기독교 전통이 오래된 호주와 미국에서의 기독교 학교 운동과 우리나라의 기독교 학교에 대해 살펴보았다. 거의 모든 학교가 기독교 학교로 시작한 서구의 학교들이 현재에 이르러서는 대부분이 세속화되어 버렸고, 소수의 학교만이 새로운 비전을 안고 기독교 학교로 태어나는 서구의 역사를 통해 기독교 학교 운동의 의의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먼저 하나님 나라 백성들은 하나님 나라의 법칙에 따라 교육을 받아야 된다는 당위성은 기독교 학교에 정당성을 부여해 준다. 가정과 교회가 기독교 자녀들의 교육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식이 전문화되고 다양화된 현대사회에서는 현실적으로 그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학교가 생겨났지만 오히려 학교는 기독교 자녀들에게 지식에 대한 왜곡된 가르침으로 혼란만을 가져오게 하였다. 지식에는 세계관이 배제된 순수 객관적인 것이 있을 수 없기에 결국 대개의 학교에서는 무신론적 인본주의나 이기적 자본주의에 입각하여 지식을 가르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정과 교회에서 시키는 신앙교육은 기독교 자녀들로 하여금 일상과 종교영역을 분리하게 하는 이원론적 삶을 낳게 할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는 하나님이 모든 삶의 주인으로 자리잡지 못하고 단지 교회 생활과 관계된 종교적인 영역으로 밀려나게 된다. 이러한 사실들은 창조주 하나님, 회복자 예수님, 인도자 성령님을 부인하는 엄청난 불신앙을 초래하게 된다. 성부 하나님께서 태초에 우주만물을 창조하셨고(창1:1), 인간의 죄악으로 깨어진 관계를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하나님과 화목케 하셨으며(골1:20), 성령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요16:13).
하나님을 주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야 할 뿐 아니라 자녀들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다(신6). 그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방편이 바로 기독교 학교라 할 수 있다. 기독교 학교를 통해 자녀들에게 모든 교과 지식을 성경적 관점으로 가르치며 세상의 타락한 문화를 복음의 능력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힘을 갖게 해야 한다. 서구의 기독교인들이 자녀의 올바른 신앙교육을 위해 기독교 학교를 설립하거나 혹은 자녀를 기독교 학교에 보내기 위해 멀리서 이사를 오는 등 희생을 아끼지 않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해 교회와 사회를 부흥시키는 역사를 일으켰음을 기억해야 한다.
둘째, 기독교 학교는 많은 문제들의 진원지로 전락해 버린 일반 학교의 대안적 기관으로 의의를 갖는다. 학교는 그가 속한 사회의 미래를 담보한다. 미국의 경우 일반 공교육이 많은 문제점들로 허덕이고 있을 때 기독교 학교 운동이 새롭게 대두되었다. 우리 나라의 경우 공교육은 서구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에다 과히 살인적이라 할 수 있는 입시 경쟁의 문제점을 더 안고 있다. 그래서 많은 학교들이 교육의 기능을 포기한 채 이기적 욕망을 충족하고자 하는 경쟁자들만을 양산하고 형편이다. 사회는 더 이상 학교를 교육의 장으로 신뢰하지를 않는다. 이러한 학교에서 교육받은 학생들이 후에 이루어갈 사회의 모습은 어떠하겠는가?
