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의 성웅 응칠 안중근
대한국인 안중근 의사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들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민족정기의 순국선열이시다.
1879년 9월 2일 순흥을 본관(순흥안씨)으로 황해도 해주읍 광석동에서 출생하시었으며, 7세 때 신천군 청계동으로 이사하여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하여 사서삼경에 통달하고, 무예에도 뛰어난 재능을 가진 십대 소년으로 근동에 명성을 떨치셨다.
19세에 홍석구 신부를 만나 천주교에 입문하여 ‘도마’라는 세례명을 얻었고, 서구 문명의 신지식을 배웠다. 1905년 이른바 을사조약이 늑결되자, 안중근 의사는 국권회복을 위해 진남포로 옮기시어, 삼흥학교를 설립하여 구국영재 양성에 진력하였으나, 1907년 일본은 고종 황제를 퇴위시키고 군대를 해산하고 철도를 빼앗고, 경찰권을 박탈하는 등 식민지 통치를 강화하자, 안중근 의사는 학교 교육으로 “백년대계(百年大計)는 가능하되 당장 나라를 구할 수는 없다.”하고 해외 망명을 결심하였다. 이 때 안중근 의사 나이 29세였다.
러시아 땅 연해주에 도착한 안중근 의사는 김두성, 이범윤 등과 의군을 편성하여, 일본군과 두만강 일대에서 십여 차례의 치열한 전투를 감행 혁혁한 전과를 올렸으며, 1909년 2월 안중근 의사는 러시아 연추부근 ‘카리마을’에서 11명의 결사 동지를 규합 「단지 동맹」을 결성하고, 왼쪽 무명지 손가락을 잘라 그 선혈로 태극기를 그리고 독립투쟁을 맹세하였다.
마침내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한국 침탈의 원흉 이등박문을, 북만주 ‘하얼빈’ 역두에서 포살하여 일본 제국주의의 야욕을 세계만방에 고발 응징하였다.
현장에서 체포된 안중근 의사는 재판과정에서 ‘나는 대한의 의병장으로서 한국 침탈과 동양평화를 파괴한 적의 괴수를 처단한 것’이라 의거의 당위성을 말했고, 이등박문의 죄상 15가지를 밝혔다.
한편 여순 옥중에서도 나라의 안위만을 걱정하시며, 「자서전」과 미완의 「동양평화론」을 집필하시는 동안 일제는 국제법을 무시하고, 응칠 안중근 의사를 사형 집행함으로써 1910년 3월 26일 32세의 일기로 순국하시었다.
안중근 의사의 육신은 비록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조국과 겨레를 위한 위국 헌신의 숭고한 정신과 「합성산패 만고정리」즉, ‘합치면 이룩하고 흩어지면 패한다.’ 고 하신 거룩한 깨우침과, 불멸의 평화애호사상을 우리 후손에게 남기셨다.
지금 우리나라는 지난날의 가난을 벗어던지고, 국민소득 20,000(이만)불 달성이라는 기적 같은 경제성장을 이룬 선진국의 대열에 서게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있기까지는, 이 나라를 지키고 부흥시키기 위해 희생하신 순국선열들의 피눈물 나는 투쟁이 있었음은 국민 누구나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작금의 우리 현실은 직시하면 풍요로운 물질문명에 빠져든, 그 이면에는 올바른 국가관과 민족의식은 실종된 지 오래인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저 정치권은 당리당략에 얽혀서 시궁창을 뒹굴고 있고, 대다수의 국민들은 근검절약을 망각하고 흥청망청 낭비하며, 하루살이 같이 삶을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 이 나라를 책임져야 할 미래의 주인공인 젊은이들은 인간 본연의 자세와 젊은이 특유의 정의감과 피 끓는 구국과 사회를 위한 희생정신은 사라져 버리고, 오직 야심을 채우기 위한 그릇된 교육에 빠져 들어서, 청춘의 본질을 왜곡하며 주인정신을 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여기에 필자는 구국의 일념으로 32(서른 두해) 평생을 오직 희생으로 살아가신 응칠 안중근 의사님의 정신을 대한민국과 나아가서는 전 세계만방에 이토록 빛나는 국민 모두에게 다시 한 번 안중근 의사의 정신을 알리고, 특히 한국 젊은이들의 오염된 정신을 깨우쳐주고 나아가서는 전 세계만방에 안중근 의사의 빛나는 업적을 알려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회복하고자 한다,
특히 16(십육)억 중국의 정신적인 지주인 국부 ‘손문(쑨원)’은 안중근 의사의 의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송축시를 지어 세계만방에 찬양하였다.
“공은 삼한을 덮고 이름은 만국에 떨치나니 백세의 삶은 아니나 죽어서 천추에 드리우리, 약한 나라 죄인이요. 강한나라 재상이라. 그래도 처지를 바꿔 놓으니, 이등박문도 죄인되리!”
특히 중국인 ‘양계초’는 안중근 의사를 숭배하며, 또한 추모하여 다음과 같은 구구절절 애절한 글을 남겼다.
“폭풍이 야수마냥 울부짖고 싯누런 흙모래 대지를 휩쓸리니
흑룡강 연안에 눈보라 휘날리고 북극의 엄동설한 살을 에는데
그 사나이 지척에서 발포하니 정계의 거물이 피를 쏟았네!
대사가 필하자 웃음소리 터지니
장하다 그 모습 해와 달 마냥 빛나리
내가 이 세상에 살아있는 한
사마천이 안자를 추모하듯 그대를 경중하고
내가 이 세상을 떠나면
내 무덤 의사의 무덤과 나란히 있으리!”
그 동안 안중근 의사님의 전기는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발표되었으나,
필자는 좀 더 사실적이고 박진감 넘치고, 적나라하게, 안중근 의사님의 역사적인 위업과 평화의 정신을 우리나라 온 국민과 함께 전 세계만방에 다시 한 번 알리고자 한다.
두릉 안중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