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섬은 인도네시아의 군도(群島) 중 유난히 진주처럼 반짝이는 섬이다. 발리는 신(神)들의 섬이라는 뜻이다. 그 이름에 걸맞게 각양각색의 조각상들이 눈에 띠고, 어느 곳에서나 이런 신상들에 절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대부분이 힌두교도인 이 곳 발리섬 주민들은 동물이나 기묘한 모습의 사람을 본떠 조각하거나 세워놓고 하루에 두 번씩 숭배한다. 심지어 남자와 여자의 성기(性器)모양을 조각상을 세워놓고 거기에 제사를 드리기까지 한다.
발리는 한국에서 10시간 남짓 비행기를 타고 가야만 하는 태평양 한가운데 너무도 앙징맞은 섬으로 사람들은 맑은 물색깔처럼 순박하기만 하다. 거무튀튀한 피부에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이지만 너무 부드럽고 탱탱하게 보인다. 나그네의 호기심으로 「화장한 얼굴입니까?」「아니요」 「볼 한번 만져 보아도 되나요?」 「sure(OK)」라고 말하는 그 곳 여인들은 마음도 넉넉하다. 피부탄력만큼이나 부드럽운 마음씨라고나 할까.
겨울의 발리는 우리의 장마에 해당되는 우기(雨期)에 해당한다. 하루 한 두 차례 소나기가 퍼붓는다. 바짝 마른 열대의 여름에 내리붓는 소나기는 여행객들에게는 그야말로 청량제다. 한번의 소나기로 아스팔트도로가 불과 20여분도 못 되어, 자동차 바퀴의 2/3이상이 잠길 정도이고 비가 내리면 물의 도시 베네치아나 중국의 항주(抗州)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그치고 나면 언제 그랬느냐싶게 하늘 높이 우뚝솟은 야자나무 잎사이로 푸른 하늘과 구름이 아름답게 떠 다닌다. 발리의 해변은 저 넓은 태평양의 바람에 실려온 원시의 순결한 파도의 냄새를 느끼게 한다.
이토록 아름다운 발리섬은 숨겨진 보물찾기하든 여행해야만 그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마치 거대한 수목원같은 섬 곳곳에 박혀있는 사원이나 유적들 그리고 해변의 절경들은 찾아다니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다. 보란 듯이 넓은 어깨를 펴고 펼쳐진 ‘짐바란’과 ‘꾸따’ 해변이 있는가 하면 잘룩한 여인네의 허리처럼 완만하고 부드러운 산호가루 눈부신 잉크빛 비치가 있다. 수줍은 처녀처럼 드러내기 싫어하듯 숨어있는 호텔이 있는가 하면 금방이라도 뛰어들고 싶을 정도로 유혹하는 야자나무 우거진 애머랄드 머금은 해변리조트들도 조화롭게 서 있다. 그래서 해변의 아름다운 자태와 아우러진 호텔들의 조화를 감상하는 것은 또 하나의 여행의 맛이다. 우리 제주도의 두 배면적의 발리섬, 그곳엔 입벌린 신상의 노한 모습을 한 ‘낀따마니 활화산(活火山)’도 있고 밀물이면 육지와 연결된 길이 잠겨 바다가운데 외로이 떠 물위의 사원인 ‘따나롯’이라는 사원도 있다. 고도(孤島)의 ‘따나롯’의 적막함을 품에 안고 지는 노을은 보는 사람의 가슴에는 평생의 지워지지 않는 추억의 그림엽서를 새겨준다. 장엄한 모습으로 저토록 넓은 바다를 순식간에 황금빛보다 더욱 아름다운 색조로 물들이며 지는 석양노을을 보면 누구나 시인(詩人)이 되믄데 보는 이들의 가슴엔 삶의 덧없음과 그동안 살아온 인생의 부질없음이 교차된다. 더 이상 표현하기 어려워 「황금 물결」이라고 표현했지만 어둠이 내리기까지의 노을이 가져다 주는 감동은 형언하기 어려울만큼 위대한 오케스트라이다. 저 멀리 지구 서쪽끝 수평선너머로 반쯤 잠긴 해를 뒤로 하고 귀환하는 장난감같은 배들과 부서지는 파도소리, 거기에 그곳 젊은이들의 단순하며 둔한 것 같지만 가락있는 투박한 손악기들 그리고 그것들과 어울리는 애조띤 노래소리, 저토록 아름다운 불덩이앞에 올망졸망 살아가는 인생의 모습들이 모두 사랑스럽게만 보인다.
거기에 한 낮의 무더위를 날려 버리기라도 하듯 미풍(微風)에도 살짝위로 걷어 올려져 여인에 종아리를 들춰 보여주는 이곳 여인들이 입는 ‘슬랜당’이나 ‘싸롱치마’는 발리섬의 또 하나의 매력이다.
반팔차림의 며칠간의 발리 여행을 뒤로하고 다시 내린 영종도 신공항에서 두터운 겨울옷을 트렁크에서 꺼내입는 그 시간에 창밖엔 하얀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몇 시간만에 열대와 한대를 맛보니 묘한 생각이 든다. 여행뒤 끝에 늘 느끼는 것이지만 여전히 우리나라는 아름답다는 생각이다. 겨울바람의 매섭고 독한 기운이 오똑선 미인의 콧날처럼 계절이 분명한 우리나라의 품에 안기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카멜레온처럼 얼굴을 바꾸는 저 먼 열대의 한 점 아름다운 섬 발리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단장하고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