학교 교육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추진하고 있는 정부의 교육 개혁 정책이 우리의 이러한 교육 현실을 얼마나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지 의심스럽다. 위로부터의 일방적인 개혁이 사회 전체를 변화시키기 어렵다는 사실은 역사를 통해 교훈 받아왔을 터인데 또 다시 그러한 과오를 범하고 있다. 더구나 경제의 원리, 경쟁의 원리를 무분별하게 교육에 도입하여 학교 교육의 경쟁적 분위기를 더욱 가중시키고 조장하여 숨쉬기조차 힘든 학교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최근 몇 년 사이에 유행처럼 불고 있는 대안 교육 운동은 그 나름으로 우리 나라의 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한 방법이 되고 있다. 끝없이 추구되어 온 현대 문명의 위기를 지적하고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위한 사고의 전환을 촉구한 점을 우리 모두는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운동이 추구하는 자연친화적 생태주의와 공동체 사상이 성경적 진리에 토대해 있지 않다면 우리 교육에 대한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없으며,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음은 명약관화하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의 미래를 밝힐 수 있는, 현 학교의 대안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것은 기독교 학교이다. 그곳에서는 인간과 우주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성경을 근거로 하여 알 수가 있다. 학생, 교사, 학부모 그리고 모든 지식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목되어 있기에 진정한 배움과 가르침의 공동체가 이루어질 수 있다. 이 시대의 우상으로 자리잡고 있는 물질 번영 이데올로기와 쾌락주의를 극복하고 인간에게 참된 평화를 주는 문화를 창조할 수 있다. 이처럼 기독교 학교는 이 땅의 교회와 함께 세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음으로 일반 학교의 대안적 기관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기독교 학교가 갖는 두 가지 의의는 기독교인 개인에게나 우리 나라 전체에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시급하게 운동적 차원에서 기독교 학교들을 설립, 운영할 필요가 있다. 우리 나라 기독교인의 의식의 성숙과 교육 환경의 변화는 이제 더 이상 기독교 학교 운동을 미룰 수 없게 만들고 있다. 70,80년대 교회와 대학에서 성경 공부와 세계관 공부를 한 세대들이 학부모가 된 지금 그들은 자녀들을 위해 일반 학교와 다른 학교를 강렬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대안 학교 운동과 교육부의 특성화 교육 프로그램 등으로 학교의 설립과 운영이 과거에 비해 훨씬 자유로워지고 있고, 이 시기를 이용하여 다양한 사상을 토대로 하는 새로운 학교들이 생겨나고 있다. 지금은 우리 나라에서 기독교 학교 운동을 펼쳐나갈 내적 조건과 외적 토대가 가장 잘 갖추어져 있는 시기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주신 이 기회를 잃어버린다면 우리 나라의 교육은 다시 혼란과 암흑 속에서 벗어나지를 못할 것이고, 그 책임은 당연히 먼저 진리를 안 우리들에게 물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자녀들을 올바르게 교육시키고 우리 나라의 미래를 밝힐 기독교 학교 운동을 전개시켜 나가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무엇보다 기독교 교육에 관계된 다양한 자들의 연합이 필요하다. 자녀를 성경적으로 교육하기 위해서 재정적, 시간적 부담을 기꺼이 질 수 있는 학부모들, 미래의 학생들에 대한 비전을 꿈꾸며 신앙과 교과지식을 통합하여 잘 가르칠 수 있는 교사들, 성경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교육과정과 교육자료들을 개발할 기독교 학자들,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교육을 위해 사심없이 물질을 제공할 수 있는 후원자들, 그리고 구체적으로 학교가 설립될 수 있도록 법적, 행정적 여건을 조정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이들의 연대를 이루어 내기 위하여 구심점의 역할을 하는 집단이 있어야 할 것이다. 원리적으로 가장 적당한 집단은 학부모들이나 학부모 운동이 활발하지 않은 우리 나라의 여건을 고려해 볼 때, 교사 집단이 대신 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이미 기독교사 모임이 여럿 있고, 또 교사 모임들이 연합하여 활동하는 상황이기에 이들이 구심점이 되어 각 집단들의 연대를 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 학교 운동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기독교 학교가 독특한 성격을 유지하면서도 일반 학교에 비해 우월성을 유지하느냐에 달려있다. 기독교적 독특성과 교육적 우월성은 많은 경우 교사들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므로 기독교 학교에서 가르칠 교사들을 양성하는 것이 기독교 학교 운동의 관건이라 할 수 있다. 서구의 기독교 학교 운동에서도 이러한 점은 이미 확인 된 바 있다. 그들은 기독교 학교 설립 초기부터 교사 양성을 위해 기관이나 대학을 설립하여 기독교사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우리 나라에서 미션 학교나 전인교육의 기독교계 학교들이 진정한 기독교 학교가 되지못하는 일차적 원인 역시 교사들의 차별성이 없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에서 기독교 학교 운동의 초기부터 힘써야 할 일이 바로 기독교사의 훈련이다. 