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는 듯한 강한 햇살이 비행기 창을 통해 들어왔다. 구름바다 위로 파스텔 톤의 푸른 하늘이 펼쳐 있다. KE981보잉기는 육중한 날개를 뒤척이며 해안선을 선회하기 시작했다. “ 20분 후면 이 비행기는 블라디보스톡 공항에 도착 합니다. 입국에 필요한 서류가 갖추어졌는지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시베리아를 횡단하기 위한 첫 출발점이었다. 유형인 이반 데니소비치를 생각나게 하는 얼어붙은 대지를 순례하고 싶었다. 공항은 시골역의 대합실 같았다. 30평 정도의 공간에 사람들이 콩나물시루처럼 들어차 입국심사를 기다렸다. 심사대가 박스형으로 3개밖에 없었다. 누런 제복에 견장에서 별이 반짝이는 관리가 신고서를 검사하고 있었다. 신고서에는 러시아에 가지고 들어오는 달러의 총액을 정확하게 쓰라고 했다. 출국시에는 가지고 나가는 달러를 다시 신고서에 기재 하게 되어 있다. 공항관리는 두개의 신고서를 비교해서 오히려 달러가 붙어서 나가는 사람에게는 불법취업의 혐의를 둔다는 것이었다. 관광객들의 주머니 속까지 정확히 검사하는 제도와의 첫 만남이었다. 입국 심사대를 통과하자 낯선 함경도 사투리가 들렸다. “ 어디메 갈라고 왔시오? ” 콧수염을 기른 작은 남자가 물었다. 그의 뒤 박스 안에는 다른 러시아 관리가 앉아 있다. 통역인 것 같았다. “ 모스크바요 ” “ 뭐하러 왔시오? ” 그가 다시 묻는다. “ 여행할라고 왔시오 ” 나도 그의 말투를 따라 대답했다. “ 가방을 찾으려면 저쪽으로 가보시라요 ” 그가 컨베이어 벨트가 설치된 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하나뿐인 작은 컨베이어 벨트는 정지되어 있었다. 꼬마 한 명이 그 위에다 장난감 자동차를 올려 놓고 놀고 있었다. 비행기에서 온 짐을 승객들이 일일이 손으로 들어 옮겼다.
<거리를 누비는 한국산 중고버스>
허름한 공항건물 앞에는 한국에서 수입한 중고버스가 서 있었다. ‘ 성동 초등학교 선경유치원 ’이라는 글씨가 그대로 적힌 채였다. 앞창에는 ‘ 한국방문의 해 ’란 팻말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버스는 시내로 향했다. 시의 외곽은 검은 나무 판잣집들이 드믄드믄 언덕 기슭에 보였다. 판자 울타리 안에서 괭이로 텃밭을 파는 뚱뚱한 노파가 보였다. 이따금씩 파헤쳐진 땅에 노란 민들레가 피어 있었다. 어느새 내가 탄 버스는 블라디보스톡 시내의 스톨리체 거리를 지나가고 있었다. 칠이 벗겨진 오층의 퇴락한 아파트들이 길 양옆에 있었다. 우울한 인상이었다. 시내 안내원이 이렇게 말했다. “ 겉으로 보기에는 가난하고 우중충해 보여도 여기 사람들의 정신세계는 다릅니다. 영하 20~30도의 강추위에 시장 좌판 앞에 앉아서도 독서를 하는 게 또 러시아인이예요 ” 그가 차창 밖의 허름한 3층 건물을 손으로 가리켰다. 허연 창틀의 적막해 보이는 건물이었다. “ 저 건물은 요양소예요. 아프다고 신고하면 누구나 저기에서 요양할 수 있어요. 겉은 3등 병원이지만 편히 쉬려면 그만한 데가 없어요. 공산주의가 좋은 점은 이런 거예요 ” 거리에는 한국산 중고버스 천지였다. ‘ 우석관광 ’이란 글씨를 단 버스가 옆으로 지나갔다. 앞으로는 ‘ 신세계 자동차 운전학원 ’이란 한글간판을 단 버스가 서 있었다. 부산에서 운행되던 시내버스도 다니고 있었다. 앞 유리에 ‘ 해운대 부산역 법원 ’ 이라고 표지판이 붙어 있다.
