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line : 루이뷔통과 함께 프랑스의 대표적인 명품 브랜드로 손꼽히는 셀린느의 역사는 1946년 어린이의 구두를 취급하는 첫 부티크가 파리의 말트가에 생기면서부터 시작 부티크의 주인인 셀린느 비피아나의 이름을 따서 시작된 셀린느 부티크는 셀린느 부부의 '고품질, 편안한 구두 철학'으로 꾸준한 인기를 누리게 된다. 1959년 셀린느의 독특한 말 재갈 장식을 한 잉카 로퍼가 디자인 되면서 셀린느는 고객 층을 어린이에서 여성 층으로 넓혔다. 점차 대중적 인기를 누리면서 셀린느는 1969년에 처음으로 레디투웨어를 선보인다. 이전에 신발과 가방 등의 가죽 제품으로 성공한 후, 그 품질과 품격을 그대로 의류에도 적용시키고자 1967년 꾸뛰르 디자인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2년 만에 레디투웨어 컬렉션을 출시한 첫 브랜드 중 하나가 되었다. 1971년 파리 에투왈 광장(에투왈이란 불어로 별이란 뜻)의 개선문을 둘러싸고 있는 체인 장식을 본 뜬 블라종(Blason) 로고가 프린트 된 에트왈 블라우스는 출시되자 마자 큰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이어 1975년에는 셀린느의 백 및 액세서리 컬렉션인 '블라종 라인'이 탄생되었다.
Burberry : 토마스 버버리. 1835년 영국 사리주 브러컴그린에서 출생했다. 1856년 런던 베이진스턱에서 양복점을 개업했다. 농민들이 더러워지는 것을 막기위해 옷 위에 겉옷을 걸친 상위를 힌트로 '개버딘'이라 불리우는 내구성, 방수성이 뛰어난 신소재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름의 유래는 스페인어로 순례자가 입는 겉옷을 의미하는 '카발디나' 이다. 1888년에 특허를 획득했다. 1911년에 인류최초로 남극점에 도달한 아문젠이 방한복으로 사용했고, 제1차 세계 대전 시기인 1914년에는 트렌치코트로 영국 육해군에 정식 채용되는 등,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버버리코트'라고 불리우는 아이템은 작가 코난 도일, 영국 전 수상 윈스턴 처칠, 미전대통령 죠지 부시, 여배우 캐서린 햅번등 수많은 저명인사가 애용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1919년 죠지5세때부터 코트 쟈켓부문에서 영국왕실용으로 공급하게 되었다. 에드워드8세도 그레이트 코트(원단이 두꺼운 코트)의 디자인을 승인했다. 50년에는 죠지6세가 방한복으로서, 55년에는 엘리자베스2세, 89년에는 웰즈 황태자에게 다시 공급하게 되었다. 1924년 등장한 '버버리 체크'는 매우 유명하며, 코트의 안감으로 디자인 되었던 것이 기원이다. 67년 파리쇼에서 발표된 우산은 버버리체크를 사용, 처음으로 안감이외의 용도로 사용된 것이다. 그후 백, 머플러등 다양한 패션아이템에 다양한 칼라배합으로 전개되었다. 97년에는 '삭스 피스 애비뉴'의 여성사장, 로즈 마리 브라보가 최고경영책임자에 취임했다. 또한 질 샌더의 어시스턴트 디자이너였던 로베르토 메뉴케트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했으며, \'버버리 프로섬컬렉션'으로 1999 S/S에 레이디스, 2000 S/S에 멘즈상품으로 컬렉션에 참가. 로즈마리 브라보와 부사장겸 레이디스MD 미첼 스미스를 중심으로 전통에 모드를 더한 현대적인 스타일을 목표로 하고 있다. '프로섬(prorsum)'은 라틴어로 '전진'이란 뜻.