기존의 (신학)대학을 이용할 수도 있고, 아니면 대학과 교사단체가 연합하여 훈련센타를 설립할 수도 있다. 그리고 앞으로 설립될 기독교 학교에는 반드시 교사 훈련 프로그램을 갖고서 자체 연수도 실시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여러 단체의 연합으로 우수한 기독교 대학이 설립되어 기독교 학교 교사들을 양성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일들에 실패한다면 앞으로 세워지게 될 기독교 학교도 오래지 않아 세속화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교사와 함께 학교에서 중요한 것이 교육 프로그램이다. 특별히 기독교 학교에서는 일반 학교에서 사용하는 교육과정을 그대로 사용할 수 없기에 새롭게 개발되어야 한다. 또한 교과서를 비롯한 교육 자료들도 새로이 만들어져야 한다. 기독교 학교 운동을 함에 있어 지금까지 연구된 자료들을 종합하고 구조화하여 실제 학교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나 기독교 학자들과 기독 교사들이 함께 지혜를 모아 학교에서 사용할 교육과정을 개발하는 작업은 앞으로 계속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교사 훈련 센타와 더불어 기독교 교육 과정 개발 센터도 기독교 학교 운동에 필수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것들도 개별 학교에서 이루어져야 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 나라에서 기독교 학교 운동이 과연 가능하겠으며 그리고 이런 운동이 우리의 사회를 얼마나 변화시킬 것인가에 대해 회의를 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지금까지 전도와 선교에 대해 품었던 것과 동일한 열정을 교육에 쏟는다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본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을 가슴에 품고 이 땅의 의를 위해 부르짖는 자들이 하나 둘씩 생겨나면 하나님께서는 분명 이 땅에 남은 자들을 불러 일으켜 세상을 변화시킬 새로운 기독교 학교들을 세우실 것이다.
※ 참 고 도 서 ※
◈ Christian Community Schools, Changing Our Nation. Christian Commmunity Schools Limited, 1988
◈ CPCSL, Transforming Christian Education, Christian Parent Controlled Schools Limited, 1992.
◈ Donald Oppewal & Peter P. Deboer, "Calvinist Day Schools: Roots and Branches", Christian Schools: A Syllabus.ICS, 1986
◈ J. B. Hulst, “기독교대학의 세속화” 통합연구 13권, 통합연구학회, 1992
◈ Norman E. Harper, 현대 기독교 교육, 엠마오, 1984
◈ Robert Allen Hill & Olaf John. 현대교육의 피해와 기독교교육.성도출판사, 1985
◈ William J. Reese, "Soldiers for Christ in the Army of God: The Christian School Movement in America" Christian Shools: A Syllabus. ICS, 1986
◈ 기윤실 교사모임. 기독교 학교(1). 기윤실 교사모임 심포지움 자료집,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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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교육운동 협의회, 부끄러운 학교 모범 교육, 정교협 교육개혁자료집, 1995
ꌧꌧ 토 의 문 제 ꌧꌧ
1. 자기 자녀를 현재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 마음놓고 맡길 수 있겠습니까?
만약 맡길 수 없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 공립학교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3. 미션계 사립학교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4. 여러분이 학교를 세운다면 어떠한 학교를 세우고 싶습니까? 내가 교장이라면 어떻게 학교를 운영하고 싶습니까?
5. 여러분이 교육부 장관이라면 학교를 어떻게 개혁하시겠습니까?
※ 바람직한 학교의 모습에 대하여 다음 주제별로 생각을 정리해보고 크레파스와 전지를 활용하여 그림을 그려 발표해 봅시다.
1) 학교의 정의 및 학교 목표
① 바람직한 학교란 무엇입니까?
② 기독교 교육이란 무엇입니까?
③ 기독교 학교란 무엇입니까?
④ 학교 운영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2) 학교의 교육과정
① 교과목은 어떤 가목을 중심으로 운영해야 할까요?
② 학교 단위의 교육과정을 어떻게 운영해야 할까요?
3) 기독교학교의 구조
① 한국적 상황에서 기독교학교를 세운다면 교회중심, 학부모 중심, 교사중심, 위원회 중심 구조 중 어느 것이 바람직할까요?
② 학교와 교사는 어떻게 선발하는 것이 좋을까요?
③ 건물과 학생수는 어느 정도가 적합할까요?
④ 재정 자립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요?
⑤ 의사결정 구조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⑥ 학생 자치 활동 및 교사 연수 등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4) 기독교학교의 설립
① 기독교학교를 세운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효과적일까요?
② 학교 설립을 위한 구체적 계획을 나름대로 세워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