<기성세대는 변화에 적응 못해>
내가 탄 버스기사는 40대 후반의 코가 큰 라트비아인 이었다. 그는 변방의 라트비아인은 부지런하다고 했다. 러시아 공산당같이 게으르지 않다는 것이다. 공산당 정권 시절은 일을 하지 않아도 배급이 나오고 월급이 나왔다. 그러나 당과 정부는 이제 각자 알아서 살라고 한다는 것이다. 공산당을 추종하던 기성세대는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지금 당황하고 있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은 그들이 받는 연금으로 생존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노인이 된 공산당원은 거지로 내몰리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버스기사인 라트비아인은 부산에 가서 박이라는 사람에게 버스를 사서 배로 실어 왔다고 했다. 그는 버스 몇대를 직접 운전 정비하면서 부자가 되었다고 자랑했다. 세멘노프스카야 거리 29번지 앞을 버스가 지나가고 있었다. 일률적 형태의 벽돌집들. 녹이 슨 뾰족한 함석지붕. 건물마다 퇴색한 낫과 망치가 그려져 있는 우울한 회색의 거리였다. 망명한 독립 운동가들의 무덤이 있었다는 신라촌은 주거지역 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 저 아파트는 율부린너가 태어난 곳이예요 ” 안내원이 허름한 길가의 아파트를 가리켰다. 눈이 부리부리하던 영화배우 율부린너가 그곳 사람인 걸 처음 알았다. 독수리요새가 있는 바닷가로 갔다. 바닷가 둑에서 몇몇 노동자풍의 남자가 낚시를 드리우고 있었다. 깡마른 얼굴에 굵은 주름이 패인 피곤한 모습들이었다. 시간을 낚는 듯 했다. “ 많이 잡았어요? ” 나는 우리말로 그냥 물었다. “니에토, 니에토 ” 그 남자가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잡지 못했다는 뜻이 저절로 들어온다. 나는 그의 옆에 놓여 있는 작은 양철 상자갑을 가르키며, “ 미끼를 뭐로 쓰는데? ”하고 물었다. 그가 씩 웃으며 양철갑 속에 손가락을 넣어 지렁이를 집어 올려 보여준다.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인간과 인간의 교감은 대단하다.
<북조선에서 빼돌린 향로 사시라요>
다음날 아침 나는 야시장을 찾아갔다. 즐비한 좌판에 없는 물건이 없다. 아예 한 블록은 오래된 차에서 분해된 부품들 장사꾼들이었다. 몇 개의 볼트와 너트, 캬뷰레터 한두 개를 앞에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다. 주인이 잠시 비운 사이 비둘기들이 푸드덕거리며 해바라기씨를 훔쳐먹는 난전도 있었다. 수염이 하얀 늙은 영감이 메고 가는 자루 속에서 돼지가 죽겠다고 꽤액 거렸다. 넓은 공터에 2층으로 가지런히 쌓인 컨테이너의 자물쇠가 열리면서 그 자체가 독립점포가 되기도 했다. 과일가게, 빵가게, 어물, 육류 등 모든게 갖추어져 있었다. 시장 입구에는 조그만 물통에 ‘ 크바스 ’를 채워 행인에게 파는 소녀가 보였다. 톨스토이의 소설에서 나오는 농부들의 음료수였다. 톨스토이는 노동 후에 마시는 크바스의 시원함을 소설에서 얘기 했다. 5루블을 주고 크바스 한 잔을 샀다. 시큼하고 달콤했다. 흑빵도 하나 사 먹었다. 광복 후 우리나라에 진주한 러시아 군인들이 가지고 들어온 흑빵에 관한 얘기를 많이 들었다. 러시아 군인들이 휴대한 흑빵을 깔고 앉기도 하고 베개로도 사용 하면서 식사 때가 되면 조금씩 뜯어 먹더라는 것이었다. 어느 좌판 위에 ‘ 소고기 맛나 ’와 ‘ 도시락 ’이 있는걸 보았다. 그 옆에는 가죽 같은 것이 둥글게 말려 있었다. 깡마른 각진 얼굴의 사나이가 난전 주인 같았다. “ 아저씨, 한국 사람이에요? ” 내가 물었다. 연변 쪽의 조선족인 것 같았다. “ 중국에서 장사하러 왔어요. 선생, 남조선에서 오셨지요? ” “ 그런데 여기 둥글게 말린 가죽 같은 게 뭐죠? ” 내가 한구석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 그거 북에서 먹는 인조 고기야요 ” “ 인조 고기라뇨? ” “ 콩으로 만든 건데 맛있어요 ” 사내는 내 눈치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 선생, 북조선에서 빼돌린 향로 사시갔어요? ” “ 어떤 건데요? ” “ 14세기 향로인데 진짜예요 ” “ 그거 사도 가져나갈 수가 없잖아요? ” “ 걱정 없어요. 된장이나 간장통 속에 숨겨 넣어 가지고 가면 돼요. 남조선에서 사업하시는 분들 오셔서 다 가지고 나가요 ” 그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 나는 블라디보스톡 역사를 찾아갔다. 촉촉이 내리는 비 속에 유럽풍의 건물이 서 있었다. 시베리아 대륙을 건너는 녹색의 육중한 기차가 매캐한 검은 숨을 토해 내면서 씩씩거리고 서 있었다. 역사 안 벤치에는 얼룩무늬 군복의 병사들이 여러 명 앉아서 떠들고 있었다. 모스크바 부근 출신들은 극동에 배치되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복무기간이 지나 제대명령이 시베리아 대륙을 건너오는 걸 기다리려면 한두 달 더 군대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