Gianni Versace : 지아니 베르사체. 1946년 남이탈리아 렛죠 카라브리아에서 출생한 베르사체는 어머니가 패션관계 일에 종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린시절부터 패션과 친숙했다. 72년에 '카라간' 과 '제니'의 디자이너에 발탁됐고 75년에 '콘프리체' 레자웨어 디자인을 다뤘다. 78년 독립해서 독자 컬렉션을 발표, 밀라노의 스피카 스트리트에 샵을 오픈했다. 심플하지만 개성이 강한 아름다움의 철학으로 밀라노의 최고봉에 군림했다. 82년 이탈이아 '골든아이상' 제1회 수상자로 선정됐고, 83년 미국의 '커티삭' 상을 수상했다. 88년에 Stanley Marcus Award를 수상했고, 90년 파리에서 첫 오뜨 꾸띄르 컬렉션인 아뜨리에 베르사체를 호텔리츠에서 발표. 같은 해 97년 7월, 게이인 테러리스트의 총에 맞아 숨을 거뒀다. 밀라노모드의 \'3G\'로써 페레와 아르마니와 함께 90년대 밀라노를 이끌어왔다. 1998년 S/S부터 쁘레타 포르테, 꾸띄르등 모든 부문을 동생인 도나테라가 계승했다.
Cartier : 1847년 아돌프 피카드의 견습생이었던 루이 프랑소와 까르띠에가 파리의 몽토르고이가 31번지에 있던 보석 작업장의 책임을 맡으면서 시작 1856년 나폴레옹의 지배가 끝나고 혼란기를 보낸 프랑스가 다시 활기를 되찾으면서 귀족들이 모이던 빨레 로와아얄 부근에 자신만의 샵을 열었다. 그리고 뉴베르케르크 백작 부인이 샵에 방문하게 되고 백작 부인의 소개로 나폴레옹 3세의 사촌인 마틸드 황녀가 그의 고객이 되었고 이어서 당시의 패션 리더였던 유제니 황후의 보석 세공을 맡게된다. 이일로 그는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다. 또한 세계적인 재봉사인 윌스와 친구가 된다. 루이 프랑스와 까르띠에는 가문의 전통을 세우기 위하여 그의 아들인 루이 프랑스와 알프레드에게 기술을 가르쳐 사업에 참여 시키고 1874년 알프레드는 회사 경영을 인수 받는다. 1899년 알프레드는 그의 세 아들 루이, 자끄, 피에르와 함께 사업을 보다 체계적으로 키우고 국제적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다. 사업 수완이 가장 뛰어났던 루이는 사업을 이어 받았고, 1902년 그의 동생인 자끄와 삐에르와 함께 런던과 뉴욕에 지사를 세우도록 하였다. 이 뉴욕 5 번가의 모튼 플랜트 빌딩은 훗날 까르띠에 인터내셔날사의 본부가 된다. 루이 삼형제 곁에는 찰스 자끄, 모리스쿠에, 에드몬드 에거 등 최고의 공예가가 있었다. 최고의 디자이너들과 함께 까르띠에는 불멸의 작품들을 끊임없이 내놓기에 이르렀고, 모든 형태의 보석 예술을 진보 시켰으며 보석 외에도 시계, 악세서리를 최고의 경지에 올려 놓았다.
Louis Vuitton : 1896년 이미테이션 상품의 유통을 방지하기 위해서 세계 최초로 모노그램무늬를 이용했다. 루이 뷔통의 이니셜인 L과 V, 꽃과 별의 조합의 모양은 그의 아들인 죠르즈 뷔통이 고안했다. 왕후귀족을 시작으로 상류사회의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그러던 중, 1998-1999 A/W부터 모드에 진입했다. 그때까지 콜렉션 용의 의류를 넣어 나르는 물건을 만들던 브랜드가 의류제작을 시작했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다. 디자이너로 기세가 좋은 마크 제이콥스를 받아 들여 첫 콜렉션부터 대호평을 받아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87년 루이뷔통사와 모에 헤네시사의 합병으로 'LV 모에헤네시그룹'이 탄생했다. 세계 최대의 패션제국이 탄생된 것이다. 프랑스의 문화와 전통을 깊이 있게 표현해내고 있는 것이 커다란 특징이다. 루이비통, 로에베, 세린느, 베루루티, 크리스챤 디올, 지방시 쿠뛰르, 겐죠 쿠뛰르, 크리스챤 라크루아, 후레드, 세포라등이 관련기업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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